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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과 진리 (방일하지 않는 사람은 순간을 안다.) (20250323. 담마와나선원)

담마마-마까 2025. 3. 23. 21:44

* 순간과 진리 (방일하지 않는 사람은 순간을 안다.) (20250323. 담마와나선원)

 

Pamāde bhayadassi vā

Saṃyojanaṃ aṇuṃ thūlaṃ

Dahaṃ aggīva gacchati

방일하지 않기를 좋아하고 방일에 두려움을 느끼는 수행자는

미세한 것이든 큰 것이든 모든 마음의 번뇌를

불태우면서 걷는다. 타오르는 불처럼.

 

Pamāde bhayadassi vā

Abhabbo parihānāya

Nibbānasseva santike

방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수행자는

타락할 리가 없다,

언제나 열반이 가까이 있다.

 

수행을 하는 것이 불방일의 삶입니다.

 

환상의 세계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현상,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현상, 이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 개념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만든 세계에 갇혀 진실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더러워지는 것도, 번뇌가 나타나는 것도, 환상에 집착하여 끝없는 번뇌와 고통을 만드는 것도 그 결과입니다. 우리가 속박되어 있는 조작된 개념의 모든 것은 흥미롭게도 ‘과거’에 속합니다.

과거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은 미래를 인식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미래를 계획하거나 상상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예언자나 미래를 점치는 점쟁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미래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하는 일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자신의 망상적 개념으로 조립하여 새로운 날조된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미래의 이미지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새롭게 재구성한 것에 불과합니다.

‘과거에는 그 사건이 없었으니 미래에는 일어날 것이다’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오로지 과거의 개념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는 실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과거의 환각에 갇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순간

과거와 미래는 실재하지 않지만, 현재는 실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현재의 시간 간격입니다. 진정한 현재는 ‘지금 이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초라도 긴 시간입니다. 1초는 더 작은 시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과학에서는 ‘나노초’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순간’이 나노초의 개념에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순간은 시간의 가장 작은 단위이며, 순간을 반으로 쪼개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진리란 그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1초의 사건을 순간의 개념으로 설명하면 수많은 사건들의 흐름을 하나로 묶어놓은 것과 같습니다. 순간의 사건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명상 수행이 필수적입니다. 보통 사람의 마음에는 1초는 존재하지만,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 단위입니다. 사람이 현재를 알면 진리를 알게 됩니다. 현재란 순간이기에 ‘진리의 순간’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현재를 아는 수행

청정한 삶이란 ‘현재에 일어나는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행이 필요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에게는 1초 길이의 소리는 아주 쉽게 들립니다. 같은 소리라도 100분의 1초라는 소리는 어떻게 들릴까요? 일반인의 귀에는 100분의 1초라는 소리는 인식할 수 없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집중력을 극도로 높여 소리를 인식하면 소리가 아닌 음파를 느끼게 됩니다. 음파는 소리가 아닙니다. 음파가 귀에 닿으면 귀에도 감각의 파동이 일어납니다. 그 감각의 파동을 마음이 받아들여 ‘소리’라는 인식을 만듭니다. 따라서 소리란 마음이 만들어내는 현상인 것입니다.

외부에 소리가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집중력을 높여 소리를 인식하는 경우, ‘공기의 진동을 마음이 소리로 인식한 것이다’라고 알 수 있습니다. 그 ‘소리’라는 인식에 집착할 가치가 없다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면 소리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일반적인 빠빤짜(papañca)의 흐름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소리란 인과관계의 조합으로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에 불과하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를 아는 것, 진리를 아는 것이 수행의 결과가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확신한 사람들은 환각과 환상에 갇혀 사는 삶을 그만두고 싶어 합니다. 현재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각을 깨고 진리를 알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말만 듣고 이해했다고 해서 마음의 어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를 스스로 반드시 체험해보겠다’는 의욕이 일어나고, 그 목적을 향해 노력하는 수행자를 ‘청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방일을 두려워한다.

모든 생명은 방일에 탐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허구적 개념에 갇혀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사람은 생각하는 것, 망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즐겁지 않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나도 무슨 핑계를 대고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그런 세상에서 수행자는 ‘생각, 망상, 감정에 빠져 사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리를 발견하고 싶다면 진지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삶에 먼지만큼이라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수행에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해탈을 향해가는 수행자는 부처님이 설파한 출가자의 삶을 진지하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번뇌를 불태운다.

무소유를 실천하여 현재 일어나는 사건만을 인식할 수 있게 되면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현재라는 시간을 순간을 인식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먼저 거친 번뇌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더욱 노력하면 미세한 번뇌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순간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무명이라는 어둠이 사라지기 때문에 다시는 번뇌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탈한 자는 죽을 때까지 순간을 계속 인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간의 세계는 속세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해탈한 자는 세속의 개념으로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번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타락하지 않음

불멸을 실천하여 성공하였다면, 순간을 인식할 수 있다면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깨달은 사람은 속세의 인식 차원도, 진리의 세계도 알고 있습니다. 한 번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다시 진리를 모르는 사람으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이것은 비유로 설명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기루를 처음 보는 사람은 신기루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신기루를 향해 무심코 달려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신기루의 원리를 이해하게 되면 신기루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기루는 빛의 굴절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이해한 후에도 여전히 신기루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기루에 대한 집착은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해탈한 자가 세속의 가치관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지만, 타락하여 다시 번뇌가 일어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번 포인트

∙ 사람은 과거가 현재라고 착각합니다.

∙ 조작된 세계는 깨뜨리기 어렵습니다.

∙ 현재를 알기 위해서는 수행이 필요합니다.

∙ 현재란 순간입니다.

∙ 진리는 순간에 발견됩니다.

∙ 해탈자는 타락하지 않습니다.

 

 

- 담마삐야님이 프린트물 법문을 필사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