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가 부풀어 오르고 수축하는 것을 관찰하는 방법(20250621.프린트물)
우리는 일반적으로 숨을 들이마시거나 내쉬는 것을 대부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호흡의 팽창과 수축을 관찰하다 보면 신체의 일부분(배, 폐 등)뿐만 아니라 모든 세포가 팽창과 수축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관찰하면 모든 물질에 그러한 팽창과 수축이라는 파장, 작용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수행을 더 열심히 하다 보면 내가 사라지고 팽창과 수축의 감각만 남게 됩니다.
◎ 존재는 무상 위에 성립한다.
변화가 전혀 없는 것, 멈춰 있는 것, 팽창과 수축이 없는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물(존재)이 있다'는 것은 곧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있다'라는 단어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명칭일 뿐입니다. 만약 영원한 천국이 있다고 한다면 그 또한 무상하다는 뜻이 됩니다. 누군가 전지전능한 신이 있다고 한다면 그 신도 무상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 마음은 생멸하고 흘러간다.
모든 사물에는 리듬과 파장이 있고,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생멸밖에 없습니다. 마음에는 팽창과 수축이 없습니다. 마음은 물질이 아닙니다. 마음이 할 수 있는 것은 생멸뿐입니다. 그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은 물질의 움직임에서 마음의 생멸을 관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부풀어 오르는 현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대신 수축이라는 현상이 생겨납니다. 수축이라는 현상도 완전히 사라지고, 새롭게 팽창이라는 현상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관찰하다 보면 '있다'는 것은 생멸의 흐름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체험하게 됩니다. 관찰하는 자신의 마음도 생멸의 흐름입니다.
팽창을 관찰한 마음에 수축을 관찰할 수 없습니다. 이미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새로 태어난 마음으로 수축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수축을 관찰한 마음도 사라지고 다른 마음으로 팽창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감각을 관찰 해 보면 순간순간 변해갑니다. 이에 따라 마음도 순간순간 생멸 변화하는 방향으로 관찰 능력을 조정하게 됩니다.
◎ 개별적 관찰
불필요한 설명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물질을 따로따로 관찰하려고 하면, 발은 발대로, 손은 손대로, 폐는 폐대로, 장은 장대로, 심장은 심장대로, 배는 배대로, 이런 식으로 따로따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속에서 리듬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장이 뛰는 느낌과 배가 부풀어 오르고 줄어드는 느낌은 다르겠죠. 상당히 다릅니다. 속도도 다릅니다.
◎ 전체적, 종합적 관찰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하나의 움직임으로 묶어서 보면 깊은 의미의 팽창과 수축이라는 리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기본적인 팽창과 수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심장 박동은 심장의 세포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배의 팽창과 수축은 횡격막의 작용에 의한 것입니다. 횡격막도 세포입니다. 세포 단위로 보면 각각 다른 리듬으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대충 보면 제각각이지만, 정밀하게 보면 전체적으로 세포들의 팽창과 수축이라는 리듬과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 실황 생중계
모든 것이 순간순간 변하며 무상하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보조 바퀴 역할을 하는 명칭을 붙이는 실시간 생중계가 필요합니다. 이는 대상에 명칭을 붙여서 생중계를 계속해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상을 동사라는 명칭을 붙여서 생중계하는 것입니다. 추가적인 개념은 필요 없습니다. "배가 불러온다"라는 생중계는 필요 없습니다. "불러옴, 불러온다"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즉, 일상적으로 "잡다", "놓다", "돌리다", "밀다", "당기다" 정도의 말이 됩니다.
또한 앉아서 관찰하는 팽창과 수축은 의지의 유무와 상관없이 살아있으면 호흡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의식적인 행위와는 다릅니다. '숨을 들이마신다, 내뱉는다'라는 실전은 자신의 의지가 들어간 말이기 때문에 혼란스러워서 잘되지 않습니다. '부풀어 오름, 수축함' 혹은 '일어남, 사라짐'과 같이 내 의지와는 거리가 먼 말로 생중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완전히 나를 버리고 실황을 할 수 있는 것은 앉아서 하는 수행입니다. 서거나 걸을 때는 아무래도 내 의지가 들어갑니다. 의지가 들어가는 행위와 의지가 들어가지 않는 행위는 다릅니다.
경행할 때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이라는 명칭으로 실천하다 보면 자신의 의지(의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잘하면 의지(의도)는 있지만 변하지 않는 자아는 없다는 것, 순간순간 변하는 의지(의도)에 대해 부주의하게 '나, 자아'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앉아있을 때는 '일어남, 사라짐', '부풀어 오름, 수축함', '가려움', '아픔' 등 그 상태를 객관화한 단어로 실황을 합니다. 이렇게 하면 혼란스럽지 않고 빨리 무아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은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좋습니다.
생중계는 「생각(망상)하지 않기 위해」 실천하는 것이기에 그것이 달성되었다면, 명칭을 붙이는 생중계는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명칭을 붙이는 생중계를 멈추자마자, 이것저것 생각하는 망상에 지배되게 되면 다시 명칭을 붙여야 합니다.
◎ 최우선은 지금 일어난 대상을 사띠하는 일
수행하며 앉아있을 때, 호흡으로 인한 부풀어 오름과 수축함을 실황 생중계로 관찰하지만, 다리가 아파서 집중하기 어려울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 경우 마음은 다리의 통증을 걱정하는 쪽으로 향하게 됩니다. 즉, 배의 부풀어 오름과 수축을 관찰하는 것이 최우선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최우선으로 삼는 것"이란 수행의 경우 호흡이나 몸의 움직임에 최우선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parimukhaṁ satiṁ upaṭṭhapetvā(전면에 마음을 집중시켜"라는 것은 "다른 쓸데없는 모든 것을 멈추고, 이 일에만(호흡이면 호흡) 전념하라"라는 의미입니다. 즉 한 가지만을 최우선으로 삼고 사띠하라는 것입니다.
즉, 배에 집중된 사띠의 흐름이 다른 감각으로 순간 끊어진다면, 예를 들어 소리가 들어오거나 발이 저림 등으로 끊어진다면, 그것을 “소리, 소리" "저림, 저림"이라고 확인한 후 원래의 흐름으로 돌아갑니다.
"부풀어 오름, 수축함"을 확인하는 흐름이 끊기지 않고 계속된다면, 배에 집중하는 것은 좋습니다.
수행을 지속하여 집중력이 높아지면, 머리부터 전신이 짜릿한 느낌을 받고 점차 기분이 좋아지며, "느끼고 있다, 느끼고 있다"고 사띠하지만, 특히 손발의 저림, 혈액의 흐름 등을 느낍니다.
집중력과 확인의 힘(사띠의 힘)이 강화되면, 느낌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명확히 관찰 해 보면,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실천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주의해야 하므로,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단순히 확인(사띠)만 한다"는 자세로 노력해야 합니다. 판단하지 않는 것, 좋은 감각에 끌리지 않는 것, 나쁜 감각에 빠지지 않는 것, 이것이 위빳사나 수행의 기본입니다.
이를 잊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수행 중에 나타난 다양한 감각이 다음번 수행에서도 다시 나타나길 바라는 희망이 마음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 마음이 수행의 진행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므로,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지금 여기 이 시간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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