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수화풍이라는 파괴자 (20250802. 프린트물 법문)
∙이 육체는 지수화풍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몸은 기본적으로 지수화풍이라는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지수화풍이 결합되면, 2차적인 몇 가지 물질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소와 산소라는 원자가 있습니다. 각 원자는 각각의 특징과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소와 산소 원자가 결합하면 물이라는 다른 물질이 생겨납니다. 물 분자는 자신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은 수소와 산소가 결합되어 각각의 특징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수화풍은 파괴하는 흐름이다.
지수화풍은 근본적인 소립자 수준의 에너지 흐름입니다. 명상 실천자에게는 그 에너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네 가지 요소를 이해하기 위해 부처님은 간단한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지(地)는 빨리어로 'Paṭhavī', 땅을 의미합니다.
물(水)은 'Āpo', 그대로 물을 의미합니다.
불(火)은 'Tejo', 물건을 태우는 불을 의미합니다.
바람(風)은 'Vāyo', 공기 흐름인 바람을 의미합니다.
이 네 가지는 수행자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흙과 물과 불과 바람입니다.
과학에서의 각각의 요소는 물질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담마에서의 각각의 요소는 물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있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바람의 요소, 불의 요소를 말합니다. 즉 바람의 요소에서 나타나는 누르는 힘과 지지하는 힘이라는 팽창과 움직임, 땅의 요소에서 나타나는 단단함과 거칠음과 무거움, 그 반대의 부드러움, 매끄러움, 가벼움입니다. 온도와 관련된 불의 요소에서 나타나는 뜨거움과 차가움, 물의 요소에서 나타나는 흐르는 성질인 유동성과 달라붙는 성질인 점착성을 말합니다. 즉 여러 가지 요소 안에 있는 성질, 가치, 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요소는 나, 나의 것과 집착되는 성질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이 네 가지 요소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요소가 없다면 생명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육체 자체도 이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 자체도 음식이 필요하고, 물을 섭취해야 하며, 열이 필요하고, 공기를 마셔야 합니다. 내면의 자신의 육체도 지수화풍이며, 외부의 물질세계도 지수화풍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이해로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조사하고 이해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위험이나 재난이란 무엇인가?
생명에게, 인간에게 가장 큰 재난을 초래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무엇일까요? 답은 땅, 물, 불, 바람입니다. 땅, 물, 불, 바람이 생명을 무한히 파괴합니다. 바람이 태풍이나 토네이도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단순히 바람일 뿐이지만, 도시를 파괴합니다. 불은 어떨까요? 산불이 되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합니다. 물도 홍수나 쓰나미가 되면 순식간에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땅만은 감사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반침하나 산사태, 지진이 일어나고 대지가 흔들리면 인간은 죽게 됩니다. 그것은 땅의 소행입니다.
∙생명의 파괴자는 항상 곁에 있다.
이 지수화풍은 근본적으로 생명의 파괴자입니다. 전혀 안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수화풍이 생명을 지탱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사실 이는 사기입니다. 허위, 속임수, 거짓입니다. 사실 땅, 물, 불, 바람은 생명을 지탱해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땅, 물, 불, 바람으로 인해 죽고 병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물로 인한 큰 파도도, 보는 것만으로는 흥미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몸에는 순간 고통으로 변합니다. 따라서 잠시 동안만 물은 흥미로운 것이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또한 불을 종이에 가까이 대면, 즉시 종이에 불이 붙어 타오릅니다. 별일 아닙니다. 종이가 타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그 짧은 시간만 종이는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실제로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이 땅, 물, 불, 바람이라는 에너지가 생명의 파괴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완전히 무시하고 무지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인식은 뒤바뀐 채, 땅, 물, 불, 바람을 위험시하지 않고 오히려 그 존재를 기뻐합니다. 그러나 지수화풍에 의해 생명은 파괴됩니다.
우리는 몸의 상태가 나쁘거나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십니다. 몸에 수분이 부족해지면 탈수 증상이 발생해 위험합니다. 물을 마시는 것으로 생명이 구해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물이 몸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만약 물을 마시지 않았다면 다른 지수화풍이 파괴자가 됩니다. 현재의 지수화풍이 파괴하지 못하면, 다음 지수화풍이 파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명을 지탱하는 짧은 시간만 동맹한다.
물이 인간의 생명을 지탱하는 것은 매우 짧은 시간뿐입니다. 그 물이 인간을 파괴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땅이 인간을 지탱하는 것도 짧은 시간뿐입니다. 땅 때문에 인간이 죽습니다. 실제로 우리 육체가 파괴되어 죽을 때, 지수화풍의 혼란이 있습니다.
그런 위험한 생명에 우리는 집착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것은 끝없는 전투입니다. 지수화풍이 혼란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기 위해, 끝없이 지수화풍과 싸워야 합니다. 이 싸움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위험을 피하는 것은 죽음을 피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무상한 세상에서는 언제나 지수화풍의 균형이 깨집니다. 왜냐하면 지수화풍은 파괴자이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싸움과 모순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칼을 들고 결투를 벌이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서로 진심으로 상대를 죽이려는 결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힘이 있는 한 균형이 유지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한쪽의 힘이 약해지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 순간 지수화풍은 혼란에 빠지고 상대를 파괴하려 합니다. 그리고 상대는 죽게 됩니다. 신체는 지수화풍이라는 네 개의 칼과 같습니다. 지금도 서로를 죽이려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명이라는 시스템에는 거대한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생명은 귀중하거나 감사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살아가는 것(생존욕)을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부처님은 어리석은 자, 무지한 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관찰하지 않고, 조사하지 않는다고도 표현하셨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귀중하다는 이해는 개나 고양이 수준과 같습니다.
∙구세주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깨달아라"는 것이 불교의 내용입니다. 진리를 깨달아라. 생명을 조사하라. 관찰하라. 그것이 어리석은 자인 자신의 과제입니다. 이 숙제는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스스로 확인해야 합니다. 자신의 숙제는 자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종교적이지 않은 가르침입니다. 종교는 “신이 구원해 준다.” “누군가가 도와준다.”는 의존을 조장하는 가르침입니다.
살아가는 것은 파괴에 의해 지탱되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은 죽음에 의해 지탱되고 있습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어리석은 이해입니다. 파괴되지 않으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전체 과정이 파괴되는 과정입니다. 파괴되고, 파괴되고, 더 파괴되는 것에 '살아간다.'는 이름을 붙이는 것뿐입니다.
∙먹는 것도 파괴 행동의 하나이다.
'먹는 행위를 관찰해 보십시오. 먹는 것은 파괴된 것입니다. 이미 파괴된 땅, 물, 불, 바람을 섭취하는 것입니다. 파괴되지 않으면 먹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살아있는 물고기를 삼킨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럼, 음식으로 영양을 공급하지 못합니다. 만약 물고기가 위산 속에서 편안하게 헤엄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경우 먹는 사람이 파괴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파괴된 것에서 부품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파괴된다'는 것은 어떤 것을 관찰하더라도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입니다. 하나가 파괴되고 새로운 현상이 생겨납니다. 다시 파괴되고 새로운 현상이 생겨납니다. 그렇게 계속 파괴되어 나갑니다.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것은 파괴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파괴되는 과정의 어딘가에 있습니다. 지수화풍에 의해 파괴되는 것입니다. 생명이란 지수화풍이 파괴되어 흐르는 것이며, 마음도 지수화풍보다 더 빨리 파괴되어 흐르는 것입니다. 파괴되는 것에 대해 “집착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불교의 결론입니다. 집착이 고통의 근원입니다. 집착이 있기 때문에 고통이 생기는 것입니다. 집착이 없다면, 단순히 변화와 흐름만이 있을 뿐, 관계가 없습니다. 집착이 있으면, 파괴되는 것에 대해 '잔인하다', '슬프다'라는 고통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집착을 버림으로써 고통을 끝낼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땅, 물, 불, 바람의 요소를 잘 관찰해야 합니다.
땅의 요소에는 여섯 개의 특성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단단함, 거칢, 무거움, 부드러움, 매끄러움, 가벼움 입니다.
물의 요소에는 두 개의 특성, 즉 흐름과 응집력이 있습니다.
불의 요소에는 뜨거움과 차가움의 특성이 있습니다.
바람의 요소에는 밀거나 지탱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모두 합쳐서 12개의 특성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체계적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먼저 걸을 때 처음에는 오른발의 뒤꿈치가 바닥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다리를 올리고 다시 내려놓은 후 바닥을 딛을 때까지의 전체 과정에서 생겨나는 다리의 움직임, 뻣뻣함, 무거움, 가벼움, 딱딱함, 거칢, 부드러움, 미끄러움, 차가움, 뜨거움 등을 '오른발'이라고 명칭 붙여 관찰해야 합니다.
왼발도 마찬가지로 윈발의 뒤꿈치가 바닥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 바닥에 딛을 때까지 '왼발'하며 관찰해야 합니다.
앉아있을 경우 배가 불러올 때, 그 불러오는 배 움직임의 처음부터 끝까지와 일치시켜 마음으로 '일어남, 또는 블러옴'하고 명칭 붙이며, 그때 배의 움직임, 팽팽함 등을 관찰합니다.
마찬가지로 배가 꺼져갈 때, 그 꺼져가는 배 움직임의 처음부터 끝까지와 일치시켜 마음으로 '사라짐, 또는 꺼짐'하고 명칭 붙이며, 그때 배의 움직임, 홀쭉함 등을 관찰합니다.
배가 불러오고 꺼지는 중간에 다른 망상이 들어오지 않도록, 우선 배의 움직임에 마음을 잘 두고서 '불러옴, 꺼짐’ 또는 '일어남, 사라짐'하며 계속 관찰해야 합니다.
서 있을 때에는 몸 전체의 무거움, 뻣뻣함을 대상으로 해서 '서있음, 서있음'하며 네 번~다섯 번 관찰해야 합니다. 혹은 '서있음, 닿음, 서있음, 닿음'하며 관찰해도 됩니다.
앉을 때도 '앉음'하며 천천히 그 앉는 동작, 무거워지는 몸의 움직임들을 관찰하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수행자가 몸 전체를 통해 4대 요소의 12가지 특성들을 체계적으로 식별한다면 집중이 강해지면서 4대 요소의 덩어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사라지고 존재라는 인식도 사라집니다. 그때 여러분은 몸을 단지 4대 요소의 덩어리로 봅니다. 4대 요소를 식별하고 1시간 동안 그것들을 계속 식별할 수 있다면 근접삼매나 수다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본래 땅, 물, 불, 바람이라는 현상에 집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집착의 대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집착하기 위해서는 파괴되지 않고 변하지 않는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파괴되지 않는 대상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파괴되지 않는다''는 망상·어리석음에서 고민과 고통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망상·어리석음이 사라지면, 단순히 고민과 고통이 사라질 뿐입니다. 생명은 파괴되고 변하는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수화풍은 두려운 파괴자입니다. 우리가 지수화풍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생명을 파괴하기까지의 짧은 시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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