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냐완따 큰스님 추모법회 (20260329. 담마와나선원)
아짠 빤냐와로 대장로 스님 추모법문 프린트물
육체는 늙어가나 이름과 명성은 늙지 않는다.
부처님은 사람들로부터 ‘말하는 그대로 행동하고, 행동하는 그대로 말하는 이(yathā-vādin tathā-kārin, yathā-kārin tathā-vādin)’로 불린 것처럼,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평소 이론과 실천의 겸비를 강조했습니다.
입멸하신 빤냐완따 스님은 스님의 내면에 지닌 고귀한 이상을 자연스럽게 스님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표출하였고, 그러한 스님의 진정성에 감동한 대중들이 스님을 스승으로 인정하고 따랐습니다.
불교의 이상은 아라한과의 증득입니다. 이러한 이상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위해서도 그러한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불제자들은 남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행복이 전 세계의 행복과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선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의 이익과 행복에 관심을 갖고(sabbapāṇabhūtahitānukampi), 이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해야만 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불교가 전파된 곳에서는 불교의 양대 축인 연민(karuṇā)과 지혜(paññā)로 인류의 성장을 이끌었듯이, 입멸하신 빤냐완따 스님도 연민과 지혜를 지니시고 우리들의 성장을 위해, 우리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부지런히 이끄셨습니다.
상윳따 니까야에 “사람들의 몸은 늙지만, 이름과 명성은 늙지 않는다(Rūpaṁ jīrati maccānaṁ, nāmagottaṁ na jīrati)”라는 게송이 있습니다. 비록 빤냐완따 스님의 육신은 입멸했지만, 테라와다 불교가 이 나라에 존속하는 한 후학들과 일반 대중의 가슴속에 스님의 가르침과 행적은 살아 숨 쉴 것입니다.
Rūpaṁ jīrati maccānaṁ,
nāmagottaṁ na jīrati;
육체(rūpa)는 늙어가나,
이름(nāma)과 명성(gotta)은 늙지 않는다.
우리 모두 육체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육체는 태어날 때부터 점차 늙고, 쇠퇴하며, 결국 소멸합니다.
생명은 죽어야 할 것이며,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죽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본질입니다.
한편, 살아 있는 동안 도덕적이고 선한 행위를 하며, 세상에 큰 공헌을 했다면, 그 사람의 이름과 명성을 기억하여 저장된 것은 죽지 않습니다.
늙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습니다.
육체(rūpa)는 한정된 시간 동안만 지속되지만, 자신의 경험에 대한 것은 기억되어 저장(nāmagotta)됩니다.
그래서 입멸하신 빤냐완따 스님에 대한 기억들은 담마로 남아 오래도록 계속될 것입니다.
부처님의 육체는 2560년 전에 멸했지만, 이름과 부처님이 설파하신 진리라는 가르침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계속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처럼 부처님은 “늙어가는 것”은 육체이며, “늙지 않는 것”은 이름과 명성이라고 설하셨습니다.
죽음을 사띠할 때 우리 모두 죽는다는 것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분명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죽을 때 공덕과 수행 이외에는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
2) 언제 죽는지 결정되지 않았다.
3) 죽을 때 담마와 공덕 이외에는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세 가지는 결정적 사실입니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사실입니다.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모릅니다. 그래서 현명한 자들은 평소에 수행과 공덕을 쌓아 놓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즐기면서 허송세월합니다. 그러다 지금 죽음을 맞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요?
공덕을 쌓고 수행하는 것은 먼 후일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합니다. 인간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데, 죽음이 언제일지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른이나 아이나 순서가 어떻게 될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오는 것은 순서가 있어도 가는 것은 순서가 없습니다.
오늘 죽음을 맞이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행히 수행해서 할 일을 마친 사람이라면 죽음은 축복입니다. 그러나 아무 공덕도 쌓아 놓지 않았다면 악처에 던져지기 쉽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은 나이가 들어 한가할 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죽음을 극복하는 것은 수행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삽니다. 탐욕으로 성냄으로 어리석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백 년도 못 사는 인간들이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하루를 헛되이 보내는 것입니다.
언제 죽음이 올지 모른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신 입멸하신 빤냐완따 스님에게 우리 모두는 빚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빌린 것을 아는 덕(Kataññu, 까딴뉴)과 그것을 돌려주려고 하는 덕(katavedi, 까따웨디)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2개의 덕은 서로 보충하는 것이고, 이 세상을 지지하는 덕입니다.
입멸하신 빤냐완따 스님에게 담마를 배우고 수행을 배운 빚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빚을 반드시 결과물로 돌려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까딴뉴-까따웨디 수행은 마음을 열고 기쁨(깨달음의 요소, pītisambojjhaṅga)을 키우며, 잘못된 것에만 집중하는 자기중심적 습관을 깨뜨립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빤냐완따 스님을 기억하면서,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명칭 붙이듯이 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집중이 되면서 차츰 기쁨이 자리 잡을 것입니다.
까딴뉴-까따웨디와 함께라면 탐욕이 만족으로 바뀝니다.
까딴뉴-까따웨디와 함께라면 증오가 자애로 바뀝니다.
까딴뉴-까따웨디와 함께라면 망상이 명확한 사띠로 바뀝니다.
일어나는 것은 분발(uṭṭhāna)하여 무엇 하나도 놓침 없이 불방일(Appamāda)하면서 사띠하고, 감정이 폭주하면 자제(saṁyama)하고, 절제(dama)하여서 스스로 섬을 삼아 지혜로운 자(dīpaṁ kayirātha medhāvī)가 되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입멸하신 빤냐완따 스님의 공덕을 회상하면서, 바라밀 공덕을 실천하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도와 과에 이르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사두! 사두! 사두!
(담마삐야님이 필사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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