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격 향상의 영양제
마음의 성장에는 기쁨이 필요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의 영양제인 기쁨에 대하여 설명하겠습니다.
사람은 기쁨을 찾아 여러 가지를 행하고 있기에, 굳이 기쁨에 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은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먹는 것이 맛있다고 느끼면 즐거움도 일어납니다. 정말로 그것만으로 충분합니까? 음식이 맛있으면 그만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먹는 것에는 다양한 식재료의 특성과 영양과 요리 방법과 먹어야 할 양 등도 알아야 합니다. 맛있다고 하는 한 가지의 조건만을 중시하여 먹는다면 위험합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기쁨에 대해서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 바라는 것만으로 기쁨은 생기지 않는다.
인간이 기대하는 기쁨은 눈 귀 코 혀 몸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로서 마음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자극을 받아들이면 욕심이 생겨납니다. 또한 기쁨도 느낍니다. 마음이 자극을 거절한다면 분노가 생겨납니다. 그때는 기쁨이 아니라 기쁨의 반대인 "싫어함"이라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기쁨이 생기면 마음은 더욱 활발해지고 의욕도 일어납니다.
싫은 마음이 생기면 마음은 기능이 저하되고 의욕도 잃어버립니다.
● 믿을 수 없는 오욕(五欲)의 기쁨
마음을 활발하게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기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은 색깔 소리 향기 맛 감촉이라는 정보로부터 얻어지는 자극인 다섯 가지 욕심[오욕(五欲)]뿐입니다. 이 자극에 대하여 욕심이 생기면 동시에 기쁨도 생기는 것입니다.
이 경우, 마음은 활발하게 될지 모르지만, 마음이 성장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욕이 반드시 즐거움을 일으킨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몸과 마음의 상태와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뭔가 먹고서 맛있다고 느꼈다고 합시다.
그래서 즐거워졌다고 합시다. 그러면 같은 것을 거듭 몇 번이나 먹는 일로 맛도 즐거움도 거듭 일어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눈 귀 코 혀 몸에 닿는 정보에 대해서도 같은 법칙입니다.
같은 아름다운 것을 오래 보고 있다면 지루하게 됩니다. 같은 노래를 계속 듣고 있으면 지루하게 됩니다. 같은 향기를 계속 맡고 있으면 느끼지 않게 됩니다. 기분 좋다고 생각하는 감촉도 계속하면 자극도 없이 지루하게 됩니다. 오욕은 이러한 결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별로 집중하지 않는 방법을 취합니다. 밥을 먹을 때 동료와 시끄럽게 이야기합니다. 텔레비전을 켜고 프로그램을 보면서 잡담합니다. 차를 운전하면서 음악을 듣습니다. 집중하지 않고 마음을 산란한 상태로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미묘하게 즐거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마음을 성장시키기 위한 영양제로 되지는 않습니다. 단지 생존을 늘릴 뿐인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 자극에 굶주려서 망상의 덫에 빠진다.
오욕이 충분한 자극을 주지 않기 때문에 사람은 망상하는 것입니다.
먹은 것, 들은 것, 보는 것, 냄새 맡은 것, 느끼는 것 등등에 대하여 거듭 망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필요한 자극이 일어납니다. 망상은 제어하기 힘든 움직임입니다. "반드시 즐거운 망상만 하자."로 정해지는 법은 없습니다. 분노·증오·질투 등의 망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도 있습니다.
즐거운 망상의 고리에 들어가면 욕심만 일어납니다. 즐거움은 줄어듭니다. 분노도 망상의 고리에 들어가면 분노의 감정만 커지고, 마음의 기능이 저하되어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망상의 고리를 자기 마음대로 제어할 수도 없습니다.
망상하여 즐겁다고 생각하여도 법칙은 먹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즐거움이 되지만 반복하면 즐거움이 사라지고 지루하게 됩니다. 밥을 먹는 것이 지루하면 멈출 수 있지만, 망상으로 지루하게 되어도 멈출 수 없습니다. 망상의 고리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눈 귀 코 혀 몸 뜻이라는 육근(六根)을 사용하여 색깔 소리 향기 맛 감촉 법이라는 정보로부터 자극을 받는 것입니다. 즐거움이 생겨나기도 하고, 생겨나지 않기도 합니다.
더욱이 심한 의존이 생겨납니다. 마음이 성장하는 기쁨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을 성장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기쁨은 오욕과 망상에서 생겨나지 않습니다.
비록 기쁨이 생겼다고 해도 그 결과로써 마음은 퇴보하여 버립니다. 오욕과 망상은 마약과 닮은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 마음을 성장시키는 기쁨은 다른 종류다.
일반적인 생활방식으로서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으므로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기쁨과 함께 집중력이 있다면 마음 성장의 영양제가 됩니다. 그래서 집중하는 것으로 일어나는 기쁨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속세간의 기쁨은 집중하지 않고 마음이 산란한 상태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인기가수의 콘서트를 상상하여 주십시오. 모두 기뻐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는 마음을 화려하게 산란시켜서 흥분하고 있을 뿐입니다. 콘서트를 듣는 일로 마음이 성장할 수는 없습니다.
집중하여 기쁨이나 즐거움이 생겨나는 기능에 대해서 일상생활에서 이해해 봅시다.
이 세상에서 "한 분야에 심취한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학자들도, 연구자들도, 개발자들도 모두 한 분야에 심취하는 것입니다. 문학자, 음악가, 예술가 등도 모두 한 분야에 심취하는 것입니다. 즉, 무슨 전문가로서 있다고 하는 것은 한 분야에 심취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콘서트를 보고 흥분하는 인간과는 다릅니다.
일반인과 다른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매우 기쁘게 자기의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한 분야에 심취하는 그룹은 무언가 하나의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결과 프로가 되는 것입니다.
일반인이 깜짝 놀라는 결과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것으로 집중력에서 생겨나는 기쁨은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법칙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에게 위험한 것에 집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량살상무기, 생화학무기 등의 한 분야에 심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사회적인 운동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테러활동도 원리주의도 일종의 한 분야에 심취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인터넷 범죄의 한 분야에 심취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자기가 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뻐하며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반사회적일지 모르지만, 파괴적인 결과가 될지도 모르지만, 하는 사람들은 일반인과 다른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선이든 악이든 집중하는 것과 기쁨을 느끼는 것으로써 능력이 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능력과 인격은 다릅니다.
개발자, 예술인 등의 사람들도, 테러리스트들도, 나쁜 한 분야에 심취하는 사람들도 감정으로 살고 있습니다. 욕심과 분노의 감정에 지배되고 있는 것입니다.
감정은 마음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능력은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성장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결과입니다. 우수한 과학자일지는 모르지만, 인격자라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 올바른 기쁨은 인격 향상을 동반한다.
다음에 집중력과 기쁨을 사용하여 마음을 성장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마음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탐진치(貪瞋癡)라는 감정입니다. 1,500 종류의 번뇌입니다.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무언가에 집중하여 그 세계의 한 분야에 심취하면 두 가지의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마음은 성장합니다.
불교는 보편적인 기쁨을 느끼라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뭔가 하고 있을 때 기쁨이 생기거나 싫은 기분이 되기도 합니다. 기쁨만 불러일으키고,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없애고 싶다면 지금 행하는 올바른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집중하기 시작하면 먼저 즐거움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것이 기쁨으로 바뀌어 갑니다. 즐거움은 자극과 비슷해서 수준은 높지 않은 것입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자극이라기보다는 만족감입니다.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만족감은 오래 갑니다.
● 연구 과제를 고릅시다.
다음의 문제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연구 과제를 고르는 것입니다.
"어떤 한 분야에 심취하는 것이 좋습니까?"라는 말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완전한 답은 불교 이외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의 세계에서도 욕심을 없애는 일, 분노를 거두는 일, 자아를 부리지 않는 것 등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번뇌를 퇴치하여 마음을 성장시키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번뇌를 없애는 목적으로써 번뇌의 해독제가 되는 과제를 고르고 거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 도덕은 첫 번째 과제
적절한 과제는 불교에서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오계를 지키는 것은 그중의 하나입니다.
오계를 지키는 데 집중하면 반드시 인격은 향상됩니다. 왜냐하면 오계에 의해서 번뇌가 훈계 되기 때문입니다. 진지하게 오계를 지키면 꽤 기쁨이 생겨나 올 것입니다.
집중력이 없으면 오계는 지킬 수 없습니다. 오계를 지키겠다고 정한 것으로서 집중력도 동시에 실천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멋진 과제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번뇌도 순순히 퇴치되는 것이 아니라 공격을 노리고 있습니다. 번뇌가 이기면 오계를 지키는 것은 고통이 됩니다.
번뇌를 이기면 오계를 지키는 것에 의해서 기쁨이 생깁니다. 만족감도 생기고 인격이 향상됩니다.
● 자애로움으로부터 오는 기쁨
그 밖에도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자비희사의 실천은 뛰어난 방법입니다. 시작할 때부터 마음에 번뇌나 괴로움이 줄고 기쁨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수행해 가면 자아(自我)라는 착각이 줄어들고 지혜가 나타납니다. 인격 향상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지혜가 나타나면 해탈에 이르는 것도 가능합니다.
● 법수념(法隨念)의 길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이해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리인가 여부를 스스로 확인하여 보는 것도 훌륭한 과제가 됩니다.
예컨대 "모든 현상은 무상하다"라고 설해져 있습니다. 자신이 인식하는 모든 것은 무상임을 관찰합니다.
그러면 마음과 인격이 성장합니다. 지혜가 나타납니다. 무상수념(無常隨念)이라는 방법입니다.
"산다는 것은 괴로움이다"라고 관찰하는 고수념(苦隨念).
"현상에는 실체가 없다"라고 관찰하는 무아수념(無我隨念)도 있습니다.
사람은 육체에 의존하여 살아가므로 번뇌의 늪에 빠집니다. 그래서 "육체는 부정한 것이다. 고통(괴로움)의 원인이다. 병의 둥지이다"라고 관찰합니다. 부정수념(不淨隨念)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죽고 싶지는 않은 것입니다.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희망인데, 그 희망을 버리기 어려워서 괴로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용기를 내어 "생명이란 것은 모두 반드시 죽는 것이다"라고 죽음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사수념(死隨念)이라고 합니다.
호흡에 집중하여 관찰하면 고도의 집중력이 나타납니다. 동시에 희열감도 일어납니다. 선정에 이르는 일도 있습니다. 이 방법을 호흡수념(呼吸隨念)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생명 가운데 부처님만큼 뛰어난 존재는 없습니다.
부처님은 완전한 지혜가 있습니다. 완전한 인격자입니다.
부처님에게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능력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부처님의 말을 실천하면 그대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말하신 것입니다. 말했던 말씀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범천도 신들도 부처님의 지도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이란 어떤 인격자일까라고 관찰하는 "불수념(佛隨念)"은 반드시 맑고 깨끗한 기쁨을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은 성장합니다.
이러한 방법 중에서 "모든 현상은 무상하므로 어떤 현상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라는 과제는 무엇보다 뛰어난 방법입니다.
마음이 "무집착(無執着)의 관찰(觀察)"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해탈에 이르고 윤회의 고통을 뛰어넘어 버리는 방법입니다.
모든 괴로움을 딛고 해탈에 이르는 길은 기쁨을 느끼는 법을 수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 이번 포인트
∙마음의 성장에 기쁨이 필요합니다.
∙기쁨은 아주 쉽게 생겨나지 않습니다.
∙오욕에 의존하는 것으로서 즐거움도 괴로움도 생겨납니다.
∙오욕 의존의 즐거움은 살아남기 위한 자극뿐입니다.
∙번뇌는 마음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번뇌의 해독제가 되는 과제를 고르고 기쁨을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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