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의 장애물(20260502)
인생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있지만, 가장 무서운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이 삶을 방해하는가요? 무엇이 도움되는 담마인가요?
Ālassaṁ ca pamādo ca anuṭṭhānaṁ asaṁyamo,
Niddā tandi ca te chidde sabbaso taṁ vivajjayeti.
게으름과 방일함, 빈둥거림(무기력)과 (감각기관을) 제어하지 못함, 졸림·나른함(지루함), 이런 여섯 가지를 내쫓아야 한다.
경에서는 부와 재물이 지속되지 않는 여섯 가지 결점으로 이 6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고쳐야 할 여섯 가지 결점
1. 알랏상(Alassaṁ) : 게으름.
어떤 일을 하려는 의지나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를 말합니다. 즉 게으름 피우기에, 수행에서는 노력이 부족하여 사띠하지 않거나 대상이 늘어지게 되고, 유익하지 않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게 되고, 수행의 진척이 없다고 낙담하고, 일상에서는 해야 할 일이 있는 데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자동차 운전에 비유할 때 게으름은 가속폐달에서 발을 떼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고 해도 가속페달을 밟지 않으면 주행을 잘할 수 없으므로, 게으름이 수행의 진행을 방해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이해할 것입니다.
절에 가면 대웅전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소리에 마음도 맑아집니다. 이처럼 대웅전 처마 끝에 물고기를 달아 놓는 이유는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한순간도 게으름 피우지 말고 수행에 전념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게으름은 수행과 세속적 성취 모두를 방해하는 장애물이기에 이를 멀리해야 합니다.
2. 빠마도(Pamādo) : 사띠(Sati)가 없는 상태, 방일.
단순한 '나태'와 '방일'은 수준이 다릅니다.
둘 다 '게으름'이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꾸시따(kusīta)'와 '빠맛따(pamatta)’는 수준에 차이가 있습니다. '꾸시따'란 세간에서 흔히 듣는, 이른바 '나태'를 말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범위의 게으름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미루는 것입니다.
이 게으름을 훨씬 높은 차원에서 바라보면, '빠맛따(pamatta)’가 됩니다. 이른바 '방일(放逸)'이라는 의미로, 우리가 순간순간을 사띠하며 살아가야 하지만, 실제로는 과거를 생각하거나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현재를 깨닫지 못하고,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방일·빠맛따인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깨닫고 있는 것이 불방일ㆍ압빠맛따(appamatta)이며, 마음을 고요하고 바르게 유지하고, 순간순간을 사띠하여서, 마음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힘쓰는 것은 압빠맛따(appamatta) 입니다.
보시하는 것도, 자애를 지니는 당연한 행위도, 계율을 지켜 도덕을 존중하는 일도, 수행하는 일도 압빠맛따(appamatta)인 것입니다. 깨닫기 위한 노력은 압빠맛따(appamatta)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어떠한 순간이라도 사띠하고 있도록 노력하게 되면 더러움이 들어가지 않게 됩니다. 알아차리는 것(sati)이 진짜 압빠맛따(appamatta) 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방일·빠맛따(pamatta)입니다. 빠맛따는 괴로움과 번뇌가 증가하는 삶의 방법입니다.
빠맛따에는 또 다른, 좀 더 가벼운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선의 길을 걷지 않고 감정에 쓸려 불선의 길을 사는 것입니다. 즉, 악행을 저지르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에 비해 꾸시따는 단순한 게으름(나태)입니다.
그렇게 '게으름'의 수준 차이에 따라, '꾸시따'와 '빠맛따'라는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하여 부처님께서 표현하고 계신 것입니다.
불방일의 대중적 버전
본격적인 불방일을 세속에서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과거와 미래라는 망상 개념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려 하면 자신과 타인의 구분이 성립되지 않게 됩니다.
재가 대중의 불방일은 게으름 피우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는다'라고 하면 너무 추상적인 개념이라 실효성이 없습니다. 불방일이란 단순히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일곱 가지 조항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일곱 가지 조항은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생명이 있는 한 실천하는 항목입니다. 휴식이나 일시 정지 같은 것은 없습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일곱 가지 조항은 종교나 신앙 등과 무관합니다. 이상적인 재가 생활 그 자체입니다.
일곱 가지 항목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① 가족·인간관계, ② 사회와의 관계, ③ 인격 향상입니다.
“살아 있는 한,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양하라”는 가족 관계의 의무입니다. 부양하다/부양받는다는 관계성은 가족에 따르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한, 윗사람을 공경하라”는 항목은 인간관계에 속합니다. 재가자가 교육받을 경우, 스승을 공경해야 합니다.
사회와의 관계는 “살아 있는 한, 아낌없이 타인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어 주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라는 베풂 항목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재산은 필요에 따라 타인에게 인색하지 않게 주어야 합니다. 또한 “베풂”을 제안하는 경우, 그 사람은 먼저 재산을 모아야 합니다. 자신의 재산이 한곳에 머물러 있다면,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재산은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재산을 얻고 유통하는 순환이 중요합니다. 재가 세계에서는 모두가 부유해지고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고용된 사람, 노동자, 일을 할 수 없는 사람, 다양한 이유로 재산을 잃고 빈곤에 빠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시'의 습관이 있다면, 경제 활동으로서 투자도 성립되고, 빈곤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 활동도 성립됩니다.
그리고 인격 향상 단계가 있습니다. 재가자로서 생활하는 것이 인격 향상에도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한 부드러운 말을 하라"는 말의 도덕, “살아 있는 한 화내지 않도록 노력하라. 만약 화가 났다면 신속히 없애라”라는 조건이 들어간 것입니다.
이 일곱 가지 조항으로 이상적인 재가 생활을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 설해져 있습니다. 종교·신앙·미신 등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습니다. 이상이 재가자의 불방일 실천 방법입니다.
3. 아눗타낭(anṭṭhānaṁ) : 노력하지 않음(일어나지 않음, 정진하지 않음)
신체적, 정신적으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무기력한 상태입니다.
그 반대인 Uṭṭhāna Sutta (용맹정진·분발의 경)에서는,
“잡을 자서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고통스러운 자가 잠잘 겨를이 없듯, 화살에 맞아 고통받는 것처럼 수행하라.
게으르면 죽음의 왕(마라)이 그대를 굴복시킬 것이니, 일어나 앉아 열심히 배우라.
데와(천신)와 인간이 매여 있는, 욕망의 엉킨 덩어리를 끊고 일어나라.
요약하자면, uṭṭhāna는 정신적으로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 깨어나 수행에 힘쓰라는 정진의 의미가 강합니다.
'해탈'이라는 탈옥의 과정을 살펴보면 분명해집니다.
· 분발 (Uṭṭhāna) - 한 순가락의 흙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매일 파내는 끈기
· 방일하지 않음 (Appamāda) - 순간순간의 현재 상황을 깨닫고 계속하는 굴착 작업
· 자제, 절제(Saṁyama, Dama) - 감정의 폭주를 억제하고, 탐진치의 감정이 드러나면, 순간순간 사띠한다.
그래서 자신만의 '안전한 섬'을 쌓아 올리기
긴 터널을 파지 않으면 탈옥할 수 없다고 가정해 봅시다. 터널을 파는 도구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숟가락이나 포크 등 손에 잡히는 물건을 이용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터널을 계속 파 나갑니다. 이 경우, 그 사람에게는 '포기하지 않고, 중단하지 않고, 내팽개치지 않는' 성격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넘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장애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쪽 기슭을 건너는 것도 비슷한 것입니다. 쉽게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uṭṭhāna(분발하는 것)>, 즉 포기하지 않고 내버리지 않는 성격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오욕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족·재산·명예·사회적 지위 등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몸에도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매일의 단조로운 삶에도 애착을 갖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장애물이 되는 것입니다. 애착이 있는 한, 자신은 감옥에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속박을 깨고 자유의 몸이 되어야 한다고 결심하게 되면 탈출하기 위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용맹정진이 필요한 것입니다.
분발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경계, 제거, 수행, 그리고 보호입니다.
경계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입니다. 제거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전에는 없었던 좋은 것을 만들어내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수행은 이전에는 없었던 더 많은 좋은 것을 찾도록 노럭하는 것입니다. 보호는 좋은 것을 유지하고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4. 아상야모(Asaṁyamo) : 감각기관(눈, 귀 등)을 제어하지 못하고 방일함.
수행자가 감각기관을 단속(saṁyama)하지 못하고 욕망에 휩쓸리는 상태를 경계하는 표현으로 쓰입니다.
수행에서는 마음의 에너지를 흩뜨리는 해로운 요소로 간주하여, 이를 극복하고 자기 통제력을 갖추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자제력 부족은 '도덕적 행동을 관찰하거나 실천하지 않는 계율 부족(sīlasaññama)과 같습니다.
주석서에서는 "산냐마"를 계율(실라상와라)을 지킴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 절제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몸과 말의 행동을 절제하는 것으로,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술이나 마약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계율에 따라 사는 것은 마음을 해로운 행위로부터 보호하는 "장벽"을 만들어 평온함과 후회 없는 삶을 가져옵니다.
5. 닛다(Niddā) :졸림. 쉬고자 하는 욕망.
6. 딴디(Tandī) : 피곤함(aticchāta).
나태와 무기력과 같은 정신 상태를 극복하는 것이 깨달음, 즉 닙바나의 길을 찾는 누구에게나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수행 중에 피로감이나 동기 부족과 씨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정신적 장벽을 없애기 위해 에너지를 각성시키는 것(위리야)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경전 속에서 천신이 지적하듯이, "졸음, 피로, 무기력함 등을 통해서는 성스러운 길은 드러나지 않는다." 즉, 노력 없이는 수행의 성장과 통찰의 기회가 숨겨져 버립니다.
사띠는 불교의 핵심 요소로,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능력을 증폭시켜 줍니다.
사띠는 현재에 집중하도록 하여, 사띠가 증장되면 피로감이나 산만함 등을 인지하게 됩니다.
Niddā-tandī는 수행자가 극복해야 할 내면의 적 가운데 하나로 '닛다 딴디'로 몸과 마음이 무거워져 정진하지 못하는 상태를 경계해야 합니다.
경에서 “비구들이여! 싫어함과 정신의 나태함, 즉 지루함과 피곤함, 하품, 식후 졸음, 마음의 퇴보(arati tandi, vijambhanta bhatta, sammado cetaso ca līnattaṁ)가 있나니. 이들에 자주 무분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아직 생기지 않은 나태와 무기력함이 생겨나게 하는 양식이 되며, 이미 생겨난 나태와 무기력함이 자라고 번성하게 하는 양식이 된다.”
부처님은 졸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수면에 지나치게 탐닉하지 말고 수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권하셨습니다. 특히 졸음이 사띠와 삼빠자나를 약화시킬 때 더욱 그러하다고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의 장애가 되는 요소(잠, 나태, 해로운 행위 등)를 단호하게 끊어내야 합니다.
수행의 길에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이나, 말, 또는 수면에 압도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행자는 내면의 고요함과 명료함을 유지하여 지금 일어난 대상에 사띠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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