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법문교재/테라와다불교의 신행생활

테라와다 이야기 2- 테라와다 불교의 진심

담마마-마까 2016. 8. 6. 00:06

 

“테라와다에서 스승은 오직 부처님 한 분!”

삼장법사 빤냐와로 스님의 “테라와다 이야기” 4- ⓷테라와다 불교의 진심
“어떤 사람, 어떤 제자, 누구라도 부처님에게 묶는 것이 테라와다 불교의 방식”

 

 

(4) 테라와다 불교의 진심

 

불교는 어떤 나라의 어떤 말에 의해 전승되어 갔습니다. 부처님은 자신의 가르침은 어떤 나라의 말을 사용해 이해되어도 상관없다고 말씀하셔서 사실 부처님의 말씀이 빨리어에 머물지 않고 몇 개 나라의 말로 전하기도 했지만, 그 후 완전한 모습으로 후세에 남겨진 것은 빨리어 뿐이었기 때문에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이 빨리어에 의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계승해 나가려고 한 것입니다. 즉 테라와다 불교는 빨리어의 삼장(경·율·론)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빨리어로 남겨진 불교는 그 후 구전에 의해 사람으로부터 사람으로 전해져 갔습니다.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머리로 암기된 것을 전해 간다고 하면, 일견 잘못 전하거나 올바르게 전해져 가지 않은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도 가겠지만, 장로들의 훌륭한 분산 작업으로 서로서로 각각의 파트를 책임져 전하고 한층 더 많은 무리의 장로가 체크해 나간다고 하는 면밀한 방법을 취했으므로 그 오차는 전혀 생기지 않았다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빨리어가 구전만으로 전승되어 온 불교도 마침내 책으로서 형태를 남길 필요가 생겨납니다. 빨리어에 의한 불교의 가르침은 부처님 입멸 200년 전후에 스리랑카에 전해집니다. 한편 그로부터 100년 후 인도에서 대승 불교가 일어나 서기 2년에는 그것이 중국으로 건너가지만, 그 대승 불교는 당연히 스리랑카에도 전해졌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만을 불교로서 구전 전승해 온 장로들은 자신들이 전하고 있는 불교와 대승 불교가 혼동되고 함께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라는 위험을 알고 처음으로 구전이 아니라 기록에 의해 가르침을 남겨 가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최초로 쓰여진 빨리어 경전은 야자나무 잎에 당시의 스리랑카 문자로 써져 있습니다. 그것은 쓴다고 하는 것보다도 철필로 문자를 파서 그 파인 곳에 먹을 넣어 보존했다고 하는 편이 적절한 표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빨리어로 구전되어 전해진 불교를 야자의 잎에 스리랑카 문자로 써서 남긴 것은 빨리어에는 문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빨리어를 남기기 위해서는 당시의 스리랑카 문자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현재에 있어서도 영국에서 로마자로 쓰여진 빨리어 경전이 출판되어 이 로마나판의 경전이 세계적으로 애용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현재 남아 있는 부처님 가르침의 완전한 것은 이 빨리어에 의해 구전된 것 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만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불교의 원전이라고 하면 산스끄리뜨(Sanskrit)어라고 하는 관념이 있습니다. 산스끄리뜨어 자체는 매우 오래된 말이지만, 산스끄리뜨어로 써진 불교 경전이 빨리어 경전보다 오래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산스끄리뜨어와 같은 학문, 철학 등에서 이용되는 특별한 말로 언어가 통일되는 것에 반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나라 사람들의 말로 전하도록 하셨으므로, 산스끄리뜨어 경전은 원래부터 존재할 수 없었지만 불멸 600년 후부터 시작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산스끄리뜨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 때 많은 대승불교의 문헌과 경전이 새롭게 만들어져서 그 중에서 한국에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로부터 산스끄리뜨어에 의한 경전은 부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이 아니며,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만을 직접 전하는 것도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서는 빨리어에 의한 경전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용되지 못하고 잊혀지는 후대의 언어나 사람의 손을 빌린 것이었다고 하면 그것들은 대가 바뀌는 것과 동시에 말 자체의 의미도 바뀌어 버릴 것이고 종교의 내용 자체도 시대와 함께 변해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빨리어에 의해 불교를 공부할 수 있다고 하는 최대의 장점은 부처님 입멸 후 2555년 지난 오늘날에도 부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제삼자의 개입 없이 마치 그 목소리를 직접 접하는 듯하다는 것입니다.

 

빨리어에 근거하는 테라와다 불교는 실증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미신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개념도 일체 없고, 오히려 과학적으로 우주의 진리를 이해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실증해서 그것을 이해한다고 하는 의미에서 테라와다 불교는 신앙과는 선을 긋는 것이라고 단언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실증할 수 있는 것은 신앙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진리를 아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이 아니라 실천만이 있을 뿐입니다.

 

한국의 불교는 대승 불교를 중심으로서 그 역사를 걸어 왔습니다. 대승 불교가 한국인에 미친 정신적인 것과 생활에 융화된 영향은 도저히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지대할 것입니다.


오늘날 대승 불교는 한국 문화의 심볼 중 한가지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절에 빈번하게 다니고 조상을 공양하며 믿음이 깊어져 간 것은 이 대승 불교가 이룬 위대한 정신문화임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깊이를 정신의 양식으로 하여 계승되어온 것이라면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대로 실천하고 공부하였으면 어떠하였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대승 불교 사상을 토대로 한 한국에는 유감스럽지만 근본적인 부처님의 가르침은 미흡한 상태입니다. 그런 만큼 처음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아 두면 불교를 보다 알기 쉬워지고 여러 가지 헤매는 일도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안 다음에 조사들의 해석들을 파악해 나가면 바른 견해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서 불교가 혼란스러워진 배경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 것이 아니라 조사들의 해석을 기본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일어난 필연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임을 자인하는 조사들이 스스로 이해한 자신의 “불교”를 그 제자에게 전하고, 또 그 제자들이 자신의 견해로 개정해 나간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인지, 어디까지가 부처님의 가르침인가 모르게 되어 버려 논쟁이 일어나고 급기야는 다양한 종파가 되어 결별 해 나가는 것이 지금까지의 한국 불교 역사였습니다.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스승이 없습니다. 어떤 시대, 어느 조건 아래서도 스승은 단 한명, 부처님뿐입니다. 제자라는 승려는 있지만 가르치는 것은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뿐이라서 거기에 제자로서의 자신의 견해나 해석이 비집고 들어갈 여력이 없습니다. 선배 비구를 스승이라고 부르는 것은 있어도 그 스승은 제자들을 부처님에게 묶는 중요한 역할만 할 뿐입니다. 어떤 사람, 어떤 제자, 누구라도 부처님에게 묶는 것이 테라와다 불교의 방식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1000년 전이나, 500년 전일지라도 비구들은 완전히 똑같은 부처님의 가르침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문명이 급속도로 진행되어 인간의 생활 습관도 많이 변모해 가고 있는 오늘날, 어떻게 테라와다 불교의 비구들은 부처님의 시대와 변함없이 살아가며 그 명맥을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비구들이 사회와 관계를 가졌을 때 계율을 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회와 잘 융화되었고, 사회의 요구에 응해 갔기 때문입니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가 있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라는 것에 조금의 염려도 없었던 것이 훌륭한 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로부터 제자로 계승해진 가르침이면 시대의 변화에 의한 비구들의 생활도 변화할 것인데, 비구들의 생활은 항상 부처님의 말씀과 계율이 기본이 되고 있기 때문에 시대가 변해도 그 생활은 변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만큼 부처님 가르침이라는 진리의 절대성이 여기에 맥을 이어 오늘날까지 계속 살아 있는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