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법문교재/테라와다불교의 신행생활

테라와다 이야기 17- 까티나 가사 법요식

담마마-마까 2017. 5. 12. 10:56

 

까티나 가사 법요식

(한 해 한 차례 까티나 가사를 보시하며 믿음이 환희로 바뀌는 큰 법요식)

 


  우안거 해제인 빠와라나 다음 날로부터 한 달간은 까티나kathina의 기간입니다.

우안거의 포상으로서 천이 가사감으로 보시되어져 이것으로 가사를 새롭게 지어 유행  생활을 위한 준비를 하는 기간입니다.

 

  이 유행流行 생활은 부처님 당시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우안거의 수행의 성과를 부처님께 보고하러 가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동시에 다음의 우안거지로 이동하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었습니다.

 

  현재는 스승을 찾아가 인사드리는 것이 하나의 목적이고, 우안거를 지내며 소홀했던 계율을 복원하여 청정히 하기 위해 두타행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동하면서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요즘에는 부처님의 탄생지 등의 성지를 순례하는 목적도 더해졌습니다.

 

  우안거를 끝내고 유행에 나오기 전에는 우기에 파손한 사원을 수리하는 작업도 합니다. 물론 스님이 하는 것은 아니고, 일은 스님의 감독아래 재가신자가 합니다.

 

  까티나 가사 법요식은 간단하게 말하면, 테라와다 불교의 각 사원을 지탱하고 있는 재가 불자들이 우안거를 마친 스님들에게 가사를 보시하는 의식입니다.

 

  가사 보시는 일상 다반사로 실천하는 공덕행입니다. 제사, 생일, 혼인, 취직, 건물신축, 출산 등의 흔히 있던 기념일에 스님들께 가사를 보시하며 축복받는 것을 당연한 듯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년에 단 한 차례만 가사를 보시할 수 있는 특별한 법요식이 있습니다.

 

  빨리어로 kathina civara puja(까티나 찌-와라 뿌-자-)라고 부릅니다.

까티나 가사를 공양올리는 의식이라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인 단순한 가사가 아니라, 특별한 까티나 가사입니다.


  이 까티나는 단순한 형용사로는 딱딱한, 흔들임 없는, 완강한, 결코 무르지 않고 견고한, 망가지지 않는, 칭송하는 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옛날에는 출가자가 가사를 만들 때 나무나 돌로 거푸집을 사용하였는데 그것도 까티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까티나 가사라고 할 경우는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기 보다는, 특별한 가사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럼 어떠한 기준으로 값비싼 금란가사를 말하는 것도 아닌데, 일반적인 가사를 「특별한 가사다」라고 결정하는 것일까요?


  이야기는 부처님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마음의 자유·해방을 목표로 하여, 왕위 계승권을 버리고 출가하신  분입니다.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어 그 목적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사로잡히는 일 없이, 80세가 될 때까지 인도 각 지방을 걸어 다니시며, 진리와 그 진리를 체험하는 깨달음의 길을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아래에서 차례차례로 사람들이 출가하여 제자들의 수도 증가해  나갔습니다. 부처님 자신도, 깨달음을 이룬 제자들도, 그 어디에도 정주하는 일 없이 진리를 전하며 유행을 계속했습니다.

 

  당시 인도에서는 수많은 종교가들이 자신의 수행의 일환으로서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제자들의 경우는 유행이 단순히 자신을 위한 수행의 일환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사는 괴로움에 고민하며,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의 길을 안내하는 이타행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 유행은 개인의 수행이었으므로 그만한 관례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인도에서 불교와 같이 널리 퍼지고 있던 쟈이나교라는 종교가 있었습니다.

쟈이나교는 살생을 정당화하는 바라문교에 정면으로 반대하며, 극단적인 비폭력주의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극단적인가 하면, 생수조차도 생명이 있는 것이기에, 출가자는 신도가 보시하는 더운 물은 마시지만, 결코 차가운 물은 마시지 않았습니다.

 

  인도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 되면 우기가 찾아옵니다.

여름은 열기로 사람이 죽을 정도로 심한 더위인데, 우기에는 그 열기를 식혀주고 생명들에게 활기를 불어 넣어줍니다. 게속 끊임없이 내리는  비로 강물이 흘러넘쳐 피해를 입기도 하지만, 마른 대지에 물이 깊게 스며들면 땅속의 벌레들은 지상으로 나옵니다.

 

  쟈이나교의 출가자들은 살생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비가 내리면 밖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쟈이나교에서는 우기에 유행하는 것이 금지됩니다. 한 장소에 머물며 고행 등의 다른 수행에 힘씁니다.


  그것과 비교하면 불교의 출가자들은 우기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것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불교도, 쟈이나교도 모든 생명에 대해서 자애를 실천하라 말하고 있습니다. 살생하지 않는 것은 양자가 비슷하지만, 쟈이나교의 출가자로부터 보면 불교의 출가자들이 우기에 유행하는 것은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우기가 되면 새들도 짐승들도 한 장소에 머문다. 인간도 집에 머물며 생활한다. 그런데도 부처님의 제자들은 벌레를 밟아 죽이면서 유행한다.」라고 비난했습니다. 비구들은 해결책을 부처님에게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하나의 계율을 제정했습니다. 「비구들이 우기의 3개월간 우안거에 들어가는 것을 인정한다. 그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경미한 율을 위반한 것이 된다.」그래서 비구들은 우기에는 유행을 멈추고 우안거에 들어갔습니다.


  비구들에게 있어서는 우기의 3개월간 한 장소에 머물러 있는 것은 할 일이 없는 상태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와 같은 우안거가 아니라, 불교의 이치에 들어맞은 우안거 습관을 만들었습니다. 재가 불자는 매일 부처님과 비구들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한 장소에 며칠도 묵지 않는 부처님이 자신들의 지방에 방문하는 것을 최고로 행복하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기가 가까워지면 재가 신도들은 모여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동정심을 가지고, 금년의 우기는 여기에서 우안거에 들어가 주십시오.」라고 정식적으로 초청합니다. 만약 승낙을 받았다면 복권에 당첨된 것보다도 기뻐합니다. 신도들은 비구들이 머물 곳, 식사, 약 등의 생활필수품을 보시합니다.


  비구들은 그  3개월간 우안거에 들어간 지역 안에서 탁발합니다. 또한 초청이 있으면 그 신도의 집에 가서 식사의 보시를 받습니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 신도들이 식사를 준비해서 절까지 가져와 공양올립니다. 그 3개월간 비구들은 지역의 사람들에게 설법하거나, 함께 수행합니다.


  결국 쟈이나교로부터 시작된 개인의 수행에 전념하는 딱딱한 우안거 형태를 대중들이 함께 이익과 행복을 누리는 우안거로 불교가 바꾸어 버렸습니다.


  우안거 동안 비구들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짜서 활동했습니다. 수행을 완료한 아라한 분들은 후배들에게 명상 지도를 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들을 수 없었던 설법을 다른 스님들로부터 전해 들어 서로 공부하고,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은 계율이나 의례를 선배 스님들에게 배우고 익히고, 어떤 스님들은 오로지 수행에 올곧게 힘씁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라도 우안거의 3개월간을 최대한 유효하게 보낼 수가 있습니다.

불교의 세계에서 일 년 중에서 우기 3개월간이 많은 성자를 만들어 내는 시기입니다.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평상시보다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힘쓰는 고귀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기 3개월간은 성스러운 시기라고 서로 암묵의 이해가 되어 있습니다.


  인도의 우기에  비는 대체로 4개월간 내리지만, 우안거는 3개월간 뿐입니다.

여름의 마지막 달 만월의 다음날(우리의 음력 6월 16일 저녁)에 우안거에 들어갑니다. 그것을 대안거大安居 혹은 전안거前 安居라고 말합니다.

그때는 아직 우기가 시작되지 않은 때입니다.


  만약 그 때 우안거에 들어가는 적절한 장소가 결정되지 않은 비구들은 다음 만월의 다음날(우리의 음력 7월 16일 저녁)에 우안거에 들어갑니다. 그것을 후안거後安居라고 말합니다. 대안거이든, 후안거이든 기간은 똑같이 3개월간입니다.


  우안거가 끝나는 다음날부터 일정기간 비구들은 다시 자유롭게 유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가지런히 정돈하거나, 건강을 회복하거나, 절을 수리하거나  하면서 우기가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후안거에 들어간 비구들은 괜찮습니다. 우안거가 끝났을 때는 벌써 우기가 끝나 있으니까요. 곤란한 것은 대안거에 들어갔던 대부분 비구들입니다. 우안거가 끝나도 우기장마가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구들은 곤란하게 한 최대의 문제는 가사입니다. 쟈이나교의 출가자는 알몸이지만, 비구들은 목으로부터 양손, 발뒤꿈치로부터 10센치까지 가사로 몸을 가리고 다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유행을 할 때도 반드시 몸을 가사로 감고 유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사는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1) 배꼽으로부터 15센치 정도 위까지 가리는 높이와 본인의 양손을 펼쳐 닿을 정도의 가로 폭이 있는 직사각형의 하반신을 감싸는 아랫가사(下衣antravasaka).

  2) 서서 손을 높이 올려 잡을 정도의 높이와 양손을 벌린 길이의 1.5배의 가로 폭이 있는 직사각형의 몸에 감는 윗가사(上衣,uttarasanga).

  3) 윗가사와 같은 길이와 폭으로 옷감이 2매 겹침이 되어 있는 중복가사(重衣,sanghati).


  3번째의 중복가사인 대가사는 무겁기 때문에 평상시는 입는 것보다도 어깨에 결쳐 둡니다. 추울 때 몸에 걸치거나 침구가 없는 경우에 깔아서 그 위에 자거나 합니다.

 


아랫가사antaravasaka

 

 

 

윗가사uttarasanga

 

 

 

 

 

중복가사sanghati

 

 

 

 

 

  한 명의 비구가 세 가지 가사를 갖추려면 적어도 20미터 이상의 옷감이 필요하게 됩니다. 기계는커녕 옷감을 짜는 실마저도 손으로 뽑지 않으면 안 되는 당시로는 대단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버린 천 조각을 모아 봉합해서 가사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신도들이 아무리 많은 새로운 가사를 보시해도, 한 사람의 비구는 3벌의 가사 한 세트 이상 가져서는 안 된다고 계율까지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갈아입을 수가 없습니다.


  우기 장마가 끝나기 전에 우안거가 끝나서 유행을 떠나는 비구들은 심한 낭패를 당합니다. 몸은 비에 흠뻑 젖고, 찬바람이 불어 으스스 춥지만, 비에 젖은 채로 갈아입을 수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전법하며 노력하고는 있지만, 자신의 모습을 비참합니다.


  그 비참한 모습을 불쌍히 여긴 부처님이 새로운 해결책을 고안했습니다.


「비구들이여! 우안거를 무사히 마친 비구에게 까티나 가사를 헌납하는 것을 인정합니다.」


  부처님에 의해 까티나 가사를 헌납하는 것이 인정되었기에, 이 위없는 까티나 가사를 재가자들이 준비하여 상가에 올리게 됩니다.

재가 신자들은 가사를 만드는데 적당량의 천을 준비하여 우안거를 마친 다음날부터 다음 달 만월까지의 사이(음력 9월 16일~10월 15일)에 비구들이 살고 있는 곳에 가져가 「이 가사(또는 천)」를 상가에 까티나 가사를 위하여 공양 올립니다」라고 말하며 상가에 올립니다.


  그러면 보시를 받은 상가는 계율 의식을 실행하는 장소인 계단에 모여서 새로운 가사를 받을 적절한 비구를 선정하여 건네주는 의식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라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 의식이 있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까티나 가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헌납한다」라는 말씀을 사용하셨습니다.


  보통 가사라면  받은 사람의 것이지만, 이 경우는 계율 의식을 행하는 장소에서 4명 이상의 비구들을 모아서, 이 가사를 사용하는 것이 적당한 사람을 상가의결로 정식적으로 결정합니다. 이것은 까다로운 상가 행위이고, 그 까다로움이 까티나 가사가 특별한 가사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재가자와 비구 상가의 협력이 있어야만 성립되는 불교의 계율 의식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재가자들에게 있어서 까티나 가사를 올릴 기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스님들은 「출가한지 몇 년 되었습니까?」하고 묻지 않고, 「몇 년 우안거vassa를 지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거기에 따라 선배·후배를 구별합니다. 그 말은 스님들에게 있어서 우안거 해제날은 생일이기도 하고, 설날이기도 한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출가사문을 유행자pabbajita라고도 불린 것처럼 우안거를 마치면    유행하는 것이 풍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풍습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제 우안거를 마치고 전법의 길을 떠나는 스님들을 전송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스님들을 전송하는 축제의 하이라이트가 까티나 가사 법요식인 것입니다.


  까티나 가사는 3벌의 가사를 한 조로 하여 한 분의 스님만이 받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지역의 사원에서는 한 사람의 스님에게 밖에 실시할 수 없는 선행이 됩니다.

이것은 불공평합니다. 까티나 가사를 보시하는  것으로 최대의 공덕을 쌓을 수 있어야 하는데, 단 한 스님에게 밖에 실시할 수 없다고 하면 전혀 불교적이지 않게 됩니다.


  불교는 민주적이기에, 이 문제도 분명하게 해결하고 있습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라도 보시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이 까티나 가사 법회에 함께 가지고 가면 됩니다. 재가자들은 스님들에게 필요한 것들도 더불어 보시합니다. 그러면 스님들은 합송하여 까티나 가사 헌납을 승인하는 게송과 축복의 회향게송을 독송하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한 사람의 스님에게 보시한 까티나 가사가 상가 전체의 보시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까티나 가사를 보시라는 의식과 동시에 다른 필수품들을 비구 상가에 보시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모두 평등하게 까티나 가사의 보시 공덕을 얻습니다. 자신이 보시한 필수품의 공덕은 까티나 가사에 플러스 알파로 추가됩니다. 이렇게 시대가 바뀌어도 모두에게 평등하게 공덕을 쌓을 수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태국에서의 까티나 법요식에서는 냉장고, 정수기, 침구류, 보온물병 등 자신이 보시하고 싶은 것은 가지고 갑니다. 옛날에 NHK TV를 본적이 있습니다. 어느 서비스업을 하고 있는 태국 여성이 1년간 모은 돈 전부를 이 까티나 법요식에 보시해 버렸습니다.


  취재진이 그녀에게 묻기를, 「한 해 동안 모은 돈 전부를 보시해버려서 생활하는데 곤란하지 않겠어요?」그러자 그녀는, 「아니오, 이것이 나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큰 기쁨입니다. 일 년의 노고는 이것으로 보답 받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그 지역의 빈부귀천 남녀고하를 불문하고 모두 참가하여 최대의 축제로서 즐깁니다.


  까티나 가사는 우안거에 들어가 올바르게 우안거 의식을 행한 비구가 아니면 이 가사를 받을 수 없습니다. 또한 후안거에 들어간 비구들에게는 행할 수 없습니다.


  까티나 가사를 받은 비구는 갈아입을 가사를 여벌로 가진 것이 됩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고마운 특권인 것입니다.


  또한 까티나 가사를 받은 비구에게는 다른 4개의 특권도 있습니다. 즉, 삼의 외에 여벌의 가사를 지녀도 괜찮다는 것에 더하여, 허락을 구하거나 알리지 않고도 마을에 갈 수 있고, 삼의를 지니지 않아도 잠잘 수 있고, 혼자든 여럿이든 특별식을 해도 괜찮으며, 때가 아닐지라도 새로운 가사를 받아 입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5가지 특권이 생깁니다.


  까티나 가사는 본래 그 장소에서 대안거를 마친 비구들 중 한 분 밖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같은 장소에서 대안거를 행한 비구들이 모두 모여서 까티나 가사를 받은 비구가 「상가에 까티나 가사가 법에 맞게 배분되었습니다. 올바르게 헌납된 까티나 가사 3벌, 이를 승인해 주십시오)」라고 보고합니다.


  다른 비구들도 「상가에 까티나 가사가 법에 맞게 배분되었습니다. 올바르게 헌납된 까티나 가사 3벌, 우리는 이것을 승인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의식에 의해서 까티나 가사를 받은 비구의 특권은 다른 비구들에게도 미칩니다.


  테라와다 불교의 사원은 제대로 된 규칙·결정에 따라서 재가자들이 사원 건축물 등을 신축, 유지, 관리하고, 출가자 어느 누구라도 그 사원에 자유롭게 출입하며 머물 수가 있게 하여야 하며, 머무는 출가자는 본인의 공부와 수행은 물론이고 재가자를 위하여 담마를 설하고 수행을 지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테라와다 불교에서 사원(vihara위하-라)의 관리 운영 방침은 대체적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① 재가 신자가 사원을 만든다(출가 비구는 관계하지 않는다).

② 재가신자가 보수나 유지, 세금 등을 포함한 모든 관리 운영을 담당한다.(출가 비구는 관계 하지 않는다.)

③ 사원의 건립 후에 사방 상가에 보시한다.


  출가 비구는 재가 신자와 같은 개인이 아닙니다. 출가하여 이 세상으로부터 벗어난 분, 세상사에 관계하지 않는 분들입니다. 어떤 비구가 설법해 주었으면 한다든가, 이 절에 묵었으면 좋겠다든가 하는 것을 부탁할 수 있지만, 비구 중의 누구를 지명해서 당신에게 이 사원을 보시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비구가 상가 전체의 공유재산으로 하고, 관리는 재가자가 하여 비구 개인의 책무가 되지 않게 운영합니다. 출가비구가 이 세상 사람들이나 물품에 집착할 수 없게 하고, 재가자도 비구에 대해서 이 비구, 저 비구 등 개인적으로 집착할 수 없습니다.


  공양청을 할 때도, 예를 들어 세 분의 식사만 준비할 수 있는 형편이면 비구 상가에 「비구 3분을 공양청 합니다」라고 부탁해서 올 수 있는 분은 3명뿐이지만, 비구 상가 전체를 위해서 공양 올립니다. 그렇게 해야만 공양하시는 분은 세 명뿐이라도 비구 상가 전체를 공양한 것이 됩니다.


  공양 올리는 마음이 비구 상가 전체에 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 분의 식사를 준비해서「○○ 비구와  △△ 비구와 ◇◇ 비구 3분을 초청합니다」라고 개인을 지정하면 보시의 공덕도 세 분만의 작은 것이 됩니다. 마음에 집착함이 있어 개인 밖에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음료, 음식, 가사, 발우, 약품 등 개인이 사용할 수 밖에 없는 매우 한정된 것이 소비재는 비구 개인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자나 침대, 책상 등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인 내구재는 비구 개인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의자를 내가 보시 받았으니까 나의 것이라고 하여 그걸 어깨에 짊어지고 수행하는 것과 같은 우스운 꼴입니다.


  의자나 침대, 사원 등의 재구재는 비구 개인에게 보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방 상가에 보시하는 하는 것입니다. 사방은 온 세상이라는 것으로 온 세상의 상가 전체에 보시해서 상가의 일원이면, 출가자 어떤 분이라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개방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보시하는 사람의 공덕도 무한대가 됩니다.


  사방 상가에 보시했기 때문에 스리랑카나 태국, 버마 등에서 비구가 와도 "여기에 머무셔도 됩니다. 공양청을 받아 주십시오, 법을 설하여 주십시오!"라고 부담 없이 초청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상가에 보시한 것에 의해 아시아의 한쪽 구석에 있으면서도 온 세상 불교도와 교류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사원은 모두의 것입니다. 테라와다의 사원이라면 온 세상의 테라와다 불교도 것입니다. 우리들만의 시설이라면 우리들에게는 편리하겠지만, 공덕도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을잊어서는 안 됩니다.


  정리하면,

※ 유지 운영은 재가자의 의무이고 사원은 사방 상가의 것입니다.

※ 사방 상가에 보시하는 것으로 테라와다의 사원이 됩니다.


  특정한 스님만이 사원에 거주해야한다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온 세상의 비구가 언제라도 자유롭게 방문해서 머물다가 떠나 갈 수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객비구가 숙박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재가자는 이러한 비구들의 자유로운 행동을 재가자의 취향 때문에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방문하기 쉬운 사원이 되어야 합니다. 방문하기 쉬운 사원이란 역으로부터 3분 이내라든지, 냉나방 등이 완비되어 있는 절이 아니라, 그 절을 유지 관리하는 재가 신자들이 사이좋고 밝고 서로 도와가며 배움과 수행을 해 나가고 부처님의 가르침 따라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는 사원, 즉 「재가의 상가」가 되어 있는 사원입니다.


 「비구 상가」없이 불교는 성립되지 않지만, 「비구 상가」를 만나고 싶다면 훌륭한 재가의 상가가 되어 초청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설법도, 수행지도도 쓸모없는 곳이라면 출가자들은 오지 않습니다.


  사원이라고 하는 평온함의 장소는 일반 세상의 어떤 곳보다 평화롭고, 부처님과 담마와 상가를 따르는 곳입니다. 그래서 사원은 법음을 듣거나 수행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합니다. 모두의 노력으로 그러한 장소가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사원에는 출가자들이 모임을 통해서 실행하는 상가깜마라는 독자적인 재판제도가 있어, 세속적인 법률보다 훨씬 더 정밀하고 공평하게 심리를 합니다.

테라와다 불교는 재가자의 보시에 의해서 성립되지만,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출가자가 재가자에게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탁발만으로 출가자들의 생활이 완전하게 성립되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것을 가족·친척 이외의 사람에게 요구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각각의 출가자에게 필요한 것과 사원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까티나 법요식에서는 그 사원의 운영에 관계하는 재가자들이 사원의 사정을 잘 조사해서 준비하고 보시하기에 사원이 유지 운영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까티나 가사를 만드는 모든 작업은 하루 만에 끝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재가자들이 아침 일찍 흰 천을 가지고 와서 상가에 보시하면서, 「상가에 까티나 가사를 만들 천을 공야 올립니다」라고 독송하면서 보시합니다. 그렇게 많은 재가자들에 의해 모인 천 조각들을 사원의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합심하여 가사를 만들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천을 규격대로 잘 자를 것이고, 어떤 이들은 천에 물을 들일 것이고, 어떤 이들은 바느질을 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다림질으 할 것이고, 그리고 재주 없는 이들은 잔심부름을 할 것입니다. 출가자와 재가자가 모여 행하는 것 중에 참으로 행복한 한나절일 것입니다.


  그렇게 물들이고 다림질한 가사가 준비되면 다시 재가자는, 「상가에 까티나 가사를 공양 올립니다」라고 독송하면서 보시합니다.


  옛날에는 가사 만들기가 모두 손으로 하는 작업이었으므로 대단한 행사였고 기쁨도 컸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참으로 그때가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지금은 공장에서 좋은 질의 옷감에 재단과 염색을 비롯한 모든 공정을 완성한 가사를 내놓기에 가사 만들기 행사를 좀처럼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현대라서 손쉽게 여러 벌을 스님들에게 드릴 수 있겠지만, 여러 벌을 까티나 가사로 할 수는 없습니다. 까티나 가사는 오직 3벌을 한 조로 해서 한 분의 스님에게 드릴 수 있습니다.


  이제 비구들은 그렇게 헌납된 까티나 가사를 가지고 계단에 모여 여법하게 의식을 행합니다. 그 날 까티나 가사를 받은 스님은 자신이 지금껏 사용했던 3벌 가사의 소유권을 버리고 대신에 까티나 가사를 입게 됩니다.


  그런 후 까티나 가사를 받은 비구를 비롯한 함께 우안거에 들어갔던 비구들은 까티나 가사의 헌납을 진정으로 기뻐하는 의식을 행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여 그 의식에 의하여 까티나 가사를 받은 비구의 특권은 다른 비구들에도 미치게 됩니다. 결국 우안거를 보낸 모든 비구들이 까티나의 특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까티나 가사 법요식에 어떤 공덕이 있는지 궁금할 것입니다.

소부 경전의 비유경(Apadana)에는 과거 부처님들께 꽃 한 송이, 과일 하나, 좌와구를 준비한 것 등의 보시만으로도 윤회하는 긴 시간동안 지옥에 떨어지는 일 없이 천상세계나 인간계에 태어나 행복하게 살다가 최종적으로 부처님을 만나 수행하여 완전하게 깨달음을 이룬 분들을 기록한 예가 많이 있습니다.

 

  가사를 보시하면 어디에서 태어나도 매우 아름다운 매력적인 몸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항상 최고급의 옷을 입고 재물이 없어짐 없이 생활할 수도 있습니다. 또 아토피 등의 괴로운 피부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손이 화상입거나 해도 빨리 완치하고 상처 자국이 남지 않습니다.


  특별히 먹는 일로 인한 장애가 생기지 않습니다. 격렬한 기후 변화에도 견딜 수 있는 체질이 됩니다. 행복하게 살다가 윤회하면서 물질에 집착하는 마음이 자꾸 줄어들어 갑니다. 집착하지 않는 성격은 지혜의 완성과 해탈을 재촉하게 됩니다.


  스님에게 가사 한 벌을 보시해서 얻을 수 있는 공덕은 이러한 것이지만, 이 가사를 상가에 보시하면 공덕의 양은 「무한·무제한」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보시를 받는 쪽이 사방 상가여서 그 수가 무량이기 때문에 무수한 성자에게 보시를 한 것이 됩니다. 마음의 문제라고 가볍게 봐선 안 됩니다.


  공덕은 마음에 나타나는 맑고 깨끗한 인상과 같습니다. 지금은 재가에서 쾌락에 빠져 해탈하려는 마음을 낼 수 없어도, 공덕을 쌓아 두면 윤회하면서 질릴 정도로 행복하게 되므로 마음은 자연스럽게 해탈의 방향으로 기웁니다. 그래서 불교도는 공덕을 쌓으면 해탈하는 것이 용이하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불교도들이 공덕을 쌓으려고 힘쓰는 것은 그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까티나 가사의 경우는 1년에 한 번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대안거에 들어가, 그 우안거를 지키며 올바르게 완료한 비구들이 없으면 실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비구가 한 명뿐이라면 그 비구가 있는 곳에 상가를 모아야 하고, 만약 그 하루 동안 상가 스님들을 시봉할 능력이 없으면 까티나 가사 법요식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귀중한 기회가 되므로 공덕의 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집니다.


  까티나 가사는 개인 비구에게 보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가에 보시하는 것이므로 무량의 공덕을 얻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또한 까티나 가사를 받은 출가자들도 5가지 특권을 얻고, 재가자들도 5가지 공덕을 얻습니다.

 

  우안거 3개월간 재가와 출가를 막론하고 열심히 수행하여 마음은 맑고 깨끗한 상태에서 행해지는 보시 행위이므로 공덕은 한층 더 높아집니다. 까티나 가사 법요식은 결코 단독으로 실시할 수 없습니다. 모이는 스님들의 보시와 우안거를 무사히 마친 스님들의 필수품들을 함께 공양 올리는 큰 법요식이므로 그 만큼 공덕도 증가합니다.


  부처님마저도  「상가에 까티나 가사를 보시하는 공덕은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무량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테라와다 불교도들은 이 법요식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며 수행에 힘쓰시는 비구들과 크고 작은 깨달음을 이룬 성자들을 칭찬하는 축제이며, 출가자들에게 율장에 정해진 행사이기도 합니다.


  어떤 관습들은 사라지기도 하고, 시대에 의해 여러 가지 요소들이 덧붙여지기도 하지만, 까티나 가사 법요식의 중요성은 부처님 성도 37년 이후부터 해마다 행하여져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너지지 않고 행하고 있는 특별하고 고귀한 행사입니다. 그리고 다음의 세대에도 계승해 가야 할 좋은 전통입니다.


  해제 후 한 달 이내라는 기간 중에서도 특별히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장소, 정해진 대상, 율장에 있는 그대로 보시할 수 있는 까티나 가사 법요식에 동참하여 무량 공덕 지으시기 바랍니다. 

 

 

아짠 빤냐와로 진용 스님의 '테라와다 불교의범 및 신행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