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와다 상가- 길상의 날~

테라와다 열린법석 개강법회_멋지게 산다는 것 (20120309.대원정사)

담마마-마까 2019. 6. 11. 21:57

https://youtu.be/F42LT00TZ34

 

* 테라와다 열린법석 개강법회_멋지게 산다는 것 (20120309.대원정사)

 

반갑습니다. 지금 테라와다 법석을 마련을 해서 둘째 주, 넷째 주에 수행의 실제와 이론 부분을 담당을 하게 됐습니다. 이걸 맡으면서 곰곰히 한번 생각을 해봤어요.

대부분 수행법들은 알죠? 그래서 수행법들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니 이건 내보다 더 많이 알 것 같고, 그렇다고 수행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 말을 하자니 그것도 말이 안 되는 것 같고, 그래서 궁여지책을 생각해 낸 것이 지금은 어쨌든 정규 대학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1년간은 스님들 법문을 통해서 테라와다 스님들과 여러분들이 좀 더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마련하기 위한 겁니다.

 

그래서 1년 동안을 뭐할까 고민을 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일반재가자들이 원하는 것이 뭘까 하는 것을 먼저 스님이 알고자 했었어요. 그래서 재가자들이 예를 들어서 요즘은 내가 우울하다 그러면 이 우울한 것을 수행으로 어떻게 풀어낼 것이냐? 그게 뭐 사마타적인 방법도 있을 것이고, 위빳사나적인 방법도 있을 것이고, 또는 경전에 근거한 방법들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이번 1년간은 테마별로 한번 잡아가지고 해보자 하고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스님 그거 말고 대념처경 해주세요 하면 또 대념쳐경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오히려 실제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더 낫지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둘째 주, 넷째 주 수행지도는 그렇게 들어갈 거 같습니다.

만약에 예를 들어서 매주 못 오죠? 그래서 한동안 못 오다가 그 주에 오더라도 그 주에는 또다른 테마를 가지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 듣고 가도 이익이 안 생기겠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게 2주, 4주는 스님이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되도록이면 여러분들에게 가르칠려고 안 하고, 스님도 사실은 이렇게 테마를 잡아서 가르쳐 보지를 잘 안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님도 여러분들하고 똑같은 초보자의 입장입니다.

 

단지 여러분보다 먼저 수행을 했고 먼저 경전을 접했다는 것뿐이기 때문에 조금 더 먼저 접한 입장에서 그래도 경전에 나오는 것들 수행을 통해서 이런 것들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들은 나눌 수가 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마음 편하게 와서 수행하십시요. 그러니까 뭐 괜히 와가지고 자기가 하는 수행법이 심념처인데 심념처 안 가르쳐준다고 내보고 뭐라 하지 말고, 그리고 마하시 방법으로 하는데 마하시 방법으로 안 하고 왜 이렇게 하느냐고 뭐라 하지 말고, 모든 것들을 다 아우를 수 있도록 그렇게 한번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사실은 입재법문이기 때문에 크게 법문할 수 있는 상황은 못됩니다. 그래도 주머니는 조금 채워가야 안 되겠어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그래서 채워가라는 의미에서 얘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비구니 스님들을 지도할 때는 부처님이 보통 아난다 스님을 보냈어요.

아난다 스님은 상호가 굉장히 훌륭하거든요. 그래서 아난다 스님이 가면 비구니 스님들이 그냥 한마디로 말하면 뿅 가요. 하도 아름다워가지고, 예뻐가지고. 그런데다가 법문도 아주 미사여구를 써가지고 하거든요.

아난다 스님은 어떤 마음으로 법문을 했을까?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사람은 좋아하겠지'

'내가 이렇게 법을 설해주면 저사람은 행복하겠지'

이런 마음을 가지고 법을 설하거든. 그러니까 아픔 부분을 콕콕 꼬집어주고 좋은 말만 해주니까 자기 좋은 소리 해주는데 누가 안 좋아할 사람이 어디있어? 그런데다가 상호가 아주 아름답고 하니까, 그래서 비구니 스님들은 아난다 스님 외에 다른 스님들의 법문을 들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괜한 부처님인가? 아난다만 내내 가도록 하겠어요? 다른 스님들 보내기도 하죠. 그런데 가장 대조적인 스님이 누구냐면 마하깟사빠 스님이라. 마하깟사빠 스님은 비구니 스님들이 얼굴도 안 볼라 그래. 생긴 것도 이상하게 꼭 여기 있는 스님들 아마 여기 빤냐완따 스님을 제외한 나머지 스님들은 다 마하깟사빠 스님 과에 속할 거라. 다 못생겼어. 그렇게 못생겼는데 그런데다가 만날 누더기만 걸치고 있지, 그러니까 비구니 스님들뿐 아니라 일반 대중 스님들도 마하깟사빠 스님이 법을 설하면 대부분 조분다고 그래요.

 

마하깟사빠 스님은 법을 설할 때 어떻게 설했느냐 하면 아난다 스님하고는 대조적입니다.

'부처님의 덕을 어떻게 하면 내가 드러내줄 수 있을까?'

'부처님 담마를 어떻게 가르쳐야만이 저사람들이 깨달음에 이를까'

여기에 중점을 뒀다고 그럽니다. 깨달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지, 요만큼도 여러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의 경지에 있는지 요만큼도 염두에 두지 않는 거라. 그러니까 자기 할 일만, 할 얘기만 실컷 떠들고 가버리니까, 근기가 안 되는 일반인들은 어떻게 돼요? 하나도 재미가 없는 거라. 그렇게 됐거든.

 

그런데 실제로는 "스님들은 마하깟사빠 스님 같이 법을 설하라" 하고 얘길합니다.

그래서 여기 있는 스님뿐 아니라 다른 스님들도 특강 시간이나 아니면 다른 시간을 통해서든 아마 틀림없이 자기 자신을 드러낼려고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이 대중들이 부처님 법하고 가까워질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바르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하루 빨리 깨달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가지고 아마 법을 설할 거라고 봅니다.

 

그게 바로 테라와다 스님이라는 겁니다. 테라와다 스님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을 잘 설하는 스님보다 여러분들은 눈높이가 더 높죠? 뭘 원해요?

법문 잘하는 스님보다도 수행 잘하는 스님을 원합니다. 그렇죠?

또 수행 잘하는 스님보다도 청정하신 스님을 원합니다.

그리고 또 청정한 스님보다는 수다원과에서 아라한과에 이르른 성자인 스님들을 더 원합니다.

여기에 있는 테라와다의 스님들은 그래도 지금 얘기한 무리 속에는 다 들어있는 스님들입니다.

 

어떤 스님은 여러분들이 보기에 솔직하게 얘기해서 저녁을 가끔씩 먹기도 하고, 그런데 번뜩이는 지혜는 오히려 다른 스님들보다 더 뛰어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스님들은 수행만 열심히 할라고 하는 스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법문 해주라면 법문 하나도 못해. 잘 못해. 그런 스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모여야만이 이 상가(saṅgha)라는 게 구성이 됩니다.

 

상가에는 여러 스님들이 존재를 합니다. 이 존재하는 스님들이 어떤 모습으로 흘러갈 것이냐 하는 것을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것이, 상가내에서도 중심을 잡아줘야 되겠지만, 여러분들이 중심을 잡아줘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하고 접할 수 있는 계기들이 뭐냐면 이렇게 매주 금요일날 만나서 법문을 설하고 또 그리고 여러분들하고 여러 가지 좌담을 하면서 속에 있는 것들을 드러내기도 하고 이런 과정들을 겪게 되는 겁니다.

 

스님은 한국에서 한국테라와다 불교가 성립되면서 참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어요.

그게 뭐냐면 여기있는 스님들은 이 가사 옷을 입고 있습니다. 저쪽에 있는 스님들은 한국 승복을 입고 있습니다. 승복을 어떻게 입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여기 있는 스님이 이 옷을 입었을 때는 이 옷을 입을만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나를 법의 눈을 뜨게 해줬고, 나를 중심을 잡아줬기 때문에, 나는 그래서 이 옷을 입고 있습니다. 차마 이 옷을 벗지 못해서.

여기 있는 스님들도 아마 거의 마찬가지 입장일 겁니다. 대승불교권에 있는 스님들은 대승불교권에서 그러한 것들을 받았기 때문에 그 옷을 입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옷을 어떤 걸 입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떻게 나를 이끌어 주느냐' 하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이 자리에 와서 법을 듣고 수행을 하고 하는 것은 그러한 확신들을 가지게끔 하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온 보람이 있구나, 여기 매주 법문 들으러 온 보람이 있구나 하는 것들은 생각들은 일으키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멋지게 한번 한국에 테라와다 불교가 들어서는 걸 보고 싶어합니다.

저만 그런게 아니고 여러분들도 다 마찬가지죠? 그래서 멋지게 한번 살아봅시다.

 

대학을 다닐 때는 그때는 출가하기 전이죠? 멋진 게 만날 데모하고, 남이 잘못한 게 있으면 막 잘못했다고 지적하고 이러는 것이 멋진 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감방에 잡혀가기도 하고 그러다가 군에 가기도 하고 그러다가 출가를 했는데, 그런데 지나고 나서 그걸 돌아보니까 그건 별로 멋진 거 같지는 않아. 그 가치관이 멋지지 않다는 것이 아니고 그래도 나를 내세울려고 하고, 나도 화를 드러내고, 이런 것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이지는 않아.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어차피 태어났으니까 어떻게 멋지게 살다 가실겁니까?

물론 여러 가지 재산을 많이 모아서 멋지게 한평생 누리다 갈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명예가 높아져서 역사에 남기는 그런 분이 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방편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과연 부처님은 이 세상을 멋지게 살다 가는 사람들은 어떤 분을 그렇게 얘기했을까?

하루는 천신들이 모여가지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 세상을 이렇게 내려다보니까 참 잘 사는 사람들도 있고 못사는 사람들도 있거든. 여러분들도 아마 그럴 겁니다. 나이드신 분들은 이렇게 젊은 사람들을 보면 '아이고, 저사람 참 잘살아간다' 하는 사람도 있고, '아이고, 저거는 어떻게 개망나니 같이 저렇게 사나'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그럴 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천신들이 우리들을 바라볼 때도 아마 그럴 겁니다.

 

그래서 천신들이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분류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 분류를 해놔놓고 나서 보니까, 제석천이 예를 표하거든. 그래서 옆에 있던 분이 제석천왕에게 그럽니다.

"신이 어떻게 인간에게 예를 표할 수 있습니까? 왜 예를 표합니까?" 하고 얘기하니까, 제석천도 그런 얘기를 합니다.

부모님 잘 모시고, 요즘은 떨어져 있는 경우들도 있죠? 그리하더라도 부모님을 잘 모실 마음들을 가지고 또 그런 조건이 되면 그것들을 열심히 하는 것들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부모님 잘 모시고, 또 살아가면서 남에게 열심히 베풀려는 마음들을 가지고, 또는 사람들 간에 화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예경합니다."

하고 얘기합니다. 어려운거 아니죠?

 

그런 사람들이 멋있게 잘 살아가기 때문에 제석천이 예경한다고 그럽니다.

가장 쉬운 것들입니다. 여러분들 보고 어려운 위빳사나 수행법을 신념처부터 달달달달 외우라고 그러나? 아니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라고 그러나? 전혀 어려운 게 없습니다. 아주 쉽습니다. 천신들은 그런 인간들에게 예경을 올린다는 겁니다.

물론 천신들이 멋진 인간의 조건을 일곱 가지로 얘기한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사랑스러운 말을 하는 분들도 있고, 여러 가지 조건들은 있는데, 그 조건들을 대부분 보면 여러분들이 대부분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 부처님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부처님은 실제적인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실제적인 얘기들을 합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대부분 한국에 있는 카페나 홈페이지가 있는 것들을 보면 가입할려고 할 것 같으면 정확하게 기재를 해야만이 가입이 허락이 떨어지죠! 그 조건이 뭡니까? 정어(正語)라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바른말 하지 않고 거짓말하는 경우에는 등업을 안 시켜 줍니다. 부처님도 마찬가집니다.

멋지게 잘 살아가는 사람의 첫째 조건이 진실된 말을 하는 자.

두 번째 조건이 뭐냐면 아까 천신들과 마찬가지로, 거기 우리 정원 김재성 교수님이 하고 있는데가 멧따 명상의 집 그렇게 해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자애스러운 말을 하는 자. 그걸 보통 한문으로 애어(愛語) 라고 그럽니다. 사랑스러운 말입니다. 정확하게 표현을 하면 자애스러운 말들입니다. 남을 대할 때 항상 미소지으면서 자비로운 말들을 하는 것.

예를 들어서 내가 여기 이분을 내가 안단 말입니다. 그럼 이분하고 얘기할 때는 이분의 좋은점, 장점을 떠올리면서 '이분이 행복하기를', '이분이 괴로움이 없기를'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이 분하고 얘기를 하는 거라. 그럴 거 같으면 어떻게 되요? 내가 이분을 떠올리면서 항상 미소 짓게 되,고 말하는 것들은 자애로운 말을 하게 된다는 거라.

모든 대상을 대할 때, 그리고 나하고 관계없는 사람을 대할 때라도 자애로운 말들을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진짜 멋지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또 부처님이 뭘 멋지다고 얘기했을까? 4가지를 얘기했거든요.

세 번째는 한국에서도 그런 거 하던데 동사섭(同事攝)이라고 들어봤어요? 스님은 아직 동사섭을 안 가봐서 어떻게 하는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동사, 항상 어떤 일들 어떤 대상을 만나더라도 평등한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자.

그런데 우리는 그거 참 잘 안되죠? 성질 바락바락 부릴 때도 있고, 또 욕심 부릴 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항상 평등한 마음을 가질려고 하는 것들은 자꾸 훈련하면 됩니다.

 

처음에 태국가가지고 스님은 태국에서 오랫동안 있었는데, 태국에서 참 하기 힘들었던 게 뭐냐면 화를 안 내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스님들이 화를 요만큼이라도 내면 그다음부터는 탁발을 가도 탁발을 안 줄려고 그럽니다. 스님 된 자격이 없다고 그럽니다. 우리가 봤을 때는 그냥 화도 아니야. 그러니까 싫증을 내는 것, 싫어하는 마음을 내는 것, 아니면 남을 누가 얘기할 것 같으면 스님들한테 항상 좋은 얘기만 하는 게 아니고 뭐 이상한 얘기를 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내가 피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피할려고 하는 마음을 내는 것들도 다 화의 일종으로 봅니다.

 

화를 내는 것은 4가지의 종류가 있는데, 그런 모습이 조금이라도 스님한테 보이면 신도들이 금방 압니다. 그래가지고 그다음부터는 탁발가면 밥을 안 줘. 중이 밥을 안 주면 우짤거고? 굶어야 되는 거라. 그마만큼 화를 안 내는 것이 조절하는 것이 굉장히 힘이 들어요. 그런데 우짤끼라? 내가 안 죽을라면 화를 안 내야 되는데. 길을 자꾸 들여가지고, 어쩔 수 없이 속에는 부글부글 끓어도 안 드러내는 거라.

그렇게 훈련을 해나가다가 나중에는 점점 더 하다보니까 화를 알게 되고, 화의 원인을 알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화를 자동적으로 안 내게 되고, 또 어떨 때는 화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걸 분명하게 다스릴 수 있게 되고, 이렇게 자꾸 만들어져나가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꼭 마찬가질 겁니다. 아마 여기 와서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또 수행을 하고 하면 자연스럽게 그 물이 배여나갈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거는 아마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게 화를 안 내는 것, 그뿐 아니라 욕심 부리지도 않는 것.

 

대부분 여기 있는 스님들이 단언합니다.

우리가 회의할 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오는 스님들 여비라도 주자 그래서 내가 반대를 했어요. 여비 없다, 자기 돈으로 다 올라오도록 하라. 그렇게 하자고 얘기를 했어요. 다 돈 없습니다. 그런데도 얼굴을 보든 아니면 행을 하는 것들을 보더라도 그렇게 불만족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냥 만족하고 삽니다.

만족하지 못한 게 이 속에 요만큼 있다고 하더라도 드러내질 않습니다. 드러내면 다른 스님들이 당장 그걸 지적을 합니다. 적어도 만족할 줄 모르는 스님들은 없습니다. 그것뿐입니까? 게으르지 않게끔 열심히 노력하고, 보통 탐·진·치가 없이 살아갈려고들 합니다. 그렇게 자꾸 노력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평등한 마음들을 어느 정도 가지게끔 됩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집니다. 항상 어떤 상황이 되든 어떤 조건을 만나든 평등한 마음을 자꾸 가질려고 노력들을 해야 됩니다.

적어도 그렇게만해도 이 세상에서는 잘 살아가게 됩니다. 진짜 잘 살아가게 됩니다.

 

또 하나가 뭐나면 베푸는 것.

그렇게 해가지고 4가지입니다. 부처님이 얘기를 해놓은게 4가지인데,

 

이 세상에 어차피 태어나서 살아가는데 되도록이면 멋지게 살아가야 안 되겠어요? 그리 돼야 부처님 제자답게 살아가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그냥 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보다 오히려 부처님 제자답게 잘 살아가서 이 세상에서 적어도 그래도 나중에 죽음에 임박해서 '멋지게 잘 살아왔구나' 하는 마음이 들도록 그렇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자! 간단하게 여기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