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위빳사나[기초수행반]

기초수행08. 수행의 요점3 (20071106)

담마마-마까 2020. 1. 1. 13:34

 https://youtu.be/IonRh338eA8

* 기초수행08. 수행의 요점3 (20071106)

 

좌선을 할 때 알아차림의 주대상은 배의 '일어남' '사라짐'입니다.

그리고 알아차림이 잘 안될 때는 방황하는 마음이나 망상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자세의 닿아있는 부분, 접촉 부분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좌선할 때 알아차림이 잘 될 때는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만 하면 됩니다. 일어남 사라짐을 하는데 마음이 자꾸 방황하든지 망상한다든지 생각이 자꾸 떠오르든지 해서 대상에 집중하기가 힘들 때는 '앉음' '닿음'을 알아차려야 됩니다. '앉음' '닿음'은 몸의 앉아있는 형태와 닿아있는 상태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앉음' '닿음'을 관찰하는 데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호흡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이기 때문에 호흡의 '일어남' '사라짐'을 대신해서 '앉음' '닿음'을 알아차리는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은 전혀 하지 않고 '앉음' '닿음'만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호흡의 '일어남' '사라짐' 대신에 '앉음' '닿음'을 알아차리는 방법입니다.

 

또 다른 한 방법은 '일어남' '사라짐'을 하고 있는데 '일어남' '사라짐' 다음에, 다시 '일어남'이 일어나기 전에 정지되어 있고 멈추는 간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앉음'이나 '닿음'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이렇게 하는 방법이 하나 있고,

'일어남' '사라짐'이 안 될 때 앉아있는 몸의 상태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앉음' 하면서 관찰을 하고, '닿음' 하면서 몸 중에 닿아있는 부분, 눈꺼풀이나 입술이나 손이나 엉덩이나 무릎이 닿아있는 부분을 관찰하는 방법입니다.

'앉음' '닿음' 하면서 닿음 첫 번째 포인트인 '오른쪽 눈꺼풀'하고 오른쪽 눈꺼풀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을 관찰하고, 또 '앉음' 하고 나서 '닿음' 하면서 왼쪽 눈꺼풀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관찰을 하고, 또 '앉음' '닿음' 하면서 입술이 닿아있는 느낌을 관찰하고 이런 식으로 닿아있는 포인트를 짧게는 서너군데부터 길게는 열몇군데까지 늘려나갈 수가 있습니다.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을 하다 보면 호흡을 알아차린다는 것이 단조롭기 때문에 마음이 싫증을 내서 쉽게 달아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몸에다가 마음을 붙잡아두는 방편으로써 선택하는 것이 '앉음' '닿음'입니다.

 

또한 '일어남' '사라짐' 관찰이 용이하게 되어나가는 상태에서는 '사라짐' 다음에 '일어남'이 있기 전에 잠깐 멈추는 것이 있다 하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그 '멈춤'을 그냥 놓아버리고 다시 '일어남' '사라짐' 하게 될 거 같으면 대부분이 잠에 떨어지든지 망상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쉬고 있는 틈이 생기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알아차리기 위해서 '일어남' '사라짐' 하고 나서 그 잠깐의 멈춤 동안에 몸의 앉아있는 상태를 관찰할 때는 '앉음' 하면서 관찰하고, 다시 '일어남' '사라짐' 해야 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될 거는 '일어남' '사라짐' 다음에 잠깐의 멈춤인데, 아주 빨리 마음이 움직여서 그 멈춤의 상태에서 '앉음'이나 '닿음'을 관찰해야 되는데, 어떤 경우에는 그 쉬는 부분을 관찰을 하지 않고 배가 일어날 때 '앉음' 배가 사라질 때 '닿음' 이렇게 하는 경우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앉음' '닿음'을 할 때는 '앉음' '닿음'만 하도록 해야 되고,

 

'일어남' '사라짐'을 하다가 '일어남' '사라짐' 다음에 간격이 있는 것을, 멈추는 것을 알지 못했을 때는 그냥 그대로 '일어남' '사라짐'을 해야 되고,

 

'일어남' '사라짐'을 하다가 '사라짐' 다음에 '일어남'이 있기 전에 잠깐의 멈춤이 있다 하고 알 때만이 '일어남' '사라짐' '앉음'이나, '일어남' '사라짐' '앉음' '닿음'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 간격이 자신에게 길게 느껴질 때는 '앉음' '닿음'을 하도록 하고, 짧게 느껴질 때는 '앉음'이나 '닿음' 한 가지만 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이것은 마음이 지속적으로 알아차리기 위해서 틈이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이 적절하게 선택해야 되는 방법입니다.

 

이와 같이 수행을 하다가 '일어남' '사라짐' 하는 주대상 외에 또 알아야 되는 것이 뭐냐 하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 대해서 알아차림을 해야 됩니다.

 

'일어남' '사라짐'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은 그것이 코끝이든 가슴이든 배든 수행자가 그렇게 명칭을 붙일 때는 원래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것들을 명칭을 붙이는 것입니다.

호흡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바람의 작용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바람이 들이쉴 때는 배가 불러와지고 코끝에서는 들이쉬는 바람이 있게 되고, '사라짐'이라고 할 때는 바람이 코끝을 통해서 빠져나가고 배가 꺼지고 하는 것들입니다. 이것은 바람의 작용입니다. 그 바람의 작용에 따라서 배의 호흡을 '일어남' '사라짐'이라고 명칭을 붙이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리가 들릴 때도 '들림' '들림'이라고 명칭을 붙여야 되고, 볼 때도 '봄' '봄'이라고 명칭을 붙여야 되고, 망상을 할 때도 '망상' '망상'이라고 명칭을 붙여야 되고, 걸어갈 때도 '오른발' '왼발'이라고 명칭을 붙여서 하도록 해야 됩니다.

만약에 명칭을 붙이지 않는 수행, 특히 마음에 대한 수행들을 할 경우에는 그냥 호흡을 보고 그다음에 소리가 들리고 말하고 하는 것들을 관찰을 해야 됩니다.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이렇게 관찰을 해나가면 몸에서는 쑤심들이나 열기들이나 통증들이 느껴집니다. 그러면 그것을 '쑤심' '쑤심' '통증' '통증' 이렇게 알아차리도록 해야 되고, 망상이나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망상' '망상' '생각' '생각'하면서 관찰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만약에 통증이 계속돼서 자세를 바꾸고 싶어도 급격하게 자세를 바꾸지 말고 단계적으로 천천히 바꿔야 됩니다. 그 모든 과정을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먼저 바꿀려는 의도를 알아차리고 나서 '바꾸고자 함' '바꾸고자 함' 하면서 알아차리고, 손을 움직이면 '손을 움직임' '움직임' 하면서 관찰을 하고, 자세를 바꾸면 '자세를 바꿈', 허리를 움직이면 '허리를 움직임', 손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으면 '손을 제자리에 갖다 놓음' 이렇게 하면서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알아차려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다시 배의 '일어남' '사라짐'이라는 주대상으로 확실하게 돌아오도록 해야 됩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보이는 대상이나 들리는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피부에 느껴지는 감촉이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대상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왜 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모든 현상들을 알아차려야 하는가 하면 우리가 수행하고 알아차리는 목적이 이렇게 육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들을 예방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위빳사나 수행은 탐·진·치를 제거하는 것들입니다.

탐·진·치는 오온을 쉽게 침범하기 때문에 매순간 알아차림으로써 탐·진·치가 약화되고 제거된다고 분명하게 부처님이 얘길 했습니다. 이들 모든 현상을 알아차리는 것만이 탐·진·치를 예방하고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오온이라고 하는 것은 수행자가 배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을 알아차릴 때,

배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몸의 현상입니다. 색온입니다.

일어나고 사라지고 할 동안에 느껴지는 좋고 싫고 하는 느낌들은 수온입니다.

그리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상온입니다.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을 알아차릴려고 노력하고 의도를 내는 것들은 행온입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명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은 식온입니다.

이렇게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이 다섯 가지가 오온(五蘊)입니다.

 

걸어갈 때도 왼발 오른발 하고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물질의 무더기인 색온입니다. 발이 움직일 때 좋거나 싫은 느낌이 들 때는 느낌의 무더기인 수온입니다. 발걸음을 인식하는 것은 상온이고, 그럴려고 노력하는 것은 행온이며, 걷는 것을 명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은 식온입니다.

이것을 오온(五蘊)이라고 그러고, 거기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을 오취온(五取蘊)이라고 얘기합니다.

 

요약하면 걷는 것은 물질인 몸이고, 걷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비물질인 마음인 것입니다. 실재하는 것은 이렇게 몸과 마음이라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에 대해서 알아차리지 못하면 '내가 가고 있다' '누가 가고 있다'하는 '자아'라는 잘못된 개념을 가지게 돼서 그것에 대해서 집착을 하게 됩니다.

 

형상을 볼 때도 마찬가집니다. 눈과 밖의 형상이라는 대상은 색온이고, 그러한 대상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느낌은 느낌의 무더기인 수온이고, 그 대상을 지각하는 것은 상온이고, 지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행온이고, 명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은 식온입니다.

모든 알아차림은 오온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줄여서 말하면 물질과 마음으로만 구성된 오온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몸과 마음이라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이런 본성을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래야 만이 나, 여자, 사람이라고 하는 잘못된 관념에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야 만이 탐·진·치라고 하는 것이 육문을 통해서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육문(六門)이라고 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우리는 인식하고, 그 인식으로 인해서 반응들을 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육문들을 잘 다스리는 것이 수행의 중요한 부분에 들어가집니다.

문(門, dvāra)이라고 하는 것,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육문(六門)입니다.

 

안, 눈이라고 하는 것으로 사물을 보는 것을 알아차릴 때는, 눈이 있어야 되고, 밖에 보여지는 대상이 있어야 되고, 그것을 볼 수 있는 밝음이라는 빛이 있어야 되고, 그걸 의식을 해야 만이 사물을 볼 수가 있습니다.

소리를 들을 때도 귀가 있어야 되고, 소리가 있어야 되고, 소리와 귀 사이에 장애물이 없어야 됩니다. 파동들이 나에게 미칠 수 있도록 돼야 됩니다. 그리고 마음이라는 의식이 존재해야 됩니다.

맛을 알아차릴 때도 혀가 있어야 되고, 달거나 짜거나 하는 맛이 있어야 되고,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침이라는 것이 있어야 되고, 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느낌, 감각을 알아차릴 때도 감각을 알아차릴 수 있는 몸의 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손톱 끝이나 피부나 이런 것이 손상되지 않은 것이 있어야 되고, 그리고 그 대상이 있어야 되고, 실제로 그 대상이 나에게 닿아야 느낌을 알 수가 있고, 의식이 있어야 만이 알게 됩니다.

냄새를 알아차릴 때도 코가 있어야 되고, 냄새가 있어야 되고, 냄새를 운반해주는 공기가 있어야 되고, 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 거 같으면 소리가 들리면 수행하는 사람은 그 소리에 집착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들림' '들림' 하면서 알아차려야만 됩니다.

이렇게 알아차려야 만이 탐욕과 분노가 귀를 통해서 들어오지 않습니다. 즐거운 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 소리에 대해서 갈망하게 됩니다. 싫은 소리를 하면 분노를 일으키고 배척할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됩니다. 탐욕과 분노는 불선업을 일으키고 바른 행위가 아닙니다. 이런 불선업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수반하여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과보를 가져오는 것들입니다.

 

눈을 통해서 대상을 볼 때는 똑같이 '봄' '봄' 하면서 알아차리도록 해야지, 아름다운 모습에 대해서 탐욕을 일으키고 추한 모습에 대해서 분노를 일으키지 않아야 됩니다.

코도 마찬가집니다. 냄새를 '냄새' '냄새' 하면서 알아차리지 못하면 좋은 향기는 취하고 악취는 분노를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먹을 때도 꼭 마찬가지로 맛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좋은 것은 더욱더 취할려고 하고 나쁜 것은 배척하고 분노를 일으키게 됩니다.

어떤 것이든 병이 생기고 나서는 치료를 해야 되겠지만 그것을 치료하는 것보다는 예방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탐욕과 분노가 생기고 나서 치료하는 것보다는 생기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바로 모든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사물을 볼 때는 '봄' '봄' 하면서 알아차리고, 맛을 볼 때는 '맛을 봄' '맛을 봄' 하면서 알아차리고, 냄새가 맡아질 때는 '냄새맡음' '냄새맡음' 하면서 알아차리고, 이렇게 알아차리지 못할 때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대상들에 대해서 갈애가 생겨서 집착하게 되고, 싫은 대상에 대해서는 분노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보는 대상을 보는 순간에 알아차리면 아무런 느낌이나 갈애가 일어나지 않고 단지 보는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하고 얘기합니다.

 

소리를 알아차리면 소리라는 대상으로만 존재할 뿐이고, 냄새를 맡으면 냄새라는 대상으로써만 존재할 뿐입니다. 모든 육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현상을 이렇게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이것이 탐진치가 발생하는 것을 억제하고 방어하는 과정입니다.

 

부처님 당시 때 뽓틸라 라고 하는 큰 장로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뽓틸라에 대해서 부처님은 "뚜쪼 뽓틸라" "골빈 뽓틸라야" 하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골빈 뽓틸라야 이리 오너라. 골빈 뽓틸라야 이것을 하여라."하고 항상 얘기를 했습니다.

뽓틸라 스님이 자신이 생각을 해보니까 자기는 육십이 넘어 되도록, 부처님 말씀인 경전을 오백 명이나 되는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큰 스승인데, 경전을 자기만큼 많이 알고 있는 사람도 없는데, 왜 나보고 골비었다고 부처님이 얘기할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니까 경전을 암송을 하고 가르칠지는 몰라도 그것을 내가 실제로 체험하고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고 깨닫게 됩니다.

경전을 가르치기만 했지, 그리고 배우고 알려고만 했지, 실천하는 데는 등한시 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 그래서 부처님이 골빘다고 얘기를 했구나'하는 사실을 알고 그 장소를 떠나서 수행하겠다는 생각으로 떠납니다.

경전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스승이 있고, 또 그런 경전이 있고, 가르치는 사원에만 가면 됩니다. 그런데 위빳사나 수행은 수행을 지도하는 스승이 있고, 그렇게 수행할 수 있는 장소가 있고, 수행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들입니다.

 

뽓틸라 스님은 유명한 수도원으로 가서 그 스님들에게 수행방법을 물어봅니다. 최고 연장자 스님에게 수행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니까, "뽓틸라 스님!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대단히 유명한 스님입니다. 아주 박식하고 제자도 많은 분인데 내가 어찌 당신을 제자로서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사양을 하면서 다음 스님에게 가보십시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다음 스님도 꼭 마찬가지로 그렇게 거절을 합니다. 그렇게 차츰차츰 내려와서 일곱 살이 된 사미에게까지 갑니다.

육십 먹은 뽓틸라 스님이 일곱 살 사미 스님에게 수행방법을 가르쳐주고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여 줄 것을 간청을 합니다.

처음에는 사미 스님이 거절을 하지만 자기의 말을 잘 따를 것을 맹세하면 수행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앞에 있는 연못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것을 요구합니다.

 

뽓틸라 스님은 당연히 연못을 통해서 저쪽으로 갔다가 이쪽으로 옵니다. 가사는 물에 다 젖어버리고 돌아오게 됩니다. 뽓틸라 스님에게 그 어린 사미 스님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일 분 전까지 휘황찬란하던 옷이 순식간에 이렇게 진흙탕구덩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마음에 오염물이 붙으면 이렇게 더러워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경전을 아무리 많이 외우고 있더라도 내가 마음에 오염, 탐진치라고 하는 오염물을 제거하지 않으면 마음은 더러워져 버립니다.

 

그러한 사실을 일깨워 주고 나서 뽓틸라 스님을 데리고 오소리 구멍으로 가서 물어봅니다. 여섯 개의 구멍이 나 있는 오소리 굴을 가리키면서 이 오소리는 들어가는 구멍이 있고 나오는 구멍이 다 다릅니다.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고 다른 동물들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서 여러 가지 굴을 비상탈출로로 그렇게 만들어 둡니다. 이 오소리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당연히 하나의 구멍을 남겨두고 나머지 구멍을 다 막아버리고 나서 그 하나의 구멍을 통해서 연기를 피울 거 같으면 오소리는 그 매운 연기 때문에 뚫려있는 하나의 구멍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 하나의 구멍으로 나올 때 그 오소리를 탁 잡으면 됩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들 수행도 마찬가집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고 하는 여섯 가지 문(六門)을 통해서 모든 현상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합니다.

수행은 여섯 가지 구멍 중에 다섯 가지는 막아버리고 하나의 구멍을 통해서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보는 대상이 있을 때에는 보는 대상만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지 들린다든지 생각한다든지 이런 문은 다 막아버리라 하는 것입니다. 들릴 때는 오로지 '들림' '들림'만 알아차리는데 오소리가 나올 때 나오는 즉시 잡아야지 늦게 손을 뻗으면 오소리는 또 도망쳐버립니다. 대상이 일어나는 즉시 알아차리도록 해야 된다 하는 뜻입니다.

 

생명체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모든 현상을 알아차리더라도 일어나고 들어오는 즉시 알아차리도록 해야 되고, 그렇게 알아차림이라는 것은 하나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지, 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나 귀를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나 두 가지를 동시에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대상을 놓쳐버리게 됩니다. 구멍을 두 개 뚫어놔 놓고 이쪽저쪽을 보면서 오소리를 잡을려면 반드시 오소리를 놓쳐버리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배운 대로 수행을 해나가면 머지않아서 번뇌를 소멸하고 열반을 성취하게 됩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가르친 수행방법입니다.

내일은 느낌에 대한 관찰에 대한 수행법을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