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위빳사나[기초수행반]

기초수행05. 경행방법2 (경행과 사대요소) (20071023)

담마마-마까 2019. 12. 31. 10:53

https://youtu.be/LKhthqbqeDM

 * 기초수행05. 경행방법2 (경행과 사대요소) (20071023)

 

··· 알아차림이 없이는 걷지 않겠다 하는 굳은 결심을 해야 한다고 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매사 알아차리는 것이 아주 선명해지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 만약에 결심을 그렇게 알아차림이 없으면 걷지 않겠다고 할 거 같으면 몇 발자국이나 움직일 수 있을 거 같애요? 마야님! 몇 발자국이나 움직일 수 있을 거 같애요? 알아차리지 않으면 걷지 않겠다 했으면?

어느 수행자가 한번 그렇게 해본 적이 있거든요. 처음에는 내내 걷는 것이 알아차림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아차림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나니까 한 발짝도 떼지 못하겠더라는 거라.

 

실제 그렇습니다. 우선 알아차림이 어떤 겁니까?

움직임을 알아차려야 되죠.

그다음에 두 번째 움직임이 파악되고 나면 뭐 합니까?

느낌을 알아차려야 되죠. 딱딱하고 부드럽고 무겁고 가볍고 하는 그런 느낌을 알아야 됩니다.

그럼 그걸 알아차리고 나면 또 뭘 알아차려집니까?

무상·고·무아라고 하는 것들을 알아차려지게 됩니다. '아! 이렇게 일어나는 것이 항상함이 없이 사라지는구나'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너무나 빠르게 일어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느끼는 부분, 그러한 것들이 내가 콘트롤 할 수 있는 것이나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들이 어떤 것도 없다 하는 것들을 알게 되고. 그게 인제 알아차림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알아차림을 유지하면서 걷는 것이 몇 발자국이나 할 수 있겠느냐는 거라. 쉽게 알아차림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냥 걷는 거를 아는 거 그게 뭐 어렵나? 이렇게 생각하기가 쉬운데, 걷는 거 아는 거는 습관적으로도 압니다. 걷는 걸 아는 것은! 그런데 그럴 때 보통 모양이나 형태로써 걷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나 여러 가지 관념들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것은 알아차리면서 걷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야 됩니다.

 

알아차림을 강화시켜주는 맨 첫 번째 요소가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들입니다. 그래야만이 지금부터 얘기하는 특성들이 드러나지게 됩니다.

자! 저번 시간에는 그런 움직임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아라 하고 얘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네 가지 특성, 이걸 고유한 특성이라고 그럽니다.

이 몸을 유지하고 있는 고유한 특성입니다.

교재에 「경행과 사대」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부처님 말씀에 의해서 이 몸은 네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하고 얘기를 들었을 겁니다. 들었죠?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졌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 몸에 있는 피 같은 거는 물의 요소다, 뼈 같은 거는 단단한 거니까 땅의 요소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 말입니다.

그거는 물질적으로 이루어진 네 가지를 얘기합니다.

 

자! 그러면 그걸 알아차리는 것은 뭐로 알아차립니까?

마음으로 알아차려야 되죠!

그런데 마음이 없어도 이 몸은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맞습니까? 그러면 피는 물의 요소다, 뼈는 땅의 요소다, 그거 알면 뭐 할 건데? 마음이 없어도 이미 그렇게 이루어져 있는 건데.

수행을 통해서 알아야 되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이 몸이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은 그런 것들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요 밑에 나와 있는 가볍고, 무겁고, 뜨겁고, 움직이고 하는 이 요소들을 갖다가 알아야 되는 겁니다. 이 요소는 마음으로써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행을 할 때 이 고유한 특성이 반드시 드러나져야 됩니다.

 

경행을 하다 보면 움직임을 분명하게 압니다.

발이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따라서 명칭을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하면서 명칭을 붙이는데, 그러한 이유는 모양이나 형태에 끄달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단지 발의 움직임만 알려고 하기 위해서, 몸이라고 하는 대상에 마음을 일치시키는 과정에서 그렇게 명칭을 붙이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발을 들어올릴 때 들어올리는 것을 알고, 나아갈 때 나아가는 움직임을 알고, 내려놓을 때 내려놓는 움직임을 명확하게 인제는 알게는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정하게 수행을 쭉 해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집중력도 깊어지고 알아차림도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지는 것이 뭐냐면 이 고유한 특성 네 가지입니다.

그래서 발을 들어올릴 때 가벼움을 느낀다.

가벼워지는 요소는 불의 요소와 바람의 요소입니다.

불의 요소는 보통 화대라고 그러죠. 가벼움의 요소입니다. 그리고 증기의 요소입니다.

바람의 요소는 보통 풍대 그렇게 합니다. 공기의 요소이고, 또한 불의 요소와 마찬가지로 가벼움의 요소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절에 가서 기도 많이 하는 분들 있으니까 백중날 위패를 써놓은 아주 얇은 종이를 공중에다가 불을 붙이고 태웁니다. 그러면 거의 위패가 다 탈 정도가 되어가지고 한번 놓아보십시오. 어떻게 됩니까? 위로 쑤욱 올라가죠! 어쨌든 그거는 물질입니다. 탄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거는 무게를 재보면 무게가 있단 말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땅으로 떨어져야 되는데 왜 이게 날아올라갑니까? 바람이 안 불어도 올라가집니다. 바람이 안 불어도! 바람이 불면 당연히 위로 올라가든지 바람이 밑으로 불면 밑으로 내려오게 돼있는데 바람이 없더라도 그거는 올라갑니다.

그게 바로 뭐냐면 이 화대, 불의 요소 때문에 그렇습니다.

 

불의 요소는 태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이 가벼워지는 역할들을 해줍니다. 그런 가벼운 역할들을 할 뿐아니라 여러분들 불 한번 피워보십시오. 물이 끓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수증기 쭉쭉 올라오죠! 그런 증기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벼움의 요소는 어떻게 됩니까? 항상 불의 요소가 더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종이는 처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완전히 타기 전에는 이게 위로 뜨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타면 탈수록 거벼움이 점점 더 증가된다는 말입니다.

발도 마찬가지로 들어올리면 들어올릴수록 가벼움의 요소가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가벼움의 요소가!

 

발을 들어 올릴 때는 그래서 수행자가 가벼운 느낌을 느낀다는 겁니다. 처음에 들어올릴 때는 가벼운 느낌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완전히 들어올릴 때 정도 되면 아! 가볍다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처음에 들어올릴 때는 발바닥에서 뭔가 툭 쳐올려주는 느낌만 받습니다. 그게 사실은 가벼움의 요소입니다. 그런데 가벼움의 요소란 걸 모릅니다. 오늘 한번 경행할 때 한번 보십시오.

발바닥이 잡아 끌어땡기는지 아니면 이 바닥 땅이 쳐올려주는 느낌이 있는지 한번 발을 살짝 들 때 한번 보십시오. 대부분 보면 예리할 거 같으면 위로 탁 들어올려 주는 느낌이 듭니다. 땅바닥이 벌떡 일어나갖고 발바닥을 들어올려주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게 가벼움의 요소이기 때문에 일어나지는 겁니다. 그래서 올리면 올릴수록 점점 더 가벼워지는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리한데 이 발을 들어올릴 때는 화대와 풍대가 같이 있습니다. 바람의 요소가 없으면 절대 불의 요소가 드러나지지를 않습니다.

불의 요소이든 땅의 요소이든 물의 요소이든 공통적으로 있는 것은 이 바람의 요소입니다. 바람은 움직임의 요소입니다. 그런 움직임이 없을 거 같으면 일어나지지를 않습니다.

 

그리하더라도 발을 들어올릴 때는 주가 되는 것은 불의 요소입니다. 가벼움의 요소가 더 드러나지게 됩니다. 발을 들어 올릴 때는 가벼움만 있는 것이지 발이라는 관념이나 개념에 휩싸여버려서는 안 된다는 거라. 당연히 가벼움의 요소만 있다는 것을 알지 이 발이 존재한다는 것을 갖다가 아는 것은 아니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움직임에 따라서 발이 가볍고 무거워지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 몸이 사대요소로 이루어져 있구나 하는 것을 내가 알게 됩니다.

 

발을 앞으로 내밀 때도 내미는 동작에서도 꼭 마찬가집니다. 내밀 때는 몸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이 됩니다. 이동이 된다는 건 뭡니까?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움직이는 것바람의 요소의 주된 특징입니다. 그래서 바람의 요소를 강하게 느낄려고 할 거 같으면 발을 들거나 내려놓을 때 강하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때 강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나아갈 때 보면 자세하게 보면 발 앞꿈치 쪽에서, 여러분들 가을바람 난 사람들 밖에 나가 있으면 바람이 스치는 걸 느끼죠? 꼭 마찬가지로 발이 나아갈 때 아무것도 바람이 불지도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나아가는 데도 그 느낌들을 예리하게 받습니다. 그게 움직임의 요소는 바람의 요소이기 때문에 그런 느낌들을 받게 돼있습니다.

 

그다음에 발을 내려놓는 동작에서 땅의 요소와 물의 요소가 강하게 일어납니다. 땅의 요소는 딱딱함이란 것들도 있지만 수행 중에는 무거움으로 드러나집니다. 무거움의 요소가 아! 이게 땅의 요소구나 하고 알면 됩니다.

물의 요소 또한 무거움의 요소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지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 것은 없습니다. 물의 요소는 물컹한 요소도 있지만 무거움의 요소로써 느껴집니다.

그리 하더라도 발을 내려놓는 동작은 사실상 이 물의 요소를 지각하는 것들입니다. 물의 요소를 지각하기 때문에 발을 내려놓을 때는 꼭 땅바닥이 내 발을 잡아당기는 것 같습니다. 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땅의 인력으로 인해서 잡아당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발이 내려올 때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려올 때는 점점 더 무거움이 더 강하게 일어나집니다.

 

그다음에 발을 디딜 때는 딱딱함이나, 단단한 느낌들을 받습니다. 이것은 땅의 요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딱딱함을 느낄 것 같으면 땅이 요소가 있구나 하고 알면 됩니다.

 

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디디고 하는데 이렇게 사대요소가 다 드러나게끔 돼있습니다. 들어올릴 때는 불의 요소, 나아갈 때는 바람의 요소, 내려놓을 때는 물의 요소, 디딜 때는 땅의 요소, 이렇게 사대요소가 발걸음 하나에 다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몸은 이렇게 사대로 이루어져 있구나 하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게 됩니다.

 

바르게 수행을 하면 집중력을 또한 얻어지게 됩니다.

사대요소가 드러난다는 것은 그마만큼 집중력이 강해져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알아차림도 강하게 일어나지고, 그렇기 때문에 그 알아차림으로 인해서 사대요소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경행을 할 때 발이 무겁고 가볍고 하는 느낌을 알았다는 것은 부처님이 말한 법을 알았다는 얘깁니다. 이 몸은 사대요소로 이루어졌다 하고 부처님이 얘기를 했습니다. 그 법을 알았다는 겁니다.

 

수행의 첫 번째 단계에서 얻어야 되는 것이 이러한 법을 알아야 됩니다.

고유한 특성이라는 법, 일반적인 특성이라는 법, 이런 법들을 알아야만 됩니다. 그래서 수행을 하다가 맨 처음 얻어지는 것이 이런 고유한 특성들이 먼저 드러나지게 됩니다. 이렇게 그 법을 알아야 만이 지혜가 점점 더 성숙해지고 단계에 따라서 더욱더 나아갈 수 있게끔 됩니다.

 

처음에 움직임을 알았을 때는 단순히 우리가 관념이나 개념으로부터 벗어나고 실재를 아는 것이 되는 것이고, 그 움직임에 따라서 이렇게 사대요소가 드러난다고 하는 것은 인제는 법이 드러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그런 얘기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알아차리고 보호하는 것이 법을 보호하는 것이다. 법을 잘 보호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고 보호하는 것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전염병이 들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들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주변을 청결히 하죠! 청결히 하고 전염병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게끔 잘 경계를 합니다. 보호를 하게 됩니다.

마음으로써 그런 법으로써 보호를 한다는 것은 뭡니까? 탐욕과 성냄 미움이라고 하는 것들 그거는 전염병입니다. 그런 질병들로부터 보호를 해서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는 겁니다.

그 건강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뭡니까? 바로 이 알아차림밖에 없다는 거라. 먼지가 들어올 거 같으면 눈꺼풀을 당연히 탁 닫습니다. 먼지로부터 눈꺼풀로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탐욕과 성냄이라고 하는 것들이 들어올려고 할 거 같으면 여러분들이 탁 닫도록, 못 들어오게 닫도록 할 수 있는 것은 뭐로 할 수 있는 겁니까?

알아차림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욕심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거 같으면 그것은 나에게 영향을 못 미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므로 해서 당연히 내 자신이 부주의하지 않게 되고 또한 태만, 나태하지 않게, 방일하지 않게끔 되기 때문에 더욱더 법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 밑에 형성과 명색 부분입니다.

명색(名色)'나마와 루빠'라고 합니다.

마음이라고 하는 '나마(nāma)', 물질이라고 하는 '루빠(rūpa)' 그래서 그걸 합해가지고 명색이라고 그렇게 합니다.

 

몸과 마음의 관계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움직임이 드러나지고 나서 네 가지 특성 가볍고, 무겁고, 움직이고, 딱딱하고 하는 그런 특성들이 드러나지고 나면 그다음에 드러나지는 것이 뭐냐면 몸과 마음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해하는 단계에 들어갑니다.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현상을 먼저 알아차려라 하고 부처님이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수행은 뭐라고 그럽니까? 지금 즉시 일어나는 것들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현상, 내가 그럴려고 할 거 같으면 뭐가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입니까?

그럴려고 하는 의도입니다. 돌려고 하면 돌려고 하는 의도가 가장 먼저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돌려는 의도가 분명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알아차려야 된다는 겁니다.

 

의도를 알아차리게 될 때 수행하는 사람은 지혜가 금방 성숙해버리게 됩니다.

조금 전에는 몸에서 일어나는 네 가지 현상들, 사대요소에 대해서 알았습니다. 돌려는 의도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분명하게 안다는 겁니다.

물질적인 법을 사대요소로 알았다고 할 거 같으면, 마음의 법을 명색, 몸과 마음을 구분하면서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의도로 인해서 몸이 도는 것을 알게 되니까 당연히 또 몸의 법을 알게 됩니다. 마음의 법을 알게 되고 몸의 법을 알게 되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구별할 수 있게 되는 지혜가 일어납니다.

 

몸이 돌려고 하는 의도가 원인이라서 몸이 도는 결과가 일어나지고, 발을 들려고 하는 의도가 원인이라서 발이 들려지는 결과가 일어나지는 것이 원인결과를 아는 지혜입니다.

 

이렇게 의도를 알아차릴 때 몸이라고 하는 모양으로부터 마음을 분리할 수가 있습니다.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깊이 집중하고 알아차림이 있다고 할 거 같으면 몸의 움직임 뿐아니라 무겁고 가벼워지는 느낌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무겁고 가벼워지는 느낌을 더욱더 예리하게 알아차리다 보면 그러한 물질적인 현상에 앞서서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압니다. 그래서 의도를 알아차림으로 인해서 물질적인 현상으로부터 마음을 분리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다음 밑에 경행과 삼법인 부분 보십시요.

이렇게 의도를 알아차려서 몸과 마음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지혜에 이르게 되면 더욱더 수행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한 의도도 한 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두 번 세 번 일어난다 하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러한 의도도 쭉 연속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의 의도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나서, 또 다른 의도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또 다른 의도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반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각각의 단계들이 끊어져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발을 나아가기 위해서 다리를 들어올릴 때 발의 모양이나 다리의 모양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움직임을 알아서 점점 더 가벼워지는 느낌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 가벼워지는 느낌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띠가 더욱더 강해지면서 개념이 가려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이 강해지면 개념은 가려져버리고 실재하는 현상이 더욱더 분명해집니다.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려고 할 거 같으면 몸과 마음에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고, 이것이 몸의 현상이고 이것이 마음의 현상이라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에 이르렀다가, 그러다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뚜렷하게 보는 것이 사라짐만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될 거 같으면 그때는 사실은 이 개념이 완전하게 떨어져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관찰을 하면 발 하나를 드는 동작에도 하나의 의도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짐 사라짐 사라짐 사라짐만' 계속 연결되는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의도가 사라짐으로 인해서 발이 조금씩 들려지고 들려지고 들려지고 하면서 그 들려지는 느낌들이 점점 더 강해지는 사실을 알게 되는 상태에 이릅니다.

이때야만이 사실은 개념이 완전하게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어쨌든 우리는 뭉뚱그려서 개념은 사라지고 일아차림으로 인해서 가벼워지는 느낌만을 알 수는 있습니다.

수행할 때 우리는 수행하는 것은 우리는 궁극적인 것을 알기 위해서, 알아차리기 위해서 수행하는 겁니다. 이렇게 실재하는 것은 무거운 성품이나, 가벼운 성품들 이런 여러 가지 성품들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런 무겁고 가볍고 하는 것들을 알고 나면 몸과 마음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품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단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그것이 한꺼번에 확 드러나지는 것은 아닙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분명하게 여러분들이 그걸 알게 됩니다.

 

또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도 왜 '일어남'과 '사라짐'이라고 하는가 하면 일어남과 사라짐이 각각이 끊어져있기 때문에 '일어남'과 '사라짐'이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일어남'이 끊어지지 않으면 '사라짐'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사라짐'이 끊어지지 않으면 또한 '일어남'이 발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집중이 더욱더 깊어지면 이러한 '일어남''사라짐'이 각각 끊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사라짐만을 아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모든 것은 사라지는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압니다. 일어난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 단계에 이르면 일어나는 것은 분명하지 않고 오직 '사라짐'만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알아차릴 때 '사라짐'만이 분명하다는 얘깁니다. '일어남'이 없는 것이 아니고 '사라짐, 사라짐'만을 계속 연속적으로 알아차려지게 된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모든 것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항상(恒常)함이 없이 사라지게 되어 있다, 무상하다 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리를 들어 올리려고 함'이라고 하는 의도를 알아차리면 들어올리는 의도는 사라져버리고 그 알아차리는 마음도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로 인해서 발을 들어올려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의도도 사라지고 알아차림도 사라져버린다는 거라. 그래야만이 발이 들려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면서 그것도 '사라지고, 사라지고, 사라지고' 하는 식으로 알 수가 있게 된다는 겁니다.

 

몸을 들어올리는 동작 하나에도 영원하지 않고 연속적으로 들어올려지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사라지고, 사라지고, 사라지고'가, '끊어지고, 끊어지고, 끊어지고' 하면서 일어나는 것이지 그것이 연속적으로 쭉 들려지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발을 들어올린다는 물질적인 현상도 영원하지 않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마음도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몸과 마음 둘 다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상(無常)이구나' 하고 이해를 하고 통찰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러한 사라짐이 너무나 빠르고 순식간에 일어나지게 됩니다. 비록 내가 사라지는 사실을, 의도가 사라지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또 그렇게 알아차리는 마음도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알아차리지만은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은 내가 느끼기로는 고통스럽게 느껴지게 됩니다. 참 고통스럽다 하는 겁니다. '! 이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고()괴로움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괴로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알아차림은 이미 대상에 딱 붙어있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둘 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사라짐도 자동적으로 자꾸 일어난다는 거라. 사라지는 것이 스스로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을 고통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 자신에게 명령을 할 수도 통제를 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 이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아(無我)이구나'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 무아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는 상태가 돼나갑니다.

 

수행은 이와 같이 진행이 되어나가 집니다. 다리 하나의 동작에도!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보면,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그 행위에는 '신수심법'이라는 네 가지 수행을 다 하게 됩니다.

'나가고자 함' 하고 의도를 낼 때 그것은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념처 수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는 걸음걸음을 알아차리게 될 때는 몸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신념처, 몸에 대한 수행을 하게 되는 겁니다.

움직이면서 가볍고 무겁고 편안하고 고통스럽고 하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은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념처 수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걷고 있을 때 무슨 소리가 들리면 '들림' '들림' 하면서 알아차리고 있다거 할 것 같으면 이것은 법념처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걸어갈 때 신수심법 네 가지를 다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앉아서 수행할 때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알아차림입니다.

수행은 간단한 것은 아니죠? 수행은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재미가 있게 되고, 점점 더 내가 더 깊이 집중하고 깊이 알아차리고, 또 더욱더 노력의 힘이 배가되는 것들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잘 이해를 하고 수행들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내일 이 시간에는 이 부분에 대한 것, 고유한 특성과 개별적인 특성에 대한 것들을 조금 더 보충 설명을 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