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위빳사나[기초수행반]

기초수행03. 좌선방법 (20071016)

담마마-마까 2019. 12. 30. 20:17

https://youtu.be/D5Ycj2eakmk

 

* 기초수행03. 좌선방법 (20071016)

 

지난 시간에 명칭을 부여해주는 얘기를 하다가 말았습니다. 맞습니까?

자! 한번 더 요약을 해보겠습니다.

 

자세는 앉은 자세는 편안하게 하도록 하십시오.

오래도록 수행을 하기에 용이한 자세를 취하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대신에 호흡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주십시오.

되도록이면 허리가 쭉 펴진 상태에서 어깨에 힘은 들어가지 않고 배가 약간 안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통상적으로 봤을 때는 호흡하기에는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손은 되도록 지금 부처님이 하듯이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것이 통상적인 방법인데, 엄지손가락 끝이 서로 닿지는 않도록 하십시오. 엄지손가락 끝을 말하는 겁니다. 다른 손가락 끝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엄지손가락 끝이 닿을 거 같으면 나중에 예민하게 들어갈 거 같으면 맥박 뛰는 소리가 호흡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두 개가 탁탁 부딪치는 거하고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크게 장애를 가져오는 수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착각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할 때는 손가락 끝이 닿지 않도록 하고. 대부분 그렇게 닿지 않도록 하라 그럴 거 같으면 이렇게 힘을 꽉 주는 수가 있는데 힘은 주지 말고 편안하게 내려놓는다 생각을 하면 됩니다.

 

손은 그렇게 하고, 그렇게 하지 않고 좀 더 편안하게 할려고 하면 무릎에다 올려놓는 수가 있는데 손바닥은 항상 위를 향하도록 해야 됩니다. 손바닥이 살하고 맞닿아버릴 거 같으면 뜨거운 감각이 굉장히 강하게 일어나집니다. 그래서 한참 수행을 하다보면 이 뜨거운 감각 때문에 알아차림을 놓쳐버리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위를 향하도록 해서 해주시면 됩니다.

 

그래서 머리부터 엉덩이 발끝까지 쭉 한번 살펴보고 몸이 잘 이완되어져 있는가, 긴장된 부분은 없는가 하는 것을 잘 한번 관찰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는 그렇게 자세를 취하고 나면, 마음을 한번 잘 관찰해 보십시오.

눈을 살포시 감은 상태에서 마음이 편안한 마음이 돼있는가? 내가 지금 급한 마음이나 불안한 마음이나 또 산만한 것들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들을

먼저 잘 알아차려서 편안한 마음이 되도록 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야 되는데 잘되지 않는다고 할 거 같으면, 호흡을 약간 느리게, 약간 느리게 몇 번 들이쉬고 내쉬고 하면서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편안한 마음이 되도록 그렇게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심호흡을 몇 번 하는 것도 괜찮고,

 

아니면 마음속에서 멧따, 까루나, 무디따, 우뻭카라고 하는 자․비․희․사 '내가 행복하기를, 내가 괴로움이 없기를,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내가 지혜롭고 깨달음에 이르기를' 하는, 사무량심을 방출하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도 괜찮습니다.

 

또한 마음이 급격하게 이동되고 감각적인 욕망에 잘 빠지는 사람들은 이 몸의 더러움을 관찰을 해도 괜찮습니다.

실제로 내가 피부에 있는 털을 하나 빼냈을 때 그 털을 내 것이라 해서 내가 내 몸에 부빌 수가 있는가, 그것을 내 것이라 해서 내 입으로 가져가서 빨 수가 있는가, 피부에 있는 고름과 더러운 것들을 영양분으로 해서 자라는 것이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몸에 대한 집착이나 욕망을 가지는 것들을 버리도록 자꾸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개인차에 따라서 편안한 마음이 되도록 하는 것은 이렇게 차이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맞는 방법으로써 몸을 이완시키고 나면, 두 번째로 편안한 마음이 되도록 먼저 만들어 보시고 나서,

 

그다음에 해야 될 것은 마음을 단단하게 먹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이 수행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 느낌에서 일어나는 현상,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 정신적인 현상(담마‧법)에서 일어나는 현상, 그 대상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알아차려나가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가지도록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로 인해서 일어나는 혼침이나 망상이나 근심 걱정들이나 이런 것들을 극복하고, 내가 이 대상을 놓치지 않겠다 하는 마음을 단단히 가지도록 그렇게 하고 나서,

 

마음을 즉각 배의 불러오고 꺼지는 것에다가 알아차림을 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처음에 시작하는 것이 그렇게 시작이 되고 나서, 그래서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움직임을 명확하게 알아차리는데, 알아차리는데 도움이 될려고 할 거 같으면 손을, 손바닥을 배에다가 살포시 대보고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그 움직임을 잘 관찰을 해보시면 '아! 내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이렇게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구나. 이것도 몸에서 일어나는 대상, 수행대상이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몸의 움직임을 먼저 잘 한번 알아차려보시기 바랍니다.

 

몸의 움직임에 따라서 배가 불러오면서 일어나는 느낌들, 배가 꺼지면서 일어나는 느낌들도 더불어서 알도록 해보시기 바랍니다. 부드럽고 묵직하고 가볍고 또 따뜻하고 팽창되고 하는 그런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면서 일어나는 그런 느낌들이 있습니다. 그 자체를 그대로 이해를 할려고 해보시기 바랍니다. 몸의 느낌들을 관찰을 하고 나면,

 

또 한참 하다보면 마음이 벗어나고 마음이 상상을 하고 또 망상을 피우고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망상피우고 회상하고 계획하고 상상하고 하는 것들을 갖다가 그대로 알아차려서 변화되어나가는 것들을 주시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 그 현상들이 만약에 망상을 피우는 것이면 망상이 사라질 때까지 쭉 주시해나가서 알아차려나가도록 그렇게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하는 수행법들입니다.

 

보통 보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여러 가지들이 있습니다.

몸이 가렵다든지 뻐근하다든지 저리다든지, 그다음에 통증이 있다든지 딱딱하다든지 결린다든지 아프고 시원하다든지 찌릿찌릿하다든지, 그다음에 차갑고 뜨겁고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더불어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갑갑하고 또 지루하고 초조하고 또 환희심이 일어나고 고요하고 행복하고 하는 것들, 또 불쾌하고 욕심부리고 생각이나 망상이 일어나지고 또 두려움이 일어나지고 이런 것들이 마음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이 수행대상은 몸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들과 마음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려서 그것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순간까지를 명확하게 관찰하는 것들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명확하게 사라지는 사실을 알 거 같으면 그 현상에 대해서 끄달려 들어가지 않고 집착하지 않게끔 됩니다.

지금 얘기하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실재하는 현상'이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그것이 실재하는 것이지 내 몸이라든지 나라든지 하는 것이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관념일 뿐이다 하는 것들을 알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호흡을 관찰을 하는데 조금 전과 같은 방법으로 하다 보면 마음이 금방 싫증을 일으키고 마음이 금방 다른 대상으로 이동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뭐냐 하면 '명칭'이다 하고 얘기했습니다. 이렇게 명칭을 붙인다는 것은 마음이 그 육체적인 물질적인 대상과 정신적인 대상 현상들에 초점을 모아주도록 하고 또한 알아차림이 더욱더 깊어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만약에 명칭이 없이 그걸 알아차림만 할 거 같으면, 그 알아차리는 것은 매우 얕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 일어났다가 언제 사라졌는지조차도 잘 모르게 되고, 일어난 것이 한정 없이 길게 존재를 해버립니다. 쭉 연결되는 것처럼 하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자꾸 그 일어난 현상에 머물지 않고 밖으로 자꾸 나가버립니다.

또 다른 것을 찾게끔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방지해 주는 역할이 명칭입니다.

 

마음이 자주 밖으로 나가버릴 거 같으면 그게 습관화되기 때문에

항상 산란하게 됩니다. 생활자체도 산란하고 또 움직임 자체도 산란하고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행하게끔 됩니다. 그런 것들을 방어를 해주고, 수행의 대상에 깊이 집중하게끔 해서 알아차림이 깊어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일어나고 사라질 때, 호흡에서는 배가 불러올 때 '일어남' 하고 명칭을 부여해주고, 배가 꺼질 때 '사라짐' 하고 명칭을 부여해주면서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하고 관찰을 해나가게 됩니다.

 

'일어남' '사라짐' 이라고 하는 명칭은 위빳사나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명칭과 실재하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분명하게 일치시켜주는 방법을 저번 시간에 얘기를 해줬습니다. 그 방법으로써 명확하게 일치를 시키도록 해서 호흡이 평상시대로 자연스럽게 쉬도록 해야 됩니다.

 

명칭을 붙인다 해서 호흡이 느려지거나 깊어져버리면 안 됩니다. 명칭을 붙이지 않고 마음이 고요할 때 쉬고 있는 호흡, 마음이 또한 두근거릴 때 쉬는 호흡, 그냥 자연스러운 호흡으로써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거기에 따라서 명칭을 부여해줘야 됩니다.

 

호흡이 명칭을 붙이면서 자연스럽지 않게끔 되면 반드시 다른 이상적인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몸이 뜨거워 온다든지 머리가 무거워 온다든지 머리가 아프다든지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또한 위빳사나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명칭이라는 대상에 사마타 수행을 하게끔 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정신적인 현상들이! 그래서 그것이 진짜인 것으로 착각을 하는 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호흡은 가능한 한 정상적으로 자연스럽게 하도록 해서 거기에 맞게끔 명칭을 부여해줘야 됩니다. 명칭을 부여해주더라도, 일차적인 대상이 호흡이라고 하더라도, 호흡에만 알아차림이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방황하는 마음이 일어났으면 '방황함' '방황함' 하면서 명칭을 부여해주면서 즉각적으로 그 방황하는 마음을 관찰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방황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멈추고 나면 마음을 배의 '일어남' '사라짐'으로 즉각적으로 돌아오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 '생각' 하면서 명칭을 부여해서 그 생각하는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관찰을 하고, 그것이 사라진 후에 여러분들의 알아차리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첫 번째 대상인 배의 불러오고 꺼지는 '일어남' '사라짐'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어떤 대상이든 나타나면 나타나는 것을 대상으로 먼저 해야 됩니다.

 

그것이 사마타 수행과 위빳사나 수행과의 차이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하나의 대상에 지속해서 알아차림을 지속해 나갈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통상적으로 배를 관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되어나가지 않고 명칭에 붙들리다 보면 '일어남' '사라짐'이라는 명칭에 붙들려서 하나의 대상에 몰입을 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은 가급적 피해나가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리하더라도 밖의 대상이 일어나면 그 밖의 대상을 관찰대상으로 해나가야 됩니다. 위빳사나 수행은 어느 순간 어떤 대상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을 일차적인 대상으로 해야 됩니다. 그것을 관찰하고 나서 그다음 대상으로 넘어가는 것이 순리이고, 위빳사나 수행 방법입니다.

자! 그런 부분까지 저번 시간에 대충적으로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정 통증이나 또 마음 밖의 현상들이 강할 때는 앉아있는 자세에서 일어나서 행선하도록 자세를 바꾸는 것이 낫다고 얘기를 하고, 그리하더라도 한 번 자세를 바꾸는 습관이 붙어버리면 대상이 강하게 다가올 때 그것을 줄기차게 알아차릴려고 하지 않고 쉽게 바꾸어 버리게 됩니다.

그것을 명확하게 이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수행은 무르익지를 않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대상이 명확하게 사라지는 것을 보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관찰을 하고, 그렇게 해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자세를 한 번 정도는 바꾸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되도록이면 그것조차도 없도록 하는 것이 낫습니다.

 

원래 알아차림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러한 고통스러운 느낌들은 또한 더 강해집니다.

숨이 막히거나 질식하는 느낌들, 바늘로써 콕콕 찌르는 날카로운 그런 느낌들, 온 몸에 아주 징그러운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그런 느낌들,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가렵고 따갑고 하는 그런 느낌들을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을 딱 중단하고 나면 그런 감각, 느낌들도 사라지는 것을 여러분들도 느꼈을 겁니다. 그 고통을 갖다가 극복할려고 자세를 바꾼다든지 아니면 그걸 관찰하는 것들을 중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은 다시 만약에 여러분들이 수행을 하면 똑같은 그런 경험들을, 또 그런 고통들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고통스런 느낌들은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몸의 이상이 생긴 것도 아니고 단지 몸과 마음에 잠재해 있는 공통적인 요소가 관찰을 하면서 드러나진 것일 뿐입니다. 평상시는 그런 것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분명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주의력이 깊어지고 예민해짐에 따라서 그런 감각들이 드러난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수행을 해나가면 그러한 느낌을 극복하게 되고 사라질 때가 나타납니다.

 

이렇게 확고하게 마음을 먹고 수행해나가면, 고통스러운 것들 여러분들에게 해로운 것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됩니다. 그것을 극복해버리기 때문에! 그래서 용기를 가지고 수행을 중단하지 말고 그러한 느낌들을 관찰하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또한 수행을 하다 보면 조그마한 것에도 마음이 아주 날카롭게 됩니다.

조그만 소리가 들리더라도 그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고, 금방 신경질적인 반응이 일어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거기에 놀라거나 반응을 일으키지 말고 '아! 내가 수행이 조금 더 깊어졌구나' 하고 받아들이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이 강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들일 뿐입니다. 그런 마음을 항상 가지고 수행을 해나가야지, 거기에 따라서 마음을 즉각적으로 반응을 해버릴 거 같으면 알아차림이 중단이 돼버립니다.

그래서 이차적으로 오는 화살들, 삼차적으로 오는 화살들을 연이어 받게 되기 때문에 해로운 영향들을 끼치게끔 됩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아! 이것이 수행에서 오는 이익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이런 사마타 수행과 위빳사나 수행의 차이점에 대해서 조금 더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보통 사마타수행은 일념집중수행이다.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모으는, 집중하는, 응시하는 그런 방법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위빳사나 수행방법은 하나의 대상이 아니고 모든 대상입니다. 모든 대상! 움직이고 일어나는 대상들을 다 주대상으로 삼아서 관찰을 해나가는 방법입니다.

주대상을 관찰하는 이유는 그 주대상에서 참 성품인 무상··무아를 깨닫기 위해서 그 대상에 일어나는 대상, 대상을 주대상으로 삼아서 관찰해나가서 그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까지를 명확하게 관찰해나가는 방법입니다.

 

사마타 수행을 하면 얻어지는 이익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사마타 수행을 할 경우에는 마음이 대상에 몰입되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워집니다.

위빳사나 수행은 대상을 알아차리면서 일어나는 이익은 부정적인 마음의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번뇌로부터 떠나게 돼서 평화롭고 일상적인 행복들을 항상 가지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얻어지는 효과도 사마타 수행과 위빳사나 수행은 분명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수행의 목적은 위빳사나 수행은 이렇게 몸과 마음의 참된 성품을 깨달아서 고통의 원인이 된 정신적인 번뇌들을 제거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의 대상을 취해서 집중해서 고요하고 평화로워지는 사마타 수행과는 본질적으로 수행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위빳사나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위빳사나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왜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정신적인 현상들이나 신체적인 과정들을 관찰하고 집중할 필요가 있는가? 누누이 얘기했지만 그 대상들에서 무상··무아를 깨닫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명확하고 아주 빠르고 또한 집중적으로 따라가지를 않으면 그 무상·고·무아를 알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차라리 사마타 수행을 한 것보다도 더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위빳사나 수행을 할 때는 반드시 마음을 아주 예리하게 가다듬고 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마음을 예리하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마음이 자주 대상을 따라서 이동을 해야 될 필요성이 있습니다. 마음은 하나에 머물러버리면 무뎌지고 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빨리빨리 마음이 전환되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마음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것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방황하면 마음이 '방황' '방황'하면서 관찰하고, 그것이 명확하게 사라지고 나면 다시 연이어서 배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을 관찰하고, 그러다가 또한 가려운 느낌이 일어나면 '가려움' '가려움' 하면서 마음을 즉각적으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마음을 자꾸 활력있게끔 만들어주고, 주의 깊게 하고, 약간 빠르게 관찰한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만약에 대상이 나타났다, 생각하는 것이 나타났다 할 거 같으면 그 생각에 압도되어버리게 됩니다. 거기에 끄달려 들어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의 깊고 약간 빠르게 관찰한다 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이렇게 알아차리는 마음이 더욱더 강력해지기 때문에 생각하는 과정 과정을 명확하게 알아차려서 그것을 압도해나가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그 과정이 멈추게 됩니다.

 

고통이 일어날 때도 꼭 마찬가집니다. 대상이 나타나면 마음을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고 주의 깊게 알아차릴려고 하고 또 약간 빠르게 관찰할려고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 만이 생각하는 것들도 점점 더 적어지고 일어나지 않게끔 되고 대상에 집중이 점점 더 좋아지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위빳사나 수행방법입니다.

 

또한 사마타 수행과 위빳사나 수행의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가 뭐냐면,

대상에 잘 집중해서 그 깊은 집중으로 인해가지고 마음이 잔잔해지고 번뇌가 가라앉아지고 평화로워집니다. 그렇지만 사마타수행은 그것은 단지 일시적일 뿐입니다. 수행을 하지 않으면 똑같은 상태를 경험할 수가 없을 뿐아니라 그러한 집중상태도 깨어져있기 때문에 일상적일 때는 평화로움이나 집중을 즐길 수가 없습니다. 그 집중상태는 잠시 동안만 그러한 번뇌를 제거하고 평화로운 상태를 만끽하는 것뿐입니다. 잠시 동안만 제거된 상태가 되는 겁니다.

 

그 반면에 위빳사나 수행은 오래도록 이것을 제거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현상을 갖다가 명확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그러한 경험은 절대로 내가 확인한 부분이기 때문에 사라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설혹 지금 내가 위빳사나 수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경험을 회상하면 그 경험을 즉각적으로 되돌릴 수 있고, 즉각적으로 다시 또 그러한 수행을 다시 또 해나갈 수가 있기 때문에 행복하고 평화로운 것이 이어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물의 현상, 참된 현상을 알아차려나가라 하고 스님이 얘기를 합니다.

 

그렇게 하는 방법이 밑에 부분에 나와 있습니다.

'일어남' '사라짐' 하는 것들에서 조금 더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명확하게 관찰을 하고 나면 '앉음' '닿음'을 다음 순서로써 넣어라 하고 얘기를 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일어남' '사라짐' 하고 사라지고 나서, 다음 '일어남' 하기 전에 분명하게 '멈추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 부분이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럴 때 그 비어있는 자리에다가 '앉음'을 명칭을 부여해서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앉아있는 몸의 상태를 관찰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일어남' '사라짐' '앉음' 하면서 관찰을 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도 '일어남' '사라짐' '앉음' 하는 것이 보통 어떻게 하느냐면 배가 불러올 때 '일어남' 배가 꺼질 때 '사라짐' 하고 나서 다시 배가 불러올 때 '앉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배가 불러올 때 '일어남' 배가 꺼질 때 '사라짐' 하고 나서, '사라짐'이 끝남과 동시에 멈추는 상태가 있을 때 그 짧은 찰나에 '앉음' 하면서 관찰을 해야 되고, 그러고 나서 다시 배가 불러올 때는 '일어남'하고 관찰을 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일어남' 다음에 '사라짐'이 있기 전에, 일어나고 사라지는 그 사이에는 갭(gap)이 적습니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사라짐' 후에 다시 '일어남' 하기 전에는 갭(gap)이 많이 느껴집니다.

 

통상적으로 여러분들 한번 보십시오. 들이쉬는 숨하고 내쉬는 숨하고 숨의 차이는 분명하게 있습니다. 내쉬는 숨이 조금 더 깁니다. 알아차림도 그마만큼 길 수밖에 없고 사라지는 것이 끝나고 나서 호흡이 완전하게 밖으로 빠져나가고 나서 다시 들이쉴 때는 반드시 갭이 있습니다. 멈추는 것이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내가 의도를 일으켜서 숨을 들이쉴 때 '일어남'하고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그 갭 동안에 '앉음'하고 관찰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일어남' '사라짐' '앉음' 다음에 바로 '일어남'이 들어가져야 되고.

 

'닿음'을 할 때도 꼭 마찬가집니다. '일어남' '사라짐' 하고 나서,

사라지고 나서 일어나는 그 짧은 찰나에 '앉음' '닿음'을 동시에 해줘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명칭과 실재적인 것을 일치를 해나갈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런 장점이 뭐냐 하면 마음이 아주 활기차게, 활발하게 움직이게끔 해줍니다. 그래서 마음이 다른 곳으로 벗어나지 않게끔 해줍니다.

아주 짧은 찰나에 알아차림을 예리하게 관찰을 해나가야 되기 때문에 마음이 정신적으로 번뇌에 휩싸인다든지 아니면 다른 대상을 알 여유가 생기지 않게끔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주 활기차게 움직이게끔 해서 그 대상에 쉽게 주시를 하게 돼서 사라지는 현상들을 관찰을 해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몸의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을 분명하게 내가 알도록 해주는 효과들을 가지고 옵니다.

 

그래서 앉아서 수행하는 방법은 거기에 보면 닿음의 포인트를 여러 가지로 스님이 적어놨습니다. 오른쪽 엉덩이 닿고 왼쪽 엉덩이 닿고, 오른손 닿고 왼손 닿고, 그렇게 쭉 해놔놨습니다. '닿음'의 포인트는 많이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할 거 같으면 오른쪽 눈꺼풀이 닿아있고 왼쪽 눈꺼풀이 닿아있고, 그다음에 입술이 닿아있고, 그다음에 여러분들 이 닿아있고, 엉덩이가- 오른쪽 엉덩이가 닿아있고 왼쪽 엉덩이가 닿아있고, 그다음에 복숭아뼈가- 오른쪽 복숭아뼈가 닿아있고 왼쪽 복숭이뼈가 닿아있습니다. 그걸 순차적으로 관찰을 해나가면 됩니다.

 

'닿음'을 할 때는

반드시 '일어남' '사라짐' 하고 나서, 즉시 '앉음' '닿음' 하면서 '앉음' 할 때는 앉아있는 상태를 명확하게 보고 나서, '닿음'에서는 만약에 오른쪽 눈꺼풀 닿아있음을 딱 닿아있는 느낌을 관찰하도록 하고.

다시 배가 일어날 때 '일어남' 하고 '사라짐' 하고 '앉음' '닿음' 하면서 앉아있는 상태를 관찰하고 '닿음' 할 때는 왼쪽 눈꺼풀이 닿아있는 것을 관찰하고.

다시 '일어남' '사라짐' 하고 나서 '앉음' '닿음' 할 때 '닿음' 할 때는 입술이 닿아있는 것을 관찰하고.

다시 '일어남' '사라짐' 하고 '앉음' '닿음' 할 때 앉아있는 상태와 닿아있는 상태 중에 오른쪽 엉덩이 닿아 있는 것을 관찰하고, 이런 식으로 관찰을 해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아주 빠르게 예민하게 하지 않으면 관찰을 못해나갑니다.

못해나갈 경우에는 이 상태를 지속해나가면 안 됩니다. 다시 '일어남' '사라짐' 해야 됩니다. 아직은 '일어남' '사라짐' 다음에 멈추는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못 따라가는 겁니다. 마음이 그마만큼 예리하게 깨어있지 않기 때문에!

그럴 때는 다시 '일어남' '사라짐' 하면서 관찰을 해나가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졸음이나 지루함이나 성냄이나 욕망이나 어떤 것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그대로 알아차려나가도록 해나가는 것이 앉아서 좌선하면서 수행하는 방법입니다.

내일은 경행하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를 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질문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