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법문교재/법문 교재(프린트물)

명성의 함정 (20150213)

담마마-마까 2021. 10. 6. 09:00

* 명성의 함정 (20150213)

 

사회의 명성을 받는 것이 한 마디로 기뻐해야 할 일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은 반드시 위험이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명성은 전도 활동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러 곳으로 퍼졌습니다. 꼬살라 국왕도, 마가다 국왕도 불교도가 되었고, 부유한 상인들도 잇달아 불교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시 인도에서 존경받고 있던 사회 지도자인 바라문들의 스승들이 불교도가 된 것입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붓다가 젊은 나이에 왕위를 버려 출가한 것, 보기에도 아름다운 훌륭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 수행을 완성하여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공표하고 있던 것, 확실히 사람을 감동시키는 설법을 하는 것, 카스트의 차별을 모두 버려 버린 것, 모두에게 평등하게 대하는 것, 등이 명성의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사회 지도층의 입장으로부터 보면, 그것보다 소중했던 것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리이며, 설법의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아주 쉽게 인도의 종교 세계에서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누구에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종교 지도자는 사회를 버리고 숲에 숨어서 고행을 하거나, 일반인이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종교 안에서도 카스트 차별은 상식적이었습니다. 상인들이나 지식인, 상식적인 사회인에게 있어서 차별을 인정하는 종교는 거북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붓다가 말씀하신 진리는 사회 일반 사람들이 이해해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지식인들에게도 설법하셨고, 하층민들에게도 설법하셨고, 종교 철학자들에게도 설법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모두는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설한 가르침의 내용에 매료되어 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이 일방적으로 명성을 얻으니, 당연히 지금까지 사회에서 존경받고 있던 사람들의 입장이 난처해져 버렸습니다. 부처님에게 이론을 세우는 것도, 논쟁할 능력도 용기도 없는데, 불교를 이해해서 불교도가 될 정도의 지적 능력도 없었던 사람들은 매우 곤란해하고 있었습니다. 빨리 주석서에는 다른 종교의 사람들이 부처님의 명성을 깎아내리기 위해서 음모를 기획한 일화가 있습니다.

 

다른 종교의 수행자들은 부처님의 명성이 없어지면 자신들의 입장이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여성 수행자들이 사는 곳을 방문해서 순다리라는 이름의 여성 수행자에게 도와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녀가 무엇을 하면 되는지 질문하자, 「너는 불교도들이 설법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반대로 기원정사에 들어가세요. 「이런 시간에 어디에 가는가?」라고 제지당하면, 「내가 부처님을 만나는 것은 지금부터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에 불교도들이 기원정사로 들어올 때는, 너는 어디에 숨어 있다가 기원정사로부터 나오는 것 같은 느낌으로 돌아오세요. 사람들이 질문하면, 「석가모니와 함께 있다가, 지금 돌아가는 중이다」라고 대답하세요. 일주일간 정도 이렇게 계속해 준다면 우리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라고 계획을 지시 내렸습니다.

 

그녀는 들은 대로 오후 늦게 기원정사로 가서, 누구도 볼 수 없게 숨어 있다가, 아침에 기원정사의 경내로부터 나왔습니다. 일주일간 그렇게 하고 나니, 그렇게 음모를 꾸민 다른 종교가들은 술이나 내기로 생계를 꾸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지불하여, 순다리를 죽여 시체를 기원정사의 경내에 숨기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 못된 종교가들은 「순다리를 보지 않았는지요?」라며 기원정사에 가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어보며 순다리가 없어진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도록 퍼뜨렸습니다. 그들은 왕으로부터 순다리를 찾을 권한을 받아서, 기원정사의 경내를 조사하면서, 자신들의 부탁으로 순다리를 죽여 묻어놓은 곳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들은 대나무로 만들어진 들것에 시체를 실어서, 「출가 제자들이 붓다의 추잡한 행위를 숨기기 위해서 한 짓이 아닌가요?」라며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비구들은 사람들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아 탁발에도 나올 수 없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이 나라를 떠납시다.」라고 부처님에게 부탁했지만, 부처님은 「비난을 받고 있는 지금, 다른 나라로 도망치면 한층 더 비난이 증가하고, 혐의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라고 말하며 이를 피해 멀리 도망갈 것을 반대하셨습니다.

 

비난받아도 반론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것은 출가 비구들의 성향입니다. 부처님이 그것을 바꾸어, 비구들에게 「비난받으면 응답하세요.」라고 명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비난에 대해서 역으로 비난하는 것을 허락한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반론의 말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거짓말쟁이는 지옥에 떨어집니다. 무엇인가를 범하고 「나는 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사람도 같습니다. 사람이 천한 행위를 한다면 사후에 천한 결과를 낳는다.」

 

탁발 나온 비구들은 비난받으면 붓다가 말씀하신 이 게를 주창했습니다. 비난하는 사람들은 어떤 반론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근거도 없이 비난받는 경우, 아무것도 실수를 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취해야 할 태도가 이 게 속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거짓말쟁이는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은 결국 모함한 그 종교가들은 지옥에 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든 남이든 확인하지 않은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죄를 범하고 「나는 하지 않았다」라고 거짓말하는 사람도 같습니다.」라고 하는 말도 일반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한 행위를 한다면, 사후 천한 결과를 낳는다.」라는 말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붓다를 비난한 사람들도 결국 진리를 아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의 머리에 「천한 행위는 천한 결과를 낳는다는 가르침을 말하는 사람들이 굳이 천한 행위를 할 리가 없지 않는가!」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종교의 수행자들은 부처님에게 살인죄의 누명을 씌우기 위해 훌륭한 계획을 세웠고, 무수한 증인을 만드는데도 성공했고, 살인을 저지른 두 사람들도 「범인은 부처님이거나 그 제자이거나 둘 중 하나다」라고 말하여 모두가 믿도록 심리적인 책략을 쓰기도 했습니다. 요즘이라도 이런 상황까지 오면 꼼짝없이 유죄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진리에 근거해서, 심리적인 작전에 대해 심리적으로 응전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비판하는 사람들은 서서히 줄어들어 조용하게 되었습니다. 꼬살라국의 왕은 불교도였지만 무작정 붓다의 편을 들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마음도 붓다의 심리적인 작전에 조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비밀스럽게 사람을 시켜 마을을 조사하도록 명했는데, 순다리를 죽인 하수인들이 손에 들어온 거금을 굉장히 자랑하고 있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큰돈을 받았는데, 부처님은 타격을 입지 않고, 그 종교가들에게는 시원찮은 결과만 있네!」라고 떠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음모를 꾸민 범인을 잡아 심판을 내렸습니다. 비록 다른 종교라고 하더라도 상대가 수행자였으므로 사형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벌로서 온 마을을 걸어 돌아다니며, 「순다리를 죽이도록 명령한 것은 저희들입니다」라고 발표하도록 명했습니다.

 

이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상대가 부처님이었으므로 결과는 달랐습니다. 다른 종교의 수행자들은 부처님의 명성을 깎아내리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부처님의 명성은 한층 더 퍼졌습니다. 국왕마저도 포기한 사건을 국민에게 어떤 피해도 끼치는 일 없이 보기 좋게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좋아서 실수를 해도 요리조리 잘 도망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천한 행위에는 천한 결과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나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은 비난받는 일도, 심판받는 일도, 자업자득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하게 계율·도덕을 지키며 생활하는 사람들이 경쟁 사회에서 뒤쳐지는 일도 자주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푸념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을 부처님이 도와줍니다. 그 방식은 이 일화에서 붓다가 말씀하신 게송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문제의 본질은 동일합니다.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부처님과 같이 완전무결할 수는 없어서 많든 적든 누구라도 실수를 범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거짓말만은 하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지키면 어떤 위험과 만나도 몸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 범하는 죄는 거의 가벼운 것입니다. 부처님은 「거짓말하는 사람이 행하지 않을 악행은 없다.」(담마빠다 176게송)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말하지 않았으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는데, 우리가 살아 있는 지금의 세계에서는 거짓말하는 것으로 어떤 문제로부터 도망치는 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능숙하게 거짓말하고, 거짓말로 증언하고, 거짓말의 증거를 만들어, 인간이 만든 법률의 그물로부터 도망쳐도 의미가 없습니다. 일반인이 상대를 의심스럽게 보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정치가의 의혹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 처분했다」라고 발표해도 그 정치가가 결백하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천한 행위를 하는 것은 천한 결과를 낳는다.」라는 진리에 근거합니다. 누가 누구를 지켜 주는 목적이 아니라,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그 행위에 의해 스스로 지켜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행 하는 사람은 그 행위에 의해 불행에 빠진다. 누가 누구를 지켜 줄 필요가 없습니다.

 

앞에서 말한 일화에서 부처님은 자신의 명성을 떨어뜨리려고 한 다른 종교의 수행자들에 대해서 분노도 미움도 없었습니다. 왕에게 부탁해서 범인을 사형시키도록 부탁하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법률에서는 범인을 사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만, 왕은 부처님의 대응으로부터 힌트를 얻었습니다. 죽음을 모면하게 하는 대신에 「사실은 우리가 모의한 사건이었다.」라고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말하는 것으로 벌로 대신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명예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이 범죄자를 때리거나 죽이거나 할 마음이 생겼는가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그렇게까지 한 그 사람들은 참으로 불쌍한 인간들이구나!」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업자득의 법칙으로, 범죄자는 자신이 범한 죄에 의해, 자기 스스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처지가 되었다. 우리는 죄인을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것은 하지 않고, 용서한다.」 그러나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죄의 결과는 범죄자에게 되돌아옵니다. 사람의 죄를 용서한다고 하는 교리를 말하는 종교도 있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죄를 용서할 수 있다면, 죄를 범해도 상관없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그것은 악행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죄의 보답으로부터는 도망갈 수 없다」라는 진리를 안다면, 처음부터 악을 범하지 않게 됩니다.

 

• 명성, 명예, 권력에는 위험이 따른다.

• 비난에 비난으로 돌려주면 더욱 더 비난받는다.

• 문제가 일어나면 도망칠 것이 아니라 진리에 맞게 행하라.

• 거짓말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일어나도 해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