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담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 (20150130)
사람의 실행력 혹은 의지라는 것은 길게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곧바로 의지가 사라져 버린 경험은 누구라도 있을 것입니다. 노력하고 마음에 힘을 굳게 주어도 또다시 낙담해 버려 힘이 없어집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자신이 바랄 정도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 경우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구나하며 의지가 뚝 떨어져 버립니다.
다음 이유는 자신이 하는 것에 여러 가지 장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안 되면 단념하고 싶어집니다.
다음 이유는 자신이 바라는 결과와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와 버리는 것입니다.
그때는 자신이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다음 이유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스스로 마음에 그릴 수 없는 경우입니다. 그 경우도 자신은 안 된다, 아무리 해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할 때는 반드시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잇달아 그러한 장해가 일어납니다. 「모든 것이 잘 되었다」 「대성공했다」라는 것은 보기 드문 일입니다. 그러한 경우는 어떤 사람이라도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앎을 지닌 사람은 보기 드물게 일어나는 것을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장해 등이 있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고 인정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무리 자신이 있어서 노력해도 「반드시 어디선가 낙담한다.」 「의지가 사라진다.」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바른 앎을 지닌 사람의 진정한 도전은 곧 낙담하고 싶어 하는 의지에 에너지를 보급하면서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의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성공시켰다」 혹은 「희망을 실현했다」 「무엇인가를 완수했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완성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인생은 미완성의 인생이며, 쓸모없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들 중에서 삽빠다사라는 이름의 출가 수행자가 있었습니다. 성실하게 노력하며 깨달음을 이루려고 수행을 계속했지만, 좀처럼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바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에 여러 가지 장해도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장해라는 것은 마음속에 욕구가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출가자로서의 무욕의 삶의 방법이 싫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환속해서 집에 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자존심이 고귀한 출가 생활로부터 욕구에 빠지는 재가 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출가 생활은 계속하고 싶지 않고, 재가생활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고, 수행해도 결과가 나올 전망도 안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신적으로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자신이 살아가야할 길이 안 보이게 되어 버렸습니다. 정신적으로 벽에 부딪힌 그는 자살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사원에 독사가 돌아다니는 작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다른 스님들이 독사를 잡아서 밖에 버리려고 가져왔습니다. 그것을 본 삽빠다사 스님은 내가 버리고 오겠다며 뱀을 대나무 항아리에 받아서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뱀이 들어 있는 죽통 안에 손을 넣어 물게 하려고 뱀을 만졌습니다. 그러나 뱀은 그를 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원에 돌아와서 다른 스님들에게 아무 독도 없는 구렁이에 소란을 피웠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날 그는 스스로 자살하려고 생각하여 면도칼을 가지고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면도칼을 목에 대고 지금까지 자신의 출가의 삶을 회상했습니다.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단 하나의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던 자신이 맑고 깨끗한 수행자로서의 삶을 떠올렸습니다. 그 순간 자신의 인생은 쓸데없지 않았다고 깨달은 그는 큰 기쁨과 충실감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의 마음의 어두운 부분이 사라졌습니다. 마음이 침착해지면서 정신이 통일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지금」 큰 기쁨과 충실감을 느끼고 있어도 그것은 찰나 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곧 사라지는 것이다. 모든 것은 생명과 같이 순간순간 사라져 가는 것이다. 집착하고 얽매일 것은 무엇 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이 진리를 알아차렸습니다.
완전하게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온화한 얼굴로 그는 사원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금까지 살아가는 기력도 없었던 사람의 돌연한 변신에 놀란 비구들이 이유를 물었는데, 「나는 자살하려다가, 그 칼로 결국 번뇌를 잘라 버렸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비구들에게는 그저 일순간의 시간으로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으므로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부처님은 그가 깨달은 것을 인정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경고하며 설법했습니다. 사람은 비록 일순간이라도 게으름 피워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목적, 희망을 달성할 때까지 스스로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낙담하는 것이 게으름 피우는 것입니다. 게으름 피우면 무엇인가를 달성할 것도 없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덕도 없애 버립니다. 게으름 피우는 길은 타락의 길이며 파괴의 길이기도 합니다. 비록 100세까지 살아 있어도 노력하지 않는 게으름뱅이의 삶은 쓸데없는 삶입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힘쓰는 것은 비록 하루를 살더라도 가치가 있는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쓸모 있게 사는 것입니다. 삽빠다사는 계속 낙담하고 있다가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게으름 피우며 쓸데없이 살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우울한 상태로 먹고 자는 생활을 반복한 것이 아닙니다. 결과에 대한 전망이 없어도, 수행에 장해가 있어도, 자신의 수행을 계속했습니다. 그래서 얼마 안 되는 시간에 완전한 깨달음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아무리 낙담해도 게을리 하지 말고 계속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목적이 올바르고 훌륭한 것이라면, 낙담하고 몇 번을 넘어져도 또 일어서면 되는 것입니다. 낙담하기 십상인 사람들은 무엇인가 가치가 있는 목적을 만들면 인생은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 좋은 목적은 의지를 지속시킵니다.
• 어떤 목적으로 노력하여도 침체는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 침체에 지지 말고 이루어야 할 일을 계속하면 반드시 성공합니다.
• 장해를 만났다고 해서 게으름 피우고 낙담하는 삶은 의미 없는 삶의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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