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는 스스로 약을 먹어야지 다른 사람에게 약을 먹일 수는 없다 (20150814)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에게 그물을 펼치면, 그 그물을 찢고 날아올라 자유롭게 되는 것을 새들은 할 수 없습니다. 부리가 강해 보이는 새들에게도 약점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지를 찢는 것은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라는 비유로 부처님은 이 새의 이야기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비닐 봉투도, 나일론 그물조차도, 아주 간단하게 찢어 좋아하는 먹이를 손에 넣는 친숙한 까마귀는 매우 강한 듯 보입니다. 딱다구리는 어떤 나무에도 구멍을 뚫을 수 있는 드릴을 가지고 있으므로 강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 강한 듯 보이는 새들조차도 자기 자신이 그물에 걸리면, 그것을 깨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도 다른 사람의 무지나 어리석음에 대해서는 소리 높여 말하지만, 자신의 무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모든 생명은 무지의 그물에 걸려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은 눈멀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들 생명입니다. 어떠한 정보도 손쉽게 손에 들어오고, 우주까지도 개척해나갈 만큼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현대를 사는 인간에게 있어서 이 말은 몹시 무례한 표현으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의식주조차도 충분히 손에 넣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대인의 삶의 방법은 붓다의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영리하게 보이지는 않는 것입니다.
「윤회는 모순이다, 죽은 생명이 다시 태어날 리는 없다, 그것은 단순한 믿음이다, 업과 같은 것은 없다, 우주의 모든 존재는 빅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생명은 자꾸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도 증장되고 있다, 마음은 단순한 뇌세포의 반응이기에 마음이라는 것이 있을 턱이 없다……」등등 이런 것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의 지식수준으로 그런 단정을 합니다.
보통 멀리 있는 것은 망원경으로 조사하고, 육안으로 잘 안 보이는 작은 것은 현미경으로 조사합니다. 그런데 망원경으로는 미생물이 안 보입니다. 그래서 미생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미경으로는 우주의 별이 안 보입니다. 그래서 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알고 싶은 것에는 적절한 「아는 방법」이 있다는 당연한 방법론으로부터도 벗어나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어쨌든 다른 사람의 일이라면, 강하고 시끄럽게 말합니다. 그런데 자기 일은 하나도 알지 못합니다.
불교는 모든 것은 무상으로 일시적이고, 순간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그 순간의 존재마저도 여러 인연에 의해 성립된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모든 것」에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고 알아야 하지만, 그 사실을 모두 잊어먹습니다. 생명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윤회는 있는지 없는지, 생명은 유한한지 무한한지 등등은 무한하게 생각해도 납득이 가는 답을 구할 수 없습니다. 단순한 시간의 낭비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자신의 고민, 괴로움, 불만은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쓸데없는 일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존재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 그야말로 올바로 실천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만 괴로움을 탈출합니다.
붓다가 이러한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말씀하고 있을 때, 16세의 궁핍한 베 짜는 가정의 딸이 이 이야기를 듣고, 진지하게 자신이 무상한 것을 보고 헤아렸습니다. 한편 지식인인 많은 대중들은 「이야기는 잘 알겠습니다.」라는 반응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올바른 시점을 받아 사물을 생각하기 시작한 소녀에게는 시간과 함께 진리가 보이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시기를 보고 또 그 대중들에게 설법을 하려고 나갔습니다. 모두 붓다를 둘러싸고 설법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붓다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다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우 늦게 소녀가 달려왔습니다. 곧바로 부처님은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소녀는 「모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어디로 가는가?」 「모릅니다」 「정말로 모르느냐?」 「아니요, 알고 있습니다.」 「그럼 알고 있느냐?」 「아니오, 부처님! 전혀 알지 못합니다.」……
부처님의 질문에 그녀는 그런 식으로 대답했습니다. 그 문답을 지켜보고 있던 대중들은 신분도 낮고 궁핍한 이 소녀의 실례인 태도에 분노해서 욕을 퍼부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두를 가라앉히고, 소녀에게 설명하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녀는 「부처님께서는 시시한 잡담은 하시지 않으십니다. 순간순간 변화해 생멸하는 이 「나」라고 하는 이 현상에 대해 질문받았습니다. 「나」라고 하는 현상은 어디에서 왔는지, 저 세상 어디에서 계속해서 태어나는지를 질문받았으므로, 그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죽는다고 하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으므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모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모두에게 붓다를 대신해 설법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너 혼자 밖에 나의 질문의 의미를 모른다고 소녀를 칭찬하며, 「이 세상은 눈멀었다. 관찰하는 사람은 적다. 그물을 찢어 자유롭게 될 수 있는 새가 적은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관찰하지 않는 사람은 얕고 좁은 지식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불교를 모릅니다.
● 이번 포인트
• 다른 사람이라면 지혜가 보이지 않는다고 알 수 있다.
• 자신의 일에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 존재 등에 대해 생각해도 대답은 찾아낼 수 없다.
• 자기 관찰하지 않으면 무지는 깨지지 않는다.
• 자기 관찰하는 사람은 진리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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