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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덕이 있는 사람입니까? (14가지 성향·성격) (20151022)

담마마-마까 2021. 12. 31. 09:01

https://youtu.be/1EC0noUB2b0

* 여러분은 덕이 있는 사람입니까? (14가지 성향·성격) (20151022)

[까티나의 중요성]

 

일주일 뒤에는 안거해제를 합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경전에 「14가지 성격」에 대한 걸 적어놓은 게 있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해서 여러분은 덕이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것을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가끔 우리 선원에 꽃이 몇 개 있어요. 아무래도 꽃이 필려면 물도 적당하게 줘야 되고, 햇빛도 맞아야 되고, 토양도 좀 좋아야 되고 그런데 햇빛도 여기에는 좀 부족하지. 그리고 분갈이나 토양에 비료 같은 것도 줘야 되는데 그것도 좀 안 하고 있지, 그런데다 가장 문제가 뭐냐면 물주는 게 일정하게 누가 한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요 사람이 줬다가 또 같은날 또 다른 사람이 안 주었거니 해서 주어버려가지고 그래서 어떨 때는 저게 썩어가지고 죽어버리는 경우들이 많더라고. 그래서 조건이 안 좋은데 와서 쟤들이 참 고생한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여러분이 만약에 한국에 안 태어나고 저기 아프리카에 태어났다. 그거 어떻게 될까? 아무래도 여러분들은 조금 아프리카에 굶주려가지고 또는 기후조건들이 나쁜 데보다는 좀 더 좋은 조건에 태어난 건 틀림없죠? 그렇다고 해가지고 여러분들이 아프리카에 태어난 사람들보다도 덕을 많이 쌓아가지고 여기에 태어난 거라? 그런 겁니까? 그건 아니죠!

단지 그 조건이 조금 전에 얘기한, 똑같은 나무였지만 가져온 게 여기 우리 선원에 조건이 안 좋기 때문에 쟤들이 고생하고 있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태어났든 아니면 여러분들이 여기에 태어났든 크게 차이는 없습니다. 단지 좀 더 좋은 조건에 태어나는 것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는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존재들은 다 평등하고 동일하지만 좀 더 좋은 조건에서 태어났으니까 여러분들은 참 고맙다 해야 되는 거라. 고맙다고.

 

우리 선원에 있는 꽃들도 마찬가지지만 저게 꽃을 피우려면 자기 자신도 무던하게 노력을 해야 되고, 또 여러 가지 조건들도 상당히 많이 잘 갖추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그 악조건 하에서도 어떨 때는 쟤들이 저기 꽃들을 피우는 때들이 있어요.

그걸 보면서 아, 그래도 쟤들은 기본적으로 유전적으로 꽃으로 태어났으면 꽃을 피우려고 하는 유전적인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거라. 아무리 악조건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을 경우에는 못피우지만 그래도 꽃을 피울려고 하는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는 거라. 우리 선원에 있는 꽃나무뿐만 아니라 나머지들도 꼭 마찬가집니다. 꽃을 피울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래도 한국이라는 조건에서 살아가면서 꽃을 피울려고 하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 좀 더 좋은 조건이면 꽃이 좀 더 많이 피어야 되는데 과연 여러분들 마음이 아프리카에 있는 사람들보다도 마음이 더 너그럽고 또 마음이 자애롭고 또 살생하려고 하는 것이나 남의 것을 훔칠려고 하는 것들이 없이 잘 살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거 보면 조건이 어떻다고 핑계대고 있는 것은 조금 안 맞는 거 같애. 그리고 조건이 조금 나쁘게 태어났다 해가지고 그사람들이 업이 나빠서 그렇다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맞는 거고. 단지 그 사람이 지속적으로 행하는 것들로 인해서 꽃을 잘 피우는 사람들도 있고, 또 많이 피우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게 됩니다.

 

경전에는, 앞으로 지금 얘기하겠지만 이렇게 쭉 열네 가지로 얘기를 해놓았는데 꼭 그 열네 가지가 고정돼있는 것은 아닙니다. 쉽게 얘기하면 자기 자신이 하는 것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뀌어나갈 수가 있는 것들입니다.

 

그 14가지 성향·성격을 먼저 얘기를 하겠습니다. 이건 부처님이 얘기하신 겁니다.

 

첫 번째는 단명하는 사람, 태어나서 바로 죽는다든지 이런 사람들.

그 사람들은 살생하는 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들도 가끔씩 지금 현재 벌레든지 뭐든지 그냥 잔혹하게 죽이는 걸 좋아하는 성격들도 있습니다. 특히 바퀴벌레 같은 걸 보면 그거 안 죽이면 잠을 못 자. 그걸 반드시 죽여야만 잘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 잔혹한 성격들은 부처님의 설명대로 할 거 같으면 단명할 수 있는 조건들입니다. 다음생에 만약에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조건을 타고날 수 있다는 거라. 그래서 성격적으로 좀 잔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할거 같으면 빨리 그것들을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장수하는 사람들, 오래 사는 사람들.

그건 불살생의 업인데 다른 사람에 대해서 자애의 마음들을 많이 지니고, 그리고 남을 해칠려고 하는 것들을 잘 안 하는 사람들입니다. 가끔씩 군에 누군가가 동원되어 갈 때 자신은 남을 죽이는 무기를 들 수 없다 해서 군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뭐 감옥에 가기도 히고 지탄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불교적으로 봤을 때는 참 좋은 성격인 거 같애요. 어쨌든 살생을 저지를 수 있는 일들을 아예 안 할려고 하게 되는 겁니다.

불교에서는 "정의로운 전쟁, 정의로운 싸움은 없다" 하고 얘기합니다. 어떤 경우든지 살생하는 업이 되는 것이지 그것들을 용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속에 항상 자애의 마음을 지니고 남을 해칠려고 하는 것들, 그리고 남을 해치는데 도움이 되는 어떠한 것들도 지니거나 판매하고 하는 그런 것들, 그런 직업들은 안 가질려고 자꾸 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 번째는 병약한 것,

태어나서 병약해가지고 항상 힘들어하는 그런 것들을 얘기합니다. 생명에게 해를 주는 행위들을 많이 할 경우, 꼭 죽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장난삼아 그걸 가지고 논다든지 동물들을 가지고 논다든지, 아니면 자기가 필요할 때는 데리고 있다가도 필요 없을 거 같으면 애완동물이라도 버려버린다든지 이런 것들이 해당이 됩니다. 그런 것들은 결코 좋은 성격도 되지 못할 뿐아니라 좋은 조건을 가지지도 못하게 된다 하는 겁니다.

 

그다음 네 번째는 건강한 것.

모든 생명에 대해서 해를 줄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 항상 포근하게 상냥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그런 성격입니다. 그런 성격들은 건강해진다 하고 얘기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다섯 번째가 보기 흉한 사람,

얼굴이나 이런데 아주 보기 흉한 사람들을 얘기합니다. 신경질 많이 부리는 사람, 그리고 질투를 많이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얼굴을 보기가 싫어집니다. 그렇게 자꾸 얼굴이 바뀌어져나가기도 합니다.

 

그다음에 여섯 번째는 얼굴이 보기 좋은 사람들,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사람들.

얼굴이 예뻐서 아름답다는 것이 아니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반대로 화내지 않고 남에 대해서 질투하지 않고 하는 그런 성격들을 지닌 사람들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용모를 바르게 하는데도 상당한 도움을 준다 하는 것을 명심을 해야 됩니다.

 

물론 이런 나쁜 성격은 방치하면 다음생에 불행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지금 현재 생에서도 꼭 마찬가지로 모습들이 그렇게 바뀌어나간다는 이들도 생길 수 있게 됩니다.

지금 현재 내가 건강하고, 지금 현재 그래도 안색이 온화하고, 그리고 지금 현재 내가 조금 더 오래도록 살고 할려고 할 것 같으면 자신이 어떤 마음을 지니고 어떤 습관들을 들이느냐에 따라서 많이 달라진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다음에 일곱 번째 존재감이 없는 사람,

뭘 하더라도 그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도 잘 모르고, 그 사람이 있든 없든 전혀 개의치 않고, 일하는데 어떠한 영향력도 미치지 않는다고 하는 것들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 것들이 존재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질투를 많이 하면 그렇게 된다고 그럽니다.

여러분도 주위에 질투하고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가까이 하지 않을려고 합니다. 어떨 경우는 좀 무시해버립니다. 뭐 할 거 같으면 꼭 그 사람의 험을 잡아가지고 자꾸 얘기하고 할 거 같으면 그것을 듣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적으로 그렇게 할 것 같으면 그냥 듣기 싫어져버립니다. 그래서 무시해버리고 안 들을려고 합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존재감이 없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여덟 번째는 존재감이 있는 사람,

반대적인 성격이죠. 질투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을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아홉 번째는 지금 현재 빈곤한 사람,

이거는 물질적인 빈곤 뿐아니라 마음의 빈곤도 해당이 되는 것들입니다. 인색한 성격들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얘기합니다.

 

반대로 열 번째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조금 더 부유로운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베푸는 걸 좋아하는 성격들입니다. 그래서 출가한 수행자들이나 또는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자꾸 뭔가를 베풀면서 사는 습관들을 자꾸 들여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들은 가족들에게 뭔가를 베풀면서 살아야 됩니다.

꼭 물질적으로 베풀지 않더라도 정신적으로 베풀어야 되는 거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공을 해주어야 되는 거고, 그래야 되는 것이지 그런 것들을 등한시 해서는 안된다 하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사회적인 지위가 낮은 사람,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

이런 것들은 완고하고 오만한가, 그렇지 않으면 온화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가 하는 그것으로써 정해진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뭘 많이 배우는데도 항상 잘 까먹고 무지한 성격들, 또는 지적인 경향이 있는 사람들.

이런 것들은 진리를 배울려고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 정해진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게 부처님이 열네 가지 성향·성격을 구분을 해놓은 겁니다.

 

그런데 그런 성향이나 성격은 금방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는 사람들이 불행하다 해가지고 그 불행이 계속되는 것도 아니고, 행복하다 해가지고 그 행복이 계속 지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항상 바뀌는 것들입니다.

만약에 한번 누군가를 해코지를 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러한 해코지를 한 것에 대해서 그것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성격으로 바뀌어버리는 것이 오히려 더 안 좋은 상태입니다.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분명히 알고 그것을 참회할 줄 아는 성격으로 바뀌어야 되는 것이지, 죄를 범한 것들에 대해서 그것을 감출려고 한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죄라고 하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을 등한시해버리는 성격으로 바뀌어버리는 것은 안된다는 겁니다.

 

자신이 조금 전에 얘기한 그런 나쁜 부류의 성격으로 바뀌는 것은 최대한 멀리할려고 해야 됩니다.

또 반대로 좋은 성격으로 바뀌는 것들은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되는 겁니다. 설혹 그렇게 하는 동안에 자신이 실패를 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것들에 대해서 마음을 자꾸 담아두고 하는 것보다는 그런 것들을 바탕삼아서 자꾸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려고 노력을 할려고 그렇게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과거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

바꿀 수가 없을 때는 지금의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 나에게 남을 미워하는 마음들이, 뭘 보더라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많다. 그럼 그걸 먼저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런 것들로 인해서 내 얼굴이 조금 더 흉하게 바뀌어나가고 남들에게 보기 싫은 얼굴로써 바뀌어나가는구나, 그래서 지금 그런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걸 먼저 인지를 해야 됩니다. 그러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나서 그것들을 바꿀려고 해야 되는 겁니다.

 

과거는 바꿀 수가 없지만 현재나 미래는 여러분들이 바꾸어나갈 수가 있는 겁니다. 그것을 행하지 않을 때 현재가 바뀌어져나가고, 그것을 완전하게 끊어내게 되고 습관화돼나가게 될 거 같으면 미래의 일들이 바뀌어져버리게 되는 겁니다.

 

반드시 명심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이 열네 가지를 얘기하는 것은

 

첫 번째, 과거는 바꿀 수 없다.

그렇지만 현재와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주는 겁니다.

 

두 번째 자신의 업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칫 착각하게 됩니다. 자신의 지금 상황은 부모님이 나에게 물려 준 것이 없어서 내가 이렇게 됐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자신의 업은 자신이 지은 겁니다. 다른 사람을 탓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은 지금 자신의 업을 드러내는 거와 같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 얘기하는 것이 자신의 업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하는 겁니다.

 

세 번째, 이 14가지 성격들을 쭉 보면 부처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나쁜 것을 들추는 것보다는 선한 일을 행하라. 그게 세 번째입니다.

어떠한 일이든지 선한 일을 행할려고 해라. 그래서 선한 일로 인해서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나가고, 자신의 습관들을, 성격들을 바른 방향으로 바꾸어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악업은 선업과 교환할 수가 없다.

어떠한 경우든지 악업은 선업과 교환할 수가 없습니다. 자칫 착각할 거 같으면 돈을 주고 물건을 사듯이 교환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버린다는 거라. 내가 이마만큼 더 착한 일을 할 것 같으면 이 악업은 없어져버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법은 없습니다.

이마만한 선업을 지어서 이 악업을 일어나지 못하게끔 눌러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걸 교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자신이 지은 것들은 그대로 자신의 업으로서 남아있게 됩니다. 그것은 아라한이 되어도 할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단지 그다음에 중요한 것들은 뭐냐면 미래에 일어날 업들은 막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라한들은 미래에 다시는 일어날 수 있는 업을 짓지 않게 됩니다. 현재에. 그러니 당연히 미래에 받을 업이 없어져버립니다.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선한 업을 지은 것들은 악업과 바꿀 수는 없는 거지만, 악업을 눌러주기 때문에 지금 현재 일어나지 않게끔 만들 수가 있고, 미래에도 그것들이 영향을 미치지 못할 조건들을 만들 수가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인 것이지 그것을 더 큰 선업을 지어서 악업과 바꿀 수가 있다? 악업을 없애버린다? 그런 법칙은 없다는 거라.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조그만한 악업이라도 짓지 않으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그마만큼 그 위험성을 알고 조그만 것들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내가 달게 받아야 된다 하는 생각을 지녀야 되는 것이지 내가 더 큰 선업으로 해서 이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이게 부처님이 열네 가지 성향을 얘기하면서 말하고자 했던 것들입니다.

 

조금 있으면 여러분들은 까티나 가사 공양을 올리는 때가 됩니다.

테라와다 불자들은 그런 성향들이 많습니다. 선업을 지을 수 있는 것들을 알게 되면 찾아다니면서 선업을 지을려고 그럽니다. 예를 들면 탁발을 하려고 거리에 나와 있는데 마침 그 거리에 스님들이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다. 공양을 올려야 선업을 지을 건데 지을 수 있는 조건이 안 된다고 할 거 같으면 자신이 자리를 이동합니다. '어. 아무도 안 왔네' 해가지고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그 공양물을 가져가지고 스님들이 다니는 곳을 찾아갑니다. 찾아가서 반드시 그 공양물을 올립니다.

 

그 사람들 마음에는 뭐가 되느냐면 이 공양물로 인해서 스님이 공양을 맛있게 드시고 법을 설해주십시오 하는 건 둘째라. 첫 번째가 뭐냐면 내가 선업 짓는 거라. 내가 선업을 짓는다는 생각을 하는 거라. 그래서 그 선업 지을 기회가 됐는데 그 기회는 반드시 놓치지 않을려고 하게 됩니다. 어떤 일들이 선업을 지을 수 있는 때가 된다 할 거 같으면 그것을 알고 그 기회는 놓치지 않을려고 하게 됩니다.

 

다른 것들은 언제든지 자신이 마음 먹을 때나 아니면 다른 일들이 생겨날 때 행할 수가 있습니다. 탁발 올리는 것도 언제든지 이 선원에 오면 목요일날 할 수가 있습니다. 또 계를 지키는 것도 자신이 언제든지 마음을 먹으면 할 수가 있는 것들입니다. 수행하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그런데 까티나 가사라고 하는 것은 딱 그때밖에 할 방법이 없습니다. 다른 때 행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경에서는 뭐라고 했느냐면

"상갓사 딘낭 까티낭 악강 붓데나 완니땅" 그렇게 얘기합니다.

"Saṅghassa dinnaṁ kathinaṁ aggaṁ buddhenā vaṇṇitaṁ"

"부처님이 모든 보시의 최우선되는 것이 까티나라고 칭송했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모든 보시들은 자신이 행하고자 하고 마음을 먹으면 행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까티나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까티나는 그마만큼 모든 보시에 가장 우선 된다 하고 얘기들을 하는 겁니다. 그걸 주석서에서는 뭐라고 얘기했느냐면 "백년 동안 보시를 한 것은 까티나가사 공덕 지은 것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고 주석서에는 적어놓은 겁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모든 보시의 가장 뛰어난 것이 까티나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이걸 후대의 주석서들은 더 풀이를 해가지고 "황금으로 팔만사천탑을 짓는다 하더라도 까티나가사 공덕 한번 쌓는 것보다 못하다" 하고 주석서에서는 얘기합니다. 그건 주석서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고 그마만큼 까티나라고 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는 가끔씩 스님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까티나가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공덕 짓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출가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가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안됩니다. 까티나 때만 가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나머지 때, 우기안거 들어가면서 올리는 가사? 아니면 우기 안거 15일 전부터 우기안거 때 올리는 가사? 그것은 전부 이런 가사가 아닙니다. 우의라 해서 아랫가사입니다. 스님들이 아랫가사만 입고 생활할 수는 없는 거라.

 

또는 까티나가 없을 거 같으면 다른 때 해제하고 나서라도 다른데 가서 가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안 되는 거라. 쉽게 말하면 평생 처음에 출가할 때 받았던 가사 그것이 해지든 아니면 닳아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바꿀 수 있는 조건이 안되는 거라.

 

실제로 스님들을 그래도 청정하게 유지시켜 주면서 그나마 욕심내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까티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딴 욕심 부리지 말고, 1년에 한차례 그래도 가사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 그때 가사 바꾸라는 거라. 다른 때는 욕심부리지 말아라는 거라.

여러분이 일년에 옷 하나 사 입는다고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아마 일년에 옷 한번만 사겠어? 아마 여러벌 살 거라. 봄에는 봄옷, 여름에는 여름옷, 옷이 널려있는데도 입을 옷이 없다고 하는 판인데.

 

그런데 그걸 제공해주는 것이 뭐냐면 일년에 한차례 스님들이 옷을 그래도 옷갈이를 할 수 있는게 까티나라고 하는 겁니다. 그 공덕을 쌓아주는 것들은 스님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라. 여러분들이 해야 되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만 보더라도 이 까티나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구나. 이게 없었으면 참 힘들었을 것이다. 출가한 스님들이 실제로 가사가 없어서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를 수 있었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만약에 이게 일 년에 여러 차례 이런 기회를 주었다. 그럼 아마 한국적인 상황하고 똑같이 될 거라.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가사가 아니고 승복들 여름 승복, 겨울 승복 철마다 바꿉니다. 가사를 바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것이 그렇게 자주 바뀌다보면 스님들은 그외의 다른 것들을 소유할려고 한다는 거라. 하나를 가지면 두 개를 가지고 싶어하는 거라.

 

딱 하나로써 지정해놓은 것은 부처님이 참 잘했다 하는 겁니다.

최소한의 것만 필요한 것들만 행하라 하는 거라. 그런 이유로 스님들이 그래도 옷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들도 없고 옷에 대해서 또 너무 아쉬워가지고 힘들어서 출가생활을 하기 힘드는 그런 경우들을 맞기도 하고, 그것들을 제공해줄 수 있는 가사 올리는 것들은 참으로 좋은 일들이다 하는 겁니다.

 

그것만 생각을 하더라도 어느 다른 보시 하는 것보다도 더 뛰어난 것이다 하고 부처님이 말했구나 하고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상갓사 딘낭 까티낭 악강 붓데나 완니땅" 그렇게 얘기합니다.

"Saṅghassa dinnaṁ kathinaṁ aggaṁ buddhenā vaṇṇitaṁ"

그래서 부처님이 아, 까티나 가사가 이마만큼 수승한 것이고, 그래서 이런 수승한 것들을 공양올리는 것들은 가장 뛰어난 것이다 하고 부처님이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대신에 그 가사는 '상갓사 딘낭(Saṅghassa dinnaṁ)', 상가에 올리는 것이지, 개인 스님에게 올리는 것들은 까티나 가사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어느 사원이든지 혼자 안거를 지냈다고 하더라도 까티나 가사를 올릴 때는 반드시 상가를 구성해서 까티나 행사를 합니다. 자기 혼자 가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안돼. 그것은 까티나 가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상가 스님들 적어도 네 분 이상의 스님들이 모였을 때 이 행사를 할 수가 있는 겁니다. 만약에 까티나 행사를 한다고 했는데 네 분 이상의 비구스님들이 참여를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거는 까티나 가사를 할 수가 없는 조건이 돼버립니다.

 

다행히 그래도 올해는 우리 선원에서 이 까티나 행사를 하게 됩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네 분 이상은 스님들이 모여서 까티나 행사를 할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좋은 공덕을 지을 수 있는 조건이 될 때 그 공덕들을 놓치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러분은 덕이 있는 사람입니까? 하는 것으로써 법문을 대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