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4~2015 일상수행법문

2015년 까티나 축제 법회 (20151101.부산)

담마마-마까 2022. 1. 6. 09:00

https://youtu.be/cVPpB8EXlRw

* 2015년 까티나 축제 법회 (20151101.부산)

[40:20초 이후부터 부연설명 부분 법문입니다.]

 

우리 붓다의 길따라 선원에서 까티나 가사를 도반님들이 주최가 되어서 했습니다. 그랬는데 별 무리 없죠? 잘했죠? (예)

준비한 사람들에게 박수 한 번 칩시다!

고생했습니다. 스님은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우리 선원은 그래도 참 잘하는 게 그래도 자기들끼리 재가자들끼리 똘똘 뭉쳐가지고 큰 일을 해낸다는 겁니다. 스님이 신경 안 써도. 가끔씩 잔소리 하는 게 있지만, 그거는 일하는 것들에 대해서 잘잘못을 가리는 것들이 아니고, 방향이 잘못되면 그 부분을 지적하는 것으로 끝나지, 스님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실은 잘 모릅니다. 그런데도 이런 일들을 치러내는 것들을 보면 그래도 부처님 가르침을 그냥 배워서 끝나는 게 아니고, 그래도 '이 선원은 내가 주인이다. 내가 일해야 된다' 하는 생각들을 항상 가지고 있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각각의 선원에 소속되어 있을 겁니다.

거기에 여러분들이 주인입니까?

과연 내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가?

오히려 그 주인 노릇을 스님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붓다의 길따라 선원은 스님이 몇달 간이라도 외국에 가 있어도 하나도 지장을 받지 않습니다. 자기들끼리 수행 프로그램 그대로 하면서 전에 스님이 해놨던 녹음 틀어가지고 법문 대신하고 자기들이 그대로 그냥 수행하고 이렇게, 일년을 갔다 와도 내내 그대로 해가지고 하고 있습니다.

다른 선원들도 오늘을 보면서 조금 스스로 주인의식들을 자꾸 가지도록 해야 됩니다. 왜 그런 걸 스님들한테 자꾸 맡겨? 스님들은 스님들이 해야 될 일들이 많은데. 스님들은 자기 수행을 해야 될 뿐 아니라 상가의 일원으로서 있으면서 상가의 일들을 해야 되는 거고,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좋은 법을 들려줘야 되는 것들이 할 일입니다.

 

그런데 테라와다 사원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주인이 재가자가 안 되어있고 스님이 주인이 돼가지고 스님이 막 뭘 하고 있다는 거라. 안됩니다! 딱 망하는 길입니다!

그거는 절대 안 되는 길이기 때문에 오늘을 계기로 각각의 선원에서 각각의 주인의식들을 가지고 자꾸 해나가야 됩니다.

“안됩니다.” 안되는 게 어딨어? 여기 한번 보십시오. 그리고 대구 인제 일년 딱 됐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아예 대구도 마찬가지로 여기 부산과 마찬가지로 전혀 재정 부분 그다음에 누가 이름이 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전화번호 하나도 모릅니다. 자기들끼리 회비내고 자기들끼리 운영을 하고 스님 공양 다 올리고 그러면서 지금 계속 해나갔습니다.

 

오늘 보니까 명찰 쓰고 온 사람들이 있어요. 그저께 처음 계 받았거든. 대구 붓다야나 선원이 생긴지 일년 딱 된 겁니다. 그래서 계 받아가지고 좋다고 자랑할려고 여기다가 이름표를 적어왔어. (이름 외울라고 예.)

외울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른 사람들도 좀 본받아! 이게 얼마나 좋아! 내가 스스로 나는 인제 이 선원의 주인이고 내가 그 일원이 돼가지고 부처님 제자로서 이 이름으로 살아가겠다고 선언을 한 것인데 왜 그렇게들 안 사느냐는 거라.

재가자들은 재가자들의 몫을 분명하게 해야 됩니다.

그리고 출가자들도 출가자 몫을 분명하게 해야 되는 겁니다.

그걸 서로가 협력하면서 해나가야 되는 것들입니다.

 

오늘 같은 날도 얼마나 좋습니까?

출가자와 재가자가 이렇게 모여있어서, 질문도 받고 법문도 하고 또 여러 가지 행사들도 진행하고, 이 얼마나 아름다운 날들이라!

 

가끔씩 그런 거를 합니다. 어떤 행사를 스님이 가서 혼자서 할 거 같으면 그런 얘기를 합니다. "아, 스님! 눈물이 납니다!" "너무 좋습니다!" 그럽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모이면, 여러 스님이 모이면 아이고, 법문하는 것도 재미없고, 모여서 하는 것을 보면 영 이상하게 하고 그러면 "스님들 여러명 모이면 할 게 없습니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거는 스님들이 법문을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의 마음이 거기에 열려있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법은 잘 설하든 못 설하든 그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법은 많이 설해보면 요령이 생기고 또 거기에 맞게끔 법을 잘 설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은 '어, 내가 처음 듣는다' 생각할 것 같으면 환희심이 일어난다는 거라. 아무리 아는 거고 재미없는 거라도.

붓다야나 선원 대구에 처음 계 받았으니까 얼마나 좋아. 그러니까 이렇게 동네방네 외우고 다니는 거라. "나 계 받았다!" 하면서. 법은 그렇게 들어야 되는 거라. 처음 들었고 그리고 나는 인제 이것들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걸 들어야만이 법을 들을 자격을 갖추게 되는 거라.

 

오늘은 그런 겁니다. 프린트물 하나 내준 거 있죠? 이걸 다 할 수는 없고, 한번 읽어보시면 될 겁니다. 그래도 오늘 왔는데 법문만 귀에 담고 가지말고 이렇게 프린트물이라도 있어가지고 두고두고 새겨라고 해서 그럽니다.

 

가끔 스님은 부처님의 일을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납니다.

과연 이 세상에서 "나는 붓다다!" 하고 탁 선언할 분이 또 누가 있을까? 나는 붓다다 하고 선언할 분은 없다는 거라. 절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현재 세상에서는 오로지 여러분들이 기준으로 삼아야 될 오직 한 분은 부처님 한 분뿐입니다. 나는 그 생각을 하면, 부처님만 생각할 거 같으면 너무 좋아. 내가 저 부처님을 만났다는 거.

 

똑같은 깨달음을 이루더라도 아라한은 될 수 있어도 그 아라한이 "나는 붓다다" 선언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됩니다. 부처님 이전에도 그렇게 깨달음을 이루어서 "나는 붓다다" 선언한 분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인도에서는 그렇게 붓다를 바랐는데, "나는 붓다다" 선언한 분이 아무도 없었는데, 오직 유일하게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나는 붓다다" 하고 선언을 했습니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아. 그래서 그분이 설한 법을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거, 여러분들 얼마나 그게 어려운 건지 압니까?

 

경전에는 '둘라바(dullabha)'라고 해가지고, 하기 힘든 거, 어려운 것들을 여러 가지로 들어놨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봤을 때는 가장 어려운 것, 내가 그래도 내가 복은 있어가지고, 여러분들도 복이 있어가지고 부처님의 법을 들을 수 있다는 게 그게 어디라? 이 세상에 그마만한 복은 없다는 거라.

이런 상가가 있기 때문에 그 상가 스님들이 법을 잘 설하건 못 설하건 그 부처님 말씀을 전해주고 있는 겁니다. 진짜 여러분들은 행복해 해야 됩니다. 그런 법을 잘 말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틀리게 하지는 않는다는 거라.

 

만약에 부처님이 수로써 가르쳐놓은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삼법인 사성제, 1부터 해가지고 10까지 쫙 얘기했는데, 그 어디 거기에도 다른 걸 넣지 않았다는 거라. 혹시 그거 느껴본 사람 있습니까? 내가 삼법인에다가 다른 한 개 더 넣어가지고 사법인을 만들고 싶다, 아니면 팔정도에서 뭔가 하나 더 빼가지고 칠정도를 만들고 싶다. 나도 옛날에 그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딱 그러고 싶어요.

나도 알만큼 다 알고, 부처님 말씀 다 읽고 외우고, 그리고 수행 해볼만큼 다 해봤어요. 그래서 억지를 부릴 것 같으면 '아, 나도 자신있는데' 나도 내 나름대로 부처님하고 다르게 뭔가 하나 세우고 싶은데, 세울 건덕지가 아무것도 없다는 거라. 그 어디에도 거기에 맞게끔, 사성제를 설했다, 사성제에서 어느 것 하나도 더 넣을 것도 없고, 더 뺄 것도 없다는 거라. 그럴 발견할 수 있으면 나에게 가르쳐주십시오. 내가 그분을 스승으로 모실게요. 없다는 거라.

그걸 여러분들이 직접 스님들을 통해서 듣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까티나 축제"는 그냥 일반적으로 "의식"이 아니고 "축제"라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아, 우리가 그분을 떠올리고, 아, 내가 이렇게 좋은 때, 이러한 붓다와 담마와 상가를 만나가지고 내가 이 자리에 있게 되었구나. 그래서 나도 그에 어긋나지 않게끔 바르게 일어난다는 거라.

거북이가 바다 위에 올라오면서 구멍 뚫린 판자에 목이 쏙 올라올 수 있는 확률이 굉장히 적다고 그럽니다. 그거 보다도 여러분들이 만나기 어려운 걸 만난 겁니다. 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느냐는 거라.

 

이런 기회가 두 번 다시 올 거 같습니까? 없습니다.

단언컨데 여러분들은 이생이 여러분들의 마지막 기회입니다.

환희심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 내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 또는 믿음을 지니기 위한 기회, 또는 여러분들이 출가할 수 있는 기회? 그 모든 기회가 다 맞아 떨어지고 하더라도, 부처님 법을 만날 수 있는, 올바른 부처님 법을 만날 수 있는 기회보다도 더 얻기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보내지 않기 위해서 이 교단 스님들을 빨리 활용들을 해야 됩니다.

법을 청해 듣고, 그리고 나는 어떤 경우든지 그냥 한마디 말을 전해준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처음 듣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환희심이 일어난다는 생각들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부처님 말씀을 그냥 올곧이 그냥 받아들이게 됩니다.

 

쌓여온 업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그냥 여러분들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게 정답입니다. 억지로 바꾼다?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그 정도로 세세생생 윤회하면서 지내온 것 축적돼온 것을 닦아낼 수 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걸 없앨 수 있다? 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날 죽이시오. 나에게 어떤 것들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설혹 내가 죽음을 맞든지 아니면 누군가 나에게 모함을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냥 그걸 받아들여버리고 나면 그것으로 인해서 탐·진·치가 안 일어납니다. 그것이 해결책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여있는 거고, 그런 귀중한 부처님을 만난 자리가 이런 자리입니다. 그걸 항상 잊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경우든지 헛되이 시간 보내지 마십시요. 그리고 여러분들은 각각의 주인일 뿐이다. 각각이 여러분들 사원에 선원에 주인입니다. 그 주인된 것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자!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