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한다 (20150821)
부처님께서 마가다국 사위성의 죽림정사에 계실 때, 땀바다-티까(Tambadāṭhika)라는 왕의 사형 집행인이 있었는데, 그는 50년간 이 사형집행 일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나이를 먹어 버려 마지막 무렵에는 사람을 처형하는 힘이 없어서, 칼로 2~3회 베지 않으면 처형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비록 범죄자이지만 이렇게 죽이는 것은 너무 잔혹하기 때문에 땀바다-티까(Tambadāṭhika)는 사형집행인에서 해고되었습니다.
겨우 자유롭게 된 이 노인은 유미죽을 만들어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집사람에게 부탁하고서, 강에 가 몸을 씻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집으로 돌아가 유미죽을 먹으려 하였습니다. 그때 1주간 사마디(멸진정)에 들어가 있던 사리뿟따 존자께서 사마디로부터 깨어나서, 어디에서 탁발하면 좋을까 생각했는데, 땀바다-티까(Tambadāṭhika)를 생각해 내고는, 죄 많은 그를 어떻게든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땀바다-티까(Tambadāṭhika)는 마음이 맑고 깨끗한 수행자를 처음 보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노인이 될 때까지 범죄자와 관련되어 살아왔다. 50년간 사형 집행인으로서 사람을 죽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법을 들어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기는커녕, 선인을 만나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 나에게는 음식도 있으니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는 존자를 집에 불러 앉게 하고 자신을 위해서 만들었던 유미죽을 전부 존자의 발우에 부어드렸습니다.
더운 날이기 때문에 존자의 곁에서 부채질을 하던 땀바다-티까(Tambadāṭhika)는 점점 공복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존자는 「당신도 유미죽을 드세요」라고 말하면서 「나는 괜찮으니 당신 자신에게 부채질을 하세요」라고 부탁했습니다. 땀바다- 티까(Tambadāṭhika)는 태어나고 처음으로 한 명의 인간으로 취급해 준 체험이었습니다. 또 그 상대가 위대한 성자였으므로 정말 고맙게 느꼈습니다.
식사 후 존자는 설법을 시작했지만, 땀바다-티까(Tambadāṭhika)는 지금까지 범해 온 죄를 생각하고 후회하거나 고민하거나 해서 좀처럼 설법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상태를 보고 존자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좋아서 그 일을 해왔습니까?」 「아니요! 왕이 명령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해 왔습니다.」 「그러면 지금 과거를 후회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자 겨우 그는 마음이 침착해져서 설법에 귀를 기울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법문을 듣는 동안 물질과 정신의 일어남 사라짐에만 주의를 기울였기에 생멸이 빠르게 진행됨을 알아, 해탈에 수순(隨順)하는 안심감에 도달한 아눌로-마 냐-나(anuloma ñāṇa ; 수순하는 지혜)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존자가 돌아가자마자 그는 돌아가셨습니다. 부처님에게 모인 비구들이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악만을 실행해 온 땀바다-티까(Tambadāṭhika)는 마지막 몇 안 되는 시간만 사리뿟따 존자를 만나 법을 들을 수가 있었지만, 어디에서 태어났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에, 부처님께서는 「그는 뚜시따(Tusita, 도솔)천상에 태어났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에 비구들은 많이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땀바다-티까(Tambadāṭhika)는 젊을 때 강도무리의 일원이 되어 범죄를 일으켜 사형이 결정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형 대신에 일평생 사형 집행인으로서 생활해 온 붙잡혀있던 몸이었습니다. 맑고 깨끗한 정신의 세계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나이가 들어 죽음에 이를 때까지의 저 사람의 생애 중에서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성자를 만나 의미가 있는 말을 들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단
지 그것만이 그를 구제할 수가 있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몇 가지의 것을 가르쳐 줍니다.
첫 번째는 비록 악인이라도 부처님의 제자들은 생명은 평등하다는 입장에서 자애의 마음으로 대해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명령하는 입장이 아니라, 대중과 함께 하면서 사람의 괴로움, 고민을 이해하고, 해탈의 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람은 자신을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항상 나쁜 방향으로 회전하는 경향이 있지만,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교적이지 않습니다. 본래 안 된다고 생각하더라도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세상에는 사회적인 목적을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재산이나 명예를 위해서 일생을 바친다면, 그것은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무의미한 일입니다. 사회의 어느 조건에 있어도, 지식이 많아도, 남아있는 재산이 많아도, 마음이 더러움에 물들어있는 사람의 인생은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맑고 깨끗한 마음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생명에 있어서 유일한 재산이 됩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성자의 말을 듣지 않는 인생은 허무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오해받기 쉬운 곳도 있습니다. 계속 사람을 죽여 왔는데도 마지막에 하나의 계기로 천상에 태어날 수 있기에, 살아있는 동안 어떤 죄를 범해도 괜찮다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에 좋은 일을 하려고, 지금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속이려 하고 있을 뿐입니다. 법칙은 바꿀 수 없습니다. 선악을 안 시점에서 올바른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이 이야기의 땀바다-티까(Tambadāṭhika)에게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선악 행위의 에너지는 간단하게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잠재적으로 축적합니다. 그러나 업은 에너지이기 때문에 나쁜 에너지를 강하고 좋은 에너지로 억제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땀바다-티까(Tambadāṭhika)의 경우는 확실히 그랬습니다. 우리는 땀바다-티까(Tambadāṭhika)만큼 불행하지도 않고, 그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공부로, 일로, 가족의 일로 바쁘다고 핑계대면서,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선행을 할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인생은 실로 어둡고 위험합니다. 과거에 대해 후회하는 일도 고민하는 일도 또한 위험합니다. 사람은 언제든지 회복할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나쁜 일을 했다고 영구적으로 비난하거나 멸시하거나 하는 일도 절대로 그만두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은 긴 인생 중에서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행하는 모든 행위는 다만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을 즐기기 위해서로 한정됩니다. 죽을 때 이 모든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무의미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 즐기기 위해라는 목적을 넘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만들기 위해서, 인격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선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특히 성자의 말, 진리의 말에는 우리의 자아 중심적인 마음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한 진리의 말은 보통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말보다 우수합니다. 땀바다-티까(Tambadāṭhika)의 인생에서 진리의 말을 듣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번 포인트
•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이미 너무 늦었다」라는 것은 없습니다.
• 악인이든 선인이든 모든 생명에 대해서 자애로 평등하게 대해야 합니다.
• 성자의 말은 진리를 실천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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