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테라와다불교의 진심 : 담마스쿨

테라와다불교사-2 (결집 및 제1차 결집) (201603416.서울법회)

담마마-마까 2022. 5. 27. 09:00

* 테라와다불교사-2 (결집 및 제1차 결집) (201603416.서울법회)

https://youtu.be/3FpBfAJUUzE

 

오늘 오전에 할 거는 1차 결집 부분입니다. 오후에는 칠각지 부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번 달에 프린트물을 내줬기 때문에 결집이 뭔지, 그리고 테라와다 불교사에서 결집이 여섯 번 이루어졌다는 것은 대충 이해를 하고 있을 겁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한번 짚어볼게요.

 

왜 결집했을까? 왜 결집한 거라?

부처님 법을 그대로 전할려고? 훼손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전할려고? 꼭 그 방법 외에는 없었을까?

결집 이후 상황들을 볼 것 같으면 1차 결집이 부처님 입멸 후에, 2차 결집이 그로부터 100년 후에 있었는데, 근본분열은 언제 일어났냐면 2차 결집이 있고 나서 2차 결집 후에 또 60년 후에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근본 원인이 결집이 원인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이 말한 삼장, 경은 이런 것이다" 하고 딱 결정을 내리고 나니까 60년간 꾹 참고 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우리는 못 따르겠다" 해가지고 탁 터져나간 게 분열되게 되는 겁니다.

 

결집 안 했으면 분열 안 했을까? 왜 결집을 해야 했을까?

스님 개인적인 생각에서는 그렇게 결집을 안 했으면 아마 지금은 어떤 것이 부처님 가르침인지, 아닌지를 잘 모르게 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부처님이 생존해 있는 당시에도 부처님한테 대든 제자들인데, 부처님 열반하시고 나서 뭐 자기 멋대로 할려고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깨달음에 이른 분들만 있을 것 같으면 문제가 없는데, 그 속에는 각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분들부터 해서 깨달음에 이른 사람들까지 한 바구니에 담겨서 똑같은 생각을 가진다는 건 참 어렵습니다. 그러면 뭔가 그 어려운 것들을 하나로써 묶어줄 만한 것들이 있어야 만이 그래도 흘러가지게 됩니다.

 

자이나교가 부처님 당시 때 분열을 했었거든요. 분열을 한 것 중에 극히 일부만 살아서 지금 현재 자이나교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다르게 이런 결집이라고 하는 과정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이나교조가 돌아가시자마자 싸움이 일어났어요.

 

비근한 예를 들어봅시다. 여기 어디 절을 창건한 스님이 돌아가셨다, 그 뒤에 어떻게 돼요? 그게 좀 괜찮은 사찰이다 그러면 종단에서도 먹을라고 그러고, 또 창건주 스님하고 가까이 있는 스님을 집어 넣을라고 그러고 막 싸움박질을 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들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가지고 그 절이 어디 떠나가는 것은 아닌데, 그것으로 인해서 각각의 싸움들이 일어나니까 그 절은 점점 더 신도들이 떨어져나가 버리게 되고, 자이나교가 꼭 그런 형태였거든.

자이나교가 지금 세계의 큰 종교 안에 들지 못하고 겨우 명맥은, 인도내에서만 유지하는 것들이 뭐냐면 결집 없이 그렇게 지내온 과정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불교결집이 참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그런데 결집이라고 하면 뭘 결집했을까? 하는 겁니다.

부처님 말씀? 부처님 말씀을 결집했다?

보통 부처님의 가르침을 붓다와짜나(Buddha vacana) 라고 그럽니다.

과연 부처님 가르침을 결집한 게 맞아요? 확신하는 사람? 그 속에 부처님 가르침이 아닌 거라고 생각되는 것은 없어요?

 

그다음에 뭐로 결집했어요? 빨리어로 결집했죠! 빨리어가 확실해요? 확신 못하죠?

 

그다음에 또 결집할 때 뭘 결집했냐면 경·율·론 삼장(三藏)을 결집했습니다.

 

1차 결집부터 해서 지금 6차 결집까지, 그 뒤에 주석서는 결집한 적이 없습니다. 주석서를 결집했다는 것은 대승불교에서 얘기하는 3차 결집, 파시미르 결집에서 주석서 결집했다는 기록만 있지, 테라와다 불교에서 결집에 주석서가 들어간 적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1차 결집도 삼장, 2차 결집도 삼장, 6차 결집까지 쭉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러면 삼장 결집인데 1차 결집 때 삼장 내용이 6차 결집 때 내용하고 똑같습니까?

 

(수행자 : 틀립니다)

틀립니까? 누가 얘기했어요? 한번 손들어봐봐.

(수행자 : 1차 결집 때는 논장이 빠져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논장이 빠져있다고 알고 있습니까?

(수행자 : 논장이 완성된 부분이 그 이후에 아비담마가 완성된 부분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1차 결집 때는 율장과 경장만 됐다고 그래서...)

그건 누구한테 들은 겁니까? 본인이 그렇게 확인해 봤어요? 논장이 빠졌는지?

(수행자 : 논장이 나중에 아비담마가 만들어진 후에, 그런 걸 시기적으로 볼 때...)

 

그런데 아비담마가 후대에 생겼다는 걸 어떻게 증명해요?

카타왓투(Kathāvatthu 論事) 라고 해서 논장 칠론 중에 마지막 부분이 3차 결집 때, 3차 결집한 수장인 스님이 목갈리뿟따 띳사(Tissa Moggaliputta) 라고 하는 스님입니다. 그 스님이 최종적으로 그때의 논쟁거리들을 전부 정리해가지고 50가지를 물어보고, 50가지 다른 견해 해가지고 정리한 것이 카타왓투 라고 하는 것으로 논장 중에 하나입니다. 칠론(七論) 중에 하나, 마지막이죠.

그거는 학술적으로 봐서 칠론 중에 마지막 아비담마는 3차 결집 때 결집됐다 하고 그것은 정설화되다시피 됩니다.

 

근데 테라와다 불교도였어도 그렇게 생각할까? 테라와다 불교도는 그렇게 얘기 안 합니다.

 

조금 전에 얘기한 논서 얘기해봅시다.

부처님 당시 때 부처님이 논서의 기본 맥락을 설한 경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부처님이 여러분들에게 물어봅니다. “하나란 무엇이냐?” 그러면 여러분들은 하나가 없으면 죽는 게 뭐가 있어요? 호흡이 없으면 죽죠? 그러면 “하나는 호흡입니다.” 하고 어떤 사람은 대답할 겁니다. 또 한 사람은 “하나가 뭡니까?” 하면 “나입니다.” 자기가 없으면 죽으니까, 그러면 “납니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렇게 각각의 견해들이 있겠죠?

 

그럼 거기에 대해서 부처님이 “하나는 이런 것이니라” 하고 정립을 해준 것이 있습니다. 만약에 “음식이다”하고 부처님이 얘기했을 때, 음식을 못 먹으면 호흡도 못할 뿐 아니라 음식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는 음식이다" 하면서 정리를 해준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왜 하나가 음식이 돼야 될까? 하는 의문은 생겨날 겁니다. 그럼 그걸 갖다가 싹 풀어가지고 경으로써 만들어 놓은 게, 그게 논장 카타왓투 입니다.

 

기본적인 뼈대는 이미 부처님이 얘기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1부터 10까지 해서, 하나는 무엇이다, 2는 몸과 마음이다, 3은 무엇이다 하면서 쭉 해놓은 경이 있습니다.

만약에 그 체제를 그대로 유지해서 카타왓투에서 거기에다 살을 붙였다 할 거 같으면 그건 누가 설한 것이 될까? 목갈리뿟타 띳사스님이 만든 거라? 아니면 부처님이 만든 거라? 어떤 것이 맞아요?

 

그래서 '붓다와짜나'라고 하는,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개념 정립을 여러분들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부처님이 말한 것만 부처님 말씀으로 여겨야 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대승경전까지 전체 다, 그것도 대승경전도 부처님이 설했다고 하니까 대승경전까지 다 포함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테라와다적인 관점이 있느냐 하는 것을 정립을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붓다와짜나의 개념은 이렇게 보면 됩니다.

당연히 부처님이 설한 것은 그 속에 포함이 되겠죠? 그래서 여러분 말마따나 경·율은 부처님이 설했다고 치지. 그러면 논장은 부처님이 설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일단 빼놨다 칩시다.

 

그럼 「붓다와짜나 영역」에는 뭐가 속하느냐 하면, 네 가지로 설한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것.

그다음에 결집을 통해가지고 스님들이 다 모여가지고 그것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하고 분명하게 확인하고 다 동의한 경우.

만약에 예를 들어가지고 우리끼리 무엇이다 해가지고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속한다 하고 정해놨다 칩시다. 그게 두 번째라는 뜻입니다.

 

근데 여기에 뭐가 전제조건이 돼야 부처님의 가르침에 포함이 될 수가 있을까?

기본 맥락이 부처님 가르침 속에 그게 있어야 되는 거라. 아까 카타왓투 같이, 그 체계가 있어야지 만이 이게 거기에 살을 붙인 것이 되기 때문에 이게 부처님 가르침하고 비슷하게 되는 것이지, 부처님 가르침하고 관계없이 허무맹랑한 것, 어디 용궁에서 뭐 경전을 써놓은 것을 건져와가지고 그걸 갖다가 세상에 알린다, 이렇게 할 것 같으면 그거는 좀 너무 허무맹랑해져 버리는 거라.

 

그래서 기준이 뭐냐면 부처님이 설한 법과 율, 경과 율에 그 내용이 분명하게 있는 것이라야 된다는 거라. 거기에 살을 붙였는데 그 내용이 부처님 가르침과 어긋나지 않는가 하는 부분들입니다.

그런 것들이 결집을 통해서, 상가 스님들이 다 모여가지고 다 동의하고, 그러고 나서 그걸 "이것은 부처님 가르침이다" 하면서 합송했을 경우, 그것도 부처님 가르침에 포함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있습니다. 경·율·론 삼장 중에 어떤 것 하나에 정통한 스님, 만약에 경에 대해서 아주 정통한 스님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 전체를 다 알고 있고, 다 이해하고 있고, 그걸 누구에게든 쉽게 설명해주고, 그리고 그걸 다 외우고 있다, 그러면 그런 스님이 뭔가를 하나를 만들어 냈어. 만들어 내가지고는 “나는 이렇게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한다” 하고 얘기를 했단 말이라. 근데 이거는 부처님이 설한 경전 속에 없어. 그럼 이건 어떻게 될까?

 

이것은 포함을 시켜야 될까? 시켜야 되요? 말아야 되요?

(수행자 : 말아야 됩니다)

근데 결집을 통해가지고 그런 것들이 들어와지게 됩니다.

빨리 경전 중 경장 중에 마지막 것이 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āya) 입니다. 쿳다까니까야에는 태국에서 쿳다까니까야의 종류하고, 버마에서의 쿳다까니까야의 종류하고는 종류가 틀립니다.

 

뻬따왓투 라고 하는 게 있는데 아귀에 대한 경들, 목갈라나 뿟타가 지옥에 가가지고 아귀를 보고, 아니면 천상에 가서 여러 가지를 보고 나서 그걸 설한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 제가 어디 가서 이런 걸 봤는데, 부처님 이게 맞습니까?” 그러니까 부처님이 뭐라고 하느냐면, “네가 봤는데 뭘 나한테 물어봐” 그건 부처님이 인정을 해주는 것이거든. 그렇게 해가지고 그것이 하나의 경으로 써져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내가 천상에 태어나있는 것은 보시하고 수행 잘해서 내가 천상에 태어났더라. 아니면 내가 아귀계에 빠진 것은 만날 욕심부리고 하니까 나는 이렇게 아귀계에 태어났더라. 그렇게 얘기하는 게 아귀사(Petavatthu, 餓鬼事經) 하고 천궁사(Vimanavatthu, 天宮事經)라고 하는 경전입니다.

 

부처님은 거기에 대해서 요마만큼도 설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삼장 중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게 제 5차 결집 때 들어갔습니다.

4차 결집 때까지는 그것이 포함이 안 됐어. 그래서 태국하고 스리랑카 같은 경우에는 별외경전이라고 해서 삼장 외의 경전으로써 해서 분류를 해두었던 건데, 5차 결집 때 미얀마에서 결집을 하면서 그것이 삼장 중에 쿳다까니까야에 쏙 포함이 돼버립니다. 그래서 태국하고 스리랑카 같은 경우에는 쿳다까니까야가 14가지 종류가 있거든. 근데 5차 결집부터는 17가지로 바뀌어버립니다.

그러면 쉽게 말하면 한 스님이, 아주 뛰어난 스님이 그걸 말한 건데 그것도 포함이 돼있잖아.

 

근데 그건 전제조건이 뭐라? 그것에 대해서 부처님이 인정했을 경우!

부처님이 인정을 안 하면, 만약에 부처님이 열반 후에 부처님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아 이것은 경전하고 틀리지 않는다, 부처님 가르침하고 어긋나지 않는다" 하고 얘기한다 해도 그것은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는 분명하게 아라한 제자 중에 한 분이 부처님, 이렇는데 어떻습니까? 그게 맞습니까?” 했을 때 부처님이 그래. 맞다하고 인정하게 된 경우에, 그렇게 해가지고 경으로 만들어졌을 경우에는 부처님이 직접 설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후대에라도 그것은 경전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포함이 될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 결집에서 그것이 포함이 되게 됩니다.

그게 쉽게 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 외의 것은 어떻게 될까? 어떠한 경우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게 봤을 때, 1차 결집 때 논장이 결집을 안 했다, 그건 누가 증명할 거라?

증명할 방법 있습니까? 안 했다고 증명이 될 거 같으면 당연히 1차 결집 때 논장이 포함이 안 됐겠지. 근데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근데 경전 곳곳에서는 1차 결집 때 논장도 합송했을 가능성에 대한 것은 많이 등장합니다. 쉽게 말하면 부처님 입멸 후 100년 후에 있었던 2차 결집 때 그때 이미 논장에 대해서 스님들이 다 알고 있었고, 또 논장을 합송을 했다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럼 1차 결집 때 그것을 안 했으면 그게 가능했겠나? 유추해 봤을 때 1차 결집 때도 그것을 했을 가능성이 큰 것이지, 안 했다고 보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단지 논장 칠론 중에서 조금 전에 얘기한 카타왓투 라고 하는 마지막 7번째, 그것을 못해가지고 3차 결집을 하게 된 건데, 그것은 3차 결집 때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논장은 3차 결집 때 결집을 했다?

그것은 논리적인 비약 아닌가?

그렇게 보는 것이 오히려 합당한 것이지, 그래서 1차 결집, 2차 결집 때는 논장 결집 안 하고 3차 결집 때부터 결집했다? 어떻게 그렇게 볼 수가 있느냐는 거라.

 

단지 1차 결집 때의 논점이 틀리고, 2차 결집 때의 논점이 틀리고, 3차 결집 때의 논점이 틀린 것뿐입니다.

3차 결집 때는 당연히 여러 가지 이견들이 있으니까 논장이 우선이 돼가지고 논장에 대한 결집이 우선이 되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3차 결집에서 논장부터 한다 해가지고 경장이나 율장 결집을 안 한 것은 아닙니다.

2차 결집 때는 여러 가지 계율적인 부분을 하게 되고 그러면 율장이 우선이 되게 돼있는 건데, 율장을 한다 해가지고 다른 두 장을 안 한 것은 아닙니다.

1차 결집 때는 부처님 가르침이 우선이 돼야 되기 때문에 경장이 우선이 되는 거라. 단지 우선이 되는 순위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그렇다고 해가지고 논장이 결집 안 됐다? 그렇게 보기는 참 힘드는 부분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테라와다적인 관점입니다.

 

그러면 과연 대승불교도 그렇게 얘기를 할까?

조금 전에 여기 운영회장님 같이 "논장은 3차 결집 때 했다" 하고 당연하게 얘기합니다. 왜 그럴까? 왜 그런 논리를 쓸까?

논장이 있는 데가 어디 밖에 없어요? 빨리어 경전밖에 없습니다.

다른 부파불교 시대 때, 아니면 다른 이후에 지금 현재 대승불교권, 아니면 저 티벳 불교권에는 논장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 왜 그렇게 됐을까? 왜 논장이 없는 결과를 냈을까?

물론 경장이 있는 데도 있고, 율장이 있는 데도 있습니다. 그렇게 조금조금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지금 빨리어 경전하고 큰 맥락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없는 것도 있고, 있는 것도 있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토대는 비슷비슷한데, 논장은 그거하고는 틀립니다.

 

논장은 어떤 겁니까? 그것에 대해서 경전이나 율장에 대해서 그것을 풀어 쓴 겁니다.

풀어 써가지고, 예를 들어서 부처님은 무아(無我)를 주장했다, 그럼 무아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하고 누군가 얘기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진아(眞我)가 있다 하고 누군가가 주장했다, 또는 누군가 어떤 사람은 영혼이 있다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은 또 누군가는 아예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무(無)이다 하고 주장을 했다.

 

그럼 이걸 갖다가 누군가 한 사람이 탁 논리를 세워가지고 부처님이 주장한 무아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하면서, 이것도 틀리고 저것도 틀리고 요것도 틀렸다 하고 다 얘기해버렸다. 진아도 부처님 가르침하고 틀린 것이고, 영혼이라고 하는 것도 틀린 것이고, 무라고 하는 것도 틀린 것이다 하고 분명하게 얘기해가지고 깨어져버렸다. 그럴 것 같으면 어떻게 돼요? 자기 논리가 설 자리가 없어져 버립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논장은 없어져 버립니다.

 

부파불교나 대승불교에서 논장이 거의 사라져버리는 것은 그와 같은 논리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없다 해가지고 테라와다 불교권에 있는 논장도 그건 3차 결집 이후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이 설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그런 논리를 뒤집어씌우느냐는 거라. 그것은 아니라는 거라.

 

하나 읽어 드릴게요. 담마상기니의 주석서에 보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번역한 것을 그대로 읽어 드릴게요. 논장입니다.

 

[ 아비담마를 불설-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승리자 <부처님>의 가르침에 해악을 주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것을 통해서 따타가따 <여래·부처님> 부처님의 전지전능함,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고 분명하게 깨달은 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고, 스승 <부처님>의 지혜의 완벽함을 악화시키며 후대에 열심히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는 사람들을 속이고, 성인으로 가는 길 도의 길로 가는 길을 막으며, 그로 인해서 각각의 분쟁의 원인이 된다.

그런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서 얻는 이익은 있을지 몰라도 만약에 그런 사람이 존재할 것 같으면, 그런 사람들이 출가자일 것 같으면 승단에서 승적을 정지하라. 그리고 재가자이든 출가자이든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반드시 계청을 받도록 하라. 그래서 자기 잘못을 참회할 수 있도록 하라.]

하고 적어놨습니다. 무시무시하죠.

 

근데 논장이 3차 결집 때 이루어졌다? 그 논리들을 계속 그렇게 따라가지 말아라는 거라. 논리적인 면으로 보든지 여러 가지 정황들로 봤을 때는 1차 결집 때부터 논장은 존재를 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부분이라는 거라.

왜? 나중에 고민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약에 논장을 3차 결집 이후로 한다고 할 것 같으면, 지금 5부 니까야의 마지막 쿳다까니까야는 논장보다도 더 후대에 생겨나버리는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그러면 경전 전체를 부정하는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결집을 하면서 이걸 집어넣을려고 하니까 이미 논장은 닫혀버렸거든. "논장은 닫혀버렸기 때문에 이것은 틀림없이 논서에 해당이 되어야 되는데, 논장은 이미 송출해가지고 끝나버렸단 말이라.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이걸 쿳다까니까야에 집어넣는다" 하는 것들이 곳곳에 등장을 하게 됩니다.

경·율·론 삼장에는 어떻게 되느냐면 뭔가 하나 찹터가 끝났다, 그러면 그 뒤에 딱 붙여놓기를 뭐라고 하느냐면, "2차 때에서는 1번에는 만약에 소마경이 있고 2번에는 범망경이 있고 그렇게 해가지고 무슨 경 무슨 경이 있고, 10개의 경이 있다, 이것이 어떤 찹터(chapter, 장)다."

만약에 마음에 대한 부분이다, 그러면 "이것이 이 10개의 경이 마음에 대한 경이다" 하고 딱 못을 박아놔버려요.

 

모든 경전은 뒤에 그렇게 딱 적어놓기 때문에 그 뒤에 누가 집어넣을려고 해도 집어넣을 방법이 없어요. 요거 전체를 바꾸기 전에는. 슬그머니 끼워 넣을 방법이 없잖아. 송출할 것 같으면 그렇게 해가지고 탁 끝내기 때문에.

 

율장도 마찬가지라. 빠라지까가 끝났다고 해가지고 끝나는 게 아니고, 「이 4개의 빠라지까가 있다. 그래서 이 빠라지까의 송출을 끝낸다」 하면서 탁 끝내버립니다. 그러니까 4개의 빠라지까가 뭔지를 뒤에 그것만 보더라도 알 수가 있는 거라. 앞에는 전부 설명을 해놓은 것들이고.

그러니까 다른 빠라지까를 집어넣을 방법이 없어요.

아, 미안합니다. 빠라지까라고 하니까 이해를 못하는 것 같은데, 스님들 4가지 중범죄, 옷을 벗고 산문출송(山門黜送) 해야 되는 것들, 그런 것들을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13가지 승잔죄, 20인의 스님들에게 가서 참회해야 되고, 그다음에 별중 생활을 해야 되고 하는 13가지 승잔죄가 있습니다.

「그 13가지 승잔죄는 1번은 이것이고 2번은 이것이고 하면서 마지막에 13가지 승잔죄를 여기서 송출을 끝냅니다.」 하고 탁 끝내버립니다.

그 앞에는 "1번은 무엇이다 할 것 같으면 그 인연에 대해서 부처님은 언제 어느 때 이렇게 해가지고 1번 승잔죄를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바뀌었다" 하는 것까지 전부다 설명을 해놓았는데, 나중에 가서는 그걸 전부 통합해가지고 딱 못을 박아놔버리게 됩니다.

경전을 보면 전부다 그렇게 돼있습니다.

 

그럼 만약에 누군가가 송출을 한다, 경장부터 송출을 하겠다, 그러면 가장 뛰어난 사람 경전에 대해서 잘 아는 분이 아난다가 잘 안다, “그럼 아난다 네가 송출해라. 맞는지 안 맞는지 내가 확인할게” 그래가지고 다른 스님들이 전부 확인을 하고, 그렇게 해가지고 했는데 그게 다 맞거든.

그럼 마지막에 가서 그부분에 대해서 조금 전 같이 딱 확인해가지고 닫아버리는 거라. 「경전송출 여기서 끝난다」 하면서 딱 끝내버립니다.

 

끝내버리고 나면 어떻게 돼요? 그 뒤에 누군가가 생각이 나더라도 “어? 그거 뭐 빠진 것 같은데? 그거 집어넣으면 안 되나?” 안 된다는 거라.

이미 닫아버린 것은 그것을 다시 할 방법이 없습니다. 태국이나 스리랑카에 별외경전으로 존재했던 것들이 그런 의미들입니다. 이미 닫아버린 상태거든.

 

그건 아비담마도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탁 닫아버리고 나니까 이걸 어디다 집어넣기는 집어넣어야 되겠는데, 부처님 가르침은 틀림없는데 넣을 방법이 없는 거야. 그게 논장에 속해진 부분이라 하더라도 그 논장에 대해서는 끝났는데 어떡할 거라? 그러면 아직 안 한데, 쿳다까니까야는 아직 송출이 안 됐다 하면 쿳다까니까야에 그걸 집어넣는 거라.

 

그런 형태들을 띠기 때문에, 경전의 편재로 봤을 때는 틀림없이 율장 먼저 1차 결집 때 했을 거고, 그다음 1차 결집 끝나고 나서 논장에 대한 것을 했고, 그다음에 경장에 대한 것을 했고, 그런 형태들을 취하지 않았을까? 하고, 왜 그러냐면 닫는 순서대로 하기 때문에.

그래서 쿳다까 니까야가 맨 마지막에 닫는 형태들을 띠게 됩니다.

 

그렇게 봤을 때 설혹 그 뒤에 일어난 사건들에서 "장부경전은 누군가가 암송해가지고 전하라" 한 것이 4가지 밖에 없습니다. "4가지 니까야 밖에 없다 그러면 하나의 니까야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1차 결집 때 안했다", 이렇게 단정 짓는 것은 사실 무리라는 거라. 논장도 마찬가지라는 거라.

그렇게 보는 것이 맞는 것이지, 최대한 봐준다고 하더라도 논장의 지금 형태를 전부 다 풀어 한 것보다는, 적어도 목록 자체는 이미 결집에 들어가서 확정이 되고 있었다는 거라.

 

만약에 그렇게 확정이 안 되었다고 할 것 같으면 그 뒤에 2차 결집, 3차 결집에서 논장을 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부처님이 열반한 상태이기 때문에! 방법이 없습니다. 테라와다의 방식으로 봤을 때.

만약에 논장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써 쫙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부처님이 말한 목록, 쉽게 말하면 "꾸살라 담마 아꾸살라 담마..." 해가지고 이렇게 발췌론이 있습니다. 발췌론에 "꾸살라 담마", 그다음에 "아꾸살라 담마" 이런 식으로 이미 형태가 정해져 있습니다. 지금 현재 스님들은 독송할 때 그 형태만 가지고 하고 있습니다. "꾸살라 담마는 이런 것이다" 하면서 길게 설명을 한 걸 가지고 암송을 안 합니다.

 

그런 "꾸살라담마 아꾸살라담마 아뱌까따 담마" 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들이 없다, 그럼 뭐로 가지고 그걸 논장을 만들 거라? 테라와다 방식은 그렇게 논장을 만들 방법이 없습니다.

거기다 살을 붙이는 것이 그 후대에 3차 결집 때 붙여질 수는 있어. 그렇지만 결집 자체를 그렇게 안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거라.

 

우리 한국 테라와다 불교 교단도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이 뭐냐면, 논장을 부정하는 스님도 테라와다 스님들이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자기가 하고 있는 수행방법 아니면 자기가 하는 거 외에 다른 것들은 받아들이지 않을려고 하는 것들도 있고, 그래서 이런 것들도 언젠가는 정립이 돼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입멸 후 1차 결집 이후에 뿌라나(Puraṇa)라고 하는 스님도 그런 취지를 취했습니다. 1차 결집이 끝나고 나서 뒤에 왔는데,

“1차 결집 때 이런거 이런거 했습니다. 스님은 받아들이십니까?”

“나는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다. 나는 부처님한테 들은 것이 있으니까 나는 나대로 할 거야.”

그러면서 결집하고는 관계없이 자기 식대로 하게 됩니다. 근데 그런 것은 어떻게 됐어요? 그 이후에 그 스님이 등장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 교단 내에서 이미 사라져버리는 상태가 돼버립니다. 그렇다고 해가지고 테라와다 스님이 아닌 것은 아닌데, 교단 밖으로 나가버리는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봤을 때는 인원만 많으면 어떻게 좀 해보겠는데 이건 몇명되지도 않고 뭐빼고 뭐빼고 하면 남는 놈 하나도 없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럴 때도 있습니다. 속으로.

어쨌든 그런 것은 여러분들이 조금씩 시정을 해야 됩니다. 지금 현재 여러분들이 결집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하고, 실제 테라와다에서 가르치는 것하고는 차이가 좀 많이 난다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부처님 입멸 후에 1차 결집이 바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결집에서 또 하나 궁금한 것이, "왜 너희끼리 했느냐?" 하는 겁니다.

비구 스님들도 왜 그때는 비구니 스님들도 있었고, 재가자들도 있었는데, 너희들끼리 비구 스님들만 했느냐 하는 겁니다. 왜 그랬을까?

왜 비구 스님들만 결집했을까?

(수행자 : 아라한들만 결집했기 때문에)

뭐 비구니 스님들은 아라한이 없었어요? 재가자도 아라한이 있었는데!

 

재가자들은 일반인으로 재가 아라한이 28분이 있었다고 그렇게 얘기하는데, 그건 엄밀히 조사해보면 사실은 열 분입니다. 나머지는 불환과나, 아니면 다른 것입니다. 왜 그러냐면 그 뒤에 주석서들이나 경전들을 다 취합을 해보면, 만약에 아나타삔디까는 아라한에 이른 게 아니거든. 근데 어떤 사람은 아라한에 포함을 시킵니다 그분도. 왜 그러냐면 어디에 태어나? 아라한이 태어날 리가 없잖아? 어쨌든 그런 것들을 다 조사를 해보면 재가 아라한은 한 열 분 정도 돼요.

 

열 분 되는데 그중에 깨달음에 이르고 나서 바로 반열반에 들어버리고 죽어버리는 사람들이 그중에 반 정도 되고, 그중에 반은 '재가생활로는 도저히 아라한의 상태를 유지못한다' 해가지고 출가를 바로 해버리고, 이런 상태라는 거라. 그래서 테라와다 불교 입장에서 "재가 아라한은 불가능하다" 그런 얘기들을 하는 거라.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능하기는 하는데 그것을 오래 유지를 못하고 어떤 형태로든 다른 형태로써 취해야 된다는 거라. 그런 것들입니다.

어쨌든 재가 아라한들도 있었단 말이라. 근데 왜 비구 스님들은 같이 안 했어? 그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결집을 하루 이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때까지 결집을 보면 보통 결집들이 아무리 짧아도 3개월이고, 안 그러면 몇 년 되는 경우들도 있고, 그런데 비구 스님들하고 비구니 스님들하고 한 방에 다 집어넣을 수 있어요? 그 몇 년 동안? 불가능합니다.

그럼 결집을 따로 해야 됩니까? 그럼 별중이 돼버리는데? 방법이 없습니다.

비구 스님들이 보름마다 하는 빠띠목카를 할 때 다른 비구니 스님들도 못 들어오고 재가자들도 못 들어오고 비구 스님들만 하게 됩니다.

 

만약에 세력이 그때 당시에 비구니가 훨씬 셌다고 할 것 같으면 비구니 스님들끼리 결집을 했겠지. 아니면 재가자들이 힘이 셌다면 재가자들이 결집을 했을 거라. 어떤 식으로든. 근데 그때 당시에는 비구 스님들이 가장 힘이 강력했기 때문에 비구 스님들이 결집을 하게 된 겁니다.

그것을 일부러 비구 중심으로 가기 위해서 재가자들을 다 배제했다? 억측부리지 말라는 거라. 그런 억측을 부린다는 거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그러면 그렇게 비구 중심으로 했을 거 같으면 재가자에 대한 경을 싹 다 빼버리고 결집을 하지, 그럼 뭐하러 그걸 집어넣고 결집을 할 거라? 그런 것은 아니라는 거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를 하고, 그렇지만 결집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게 존재를 한다는 거라.

부처님 가르침이 재가자를 위해서 설한 것도 있고, 출가자들을 위해서 설한 것들도 있고, 비구니를 위한 것들도 있고, 그리고 비구니들이 깨달음을 이루었을 때 읊었던 내용들도 있고, 그 모든 것들을 그대로 세력이 큰 무리들이 결집을 해가지고, 후대에 그대로 유지를 시키고 했던 것들입니다.

그런 의미들이라는 생각을 분명하게 하면 좋습니다.

이거는 안 해도 되겠죠? 1차 결집은.

 

결집은 불교사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중요한 부분이면서도 여러분들이 간과해서도 안 되고, 또 잘못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함부로 책에 있는 대로, 또 지금 현재 여러분들이 대승불교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불교사를 그대로 인용하고 이해한다? 그것은 참 위험한 발상이 됩니다.

그런 오류들은 제거하도록 해야됩니다. 지금 현재 테라와다 불자로 살고자 할 것 같으면 그런 오류들은 저지르지 말아야 됩니다. 그것은 지금 현재 동남아시아권에서는 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배우고 있다는 겁니다.

 

어제 그런 적이 있습니다. 어제 밀양에 어느 스님이 공양을 대접하려 간다 해가지고 공양을 하러 갔는데, 거기서 공양을 했어. 했는데 그 스님이 하는 얘기가 뭐냐면 자기는 테라와다 불교가 좋기 때문에 가끔씩 스님들에게 보시하고 공양을 한다는 거라. 그런데 하는 것은 좋은데 자꾸 대승불교 스님은 스님도 아닌 것처럼 하고 비방한다는 거라. 그래서 어떨 때는 참 꺼림칙하다 하고 할 때가 있어요.그건 뭐냐면 제대로 불교의 역사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지 못했을 때 그런 결과들을 갖습니다. 자기들이 수승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결집하고 나서 그 뒤에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집을 인정 안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럼 결집한 무리들은 그분들에 대해서 어떻게 했을까? “너는 우리편 아니니까 가라!” 하고 내보냈을까? 전혀 불교 역사에서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했다고 할 것 같으면, 만약에 근본분열 할 때가 됐다 그러면 테라와다에서는 대중부가 하나 생겨나가지고 떨어져나가게 되고, 그러면 대중부가 떨어져 나간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와서 욕을 하고 그것은 불교가 아니다 하고 탁 끊어버렸을 거라. 근데 그런 적이 있습니까?

오히려 개정까지 합니다. 쉽게 말하면 같은 승려로서 있다가 그룹을 지어가지고 나갔기 때문에 요 승려들도 똑같은 승려로서 인정할 수 있는 방법이 뭔가 하는 것을 갖다가 궁리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전에는 같이 모여가지고 부처님 가르침을 똑같이 이해하고 그것에 대한 견해를 같이 하는 것, 그리고 그 스님들이 한 율장을 가지고 똑같이 합송하고 하는 다른 이견이 없는 것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한 무리의 승가'라고 얘기했는데, 인제 떨어지고 나니까 어떻게 돼요? 이거는 딴 살림 차리고 있거든. 그러니까 저희끼리 모임도 하는 거고, 저희끼리 경전들도 만들고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하는 것같이 하게 됩니다.

그것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이 무리에 대해서 이걸 인정하려고 그럽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적인 부분을 흔들지 않는 내에서 이견이 있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런 취지인 거라. 그래서 상가의 개념이 후대로 가면서 자꾸 바뀌어나가는 거고, 그것이 결집을 통해서 바뀌어져 나가게 됩니다.

그런 역사가 있는데 감히 '내가 하고 있는 것만 옳고 니는 틀렸다?' 그것이 설혹 틀렸다고 하더라도 그걸 그렇게 욕하고 배척할만한 이유가 되느냐는 거라.

 

그건 잘못 배워서 그런 겁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것이 좋으면 자기 것의 즐거움 속에서 그냥 삽니다.

어떠한 경우든 자기 거 즐거움 속에서 사는데 비방할 마음이 생겨나지를 않는 거라.

 

「깨달은 자의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고 저번에 한 번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남의 것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자기 것들을 얘기한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조건들을 살펴서 자기 것들을 얘기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깨달은 자의 특징입니다. 두드러진 현상들입니다.

 

그러면 비방한다 할 것 같으면 자기는 적어도 깨달음에 이르지도 못했다고 할 뿐 아니라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기 얼굴에 침뱉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 오류들은 범하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전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