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집중수행 법문

2025 집중수행 4일차 - 도의청정 (20250916. 오덕훈련원)

담마마-마까 2025. 9. 27. 17:44

* 2025 집중수행 4일차 도의청정 (20250916. 오덕훈련원)

<6:18초부터 법문이 시작됩니다.>

 

대장로 스님께 법문을 청해 듣겠습니다.

먼저 청법게송과 삼귀의 팔계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대중]

부처님께서는 비록 완전한 닙바나에 드신 지 오래되었을지라도,

이 법회에 동참한 대중 모두, 존경하는 스님께 예경 드리고,

저희들의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부처님의 진리를 청하옵니다.

제가 들어 알기로, 이 세상 중생들 가운데

욕망이 적고 번뇌가 적은 이들이 있사오니,

존경하는 스님, 저희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주시옵소서!

 

[대중]

Mayaṁ(혼자일 때: Ahaṁ) bhante tisaraṇena saha

aṭṭhaṅgasamannāgataṁ uposathaṁ yācāma(혼자일 때:yācāmi).

마양(혼자일 때: 아항) 반떼- 띠사라네-나 사하

앗탕가사만나-가땅 우뽀-사탕 --(혼자일 때: --).

 

Dutiyampi mayaṁ(혼자일 때: ahaṁ) bhante tisaraṇena saha

aṭṭhaṅgasamannāgataṁ uposathaṁ yācāma(혼자일 때:yācāmi).

두띠얌삐 마양(혼자일 때: 아항) 반떼- 띠사라네-나 사하

앗탕가사만나-가땅 우뽀-사탕 --(혼자일 때: --).

 

Tatiyampi mayaṁ(혼자일 때: ahaṁ) bhante tisaraṇena saha

aṭṭhaṅgasamannāgataṁ uposathaṁ yācāma(혼자일 때:yācāmi).

따띠얌삐 마양(혼자일 때: 아항) 반떼- 띠사라네-나 사하

앗탕가사만나-가땅 우뽀-사탕 --(혼자일 때: --).

 

존경하는 스님,

저희들이(혼자일 때: 제가) 불재일을 맞이하여

삼귀의와 팔계를 받고자 하오니 친절히 인도하여 주십시오.

 

두 번째도 존경하는 스님,

저희들이(혼자일 때: 제가) 불재일을 맞이하여

삼귀의와 팔계를 받고자 하오니 친절히 인도하여 주십시오.

 

세 번째도 존경하는 스님,

저희들이(혼자일 때: 제가) 불재일을 맞이하여

삼귀의와 팔계를 받고자 하오니 친절히 인도하여 주십시오.

 

[스님]

Yaṁ ahaṁ vadāmi taṁ vadetha.

(양 아항 와다-미 땅 와데-.) 저의 말을 따라 하십시오.

 

[대중]

Āma bhante.

(-마 반떼-.) 잘 알겠습니다, 스님.

 

[스님의 선창 따라서]

부처님께서는 비록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붓닷사.)

 

Buddhaṁ saraṇaṁ gacchāmi. 붓당 사라낭 갓차미

Dhammaṁ saraṇaṁ gacchāmi. 담망 사라낭 갓차미

Saṅghaṁ saraṇaṁ gacchāmi. 상강 사라낭 갓차미

Dutiyampi buddhaṁ saraṇaṁ gacchāmi. 두띠얌삐 붓당 사라낭 갓차미

Dutiyampi dhammaṁ saraṇaṁ gacchāmi. 두띠얌삐 담망 사라낭 갓차미

Dutiyampi saṅghaṁ saraṇaṁ gacchāmi. 두띠얌삐 상강 사라낭 갓차미

Tatiyampi buddhaṁ saraṇaṁ gacchāmi. 따띠얌삐 붓당 사라낭 갓차미

Tatiyampi dhammaṁ saraṇaṁ gacchāmi. 따띠얌삐 담망 사라낭 갓차미

Tatiyampi saṅghaṁ saraṇaṁ gacchāmi. 따띠얌삐 상강 사라낭 갓차미

 

Pāṇātipāt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띠빠-- -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

살아있는 생명 해치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Adinnādān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아딘나--- -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

주지 않는 물건 가지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Abrahmacariy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아브라흐마짜리야- -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

모든 성적인 행위를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Musāvād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무사--- -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

거짓되게 말하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Surāmeraya majja pamādaṭṭhān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수라--라야 맛자 빠마-닷타-- -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

방일의 원인이 되는 술이나 약물들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Vikālabhojan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위깔-라보-자나- -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

때 아닌 때에 먹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Nacca gīta vādita visūkadassanā mālā gandha vilepana

dhāraṇamaṇḍana vibhūsanaṭṭhān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낫짜 기-따 와-디따 위수-까닷사나- -- 간다 윌레-빠나

-라나만다나 위부-사낫타-- -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

노래하고 춤추며 흥겹게 즐기는 장소에 가거나, 꽃이나 향수로

몸을 치장하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Uccāsayana mahāsayan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웃짜-사야나 마하-사야나- -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

넓고 높은 침상 위에서 잠자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대중] Imāni aṭṭha sikkhāpadāni samādiyāmi.

(이마-니 앗타 식카-빠다-니 사마-디야-미)

이와 같은 팔계를 잘 지키겠습니다.

[스님]

Imāni aṭṭha sikkhāpadāni, 이마-니 앗타 식카-빠다-,

Sīlena sugatiṁ yanti, Sīlena bhogasampadā,

(--나 수가띵 얀띠, --나 보-가삼빠다-,)

Sīlena nibbutiṁ yanti, Tasmā sīlaṁ visodhaye.

(--나 닙부띵 얀띠, 따스마- -랑 위소-다예-.)

[대중]

Āma bhante. (-마 반떼-.) 잘 알겠습니다, 스님.

 

다음에는 팔계 끝나고 나면 "이마니 앗타 식카빠다니 사마디야미" 그것만 하도록 하십시요.

자, 편하게 앉아봐요.

 

오늘 해야 되는 건 도의청정이죠.

의심을 없애지는 못해도 의심을 눌러버리고 의심을 걷어내버리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청정을 얘기합니다. 도의청정에 이르면 뭐가 될까? 저기 교재 69페이지 한번 펴봐요.

의심(疑)이 걷힌다 ◉ 하고 큰 타이틀이 있죠?

그 밑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소예류자)

소예류자(小豫流者) ◉ 소예류자에 이르른다.

도의청정에만 이르러도 소예류과는 얻은 상태가 된다 하는 뜻입니다. 근데 얻었다 해가지고 거기서 끝나는 건 아닌데, 계속적으로 반복을 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꾸준하게 노력은 해야 되는데, 큰 번뇌들은 잘 안 일어납니다. 소예류자에 이르르고 나면.

 

이르는 길 딱 하나만 가르쳐 드릴게요.

아까 앉아있을 때 좌선하고 있으니까 다리 통증이 있었죠? 그러면 ‘통증, 통증’ 하고 관찰했을 거란 말이라. 그 통증 관찰하니까 어떻게 보이든가요? 쑤시든가요? 따갑든가요? ‘통증, 통증’은 개념이고, 쑤시고 따갑고 하는 것은 실재하는 몸의 현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알아차릴 때, 처음에는 마음을 붙이기 위해서 ‘통증, 통증’ 했지만은 조금 있으니까 요게 쑤시기도 하고 따갑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고 뭐가 자꾸 바뀌니까 그에 맞게끔 명칭을 붙일 거 아니라. 그런데도 이게 안 없어져.

 

그러다가 요놈이 ‘통증, 통증’ 했는데 통증이 안 보이고, 조금 전에 통증은 물질적인 현상이죠? 정신적인 현상으로 탁 넘어가버립니다. 뭐가 일어날까?

짜증이 탁 일어나는 거라. 이게 그냥 없어지면 딱 좋겠는데 이게 안 없어지니까 그냥 싫어하는 마음이 탁 일어나는 거라. 그러니까 열이 그냥 밑에서부터 그냥 착 올라오는 거라. 열기가 올라오는 거라. 그 열이 올라오는 것은 물질적인 현상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거하고는 차원이 틀려집니다. 구분 되어지죠?

 

정신적인 현상과 육체적인 현상은 다른 거라. 다른 거라. 그래서 그것만 구분할 줄 알면은 아, 이거는 수행하기 되게 수월해진다고. 그거는 적어도 구분할 줄 알아야 돼.

그러니까 냉정하게 있는 그대로 보려고 자꾸 해야 되지, 그냥 그 속에 팍 파묻혀 갖고, ‘통증, 통증’ ‘이거 왜 안 없었어지노?’ 이렇게만 하고 그거 붙잡고 있으면은 백날 해봐야 수행 안 늘어요.

그냥 딱 그 자리에서 그걸 보고만 있으면 돼. 그러고 나서 일어나는 현상들, 그게 쑤시는 현상이 됐든 아니면 밀쳐내는 마음이든 무엇이든 있으면 그걸 따라서 그것만 그냥 알면 돼. 그거 그냥 ‘밀쳐내는 마음이 있네’ 하고 밀쳐내는 마음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라.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을 해.

 

그러다가 보면은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져 있고,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리고 그걸 붙잡으려고 하는, 지금은 붙잡으려는 마음은 없어. 왜 그러냐면 다 싫은 것들이 일어나니까. 그냥 다 밀쳐내려고 그래. 그 밀쳐내려고 하는 마음이 없으면은 요게 변해요. 바뀌어요.

쑤시는 것도 ‘어, 쑤시네’ 하고 요렇게 쓱 보니까, 요게 ‘띠띠띠띠’ 하더니 그냥 없어져 버렸어. 그런데 그러고 나서 또 다른 게 안 일어나면 되는데 요게 또 또 또 일어나네 뭔가가. 뭔가가 또 일어나. 그러면 그냥 또 편안하게 그 물질적인 현상을 그냥 보면 돼. 그러면 그게 금방 또 아까보다도 더 빨리 사라져. 그런데 이번에는 또 나타나네. 그러면 인제 재미있는 거야 그때부터는. 나타나니까 요걸 편안하게 보기만 하니까 쏙 사라지거든.

 

정신적인 현상보다도 물질적인 현상이 훨씬 많이 일어납니다. 정신적인 현상은 별로 잘 안 일어나. 요것 쫓아가기 바쁘기 때문에.

왜 그런지 알아요? 편안하게 대상을 보기만 해도 그 대상이 엄청 많이 일어나거든. 지금은. 엄청 많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내가 그거 따라가기에도 바빠. 정신적인 현상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 그거 알 필요도 없고 지금은. 가끔씩 일어나는 거 그거 그냥 일어났는 갑다 하고만 있지, 그것보다는 물질적인 현상을 쫓아가기도 바쁜 거라. 경험들 해봤죠?

적어도 여기까지는 왔으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가지고 빨리 변하는 것들이 나오면 마음은 어떻겠어?

무상하게 느껴지는 거라. 싫어. 자꾸 저렇게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그것도 안 사라지고, 전에는 뭘 관찰하면 그게 안 변해서 죽겠는데, 이제는 요놈이 자주 사라져버리고 또 다른 게 나타나고 자꾸 나타나니까, 그게 더 싫은 거라. 그래서 그냥 마음이 ‘아, 저거 좀 안 나타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싫은 마음이 탁 일어나버리는 거라.

그러면 이제 수행 안 할려고 그래요. ‘아이고, 오늘 그만하자.’ 더 이상 더 이상 못 관찰하겠다는 뜻이라. 자꾸 바뀌어 싸니까.

 

그런데 이걸 못 넘으면 거기서 그냥 주저앉아 버리는 거고, 그걸 탁 넘어서 버리면, 그 싫어하는 마음을 갖다가 탁 관찰해서 그것도 딱 사라지는 게 보이면은, 그게 종류가 틀립니다. 마음의 현상들은.

그런 열이 올라오는 경우들도 있고, 뻣뻣해지는 경우들도 있고, 또 막 옆에서 뭔가가 막 내 자리니까 너는 비켜라 하듯이 그냥 막 밀치듯이 이렇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고 그래요. 마음의 현상은 물질적인 현상하고 비슷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보면 확연하게 틀립니다. 그런데 어쨌든 이걸 넘어서야 돼.

 

마음의 현상을 탁 넘어서야 되는데, 여기서 보통 사람들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뭐냐면, 그런 마음의 현상이 일어났다, 그럼 만약에 뻣뻣한 게 일어났다고 치자.

뻣뻣한 거는 밀쳐낼려는 마음 때문에 뻣뻣한 거거든. 내가 안 움직일려고 하니까, 자꾸 변해싸니까 안 변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에 일어난 건데, 내가 관찰을 갖다가 뭐를 하고 있느냐면 아, 뻣뻣하다는 데다 관찰을 하고 있는 거라. 이러면은 그냥 수행은 스톱이 돼버리는 거라.

 

물질적인 현상으로 인해가지고 정신적인 현상이 일어났으면은, 지금은 물질적인 현상이 훨씬 많잖아. 그러면 물질적인 현상을 관찰할려고 해야 되는 거라.

정신적인 현상이 일어나면 뻣뻣한 것들이 일어났다 할 것 같으면 ‘뻣뻣한 게 일어났다’ 하고 알면 되는 거라.

나중에 가서 정신적인 현상을 관찰할 때 관찰하는 즉시 탁 사라지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안 돼. 그런데 이걸 하고 있으면 더 힘들어. 마음도 힘들고 수행하기도 더 힘들어지는 거라.

 

그래서 이걸 관찰하려고 하지 말고, 뻣뻣한 게 왜 일어났죠? 통증 때문에 일어났잖아. 통증 중에서 지금 가장 강하게 일어나는 게 뭐라? 사람마다 틀리겠지. 따가움이 있을 것 같으면 따가움을 보라는 거라. 따가움을 보면 따가움이 확 사라져버려요.

정신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상태에서, 그게 일어났다고 알고 나서, 물질적인 현상의 가장 두드러진 것을 딱 관찰하고 나면, 요게 한 번에 싹 사라지듯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면 통증은 싹 사라져버리는 거라.

 

그렇게 되면 마음은 갑자기 대상을 잃어버리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벙쪄버립니다. ‘, 이게 뭐지?’ 이래버립니다. 그것도 잠시라. 그러고 나면 마음은 너무 좋아. 안 아프고 고통스러운 게 없으니까, 너무 행복한 거라.

그러면 사람들이 대부분 뭐라는 줄 알아요?

“나 아라한 됐어” 그럽니다. 안 그러면 “예류과에 이르렀어” 소예류과야. 소예류과. 그게 소예류과라고. 다른 것이 소예류과가 아니고, "소예류과를 경험을 한 상태"라. 대상을 보고 대상을 사라지게 만들어서,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아주 평화롭고 고요한 상태고 행복한 상태가 유지가 돼 있는 상태라.

이게 어떤 사람은 하루가 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한 달이 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게 약하면 금방 생겼다가 보로로로 사라지듯이 하고 다 틀려 그거는. 얼마만큼의 강도로 경험했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유지되는 것은 틀려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수행하러 와가지고 되게 기분 좋아갖고 싱글싱글 하고 있어. 그게 보면은 다 이 현상들을 경험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거라. 그런데 이제 착각을 해버리면 안 돼. 그것이 인제 수행의 끝은 아니거든. 이제 수행의 맛을 딱 본 거라. 이제부터 실제로는 시작이 됐다고 판단을 해야 되는데, 대부분 100명 중 100명은 그게 끝으로 판단을 해버린다는 거라. 좋으니까 너무 좋으니까.

아까 하고는 정반대의 마음이 됐고, 너무나 평온한 상태가 유지가 되고, 대상은 보면은 그대로 그냥 알아차려지고 자동으로 사띠가 되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는 놓치는 게 훨씬 많은데 지는 다 관찰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해버리는 거라. 실제로는 엄청 많이 놓칩니다. 그런데 큰 것들만 분명히 알고 있는 데도 마음은 성성하게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거라. 그 정도로 마음은 평화로운 상태가 돼 있습니다.

 

그게 오늘 여러분들이 경험해야 될 부분이고, 알아야 될 부분들입니다. 이해되죠?

그런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되는 게 있습니다.

 

오늘 해야 될 게 뭐에요? 도의청정이죠.

의심을 걷어내는 청정의 상태입니다. 뭘 의심하는 걸까?

내가 이 수행 계속해도 되나?’ ‘, 이걸 하니까 힘들기만 힘들고, 내가 이거 하고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까?’ 그게 가장 대표적인 의심이라 쉽게 말하면. 그런데 그거는 뭐로 가지고 몰아내져요? 수행해 보니까 되거든. 되니까 완전하지는 안 해도 ‘아 그래. 하면 되겠네’ 하는 어렴풋이라도 마음이 드는 거라. 완전하게 확신이 아니라도.

 

실제로는 이 단계에서는 완전하게 확신이 들어서 의심이 완전히 없어질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 점점 더 그런 것들이 수행하다 보니까 점점더 의심이 점점 엷어지고 나중에는 이제 다시는 의심하지 않은 상태에 탁 도달했다 할 것 같으면 이미 그거는 소예류과가 아니고 "예류과에 이르는 상태"가 돼버리는 거라. 그건 아직 한참 멀었어요. 한참 멀었으니까,

 

지금은 그래도 의심하지 말고 그냥 한번 해봐야지. 스님이 저래 하라니까 그냥 뭐 그냥 의심하지 말고 한번 해보자. 그거 한 일주일 뭐 그런다 해가지고 내가 뭐 어떻게 잘못되는 것도 아니고 한번 해보지 뭐. 하고 그냥 믿고 그냥 해보게 되는 거라.

쉽게 말하면 불··승에 대한 의심들, 수행에 대한 의심들, 그런 것들을 일단은 묻어두고 안 일어나게끔 만들고 나서, 수행을 하게끔 돼서, 어느 정도 조금씩 체험을 하게 되면 가능해지는 상태입니다.

 

그것만 있는 게 아니고, 수행해서 그러면 하면은, 배가 불러오면 불러온다고 알아차리고 꺼지면 꺼진다고 알아차리고 있는 상태라.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현상들을 알고 있어요. 그것만 해가지고 의심은 절대 안 사라집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봅시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으로, 소리가 들리면 소리가 들린다고 알아차리죠. 그때 배는 일어나고 사라지고 있습니까? 배는 일어나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죠. 그때 마음을 다시 또 여기다가 탁 기울이니까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알게끔 됩니다.

 

쉽게 말하면 의도가 있어야만이 뭔가 대상을 알게끔 된다는 거라. 뭔가 대상을 하게끔 된다는 거라. 이 상태는 돼야 돼. 의도가 앞서야만이 뭔가가 실행이 되고, 뭔가를 알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그 대상이 없으면 마음조차도 안 일어납니다. 아까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으니까 이 마음은 이 대상은 내한테 지금 없는 거잖아. 그럼 이 마음에는 이게 안 일어나. 대상이 없으면 그 마음은 안 일어나게끔 되어 있는 거라.

그런데 이 대상을 알려면 마음이 먼저 일어나야만이 이 대상을 알 수가 있다는 거라.

 

그래서 오늘부터는 수행할 때 이 의도를 내는 훈련들을 열심히 해야 됩니다.

어떻게 낼까? 무조건 걸을 때는 걷기 전에 걸으려고 하는 의도를 먼저 보려고 해야 돼. 내가 걷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지를 보라는 거라. 걷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을 때 발이 들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는 것들을 볼려고 자꾸 노력해야 되는 거라.

이게 가장 기본적인 1단계 입니다.

 

마찬가지로 배를 본다. 안 봐도 지 혼자서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고 있어. 그런데 ‘배 한번 볼까?’ 하는 마음을 탁 내고 나면,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게 보여. 그게 의도를 내고 대상을 보는 순서입니다다.

그래서 무조건 앉았다 할 것 같으면 대상이 배니까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먼저 탁 가서 보려고 하고, 경행하라 하니까 무조건 의도부터 안 내고 무조건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이렇게 하지 말아라는 거라. 의도가 먼저 일어나는 걸 먼저 보라는 거라.

 

그런데 너는 의도가 일어났는지 안 일어났는지 어떻게 알 거라? 찰나 간에 착착 지나가는데, 어떻게 알아?

(수행자 : 심청정이 되면)

심청정이 되면? 당연히 지금 청정이 되어 있는 상태지. 심청정이 안 되어 있으면 사띠가 안 됩니다. 사띠는 어떠한 경우든지 마음이 청정한 상태에 있을 때 사띠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그건 당연한 거고,

 

멈추는 게 보여야 돼. 멈추는 게 보이면 아, 의도가 일어나는 게 보여.

멈추는 게 보이지 않으면 의도가 일어나서 그것이 진행된다는 사실을 몰라. 그냥 한 뭉텅어리로 알아버리게 되는 거지. 그런데 안 멈추는 게 어딨어? 배가 불러왔으면 이게 아주 짧은 찰나지만 멈춰야만이 다시 꺼질 거 아니라. 발을 들어 올렸으면 멈춰야만이 이게 내려올 거 아니라. 그래서 멈추는 게 반드시 있어요.

그리고 내가 뭔가 출발하기 전에 멈춰 있기 때문에 출발이 가능해요. 그럼 멈춰 있다는 사실을 알도록 해야 되는 거라. 멈추는 걸 알면 그다음에 일어나는 것이 마음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게 보여. 그게 의도라는 거라.

 

그래서 의도적으로라도 하면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할 때 끝까지 따라가. 끝까지 따라가려는 훈련들을 자꾸 해야 돼. 인제는 그냥 대충 그냥 슬금슬금 이렇게 해가지고는 안 돼. 수행을 하더라도 인제는 짬지게 완전하게 다 따라가서 딱 끝나는 거 보고, 그러고 나서 의도가 일어나는 것까지도 보면 좋은데, 설혹 못 보더라도 끝까지 따라가서 보라는 거라. 그러고 나서 다시 또 시작하는 거 처음부터 볼려고 노력을 해야 되는 거라.

그렇게 해야만이 멈추는 게 보이고, 의도가 일어나는 게 보입니다.

 

그게 바로 원인 · 결과입니다. 쉽게 말하면 의심 없이 대상을 탁 알아차리려고 할 것 같으면 그 원인 결과에 대한 것들을 이해를 하고 있어야만이 가능해진다 하는 겁니다.

이걸 이제 확대해버리면 나는 어찌 태어났을까? 과거 전생에 뭐였을까? 또 내가 다음 생을 안 받으려면 어디에서 내가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될까? 하는 것들을 알게끔 됩니다. 아직은 이해하기 어렵죠? 한 시간 전에 것도 잘 기억 못하겠는데, 과거생을 어떻게 기억할려고? 근데 됩니다. 이렇게. 의도를 따라가고 하다 보면 원인·결과를 따라 가면은 그게 보여집니다.

어쨌든 과거를 몰라도 괜찮고 미래를 몰라도 괜찮아요.

 

그런데 수행에서 "번뇌가 안 일어나는 연결 고리점은 뭐다" 하는 거는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뭐가 연결 고리점일까? 느낌과 갈애 입니다.

느낌에서 딱 끝나버리면 갈애가 안 일어나져요. 쉽게 말하면 탐진치가 안 일어나져요. 안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 계속 사띠를 하고 있는 거라. 그래서 사띠하는 대상이 뭐라고?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거라. 느낌으로.

 

그래서 그 느낌들을 자꾸 보려고 하면은 느낌이 싹 일어나서 사라지고, 일어나서 사라지고 하는 것만 보면은 거기서 끝나버리고 마는데, 갈애가 일어날 이유가 없어져 버리는 거라. 그러면 여러분들 그 연기의 고리를 끊고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물론 옛날에 계속 만들어 놓은 것이 있어가지고 그걸 받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리해도 어쨌든 그걸 끊는 연습을 계속해 나가면은 결국에는 완전하게 끊어버리는 상태가 됩니다. 그럼 윤회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거라. 고리가 끊어지면은 완전하게 끊어지면 윤회로부터 벗어나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잘 이해를 하도록 해야 됩니다.

 

수행할 때 어떻게 먼저 하라고? 의도를 먼저 알아차릴려고 하라.

동작을 하든 아니면 생각이 일어나든 뭐든 간에 뭔가 그걸 하려는 마음이 탁 일어나는 것들을 먼저 자꾸 봐야 됩니다. 그게 보고 뭔가 이루어지는 것들이 원인·결과로서 되는구나 하는 것들을 자꾸 이해하려고 그렇게 해야 됩니다.

수행처에 왔죠? 여러분들이 올려고 하는 마음을 냈기 때문에 왔죠? 그것도 원인·결과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가고자 하는 마음을 냈기 때문에 왔고, 그리고 여기 온 결과가 있는 거고, 오늘 마치고 가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가려는 마음을 냈기 때문에 가게끔 되는 거라. 뭐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어가지고 가는 것이지, 수행하기 싫어서 가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어쨌든 할려고 해보십시요.

 

자, 그러면 느낌에서만 계속 관찰하고 갈애가 안 일어나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느낌만 계속 관찰되어지면 마음이 어떤 상태일까?

그게 천천히 관찰되는 것이든 아니면 빠르게 변하는 것이 관찰이 되어지는 것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거는 그 사람의 상태에 따라 틀려질 수밖에 없는데. 마음은 선한 마음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거라. 마음은. 어떠한 경우든지 불선한 마음이 안 일어나지는 거라. 그래서 느낌만 계속 관찰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나한테 ‘죽일 놈 살릴 놈’ 하더라도 나는 그것으로 인해서 ‘죽일 놈 살릴 놈’하고 들리지를 안 해.

 

그런데 참 재밌는 게 그런 소리가 들리잖아요. 그런데 싫은 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가 귀에서 들릴 때는 진짜 바늘을 가지고 그냥 콕콕콕콕 찌르듯이 들려요. 굉장히 아프게 들리거든.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좋은 말로 해주는 말들은 귀에서 들릴 때는 그런 현상이 없어요. 그냥 파동으로서 이렇게 탁 부딪히면서 들리게 되지. 그래서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자기한테 들리는 소리가 그래요.

 

어쨌든 그렇게 들린다고 하더라도 그렇게만 알아차리고 있거든 그 느낌을. 그러면 느낌을 알아차리면 아무리 그게 뭐 송곳으로 찌르듯이 들리든 아니면 뭐 파동 치듯이 그냥 부슬부슬 비웃는 것처럼 들리든, 어쨌든 들리더라도 그것은 일어났으면 사라지게 돼있는 거라. 그래 갖고 사르르 사라지고 나면 끝이야 그냥. 저 사람이 내한테 싫은 소리를 했니? 하는 생각조차도 안 일어나져요. 뭔 말을 했는지는 분명하게 아는데, 그것으로 인해서 내 마음에는 성냄이나 탐심이나 이런 것들은 안 일어난 상태로서 ‘왜 그럴까’ 하고 생각은 할 수는 있겠지. 그게 끝이야.

쉽게 말하면 마음이 굉장히 깨끗해져 있는 상태라.

 

그게 지금 여러분들이 수행해서 얻어야 되는 것이고, 지금 느낌을 계속적으로 관찰해 나가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게 잘 돼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이런 상태가 돼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 외부적인 것이든 아니면 마음속에 있는 것이든 그 대상으로 인해 가지고 자꾸 싫은 마음이 자꾸 일어난다고 그러면, ‘아, 내가 또 느낌관찰 하는 것을 놓쳤네’ 하고 판단을 하라고.

 

느낌을 관찰하면 그것으로 인해서 얻는 효과는 굉장히 많습니다.

좋거나 싫은 것들이 없어져 버려요. 마음이 이렇게 막 들떠버리거나 우울해지거나 하는 이런 것도 없어져 버려요. 쉽게 말하면 정신적으로 안정돼 버리는 거라. 그러니까 뭔가 막 시달리고 하는 것들은 없어져 버리는 거라. 느낌만 계속 관찰하니까 그게 가능해진다는 거라.

 

그다음에 관찰하는 형태가 바뀌어버립니다.

그전에는 이렇게 보면 누구가 보이고, 뭔 소리 했는지가 들리고, 이게 맛있는지 안 맛있는지 이게 먼저 탁 알아지는데, 인제는 그게 먼저 알아지는 게 아니고 그냥 보여지는 거라. 그냥 들려지고, 그리고 그냥 맛 봐지게 되는 거라. 그러고 나서 갈애가 일어나면 ‘어, 이거 되게 맛있는 거네’ 하고 알게 되는 거고. 또 갈애가 일어나서 보면 ‘어? 쟤 머리 바뀌었네’ 하고 알게 되는 것이지, 맨 먼저 그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뜻이라.

느낌만 계속적으로 관찰하면 그냥 보여져. 저 사람이 누군지는 알아. 어떤 사람인지도 알고. 그렇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갈애는 안 일어난다는 거라.

 

보인다고만 먼저 탁 알아차리고 나면 갈애를 일단 차단하려고 하게 됩니다.

맛보는 것도 마찬가지 그냥 맛본다고 그냥 알아차리면 그냥 맛본다고 알고 있게 되는 것이지, 그것으로 인해가지고 ‘짜네, 시네, 맛있네’ 요런 마음이 안 일어난다는 거라. 짜고 신 거는 압니다. 그런데 짜면 조금 밥을 좀 더 넣으면 되는 거고, 안 그러면 국물을 한 숟가락 더 떠먹으면 되잖아. 그것으로 인해서 ‘아, 짜서 싫다’는 마음은 안 일어나게끔 만들어라는 거라.

그게 여러분들이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개념 자체가 싹 바뀌어버립니다. 그게 바뀌어야 됩니다.

 

그다음에 스님은 밥 먹는 양을 알거든. 요만큼 먹으면 하루 견딘다 하는 게 나와.

그런데 지금의 상태에 요 정도에 이르르게 되면은 자기의 식사량을 딱 알 수가 있어야 돼. 왜 그럴까? 밥 먹고 나서 그 영양분이 몸에 퍼져서 보존되어서 조금 조금 쓰이는 거 알아요? 그거는 알아야 될 거 아니라. 그래야 내가 지금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기력이 안 남아 있는지, 자기 몸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야 될 거 아니라.

그래도 요만큼 먹으면 내가 충분히 수행하는 데는 하루 생활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다 하고 알 것 같으면 그것만 먹게 되는 거라. 더 일부러 먹으려고 하는 마음이 욕심이 안 일어나는데 그걸 어떻게 먹어? 왜? 더 먹을려고? (수행자 : 저축을 해놓아야 됩니다.) 저축 같은 소리 한다.

 

저축을 안 해놔도 영양분은 하루 안 먹고 일주일을 안 먹고 있어서 사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견딜 수 있어 몸이. 그 정도는 되기 때문에, 굳이 매일 먹는데 그것도 하루에 스님같이 한 끼 먹는 것도 아니고 세 끼씩이나 먹으면서 뭘 또 저축해 놓으려고 그래? 다 어디 가라고. 이게 마음이 걱정이 앞서니까 그러는 거라.

느낌을 관찰하면 그런 것도 싹 사라집니다. 불안한 마음들이나 두려운 마음들, 특히 그런 것들이 먼저 사라지기 때문에, 설혹 만약에 오늘 좀 에너지를 많이 써가지고 도저히 뭐 안 될 정도가 될 것 같으면 누워 있으면 될 거 아니라. 누워서 수행하면 되는 건데 뭐. 뭘 그리 걱정을 해? 어쨌든 음식 양을 조절할 수 있을 정도가 되게끔 돼야 된다 하는 거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 물질적인 현상에서 오는 느낌과 정신적인 현상에서 오는 느낌은 반드시 다르다. 그걸 구분해야 됩니다. 그걸 구분해야 됩니다.

감기 걸린 사람? 없어? 저놈은 맨날 내 밑에서 수행한다고 하면서 감기는 또. 감기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몸에서 그걸 몰아내기 위해서 열이 발생이 됩니다. 그러면 그 열만 잘 관찰하고 있으면 바이러스는 사르르르 빠져나갑니다.

그게 육체적인 현상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열인데, 아니 정신적인 것도 아니고 그것도 못해? 그거 그냥 관찰하라는 거라. 그러면 바이러스가 빠져나가. 자다가 되게 추워갖고 어쩔 수없이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쏙 들어와 버렸으면 어쩔 수 없지만, 낮에 있는 동안에 그게 영향을 미쳤다 할 거 같으면 그건 바보 같은 짓이라. 수행 안 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어쨌든 육체적인 현상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느낌과 정신적인 현상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느낌, 그런 것들은 자꾸 구분할 수 있어야 됩니다.

 

특히 알아야 되는 거, 망상! 망상은 정신적인 현상이죠.

그거는 망상은 물결이 없을 것 같아요? 물결이 있습니다. 물결이. 망상은 어떠한 경우든지 이런 흐름이 보여야 돼. 망상의 흐름이. 그래서 흐름이 보이면 그 흐름 중에 어느 것 하나를 딱 잡고 요 상태가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보면 돼. 그래서 그게 대부분 망상을 부릴 때는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머리만 계속,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는 것은 망상이나 생각은 머리로 하는 거고, 수행은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안 같은 겁니다. 틀린 겁니다. 그런데 망상은 머리로 지금 하고 있는 거고, 다른 것들은 안 움직이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뻣뻣해져 있습니다. 망상을 하는 순간 딱 보면. 마음도 뻣뻣해져 있고 다른 육체적인 현상들도 뻣뻣해져 있는 게 보입니다.

 

그럼 뻣뻣한 거 관찰하라는 거라. 가장 강하게 일어나는 거. 그럼 망상이 보여요. ‘어, 내가 또 망상하고 있있네’ 하고 알면 사르르르 그냥 사라져 버리는 거라.

그래서 정신적인 현상으로서 그것을 관찰해가지고 그걸 육체적으로 가장 강한 느낌들로 이해를 딱 하고 나면은 그거는 사라지는 거라. 그래서 망상을 특히 많이 하는 사람들, 잡아내야 돼 빨리. 망상을 하는 습관들을 자꾸 가지면 수행할 때 자꾸 대상 놓칩니다. 그래서 수행이 안 이어져요.

 

수행이 쭉 그래도 뭐 한 30분이라도 계속 이어져야만이 뭔가 현상을 알 거 아니라. 그런데 하다가 중단되고, 하다가 중단되고, 그렇게 해가지고는 맨날 그 상태에만 머물러 있게 되는 거라. 그래서 그 습관들은 안 가지는 것이 좋다. 생각하는 습관, 망상하는 습관, 가지지 말아라는 거라.

그렇다고 사고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사고하는 것과 망상하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다릅니다. 사고는 결론이 있죠. 그리고 사고는 뭔가 이롭게 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뭔가 도움을 주기 위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생각이나 망상은 그거와 정 반대입니다. 그렇게 이해를 하면 됩니다.

 

그래서 내가 뭔가를 계획을 세우고, 그다음에 가정이나 직장 일에서 뭔가를 갖다가 판단하고 생각하고 할 때는 사고적으로 해야 되는 것이지, 그걸 그냥 망상이나 아니면 생각으로 하려고 해버리면 안됩니다.

자, 그렇게 하고 이해가 됐을 거라고 봅니다.

 

어쨌든 이렇게 하다가 보면 대상이 아주 빠르게 일어나는 것들이 보입니다.

하, 그거 참 극복하면 좋은데, 어쨌든 극복을 해야 됩니다. 엄청 죽을 듯이 생각이 돼도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보려고 해보십시오. 그러면 어느 순간 딱 단순화되어 버립니다 대상이. 하나만 딱 보여.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 한 사람만 보인다며. 다른 사람이 옆에 있어도 안 보여. 수행도 마찬가지라. 수행에서도 계속적으로 빠르게 일어나는 것들이 보이다가 그것들이 잘 관찰되어지고 나면 요것들은 딱 사라져버립니다.

 

그리고 만약에 배를 관찰하고 있다. 그럼 배에서 일어나는 느낌 딱 하나만 보입니다. 불러오면 불러온다고 알고, 꺼지면 꺼진다고 알고, 그냥 그 바람의 요소들만 보입니다. 다른 요소도 안 보여요. 일어날 때 무슨 팽창감이 있니, 따가움이 있니, 이런 거 전혀 모릅니다. 다 사라져버리고 없이, 그냥 불러올 때 시작부터 해가지고 불러오는 끝까지가 싹 보이고, 단지 그거 불러오는 것이 다른 때하고는 다르게 조금 더 천천히 불러오는 것처럼 보이고, 그리고 그게 힘이 약해가지고 슬그머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그래 하더라도 그게 다 보인다는 거라. 고거 하나만 보여.

그렇게만 보이면 이 사람은 이제는 이 "도의청정의 단계를 뛰어넘을 상태가 됐다" 하고 판단을 하면 됩니다.

 

그때 절대 놀라지 말고 그냥 그대로 보면 됩니다. 탁 그 상태에서 한 단계만 딱 넘어가면 너무 좋거든. 괴로움이 인제는 없으니까. 괴로움이 안 일어나져 버려요. 대상이 아주 단순화되어 있기 때문에. 대상이 없는데 괴로움이 일어날 게 뭐 있어요?

그래서 너무나 행복한 상태를 그냥 마음으로 탁 받아들여 버리고 나면, 그다음에 대상 자체는 사라져 버립니다. 대상 자체가 없어요. 그냥 마음으로 그 즐거운 것만 알아차리고 있게끔 되는 거라. 당분간은 그게 하루가 될지 이틀이 될지 언제가 될지 모르겠는데 그 상태로 그냥 있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되는 게 아까 그랬죠. ‘이게 내가 수행의 끝인가?’ ‘깨달음에 이르렀는가?’ 그거는 아니라는 뜻이라.

그 착각만 탁 벗어나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만약에 이번 수행처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 그러면 집에 가서도 자기가 새로 다시 하면 되는데, 그거 생각만 하고 있는 거라. ‘아, 내가 그때 그렇게 좋았는데 그거 다시 경험해 보고 싶다.’ 안 되는 걸 가지고 왜 그러고 있는데? 그래 버리면 안 돼.

 

그러면 수행은 그냥 거기서 다시 떨어져 버리든지, 아니면 거기서 그냥 멈춰버리는 상태가 되는 거라. 그냥 그것은 놔두고, 그 경험은 그때 경험일 뿐이라.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무슨 뭐 탐진치가 안 일어난 상태도 아닌 거고, 내가 뭐 아라한이 되어 있는 상태도 아닌데 왜 그걸 고집하고 있어? 그냥 그건 좋은 경험으로, 좋은 추억으로 하고, 그냥 딱 묻어둬. 묻어둬 버리고 나는 다시 시작을 하면 되는 거라.

 

시작을 하면 그 전보다도 훨씬 빠르게 똑같은 상태들을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점점 더 그 시작은 좁아질 수밖에 없어. 그래서 그 상태를 계속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어.

정신적인 현상과 물질적인 현상을 구분하게 되고, 그리고 그 원인과 결과로서 보게 되고, 그 모든 현상들이 무상, , 무아의 성품으로 보게 되고, 이 상태들에 갔다가 수행 안 하면 또 싹 내려가 버려. 그러면 다시 또 하면 돼.

그런데 자꾸 해보면 그 시간이 전에는 일주일 걸렸는데 이젠 하루만 앉아있으면, 아니면 반나절만 해도 싹 그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거라.

이렇게 자주 왔다 갔다 하게끔 돼야 됩니다. 이 상태에서는.

 

자기가 만족만 하지 않고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은 그다음에는 다음 단계로 반드시 넘어가게끔 됩니다.

‘아, 이거 부족하다’ 하는 마음만 일으키면 넘어가져. 그런데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여기서 그냥 머물러 있습니다. 한 몇년 동안 그런 경우들도 허다합니다. 좋으니까, 그 상태만 다시 또 경험하고 거기에서 머물러 있습니다. 자, ‘또 내가 도와 과에 이르렀네. 음 좋아’ 또 한 일주일 가겠지. 참 어리석은 일이라 그게. 여러분은 그런 걸 자꾸 하면 안 돼.

분명한 것은 그런 행복감은 수다원에만 딱 이르고 나면 다시는 안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완전하게 깨달음에 이른 아라한이 아니라도 수다원에만 이르러도 그런 현상은 안 일어납니다. 그게 필요 없기 때문에. 그런데 그 행복감에 왜 젖어가지고 그렇게 있어야 되는데?

 

기억을 분명하게 하십시요. 아무리 좋은 현상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도와 과하고는 관계가 없는 거라. 그래서 거기에 머물러 있을려는 생각 하지 말아라. 알겠죠? (예)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공부 반드시 해야 됩니다. 무상한 성품까지는 다 봐야 됩니다. 그래야 계청정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 청정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견청정도 이루어지고, 도의청정도 이루어지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거는 하나의, 지금 1번부터 4번, 7청정의 4번은 하나의 세트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알겠죠?

반복하도록 자꾸 그렇게 하십시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