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집중수행 법문

2025 집중수행 1일차 - 입재법문_구체적인 수행방법과 계청정 법문(20250913. 오덕훈련원)

담마마-마까 2025. 9. 24. 12:12

https://youtu.be/TY4kA-uE8es?si=nDJRgSXAQgFNqs-f

 

* 2025 집중수행 1일차 입재법문_구체적인 수행방법과 계청정 법문(20250913. 오덕훈련원)

 

수행할 생각들은 있어서 온 거라? (예)

중간에 가기도 하게 되겠죠. 그리해도 하루를 하더라도 제대로 해. 하루를 하더라도. 그 시간만큼은 온전하게 수행만 한다하고 생각을 해야지, 그냥 평상시 때 하는 것처럼 그냥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집중수행에서는 집중수행에 필요한 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왔을 거라. 그러면 집중수행에서 얻어지는 효과를 반드시 더 뽑아야 되지, 그렇지 않고 수행을 하고 나서 어느 정도까지 경지를 이루지 않고 그냥 갈 것 같으면 그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단단하게 먹고.

 

부처님도 그런 얘기를 했거든. "전장에 앞장서는 코끼리와 같이 하라."
코끼리가 사실은 굉장히 고통을 많이 느끼는 동물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갈고리를 살짝만 갖다 대기만 해도 막 아파가지고 명령에 따른다고 그러는데, 막 화살이 쏟아지고 창칼이 막 난무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막 돌격하는 코끼리와 같이 하라는 거라.

 

수행을 하다 보면은 특히 이런 집중 수행하러 왔을 때는 굉장히 경계들에 많이 부딪히게 됩니다. 좋은 경계에 부딪치기도 하고, 나쁜 경계에 부딪치기도 하고. 뭐 그리 하더라도 그냥 너무 크게 그거하고 싸우든지 아니면 그냥 놔두든지 뭐 회피하든지 뭘 어쨌든 간에 코끼리와 같이 묵묵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거라. 그렇지 않으면 그 경계를 뛰어넘지를 못해. 그래서 그걸 반드시 명심을 해야 됩니다.

 

수행하러 왔으니까 맨 처음 집중수행할 때 여러분들이 갖추어야 될 조건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아라.

뭐가 최고 많이 집착하게 될까? 환경 조건이 틀려졌으니까 여러 가지들을 생각하고 이러면서 집하고 비슷하게 자꾸 꾸밀려고 하게 된다는 거라. 그냥 무조건 대고 할려고 안 하고. 자기도 생각을 자꾸 내서 하다 보면, 수행하다 보면 자꾸 다른 사람들 하고 사소한 것 때문에 자꾸 부딪치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것 좀 내가 참으면 되잖아. 그런 것들이 다 집착의 영역에 들어갑니다.

생각하는 것, 그다음에 감정을 일으키는 것, 그다음에 견해를 내세우는 것, 이런 것들은 어떠한 경우든 버려버려야 됩니다.

 

그래서 맨 처음 집중수행하러 왔을 때는 이게 집착함이 없는 것들이 처음에 조건이 돼야 됩니다. 할 수 있겠죠? (예)

수행하러 왔으니까 수행을 하라고. 쓸데없는 것 가지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다음에 두 번째, 부처님이 이 "전쟁터의 코끼리와 같이 나아가라" 하고 하는 것은 그냥 무조건 돌진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갖가지 경계에 부딪치더라도 마음은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라는 그런 뜻이고, 평온함을 갖다가 강조하기 위해서 사실은 이 문장을 부처님이 썼어요.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겠어요? (예) 그래서 마음은 어떠한 경우든지 평온한 상태를 자꾸 유지할려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런 것들에 자극받을 수 있는 것들은 다 치워. 휴대폰도 저 방에 놔놔놓고 여기 와서 수행하는 홀에서만 수행하고, 점심때 잠깐 가서 뭐 확인하고 아니면 저녁에 자기 전에 확인하고 그래도 되잖아. 그럴려고 수행하러 온 거잖아. 휴대폰 옆에 놔놓고 수행할 생각 하지 마라. 아예 방에 놔두고 수행하러 올 때는 수행만 하도록 하고.

그리고 그런 것들이 평온함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지 않도록, 되도록이면 여기 왔으면 오로지 여러분들은 여러분 몸과 마음을 가지고 수행을 해야 되지, 다른 것이 자꾸 대상이 되도록 하면 안 되는 거라. 그래서 평온함을 항상 유지하도록 하라. 휴대폰 하나 가지고 평온함이 유지되겠어요?

 

자극에 반응하지 마라. 밖에 누가 뭐라 하든 간에, 그리고 당신이 이렇게 경행 안하고 요렇게 하든 뭘 하든 간에 그냥 놔둬. 신경쓰지마. 그건 그 사람의 일이고, 나는 내 수행하러 온 거라. 자기가 수행 열심히 하면 돼. 그래서 자기 수행에 방해될 수 있는 것은 일절 맘에 담지 말아라는 거라.

 

그래서 아까도 지적을 했는데, 수행할 때는 좌선을 할 때 좌복에 앉아서 시작을 해가지고, 좌복에서 일어나면서 관찰하고 이런 것들이 깨지면 안 돼. 그리고 경행을 그대로 딱 옆으로 가서 경행을 시작을 하도록 해야 되는 거고, 경행하고 돌아올 때 좌복에 다시 앉기 전에 그 마음, 사띠하고 있는 마음이 깨지면 안 되는 거라.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은 그 시간 좌선·경행, 좌선·경행을 하는 시간들이 깨지지 않고 계속 이어질 때 평온함이 유지되는 훈련들이 돼나갑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항상 신경을 써야 됩니다.

그래서 그냥 형식적으로 와가지고 좌선해라 하면 좌선하는 시늉 했다가, 경행하라니까 벌떡 일어나가지고 저쪽 가서 좀 한갖진 데 가서 경행할려고 하고, 자기 수행처 가서 경행할려고 하고, 이러면 안되는 거라. 오로지 여러분들 수행처는 여기 홀입니다. 여기 홀을 벗어나지 말아라는 거라. 벗어나지 말고 좌선·경행, 좌선·경행을 하라는 거라. 정 힘든 사람은 좌선할 때 의자에 앉아라. 의자에 앉아서라도 수행을 하도록 자꾸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마음의 평온함을 항상 유지를 하라.

 

집착함이 없고 평온함이 유지됐으면, 거의 대부분은 형성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 딱 빠지는 게 뭐냐면 정직하지 않는 것들이라. 특히 스님한테 인터뷰를 해야 되는데, 인터뷰하러 와가지고 다른 사람이 경험한 걸 자기 것처럼 얘기를 하든지, 아니면 자기 것들을 갖다 좀 더 뻥튀기해서 얘기를 하든지,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경우들을 간혹 봅니다. 스님이 그 사람 마음속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모릅니다. 헷갈려요. 어제는 분명히 어느 정도 위치까지 올랐는데 오늘은 보니까 영 또 딴 사람이 돼있고 이렇거든. 이렇게 뒤죽박죽이 돼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보통 보면은 그냥 지어낸 거라. 인터뷰할 게 없으니까 막 지어내는 거지. 그런데 그러면 안 돼.

수행도 정직하게 해야 되지만, 인터뷰는 어떠한 경우든지 정직하게 해야 됩니다. 인터뷰 할 게 없으면 "스님, 인터뷰할 게 없습니다" 하고 그냥 고하고 가면 돼. 그거를 가지고 누가 뭐라 해? 수행은 내가 하는 게 아니고 여러분들이 각자 각자 하는 건데. 단지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주느냐 하는 것이 스님이 담당해야 될 몫인 것이지, 잘하고 잘못하고 하는 것 가지고 탓하지는 않습니다. 못해도 어쩔 수 없는 거고, 잘하면 잘하는 대로 그대로 그 사람들이 잘한 것이지, 스님이 잘한 것이 아니라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든지 정직하라.

 

사실은 정직한 것들은 본인의 상태에 대해서 마음이 많이 부드러워져 있으면 정직하게 돼있기는 합니다. 그리하더라도 본인이 지금 부드럽게 돼있지 않다 해가지고 정직하지 않는 것들을 놓쳐버리면 안됩니다.

세 가지는 얘기를 했지만,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이 정직함입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본인을 속일려고 하지 말아라는 거라. 잘못할 수도 있고 수행을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직하지 못하면 그걸 자꾸 합리화시켜 버리는 거라. 그러면 수행을 못하는 거라. 수행할 때는 자기 상태를 가지고 ‘아, 내가 조금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 아니면 어떤 식으로 조금 더 해야 되겠다 하는 걸 갖다가 본인이 체크를 할 수 있어야 되는데, 그걸 못하게 되면 안된다 하는 거라.

 

그래서 그런 것들을 여러분들이 집중 수행하러 왔을 때 반드시 갖추어야 되는 것들이다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을 갖추고 수행하면 됩니다. 크게 수행하는 데 어려운 건 아니잖아.

수행 처음 해본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 하, 머리가 아프네. 다시 누구?

세 분은 수행 끝나고 나서 나중에 좌선·경행하기 전에, 어떻게 돼나? 이거 하고 나서 저녁예불부터 하게 되나? 어떻게 되나? (수행자 : 예불부터 합니다.)

예불 끝나고 나서 좌선·경행 할 때 저 인터뷰실에, 인터뷰실이 바로 앞이거든요. 인터뷰실에 와가지고 기본적인 것을 먼저 배우도록 하세요. 됐죠? 그래서 그것까지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단, 기본적인 것들, 여러분들이 잘 까먹는 부분에 대한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스님이 가르치는 방법은 마하시 수행법이 기본적인 토대입니다.

기본적인 토대를 가지고 마음 관찰 수행법도 들어가지고, 집중하는 수행법도 들어가지고 하는 방법을 택하기 때문에, 그걸 여러분들이 먼저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 처음 초보 수행자들은 조금 헷갈릴 수가 있습니다. 마하시 수행법을 하신 분들은.

어떤 게 헷갈릴 수가 있느냐 하면, 배를 봅시다. 경행을 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마하시 수행법은 발을 들어올리면 발을 들어올린다고 알아차리고, 나아가면 나아간다고 알아차리고, 내려놓으면 내려놓는다고 알아차려라.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기초 수행자들은 그게 맞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여기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들 수행들을 어느 정도 해본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경행을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돼요.

경행을 할 때는 발을 들어올릴 때는 발을 들어올리는 현상을 가지고, 발을 들어올릴 때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려야 되는 거라. 발을 내려놓을 때 발을 내려놓을 때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지, 발을 내려놓는다는 명칭에 마음이 가있어 버리면 안된다는 뜻이라.

그게 인제 여러분들이 헷갈리는 부분들이라는 거라.

 

자, 발바닥이라 칩시다. 이게(손바닥) 발바닥이라 칩시다. 손을 딱 한번 대봐봐요.

이게 발을 내려놨고 디뎠다고 생각을 해봐요. 딱 디뎠다고 보고 봤을 때, 어떤 느낌이 있어요? (예) 그걸 알아차리라는 거라. 어? 뜨거우면 ‘뜨겁네’ 하고 알아차리라는 거라. 손을 한번 살짝 떼 봅시다. 살짝 떼면서 일어나는 느낌을 한번 보십시요. 어떤 느낌이 일어나요? (수행자 : 시원한 느낌) 예, 시원해요? 또? 다른 사람은? (수행자 : 찌르르르르 찌르르르르 전기가 일어나는 느낌) 그럼 그건 찌르르르 전기 흐르는 느낌이 일어나는 거고, 각각 다 틀리겠죠. 가벼우면 가볍다고 알아차리고.

 

그런데 그거는 상대성이기 때문에 내가 가벼운 것이지 다른 사람까지 다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그럼 나는 단지 그렇게 느낀 것뿐입니다. 그럼 발을 만약에 들어올릴 때 발을 들어올림하고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 아니고, 발을 들어올릴 때 일어나는 느낌들을 알려고 해야 되는 거라.

그럴러면 어디에 집중하고 있어야 돼요?

발이면 발바닥에다 집중하고 있어야 발바닥에 일어나는 느낌들을 알게 되는 거고, 발이 나아갈 때는 발을 나아가는 부분에서의 움직임이라든지, 아니면 거기서 스치는 느낌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알려고 해야 되는 거라.

이해가 됐습니까? (예)

 

그래서 발을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수행을 하는 데에 따라서 점점 이게 복잡해집니다. 들어올릴 때 뒷발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디디고, 누르고 하는 걸 계속 구분을 해줘야 되는데, 구분할 때마다 일어나는 느낌들은 다 틀릴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러면 여러분들은 구분을 못해도 괜찮아요. 구분을 못해도 괜찮은데, 몸의 현상에 마음이 그대로 따라가면서 그것을 사띠하고 알려고 하는 노력들을 해야 된다는 거라.

이해가 됩니까? (예)

 

마찬가지로 배가 불러온다. 배가 불러올 때 ‘일어남, 사라짐’ 하든지, 배가 불러올 때 ‘불러옴, 꺼짐’ 하든지 그거는 명칭은 여러분이 각자 알아서 붙이면 됩니다.

그렇지 않고 코끝을 할 것 같으면 ‘들이쉼, 내쉼’ 해도 됩니다.

그거는 명칭이기 때문에 어느 부위에 하든 그거는 여러분들이 이때까지 해왔던 방법들을 쓰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코끝에 숨을 ‘들이쉼, 내쉼’ 하고 관찰하고 있다. 들이쉴 때 느낌이 있죠? 내쉴 때의 느낌이 있죠?
들이쉼하면서 그 느낌을 보라는 거라. ‘내쉼할 때 느낌을 보라는 거라.

그 느낌을 볼려고 해야 되지,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내쉰다고 알아차리면 사마타 쪽으로 딱 빠져버립니다.

배가 불러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불러오고 꺼지고 할 때도 배 전체를 갖다가 관찰하고 있을 것 같으면 산만해집니다. 그 부분은 한 포인트를 잡아라는 거라. 코끝 할 때도 코끝 한 포인트를 잡아라는 거라. 거기에 마음이 딱 머물고 있으면서 거기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을 갖다가 알아차릴려고 해야 된다는 거라.

 

그게 인제 기본적인 겁니다.

그래서 마하시 수행법 하고의 차이점이 그런 부분이 약간 미세하게 있습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 차이가 나는 것이 어떤 것이 있느냐면,

대상을 놓쳤을 때. 여러분들이 아무리 수행을 잘한다 하더라도 하다 보면 대상이 도망가고 없습니다. 아니면 멍때리고 있든지, 대상을 놓쳐버린다고. 어떻게 해야 돼요?

대상을 놓쳤으면? 다시 돌아와야 돼. 마하시에서는. 빨리 호흡으로 돌아와야 되는 거라.

 

그런데 만약에 내가 막 생각을 하면서 대상을 놓쳤다, 아니면 멍때리다가 대상을 놓쳤다, 그럴 때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좋지는 않은 마음이라는 거라.

쉽게 말하면 평온하게 숨을 쉬고 있는 마음이 아니고, 아니면 탐·진·치에 아직은 벗어나지 못하고, 그냥 탐진치가 일어나 있는 상태에서 대상을 놓쳐가지고 거기에 막 생각을 한다든지 그렇게 되게 된다는 겁니다. 이거는 탐진치가 있는 마음입니다.

그럴 때 바로 돌아오려고 하지 말고, 바로 호흡으로 돌아오려고 하지 말아라. 그때 무슨 마음인지를 보라는 거라. ‘어, 내가 성질을 내고 있었네?’ 아니면 내가 망상을 하고 있었네. 뭔가를 갖다가 무슨 마음인지를 먼저 보고 대상으로 돌아오도록 하라는 거라.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수행은 탐·진·치 없이 수행을 해야 수행이 됩니다.

그런데 탐·진·치가 있으면서 수행해도 수행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성내고 있어요. “성내지 말고 사띠하십시오.” 하면 “나는 사띠하고 있습니다.” 이럽니다. 성을 내고 있으면서 사띠하고 있대. 본인은 성내고 있는 걸 사띠하고 있다는 거라. 이게 가능한 거라?

 

사띠를 하면 어떠한 경우든지 성냄은 사라져 버리고 없습니다. 그런데 이걸 자꾸 착각을 하는 거라. 성내고 있는 걸 사띠하고 있다는 거라. 그래서 마음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를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은 수행의 대상이 안 되는 건데도 대상으로 착각을 해버리는 경우들이 생깁니다.

수행은 어떠한 경우든지, ··치가 없는 상태에서 대상을, 그것도 대상이 몸과 마음입니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대상들을 사띠하는 겁니다. 이걸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그게 조금 차이가 나는 거고.

 

그다음에 여러분들 수행할 때 조심해야 되는 것,

 

너무 뭘 될라고 하지마. 여러분이 일주일 수행해가지고 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손 한번 들어봐요. 수다원에 이를 수 있는 사람? 없어요?

평상시 때 수행할 수 있는 습관들을 기를 수가 있으면 그건 수행 잘하는 겁니다. 집중수행을. 실제적으로는 아무리 무슨 현상들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다 그거 놔버리고, 그냥 지금 일어나는 대상들을 사띠해야 되는 것이 맞는데, 수행 하다가 보면 막 좋은 현상들이 일어나면 거기에 막 집착합니다.

 

그러면 거기에 그냥 함몰돼 가지고 다음에 집에 가서도 수행할 생각 안 하고 그 생각만 하고 있는 거라. 그러면서 또 ‘내가 집중수행 가야지’ 뭐 하러 그러고 있느냐는 거라.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이라.

대상들이 일어났으면은 그 대상들은 그냥 대상일 뿐이라. 힘든 거 일어났다, 그것도 대상인 것뿐이고, 좋은 거 일어났다 그것도 대상일 뿐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그냥 대상이기 때문에 그냥 그 경험하고 그냥 거기서 끝난 건데 그걸 왜 붙잡고 집에까지 가져왔느냐는 거라.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것들이라는 거라.

 

그래서 수행할 때 뭐 되려고 하지마. ‘내가 이번 시간에는 열심히 해가지고 한 시간 동안 뭐 어떤 현상을 경험해야지’ 그 뭐 할 건데? 그거. 그것으로 인해서 수행해서 무슨 도와 과에 이르러?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이라는 거라.

그거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탐진치 없이 그냥 사띠하는 것들만 이어지도록만 하라고. 세상에 그마만큼 좋은 게 어딨어요? 선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일어나도록 만들어주는 것들이 지금 현재 일어난 대상에 사띠하는 것인데, 그거 놔두고 왜 자꾸 탐진치가 있는 마음을 자꾸 만들고 거기에 들어갈려고 하느냐는 거라.

 

그래서 수행을 하다 보면 좋은 현상, 나쁜 현상들이 일어나더라도 어떠한 경우든지 그것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아라. 그리고 수행할 때 뭔가가 되려고 하지 말아라.

그것만 명심을 하면 됩니다. 쉽게 말하면 대상은 대상일 뿐이지, 그걸 붙잡으려고 하지 말고 밀쳐내려고도 하지 말아라는 겁니다.

 

대상은 어떤 거라고요? 여러분들 몸과 마음입니다.

다른 것은 수행의 대상이 아닙니다.

스님 보입니까? (예) 소리 들립니까? (예) 이 스님의 모습과 스님의 소리가 수행 대상입니까? (아니요) 뭐가 대상입니까? (...) 뭘 우물우물우물 해쌌노. 모습은 뭐로 가지고 봅니까? 눈을 통해서 보죠. 소리는 귀를 통해서 봅니다. 귀를 통해서 들립니다. 뭔가가 파동이 일어나 가지고 귀에 부딪쳤으니까 내가 소리가 들린 겁니다. 그럼 내가 마음은 어디 둬야 돼요? 소리가 들리는 귀에다 둬야 됩니다. 그럼 ‘소리 들린다’고 분명히 알아차려야 되는 거라.

 

스님의 모습이 뭔가 빛이나 그것으로 인해서 색깔로서 뭔가 모습들이나 형상들이 비쳤으니까 눈에 비쳤으니까 보였을 거 아니라. 그럼 그냥 눈에 두고, ‘보였다’고 그냥 알아차리라는 거라. 스님이 말하는 소리나 스님의 모습이 여러분들 수행 대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 귀와 눈이 여러분들 수행 대상 장소인 것이지. 다른 데 장소를 두지 말아라는 거라. 그래서 수행 대상을 분명하게 구분을 하라는 거라. 수행 대상이 아닌 것은 그냥 놔줘 버리라는 거라. 여러분들 수행 대상이 아닌 것은 수행으로 생각해서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상과 대상 아닌 것들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자, 이제 다시 수행하는 법에 대한 얘기를 다시 하겠습니다.

 

좌선을 할 때 수행 대상이 어디입니까? 뭐가 대상입니까? (호흡이) 호흡이 대상입니까?

위빳사나 수행에서는 어떠한 경우든지 움직이는 것이, 실재하고 움직이는 것이 수행 대상입니다.

경행할 때는 움직이는 것이 뭡니까? 발입니다. 움직이는 것이 수행대상 입니다.

기본이 항상 실재하는 것들이 수행 대상이라는 것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가만히 앉아 있는데, 만약에 막 생각들이 일어났다, 그러면 뭐가 수행대상입니까? 생각이 수행대상입니다. 호흡이 수행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면 생각이 없어야 수행을 할 수가 있겠죠? 그럼 생각을 먼저 정리해야 되는 거라. 생각을 안 하려고 자꾸 노력을 하든지, 그게 안 되면 숫자라도 자꾸 세 가지고 마음을 다른 데 돌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 하면서 부처님을 열 번만 입에서 암송을 하든지,

해서 생각이 안 일어나도록 만들고 나서 수행 대상을 찾아야 되지, 처음부터 탁 앉자마자 자기 마음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수행 대상 먼저 찾으면 어떠한 경우든지 대상을 움켜쥘려고 하게 됩니다. 자기가 조종을 하게 되는 거라. 여러분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나'라고 하는 것들이 존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수행을 한다고 생각하지, 그냥 수행 대상을 내가 사띠하고 있다고 알아차리지를 않는다는 거라.

 

그러면 가장 먼저 얘기하는 것이 앉아서 수행할 때는, 수행하는 자세가 편안하게 되고 나면 마음을 먼저 편안하게 만들어라는 거라.

쉽게 말하면 수행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은 마음이 하는 것이지 다른 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마음이 수행 대상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되는 것이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으면 수행 대상 못 알아차립니다.

가만히 놔둬버리면 마음은 뭔가로 자꾸 움직여서 알려고 하거든. 그거 알아차리면 됩니다. 마음도 한순간도 멈추는 법이 없기 때문에. 가만히 한번 놔둬 보라는 거라. 마음을 편안하게. 생각이 안 일어날 수 있으면 안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편들을 써가지고 생각이 안 일어나도록 만들고, 그리고 마음이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 놓으라는 거라.

 

그래서 대부분 기법에서 많이 쓰는 것들이 어떤 것이냐 하면,

몸이 긴장되는 것을 마음으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보통 눈꺼풀부터 해가지고 입술, 손, 엉덩이, 발 이런 것들이 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오른쪽 눈꺼풀’ 하면서 오른쪽 눈꺼풀이 긴장이 되어 있는지 한번 보고, ‘왼쪽 눈꺼풀’ 하면서 왼쪽 눈꺼풀이 긴장이 되어 있는지를 보고, 돼 있으면은 긴장을 풀어라는 거라. 입술이 닿아 있는 거, 입술이 닿아 있는 걸 알아차리면서 입술이 긴장되어 있으면 입술을 풀어주고.

그래서 몸의 긴장들을 서서히 풀어주면 마음은 긴장된 것들도 마음이 풀리고, 마음이 대상을 따라서 자꾸 움직이는 훈련이 돼나갑니다. 그럴 때 생각하는 것들도 없어지고, 그다음에 마음이 ‘어, 그러면 호흡 한번 볼까’ 하고 호흡 보면 호흡하는 것들이 보인다는 거라.

단 몇 분이지만은 먼저 그렇게 해가지고 몸도 릴렉스하게 만들고 마음도 릴렉스하게 만들어라는 거라. 그러고 나서 호흡을 관찰하려고 해야 되지, 막바로 그냥 뛰어들려고 해서는 안되는 거라. 이해하겠죠? (예)

 

그다음에 대상을 알아차릴 때 기본 원칙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천천히 하라. 천천히 하라.

경행할 때도 좌선에서 천천히 일어나면서 모든 것들을 그냥 알아차리면서 일어날려고 하고, 경행하러 갈 때도 천천히 가면서 그것들을 알아차릴려고 해야 되는 거라.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천천히 하려고 해야 돼. 좌선을 하든 경행을 하든 천천히 하려고 해야 돼. 빨리 하면 그건 못 따라간다는 거라. 그래서 그게 기본 원칙 첫 번째, 천천히 하라.

 

두 번째,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을 관찰하라.

천천히 하고 있는데, 만약에 예를 들어서 좌선하고 있다가 경행하려고 탁 일어서려고 하고 있는데, 막 생각이 일어났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마음이 이미 생각이 일어났다는 생각에 가있기 때문에 생각이 일어난 걸 아는 겁니다. 그러면 일어서는 걸 멈춰야 되는 거라. 멈추고 생각이 일어난 것들을 알아차려야 돼. 지금 현재 일어난 것들이 수행 대상이 되야지, 그걸 무시해버리고 나는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니까, 일어나면서 생각이 일어나는 것들을 관찰한다? 안되는 거라.

 

그리할 것 같으면 생각이 일어나는 데서 일어날 것 같으면 잘못하면 일어나다가 꼭 부딪쳐. 일어나는 것들에 마음이 가 있을 것 같으면 일어나는 것들을 온전하게 알아차릴 것 같으면 어디 가서 부딪치고 실수하지는 않는데, 생각이 일어나니까 그거하고 같이 일어나는 걸 같이 하니까 실수를 하게 되는 거라.

그래서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 현재 일어난 것들이 수행 대상이라는 걸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이 어떤 것들?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다른 대상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을 반드시 수행 대상으로 해야 됩니다. 그게 두 번째 원칙입니다.

 

그래도 그것만 잘, 천천히 하고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만 알아차리려고 해도 수행은 돼나갑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이 관념화돼 버리면 위빳사나 수행 쪽으로 안 빠져버립니다. 그러면 그걸 피하기 위해서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이라도 그것들을 마음으로 알아차릴 때는 느낌으로 알려고 하라.

세 번째 원칙이 느낌으로 알아차릴려고 하라.

 

생각이 일어났을 때 ‘생각이 일어남’ 했을 때, 그 생각을 관찰해보면,

예를 들어서 성냄이 일어났다. 그 느낌이 어떨 것 같아요?

마음이 안 아플 것 같아요? 아픔으로 다가와집니다. 남의 것을 훔치려는 마음이 탁 생겨났다. 그거는 그냥 훔친다는 마음이 생겨남과 동시에 뭔가를 탁 움켜잡듯이 하면서 뻣뻣해져 버립니다. 그럼 내가 느끼기에는 뻣뻣함으로 알아차려집니다.

탐·진·치가 일어났을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그러한 느낌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느낌을 알려고 자꾸 노력해야 됩니다.

 

왜 그럴까? (수행자 : 실재하는 것이니까요) 그렇죠. 실재하는 것들인데, 그 느낌이 실재하는 것들을 알아차릴려고 하면, 그 실재하는 건 어떤 현상들입니까? 무상··무아의 성품입니다. 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집착을 안 하게 되는 거라. 그런데 개념은 어떠한 경우든지 안 변하고 자기가 딱 움켜쥐게 돼버립니다. 그래서 자꾸 느낌을 알아차리려고 해야 됩니다.

이게 기본 원칙입니다.

 

다시 한번 요약해 볼게요. 수행할 때 먼저 앉아서 배를 관찰한다.

 

바로 배를 관찰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몸이 편한지를 갖다가 먼저 보라는 거라.

내가 자세가 편안하게 돼있고, 그다음에 배가 편안하게 호흡을 하고 있는지 한번 보라는 거라. 그리고 자세가 흐트러짐이 없는 상태가 되어 있는지를 한번 보라는 거라. 그래서 자세가 편안하지 않다 할 것 같으면 (몸통을) 앞뒤로 움직여 가면서 자세를 좀 조절하고 편안한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라는 거라.

 

그래서 수행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끔 됐다 할 것 같으면, 그러고 나서 마음이 긴장되어 있는 걸 갖다가 확인하기 위해서 몸이 긴장되어 있는 걸 갖다가 관찰하라는 거라. 눈꺼풀부터 해가지고 입술, , 엉덩이, , 보통 한 3~4군데만 해도 보통 구분이 돼나갑니다. 그러면 그걸 편안하게 하면 마음도 사르르르 부드러워지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고 나서 호흡을 관찰하도록 자꾸 하라는 뜻입니다.

 

좌선할 때 바로 관찰을 할려고 하지 말고, 편안하게 그렇게 하고 나서 호흡을 관찰하면 호흡이 변하는 게 보입니다. 변하는 게 보이지 않으면 대부분은 수행에서 인위적으로 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목적이 실재하는 성품들을 갖다가 분명하게 관찰해서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기본 원칙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좌선해서 수행을 해나갔다고 합시다. 호흡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배가 불러올 때 ‘불러온다’하고 관찰하고, 배가 꺼지면 ‘꺼진다’라고 관찰을 하고 있다고 칩시다. 어떤 현상들이 있죠?

불러올 때 뭔가 단단한 것도 있을 거고, 부드러운 것도 있을 거고, 아니면 뭐 쑤시는 것들도 있을 거고, 뜨거운 것도 있을 거고, 차가운 것도 있을 거고, 각각이 다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것들을 관찰하라는 거라. 불러올 때 ‘불러온다’고 할 때 뭔가 뜨끔하는 느낌이 있다 그러면 ‘뜨끔한다’고 알아차리라는 거라. 배가 불러올 때 뭔가 팽창하는 느낌이 있다 할 것 같으면 팽창하는 느낌이 있다는 것들을 알아차리라는 거라. 사람마다 다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배가 불러올 때 어떤 느낌들이 있는지. 가장 알기 쉬운 것은 처음에 수행하는, 특히 오늘 처음 수행하는 사람들은 배가 불러올 때 배에다 손을 올려놓고, 살짝 올려놓고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관찰하라. 적어도 움직임은 알 거 아니라? 배가 불러올 때는 그거 불러온다고는 알 거 아니라. 꺼지면 꺼진다고는 알 거 아니라. 그 움직임도 실재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움직임을 갖다가 보라는 거라. 그래서 불러올 때는 ‘불러온다’고 하면서 그 움직이는 것들을 보라는 거라.

 

그러면 불러오는 것들이 한 번에 착 불러오면 좋은데, 대부분 그렇지 않고 끝나는 부분을 잘 모르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거 알려고 하면 안 돼.

일단은 불러올 때는 불러오는 현상만 알려고 하고, 아는 데까지만 알면 돼요. 그리고 꺼질 때는 꺼진다는 현상을 알려고 해야지, 그걸 붙잡고 있어버리면 꺼질 때 불러오는 걸 알려고 하는 현상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수행은 엇박자가 됩니다.

그래서 몸의 현상에 마음이 자꾸 편안한 상태에서 일치가 되도록 해야지, 모르는 걸 끝까지 다 알려고 할 필요는 없다는 거라.

 

쉽게 말하면 수행의 전체적인 모습을 내가 지금 다 알려고 할 필요성은 없다는 거라.

배가 불러오는 처음부터 시작해서 진행되는 거 끝나는 것까지 딱 알고, 그다음 배가 꺼지는 시작부터 해가지고 마지막 끝날 때까지 다 알겠다? 모릅니다 그거는. 안 되는 것들을 가지고 그렇게 할 필요 없습니다.

불러오면 불러온다고만 알아도 됩니다. 꺼지면 꺼진다고만 알아차려도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불러올 때 통증이 있으면 통증이 있다는 것만 알아차려도 됩니다. 꺼질 때 가볍다 할 것 같으면 가볍다 하는 것만 알아차려도 된다는 거라.

 

그 대신에 그 현상에는 4대 요소가 다 포함돼 있습니다. 나중에 수행을 하다 보면 진행되면서 그 4대 요소가 포함된 것들을 얘기를 해드릴게요. 어쨌든 다 포함이 돼 있는 거기 때문에, 특별하게 내가 어떤 것들이 일어나는 것들인데, 왜 다른 사람들은 ‘배가 불러올 때 배가 불러온다고 모르고 왜 꺼지는 것처럼 느껴지지?’ 하면 그렇게 알아도 됩니다. 그거는 전혀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는 얘기라.

현상에 마음이 딱 가 있도록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좌선을 하고,

 

그다음에 일어날 때는, 일어나는 것들을 일일이 다 알아차리려고 해야 됩니다. 일어날 때 발을 디뎠으면 발을 디뎠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일어날 때는 일어난다고 알아차리고, 발을 들었으면 발을 든다고 알아차리고, 돌아섰으면 돌아선다고 알아차리고, 나아가면 나아간다고 알아차리고, 하나씩 알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배가 불러온다는 거는 자연적인 거죠. 여러분들이 사띠를 하고 있든 안 하든 그거는 평생 살아 있을 동안에는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걷는 거는 누가 걷죠? 내가 걷는 겁니다. 내가 걷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 가지고 몸을 일으켜 가지고 저쪽으로 걸어가려고 하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내 혼자 하는 것들입니다.

그럼 아까 수행에서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들을 알아차리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내가 굳이 사띠를 안 해도 배는 불러오고 꺼지게 돼 있다는 거라. 그래서 그것들은 알아차리기가 오히려 더 힘이 듭니다.

 

그런데 내가 의도를 일으켜가지고 뭔가를 하고 있을 때는 그것들을 알아차리기가 더 훨씬 쉽습니다. 마음을 거기에 딱 묶어두기에 붙여두기에 적절한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실제 움직이는 움직임에다가 마음을 탁 붙일 수 있는 좋은 대상인데, 그거 그냥 놓아버리는 거라. 놓아버리고 경행을 하는 거라. 그렇게 하지 말아라는 거라.

수행에 진척이 있을 때는 좌선을 하고 일어설 때 딱 일어서려는 의도가 있는 걸 딱 압니다. 그러고 나서 일어서지게 됩니다. 일어서면서 천천히 관찰하면서 일어납니다. 그게 원래 정상적인 겁니다. 수행이 어느 정도 진척이 되면.

그런데 진척이 안 되니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호흡에다가 마음을 갖다 붙이는 것만 자꾸 하려고 그럽니다. 그거는 집중 수행에서는 극히 피해야 되는 것들입니다.

 

되도록이면 좌선하는 자리에서 그대로 일어나서 바로 경행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도록 해야지, 경행처까지 가서 경행을 하겠다? 그리고 좌선처까지 그냥 와가지고 좌선만 하겠다? 수행하지 말아라는 얘기와 마찬가지라. 그거는 반드시 피해야 되는 거라.

경행처 가든 좌선처 오든, 오고 가고 하는데 최대한 동선을 짧게 하고, 동선을 짧게 하라는 거는 움직이는 행위들을 짧게 하고, 좌우로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경행을 할 때 기억자(ㄱ)로 꺽는다든지 이런 것들을 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냥 똑바로 갔다가 똑바로 돌아오고, 똑바로 갔다가 똑바로 돌아오고, 그것만 계속 반복할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하라는 거라.

 

좌선처에서 일어나서 뒤로 가야 될 때든 앞으로 가든 자신이 옆으로 딱 나와가지고, 경행을 하는 상태가 되도록 할 때까지 관찰을 하고, 그다음에 경행을 그대로 하라는 거라. 그대로 하고 다시 돌아와서 앉는 걸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다시 또 앉도록 하고, 그렇게 해서 온 마음을 거기에 기울이도록 그렇게 하면 됩니다.

 

경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그다음에 또 다른 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이렇게만 먼저 알아차릴려고 해보십시오.

속도는 어떻게 해야 될까?

평상시 여러분들이 걷는 속도의 반 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3단계로 하고 있을 때는 걷는 속도가 여기서 저기까지 평상시에 만약에 30초면 간다,그러면 수행하면서 걸을 때는 30초가 아니라 1분이 돼야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행을 할 때 너무 천천히 합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너무 천천히 하면 하는 중간에 항상 망상이 일어나든지, 다른 생각들이 일어나든지, 아니면 밖에 있는 대상을 보든지, 듣든지 하는 데 자꾸 마음이 쏠려버립니다. 그래서 너무 천천히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느 정도 수행이 된 사람들은 경행을 할 때 빠른 경보 수준으로 합니다. 그리해도 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관찰이 가능하게 됩니다. 빨리 움직이고 빨리 현상이 변하더라도 마음이 그걸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그렇게 해도 되는데, 그렇게는 처음에는 지금 안 되기 때문에 적어도 일반적으로 걷고 있는 것에 반의 속도로써 걷는다고 생각하고 경행을 하도록 그렇게 해보십시요. 그래서 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려고 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를 들어봅시다. 여기서 저기까지 갔다, 경행을 했다.

지금 뭘 관찰하고 있죠? 여러분들 발을 관찰하고 있는 겁니다. 앞에 벽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릅니다. 신경 쓰지 말아라는 거라. 눈을 감고 하든 눈을 뜨고 하든 그거는 본인이 선택하면 됩니다. 그런데 내가 미리 예측을 합니다. ‘저기로 가서 멈추고 돌아서야지’ 뭐 하러 그렇게 할려고 하고 있느냐는 거라 수행을. 설혹 내가 수행하다가 뒤뚱뒤뚱해가지고 좀 자빠지면 어떻고 앞에 가서 벽에 부딪히면 어때요? 그게 뭔 대수라고 그걸 겁내서 하느냐는 거라.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잖아.

 

나이가 들면 뒤뚱뒤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뒤뚱뒤뚱하면 되는 거라. 그러면서 자기가 안 자빠지려고 노력하는 것들만 해도 사띠를 하고 있는 거라고.

그런데 왜 자꾸 남한테 보여주기식으로 자꾸 하려고 하느냐는 거라. 천천히 하면서 발을 천천히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그럴 필요 전혀 없습니다. 자기한테 맞게끔 들어올릴 때는 들어올리는 때 일어나는 현상만 알아차리려고 하고, 나아갈 때는 나아가는 현상만 알아차리려고 하고, 내려놓을 때는 내려놓는 현상만 알아차리려고 하라는 거라. 부딪치고 넘어지고 하는 거 신경 쓰지 말아라는 거라.

그러고 나서 가다가 ‘어, 내가 돌아서야 되겠다’하는 마음이 생기면 탁 ‘멈추겠다’ 하고 멈추라는 거라. 그러고 나서 ‘돌아서겠다’ 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발을 180도 돌리도록 하라는 거라.

그래서 그대로 간 자리를 다시 그대로 돌아온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멈췄으면 멈췄다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나서, 멈췄을 때 호흡을 보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마음이 아주 편안하고 고요하면은 좌선하고 있을 때의 호흡보다도 서 있을 때 호흡이 더 명확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딱 선 상태에서 호흡을 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스님도 처음에는 서 있을 때 호흡이 굉장히 잘 보이기 때문에 한참 동안 서가지고 호흡만 보고 있을 때가 있었어요.

그리해도 됩니다. 굳이 안 걸어가도 됩니다. 그래서 서가지고 호흡이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걸 분명하게 관찰하면서 그 변하는 것들이 보이면 그냥 그대로 선 상태에서 그냥 수행을 해도 됩니다. 그러다가 걷고 싶을 때 다시 또 걸어라는 거라.

 

돌 때는 한 번에 하나씩만 해야 된다고 해야지 두 개를 같이 하면 안 됩니다.

쉽게 말하면 발이 있으면 한 발 돌리고 그다음 발 돌리고, 한 발 돌리고 그다음 발 돌리고 해야지, 한 번에 쑥 돌 생각 하지 말아라는 거라. 발을 들어올리고 돌리고 내려놓음. 그다음에 또 발을 들어올리고 돌리고 내려놓음. 또 하나 발을 들어올리고 돌리고 내려놓음. ‘들어올리고, 돌리고, 내려놓음’ 하면서 천천히 돌려라는 거라.

두 번에 나눠서 하든지 세 번에 나눠서 하든지 네 번에 나눠서 하든지 그거는 본인이 선택하면 되는 거고.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하는 것에 따라서 마음을 거기에다가 두고 경행하는 것을 몸을 돌리도록 그렇게 하라는 거라.

 

손을 옆에 놓든, 뒤에서 잡든, 앞으로 잡든, 그거 중요한 거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본인한테 맞게끔 하고, 단지 불러들이지만 않도록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경행을 하면 됩니다.

좌선, 경행은 그런 식으로 오늘은 해나가 볼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좌선할 때는 바로 대상을 알아차리려고 하지 말고,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로 만들고 나서, 마음이 호흡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라는 거라.

그러고 나서 호흡을 보라는 거라. 코끝이면 코끝, 배면 배.

그래서 거기에 따라서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들을 갖다가 볼 때는, 불러오고 꺼지고 할 때 일어나는 느낌들을 볼려고 하라. 쉽게 말하면 가볍고, 무겁고, 뭔가 끌어당기는 것 같고, 그런 느낌들을 알려고 하라는 거라. 실재하는 느낌들을 볼려고 해야지, ‘배가 불러오고, 꺼진다하는 것들을 알려고 해서는 안된다 하는 거라.

 

그러고 나서 경행을 할 때 일어날 때 주요한 것들을 분명하게 관찰하고, 그다음에 다시 또 경행이 끝나고 나서 돌아갈 때 좌선에 들어가기 전에 천천히 하면서 돌아가도록 하라.

경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3단계로 나누어서 할 수 있도록 하고, 발을 들어올릴 때 일어나는 느낌들, 나아갈 때 느낌들, 내려놓을 때 느낌들을 분명하게 알도록 자꾸 노력을 하시면 됩니다.

 

오늘은 수행하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이거 정도는 할 수 있도록 하시면 됩니다. 수행 방법들은 여러분들이 대부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되고.

 

그다음에 오늘 이 시간에 해야 되는 것이 칠청정에 계청정까지도 사실은 오늘 같이 해야 되거든.

 

여러분들 팔계 지키죠? (예) 집중수행 왔으니까 다들 팔계 지키죠? (예) 배고플 것 같아요? (아닙니다.) 안 고플 것 같아요? (예) 참으십시오. 팔계는 반드시 지키도록 하십시오.

계는 왜 지킬까요? (수행자 : 청정해지기 위해서) 청정해져서? 청정해지기 위한 거는 맞지. 그런데 계를 지키는 이유가 뭐라? 계를 지키면 조금 전에 얘기했지만, 마음이 청정해지기는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청정해지기는 해요. 그런데 마음만 청정해지면 되나? 계를 지키는 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계를 지키는 이유들을 분명하게 알아라는 거라. 왜 계를 지킬까?

이렇게 보면 됩니다. 마음에서 탐··치가 안 일어나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수행을 통해서 안 일어나도록 만들든지, 아니면 일상생활에서 선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도록 해가지고 만들든지, 어떤 방법을 통하든지 탐·진·치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그런데 왜 탐·진·치가 없이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어떠한 경우든지 탐··치가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또 탐진치가 점점 엷어지면 엷어질수록 수행의 진척은 점점 더 높이 올라가게 됩니다. 탐심과 진심을 조금 누그러뜨리기 가장 좋은 게 뭐가 있을까? 계율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계율만큼 빠르게 이걸 만들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거라.

그래서 계를 지키는 것은 탐··치에 치는 제외하더라도 탐심과 진심을 갖다가 억눌러 가지고 안 일어날 수 있는 습관을 자꾸 기르는 데는 계율만큼 좋은 게 없는 거라.

 

그래서 부처님이 재가자들한테 무조건 오계는 지켜라. 그리고 이런 수행처에 오고 할 것 같으면 팔계를 지켜라 합니다. 그리고 수행처에 안 오더라도 일상생활을 할 때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팔계를 지켜라고 그럽니다.

8계 전체를 지켜라. 5계의 전체를 지켜라. 선택하지 말고. 그게 왜 그러냐 하면 탐심과 진심을 잠재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계를 지키는 것들이라는 거라.

? 내가 수행하고 계를 지키고 보시하고 바라밀을 행하고 하는 목적은 어떠한 경우든지 도와 과를 이루기 위한 겁니다. 그래서 윤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건데, 도와 과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혜가 일어나야 되는데, 지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마음이 청정해져 있지 않으면 지혜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청정해져있다는 것은 탐진치가 없이 생활하고 있다는 겁니다.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계를 지키는 것은 가장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어찌 보면 여러분들 집을 짓는데 주춧돌과 마찬가집니다. 계는 안 지키고 나는 수행하겠다?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계를 지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왔을 때 팔계를 지키는 훈련이 되면은, 일상적으로 집에 가서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팔계를 지켜라. 당연히 평상시 때는 5계를 지켜라.

 

계는 여러분들에게는 어찌 보면 수행의 가장 기본 밑바탕에 해당이 되는 거고, 그것이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행의 진척은 없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이 단언하신 겁니다.

그래서 계를 지키는 훈련들을 자꾸 하도록 그렇게 하면 됩니다. 계가 밑바탕이 됐을 때 여러분들이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들이 돼나갈 수가 있다는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나는 계율은 그냥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들 안 하고, 그냥 선하게 그냥 살아가면 안 됩니까?” 그렇게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해도 되죠. 선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일으킬 수 있으면 그리하면 됩니다.

쉽게 말하면 계율 항목이 만약에 도둑질 하지 마라. 도둑질하는 사람은 드물죠? 그러면 죽이지 마라. “나는 안 죽이고 삽니다.”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렇게 계속 살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 되요.

그럴려면 어떤 마음이 일어나야 될까? 자비희사의 마음이 항상 일어나 있는 상태일 때는 다른 생명을 죽이려는 마음이 안 일어납니다. 그러면 굳이 죽이려는 마음이 안 일어나기 때문에, 죽이지 말라는 계율을 지킬 필요성이 없어져 버립니다.

 

여러분들이 항상 자비희사의 마음이 일어나집니까? 안됩니다. 도와 과에 이르러서 아라한이 된 자만이 항상 자비희사의 마음이 일어나지게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어떠한 경우든지 그것이 끊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죽이려는 마음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래서 아라한들은 계율이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그것들이 필요 없이 지켜져 나가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어떠한 경우든지 그 계율 항목은 반드시 지킬려고 해야 된다는 거라.

말은 “모든 생명은 평등하기 때문에 난 죽이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증명할 거라? 안 죽인다는 마음을 어떻게 확고하게 뿌리내렸다고 할 수 있느냐는 거라. 모기를 보고도 성내는 마음이 안 일어나져요? 바퀴벌레를 보고도 싫어하는 마음이 안 일어나져요? 그건 아니잖아.

 

그러면 어떠한 경우든지 모기를 보든지 바퀴벌레를 보든지 ‘아, 성냄이 일어났어’ ‘아, 성냄이 일어났네’ ‘이걸 죽이지 말고 내가 잘 잡아서 밖에 내보내야지’ 이런 마음을 일으킨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은 자비희사를 실천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계율 항목은 내가 자연스럽게 자비희사가 일어나는 아라한이 되기 전에는 어떠한 경우든지 지켜야 돼. 재가자는 5계와 8계를 지켜야 되는 거고, 비구들은 비구 계율을 반드시 지켜야 됩니다. 지키지 못하면 마음에서 재가자들에게는 선한 마음보다는 악한 마음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리고 출가자는 출가자들의 계율에 맞게끔 처벌이 반드시 있게끔 되는 거라.

 

그마만큼 계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계율로 인해서 마음이 청정해질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쉽게 말하면 ‘아, 나는 안 죽였다’ 하는 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청정해지도록, 마음이 깨끗해지고 난 그것으로 인해서 기쁨이 일어나도록 만들어라는 거라. 남의 물건 보고도 내가 훔치고 도둑질하려고 ‘저거 가져야지’ 하는 마음이 안 일어나고 ‘나는 뭐 필요 없어. 내 것으로 충분해’ 하는 것으로 인해가지고 마음이 청정해지게 되는 거라.

 

마음이 청정해지기 위해서 계율을 지키는 것이지, 계율을 억지로 그 항목에 맞게끔 그걸 지킨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계율은 마음의 문제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리하더라도 반드시 그것들을 지키는 것으로 인해서 계청정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갖다가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점점 더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것들이 지켜지는 상태가 되도록 되기 때문에, 너무 크게 계율에 대해서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지켜나가도록 노력을 하시면 됩니다. 지켜나가면 지켜나갈수록 ‘내가 참 잘했다’ 하는 마음들이 일어나게끔 됩니다.

 

오늘 계청정은 간단하게 이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심청정부터 들어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행 문답]

질문 있는 사람?

 

(수행자 질문 : 경행할 때요. 제가 ‘나아감’까지 하고 내려놓아야 될지, 저는 초보라서 수행에서 경행할 때 두 단계로만 먼저 시작을 해도 되는지요.)

-스님 답변 :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그냥 그리해도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게 하면 ‘들어올림, 내려놓음’ 이렇게 할려고 할 것 같으면, 들어올릴 때 그 자리에 내려놓게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예) 대부분 들어올릴 때 이렇게 비스듬하게 나아가지게 됩니다. (예) 그러면은 대부분 두 동작을 같이하게 되는 형태가 돼버리는 거라. 들어올리면서 나아가지게 되는 거라.

그래서 차라리 그런 것보다는 들어올릴 때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본인이 뭐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할 때 비스듬하게 나아가는 것이 오히려 본인한테 맞다 할 것 같으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 특성이 보면은 몸의 균형을 안 잃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경우들이 자주 보입니다. (예)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자빠져도 됩니다. 아까 얘기했듯이.

그래서 한 발을 디디고, 디딘 발에 마음을 두고 나서, 그러고 나서 한 발만으로도 지탱하는 상태가 되는 걸 알고, 발을 들어올릴 때 ‘발을 들어올림’ 하고 알아차리고, ‘나가 감’ 하고 알아차리고, ‘내려놓음’ 하고 알아차리면, 뒤뚱거리는 것이 조금은 덜해지기는 합니다.

그래서 나아갈 때 한 발 디딘 것은 이미 견고하게 디뎌졌기 때문에, 디딘 발이 디뎌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러고 나서 발을 들어올릴 때 ‘들어올린다’고 알아차릴려고 하기 때문에 자꾸 뒤뚱거려지는 거라. 이미 발을 디딘 한 발은 견고하게 디뎌져 있어요. 그래서 본인을 믿으라는 거라.

 

본인을 믿고, 발을 들어올릴 때 들어올릴 때 일어나는 현상들을 보라는 거라.

가벼워지면 가벼워진다는 것을 보려고 해야지, 그냥 발을 들 때 들어올림하면서 알려고 하기 때문에 자꾸 몸이 뒤뚱거려지게 되는 거라. 그것만 주의하면 됩니다.

그래서 본인이 선택해서 발을 두 단계로 해서 그냥 ‘들어올림, 내려놓음’ 하면서 비스듬하게 나아가는 경우는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리하더라도 발을 들어올릴 때 들어올리면서 나아갈 때 비슷하게 나아가지는 그 현상들을 보라는 거라. 그렇게 해야 되지, 그렇지 않고 그냥 몸 안 뒤뚱거릴려고 그렇게만 하면 어린애도 아니고 걷는 연습하는 게 아닙니다. 됐죠? (예. 알겠습니다.)

 

(수행자 질문 : 좌선하고 경행하고 일대일(1:1)이라고 했는데요. 경행을 하는 거의 목적을 어떻게 보면은 경행들의 현상을 제대로 잘 알아차림 할려고 수행하는 것으로 경행을 하는 것이다. 저는 이렇게 이해를 하고 있는데)

-스님 답변 : 그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이제 수행은 어떠한 경우에는 균형을 맞춰야 되거든요. 좌선하고 있으면 움직이는 것이 없고 호흡만 있거든요. 그런데 호흡은 내가 알아차리든 못 알아차리든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럼 대상을 놓쳐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쉽게 말하면 크게 노력이 없어도 앉아 있는 건 할 수가 있다는 거라. 그러면 노력의 힘이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경행을 할려 그러면 내가 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해야 되고, 뭔가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좌선과 경행이 그래서 균형을 맞출 수밖에 없는 거라요.

노력의 힘이 떨어졌을 때 노력의 힘을 갖다 키워줄 수 있는 것은 경행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지, 좌선을 통해서 사실은 가능하지는 않다는 거라.

그 대신에 경행을 하다 보면 집중하는 힘은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계속 움직이니까. 그런데 좌선은 집중하기에는 더없이 좋습니다. 다른 대상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노력의 힘과 집중의 힘이 어느 정도 발란스가 잘 맞을 때, 그때 수행은 굉장히 무르익게 되거든. 그 무르익는 걸 갖다가 맞춰주기 위한 거라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좌선을 했으면 반드시 경행을 하라는 거라.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은 보면 좌선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을 보면 본인이 노력의 힘이 떨어져 있는 것들을 눈치를 못챕니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호흡하는 것들을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거 안다고 해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거든. 그 변하는 현상이 보여야 되는데, 그걸 알려고 안 하는 거라. 그래서 경행들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거라.

 

(수행자 질문 : 수행하는 목적이 평상시의 마음을 알아차림 하기 위해서 수행한다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스님 답변 : 그것도 일부는 맞습니다. 그런데 탐진치가 일어났으면 탐진치가 일어났다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그런데 수행은 어떠한 경우든지 탐진치가 없는 상태에서 사띠할 수밖에 없다 하는 거라. 그러면 꼭 수행이 탐진치를 알아차리기 위한 거라고는 보기 힘들고, 어쨌든 수행의 진행 과정에서 지혜가 일어나는 상태가 된다 할 것 같으면 탐진치 없이 수행해서 일어난 것이 지혜인 것이고.

단지 수행의 초보 단계에서는 탐진치 없이 살아가고, 탐진치 없이 수행하기 위해서 사띠한다고 생각을 하면 맞습니다.

 

또 다른 분? 없으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