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25~2026 일상수행법문

불기 2570년 붓다의날 법회_공덕은 행복이다(20260530)

담마마-마까 2026. 5. 31. 18:54

https://youtu.be/ZtjXJ80Zg6o?si=3BOh-ep5V5Z8sbJj

 

* 공덕은 행복이다. (20260530. 붓다의날 법문)

 

오늘 법문 제목이 뭐라고요?

(수행자 대답 : 공덕은 행복이다.) 「공덕은 행복이다.」

오늘 여러분들이 어떤 공덕들을 지을까? 보시했으니까 보시공덕은 있겠죠. 그리고 오늘 팔계 지키니까 팔계 계율을 수지하고 지키는 공덕은 있겠죠. 또 수행하니까 수행공덕도 있겠죠. 공덕 많이 짓네. 오늘은 보시·지계·수행 다 지을 수 있는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그런 날입니다.

근데 오늘 보시한 거 공덕이 되긴 합니까? (수행자 : 예) 돼요? (수행자 : 예)

왜 어떻게 해서 공덕이 돼요? (수행자 : 부처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자, 그러면 생각해 봅시다. 보시하는 거는 베푸는 거니까 우리 선원에 보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매달, 아니면 특별한 날에 보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 중에 일부는 연말에 기부금 영수증을 받기 위해서 보시하는 분도 있어요.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기부금 영수증 받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고, 그걸 목적으로 보시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분들은 그게 공덕이라는 게 뿐냐(puñña)입니다. 뿐냐가 될까? 돼요?

(수행자 : 됩니다.)

왜 된다고 생각해요?

(수행자 : 그만큼 부처님을 회상하고 이렇게 수행을 할 때 도움이 되니까...)

아니 목적이 저기 기부금 영수증을 받기 위한 건데?

(수행자 : 그것만 받기 위해서는 안 줍니다.)

아니,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분이 있다는 거라. 그런 분을 얘기하는 겁니다.

(수행자 : 마음이 다듬어져야 되는데 ...)

또 다른 예로 요즘 선거철이니까 정치후원금 내죠? 그냥 순수하게 ‘저 사람이 정치 잘해갖고 우리 좀 잘 살게 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원금을 내는 사람도 있지만은, 일부 중에는 정치 지원금을 냈으면 ‘저 사람이 당선되면 나한테 뭐 한 자리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한번 예를 들어봅시다. 대승불교에서 많이 하는 거, 초파일이나 이럴 때 등값 얼마 하니까 그거 탁 보시를 하면서 마음속에서 축원들을 합니다. ‘우리 애가 이번에 수능 합격했으면...’

 

자, 요 세 개의 예를 들었는데, 공덕이 되는 게 어떤 거예요? (수행자 : 다 됩니다.) 다 됩니까? (수행자 : 예)

무조건 다 된다고 우기지 말고.

(수행자 대답 : 공덕의 차이가 좀 있을 뿐이지, 첫 번째가 순수한 마음으로 보시한게 가장 큰 공덕이구요, 그 각각의 공덕의 결과의 부분에서 차이는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공덕이 되는 것이, 이미 선한 마음이 거기에는 흡수되어 있으니까 공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뭐 여러분이 공덕이 된다고 할 것 같으면 공덕이 되는데, 엄밀하게 얘기를 좀 할게요. 특히 이제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는 이렇게 스님들한테 필수품 보시하고 이렇게 보시하면서, 보시하고 나면 항상 발원을 하는 게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공덕으로 내가 다음 생에는 천상 세계에 태어나기를’ 이렇게 발원합니다. 아까하고 차이가 뭘까?

아까 거는 현세에서 아니면 뭐 가까운 시일 내에 뭔가 보상이 돌아와야 돼. 안 돌아오면 큰일 날 거 같애. 그렇죠? 그런데 테라와다 보통 불자들이 보시, 지계, 생천해서 천상에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지금이 아니고 다음 생입니다.

왜 다음 생에 천상에 태어나길 바랄까? 그 목적이 있죠.

좀 더 행복하게, 또는 좀 더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기 좋은 조건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서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데 좀 더 좋은 조건이 되기 위한 그런 도구로서 천상이 필요하고,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나더라도 좀 더 부유롭고 편안한 데로 태어나길 바라는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치면 그런 거는 공덕이 될거 같죠?

 

그런데 아까 얘기했던 부분들은 공덕이 아닙니다! 그거는 공덕이라고 안 하고, 그거는 '불선한 행위'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자기의 탐·진·치가 있어서 그것으로 인해서 보시를 하고, 계를 지키고, 수행을 하는 것은 오염되어 버린 상태가 됩니다. 이미 그것 자체가. 그러면 그거는 공덕행이라고 보기가 힘이 듭니다.

우짜노? 오늘 아까 조금 전에 보시하면서 내가 내 욕심 부려가지고 발원을 했다 그랬으면 빨리 퉤! 퉤! 퉤! 하고 취소해야 돼.

 

취소하고, 공덕과 선행의 차이를 또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짓는 것, 공덕은 선한 행위로 인해서 공덕이 되는 거죠?

스님이 탁발 공양 올릴 때, 보시 올릴 때 어떤 마음으로 하라고 했어요?

"올리기 전에 ‘아, 내가 이거 이렇게 준비해 가지고 스님한테 공양 올린다’는 생각으로 기쁜 마음을 일으키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을 일으키고 공양물을 갖다가 바리때에다 탁 넣을 때 있는 것을 그대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청정한 마음을 유지하고, 그리고 나서 공양 올리고 나서, 돌아서 생각해 보니까 ‘참, 내가 잘했어.’ 그러면서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서 만족하고 행복한 마음을 일으키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렇게 공양을 올렸다, 보시를 했다, 그러면 그거는 꾸살라(kusala)일까? 뿐냐(puñña)일까? (수행자 : 두 가지 다) 두 가지 다 에요? 두 가지 다 합시다 그럼.

엄밀하게 얘기하면은 꾸살라(kusala)에 해당이 됩니다.

선한 행위(kusala)는 그것으로 인해 가지고 내가 해탈 열반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것들이 될 경우에는 선한 행위가 됩니다. 그런데 모든 공덕행(puñña)은 꾸살라가 되지는 않죠? 공덕을 지은 것은 틀림없는데,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해탈 열반으로 나아가지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공덕행을 지으면서 마음에 사띠를 지니고 뭔가를 행하지 않으면은 그것들은 그냥 공덕(puñña)이 되기는 하는데, 그것으로 인해서 천상세계에 태어나기도 하고, 또는 좀 더 좋은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나기도 하고, 그럴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해탈·열반에 이르는 길에는 가지를 못하는 상황이 됩니다.

우짤까? 여러분들 뭘 하는 게 좋겠어요? (수행자 : 꾸살라로 해야 될 거 같습니다.) 꾸살라 해야 될 거 같애요? 땡! 그것도.

"두 가지를 다 해라"

 

여러분들이 1년 12달 내내 사띠 유지할 수 있어요? 없잖아. 그걸 그렇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할 것 같으면은 이미 그분은 연기의 고리를 끊은 상태라. 그런 사람들은 뿐냐가 필요 없고, 그런 사람들은 꾸살라조차도 필요하지를 않아. 그냥 행위를 하는 것뿐이지.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면은 사띠는 언제든지 끊어질 수밖에 없고, 마음에는 불선한 마음들이 자꾸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은 어쨌든 나쁜 일을 지었으면 좋은 일을 자꾸 행해가지고 공덕을 쌓아가지고, 이것들이 드러나지지 않게끔 만들어줘야 됩니다. 그럴려면 뭘 해야 돼요?

꾸살라도 해야 되지만 뿐냐도 해야 됩니다.

공덕을 지을 수 있는 것들을 행하는 걸 등한시하면, 그것이 해탈 열반에 이르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해탈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 수행을 할 때 도움을 주지는 못하는 상태가 돼버립니다.

 

왜 그럴까? 대부분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강하게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존재 욕구가 있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나는 좀 더 오래 살고 싶다. 좀 더 건강하고 싶다.’ 하는 마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그런 마음이 있으면은 어떠한 경우든지 악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거라.

내 위주로, 내 가족 위주로, 나의 견해가 옳다는 것들로부터 출발을 하기 때문에, 그거는 잘못될 수밖에 없는 거라. 태어난 걸 어떡하노? 그렇게 태어난 걸. 그렇다고 해가지고 그대로 둘 수는 없는 거 아니라. 그래서 뿐냐라고 하는 공덕행들을 자꾸 해야 됩니다.

 

거기에 한번 보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멧따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라고 아래 적어 놓은 것 있습니다.

"공덕은 행복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행복 그 자체이다. 공덕은 바로 여기에서의 행복이다." 그렇게 돼잇습니다.

공덕 짓는 행위는 밑에 적어놨습니다.
"보시, 그다음에 계율 잘 지키는 것, 그다음에 6가지 감각기관을 잘 억제하는 것, 그다음에 자애수행을 열심히 하는 것, 그다음에 사띠를 유지하는 것, 이런 크고 작은 선행들"이 됩니다. 그런데 그게 씨앗이 된다는 겁니다.

공덕의 씨앗, 사띠의 씨앗, 깨달음에 나아가기 위한 씨앗들을 뿌리지 않고, 사띠만 하면 다 될 것 같죠? 이게 착각입니다. 서양의 수행자들을 보면은 보시 안 합니다. 계율 안 지킵니다. 그러면서 수행만 하려고 그럽니다. 씨앗은 뿌리질 않고 수행을 하려고 하는데 그게 수행이 잘 돼요? 안 되는 거라.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가지고 그게 열매 맺을 때가 될 때, 그때 깨달음으로 나가는 길로 나아갈 때 훨씬 수월해지는데, 씨앗은 안 뿌리고 그냥 수행만 할려고 그럽니다. 수행이 안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는 거라. 꼭 다른 말로 하면 ‘막행막식 하면서 자신은 깨달음에 이르렀다’ 하는 얘기와 꼭 마찬가지입니다. 깨달음에 이른 분이 어떻게 막행막식을 할 수가 있어요? 계율도 안 지키고, 마음이 다른 사람들을 좀 더 편안하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베푸는 마음들도 가지지 않고 자애의 마음도 지니지 않은 상태에서 대상에 대해서 알아차림을 한다? 그거 그 대상은 왜곡이 안 되겠어요? 설혹 왜곡이 안 되고 대상을 잘 알아차린다고 치자. 일정한 수준에서 딱 막힙니다. 그 이상은 올라가지질 못합니다.

 

스님이 누누이 얘기하지만, 수행의 단계를 높여주는 것은 지금은 수행의 사띠의 힘이 아닙니다. 바라밀이라고 하는 공덕을 쌓았느냐, 안 쌓았느냐는 그 힘이 다음 단계로 차고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주게끔 된다는 겁니다. 그게 공덕의 씨앗이라고 하는 겁니다. 씨앗이 무르익어야만이 그것으로 인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게 되는 것이지, 뿌리지 않는 씨앗에서 나무가 자라기를 바라는 거와 꼭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도 그렇게 얘기해 놓았습니다. 부처님이 과거생에서 무수한 생을 거쳐오면서 윤회를 했는데, 어떤 때는 천상 세계 천인으로 태어나고, 어떨 때는 대범천왕으로 태어나고, 인간으로 태어나더라도 고귀하고 부유로운 데 태어나고 이런 것들을 쭉 돌아보니까, 내가 왜 이런 데 태어났을까? 나쁜 세계로 태어나지 않고?

그게 부처님은 세 가지를 얘기해 놨습니다.

 

보시, 절제, 자제의 공덕들입니다.

'보시'하는 것들이 기본이 되고, '절제'라고 하는 것은 감각기관에 대해서 잘 마음을 보호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절제를 하고, '자제'라고 하는 거는 쉽게 얘기하면 내가 선정에 이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걸 평상시 때 쭉 수행해 왔기 때문에 그 선정의 힘들로 인해서 사띠의 힘들도 더 커지게 되는 거라. 그래서 탁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거라. 그게 자제라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를 그래도 내가 과거 생에서 꾸준하게 해왔기 때문에, 이런 공덕의 씨앗으로 인해서 내가 그래도 윤회하면서 참 좋은 삶을 살았구나’ 하는 걸 갖다가 회상한 부분입니다.

 

여러분은 뭘 이생에서 공덕의 씨앗으로 뿌렸다가 죽을 겁니까?

어차피 여러분들도, 또 스님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뭘 할래요? 남한테 주기 아까워? 그러면은 안 줘도 돼. 그러면 그거는 하자. 인드리아 상와라(Indriya-saṁvara)라 해서 감각 기간을 좀 잘 다스려. 꽃 피었다고 해가지고 ‘음, 너무 좋아.’ ‘오늘은 꽃놀이 가자.’ 감각기관에 홀라당 빠지지 말고, 맛있는 거 먹는다 해가지고 ‘너무 맛있어. 좀 더 먹을까?’ 집착하는 마음 착 내고 그러지 말고, 적당하게 하라는 거라.

‘음, 맛있네. 그래’ 맛있는 것도 있으면 또 다른 것도 먹고 보고, 꽃이 보이는 건 어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걸 갖다가 착 차단을 못 시킨다 하더라도, 그냥 꽃이면 꽃으로써 그냥 보라는 거라. ‘아, 예쁘게 피었네’ 꺽을려는 생각만 가지지 말고. ‘어떻게 하면 저 꽃이 좀 더 예쁘게 피어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해서 차라리 물이라도 좀 주라는 거라. 가지고 있는 감각기관들을 얼마든지 좋은 데 쓸 수 있고 그걸 잘 보호해서 마음이 더럽혀지지 않을 수 있는데, 차라리 그거라도 좀 하라는 거라.

 

두 번째로, 여러분들이 이생에서 할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을까?

오늘 팔계 했죠. 그것만 하나 합시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적어도 불재일을 좀 지키자. 부처님은 제자들한테 "내 제자는 반드시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은 불재일을 지켜라" 하고 의무화되다시피 재가자한테 얘기를 했어요. 그러면 일주일에 한 번씩은 불재일을 좀 지켜야 될 거 아니라. 억지로라도. 아, 오늘은 오후에는 금식하고, 몸과 마음이 좀 청정하게 화도 안 내고, 욕심도 좀 안 부리고, 그러면서 오늘 하루는 잘 좀 지내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질 수는 없어요? 충분히 가능하잖아. 일주일 내내 하라는 것도 아니고 하루. 일주일에 한 번. 7분의 1이야. 7분의 1. 그거 그렇게 어려운 거 아니잖아. 하루 굶는다고 죽어?

 

스님은 지금 상태가 최고 에너지가 떨어져 있는 때입니다. 왜 그러냐면 어제 점심 때 먹고 나서는 씹는 거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고 있거든. 마시는 것만, 그것도 마시는 것도 곡물 있는 것은 먹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이제는 이거 끝나고 나면 이제 밥 먹을 거 아니라. 공양할 건데, 그때 되면 에너지가 또 싹 올라와. 그럼 지금이 최고 에너지가 떨어질 때라. 그런데도 여러분들한테 법문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올려서 얘기를 하고 있는 거라. 이거는 스님이 해야 될 의무이기 때문에.

그럼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불제자로서 갖게 되는 의무들을 다 하고 있어요? 제발 좀 해. 그거라도 좀 하라는 거라.

 

그다음에 하나가 뭐냐면, '아디와세나 칸띠'라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대상에 대해서 사띠하는 힘들을 키워나가는 것. 그리고 그 대상이 내가 좋고 싫음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경우든지 마음을 인내하고, 그 대상에 대해서 좋고 싫음을 일으키지 말고, 사띠해나가는 힘을 키우는 것.

이생에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면 여러분들 어떻게 죽을 건데? 죽을 때 사띠하고 죽을 자신 있어요? 죽을 때 선한 마음 일으키면서 죽을 자신 있어요?

없으면 해. 이 사람들아. 평상시에 연습을 안 하고 어떻게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그런 걸 갖다 기대를 하느냐는 거라.

 

오온에서 일어나는 것은 오온으로서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밖에서 일어나는 것은 밖에 일어나는 것으로서 대상으로서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지, 밖에서 일어나는 대상에 마음이 쏙 뺏겨버린다든지, 오온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인해서 좋고 싫은 마음이 탁 일어나버리든지, 이러면 사띠를 못 하는 거라.

살아가고 있으면 어떠한 경우든지 몸과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뭔가를 의식하게 되고, 뭔가를 또 생각하게 되는 거고, 또 뭔가를 행동하게 돼 있게 돼 있다는 거라.

그 모든 것이 대상인데, 그 대상을 왜 사띠할 생각을 안 하느냐는 거라. 그러면서 죽을 때 잘 죽길 바라지마라. 그건 도둑놈 심보입니다. 평상시 때 자꾸 사띠하는 습관들을 자꾸 가지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마음이 조금 더 여유가 있는 분들은 바라밀을 자꾸 쌓으려고 하십시오.

여기도 아까 제목이 뭐라고? "공덕은 행복 그 자체"라고 했습니다.

지가 행복한 일들을 하고 있으면서 행복하다고 못 느끼는 것이나, 행복한 걸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안 하는 것은 그건 잘못된 거라.

바라밀을 쌓는 것은 여러분이 다음 생이든 아니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든, 그와 관계없이 지금 현재 여러분들이 행복한 것들이라. 왜 행복한 일들을 안 하려고 하느냐는 거라.

그래서 행복한 일들은 자꾸자꾸 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게 이 생에서의 행복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고, 다음 생의 행복도 가져다주고, 수행해서 이 윤회를 끊을 수 있는 힘들을 주기도 하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바라밀들을 자꾸 행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야 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프린트물을 잘 읽어보십시오. 잘 읽어보고, 그다음에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이걸 딱 가슴에 좀 새기고 ‘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게 이 주변에 이렇게 많았는데 내가 이걸 잊어버리고 살았구나’ 하고 마음을 먹고 자꾸 하려고 해야 됩니다. 당장 집에 가서 아니면 오늘 주변 사람들한테 따뜻한 말 한마디, 미소 지을 줄 알고, 그게 바로 여러분이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그게 공덕이 되는 거라는 걸 잊지 않도록 부처님 오신날 다시 되새겨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