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25~2026 일상수행법문

2026년 담마와나선원 붓다의날 봉축법회_출가 수행자의 삶의 방식(20260531)

담마마-마까 2026. 6. 4. 13:35

https://youtu.be/tJ-5oIHVlIc?si=sYakIs_bSJVLZ5ih

<법회영상 31:15 초부터 법문이 시작됩니다.>

 

오늘은 붓다의 날이죠. 뭐 하는 날인지 알죠?

지금 부처님이 계신다면 제자들한테 뭐라 했을까? 출가자든 재가자든.

한번, 붓다의 날에 한번 돌아봅시다.

오늘은 수행 법문이 아니고 그래도 부처님 오신 날이니까 한번 우리가 좀 잘 되새겨 보자는 그런 의미로 프린트물을 작성하였습니다. 특히 출가 수행자들한테.

 

왜 그러냐면 지금 보면 자기 거주처를 떠나왔는데도 윗가사를 안 갖추고 입고들 있거든. 그러면 안 되는 거라. 자기 거주치를 떠나왔으면은 지금은 삼의(三衣)를 다 갖추고 다녀야 될 시기이지, 까티나(kaṭhina) 기간이 아니거든. 그러면 삼의를 갖춰야 됩니다.

그 출가자들은 출가자의 위의(威儀)가 있는 건데, 그 위의에 맞지 않게끔 편한 대로 할 것 같으면 출가자라서 존경을 못 받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재가자 보다는 출가자한테 좀 당부하려고 지금 얘기를 하는 중입니다.

마찬가지로 바리때도 오늘 돌아가지 못할 상황이면 바리때를 가지고 나와야 됩니다.

 

편법으로 자꾸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거는 테라와다의 엄격한 규칙이기 때문에, 규칙은 규칙대로 따르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출가자는 재가자와의 삶이 다릅니다.

그래서 위의도 다르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게끔 됩니다.

그리고 출가자의 삶을 살아야지, 그렇지 않고 임의대로 편한 방식을 취하려고 할 것 같으면은 가장 게으른 사람들이 출가자가 돼 버립니다. 그런 부분들은 다른 스님들도 잘 좀 명심해서 법과 율에 어긋나지 않게끔 그렇게 할려는 노력들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이 5년 지나고 나서 은사 스님한테 “스님, 미얀마 가서 공부 좀 수행 좀 더 하고 오겠습니다”하고 얘기를 하니까 보내 주면서 스님이 글을 써 준 것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걸 간직하고 있거든. 그래서 저도 누군가 출가한 스님들이 공부하러 간다 할 것 같으면 이 구절을 반드시 써 주고 합니다.

그게 이제 꼭 출가자에게만 해당이 되는 게 아니고 수행하려는 분들에게는 다 해당이 되는 거기 때문에 잠깐 들려 드리겠습니다.

 

"출가자와 수행자는 세속의 삶과 다른 삶을 살아야 된다"하는 것이 첫 번째 구절입니다.

특히 출가자 같은 경우에는 법의 수호자입니다.

법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다음 대까지 쭉 전해야 될 의무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 법이 우선이 돼야 되는 것이지, 다른 것이 우선이 돼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법을 수호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야 되는 그 의무들이 있게끔 됩니다.

 

테라와다 불자라고 하더라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은 재가자로서 받아들이는 조건이 「삼귀의와 오계」입니다.

계를 지키지 못하는 분들을 테라와다 불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거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계는 지키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위의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다른 삶을 살아가야 될 때는 그 삶에 맞게끔 살아가야 되는 것이지, 일반적인 삶과 다르지 않게끔 살아간다 할 것 같으면 그걸 '위의를 갖춘 출가자다, 수행자다' 하고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수행하러 갔으면 마찬가지입니다. 수행을 해야 되는 것이지, 세속에 관여를 하고 또 시간을 보내고 할 것 같은 그건 수행하러 간 것이 아니게끔 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법의 수호자로서 법을 수호하지 못하는 조건이 있다"하고 얘기합니다.

그게 뭐냐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집착을 버리지 못했거나, 출가자로서 갖추지 말아야 될 재물을 자꾸 소유하려고 할 것 같으면은, 그것이 원인이라서 법을 수호하지 못하는 자가 된다"하고 얘기를 합니다.

 

일반 재가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재가자로서 갖춰야 되는 것이 출가자들에게 잘 위의를 갖출 수 있게끔 보호하고 후원하는 역할들을 해야 됩니다.

여기 첫머리에서도 얘기했지만은 "꽃에 꿀을 먹는 꿀벌과 같다"하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벌이나 나비들이 많이 찾아오는 꽃나무들은 번식이 굉장히 잘 됩니다. 왜 그러냐면 그 꿀이 맛있을 뿐 아니라 거기서 묻은 수분들 꽃가루들이 다른데 가서 옮겨서 또다시 열매를 맺게끔 해 주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런데 그 꿀벌들은 꽃 자체를 훼손하는 법이 없습니다. 나뭇가지 하나 꽃잎 하나도 건들지 않고 자기가 취할 꿀만 딱 취해서 가져갑니다.

 

재가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했으면은, 스님들에게 똑바로 출가 수행자의 길을 갈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역할들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스님들이 직접 하지 말아야 될 것들을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가사를 구하기 위해서 돈을 모아야 되고, 밥을 사 먹기 위해서 돈을 모아야 되고.

 

그래서 돌아가신 옛날 스승님께서 처음에 얘기한 것이 그 얘기를 합니다.

"바른 삶이라고 하는 걸 항상 기억을 하라."

그래서 그 삶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출가자도 법을 보호하는 보호자가 돼야 되고 수호자가 돼야 되듯이, 일반 재가자들도 법을 잘 알아서 그 법의 테두리에서 자꾸 살려고 해야 된다는 얘깁니다. 거기서 자꾸 벗어나려 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니까 여러분들은 부처님이 소망에 맞는 사람들이 되어 있습니까? 자신을 돌아보라는 거라.

‘내가 부처님이 소망하는 삶을 살고 있나?’

부처님이 원하는 게 뭐가 있겠어요? 번뇌를 다 여의신 분이 원하는 것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근데 왜 법을 계속 설했을까? 마지막 열반에 이르기 직전까지도.

우리가 그 법을 이해해서 당신과 같은 성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성인이 되지 않으면은 끊임없이 번뇌에 시달리게 돼 있고, 끊임없이 다툼들과 성냄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이생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또 다음 생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살려면, 지금 바로 수행해가지고 일정한 수준까지는 올려놔라는 거라. 성자의 지위까지는 올려놓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런 번뇌로부터 싸워서 지지 않도록은 돼야 되는 거고, 그런 번뇌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태는 돼야 되는 거라.

 

우리가 과연 부처님 소망에 맞게끔 지금 수행하고 살아가고 있어요?

 

여러 가지가 많은데 다 할 수는 없고, 하나만 더 얘기하겠습니다.

"자격을 갖추도록 하라" 하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출가한 분들은 10년이 지나고 나면은 제자를 거느릴 수가 있습니다.

또는 수행을 열심히 해서 상카루뻭카냐나에 이르르게 되면은 본인의 선택에 의해서 법을 설할 수 있는 자격을 줍니다. 그 자격을 갖추라는 거라.

 

스승의 자격이 될려고 할 것 같으면 스승의 자격을 가져야 됩니다.

법을 설할 자격을 갖춰야만이 법을 설할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수행에서 체험한 것이 없으면, 법 그 법은 전부 오염될 수밖에 없는 거라.

본인이 욕망을 더 가지고 있으면서 제자를 거느리고 있으면은, 그 제자들은 욕망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는 거라.

 

한국에도 지금 테라와다 불교가 벌써 꽤 시간이 흘렀는데

스님들이 공부를 안 하는 건지, 그런 자격을 갖추고 있는 분들이 안 보여.

법을 마음대로 설할 수가 있나? 수행을 지도할 수가 있나?

그냥 상가라는 조직에 얹혀가지고 살아가는 것밖에는 더 하느냐는 거라.

 

물론 다른 조직보다는 한국 테라와다 불교에 있는 스님들이 순하고 착하기는 하겠지.

근데 순하고 착하다 해가지고 모든 것들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여기 있는 스님도 언젠가는 또 죽음이 가까이 다가와지면 태국으로 훌쩍 떠나야 됩니다.

그때는 한국에 누가 법을 설하고, 누가 수행 지도를 할 건데?

빨리 공부하고 빨리 수행해서 도와 과에 이를 생각들을 안 하고, 그냥 생활에 묻혀가지고 지내면은 그걸 누가 그걸 그 스님들을 존경하고 따르려고 하느냐는 거라.

시간은 기다려 주지를 않습니다.

 

재가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까지 여러분들이 그렇게 건강하고 또 삶을 지탱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눈앞에 촛불이 꺼질 듯 말 듯 하고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빨리 공부할 생각을 안 하고, 그냥 생활에 묻혀가지고 거기에 바빠서 온 시간을 다 보낼려고 합니다.

공부할 수 있는 시기는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상가라는 것이 구성돼서, 그래도 상가 스님들을 볼 수가 있고, 부처님 법을 들을 수가 있고, 수행을 지도받을 수 있을 때 공부를 하라는 거라.

 

또 출가한 스님들에게 항상 유념해야 되는 게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나아가는 것과 재가자들에 비난받을 일을 하지 말아라'는 것 두 가지가 항상 따릅니다.

일반 재가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수행자입네’ 하면서 살아가면은 다 손가락질을 합니다. 수행자처럼 살아가지 않고 있는데 수행자라고 하니까.

 

남에게 비난받을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지 말고, 남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조건들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그게 여러분들이 수행을 하고 계율를 지키고 그리고 보시를 하고 하는 근본적인 이유라는 거라. 자기 자신이 여러 가지 번뇌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지 않을려고 널리 노력할 때, 그래도 그분은 부처님 제자답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어느 정도는 갖추어 나가게 됩니다.

 

오늘은 시간이 부족해서 이 정도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붓다의 날인데 뭐라 하는 일만 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런 날 스스로 자꾸 돌아봐야 됩니다.

돌아보고 경책받을 수 있을 때가 행복하다는 생각들을 하시기 바라겠습니다.

마치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