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성제(四聖諦)
1) 사성제 : 고(苦)․집(集)․멸(滅)․도(道)의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2) 사성제(四聖諦), 사제(四諦)
괴로움[苦]․ 괴로움의 원인[集] ․괴로움의 소멸[滅] ․괴로움을 끊는 방법[道]. 이 네 가지를 말함.
3) 사성제 (민족사-해심밀경-주)
네 가지 거룩한 진리이다.
불교의 실천적 원리를 나타내는 부처님 교설의 대강(大綱)으로서 고(苦)․집(集)․멸(滅)․도(道)이다.
①고성제(苦聖諦)는 현실 세계의 괴로움에 관한 진리이다.
이에 대표적으로 생(生)․ 노(老)․ 병(病) ․사(死)․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愛別離苦] ․
미워하는 사람과 만남[怨憎會苦] ․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함[救不得苦] ․
오취온(五取蘊)으로 구성된 데서 오는 괴로움[五蘊盛苦]을 든다.
②집성제(集聖諦)는 괴로움의 원인에 관한 진리이다.
이에 탐욕[貪] ․ 성냄[瞋] ․ 어리석음[癡 ]의 삼독심(三毒心)을 든다.
③ 멸성제(滅聖諦)는 괴로움이 모두 소멸된 이상세계, 즉 열반[滅]에 관한 진리이다.
④ 도성제(道聖諦)는 열반에 도달하기 위한 실천 수행방법에 관한 진리이다. 이에 팔정도(八正道), 즉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언어생활[正語], 바른 신체행동[正業], 바른 생계수단[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기억[正念], 바른 선정[正定]을 든다.
2. 팔정도(八正道)
8가지 열반을 구하여 거기에 나아가는 바른 도. 팔성도(八聖道), 팔지성도(八支聖道), 팔성도분(八聖道分), 팔도행(八道行) 등이라고도 한다.
37도품 중 가장 불교를 대표할 수 있는 실천 법문이니, 이 8가지는 열반 해탈에 통하는 정확한 방법 혹은 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륜을 굴릴 때, 쾌락과 고행의 두 극단을 떠나 중도에 나아간다고 한 것이 바로 이 팔정도다.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여덟 가지 바른 실천 수행법이다. 이것은 욕락과 고행의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이고, 올바른 깨달음에 인도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수행법이다.
①정견(正見) : 체견(諦見)이라고도 한다. 유와 무의 편견을 떠난 정중(正中)의 견해. 곧 불교의 바른 도리를 시인하는 견해.
바른 견해이다. 불교의 바른 세계관과 인생관으로서 사성제․ 십이연기법 등에 관한 바른 이해이다.
②정사유(正思惟) : 정지(正志), 정분별(正分別), 정각(正覺), 또는 체념(諦念)이라고 한다. 탐욕과 성냄과 해침 등이 없는 것을 말한다.
바른 사유로서, 행동으로 나타나기 이전의 바른 생각이다.
③정어(正語) : 정언(正言), 체어(諦語)라고도 한다. 거짓말, 두말하는 것, 욕설, 발라 맞추는 말 등을 떠난 것.
바른 언어행동이다.
④정업(正業) : 정행(正行), 체행(諦行)이라고도 한다. 살생이나 도둑질, 음행 등을 떠난 것,
바른 신체적 행위이다.
⑤정명(正命) : 체수(諦受)라고도 한다. 주술 등 사명(邪命)을 버리고 법대로 의복과 음식 등 모든 생활의 도구를 구하는 것.
바른 생활, 즉 바른 생계수단이나 일상의 바른 생활규칙을 말한다.
⑥정정진(正精進) : 정방편(正方便), 정치(政治), 체법(諦法), 체치(諦治)라고도 한다. 이미 생긴 악법을 끊게 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법을 일어나지 않게 하며, 아직 생기지 않은 선법을 생기게 하고, 이미 생긴 선법을 증장하여 만족하게 갖추도록 발원하여, 방편을 구하여 부지런히 힘쓰는 것을 말한다..
바르게 노력하는 것.
⑦정념(正念) : 체의(諦意)라고도 한다.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으로 몸과 감정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는 것.
바른 기억이다. 무상(無常) ․고(苦) ․ 무아(無我) 등의 진리를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⑧정정(正定) : 체정(諦定)이라고도 한다. 탐욕과 불선의 법을 떠나 초선 내지 사선을 성취하는 것.
바른 선정이다.
3. 경전에 나온 사성제(四聖諦: 네 가지 고귀한 진리)
또 비구들아, 비구는 사성제라는 법을 바로 보며 지낸다. 어떻게 사성제라는 법을 바로 보며 지내느냐?
비구들아, 비구는 ‘이것은 괴로움[苦諦]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集諦]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멸함[滅諦]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멸함에 이르는 길[道諦]이다.’라고 그대로 안다.
그러면 비구들아, 괴로움이라는 고귀한 진리란 무엇이냐?
태어남은 괴로움이다. 나이가 듦도 괴로움이다. 죽음은 괴로움이다. 슬픔 ․ 비애 ․ 고통 ․ 근심 ․ 번민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간단히 말해서 오취온은 괴로움이다.
그러면 태어남이란 무엇이냐? 이런저런 중생들이 생기고, 나오고, 윤회하고, 오취온이 나타나고, 감각 기관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을 태어남이라고 한다.
늙음이란 무엇이냐? 이런저런 중생들이 나이가 들고, 약해지고, 노쇠하고, 머리가 희어지고,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고, 생명력이 점점 없어지고, 여러 감각 기관이 무뎌진다. 이것을 늙음이라고 한다.
죽음이란 무엇이냐? 이런저런 중생들이 떨어져 나가고, 없어지고, 부서지고, 사라지고, 죽고, 살 날을 다 살았고, 오취온이 분해되고, 몸이 팽개쳐진다. 이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슬픔이란 무엇이냐? 중생이 겪게 되는 이러저런 손실이나 불행으로 생긴 아쉬움 ․ 서글픔 ․ 비탄에 잠긴 마음 ․ 내적인 유감 ․ 내적인 재앙, 이것을 슬픔이라고 한다.
비애란 무엇이냐? 중생이 겪게 되는 이러저런 손실이나 불행으로 생긴 비탄 ․ 통곡 ․ 슬픔 ․ 손실 ․ 비애의 상태, 이것을 비애라고 한다.
고통이란 무엇이냐? 중생이 겪게 되는 육체적 괴로움과 즐겁지 않음, 육체적 접촉에 의해서 생기는 괴롭고 즐겁지 않은 느낌, 이것을 고통이라고 한다.
근심이란 무엇이냐? 중생이 겪게 되는 정신적인 고통과 즐겁지 않음, 정신적 접촉에 의해서 생기는 고통스럽고 즐겁지 않은 느낌, 이것을 근심이라고 한다.
번민이란 무엇이냐? 중생이 겪게 되는 이런저런 손해나 불행으로 생긴 고민과 절망의 상태, 이것을 번민이라고 한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란 무엇이냐?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는 존재인 중생들은 이렇게 소망한다. ‘아, (다시)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이상 태어나지 않았으면!’ 반드시 늙고 병들고 죽고 애통해하고 비탄해하며 고통스러워하고 근심하며 번민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소망한다. ‘아, 이러한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이것이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그러나 소망하는 대로 성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라고 한다. 늙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 중생들은 이렇게 소망한다. ‘결국 늙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으면! 늙지 않았으면!’ 그러나 소망하는 대로 성취할 수는 없다. 이것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라고 한다. 또한 비구들아, 반드시 병드는 존재인 중생들은 이렇게 소망한다. ‘아, 결국 병드는 존재가 아니었으면! 병들지 않았으면!’ 그러나 소망하는 대로 성취할 수는 없다. 이것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라고 한다.
그러면 ‘오취온(五取蘊)’이란 간단히 말해서 무엇이냐? 그것은 물질적 형태 ․ 느낌 ․ 지각 ․ 의지 작용 ․ 인식 작용[色受想行識]이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서 오취온은 괴로움이다.’라고 설명된다.
비구들아, 이것이 괴로움이라는 고귀한 진리이다.
그러면 비구들아,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고귀한 진리란 무엇이냐?
윤회하여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것과 기쁨과 욕망으로 뭉쳐진 갈애는 여기저기에서 항상 쾌락을 찾는다. 그것은 곧 감각적 갈애[慾愛],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를 부정하려는 갈애[非有愛]이다.
그러면 이러한 갈애는 어디에서 생기고 어디에 머무느냐? 갈애는 이 세상 어디에나 기쁘고 즐거운 것이 있으면 그곳에 생기고 머문다.
눈 ․ 귀 ․ 코 ․ 몸 ․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면 거기에 갈애가 생기고 머문다.
형상 ․ 소리 ․ 냄새 ․ 맛 ․ 접촉 ․ 마음의 대상이 기쁘고 즐거우면 거기에 갈애가 생기고 머문다.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
(이와 마찬가지로 여섯 가지) 접촉 ․ 여섯 가지 접촉으로 생겨나는 느낌 ․ (형상 등에 대한) 여섯 가지 의지 ․ 여섯 가지 갈망 ․ 여섯 가지 개괄적인 사유(尋) ․ (형상 등에 대한) 여섯 가지 분석적인 사유(何)가 기쁘고 즐거우면 거기에 갈애가 생기고 머문다.
비구들아,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고귀한 진리이다.
그러면 비구들아, 괴로움을 없애는 고귀한 진리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갈애의 완전한 사라짐과 단절, 버림과 포기, 갈애로부터의 자유와 초연함이다. 하지만 어디에서 갈애가 버려지고 사라지겠는가? 이 세상 어디에나 즐겁고 기쁜 것이 있으니, 그곳에서 갈애가 버려지고 사라질 것이다.
눈 ․ 귀 ․ 코 ․ 혀 ․ 몸 ․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면 그곳에서 갈애가 버려지고 사라질 것이다.
형상 ․ 소리 ․ 냄새 ․ 맛 ․ 접촉 ․ 마음의 대상이 기쁘고 즐거우면 그곳에서 갈애가 버려지고 사라질 것이다.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 ․․․․
(이와 마찬가지로 여섯 가지) 접촉 ․ 여섯 가지 접촉으로 생겨나는 느낌 ․ 여섯 가지 의지 ․ 여섯 가지 갈망 ․ 여섯 가지 개괄적인 사유(尋) ․ (형상 등에 대한) 여섯 가지 분석적인 사유(何)가 기쁘고 즐거우면 그곳에서 갈애가 버려지고 사라질 것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괴로움을 없애는 고귀한 진리이다.
그러면 비구들아, 괴로움을 없애는 길로 인도하는 고귀한 진리란 무엇이냐?
그것은 여덟 가지 바른 길[八正道]이다. 즉 바른 견해[正見], 바른 생각[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활[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주의 깊음[正念], 바른 집중[正定]이다.
[正見] - 비구들아, 바른 견해란 무엇이냐? 괴로움에 대한 견해 ․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견해 ․ 괴로움을 없애기 위한 견해 ․ 괴로움을 없애는 길로 인도하는 견해, 이것이 바른 견해이다.
[正思惟]- 바른 사유란 무엇이냐? 욕망으로부터 ․ 악으로부터 ․ 무자비함으로부터 자유로운 사유, 이것이 바른 사유이다.
[正語] - 바른 언어란 무엇이냐? 거짓말 ․ 험담 ․ 거친 말 ․ 쓸데없는 말을 멀리하는 것, 이것이 바른 언어이다.
[正業] - 바른 행동이란 무엇이냐? 살생 ․ 도둑질 ․ 애욕적인 음행을 멀리하는 것, 이것이 바른 행동이다.
[正命] - 바른 생활이란 무엇이냐? 잘못된 생활 방식을 버리고 올바르게 사는 것, 이것이 바른 생활이다.
[正精進] - 바른 정진이란 무엇이냐? 이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하지 않고 악한 법이 일어나지 않도록, 의욕적으로 노력하고 매진하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비구는 이미 일어난 선하지 않고 악한 법을 버리기 위해, 의욕적으로 노력하고 매진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한 법이 일어나도록 의욕적으로 노력하고 매진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이미 일어난 선한 법들을 머물게 하고 잃지 않도록 하며 더 자라나게 하고 무르익게 하며 계발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노력하고 매진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이것이 바른 정진이다.
[正念] - 그러면 바른 주의 깊음이란 무엇이냐? 몸 ․ 느낌 ․ 마음 ․ 법(마음의 대상)에 대해서 바로 보고 지내며, 분명한 이해와 염처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없앤다. 이것이 바른 주의 깊음이다.
[正定] - 바른 집중이란 무엇이냐? 수행자는 감각적인 대상들과 유익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초연함을 낳고, 개괄적인 사유와 분석적인 사유에 가까우며 즐거움과 환희로 가득찬 첫 번째 선정[初禪]으로 들어간다. 개괄적인 사유와 분석적인 사유가 가라앉고 내적인 고요함과 마음이 하나가 됨으로써 그는 개괄적인 사유와 분석적인 사유로부터 자유로운 상태, 즉 집중을 통해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두 번째 선정[第二禪]을 들어간다. 그는 즐거움(즐거움의 탐착)으로부터 떠나 평정 ․ 주의 깊음 ․ 명확한 인식으로 지내게 된다. 그리고 ‘행복이란 평정과 주의 깊음을 지닌 사람의 것이다.’라는 고귀한 분의 말씀을 실감하게 된다. 이와 같이 그는 세 번째 선정[第三禪]에 들어간다. 즐거움과 고통을 버린 뒤에 이전의 기쁨과 슬픔이 사라지는 것을 통하여 그는 즐거움과 기쁨을 넘어선 상태, 즉 평온함과 집중에 의해 깨끗이 정화된 네 번째 선정[第四禪]에 들어간다. 이것이 바른 집중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괴로움을 없애는 길로 인도하는 고귀한 진리이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으로 밖으로 또는 안팎으로 법(마음의 대상)을 바로 본다. 그는 법에서 발생하는 요소를 바로 보고, 법에서 소멸하는 요소를 바로 보고, 법에서 발생하는 요소와 소멸하는 요소 모두를 바로 본다. 또 그가 수행하는 ‘법이 있다’는 염처는 앎과 주의 집중에 알맞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초연하게 살아간다.
이와 같이 비구는 사성제라는 법을 바로 보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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