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정진/위빳사나 수행과 알아차림

심념처.. noting을 watching 하기

담마마-마까 2013. 5. 9. 14:08


** 심념처 - 마음을 알아차리는 심념처 ** 

                (noting을 watching 하기)

                                                                                             
심념처는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하는 수행입니다.

지금까지 신념처와 수념처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이제 심념처에 대한 설명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이란 현재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물질적 정신적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 몸과 마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과 조건적 특성과 일반적 특성을 직접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빠사나 수행의 알아차릴 대상은 현재의 오온이지만,

실제 수행에서는 신수심법(현재의 몸과 마음을 느낌을 통해서 알아차려,

오온에서 실재하는 법을 확인하는 수행법)이라는 네 곳이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참고로 위빠사나 수행 센터마다 특징이 있습니다.

마하시 센터에서는 주로 신념처 수행을, 고엔카 센터는 수념처 수행을,

쉐우민 센터에서는 마음보는 심념처 수행에 좀더 비중을 두고 지도합니다.


한국 위빠사나 선원의 묘원 법사님은 마하시 방법의 수행을 거쳐

쉐우민에서 마음보는 수행과 고엔카의 수념처 수행까지 다 하셨습니다.

그 결과 위빠사나 수행은 신수심법 사념처를 모두 다 알아차리지만,

그 중에서 특히 심념처 수행으로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

그 자리에서 번뇌의 원인을 직관하게 되어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체험하시고,

수행자들이 마음을 볼 수 있도록 구체적 방법들을 단계별로 체계화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저희 선원 방식의 마음보는 수행법을 기준으로 심념처 수행을 소개하겠습니다. 


 법구경 1번 게송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음이 그들[五蘊]을 앞서가고

마음이 그들의 주인이며

마음에 의해서 모든 행위는 지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그에게는 반드시 고통(불만족)이 뒤따른다.

마치 수레가 황소를 뒤따르듯이"


 우리가 하는 일상에서 하는 모든 행위(신구의 3업)는 그 순간의 마음이 시켜서 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마음을 볼 수 있으면 그 순간의 탐진치의 마음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미 탐진치의 불선한 마음이었더라도 알아차림으로 그 마음을 보면 그 불선한 마음은

알아차림에 의해 이미 소멸되고 알아차림이 붙은 선한 마음상태에서 행위를 하여 선업을 행하게 됩니다.

 

또한 만일 현재의 마음이 관용, 자애, 지혜의 선심이라도 그 마음을 알아차리면

선업에 대한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 행위를 하여 선업조차도 놓아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응무소주 이생기심'입니다.

그래서 어떤 마음이든지 알아차림이 붙으면 그 행위는 선업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혜안으로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신 부처님께서는

아비담마 논장에서 마음의 종류를 89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대념처경에서는 수행자가 알아차려야 하는 마음의 종류를 16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제 수행에서는 크게 6가지 마음으로 탐심, 진심, 치심, 관용, 자애, 지혜의 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사실 마음은 비 물질이라서, 수행자가 물질을 보는 것처럼 마음을 쉽게 볼 수 없습니다.

또 지금까지 마음을 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수행자가 마음을 보려는 의도를 일으키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처음에는 비 물질인 마음을 직접 보기보다는,

신념처 수행으로 몸을 열심히 알아차려 알아차리는 힘이 생기면 느낌을 알아차리게 되고,

다시 몸과 느낌을 알아차려 힘이 쌓이면

마음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이 순간의 느낌, 기분, 생각, 행위 등을 통해서 현재의 마음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은 이론적으로는 3단계로 나눌 수 있고,

실 수행에서 응용하는 방법으로는 네 가지 방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마음의 특성은 찰나 생멸하며, 한 순간에 하나뿐입니다.

수행자가 수행 중에 경험하는 마음은 조건에 의해 일어났다 사라지는 마음으로 선심 아니면 불선심입니다.

현재의 어떤 불선한 마음도 알아차리면 알아차림이 붙은 선한 마음으로 정화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순간의 행위도 선업이 됩니다.


그래서 현재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강한 탐진치의 마음이 일어났어도

행위로 옮기기 전에 알아차리면 관용 자애 지혜의 행위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만일 알아차림을 놓치고 대상에 휘둘리면

그동안 길들여진 습관에 의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행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을 보는 수행이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방일하여 알아차림을 놓치면 즉시 불선심인 탐진치가 들어와 주인행세를 하고 불선업을 짓게 합니다. 

그래서 마음은 비워두는 것이 아니고 알아차림으로 꽉 채워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이 이어지면 선업이 쌓이고 선업은 다시 선과보를 불러오는 원인이 되어

점차 번뇌의 소멸인 열반을 향해 나가게 됩니다.




**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 (1)


 우리가 산다는 것은 매 순간마다 6근과 6경과 6식이 촉해서 대상을 느끼고, 인식하고,

그래서 어떤 행위를 하려는 의도를 내고, 실제 몸이 그 순간의 마음에 따라 행위를 하면서,

한 순간을 만들고, 다시 이 과정이 끊이지 않고 지속 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 실제 마음을 어떻게 알아차리는지에 그 방법을 설명하겠습니다.

 

*1단계 마음보기는 현재의 상황을 알아차림(sati)하는 단계입니다.

지금 여섯 감각 기관이 어떤 대상을 만나서 무엇을 인식하는지를 사실대로 그냥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알아차림을 하는 곳이 감각기관(6근)과 감각대상(6경)과 대상을 아는 마음(6식)의 세 군데가 있습니다.


1) 현재 마음을 6경에 보내서 대상을 알아보는 경우 입니다.

이 경우에는 대상에 대하여 기억된 정보가 빠르게 일어나 대상을 차별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알아차리기 어렵고 대상에 휘둘리기가 쉽습니다.

예를 들면 길가에 핀 철쭉꽃을 보거나 철쭉의 향을 맡을 때 마음이 꽃으로 가버린 경우입니다.

그럼 이미 좋아하고 꺾어서 집에 가져가고 싶어집니다.

이 경우에는 수행자의 알아차림은 없고, 대상에 휘둘려 자기의 업력에 따라 탐심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2) 현재 마음을 6근에 두고 알아차림을 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는 6문에서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6경에 마음을 두는 것보다

차별이 덜 일어나고 대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이 6문을 지키는 문지기 역할을 해서 탐진치가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대상의 성품을 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철쭉꽃을 볼 때 자신의 눈에다 마음을 두고 꽃을 인식합니다.

또 코에다 마음을 두고 냄새를 인식합니다.

그래서 그냥 예쁜 꽃이고, 좋은 향기일 뿐 그것을 취하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쁘고 좋은 향기라고 알고 있는 마음도 즉시 다른 대상을 만나는 조건에 의해 사라져버립니다.

이것은 알아차림이 감각기관(6문)을 지켜 탐진치의 번뇌가 들어오는 것을 차단했기 때문입니다.


3) 현재 대상을 알고 있는 마음(6식)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하여 알아차리면,

현재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지켜보는 것으로, 대상이 완전히 객관화 되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수행자가 어느 정도 알아차림이 계속 이어져서 집중력이 생겼을 때 가능한 방법입니다.

현재 철쭉꽃을 보고 느끼고 알고 있는 그 마음을 다시 알아차리는 마음이 지켜보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기본으로 항상 알아차림을 자신의 여섯 감각기관(몸과 마음)에 두고 대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알아차림이 이어지고 집중력이 생기면

그때 현재를 알고 있는 마음(識)을 대상으로 알아차림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심념처입니다.

 

**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 (2)

 

지난 번에는 현재의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의 촉이 있음을 알아차리는 1단계 마음보기에 대한 설명을 드렸습니다. 

지금부터는 2단계 마음보기를 설명하겠습니다.

 

*2단계 마음보기는 번뇌의 뿌리(원인)가 되는 마음을 보는 단계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자가 알아차려야 할 대상은 현재의 오온입니다.

왜냐하면 오온이 궁극적 실재인 법(法. 담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오온은 구생법(俱生法)으로 함께 생멸할 뿐,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온인 색수상행식은 항상 함께 생멸하므로,

매 순간 마다 식(識. 마음)에는 수상행(마음의 작용)과 색이 함께 붙어 다닙니다.

 항상 비 물질인 마음은 왕처럼 뒤에 숨어있고, 전면에는 신하인 수상행이 물질과 함께 나타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의 작용인 수(느낌), 상(생각), 행(신구의 3업)을 통해서

현재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a) 언제나 느낌이 일어날 때는 그 느낌이 있는 자리에서 느낌과 연계된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먼저 어떤 느낌이 나타나면, “지금 무슨 마음인가?”하고 현재의 마음을 느껴봅니다.

이때 보이는 마음은 그 느낌을 일으킨 원인이 된 마음이거나, 이미 일어난 그 느낌에 반응한 마음입니다.


b) 좌선, 경행, 일상에서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그 생각(想)을 통해서

생각과 관련된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현재 생각이라는 현상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지금 무슨 마음인가?”하고 마음을 보려고 의도를 내어 현재의 마음을 느껴봅니다.

 이때  느끼는 마음은 탐진치의 마음이거나 관용, 자애, 지혜의 마음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마음은 이미 알아차림에 의해 소멸된 직전의 마음입니다.

지금은 직전의 마음이 무엇이었든 알아차림이 함께하는 선심이 올라온 상태입니다.

그래서 최고로 선한 행위가 됩니다.

 

c) 몸과 말과 뜻으로, 즉 신구의 3업을 행할 때 그 바탕에는 항상 행위를 일으킨 마음(의도)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위를 통해서 그 순간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행위를 하든지 “지금 무슨 마음인가?” 하고

현재의 마음을 보려고 하면 지금 행위를 하고 있는 마음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탐심으로 하고 있는가, 성냄으로 하고 있는가, 또는 나라는 아상으로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고,

그것을 알아차리면 이미 마음은 관용, 자애, 지혜의 상태로 바뀐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자신의 발걸음을 알아차리면,

발걸음이 가볍고 기분이 상쾌하면 그 순간의 마음은 선심입니다.

그러나 발걸음이 무겁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으면 마음은 불선심입니다.

이와 같이 현재의 자신의 행위를 턱 알아차리면 그 순간의 마음상태를 직관 할 수 있습니다.

 · 신업(身業) : 우리 몸은 잘라진 나무토막과 같아서 마음이 시키지 않으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눈을 한 번 떴다 감는 것도 마음에서 의도가 시켜서 일어날 뿐 몸이 저 알아서 떴다 감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행동에는 그 행동을 일으킨 마음 (탐심. 진심, 치심, 관용, 자애, 지혜)이 있으므로

 마음을 보려고 새로 마음을 내면 원인되는 마음을 우리의 움직임에서 볼 수 있습니다.

 · 구업(口業) : 말을 할 때도 그 말을 하도록 마음이 먼저 시켜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말하기 전에 말하려는 의도를 보면 어떤 마음에서 이 말을 하는지 알게 됩니다.

이때 불선심이면 그 말을 자제하게 됩니다.

 또는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차리면 말하는 마음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어떤 욕망으로 자기의 말만 하고 있는지, 아니면 고요한 마음으로 상대의 말을 다 듣고

조용히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의업(意業) : 우리가 매순간 내는 의도는 의업입니다.

선업의 의도와 불선업의 의도가 있습니다.

지금 관용 자애의 선한 의도인지 탐욕과 성냄의 불선한 의도인지 현재를 알아차리면 알 수 있습니다.

 의도는 행위가 일어나기 전에 몸에 명령을 하고 찰나에 사라져버리는 마음의 작용이므로

알아차리는 힘이 많이 쌓여서 집중하는 힘이 있을 때 마음자리에서 의도의 생멸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행자는 알아차림이 이어져 항상 마음이 알아차림과 함께하면,

자연스럽게 계율을 지키게 되고, 그 결과로 번뇌가 될 신구의 3업의 행위를 절제하게 됩니다.

 

 *3단계 마음보기 : 아는 것을 다시 알아차리기 

(noting을 watching 하기 : 알아차림을 지켜보기)

 

지금까지 1단계 마음보기로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이 하는 일을 알아차리는 방법

2단계 마음보기로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수상행을 통해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을 말씀드렸습니다.

수행자가 이와 같이 알아차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사마디(집중하는 힘)가 생깁니다.

그럴 때는 현재 인식하고 있는 마음을 새로 일어난 마음이 다시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noting은 1차적으로 알아차림을 하고 있는 마음이고 watching은 그것을 다시 지켜보는 마음입니다.

"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현재 마음이 하고 있는 일을 뒤에 일어난 마음이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현재 상황을 알고 있는 마음(noting)을 대상으로 새로 일어난 마음이 다시 알아차림(watching)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알아차릴 대상이 이 순간의 마음이므로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림 하는 3단계 마음보기라고 합니다.

이 방법은 수행자를 항상 현재로 돌아오게 해서 알아차림을 이어가게 해주며,

알아차림을 더욱 밀밀하게 해 주는 이익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수행자의 마음이 대상에 잘 집중되어 사마디가 깨지지 않으면,

한 시간 내내 또는 하루 종일도 noting을 watching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경우는 수행이 한결 수월하게 진행되며 알아차림의 힘이 더욱 좋아집니다.

다시 말하면 매순간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알아차림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는 마음(noting)을 계속 지켜보면(watching) 수행자의 의식은 어떤 번뇌도 없이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조건에 의해 찰나 생멸하는 오온을 볼 수 있고, 그 결과로 오온의 무상을 보고,

조건 지어진 오온의 고(苦)와 오온의 실체 없음인 무아를 보는 위빠사나의 지혜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자가 항상 알아차릴 대상을 현재의 몸과 마음인 오온으로 해야 하는 이유이며,

수행하는 마음이 현재의 몸과 마음을 떠나지 않고 집중해야하는 이유이며,

오직 현재의 자신을 우선으로 알아차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 마음을 보는 구체적인 방법 4가지 **


이제까지는 마음을 보는 방법에 대해 이론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설명이었고,

지금부터는 실제 수행에서 어떻게 마음을 보는지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알아봅니다.

 · 4가지 방법이란

1. 있는 마음보기

2. 일어난 마음보기

3. 일어날 마음보기

4. 아는 마음을 다시 지켜보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있는 마음보기 - 현재 마음상태 보기.

지금 내 마음이 바른가, 바르지 못한가. 탐심이 있는가.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가. 화내는 마음이 있는가. 게으른 마음이 있는가. 너무 잘하려고 긴장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는가. 의심하는 마음이 있는가... 등등의 현재의 마음을 느낌이나 기분을 통해서 보는 것입니다.

 “지금 무슨 마음이지?”하고 현재 자신의 마음상태를 탁 ! 느껴봅니다.

 이것이 지금 이 순간 바탕에 깔려있는 현재의 마음보기입니다.

수행자는 수행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바탕에 깔려있는 현재의 마음을 한번 보아주고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호흡이나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려고 하면,

만일 현재의 마음이 들떠있었다면 알아차림을 하려는 마음이 대상에 잘 겨냥되지 않아

대상을 알아차릴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있는 마음보기"는 어떤 시간이든지 가능합니다.

특히 수행 시작 전, 아침에 일어날 때, 식사할 때, 말 할 때, 낮에 직장이나 집에서 일을 할 때,

저녁에 잠을 자려고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마음을 먼저 보아주고 하면,

마음이 평온해진 상태에서 일을 하므로 그 일을 가장 능률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욕망에 들뜨거나 하기 싫은 마음 상태인데도

만일 그 마음을 보아주지 못하고 일을 하면 그 마음에 휘둘려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2) 일어난 마음보기(1) - 방금 일어난 수상행에 원인이 된 마음보기.

 현재의 어떤 상황에서(수상행이 있을 때) 

 “지금 무슨 마음인가?”하고 마음을 보려는 의도를 일으킵니다.

이렇게 하면 현재의 상황에서 그것을 일으킨 원인되는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방금 일어난 마음입니다.

방금 어떤 마음이 일어나 어떤 느낌이나 행위나 생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좌선 중에 갑자기 가슴이 뻐근했다면, 그 뻐근함을 알아차리고 보니

어제 있었던 기분 나쁜 일이 떠올라 속을 끓이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이 경우는 속을 끓이는 마음이 가슴에 뻐근함을 일으킨 것입니다.

 "내가 어제 일을 속상해 하고 있구나!"하고 알아차리면 알아차림 하는 마음 때문에 속 끓이는 마음은 사라집니다.

 다시 가슴의 뻐근한 느낌을 대상으로 알아차립니다.

가슴의 뻐근한 느낌이 미세해질 때까지 보고 다 사라지면 현재의 주 대상으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느낌에서 마음보고 다시 느낌으로 가는 수행을 하는 동안

더 이상 속 끓이는 마음은 커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상을 바꾸어 가며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동안 처음에 있었던 상황에서 자유로워져 평온해집니다.


2) 일어난 마음보기(2) - 방금 일어난 수상행에 반응한 마음보기.

 또 지금 일어난 현상에 반응한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느낌과 생각과 행위가 있을 때 (受 想 行 이 있을 때) 그 상황을 알아차리고,

그 순간의 마음을 보면 현재의 상황에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미워하거나 로 반응한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맨 느낌에서 육체적 정신적 느낌까지 반응해 버린 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칭찬이나 비난, 행복이나 불행, 명예나 치욕, 이익이나 손실 등등도 모두 느낌을 통해서 인지하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집착하여 추구하거나 회피하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반드시 빨리 반응한 마음을 보아주어야 더 이상 그런 느낌들에 휘둘리지 않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반응한 마음을 보면 "~~마음이네!" 하고 알고,

이렇게 마음을 본 심념처 수행에서 즉시 그 느낌의 변화를 보는 수념처 수행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마음을 보고 반드시 몸으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은 몸에 느낌을 일으키고, 이미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마음을 보고 빨리 몸의 실재하는 느낌을 잡아야 알아차림을 유지 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좌선 중에 통증이 나타나면 "통증이 있네!". 하고

그 순간의 마음을 보니 통증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통증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알고 다시 통증을 싫어한 마음 때문에

가슴이 콩닥거리면 빨리 가슴의 느낌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마음을 보았으면 빨리 몸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점차 가슴의 느낌이 줄어들다 다 사라지면 다시 수행의 주 대상인 호흡을 보거나,

또는 현재의 강한 대상인 통증을 하나의 느낌으로 툭 던져놓고

그 느낌의 변화를 보면서 통증의 실재하는 성품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알아차림이 계속 유지됩니다.

만일 몸의 느낌으로 돌아오지 않고 통증을 싫어한 마음을 계속 보고 있었다면,

통증을 싫어한 마음은 이미 사라졌는데, 통증에 대한 여러 가지 망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알아차림을 놓친 것입니다.

 이 방법은 통증이라는 대상에서 통증을 대하는 마음으로 대상을 한번 바꾸고,

다시 통증 때문에 일어난 가슴의 느낌으로 대상을 바꾸면서,

현재의 마음이 통증과는 거리가 생겨 통증에 넘어가지 않고,

통증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테크닉입니다.

결국 통증에서 통증을 싫어한 마음을 보는 것은 통증이라는 대상에 빠지지 않고

통증을 객관화 할 수 있게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삶에서 오는 모든 괴로움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알아차림을 하면, 그 괴로움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그 괴로움이 수행 재료가 되고, 괴로움의 성품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혜를 나게 하는

좋은 공부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괴로움을 더 큰 괴로움으로 만들지 않고 괴로움을 뛰어넘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느끼는 괴로움은 단지 그 순간 "괴롭다는 느낌"이 한번 일어났다 사라지는 과정일뿐,  

실제로 존재하는 괴로움은 없다는 통찰이 생깁니다.


3) 일어날 마음보기 - 의도 보기.

 매순간 몸과 마음을 이끌어 가는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은 항상 다음에 할 행위를 미리 몸에 명령하므로

행위를 하기 전에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도 마음보기의 하나입니다.

 

경행 중에 한 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발을 들려는 의도, 내미려는 의도. 내리려는 의도.

서려는 의도. 돌려는 의도가 있고. 경행 후 좌선하려면 앉으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이때 "지금 내 마음이 어디로 가는가?"하고 마음의 흐름을 보면 일어날 마음(의도)을 보게 됩니다.

의도를 아는 것은 마음을  알아차릴 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집중력이 생겼을 경우에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4) 아는 마음을 아는 것 - (다시 지켜보는 것)으로 마음보기.

- noting을 watching 하기-

 의도를 볼 수 있을 만큼 알아차림이 잘 유지되어 사마디(집중하는 힘)가 생기면,

현재 인식하고 있는 것을 새로 일어난 마음이 다시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림을 하려면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현재 마음이 하고 있는 일을 다시 볼 때 가능합니다.

 

이렇게 noting을 watching하는 상태는 현재의 오온을  계속 알아차릴 수 있게 해줍니다.

이처럼 알아차림이 계속 유지 되면,

마음은 찰나마다 현재의 대상과 아는 마음이 쌍으로 일어났다 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이와 같이 매 찰나를 대상으로 하는 찰나집중입니다.

 수행자의 마음이 찰나마다 현재의 대상에 잘 집중되어 사마디가 깨지지 않으면

한 시간 내내 또는 하루 종일도 noting을 watching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항상 알아차림이 저절로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한결 수월하게 수행을 할 수 있으며, 오온의 성품을 있는 그대로  밀밀하게 볼 수 있고, 

그 결과로 위빠사나의 지혜가 성숙하게 됩니다.

현재의 대상과 그것을 아는 마음을 아는 것은 곧 빠라마타(실재. 성품)를 대상으로 알아차림을 하는 것입니다.

이 빠라마타는 제법의 무상, 고, 무아의 3특상을 볼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그러므로 신수심법 4념처 중에서 심념처 수행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명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