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행방법 2 (20090628)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는 애기를 가질 때부터 불교하고 인연을 맺습니다. 애기가 뱃속에 있을 거 같으면 대부분 경전들을 어머니들이 외웁니다.
『앙굴리말라 경』 같은 거, '내가 고통받지 않고 순조롭게 출산하길 바랍니다.' 하는 그런 게송들을 합니다. '누구든지 행복하길 바라고 고통받길 바라지 않듯이 나도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고, 또 뱃속에 있는 아기도 괴롭지 않게 출산하길 바랍니다.' 하면서 출산을 하죠! 그러니까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애기들은 그 경전을 접해옵니다. 그리고 태어나면 각각의 행사들이 항상 불교하고 연관이 돼있는데, 아이들이 태어나서 맨 처음 배우는 말이 뭔 줄 아세요? 말을 '아빠' '엄마' 이렇게 우리말로 할 것 같으면, 말을 할 정도가 되면 맨 처음 단어를 배우는 게 '붓당 사라낭 갓차미(Buddhaṃ saraṇaṃ gacchāmi)'입니다.
법회 할 때 맨 처음에 여러분들도 했죠?
'부처님을 의지해서 나아가겠습니다.' 하는 걸 맨 처음 애들이 배워요. 그러면서 자기 스스로 할 정도가 되면 항상 스님한테 가서 삼귀의를 받도록 그렇게 하고. 그리고 조금 크고나면 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반드시 『망갈라숫따』 라든지 『랏따나숫따』라든지 이런 보배경 길상경 축복경 자아의경 이런 것들을 절에서 일요일 되면 배웁니다. 일요일은 우리나라 같으면 쉬고 그냥 노는 날인데 테라와다불교권에서는 안 그래요. 절에 가는 날이 일요일이라. 그렇게 커가지고 가는데.
우리 꼬맹이들은 지금 몇 학년들이야? 4학년? 거기는? 2학년? 음. 어쨌든 부모님 따라서 왔겠지만은 좋은 인연 맺는다 생각하고 스님 말 잘 들어봐봐~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있을 거 같으면 도둑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겠어? 내가 도둑이 들어온 걸 금방 알겠지? 내가 밤에 잠을 자버리면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 훔쳐가도 내가 잘 몰라. 내가 깨어나기 전에는.
부처님 당시 때도 그렇게 한 일이 있었다고 그럽니다.
어느 스님이 다른 길로 가다가 장사하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래서 혼자 가기도 뭐하니까 그 장사하는 사람들하고 같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했는데 스님이 그렇다고 대상들 잘 때 같이 잘 수가 없고 하니까. 보통 수행하는 스님들이 잠자는 시간은 많으면 한 네 시간 정도 됩니다. 이 스님도 마찬가지 다른 사람들이 다 자더라도 경행을 한 거라.
경행이란 것은 내가 이렇게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하면서 이렇게 걷는 거거든. 그러면서도 내가 뭘 하고 있는가 하는 걸 알아차리는 거라. 왼발 걸을 때는 왼발인 걸 알아차리고, 오른발이면 오른발인 걸 알아차리고 이러면서 여기서 저기까지를 왔다갔다 이렇게 했거든. 하다 보니까 재미가 있거든. 그러니까 이 스님이 밤새도록 한 20m 되는 거리를 왔다갔다 천천히 그렇게 한 거라.
그런데 그때 밤에 도둑들이 상인들 물건 훔쳐갈려고 이렇게 하고 있는데, 스님 한 분이 자지도 않고 왔다갔다 하니까 훔쳐가지를 못하는 거라. 도둑이란 건 밤이 들어야 물건을 훔쳐가는데, 안 그러면 깨어있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그 물건을 훔쳐갈려면 깨어있는 사람이 “도둑이야” 하고 소리치겠지. 그럼 다른 사람들이 다 일어나면 물건 훔쳐가지 못하게 되는 거라. 사람들이 잠들어야 되는데 이 스님이 잠자지도 않고 내내 하거든. 그러다 보니까 도둑이 지쳐갖고 아침이 돼버렸어. 그러면서 대상들 앞에 와서 그런 얘기를 합니다. “저 스님 때문에 당신들 물건 도둑맞지 않은 줄 알아라. 안 그랬으면 여기 있는 물건들 다 도둑맞았을 것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 얘기를 부처님한테 가서 이 스님이 얘기를 합니다. “아! 부처님! 부처님 말씀 중에 내가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제 그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게 무엇이냐?” 물어보니까, “자기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밖을 지키는 것이다.” 하는 걸 도저히 이해를 못했거든. 지 혼자 잘하고 있는 거지 왜 밖을, 다른 것들을 지키는 것인가 하는 것을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 이해를 하겠다는 거라.
내가 잠자지 않고 있음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물건을 잃는 것들로부터 지켜줬다는 거라. 내 자신을 잘 지키고 살아감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과 행복을 가져다줬다 하는 것을 그때야 이해를 하게 되는 거라. 그러면서 아! 경행이란 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 알았다고 그런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들도 여기 선원에 올 때 어떻게 했어요? 걸어서 왔죠! 차를 타고 왔든 어쨌든 거기서 내려가지고 이 선원까지는 한발 한발 내디뎌가지고 왔단 말이라. 그렇게 걷지 않으면 여기 선원에 올 수가 없는 거라. 학교에 갈 때도 교실까지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
살아간다는 것은 걸어가는 것, 움직이는 것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걸어가는 것만 움직이는 게 아니고, 앉아서 내가 공부를 한다고 연필가지고 이렇게 쓰는 것도 손을 움직이는 것이고, 또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해서 수학 계산을 하고 하는 것도 생각이 움직이는 것이고, 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 같이 앉아있어도 배가 뽈그락 뽈그락 하면서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도 움직이는 것이고, 모든 것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보면 되는 거라. 그런데 그 움직임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움직이고 있다 하는 것을 모른다는 거라.
이 수행이라는 건 뭐냐면 내가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분명하게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린다는 거라. 움직임을 알아차리면 어떤 이익이 있을까? 예를 들어서 내가 열심히 숙제를 하고 있다. 그럼 숙제를 하고 있을 때는 맛있는 것도 생각도 안 나고, 또 엄마가 “뭐야 뭐야” 하면서 얘기하는 소리도 안 들리고, 그리고 뭐 다른 것들 만화책이 있어도 그 만화책이 눈에 안 들어오거든. 오로지 그냥 숙제만 하게 되는 거라. 숙제를 하고 있을 때는 오로지 그 숙제만 하고 있었다는 거라.
움직이는 것들을 알아차리면서 얻어지는 이익,
첫 번째 이익이 뭐냐 하면 그 움직이는 걸 내내 집중하고 알아차림으로 인해서 다른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는 거라. 내가 숙제하고 있는데 배고프다고 “아고, 배고픈데” 한다고 밥이 나한테 와지는 건 아니거든. 엄마가 차려줘야, 그리고 내가 가서 숟가락 가지고 퍼먹어야 만이 내가 먹는 것이지, ‘내가 배고프다’ 하는 생각을 일으킨다 해가지고 배부르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실제적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는 거라.
그래서 그 움직임을 알아차리면 우선 내가 그것에 대해서 집중하는 힘들도 커지고, 집중하는 힘으로 인해서 다른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는 거라. 실수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고. 그런 이익이 첫 번째 있고.
또 움직이는 걸 알아차림으로 인해서 또 뭔 이익이 있을까?
내가 마음이 고요해지는 이익이 있습니다. 집중하고 뭘 하다 보면 다른 것들에 대해 신경을 안 쓰게 되니까 그것만 하게 되는 거라. 그러면 마음은 그 하고 있는 것에다가 찰싹 달라붙어가지고, 마음이 거기에 찰싹 달라붙으면 마음은 고요해집니다. 그래서 다른 잡생각도 안 일어나게 되고, 또 그렇게 숙제를 열심히 다 하고 나서도 '아! 내가 다했다' 하는 그런 성취감도 있게 되는 거고. 그래서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집중을 하면 할수록 마음은 그 대상에 달라붙게 되고, 그리고 그 대상에 달라붙음으로 인해서 마음은 평화로워지고 고요해진다는 그런 이익이 있게 되는 겁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것들이 움직이는 것들입니다. 그 움직이는 것들을 얼마만큼 내가 잘 알아차리느냐에 따라서 조금 더 남들보다는 바르게 살아가고, 또 그렇지 않게 살아가고 하는 것이 판가름 난다는 거라.
그런데 부처님은 그 움직임만 알아차리라고 얘기를 한 것이 아니고, 거기서 조금 더 한발 나가라는 거라.
경행할 때 네 단계로 나눠서 얘기를 했죠! 처음에 뭐였어요?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갖다 놓아라. 움직이면 움직임을 먼저 알아차려라. 그렇게 얘기했죠! 그러고 나서 그 움직임을 어떻게 하라고 그랬어요?
그 움직임을 완전하게 구분하고 파악해서 명확하게 알아차려라. 시작하고 끝나는 걸 분명하게 알고, 그것으로 해서 다시 또 시작하고 끝나는 것이 있고. 그것이 연속되는 것은 아니고 다 구분된다는 것. 발을 들어올렸으면 나아가는 것이 있는 것이고, 나아가는 것이 있음으로 인해서 발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고, 먹었으면 싸야 되는 것이고, 숨을 들이쉬었으면 내쉬어야 되는 것이지 들이쉼과 내쉼이 같은 것은 아니라는 거라. 움직임에서 그걸 구분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라. 그걸 두 번째 단계라고 그랬습니다. 그거까지는 이해가 될 건데,
그다음에 세 번째 단계가 뭐냐 하면 움직이면서 일어나는 느낌들을 알아차려라 하고 얘기했습니다.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조금 쉽습니다. 그런데 꼭 쉬운 것은 아니죠?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지금 몇 번 안 한 기초 수행하는 사람들은 언제언제 옵니까? 화요일 저녁에 오고 또 일요일 오후에 오죠! 그때 외에는 수행을 안 하죠? 아까 얘기했는데 모든 것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는데, 우선 수행의 기본은 움직임을 먼저 알아차리고 거기다 마음을 갖다 붙이는 것이 1단계인데, 그럼 여기 와서 수행하는 시간 이외에는 나머진 안 한다는 얘기잖아.
그걸 부처님이 뭘로 비유를 해놨느냐 하면, 물을 끓이고 있는데 물이 끓기도 전에 불을 꺼버리는 거라. 그럼 그 물은 어떻게 되겠어? 또 차갑게 식겠지. 그러고 나서 다시 또 불을 지피는 거야. 그러니까 만날 물이 한 번도 끓어보지도 못하고, 끓어야 거기에 채소를 데쳐먹든지 계란을 삶아먹든지 뭘 할 건데 한 번도 끓어보지도 못하고 또 식어버리고. 또 화요일 날 와서 조금 미지근하게 데워놓았다가 또 식혀놨다가, 또 일요일 날 와서 또 좀 데워놨다가 식혀버리고.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결과물은 하나도 없겠죠! 채소를 삶는다든지 계란을 삶아서 내가 먹을 수 있는 이익은 없어진다는 거라.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도 사실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실천의 시작인데 평상시 때 안 하면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거라. 아무런 이익이 없는 건 아니겠죠. 조그만 이익은 있겠죠. 그래도 큰 이익은 없다는 거라.
그래서 항상 일상생활에서 먼저 몸과 마음을 자꾸 일치시키는 훈련들을 해야 됩니다. 몸이 있는 곳에다가 마음을 붙이려고 연습을 자꾸 해야 됩니다.
여기서 지금 스님 소리가 들리죠? 그러면 스님 소리 들리는데다 자꾸 마음을 갖다 붙이라는 거라. 스님을 볼려고 하지 말고. 보면서 들을려고 할 거 같으면 두 가지를 하게 되거든. 그럼 두 가지를 다 동시에 못하게 돼! 스님 얼굴은 그렇게 잘 안 생겼으니까 안 봐도 돼. 그냥 보지 말고 스님 소리만 들으라는 거라.
하나, 하나, 하나씩! 그게 뭐냐면 일어나는 현상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파악하고 나면 그것을 구분할 줄 안다는 거라. 들리는 것은 들리는 마음이 따로 있고, 보는 것은 보는 마음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라. 그렇게 되니까 들을 때는 볼려고 하지 않고, 생각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들을려고만 노력하게 되는 거라. 그게 인제 두 번째 단계가 이루어지는 상태가 되는 거라.
어쨌든 일상생활에서 자꾸 그렇게 실천해나가면 괜찮은데 물을 끓였다가 말았다가 하니까 이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지지를 못하게 되는 거라. 여러분들이 해야 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하는 첫 번째 하고 두 번째는 자꾸 할려고 해야 됩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를 할 동안에는 실제적으로는 위빳사나 수행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상에 자꾸 일치시키는 훈련이기 때문에! 그냥 수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사마타 수행이든, 아니면 마음을 한곳에다 오롯하게 모으는 화두참구법이든, 어쨌든 대상에다 마음을 갖다 붙이고 그 대상을 자꾸 면밀하게 알아차릴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위빳사나 수행이라고는 얘기를 못합니다.
그렇지만은 그것이 위빳사나 수행이 될려고 할 거 같으면 뭐라고 그랬어요?
실재하는 것은 알아차려라! 하고 얘기했습니다.
움직이는 것은 실재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움직이는 실재하는 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알아차리지 못할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지지를 못하겠죠! 들어올려지는 실재하는 거하고, 나아가는 실재하는 거하고는 분명히 다른 건데 이걸 구분할 줄 모른다는 거라. 그냥 발을 움직이는 것으로 알아차리는 거라.
그래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지를 못하고,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한다고 하더라도 이 발의 형태나 모양을 보게 되지 실재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거라.
그래서 '위빳사나 수행은 모양이나 형태를 볼려고 해서는 안 되고 실재 일어나는 것들을 알아차리려고 해야 된다'하고 얘기합니다.
그러면 실재하는 것들은 어떤 겁니까? 발이 들어올려지고 나아갈 때 일어나는 현상들 이것들을 알아차려라.
그 현상들이 뭡니까? 가벼운 것도 있을 거고, 움직이는 것도 있을 거고, 무거운 것들도 있을 거고, 딱딱한 것들도 있을 거고. 그래서 세 번째는 그 실재하는 현상들, 사대요소에 대해서 알아차리려고 자꾸 해야 된다. 왜? 그것이 실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경행할 때 세 번째 단계는, 사대요소에 대해서 알아차려라. 그 일어나는 느낌들을 알아차려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럴 때, 음! 조금 쉽게 애들을 위해서 설명을 해야되겠구나.
여기 올 때 차를 타고 왔어요? 버스 타고 왔어요? 뭐 타고 왔어요? 승용차? 그러니까 아빠 차를 타고, 승용차를 타고 왔는데 저쪽 차가 안 막힐 때는 차가 좀 빨리 가죠? 그런데 이쪽으로 오면 차가 막히니까 천천히 와지게 되거든. 만약에 여기서 천천히 달리지 않고, 저쪽에서 빨리 달리듯이 빨리 휙 지나가버렸으면 이 앞에 '붓다의 길따라 선원'이라고 적어놓은 것이 보였겠어, 안 보였겠어? 안 보였겠지. 빨리 지나가면 그것을 내가 볼 수가 없는 거라. 그러면 실제 여기 '붓다의 길따라 선원'이라고 써져 있는 것을 실제로 볼려고 할 거 같으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차가 천천히 가야만이 그 글자를 내가 읽을 수가 있겠지.
그러면 세 번째 단계에서 실재하는 것을 봐야 된다고 그랬는데, 실재하는 네 가지 요소에 대한 것을, 그거 볼려고 할 거 같으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천천히 움직여야 되겠지! 발을 움직이는 것도 마라톤 하듯이 빨리빨리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천천히!
적어도 실재하는 사대요소에 대해서 알아차릴려고 할 거 같으면 세 단계로 나누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전에는 걸을 때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하고 알다가,
그다음에는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조금 더 천천히 했다.
이제는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하다보니까 들어올릴 때 가벼운 것은 알겠고, 내려놓을 때 무거운 것은 알겠다고 하더라도 그것도 예민할 때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것조차도 몰라. 그런데 딱딱하다든지 움직인다든지 이런 것들을 갖다가 정확하게 파악을 못하겠거든.
그러니까 어떻게 해요? 내가 천천히 움직여야 되는 거라.
실재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스피드를 줄여서, '들 어 올 리 고, 나 아 가 고, 내 려 놓 고' 이렇게 천천히 움직이게 되는 거라.
그리해야 만이 실재 움직이는 데다가 마음을 일치시켜주는 1단계도 할 수가 있고, 그 움직임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가 있게 됩니다.
들어올리는 게 끝나야, 멈춰야 만이 나아가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아가는 것이 끝나고 멈춰야 만이 내려놓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면밀하게 구분해서 같은 것으로써 보지 않게끔 되고.
그래서 들어올리는 걸 알아차리는 거하고 나아가는 걸 알아차리는 것도 마음이 다른 것이다.
실재적인 들어올리는 움직임하고 나아가는 움직임도 이것은 다른 것이다 하는 것을 알고, 마음도 다르다는 걸 알고 구분하게 되면서,
들어올려 질 때 일어나는 현상들, 나아갈 때 일어나는 현상들, 내려놓을 때 일어나는 현상들을 더욱더 알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경행을 할 때, 대부분 초보자들에게 처음에 할 때는 1단계로 하라고 그럽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왜 그렇겠어요? 우선 움직임을 알아라고! 움직이는데 마음을 일치시켜 주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는 두 단계면 충분합니다.
아니! 두 단계가 아니고 1단계지! '왼발' 1단계, '오른발'도 1단계지. 그러니까 왼발로 봤을 때는 왼발 1단계니까 1단계만 해도 충분히 되는데,
그 움직임을 조금 더 예리하게 보고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왼발도 '왼발 들어올림, 내려놓음', 오른발도 '오른발 들어올림, 내려놓음' 이렇게 2단계로 구분하도록 얘기를 해줍니다. 두 단계로 구분하는 것은 들어올리는 거 하고 내려놓는 것이 같지 않다는 걸 알게끔 해주는 겁니다. 그게 수행의 두 번째 단계입니다. 움직임을 구분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다음 세 번째 단계는 여러분들에게 3단계를 얘기해 주는 게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는 것을 알아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기본 조건이 뭐라고 그랬어요? 첫 번째, 두 번째 단계에서 걷는 거 보다도 조금 더 천천히 걸어라!
그러면서 인제는 움직임에다가 마음을 완전히 일치시켜주고 나서, 그 일치시켜 주는 것이 구분할 수 있는 단계가 되고 나서는,
그다음에 반드시 해야 될 게 들어올릴 때 일어나는 현상, 나아갈 때 일어나는 현상, 내려놓을 때 일어나는 현상들을 자꾸 알려고 해야 된다 하는 겁니다.
이때부터가 실제적으로 위빳사나 수행을 하는 것이 됩니다.
경전에는 '실재하는 것'들과 '관념적인 것'을 분명하게 구분을 해놨습니다.
실재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이 몸! 이 몸이라는 것은 조금 전에 얘기했던 지·수·화·풍이라고 하는 뜨겁고, 차갑고, 움직이고, 그다음에 딱딱하고, 가벼웁고 하는 이런 것들, 이런 열여덟 가지 요소로써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몸을 알려고 할 거 같으면 그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알아차려야 됩니다. 이것이 실재하는 것이다 하고 한 부분을 얘기하고.
또 실재하는 것은 어떤 겁니까? 마음이죠!
실재하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무엇으로 알아차립니까? 마음으로 알아차립니다! 알아차리는 마음이 있다. 이것도 실재하는 겁니다.
그런데 움직임도 구분이 된다고 그랬죠? 그럼 마음도 어떻게 되겠어요?
들어올리는 걸 아는 마음하고 나아가는 것을 아는 마음하고는 다르다는 거라.
그걸 갖다가 '마음의 요소'라 그럽니다. 마음은 좋은 마음도 있고 나쁜 마음도 있고, 또 싫은 마음도 있고 즐거운 마음도 있고 기쁜 마음도 있고 이렇게 마음은 각각이라는 거라. 이걸 갖다가 전체를 통틀어서 '마음의 요소'라고 그럽니다. 그런 마음의 요소라고 하는 실재하는 것이 있다는 거라.
그다음에 또 실재하는 것은 '닙바나', 열반이라고 하는 것. 열반이라고 하면 여러분들이 이해를 못할 건데 어쨌든 몸과 마음에 대해서 정확하게 일치를 해서 거기에 실재하는 것들을 알아차리는 것이 계속 연속해서 끊어짐이 없게 되는 것을 열반의 상태라고 그럽니다. 여러분들도 죽고 나서 열반에 드는 게 아니고 실제 수행하면서 열반을 체험한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만이 실재하는 것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나머지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관념적인 것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어쨌든 인제는 실재하는 것들을 자꾸 알려고 해야 됩니다.
위빳사나 수행은 첫 시간에 뭐라고 그랬어요? 실재하는 것을 대상으로 해야 된다. 실재하지 않는 것은 위빳사나 대상은 아니다 하고 얘기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면에서 이제 3단계를 하면서 실제적으로 위빳사나 수행을 시작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첫 단계나 두 번째 단계에서도 위빳사나 수행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위빳사나 수행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다른 수행으로도 1단계, 2단계를 할 수는 있습니다.
자! 그러면 3단계로 구분하는 것들에 대한 얘기를 얘기하겠습니다.
다리를 들어올릴 때 실재하는 것은
내 다리가 들어올려지는 것이 아니고 '거기서 일어나는 현상들'이라고 했습니다.
다리가 들어올려 질 때는 '가벼운 요소'들이 있습니다. 가벼워집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여기 종이에다가 불을 붙였다고 해봅시다. 종이에 불이 붙으면 그 종이는 어떻게 됩니까? 바람이 안 부는 상태라고 가정했을 때. 그 종이가 어떻게 될까? 종이가 다 타고나면, 다 타기 전이라도 대부분 보면 종이가 위로 올라가집니다. 불의 요소라는 것이, 불의 요소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위로 올라가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그거 뭐지? 열기구 있잖아. 그거 탈 때 공중으로 더 올라갈려면 어떻게 하는지 알아요? 불을 때줘요. 불을 때주면 불의 요소가 강해지니까 위로 올라가는 거고, 착륙할 때는 불 때는 걸 갖다가 적게 해주는 거라. 적게 해주면 땅으로 내려오는 거라.
그래서 불의 요소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발이 들어올려지는 거라.
발을 들어올릴 때 가벼움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려고 할 거 같으면, 그것도 첫 번째 단계에서 그걸 알려고 할 거 같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발이 점점 들어올려진다고 하는 것은 뭘 의미합니까? 가벼움의 요소가 점점 더 증가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벼움의 요소라는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그 움직임의 가벼움의 요소를 갖다가 단계별로 같지 않고 변화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거라.
사대요소에 대해서 발을 들어올려질 때 알아차릴 때는 이 두 가지를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움직임을 명확하게 일치시키고 그 움직임을 구분할 줄 알게 되는 것과 꼭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발을 들어올릴 때는 가벼움이 진짜로 스님이 말한 대로 가벼움이 있는지, 나에게는 무거운 것이 있는 건지 한번 알아보라는 거라. 그리고 그 가벼움이 발이 들어지면 들어질수록 증가하는지 아니면 감소하는지 그것을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발을 들 때 뭘 알아차리라고 그랬어요? 가벼운 것이 가볍게 느껴지는 것인지, 그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 똑같은지 어떤지를 먼저 알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발을 들어올릴 때 움직이는 것을 명확하게 자각을 할 때는 반드시 불의 요소가 그 속에서는 나타나고 그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가벼운 요소가 있습니다.
발을 들어올릴 때는 또 뭔 요소가 있습니까?
들어올려질 때는 발이 움직여집니다. 그런 '움직이는 요소'도 같이 있습니다.
움직임의 요소는 어떤 겁니까? 에어컨 틀어놨죠? 바람이 이리 움직여주지 않으면 나는 차가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바람의 요소'를 안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을 안다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에어컨은 명칭이기 때문에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어컨 바람을 쐬어서 시원하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에 느낌니까? 그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내가 시원하다고 아는 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발이 들어올려질 때는 가벼움의 요소(불의 요소)와 움직임의 요소(바람의 요소)가 같이 있습니다. 그리해도 어떤 게 강하겠습니까? 가벼운 것들이 강합니다.
불이 붙여져 있는 곳에는 바람이 와도 바람이 거기서는 영향을 그렇게 못 미칩니다. 마찬가지로 발이 들어올려질 때는 움직임의 요소와 불의 요소(가벼움)가 같이 존재를 하지만은 실제적으로 느끼는 것은 움직임의 요소보다는 불의 요소(가벼움)가 더 강하게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두 가지를 다 알아차릴려고 하지 말고,
지금 단계에서는 발을 들어올릴 때 가벼움의 요소만 알아차리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가벼움의 요소의 증가함을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자! 그것도 내가 면밀하게 사띠를 할 때만이 발을 들어올릴 때 이런 것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띠 안 하면 안 되겠지!
자! 그다음 단계, 발을 앞으로 옮기는 단계입니다.
발을 앞으로 옮길 때는 '움직임의 요소'가 주된 요소입니다. '바람의 요소'죠! 그래서 움직일 때는, 발이 앞으로 나아갈 때는 나아간다는 움직임을 자꾸 알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발을 내려놓을 때, 내려놓을 때는 무게감을 느낍니다. 무거움을 느낍니다. '무거움의 요소'는 물의 요소와 땅의 요소인데 '물의 요소'가 좀 더 강합니다. 물은 어떻게 됩니까? 밑으로 떨어지게 돼있습니다. 그것이 무겁지 않으면 밑으로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이런 유리에 이슬처럼 붙어있는 것은 무겁지가 않으니까 그 무게가 될 때까지는 밑으로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일정한 무게가 되면 밑으로 떨어집니다.
발이 내려올 때도 마찬가집니다. 흘러내리는 '물의 요소'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렇지만은 무겁다, 딱딱하다 하는 것은 땅의 요소입니다. 땅의 요소도 그 속에서는 같이 느껴집니다.
그렇지만은 땅의 요소보다는 물의 요소가 커집니다. 물은 밑으로 떨어지면 땅을 파게 됩니다. 아무리 단단한 바위라도 물이 계속 떨어지면 그 바위는 파여지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땅의 요소보다는 물의 요소가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내려놓을 때는 무거움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차릴려고 하고, 그 무거움이 증가하는지 아니면 감소하는지 알아차리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러고 나면 발이 땅에 평평하게 닿습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딱딱하고' '부드러운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한 '땅의 요소'가 있습니다.
나아갈 때는 바람의 요소만 작용을 하고,
발이 땅에 딱 닿아있을 때는 땅의 요소만 작용을 하고,
발이 들어올려 질 때는 불의 요소와 바람의 요소가 작용을 하고,
내려놓을 때는 물의 요소와 땅의 요소가 작용을 하고,
그렇게 크게 나누어서는 그렇게 됩니다.
어쨌든 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면서, 내려놓고 나서는 '닿음' 하면서 그 딱딱한 요소들을 관찰하도록 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그 대신에 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할 때 1단계와 2단계로 경행을 할 때는 대부분 이렇게 (발바닥이) 비스듬하게 나아가집니다. 내려놓을 때도 앞발꿈치가 먼저 닿기도 하고 뒷발꿈치가 먼저 닿기도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3단계로 구분을 해서 경행을 할 때는 되도록 뒷발이 먼저 들립니다. 약간 먼저 들리는데 그리하더라도 이렇게 된 상태에서 이걸( 발바닥을) 동시에 올려줍니다. 똑같이 올리도록 하고, 나아갈 때는 땅과 수평이 되도록 나아가도록 하고, 내려놓을 때는 반듯이 내려놓아서 발바닥 전체가 땅에 동시에 닿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리해야 만이 사대요소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하게 구분을 하고 이해를 하게끔 됩니다.
우리 꼬맹이들은 말이 어려워서 어떻게 하나? 이해를 못할건데... 음, 어, 우선 우리 꼬맹이들은 그걸 할 정도가 아직 안 되니까 무조건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이렇게 한번 해볼래? 딱 서 가지고, 딱 그대로 서 가지고 처음에 한 발, 오른발만 들어올리고 그대로 다시 내려놓고, 다시 왼발을 들어올리고 그대로 내려놓고, 그렇게 한 번 해볼래?
그래서 오른발을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할 때는 온 마음을 오른발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하는 데만 온 마음을 쏟고, 그러니까 왼발은 디디고 있어도 왼발은 전혀 신경 쓰지마. 내 왼발은 없다 생각을 하고, 그러니까 움직여지는 오른발에만 온 마음을 쏟아가지고 제자리에서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그다음에 왼발쪽으로 마음을 기울여서 왼발을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이렇게 한번 해볼래?
우선 그것이 되고 나면, 그것이 명확하게 '아! 이제 내가 알겠다' 하고 생각이 들면 그것에 대해서 오른발이 들어올려질 때 '이게 무슨 느낌이 있을까?' 하고 알아차려 보고, 내려놓을 때 '어떤 느낌이 있을까?' 하고 알아차려 보고, 그렇게 해서 서있는 자리에서 한번 해보도록 해봐. 그거는 할 수 있겠지? 그리하다가 조금 훈련이 되면 우리 엄마 아빠하고 같이 손잡고 걸어가면서 한 번 해보도록 그렇게 합시다 이!
아! 수행을 한다고 하는 것은 첫 번째 뭘 얻어야 되느냐면 법을 얻어야 됩니다.
법을 얻지 않으면 수행을 지속할려고 하는 마음이 안 생깁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이게 몇 초 정도 될 거 같습니까? 통상적으로 한 5초 정도 된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5초 동안 내가 마음을 그 움직이는 데다 다 쏟아가지고 100퍼센트 그걸 갖다가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동안에는 번뇌망상도 없었고 마음도 아주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그럴 거 같으면 그 5초 동안 나는 이익이 있습니다.
법을 얻는다는 것은 그와 마찬가집니다.
수행을 통해서 내가 직접적으로 체험을 해가지고 이 법의 소중함을 알아야 만이, 그리고 이 법이 진짜 맞구나! 스님이 가르쳐 주는 거, 이건 스님이 독자적으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대신 내가 전해주는 것뿐이라. '아! 부처님이 말한 법, 이 진리가 진짜 맞구나' 해서 내가 그 법을 얻어야 되는 거라. 그 법을 얻지 않으면 수행은 진척이 안 되는 거라. 내 스스로 노력해서 5초 동안 그 법을 얻었으면 그 5초 동안 나는 지혜가 성숙한 거라. 그리고 마음도 성숙해지는 거고. 그래서 수행을 지도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열심히 노력하라고 그럽니다.
왜 열심히 노력하라고 그러겠어요? 법을 얻으라고! 법을 얻는 것이 그마만큼 중요합니다. 법을 얻어야 만이 내 자신을 보호하게 되는 거라. 내 자신을 알아차려야 만이 또 법을 보호하게 되는 거라. 내가 내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면밀하게 알아차릴 때 법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또 그 진리따라 내가 살아가게끔 되기 때문에 어긋나지지를 않는 거라. 그래서 내 자신이 법을 보호하게 되고, 법으로 인해서 내 자신을 관찰하게 되니까, 내 자신을 보호하게 되는 거라.
그것 때문에 우선 수행의 첫 번째에서는 법을 얻도록 자꾸 노력하라 하고 얘기합니다.
법을 얻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우선 첫 번째 나타나는 이익이 뭐냐면 신중하게 됩니다. 신중하게 판단하게 됩니다. 어쨌든 급작스럽게 뭘 하지를 않는다. 급작스럽게 화를 내지도 않고, 급작스럽게 욕심을 부리지도 않고, 급작스럽게 뭘 할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왜? 하고 있는 걸 명확하게 내가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에! 알아차리면 급작스럽게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행동거지도 천천히 하게끔 되고, 말도 부드러워지고, 급하게 인제 앞으로 엄마 아빠가 너들한테 뭐라 하지는 않을거야. 그렇겠지? 이 법을 얻으면 우선 신중하게 판단하고 신중하게 행동하게끔 됩니다.
그다음에 이 소중함을 알기 때문에 게으르진 않는다는 거라. '아고! 오늘은 좀 쉬어야지. 오늘은 수행 안하고, 선원에 안 가고 뭐 다른 거 좀 해야지' 이렇게 게으르고 태만하게 되지를 않는다는 거라. 내가 지금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걸 분명하게 인식하고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는 거라.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도 부주의하고, 게으르고, 태만한 것들을 갖다가 물리쳐 나가는 거라.
눈꺼풀은 어떤 역할을 해요? 먼지가 들어오는 걸 탁 보호해 주죠! 그와 마찬가지로 번뇌가 들어오는 것으로부터 내 자신을 보호해줍니다. 그것이 세 번째 이익입니다.
그다음에는 욕심부리지 않고 미워하지 않으니까 우선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됩니다. 행복하게 됩니다.
이런 이익들이 있기 때문에 먼저 빨리 이 부처님 법을 보도록 노력하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자! 우선 오늘은 걷는 세 단계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어쨌든 이 세 단계를 분명하게 이해를 해야 만이 그다음에 네 단계로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알겠죠? 오늘은 반드시 세 단계를 성취해야 됩니다. 그래야 네단계, 일어났으면 사라진다는 원인·결과에 대한 것들도 이해하게끔 되는 네 단계로 넘어가질 수 있습니다. 세 단계에서 이해를 못하면 네 단계 안 가르쳐 줍니다이. 더 배우고 싶지? 그러면 빨리 공부해.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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