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테라와다불교의 진심 : 담마스쿨

위하라 (Vihāra : 사원) (20090820)

담마마-마까 2020. 11. 3. 13:03

* 위하-라(Vihāra : 사원) (20090820)

https://youtu.be/tBqbLwBaiRE

https://youtu.be/VncRogfjw6c

 

오늘은 빨리어 용어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위하라(Vihāra)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사원을 보통 위하라(vihāra), 아라마(ārāma), 상가라마(saṃghārāma) 이런 단어로써 씁니다. 조금 차이는 있죠?

상가라마(saṃghārāma)라고 할 것 같으면 '상가 스님들이 머무는 장소'라는 그런 뜻이 있는 거고, 그다음에 아라마 라고 할 거 같으면 상가라마에서 아라마가 있고, 그다음에 위하라(Vihāra) 라고 할 거 같으면 '사원'이라고 하는 개념인데 그 속에는 두 가지 의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행하는 공간과 전법하는 공간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고, 또 숲속에 있는 것들을 아란야(arañña)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걸 경우엔 숲속에서 오로지 수행만 하는 그런 공간, 이런 식으로 용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원 안에 각각의 장소들이 독립되어 있는데 그 나름대로 용어들이 따로 다 있습니다. 대부분 보면 스님들이 공양을 하는 공간들 이런 곳들은 '다나 살라' 그렇게 얘기를 하고, 법문하는 장소 그런 경우에는 '담마 사하라'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리고 스님들이 묵는 공간 그 구역자체는 '상가 와사' 라고 붙이고, 그다음에 부처님 모시는 본당 같은 경우에는 '위하라'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리고 스님들이 계율을 외우고 참회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또 비구계를 주고 하는 그런 곳들은 '우뽀삿타'란 이름을 붙이고, 그리고 사원 안에 탑들이 있으면 '쩨디(Chedi)'라고 하든지 '파고다'라고 하든지 이름을 붙여서, 만약에 무슨 쩨디 하고 이름을 앞에다 붙이기도 하고 이렇게 여러 가지 장소로써 거기에 맞게끔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그게 테라와다 사원의 형태들인데, 왜 테라와다 사원에 대한 이해들을 해야 되느냐면 지금 우리가 한국에 살고 있으니까 한국 절을 자꾸 표준으로 삼을려고 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국 절하고 테라와다 사원하고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납니다. 많은 부분에서 이질적인 것들이 차이가 많이 납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분들은 한국 사찰을 뭐라고 그러는지 알아요? "귀신들이 머무는 종합청사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왜 그런 얘기가 나오느냐면 제사직이 거의 주종을 이룹니다. 49재, 천도재, 백중, 무슨 수륙재, 양륙재 이런 식으로 하면서 하는게 거의 절의 대부분이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하는 경우들입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분이 적어도 스님들이 머무는 곳은 신성한 공간이라는 뜻으로써 상가라마 라고 이름을 붙이고, 사원이라고 이름을 붙이는데 신성한 장소에 죽은 사람들을 모시는 공간들이 같이 병존한다는 것을 이해를 할 수 있을까? 법당 한번 가 봐요. 법당 가보면 부처님이 있고 부처님 옆에 항상 모시는 게 지장보살이라. 법당 한쪽에는 지장단이 항상 모셔져 있고.

대부분 성스러운 장소라고 할 것 같으면 죽은 이들의 공간을 같이 모시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같이 모시고 있다는 거라. 참 아이러니한 부분이라. 그러니까 다른 종교인들이 볼 때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인 거라. 테라와다는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거라. 그런 게 있고.

 

또 하나는 뭐가 있느냐면 절 자체가 특화된다는 거라. 특히 일본에 여러분들이 가본 사람 있는지 모르지만, 일본 어떤 데는 나라나 이런 데 가보면 애완동물을 위한 절이 있습니다. 애완동물만을 위한 절이라. 스님들이 이 애완동물의 천도재나 갖가지 기도나 이런 거 해주지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특이하죠? 우리나라도 꼭 마찬가지 특화되어 있습니다. 지장기도 도량, 그다음에 관음기도 도량, 무슨 도량, 그것만 특화되어 있습니다.

절의 개념은 그런 것은 아니라는 거라. 절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스님들이 머무르면서 법을 전하고 수행하기 위한 공간이 주가 되어야 되는데 그건 뒷전이고 딴 것들이, 특화된 것들이 주가 되고 있다는 거라. 그런 문제점들도 있고.

 

그다음에 절 좀 큰 데들 가보면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절에서 운영하는 갖가지 상점들이 있습니다. 가끔씩은 거기에서 어느 스님이 쓴 그림, 달마 그림을 팔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몸에 지니면 좋다 하는 부적 같은 것도 팔기도 하고 이렇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근데 이게 사실 가능한 부분인가? 물건을 파는 것이. 종교시설이라는 것은 비영리를 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출가한 스님들은 돈벌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근데 출가한 스님들이 머무는 곳에서 그 운영의 실질적인 주인은 한국 사찰의 경우는 그 스님인데 그럼 그 스님들이 영리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거든. 그래서 이 부분도 상당히 문제가 좀 있는 부분에 속하고.

 

또 그리고 요즘 같은 경우에 절 안에 납골당 이런 것들을 서로 유치할려고 경쟁을 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거라. 분명하게 죽은 이들의 공간과 살아있는 자들의 공간은 분리가 되어야 하는 것인데, 살아있는 자들의 공간에 납골당이라는 것이 같이 공존할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거라. 그래서 이게 부처님이 원래 정사를 만들고 이 사원을 유지해나가고 하는 의미들 하고 너무나 자꾸 변질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한국 사찰이 그런 부분을 빼고 나서 한 번 보십시오. 뭐가 남는가? 거의 남는 게 없습니다. 혹시 이게 잘못된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여러분들은 적어도 그런 개념들은 가지지 않도록 하고, 또 절이란 개념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해를 해가지고, 여러분들이 담당해야 될 것들과 스님들이 담당해야 될 것들을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고 나서 그 법을 듣고 출가하는 분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부처님과 담마와 상가가 이 지구상에 형성되니까 당연히 내가 지금 여러 가지 형편으로 인해가지고 출가하지 못하더라도 재가인으로써 부처님 법을 갖다가 믿고 따를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그런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가 있는 곳에 가서 법을 자꾸 들을려고 합니다.

 

그런 곳이 한두 군데 자꾸 생겨나다 보니까 재가인들이 아, 한곳에 스님들이 머물 공간, 그리고 부처님 머물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빌려줬다가 스님들이 삼 개월 사 개월 정도 여기 머물도록 허가를 했다가, 나중에는 그것도 양이 안 차니까 아예 거기에다가 건물을 지어가지고 스님들이 머물게끔 합니다.

 

그렇게 했다가 이게 조금씩 변모되어 나가면서 이 땅과 이 건물 자체를 승단에다가 기증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죽고 나더라도 내 후손들이나 또 다른 사람들이 얼마든지 거기 가서 법문을 듣고 또 수행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써 활용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절이라는 개념이 이렇게 서서히 바뀌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좀 유명한 스님들이나 아니면 뛰어난 수행자가 있는 곳은 아주 절이 커집니다. 그러니까 절이 각각의 기능들을 다 담당을 하게끔 됩니다. 일반 신도들을 가르치는 것, 일반 신도들이 수행할 수 있는 곳, 그다음 출가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기도 하고, 출가자들을 가르치고, 출가자들이 수행하는 공간, 각각의 기능들을 가지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뭐냐 하면 인도에 있는 날란다 대학입니다.

어쨌든 인도의 날란다 대학은 전 세계에서 다 여기에 와서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근데 이 날란다 대학은 대학입니까, 절입니까? 절입니다! 절 안에 대학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절 안에 대학의 기능을 하는 곳이 있고, 또 절 안에 스님들의 숙소를 위한 기능들이 있고, 또 출가자들을 만들어내는 기능들이 있고, 이런 각각의 기능들이 있는 곳이 이 날란다라는 것이죠. 곧 사찰의 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출가자들의 역할과 일치하기 때문에! 출가자들의 본분은 수행하는 것과 또 법을 전하는 것 그 두 가지라는 거라.

 

그 두 가지를 하기 위해서 절이 커지기도 하고 이러는데, 지금의 테라와다 불교권에 보면 사원들의 역할이 그렇게 해서 아주 다양합니다.

문화센터로써의 역할, 그다음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정보도 교환하고, 그다음에 어느 경사스러운 일이 있다, 아니면 불행한 일이 있다 할 것 같으면 그 행사들을 할 수 있는 장소로써 절이 기능합니다. 그래서 결혼식도 절에서 하고, 또 장례식도 절에서 하고 이런 식으로 돼나갑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교류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 교류하기에 그렇게 넓고 큰 장소가 절 이외에는 없다 하는 거라. 그럼 그 안에서, 절에서 다 이루어지는 거라.

 

단지 그걸 스님들이 관여하지 않습니다. 결혼식에도 스님들이 관여를 하지 않고 장례행사에도 스님들이 관여를 하지 않습니다. 물론 초청을 하면 가서 밥 한 끼는 먹고, 또 초청한 사람이 가사를 선물하면 가사를 받아오기도 합니다. 그리하더라도 그 자체 결혼식을 전부 집전한다든지 주례를 본다든지 이런 것도 없고, 장례식을 갖다가 절에서 한다고 해가지고 절에 스님들이 다 관리감독하고 이런 것도 없습니다. 자기들이 다 알아서 와서 합니다.

 

그것뿐 아니라 절이 학교의 기능을 합니다. 아까 날란다 대학과 마찬가지로.

특히 태국 같은 데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심한데, 학교들이 거의 대부분이 사원 구역 안에 있습니다. 여기가 스님들이 머물고 수행하는 공간이다. 한쪽 구석에 운동장이 있고 요쪽에는 학교가 있습니다. 학교의 이름도 사원 이름을 따기도 하고 안 그러면 아예 별도로 하기도 하더라도, 사원구역 안에 그게 인제 현대적인 바람을 타고 현대 학교가 많이 생겨나고 하니까 그전에는 사원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출가 해가지고 그 안에서 교육을 받아온 형태들인데, 현대 교육이 되면서 그게 힘들어지거든.

 

그러니까 각각의 학교들이 생겨날 필요성이 생기니까 상가에서 결정합니다. 사원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라. 그리하니까 정부에서는 얼마나 좋아. 땅이 없다가 땅이 생겼으니까 거기에다가 학교를 짓는 거라. 뭐 학교를 지어도 그게 사원구역 안인데 저게 어디로 가겠어?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불교 공부를 하게 되고 또 스님을 친견하게 되고 또 수행을 하게끔 되고, 그러니까 학교 가는 것이 절에 가는 거라. 또 절에 가면 당연히 학교도 다니게 되고 이렇게 되는 형태들을 띠게 되는 거라. 그러니까 절로써의 기능이 하나로써 되어있는 법이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기에 나와 있듯이 각각의 사회적인 역할, 그중에서 종교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장소로써, 우리나라 정부 같은 경우에는 만약에 문화부가 있다. 문화부에서 하는 게 쉽게 말하면 여러 가지가 있다고 치자. 그 기능들을 테라와다에서는 정부에서도 담당하지만 실제적으로 집행하고 하는 것은 사원에서 행한다는 거라.

빈민구호를 한다. 그럼 사원에서 빈민구호를 다해. 에이즈 환자들이 있다. 에이즈환자 치료? 병원에서 다 수용할 형편이 못되면 절에서 수용해가지고 하는 거라. 그러니까 모든 관공서의 기능도 절에서 다 하는 거라.

그러니까 일반 신도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수월해? 내가 숟가락 하나 없어도 결혼식을 할 수가 있고, 내가 돈이 없어도 절에 와가지고 모든 걸 다 제공을 받을 수 있는 거라. 밥도 먹고, 잠자기도 하고, 또 거기서 수행하기도 하고 법문도 듣고 다 그렇게 가능한 거라.

또 돈이 많은 사람들은 다른데 보시하기보다 절에다 보시를 하는 거라. 절에다 보시한다 해가지고 스님에게 보시를 하는 게 아니고 절, 사원, 상가에 보시를 하는 거라. 상가에서는 그걸 가지고 유용하게 어떤 건물을 지어가지고 빈민자 숙소를 만든다든지 이렇게 자꾸 만들어지게 되는 거라.

 

사원의 역할이라는 것이 그게 오히려 정확하지 않겠느냐 하는 거라.

모든 일들을 재가인과 출가인들이 호흡을 맞춰가지고 하나로써 나아가는 방향! 이것이 맞는 것이지 출가인들이 모든 주도권을 쥐고 모든 것을 다 관장해서 해나가는 방식은 자칫 잘못하면 바르지 않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겁니다.

대표적인 게 특화되어 있는 절이라든지, 장례의식을 지나치게 하는 절이라든지 이런 식으로 자꾸 변모되게끔 된다는 거라.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러다 보니까 애완동물을 위한 절이 한국에 안 생기리라는 법이 어딨어요? 일본에는 다수가 있는데.

점점 더 절은 박물관화 되어버리게 되고 점점 더 죽은 이를 위한 공간이 되고, 그럼 산 자들은 뭐 할 건데? 절이 그 기능을 못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어디 숲에 들어가더라도 산에 들어가더라도 인제는 절에 안 가고 싶은 거라. 그 숲에만 갈려고 하는 거라. 왜? 절 자체가 숲하고는 이미 분리돼있거든. 그런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거라. 편안하게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이 못되기 때문에 그거 입장료 안 줄라고 싸움을 하는 거라.

 

율장에 보면 사원을 지을 수 없는 장소가 규정이 돼있습니다.

첫 번째가 뭐냐 하면 도살장. 쉽게 말하면 가축들을 죽이는 장소.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가지고 교도소 같은데, 즉 사형집행 할 수 있는 곳들을 얘기합니다. 그런 곳이 있는 곳은 여기는 사원을 지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피하라고 그럽니다.

그다음에는 묘지가 있는 곳, 공동묘지든 개인묘지든 묘지가 있는 곳은 사원을 못 짓게끔 합니다. 근데 우리는 자꾸 거꾸로 되죠? 오히려 밖에 있는 걸 안으로 들일려고 합니다. 절 안으로. 근데 분명하게 율장으로는 그렇게 규정이 돼있습니다. 묘지가 있는 곳은 못 짓게 돼있습니다.

그다음에 동물들 축사가 있는 곳. 마굿간이라든지 닭을 키우는 곳이라든지 아니면 소나 돼지 같은 것들을 키우는 장소, 그런 데서는 또 못 짓습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감옥, 그다음에 또 하나가 술집, 유흥가죠? 술을 먹고 정신을 취하게 하고 하는 번잡한 곳 이런 곳들, 그다음에 매춘하는 장소 이런 곳들 부근에는 절을 못 짓게끔 율장에서 아예 규정을 해놓았습니다.

 

당연히 테라와다 불교사원뿐만 아니라 대승불교도 거기에 해당이 되기 때문에 그런 규정들은 엄격하게 지켜나가 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는 정신입니다.

 

어쨌든 절이라는 개념이 테라와다의 사원이라는 것은 재가자와 출가자가 합심해가지고 나아가는 공동체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가인이 담당할 것과 출가인이 담당할 것을 분명하게 구분을 합니다.

 

여러분들이 오해하기 쉬운 단어가 뭐냐 하면 '성문 제자'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성스러운 제자들! 우리 상가 부분 예찬에도 '사와까 상고(sāvakasaṅgho)' 하는 게 있죠? '사와까(sāvaka)'라고 하는 것, 성문 제자들! 뭘 성문 제자라고 할까?

부처님 시대 때도 재가인들도 일정한 수행의 과위에 이른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을 부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성문 제자라고 했습니다. 사와까라고 했습니다! 출가한 스님중에서도 그런 분들이 있을 때 그런 분들도 사와까라고 했습니다.

사와까 상가(sāvaka saṅgha), 사와까 가하빠띠(sāvaka gahapati) 그렇게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출가한 성문 제자, 재가인으로써의 성문 제자 이렇게 구분할 수는 있을지몰라도 사와까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와까의 개념이라는 것은 단순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부처님 말씀을 잘 듣고 잘 따라서 그것을 실천해나가고, 그것으로 인해서 바르게 수행하는 자들을 갖다가 사와까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사와까(sāvaka)가 갖춰야 될 조건,

쉽게 말하면 여러분들이 적어도 부처님의 제자이다.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사와까가 될려고 한다, 그럴 것 같으면 반드시 갖춰야 되는 것들이 있다는 거라.

 

먼저 계율을 지키는 것.

두 번째가 감각기관을 잘 다스리는 것, 감각기관을 못 다스리면 안 됩니다.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어버리고, 자고 싶을 때 마음껏 자버리고, 화날 때 확 화내버리고 이렇게 감각기관을 다스리지 못하면 안된다는 거라. 어떤 경우든지 감각기관을 잘 다스려야 됩니다.

 

세 번째가 음식물 섭취하는 것. 정도를 말합니다.

가끔씩 공양을 갖다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딱 먹을량 보다 한 숟가락이라도 많으면 나는 그걸 덜어내 버립니다. 적을 때는 말을 안 합니다. 적게 먹어도 되니까. 그런데 많을 경우에는 반드시 나는 덜어내버립니다. 여러분들 그리합니까? 아주 미세해가지고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이게 많은지 적은지조차 모릅니다.

그게 사와까의 조건이라는 거라. 음식에 대해서 그걸 절제하고 조절할 줄 아는 것. 섭취하는데 내가 이 정도면 충분히 수행해나가고 살아가는데 지장을 안 받는다 하는 것을 스스로 아는 것, 그 정도를 아는 것, 반드시 사와까의 조건으로써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다음에가 뭐냐 하면 항상 깨어있는 것. 흐리멍텅하게 있지 말고 항상 깨어있어야 됩니다.

내가 뭘 하는지는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내가 나쁜 일을 하는지 착한 일을 하는지 그걸 분명하게 알고 착한 일일 것 같으면 더할려고 해야 되는 거고, 나쁜 일이나 나쁜 생각들은 안 할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되는 거고, 그래서 반드시 깨어있어야 되는 거라. 사와까는.

 

그다음에 붓다와 담마와 상가에 대한 신심.

아, 이것만이 내가 의지해서 나아갈 수 있는 대상이다 하는 것, 바른 신심, 확신(saddhā)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거라. 그래서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거라. 수행하다가 안 되니까 아이고 안 되겠다 다른 절에 가서 기도 좀 해버리고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이것만이 내가 나아갈 길이고 의지할 길이다 하는 확신을 가져야 되는 겁니다.

 

그다음에 여러분들이 또 알아야 되는 게 부끄러움을 아는 것.

나쁜 일 했으면 참 내가 부끄러운 짓 했다. 참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가? 나쁜 행위 나쁜 업을 지은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는 마음들 히리(hiri)라고 그러죠?

히리(hiri) 다음에 반드시 따라 나오는 게 뭡니까? 옷땁빠(ottappa)라고 그럽니다. 두려움. 부끄러워만 하는 게 아니라 두려워 하는 것. 아, 이것이 나에게 미칠 과보, 또 다른 사람에게 미칠 과보 이게 얼마나 큰 두려움인가, 그런 두려움을 가지는 것.

 

그다음에 가장 중요한 것, 학자를 내가 저번에 내가 뭐라고 한다고 그랬어요?

바후숫또(bahussuto) 라고 그랬죠? 바후사따. 많이 듣는 것. 부처님 말씀을 많이 듣고, 스님을 통해서 부처님 말씀을 정확하고 바르게 많이 듣고, 시간만 나면 자꾸 많이 듣는 것, 이게 사와까의 기본적인 것들이라. 그게 없으면 안 돼. 왜? 사와까는 아직은 도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분들이 많단 말이라. 그럼 어떻게 해? 흔들리게 돼있다는 거라. 흔들리게 돼있으면 그걸 유지시켜주는 거는 자꾸 바른 법을 듣는 수밖에 없는 거라.

 

그리고 자꾸 노력할려고 하는 마음들을 가지는 것, 노력이라는 위리야(vīriya)

 

마지막 열 번째가 가장 중요한 사띠(sati) "사띠가 없으면 죽은 자이다. 사띠가 있으면 살아있는 것이다"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서 사띠를 항상 개발하고 사띠를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자꾸 노력해야 됩니다.

 

그래서 지혜가 있게 되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선정 일선정, 이선정, 삼선정, 사선정 이런 식으로 개발되어 나가지고 하는 거고.

그러다 보면 도와 과에, 첫 번째 도와 과, 두 번째 도와 과, 세 번째 도와 과, 네 번째 도와 과 이렇게 자꾸 올라가지게 되고.

이런 과정들을 통틀어서 사와까라고 합니다. 어쨌든 사와까 라고 하는 것은 출가자나 재가자나 다 공히 포함되는 경우라는 거라.

 

절이라는 곳은 출가자만 있는 곳이 아니라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공존하는 곳입니다. 왜? 출가한 스님들을 위해서 마련했지만 그 출가한 스님들이 법을 설하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출가자에게만 설하는 것이 아니고 재가자한테도 설한다는 거라. 그런 그 장소에는 출가자와 재가자가 같이 모이게끔 돼있다는 거라. 그럼 절이라는 공간은 출가자와 재가자가 같이 공존하는 공간일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렇게 했기 때문에 부처님이 출가자에게 당부한 말이 있고 재가자에게 당부한 말이 있습니다. 재가자, 여러분들이 재가자입니다. 가하빠띠(gahapati)라고 그랬죠?

 

부처님이 재가인들에게 당부한 네 가지 말씀입니다.

재가자가 명심해야 될 것은뭐냐 하면 출가자에게 공양 안 올려도 되고, 시주 안 해도 되는 경우, 부처님이 그걸 몇 가지로 얘기해놨습니다.

 

스스로 지어 먹는 자, 출가자라고 하더라도 땅을 일구어가지고 스스로 만들어 먹는 자.

우리 한국 사찰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남새밭 없는 데가 없고 잣나무 없는 데가 없고 대부분 자급자족을 해먹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처님이 뭐라고 했느냐면 재가인들에게 당부하기를 이런 출가자에게는 보시하지 말아라. 스스로 지어먹는 출가자들에게는 출가자의 자격이 없기 때문에 시주하지 말아라. 절 자체를 갖다가 보시하지 말아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게 첫 번째라.

 

두 번째 길흉화복, 쉽게 말하면 점 같은 그런 것들로 인해서 살아가는 경우,

큰 절 같은 경우는 그리 안 하는데 대부분 조그만한 포교당 같은 데를 보면 대부분이 그것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데는 절대 시주하지 말아라는 거라 부처님이. 알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 번째가 일반인들에게 속해가지고 그 일반인이 해주라는 것을 갖다가 하면서 먹고 사는 자들.

예를 들면 스님 우리 제사 좀 지내주십시오. 제사 지내줘 가지고 돈을 받아가지고 그것가지고 생활하는 자. 스님 우리 천도재 지내주십시오. 그 돈 받아가지고 생활하는 자. 그러니까 세속인들의 말을 듣고 그런 보답으로써 생기는 잉여재산으로써 살아가는 자들, 출가자들만 그런 자에게는 하지 말아라는 거라. 아마 대부분 한국 사찰이 여기에 많이 속해있을 겁니다.

 

그다음에 남 치료하는 것, 점보는 것 이런 것으로써 살아가는 자.

나는 누구 잘 치료해준다. 구명시식(救命施食) 해준다고 그러죠? 요즘은 죽은 자들 가지고 돈벌이 안 되니까 살아있는 자들을 위해가지고 살아있는 자들의 구병시식(救病施食) 해줍니다. 그래가지고 병치료 해준다고 하고, 그다음에 부적 같은 것을 써줘가지고 방지해준다고 하고, 이런 것 가지고 살아가는 출가자들 이런 곳에는 절대 다나(dāna)하지 말아라는 거라.

 

이 네 가지가 재가인들에게 당부한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이런 출가자에게는 절대 절이라는 개념이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그런 자들은 출가자라고 하더라도 바르게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먹을 것을 주지 말아라. 보시하지 말아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다음에 출가자들에게 당부한 것이 있습니다.

재가자, 이런 재가자들이 공양을 청하든 뭘 하더라도 그걸 거부하라. 보시한다고 하더라도 그 보시 받지 말아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해당이 됩니다.

 

첫 번째가 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하는 자. 부모님은 어떤 식으로 자기가 은혜를 갚는다 하더라도 그 부모님의 은혜를 다 갚지 못한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그 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한다는 것은 같이 살아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살면 더 좋겠지만 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원수같이 돼가지고 보지 못한다고 할 것 같으면 부모님 잘 모시지 못하는 거라. 부모님 마음을 편치 못하게 하고 있는 경우니까. 그런 자들은 공양청을 하더라도 공양 가지마라. 공양 받으러 가지마라.

 

그다음에 출가한 스님들을 잘 공경하지 않는 자.

특히 나이든 재가자들 같은 경우 인제 갓 출가한 스님이라 해서 무시합니다. 이런 데는 가지 말아라 합니다.

출가자는 출가한 것으로 인해가지고 이미 재가인보다도 등급으로 치면 더 높은 등급으로 올라가 있는 상태라 단계가.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아무리 든 재가인이라고 하더라도 출가자들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공경하지 않는다고 할 것 같으면 이건 재가자들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라.

 

대부분 동남아시아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는 출가할 때 스폰서가 돼주는 분이 자기들 부모님입니다. 부모님들이 여기 앉아있으면 출가할 스무살짜리 청년이 여기 앉아있습니다. 청년이 처음에 이때까지 나를 스무살까지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면서 부모님한테 삼배를 합니다. 삼배를 하고 나서 부모님이 이 가사하고 바리때를 출가할려고 하는 사람들한테 시주를 반드시 해줍니다.

그럼 그걸 받자마자 이 부모님이 뭐 하는지 알아요? 절을 삼배합니다.

 

그게 이 테라와다의 출가자와 재가자의 구분이라. 출가자가 높고 재가자가 낮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출가와 재가는 이렇게 엄연하게 구분되는 것인데 그 출가자를 갖다가 내가 나이가 많다. 내가 더 공부를 많이 했다. 내가 더 아는 것이 많다 해가지고 존경하지 않을 것 같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라.

지금 스님이 한국테라와다불교 협회에 내가 대표로 되어있습니다. 왜 대표로 되어있는지 아세요? 출가한 나이가 많기 때문에! 실제 나이는 내가 최고 작다시피 해. 그럼 재가 나이로 할 거 같으면 내가 대표가 될 수가 없는 거라.

 

세 번째가 출가자를 비방하는 것.

어느 스님은 어떻고, 이 스님은 뭐가 나쁘고 어떻고, 어떤 경우든 비방하는 형태를 띠고 있으면 그 공양청이나 보시를 받지 말아라. 여러분들도 조심해야 될 부분입니다.

그 과보는 굉장히 큽니다. 다른 과보들보다도 훨씬 빨리 나타나고 더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만 알면 됩니다.

 

그리고 출가자들 간에 서로 이간질시키고 싸우게 만드는 자.

그리고 출가자들을 쫓아내버리는 자.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사원이라는 개념은 운영과 유지보수는 재가인들이 하게끔 됩니다. 재가인들이 다 관리를 하게 돼있어요. 그러니까 출가한 스님들이 오는데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쫓아내버리는 거라. “아, 방이 없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몽두이를 들고 쫓아내지는 안 하더라도 방이 없다 하면서 쫓아내버리는 거라. 이런 자는 재가인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거라.

 

그리고 삼보의 허물을 들춰내는 자입니다.

삼보는 공경의 대상이고 내가 따라가야 될, 의지해야 될 대상인데 그 허물을 자꾸 들춰낸다는 거라. 그러니까 법이 맞니 틀리니, 바른 법이 아닌 그른 그런 법으로써 그것이 맞다고 주장한다든지, 그것이 틀렸다고 주장을 한다든지, 출가한 스님들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허물을 들춰낸다든지, 이런 삼보의 허물을 들추는 것 이런 경우들.

 

이런 것들은 대부분이 참회를 하지 않는 한은, 그것을 깊이 뉘우쳐서 다시는 안 하겠다고 하는 다짐을 하기 전에는 그분들의 공양청이나 그분들의 보시를 받지 말아라 하고 출가자에게 당부를 하기도 합니다.

 

이 앞에 보면 부처님 아래에 연화좌가 있죠. 하나는 연꽃이 바르게 되어있고, 하나는 거꾸로 되어있습니다. 바로 되어있는 것을 앙연(仰蓮)이라고 그러고, 거꾸로 있는 것은 복연(覆蓮)이라고 그럽니다. 꽃이 거꾸로 돼있다는 거라.

바리때도 복발(覆鉢)이라고 그럽니다. 부도탑 세울 때 어떻게 합니까? 복발 형태로 씌우죠? 탑을 세울 때. 저기 있는 탑들도 다 바리때를 거꾸로 엎어놓은 모양이라.

스님이 저거는 죽은 이를 위한 거니까 당연히 더 이상 탁발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바리때를 엎어놔 버리는 거라. 그러니까 살아있는 스님이 바리때를 엎어버린다는 거는 뭘 의미하는 겁니까? 네 공양을 안 받겠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에게는 탁발청을 가더라도 바리때를 엎어버리라는 거라.

부처님도 참 그런 거 보면 냉정하지.

 

그래서 재가인과 출가인의 관계는 반드시 서로 이해해주고 섬겨주는 관계가 되어야 됩니다.

재가인들은 출가인들에게 몸이나 말이나 마음으로 항상 친근감, 자애로운 마음으로써 가지고 행하고 언제든지 들릴 때 편하게 들릴 수 있게끔 만들어주고 그리고 출가자들이 수행하는데 필요한 도구들을 다 제공해야 될 의무가 있고 이런 것들이라.

스님들에게 필요한 것들이 뭐가 있겠어요? 쉽게 말하면 음식, 먹을 수 있는 음식, 그다음에 입는 가사, 그리고 수행할 이런 공간들, 그리고 아플 때 약이라도 지어주는 것, 이런 거 외에 특별한 게 있겠어? 뭐 스님이 “테레비 사도” 한다고 테레비를 사 줄 거라 어쩔 거라? 그건 아니잖아.

이 네 가지는 반드시 재가인들이 제공을 해주어야 되는 것들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마찬가지로 출가자도 재가인들에게 항상 바른 법을 자꾸 배울 수 있도록 베풀어줘야 됩니다.

선법이 더욱더 증장되고 악한 법들은 일어나지 않게끔 법으로써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나쁜 것으로부터 보호해주고 바른 것들은 일으킬 수 있도록 자꾸 권장해주고 일으켜주고, 그리고 항상 자비로운 마음으로써 듣지 못한 법들을 자꾸 듣도록 법을 설해주고, 그리고 그걸 가르쳐주고, 그래서 항상 이 세상에서 즐겁게 행복하게 살도록 해서 수행의 길로 이끌어주는 그런 의무가 있다는 거라.

그게 출가자와 재가자가 해야 될 길이라는 거라.

 

그런 것들이기 때문에 테라와다 사원이라는 것은 반드시 그 운영 방향을 정해놓았습니다.

그게 뭐냐면 「테라와다 불교에서 관리운영 방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재가신자가 사원을 만든다.

절을 만들 때 출가자는 관계하지 않습니다. 단지 재가인들이 스님, 스님들 방은 어떻게 만들면 됩니까? 물어보면 요렇게 요렇게 만들어라. 스님, 법당은 어떻게 만듭니까? 요렇게 요렇게 만들어라. 이런 조언은 해줄지 몰라도 그 공사판에 가서 절 만드는데 이리 하시오, 저리 하시오 이런 걸 할 수가 없다는 거라. 사원을 만드는 데는 어떤 경우든 출가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재가인들이 다 관여합니다.

 

단지 그 사원을 만드는데 재가인들이 그 스님들이 머무는 공간들이나 절의 개념들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조언을 해줄 수는 있다는 거라.

우뽀삿타 결계당은 부처님 법에 의할 것 같으면 요런요런 조건을 갖춰야 되기 때문에 요렇게 요렇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렇게 얘기해주고, 그렇지만 재가인들이 거기다가 만약에 스님이 겹지붕을 하라고 했는데 나는 조금 더 호화롭게 하기 위해서 세 겹으로 하겠다. 스님이 반대해선 안 된다는 거라. 왜? 스님은 거기 관여할 수 없으니까. 법에만 맞으면 전혀 개입을 해선 안 된다는 거라. 두 겹을 하든 세 겹을 하든 맞거든. 우뽀삿타라고 하는 건 두 겹 이상 되면 되니까. 근데 재가인들이 세 겹을 하겠다, 네겹을 하겠다 그걸 갖다가 안 된다 요렇게 해야된다 규정을 할 수가 없다는 거라. 출가자들은.

 

두 번째가 절의 유지 보수 관리 운영 세금을 포함한 관리운영들 전체를 다 재가인들이 담당하게 돼있다는 거라.

어디가 부서졌다. 이걸 새로운 걸 하나 만들어야 되겠다. 그다음에 사원의 경제에서 필요한 부분이 돈이 얼마인데 이것을 어떻게 마련해야 되겠다. 그다음에 어떻게 지출해야 되겠다 이 모든 것들은 재가인들이 하게 돼있다는 거라. 스님이 하지 말아라는 거라.

 

세 번째 사원을 건립한 후에는 반드시 사방상가에 보시를 해야 된다는 거라.

이게 인제 여러분들이 착각하는 부분입니다. 내가 존경하는 스님이니까 스님한테 보시한다고 그럽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방상가에 보시한다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 있는 진용스님한테 절을 하나 지어가지고 보시를 해야 되겠다 해서 절을 지어가지고 보시를 했다. 그럴 거 같으면 그 공덕은 어떻겠습니까? 이 한사람에게 보시한 공덕밖에는 안됩니다. 그런데 절이라는 곳은 어떤 곳입니까? 어떤 출가자든 와서 머물 수 있는 곳입니다.

 

사방상가라는 것은 지금 있는 스님뿐 아니라 온 사방에서 언제든지 올 수 있는 출가자들, 지금 현재뿐 아니라 앞으로도 미래 세계에도 출가자가 생겨나면 그 스님들이 올 수 있는, 시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개념을 떠나는 거고, 공간적으로 여기 있는 스님들만이다 하는 개념도 떠난 거고, 그래서 장소와 때를 불문하고 항상 출가하는 사람 모든 이들을 다 포함하는 개념이 사방상가라는 거라.

 

내년에 만약에 송천님이 출가를 한다. 그럼 송천님도 사방상가에 들어오는 거라. 이런 분들도 다 포함이 되게끔 되는 거라.

그리고 저기 어디 경주에 있는 스님이 있다. 그 스님도 여기 올 수가 있는 거라. 그럼 거기에 있는 스님도 사방상가에 포함됩니다. 이래서 사방상가에 보시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많은 무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스님들에게 다 보시하는 형태가 돼버립니다. 공덕이 어떤 게 크겠어요? 진용스님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 한 사람이 공덕이 크겠어, 아니면 많은 사람들의 공덕이 크겠어? 그거는 불문가지라는 거라.

 

그래서 사원을 지었을 경우, 큰 사원 전체를 다 지었다는 그것만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불상을 하나 조성했다. 불상을 조성하는 것도 마찬가지라. 스님에게 기증하는 것이 아니고 사방상가에 기증하는 겁니다. 사방상가에 보시하는 겁니다. 그런 개념이라는 거라.

 

그것뿐 아니라 공양청을 하는 것도 꼭 마찬가집니다. 이 테라와다에서는 스님들에게 순번을 매겨놓습니다. 진용 스님 1번, 적향 스님 2번, 무슨 스님 3번 해가지고, 만약에 그 절에 삼십 명의 스님이 있다 그러면 1번부터 해가지고 30번까지 번호를 정해. 그 스님은 자기가 번호를 알아요. 그러면 재가인들이 아, 이번에 우리 아들래미 생일인데 스님들 다섯 분을 초청해가지고 공양 올려야 되겠다. 그럼 절에다가 내일 스님 다섯 분만 공양 올리고자 하는데 보내주십시오.

그럼 1번부터 5번까지 보내는 거라. 그다음에 누가 또 모레 기념일이 있어가지고 스님들 다섯 분이 필요하다. 그럼 보내주십시오 이랬다, 그러면 그 다음날 갈 스님은 6번부터 10번까지 가고, 그러니까 번호순으로 하는 거라.

세 명이면 10번 다음부터 11번부터 13번까지, 요런 식으로 번호대로 항상 그 순서라. 그러니까 명수는 몇 명이 될지는 모릅니다. 세 명이 될지 다섯 명이 될지 열 명이 될지는 몰라. 근데 공양청은 항상 그런 형태를 띠게 되는 거라.

 

근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공양청을 어떻게 합니까? 스님 내일 우리 집에 와서 공양하십시오. 특정인을 지목을 합니다. 주지스님, 내일 상직스님들하고 같이 와서 공양하십시오. 딱 정해버립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가는 사람은 만날 가게 되고, 안 가는 사람은 만날 안 가게 되는 거라. 어떤 게 공덕이 될까?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고 공양 올린다는 것은 모든 스님들에게 다 공양올린다는 의미가 됩니다. 특정인을 지목할 거 같으면 그 스님에게만 공양올리는 공덕을 받겠다는 거라. 틀렸다는 것은 아닌데 공덕의 과중에서는 분명하게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공양을 올리는 것도 이런데 일반적으로 사원의 경우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게끔 된다는 얘기입니다.

 

근데 구분을 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소비재들.

소비재들은 어떻게 됩니까? 예를 들어봅시다. 조금 전에 누가 스님 법문하다가 마시라고 이 물을 갖다 줬어. 물은 먹고 없어져버리는 겁니다. 이거는 특정인에게 주는 것입니다. 이거는 사방상가에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죠? 이렇게 소비재일 때는 특정인을 지목했습니다.

 

근데 그렇지 않고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개인에게 보시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사방상가의 개념이 통용이 됩니다. 그래서 의자, 여기 스님들 사용하는 방석, 침대, 이불, 그다음에 절, 불상, 탱화 이런 것들은 개인에게 보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라.

당연히 그렇게 하니까 그 스님이 그 절을 떠날 때는 그걸 가지고 갈 수가 없는 거라. 그리고 그 절을 매매할 수도 없는 거고. 왜? 그거는 특정인에게 준 것이 아니고 사방상가에 기증한 것인데 자기가 뭘 어떻게 좌지우지해? 이게 뭐가 잘못되고 있다는 거라 한국에서는. 내가 그 절을 떠날 때 몽땅 다 가지고 가버립니다. 그래서 새로운 스님이 와보면 아무것도 없어. 차 마시려 해도 차 마실 도구조차도 없어. 또 어떤 경우에는 그 절을 팔아버립니다. 자기 것 마냥.

 

근데 보시하는 개념은 그 개념이 아니거든. 특정하게 개인이 먹고 없어지는 것들, 그리고 입고 없어지는 이런 소비재가 아닐 경우에는 불특정다수가 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개인에게 보시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거라. 그럴 것 같으면 개인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불상을 조성해 올리든, 방석을 조성해 올리든, 아니면 탱화를 조성해 올리든, 아니면 공양을 만들어 올리든지, 아니면 이 사원을 지어서 올리든지 하더라도 반드시 그것을 대중에게 공고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여기에 한번 보십시오.

 

[ 이 절이 불법(佛法)을 수호하고 전법(傳法)과 수행에 도움이 되기 위해 사방상가에 보시합니다. 참가한 스님들은 상가를 대표해서 이 사원을 받아들여 승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하고 관장합니다.

그래서

[ 이와 같은 공덕으로 내가 현생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고 자유로워지길 바랍니다. 이 공덕으로 돌아가신 나의 부모님도 이와 같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 하면서 바람도 담고 이렇게 합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그걸 받을 때 그것은 어떻게 됩니까? 사방상가에 다 보시하는 게 됩니다. 그 스님한테 준 게 아니고. 그래서 그것이 큰 공덕이 되게 됩니다. 그래서 복전(福田)이 된다 하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특히 여러분들 같은 경우에는 한국수행자들은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몰래몰래 할라고 그래. 몰래몰래. 뭘 했다 그러면 “스님 내가 뭘 하나 했는데 스님 가지십시오.” 꼭 그 스님한테 주는 것처럼 얘기를 해.

그거는 뭐냐 하면 그 한 사람 개인에게도 공덕을 안 받겠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라. 몰래 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에게 하더라도 떳떳하게 해야 되는 거라.

그리고 불특정다수가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개인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방상가에 하는 것입니다. 이해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용돈을 주더라도 부끄러워하면서 몰래 살그머니 놔놓고 갈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거는 스님이 받은 게 아니게 됩니다.

반드시 오늘과 같이 탁발하고 이럴 때나 스님에게 당당하게 올려야 됩니다. 아까도 여러분들 탁발 공양하는 의식을 했죠? 그렇게 했을 때 그게 공덕이 된다는 거라.

 

자, 다시 한번 얘기하면 상가와 재가인들이 힘을 합해서 사원은 유지운영을 해야 됩니다.

이 유지운영은 재가자의 의무이고 사원은, 그 절은 재가인들이 공덕을 쌓기 위해서든 뭘 하든 간에 보시를 했다 치면 그건 재가인들 것이 아닙니다. 그거는 사방상가의 것입니다. 재가인이 그걸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닙니다.

 

특히 만약에 호두마을이다. 재가인이 만들어가지고 상가에 기증했습니다. 그렇다면 재가인이 관여를 하면 안 된다는 거라. 그 재가인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는 거라. 사원 자체는 사방상가의 것이라는 거라. 단지 재가인은 그것을 유지 운영하는 의무만 행하는 것뿐이라는 거라.

여기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붓다의 길따라 선원도 여러분들이 보시를 해가지고 만들어졌습니다. 근데 이것은 여러분들 것이 아닙니다. 스님 것도 아니고, 사방상가의 소유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법인으로, 법인의 재산으로 들어가는 거라. 근데 유지운영은 여러분들이 해야 된다는 거라. 알겠죠?

 

그래서 사방상가에 보시하는 것으로 인해서 엄밀하게 얘기할 것 같으면 사원으로써의 성격이 규정되어 집니다.

대승불교의 사원이나 테라와다의 사원으로 되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이 사원에는 진용스님만 주석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사원이라고 할 것 같으면 사방상가의 개념이기 때문에 어느 스님이든 와서 머물 수가 있습니다.

물론 율장에는 규정을 해놨습니다. 왔을 경우에는 며칠을 넘기면 안 된다. 며칠을 넘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된다. 그런 여러 가지 규정들이 있는데 그 규정만 지킨다면 얼마든지 와서 머물고 떠나갈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그렇게 머무르려고 오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법을 청하고 수행을 따라하고 할 의무도 있다는 거라.

 

만약에 스님이 태국에 수행 지도하러 한 달 갔다. 없는 동안에 다른 스님이 여기 와가지고 수행 지도를 한다. 그러면 이 사원에 실제적으로 법을 설하고 지도하는 스님은 진용스님이 아니고 그 스님인 거라. 주지라는 개념이 특정인 하나에게만 한정되어 있는 개념이 절대 아니라는 거라. 없을 경우에 다른 사람이 와서 그것을 해나가는 사람이 주지의 소임을 맡게끔 된다는 거라.

그래서 사원을 만들 때는 반드시 그런 객스님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됩니다. 사원 자체에.

 

사원이 그러면 뭐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적어도 스님들이 머무는 공간, 지금 현재 스님뿐 아니라 앞으로 올 스님들도 머물 수 있는 공간, 적으면 하나라도 만들어놔야 된다는 거라.

또 재가인들이 와서 머물고 수행할 수 있는 공간.

또 하나는 수행하고 법을 전하기 위한 공간.

또 하나는 출가한 스님들이 모여서 포살을 하고, 자자를 하고, 또 출가하는 스님을 만들 수 있는 공간.

최소한의 공간은 요게 필요합니다.

이게 갖추어지지 않으면 테라와다의 사원으로써의 기능을 못한다는 거라.

 

출가인은 출가인의 기능을 해야 되는 거고, 재가인은 재가인의 기능을 해야 됩니다.

거기서 덧붙이면 사무실도 만들어야 되고, 화장실도 만들어야 되고, 뭐 그다음에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도 만들어야 되고, 이런 개념으로 만들어나가게 됩니다. 법당이 우선이 아닙니다.

 

기본적인 것은 법을 설할 수 있고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 기본인 거고, 그다음에 스님들이 머물 공간, 그다음에 재가인들이 머물 공간, 그다음에 스님들이 참회하고, 포살을 하고 자자를 할 수 있고 비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 이게 기본입니다.

그런 공간 그러니까 최소한으로 네 개 아니면 다섯 개의 공간이 갖춰져야 만이 테라와다 사원으로써의 기능을 합니다.

 

나머지는 그렇게 어려운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읽어보면 알 수가 있을 겁니다.

오늘은 사원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설명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