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정진/위빳사나 수행과 알아차림

경행의 순차적인 방법(아짠 빤냐와로 마하테로의 법문 중 일부를 간추림)

담마마-마까 2020. 11. 22. 20:13

◈ 경행의 순차적인 방법

 

수행을 하는 마음은 절대 긴장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이 차분하고 평화로우며 편안하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수행자가 해야 할 일은 알아차리는 것! 단 한 가지 뿐입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알아차려야 합니다.

완전하게 매 순간 알아차림을 지속하십시오.

 

항상 일상생활에서 먼저 몸과 마음을 자꾸 일치시키는 훈련들을 해야 됩니다.

몸이 있는 곳에다가 마음을 붙이도록 자꾸 연습을 해야 됩니다.

 

"그리하다보면 언젠가는 진리가

여러분들 곁에 툭 떨어지듯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 10가지 예비수행

다음과 같은 10가지 자세를 갖추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① 부끄러운 마음을 가질 것.

② 신체적으로 청정할 것.

③ 언어적으로 청정할 것.

④ 마음이 청정할 것.

⑤ 정돈된 일상생활을 유지할 것.

⑥ 모든 감각기관이 건강할 것.

⑦ 폭식, 폭음을 삼갈 것.

⑧ 수면시간을 줄일 것.

⑨ 올바른 앎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할 것.

⑩ 잡다한 일을 떠나 마음을 어지럽히는 갖가지 번뇌로부터 자유로울 조건을 만들 것.

 

* 수행의 원칙(포인트)

❶ 슬로 모션 ‘천천히 행하라.’

❷ 실황 생중계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알아차려나가도록 하라’

❸ 감각의 변화를 알아차림 ‘이해한 상태에서 일어난 느낌들을 관찰하라.’

 

경행을 할 때도 꼭 같은 방법이 해당이 됩니다.

천천히 하라!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 지금 현재 움직이는 것들을 관찰하도록 하라.

그리고 그 느낌들을 관찰하도록 하라.

그리고 그 느낌들로 인해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들을 관찰하도록 하라.

이것이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 경행의 단계

1) 모든 움직임을 먼저 알아차려라.

2) 그 움직임의 단계를 명확하게 구분할 줄 알아라.

그리고 의도를 알아차려라.

3) 몸의 움직임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을 알아차려라.

4) 그 느낌에서 변화되는 것들을 알아차려라.

 

* 경행의 규칙  [짱까마(caṅkama) ‘천천히 부드럽게 걷는다’]

-걷기 수행은 아침 일찍 좌선 전이나 식후 혹은 운동 후 약 30분에서 1시간 정도 합니다.

-경행 장소는 너비 50cm, 길이 약 20m 정도의 경행대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황에 맞게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경행도 좌선과 마찬가지로 단계적으로 하는데, 처음에는 알기 쉬운 것부터 가볍게 알아차리다가 점차 자세하게 알아차립니다.

-경행의 순서는 서고, 가고, 서고, 돌고, 가고를 반복하면서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립니다.

-경행은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1) 수행자는 먼저 왕복할 수 있는 일정한 거리를 확보해서 몸의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정면을 향하여 섭니다.

몸의 긴장을 풀고, 두 손을 모아서 앞으로 잡거나 뒤로 잡습니다.

 

2) 경행을 하려는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바라는 마음, 하기 싫은 마음, 들뜬 마음, 아무것도 없는 마음 등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립니다. 

 

3) 현재 서 있는 자세에서 얼굴, 어깨, 손, 종아리, 발바닥의 느낌을 직접 알아차리면서 쭉 내려갑니다.

마음이 발까지 내려오면 발이 바닥에 닿은 것을 알아차립니다.

 

4) 이제 한발 한발 걸으면서 발바닥이 닿는 것만 알아차립니다.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하고, 앞으로 갈 때는 반듯하게 일직선으로 걷습니다.

그다음 단계로 발뒤꿈치가 들리는 것부터 알아차려 발을 들어서 놓는 것까지 다 알아차립니다.

그다음 단계로 들어서 앞으로 놓음을 알아차립니다.

 

5) 끝에 가면 반드시 서서, 서 있는 몸의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어깨의 긴장을 알아차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줍니다.

 

6) 정면을 향해 돌면서 몸이 돌아가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돌 때는 천천히 돌면서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거나, 혹은 어깨에 마음을 두고 어깨가 크게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다시 서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가려는 의도에 의해 발이 앞으로 나가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7) 경행을 할 때 처음에는 발의 움직임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다가 점차 무겁고 가볍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잡히면 그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이어서 그 느낌의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또 경행 중에 망상이 일어나면 그것을 망상이라고 가볍게 알아차리고 다시 발의 움직임으로 돌아와 알아차림을 이어갑니다.

 

8) 눈은 좌우를 두리번거리지 말고 서너 걸음 앞의 바닥을 봅니다.

처음에는 약간 빨리 걷다가 차츰 적당한 속도를 유지합니다.

경행을 할 때 지나치게 천천히 걸으면 몸이 긴장되어 알아차림을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적당한 속도로 걸으면서 계속 발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9) 길이나 운동장에서 빠르게 걸을 때에는 발이 닿는 것만 알아차리거나, 몸의 움직임을 전체적으로 크게 주시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다가 전면에서 발의 움직임이 나타나면 그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주의할 점은,

오른쪽 다리를 내리는 것과 왼쪽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을 연속하지 않도록 하는 것 즉, 오른쪽 다리를 내리는 것과 동시에 왼쪽 다리의 뒤꿈치를 들어 올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오른쪽 발바닥이 확실히 지면에 닿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 왼쪽 다리를 들어 올리도록 해야 합니다.

 

* 경행 수행할 때 주의할 점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시선은 자신의 키보다 1.5배 정도 앞의 아래 지점, 180cm~200cm 정도 앞을 눈을 반쯤 감은 상태에서 내려다 볼 것.

둘째, 여기저기 두리번거리지 말 것.

셋째, 발을 내려놓을 때 발바닥 전체를 자연스럽게 내려놓을 것. 발바닥 전체가 동시에 바닥에 닿도록 해야 됩니다.

넷째,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면서 일정한 거리(대략 20m 정도)를 왕복하는 것.

-발걸음 보폭은 한 발뼘 정도씩만 나아가도록 해야 됩니다.

 

2단계로 경행을 할 때는 발바닥이 비스듬하게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데,

3단계로 구분을 하고 경행을 할 때는 뒷발이 약간 먼저 들리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하더라도 들어올릴 때는 발바닥을 동시에 똑같이 올려주도록 하고, 나아갈 때는 땅과 수평이 되도록 해서 나아가도록 하고, 내려놓을 때는 반듯이 내려놓아서 발바닥 전체가 땅에 동시에 닿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리해야 사대요소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하게 구분을 하고 이해를 하게끔 됩니다.

 

* 초심자의 단계별 수행

움직임을 알고 나서 (명확하게 구분할 줄 알게되면), 느낌을 알아차리도록 하라.

느낌을 알고 나서는, 의도를 알아차리도록 하라.

 

경행의 초기에는 되도록 조금 빠르게 들어올림, 내려놓음이런 식으로 (2단계로) 천천히 훈련들을 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더라도 지나치게 발을 들고 내리고 하지 마십시오.

처음에 할 때는 자연스럽게 뒤꿈치부터 해서 쭉 들려졌다가 내려놓을 때는 되도록 앞꿈치가 먼저 닿고 뒤꿈치가 닿고 그런 형식을 취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명확하게 구분이 되고 했을 때는 발이 조금 높게 올려지고 내려지고 그렇게 해집니다. 천천히 갈 때는.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되도록 자연스럽게 순조롭게 들어올려지고 내려놓고 하는 그런 훈련들을 해야 됩니다.

그러다가 그 대상을 관찰하기 수월할 때 세 단계 정도로 해서 발바닥을 정확하게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을 때도 바닥에 동시에 닿도록 쭉 내려놓는 훈련들을 하고 이렇게 해야 되지, 처음부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 여러분은 수행에 있어 다음의 두 가지를 찾고 해결해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내가 어떻게 하면 움직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움직임에 마음을 둘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나는 여러분에게 몇 가지 방법을 알려드렸습니다. 

- 성급함을 버리는 것, 

- 항상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는 것,
- 멈춤으로써 움직임의 시작을 분명히 아는 것,

- 움직이기 전에 의도함을 붙이는 것,

- 움직임의 단계를 구분하여 아는 것,

- 불필요한 움직임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그 행위에는 ‘신수심법’이라는 네 가지 수행을 다 하게 됩니다.

‘나가고자 함’ 하고 의도를 낼 때 그것은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나아가는 걸음걸음을 알아차리게 될 때는 몸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움직이면서 가볍고 무겁고 편안하고 고통스럽고 하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은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념처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걷고 있을 때 무슨 소리가 들리면 ‘들림’ ‘들림’ 하면서 알아차리고 있으면 이것은 법념처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걸어갈 때 신수심법 네 가지를 다 수행 할 수 있게 됩니다.

앉아서 수행 할 때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알아차림입니다.

 

* 걷기 수행의 이점은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먼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얻게 해 줍니다.
(2) 마음집중력을 키워줍니다.
(3) 좌선과 걷기의 균형을 잡아 건강에 도움이 되고, 수행의 진도가 빨라집니다.
(4) 식후에는 소화에 도움을 주고, 새벽 좌선 전에는 잠을 깨우는 데 도움을 주어 좌선 시에 졸음을 없애줍니다.
(5) 좌선에서 얻어진 집중력은 고요 속의 집중이며, 걷기에서의 집중은 움직임 속의 집중이기에 서로 간의 상승효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 경행의 실제

1) 모든 움직임을 먼저 알아차려라.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갖다 놓아라. 움직이면 움직임을 먼저 알아차려라.

 

2) 그 움직임의 단계를 명확하게 구분할 줄 알아라.

몸과 마음도 구분을 하게 되고 또 각각의 움직임의 단계들도 다 구분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움직임을 완전하게 구분하고 파악해서 명확하게 알아차려라.

시작하고 끝나는 걸 분명하게 알고, 그것으로 해서 다시 또 시작하고 끝나는 것이 있습니다.

연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들어올릴 때의 마음하고, 나아갈 때의 마음은 분명히 다른 마음입니다.

나아갈 때의 마음하고 내려놓을 때의 마음은 분명히 다른 마음입니다.

들어올린다는 ‘몸의 현상’과 들어올린다는 것을 아는 ‘마음의 현상’하고는 구분이 되어야 합니다.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몸의 움직임도, 알아차리는 마음도 각각 다릅니다.

그 사이마다 멈춤이 있고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습니다.

 

- 의도를 알아차려라.

의도의 역할을 분명하게 알아차려라.

모든 행위는 의도가 앞서게 됩니다.

의도하는 마음이 있어야 만이 그다음에 움직임이 있게 됩니다. 마음이 앞서서 잡아당기게끔 됩니다.

원인 결과를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의도를 관찰하기 쉬울 때는 발을 들어올리기 전입니다.

동작이 끝나고 다음 동작이 이어질 때 의도를 관찰하기가 가장 수월합니다.

어떨 때는 발이 훅 들리기도 하고, 어떨 때는 발이 천천히 들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더 멀리 딛을려고 발이 급격하게 올라오기도 하고 각각 다 다릅니다. 의도가 없다고 할 거 같으면, 행위와 마음이 일치됐다고 할 거 같으면 그런 현상이 없어야 됩니다.

왜 그런 행동들이 나타납니까? 마음이 앞서기 때문에! 마음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결과가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다가 의도가 하나의 행위 안에서, 의도로 인해서 행위가 일어나지고, 의도로 인해서 행위가 일어나지는 것을 또한 관찰하게 됩니다.

모든 동작, 만약에 올라오는 동작에 1초가 걸린다. 그 1초안에는 의도가 수백번도 더 들어가집니다. 마음은 찰라라고 그랬습니다. 마음은 찰라간에 일어났다 사라져버립니다.

 

의도를 알아차릴 때 초보자들은 어떻게 알아차리냐면 발을 들어 올릴 때는 땅바닥이 탁 밀어 올려지는 듯이 느껴집니다. 그런 느낌이 일어남과 동시에 발은 탁 들리게끔 됩니다. 의도를 알아차릴 땐 ‘바람의 요소’로써 알아차리도록 하는 것이 가장 수월합니다. 내려놓을 때는 발바닥을 땅으로 누군가가 끌어내리려고 하는 느낌이 들던지 그러고 나서 발이 땅으로 이렇게 내려가게 됩니다.

 

발을 들 때 들어올리려는 의도가 먼저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들어올리는 물질적인 현상이 하나하나 나타나지게 됩니다. 들어올리려는 의도는 정신적인 현상입니다. 들어올릴려고 하는 마음은 인식하는 의식입니다. ‘들어올림’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나서 들어올릴 때, 사람들이 들어올릴 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느낌들이 들어가버리면 그에 따라서 일어나는 느낌도 달라져버립니다. 그래서 느낌에 대한 것들, 느낌 무더기가 분명하게 있습니다. 이 느낌무더기는 들어올리는 것을 인식하는 지각무더기가 또한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에 들어올리는 마음상태가 있게 돼있습니다. 그럴 때는 마치 행위를 할 때 발을 누군가가 들어올려라 들어올려라 하는 것처럼 보여버립니다. 그것이 의도입니다!

 

이렇게 해서 정신적인 현상, 들어올리려는 의도 안에는 느낌(vedanā) 지각(saññā) 의도(saṅkhāra) 의식(viññāṇa)이라고 하는 네 가지 정신적인 무더기가 있습니다. 들어올려지는 움직임은 물질적인 무더기(rūpa)죠!

그것까지 합해서 물질과 비물질, 나마(nāma)와 루빠(rūpa)로써 이루어졌다 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들어올리려는 의도와 들어올려지는 현상, 이것으로써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몸의 움직임도, 알아차리는 마음도 각각 다릅니다.

그 사이마다 멈춤이 있습니다.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습니다.

원인 결과를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3) 몸의 움직임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을 알아차려라.

느낌들은 사대요소로써 알아차려라. 사대요소도 변화된다.

 

4) 그 느낌에서 변화되는 것들을 알아차려라.

무상․고․무아의 성품을 통찰할려면 이와같이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을 구분할 수가 있어야 되고, 그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도 의도가 있고, 다시 또 그로 인해서 결과가 있고, 원인․결과 원인․결과의 반복이다 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원인․결과가 반복되는 것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게끔 되고, 그래서 다시는 ‘나’,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그것으로 인해서 이렇게 된다고 믿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는 성품이구나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무상․고․무아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를 하게끔 됩니다.

 

* 경행의 단계

수행초기에는 빨리 걸어갈 때에 ‘오른발’ ‘왼발’ 이렇게 한 가지씩 알아차리고,

천천히 갈 때는 2단계‘들어올림’ ‘내려놓음’ 이렇게 나누어 알아차리십시오.

2단계로 구분하여 5분 정도 한 다음 마음이 가라앉은 단계에서

3단계로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이라고 나누어 알아차리십시오.

집중이 한층 잘 되어져서 다리의 움직임을 확연하게 알아차리게 되면

6단계로 나누어 갑니다. ‘뒤꿈치 들어올림’ ‘앞꿈치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닿음’ ‘누름’ 으로 알아차립니다.

더더욱 마음이 움직이는 발에 집중되어 예리해질 때는

9단계로 발을 들어 올릴 때는, ‘들어 올림’ ‘발바닥 떨어짐’ ‘올라감’이라고 구분하고 발을 옮길 때는, ‘나아감 ‘나아감’ ‘나아감’이라고 구분하고 발을 내릴 때는, ‘내려놓음’ ‘닿음’ ‘누름’이라고 9단계로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걷다가 앉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면 ‘앉고자 함’ ‘앉고자 함’으로 알아차리십시오. 앉을 때에는 몸이 점점 무거워지며 내려갑니다.

-걷다가 서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에는 그 의도를 관찰한다. (서고자 함, 서고자함, 서고자함)
-멈추어 서서 돌고자 할 때도 요령은 같다. (섬, 섬, 섬, 돌고자 함, 돌고자 함, 돌고자 함)

 

* 경행할 때도 자세를 편하게 취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손이 이동을 하면서 움직여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앞쪽이나 뒤에서 살포시 손을 잡는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어깨 긴장을 주지 않는 상태에서 살포시 잡는다고 생각을 하고 발을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할 때도 살포시 들어서 살포시 내려놓는다고 생각을 해야지 너무 경직되게 쭉 들어올리고 천천히 갔다가 내려놓고 이럴 것 같으면 몸이 또 긴장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 수행을 할 때는 그냥 자연스럽게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하는 것을 알아차리도록 자꾸 노력해야 됩니다.

 

그래서 경행을 할 때 처음에는 되도록 조금 빠른 보폭으로 (2단계로) 가는 것이 일상적입니다.

그래서 조금 빠르게 하다가 집중이 조금 더 잘되면 조금 더 세분화 시켜서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하면서 (3단계로) 조금 더 천천히 하고, 그러다가 마음이 조금 더 집중이 된다 싶으면 조금 더 천천히 하고 그래서 ‘들어올림’ ‘나아감’ ‘내림’ ‘닿음’ 이렇게 하고, 그러다가 조금 더 천천히 해서 ‘뒤꿈치듦’ ‘올라옴’ ‘나아감’ ‘내려놓음’ ‘닿음’ ‘디딤’ 이렇게 자꾸 세분화하도록 해나갑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6단계나 아니면 그 이상의 단계로 하다보면 몸이 경직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보면 몸이 오토매탁화 됩니다.

그러면 대상을 관찰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자연적인 성품이 그 속에 드러나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경행의 초기에는 되도록 조금 빠르게 ‘들어올림’ ‘내려놓음’ ‘들어올림’ ‘내려놓음’ 이런 식으로 (2단계로) 천천히 훈련들을 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더라도 지나치게 발을 들고 내리고 하지 마십시오.

나중에 명확하게 구분이 되고 했을 때는 발이 조금 높게 올려지고 내려지고는 해집니다. 천천히 갈 때는.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되도록 자연스럽게 순조롭게 들어올려지고 내려놓고 하는 그런 훈련들을 해야 됩니다. 그러다가 그 대상을 관찰하기 수월할 때 세 단계 정도로 해서 발바닥을 정확하게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을 때도 바닥에 동시에 닿도록 쭉 내려놓는 훈련들을 하고 이렇게 해야 되지 처음부터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처음에 할 때는 자연스럽게 해서 뒤꿈치부터 해서 쭉 들려졌다가 내려놓을 때는 되도록 앞꿈치가 먼저 닿고 뒤꿈치가 닿고 그런 형식을 취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왜 멈춤을 알아차리라고 할까?

멈춤을 모르면 의도를 알아차리기가 힘이 듭니다.

모든 의도는 새롭게 시작될 때 일어나지게 됩니다. 그 멈춤이 있어야 만이 시작이 되어나갑니다. 그래서 의도를 알아차리기 가장 용이한 것이 멈춤을 알고 나면, 그다음에는 마음이 분명히 다른 것들을 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그 다른 걸 하게끔 되는 마음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라는 거라.

그래서 경행을 할 때 딱 끝나고 나면 ‘멈춤’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라는 거라.

 

그리고 멈춘 상태가 오래도록 지속이 될 때는 어떻게 해요?

서 있는 상태를 알아차리면 됩니다.

‘멈춤’하고 알아차리고 나서 서 있는 상태 머리끝부터 해서 발끝까지 전체적인 것들을 하나씩 알아차리도록 하라.

그러고 나서 마음을 멈추는 것이 그래도 더 멈춰있을 경우에는

배를 알아차릴 대상으로 하면 됩니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멈춤’하고 다시 알아차리고 나서,

몸을 틀어야 되는 동작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의도를 알아차리도록 하라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발을 ‘오른발 들어올림’ ‘돌림’ ‘내려놓음’ ‘왼발 들어올림’ ‘돌림’ ‘내려놓음’ 다시 ‘오른발 들어올림’ ‘돌림’ ‘내려놓음’ 다시 ‘왼발 들어올림’ ‘돌림’ ‘내려놓음’ 하면서 180도 돌도록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돌아와서 다시 또 ‘멈춤’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려라.

그리고 나아갈 때는 ‘나아가고자 함’하고 의도를 알아차리고, 반드시 발걸음을 떼도록 하라는 겁니다.

그게 수행에서 알아차려야 되는 것들입니다.

 

* 경행에서 사대요소 관찰

` 발을 들어올릴 때는 불의 요소가 강해질수록 발이 들어올려지게 되며, 발이 점점 들어올려진다고 하는 것은 가벼움(불)의 요소가 점점 더 증가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들어올려질 때는 움직이는(바람) 요소도 같이 있습니다. 바람의 요소를 안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을 안다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발이 들어올려질 때는 움직임(바람)의 요소와 가벼움(불)의 요소가 같이 존재를 하지만은 실제적으로 느끼는 것은 움직임의 요소보다는 불(가벼움)의 요소가 더 강하게 작용을 합니다. 처음에 들어올릴 때는 발바닥에서 뭔가 툭 쳐올려주는 느낌이 가벼움의 요소가 있습니다.

발을 들어올릴 때는 화대와 풍대가 같이 있습니다. 바람의 요소가 없으면 절대 불의 요소가 드러나지지를 않습니다. 불의 요소이든 땅의 요소이든 물의 요소이든 공통적으로 있는 것은 이 바람의 요소입니다. 바람은 움직임의 요소입니다. 그런 움직임이 없을 거 같으면 일어나지지를 않습니다. 그리하더라도 발을 들어올릴 때는 주가 되는 것은 불의 요소입니다.

발을 들어 올릴 때는 ‘가벼움’만 있는 것이지 발이라는 관념이나 개념에 휩싸여버려서는 안됩니다. 당연히 ‘가벼움의 요소만 있다’는 것을 알지 이 발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을 갖다가 아는 것은 아니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움직임에 따라서 발이 가볍고 무거워지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 몸이 사대요소로 이루어져 있구나 하는 것을 내가 알게 됩니다.

사대요소에 대해서 발을 들어올려짐을 알아차릴 때는 가벼움의 요소라는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그 움직임의 가벼운 요소가 단계별로 같지 않고 변화된다는 사실 이 두 가지를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 발을 앞으로 옮길 때는 움직임(바람)의 요소가 주된 요소입니다. 바람의 요소는 발을 들거나 내려놓을 때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때 강하게 느낍니다.

 

` 발을 내려놓을 때는 무게감을 느낍니다. 무거움의 요소는 물의 요소와 땅의 요소인데 흘러내리는 물의 요소가 좀 더 강합니다. 물의 요소를 지각하기 때문에 발을 내려놓을 때는 꼭 땅바닥이 내 발을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땅의 인력으로 인해서 잡아당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발이 내려올 때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려올 때는 점점 더 무거움이 더 강하게 일어나집니다. 내려놓을 때는 무거움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차릴려고 하고, 그 무거움이 증가하는지 아니면 감소하는지 알아차릴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뒤에서 미는 것 같은가? 앞에서 당기는 것 같은가?’ 앞으로 나아갈 때는 누가 밀어주는 느낌이 듭니다. 내려놓을 때는 잡아댕기는 것 같습니다. 무거움이 강해지니까 당연히 잡아댕기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모두 바람의 요소입니다.

 

` 발을 땅에 디딜 때는 거기에는 딱딱하고 부드러운 땅의 요소가 있습니다.

들어올릴 때는 불의 요소(가벼움), 나아갈 때는 바람의 요소(움직임), 내려놓을 때는 물의 요소(무거움), 디딜 때는 땅의 요소(딱딱함), 이렇게 사대요소가 발걸음 하나에 다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몸은 이렇게 사대로 이루어져 있구나 하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게 됩니다.

 

* 사대요소와 세 가지 특성

(1) 사바-와락카나(sabhāvalakkhaṇa : 고유한, 개별적 특성)

빠타위- 다-뚜: 딱딱한 특성. 딱딱함, 거칠음, 무거움, 매끄러움, 부드러움, 가벼움.

물이나 바람이 피부에 닿았을 때 강하거나 부드럽거나 단단하게 느껴지는 것도 흙의 성품입니다.

흙의 요소는 물의 요소에 의해서 결합되고, 열의 요소에 의하여 유지되며, 바람의 요소에 의하여 확장됩니다. 이러한 흙의 요소는 다른 3대의 기저(基底)로서 작용함으로써 그들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이것이 흙의 본질, 고유한 특별한 특성입니다.

떼-조- 다-뚜: 뜨거움, 차가움의 특성.

열의 본성은 따뜻함, 늙어감, 소모되는 것, 소화를 돕는 성품, 숙성, 새로운 생명이 만들어지고 성장하고 병들고 하는 것입니다.

열의 요소는 흙의 요소에 의하여 머물게 되며, 물의 요소에 의하여 결합되고, 바람의 요소에 의하여 확장됩니다. 이러한 열의 요소는 다른 3대의 유지체로서 작용함으로써 그들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이것이 열의 본질, 고유한 특별한 특성입니다.

아-뽀- 다-뚜: 흐르는 특성. 유동성, 응집성, 접착력, 시멘트와 같은 접착성, 단단함과 부드러움. 축축 습기

물의 요소는, 흙의 요소에 의하여 머물게 되며, 불의 요소에 의하여 유지되며, 바람의 요소에 의하여 확장됩니다. 이러한 물의 요소는, 다른 3대의 응집제로서 작용함으로써 그들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와-요- 다-뚜: 팽창성(추진력·확장력), 지탱하는 것. 긴장되고 뻣뻣하고 떨리는 특성. 몸의 움직임으로 가볍게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 에너지, 운동, 긴장, 지탱·지지의 요소, 누르는 힘.

서 있을 때 서 있으려고 몸을 유지 지탱해주는 것들, 지탱해주고 긴장하는 것들도 전부 바람의 요솝니다.

상승하는 바람은 몸의 움직임의 원인이 되는 공기나 재채기, 하품, 딸꾹질 등 공기 같은 것, 하강하는 바람의 요소는 호흡이 코로 들어오고 나가게 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바람의 요소는, 흙의 요소에 의하여 머물게 되고, 물의 요소에 의하여 결합되고, 불의 요소에 의하여 유지됩니다. 이러한 바람의 요소는, 다른 3대의 확장체로 작용함으로써 그들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이러한 본질을 보고 '이것이 바람, 공기의 요소, 와-요-다-뚜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대요소의 성질들은 물질 현상들에만 존재합니다.

수행자들의 마음이 잘 집중되어 있다면, 몸과 마음의 고유한 특성을 먼저 이해하게 되고 나중에 보편적인 특성인 무상(無常; anicca), 고(苦; dukkha), 무아(無我; anatta)를 깨닫습니다.

 

(2) 상카따락카나 (기간적, 순차적 특성)

빨리어로 '웁빠다(uppada)', '티띠(ṭhiti)', '방가(bhanga)'라는 것은 시작되어 생겨나는 것, 소멸을 향하고 있는 것인 잠시 머물고 있는 것, 끝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시작과 중간과 끝을 말합니다. 결국 시작과 중간과 끝이라는 것도 생성과 머묾과 소멸입니다.

 

이러한 물질과 정신의 법들에 존재하는 생성, 머묾, 소멸이라는 기간적 특성 세 종류를 ‘상카따락카나’라고 부릅니다.

조건이 부합되어 생겨나는 물질 성분과 정신 성분들의 생성과 머묾과 소멸이라는 짧은 순간순간 순차적인 세 종류의 기간을 '상카따락카나' 라고 부릅니다.

 

(3) 사-만냐락카나 (보편적 특성)

'사-만냐(sāmañña)- ‘모든 것과 관계되는 것’

일반적으로 관련되어지는 특성이란 모든 물질 현상과 정신 현상들은 생겨나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닛짜락카나', '둑카락카나', '아낫따락카나' 3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 특성들은 모든 물질 및 정신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사-만냐락카나', 보편적인 특성입니다. 이 세 가지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반드시 생겨나는 동안에 관찰해야 고유의 특성을 알 수 있다."

발을 나아가기 위해서 다리를 들어올릴 때 발의 모양이나 다리의 모양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움직임을 알아서 점점 더 가벼워지는 느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 가벼워지는 느낌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띠가 더욱 더 강해지면서 개념이 가려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이 강해지면 개념은 가려져버리고 실재하는 현상이 더욱 더 분명해집니다.

몸과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고, 이것이 몸의 현상이고 이것이 마음의 현상이라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에 이르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뚜렷하게 보는데 사라짐만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때는 개념이 완전하게 떨어져나가 버린 상태가 됩니다.

 

들어올릴 때는 서서히 들리는 것의 시작부터 들림이 끝날 때까지 마음이 대상에 집중하여 붙어서 따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갈 수 있다면 무엇이 보이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벼움, 무거움, 뻣뻣함, 밀어올림 등 어떻게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양의 물질, 상태의 물질, 본질의 물질, 이 세 종류 중에서 어떤 한 가지를 분명히 이해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올림'으로 알아차릴 때면, 걸음을 떼는 시작부터 걸음을 올려놓는 끝까지 집중해서 대상에 붙어 따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갈 수 있다면 어떠한 특성을 아는지, 즉 다리를 아는지, 가는 모습을 아는지, 그렇지 않으면 가는 순간에 어떤 특성을 아는지 분명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뒤에서 미는 것 같은가! 앞에서 당기는 것 같은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내림'으로 알아차릴 때도, 천천히 내려가는 시작부터 땅에 닿아서 멈출 때까지 붙어 따라가며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붙어서 따라가며 알아차림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쭉 따라가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갈 수 있다면 이 대상 위에 마음이 밀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상에 마음이 밀착하면 무엇을 아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리를 아는지, 내리는 모습 상태를 아는지, 무겁고, 가볍고, 부드럽고, 뻣뻣하고, 긴장되는 어떤 한 가지를 아는지 이것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외에 굽히고 펴고 기울고 앉고 일어나는 것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행동들을 알아차릴 때에도 대상이 나타난 것, 알아차림 한 것, 들어맞았는지 아닌지, 마음이 관찰 대상 위에 도달했는지 아닌지, 도달했다면 어떠한 특성을 알았는지 이러한 것들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반드시 생겨나는 동안에 관찰해야 고유의 특성을 알 수 있다."

생겨나는 동안에 따라서 관찰하지 않으면 고유의 특성을 알 수 없습니다. 고유의 특성은 고사하고 배의 모양도 알 수 없고, 부르는 모습도 알 수 없습니다. 외관상의 물질인 모양도 알 수 없고, 양식상의 물질인 형태도 알 수 없습니다.

고유의 특성을 알아차림 하는 것이 많아지게 될 때, 이 대상 위에 마음이 일치하게 되는 것이 많아지게 되면 마음의 집중력이 좋아질 것입니다. 마음의 능력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집중력이 좋아지게 되면 배의 외관적 모양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부르는 모습이라고 하는 모양, 상태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것들을 넘어서서 뻣뻣한 특성, 긴장되는 특성, 떨리는 특성, 움직이는 특성들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이 배가 꺼지는 동안에도 서서히 꺼지기 시작하는 것부터 끝날 때 까지 "사라짐 위에 집중하십시오. 붙어서 따라 가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집중하여 따라가게 되면, 조금 전 말한 배의 모양이나 형태들을 뛰어 넘게 됩니다.

배가 점차 줄어들면서 멎으며 꺼지게 됩니다. 공기가 들어있는 공을 터트리게 될 때 점차 줄어들어서 꺼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들은 공기의 특성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후에 지혜들이 성숙되어지게 될 때에는 이렇게 드러나게 되는 고유의 특성들이 시작되어 나타나는 것, 아직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 그리고 끝나는 것, 즉 생성과 머묾, 소멸, 이것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고유한 특성을 봐야 순차적 특성이 드러난다."라고 합니다.

고유의 특성을 보지 못하면 순차적 특성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물질의 고유한 특성, 정신의 고유한 특성을 생겨나는 동안에 따라서 알아차려 볼 수 있어야 그것의 시작되는 것, 계속되고 있는 것, 이후에 끝나게 되는 것, 이 세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유한 특성들을 볼 수 있게 되어 그것의 처음과 중간과 끝, 생성과 머묾과 소멸, 이 세 부분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드러나게 되면 관찰되는 대상이 일어나서 사라지는 모습, 항상 하지 않은 모습들도 보게 되어 알게 될 것입니다. 의지할 것이 아닌 모습들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들 각자의 특성대로 되어 가는 모습들도 보게 될 것입니다.

생성과 머묾과 소멸이라고 하는 순차적 특성 세 가지 중에서 특히 마지막 부분을 아직 보지 못하고 드러나지 않았다면 항상 하지 않은 모습, 고통스러운 모습, 그것들 각자의 특성대로 되어가는 모습이라고 하는 모든 물질과 정신들의 보편적 특성들을 아직 보지 못합니다.

 

"순차적 특성이 드러나야 보편적 특성이 드러나도록 따로 할 것은 없습니다." 고유한 특성을 볼 수 있도록 생겨나는 동안 따라서 알아차리십시오. 생겨나는 동안을 관찰하면 고유한 특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항상 하지 않은 모습들, 고통스러운 모습들, 그것들 각자의 특성대로 되어가는 모습들을 알게 됩니다.

 

일어남을 알아차리면 서서히 일어나는 것부터 시작하여 일어남이 끝날 때까지 저절로 보게 될 것입니다.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면 사라지는 거의 처음부터 시작하여 사라짐의 끝까지 제대로 집중하여 알아차리십시오.

그러면 몸 안에 나타나고 있는 것들이 나타나고 알아차리고 사라지고, 나타나고 알아차리고 사라지고... 하는 보편적 특성들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생겨나고 나타나서 사라지는 것, 태어나서 죽어 끝나 사라지는 것, 죽음의 성분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죽음의 성분들이란 좋지 않은 성분들입니다. 고통스러운 성분들입니다. 의지할 만한 것이 아닌 것들입니다. 이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각자의 성질대로 되어가는 모습도 깨끗하고 분명하게 뚜렷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순차적, 기간적 특성이 드러나야 합니다. 순차, 기간이 드러난다는 것은 지혜안에 순차, 기간들이 드러나야 합니다. 생성과 머묾과 소멸, 알아차림 되는 대상의 처음, 중간, 끝이라는 세 부분이지요. 특히 마지막 부분이 드러나야 합니다. 드러나게 되면 ‘항상하지 않고, 고통스럽고 그것들 각자의 특성대로’라고 하는 것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보편적 특성을 볼 수 있어야 위빳사나 지혜가 생겨납니다.

'위빳사나(vipassanā)' 란 ‘항상하지 않고 고통스럽고, 특성대로’라고 하는 상황으로 보는 지혜, 항상하지 않는 모습, 고통스러운 모습, 그것들 각자의 특성대로 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지혜지요.

 

* 관념을 보지 않고 실재적인 것을 볼려면

관념을 보지 않고 실재적인 것을 볼려면 여러분들은 절대 대상과 함께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마음과 함께 움직이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볼려고 할 거 같으면 나를 봐야 됩니다. 그러면 마음이 대상에게 움직여 버리게 됩니다. 마음이 대상과 함께 움직여 버립니다. 그러면 수행 못합니다.

마음은 이 육근에 있습니다. 마음도 이 몸이라고 하는 육근이 있어야 일어나집니다. 그러면 마음은, 마음과 함께 있을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대상을 따라서 움직일려고 하면 안된다는 거라. 이 몸이라고 하는 대상에 머물러 있어야 됩니다. 항상 마음과 함께 머물도록!

대상에 고정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관찰하는 마음에서 그것을 아는 마음으로 이동해야 만이 가능합니다. 대상에 고정되어 버리면 관찰하는 마음만 있게 되는 거라. 관찰하는 마음만 있으면 어떻게 돼요? 내가 대상에 계속 머물게 돼버린다는 거라. 마음이 무엇을 알아차리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차리도록 자꾸 노력해야 됩니다. 이 두 가지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거라.

 

무상․고․무아의 성품을 통찰할려고 할 거 같으면

이와 같이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을 구분할 수가 있어야 되고,

그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도 의도가 있고,

다시 또 그로 인해서 결과가 있고, 원인결과 원인결과의 반복이다 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원인결과가 반복되는 것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끊임없이 변하는 성품이구나 하는 것을 갖다가 이해하게끔 되면서

무상․고․무아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를 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아, 모든 현상은, 모든 조건 지어진 것은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그것에는 지속되는 것이 없고 항상 변하고 있다’ 하는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다시는 의심하지 않는다는 거라.

어떤 절대 신이나, 아니면 나라는 것으로 인해가지고 이것이 존재하고 이루어졌다고 하는 그런 생각을 품지 않는다는 거라. 모든 것은 원인결과, 원인결과의 연속이다 하는 사실을 이해하게 됩니다.

 

경행을 하면서 바로 이 ‘소따빤나(수다원)’에 이르게 된다는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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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수행할 때는 반드시 좌선과 경행을 1 대 1 비율로 해라.

 

좌선하고 경행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를 해나가야 됩니다.

수행의 포인트는 뭐냐 하면 알아차림을 항상 깨어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집중력하고 노력의 힘이 균형을 맞춰줘야 됩니다. 가만히 앉아있는데 힘이 더 많이 들겠습니까 아니면 걸어가는데 힘이 많이 들겠습니까? 당연히 걸어가는데 힘이 많이 듭니다. 근데 가만히 앉아있을 거 같으면 힘은 덜 들지 몰라도 집중하는 건 생긴다는 거라. 가만히 있을 거 같으면 마음이라는 것은 어디에든지 머물르게 돼 있다는 거라. 어디든지 자꾸 대상을 찾게 돼 있다는 거라. 그러면 대상이 그마만큼 적으면 어떻게 돼? 마음은 집중하게 돼 있다는 거라.

 

그럼 앉아있을 때는 집중력은 많아지고, 경행을 할 거 같으면 노력의 힘은 많아지게 돼 있다는 거라. 그럼 이 두 가지를 균형을 맞춰줘야 되는데, 자칫 사람들이 좌선만 자꾸 할려고 할 거 같으면 어떻게 돼요? 집중력만 자꾸 키워주는 거라. 노력의 힘이 떨어지니까 어떻게 돼? 앉아서 좌선만 했다 그러면 할려는 노력이 없으니까 어떻게 돼? 폭 잠에 떨어지는 거라. 안 그러면 잠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마음이 깨어 있을려면 어떻게 해야 돼? 노력의 힘이 없으니까 어떻게 돼? 막 딴 생각들만 하는 거라. 막 생각을 굴리고 앉아있고 한 시간 내내 딴 생각하는 거라. 자는 거 아니면 딴 생각하는 거라.

 

그래서 처음 수행할 때는 반드시 좌선과 경행을 1 대 1 비율로 해라.

한 시간 좌선을 했으면 한 시간 경행을 하라. 반드시 이것을 맞춰주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런데 뭘 그럼 먼저 해야 되느냐? 좌선을 먼저 해야 되느냐? 그건 아닙니다. 경행을 먼저 하도록 해야 됩니다.

한국 사람들은 집중력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강합니다. 더 강합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오히려 이 위리야(vīriya)라고 하는 노력의 힘입니다. 노력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 더 훨씬 수행하는데 용이합니다.

 

좌선할 때 집중력이 없어도 노력의 힘이 있을 거 같으면 어느 정도 수행에서 알아차림을 이어나갈 수가 있습니다. 근데 노력의 힘이 없으면 좌선을 할 거 같으면 알아차림을 금방 까먹어버린다는 거라. 대상을 놓쳐버린다는 거라. 대상을 놓쳐버리고 앉아있으면 그거는 백날 앉아있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거라. 그래서 시간이 나면 되도록 앉아서 좌선할려고 하지 말고 걸어가면서 경행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 거꾸로 하고 있죠? 시간나면 무조건 앉을라고 그러죠?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경행을 해야 됩니다. 오히려 경행을 하는 것이 사물의 현상을 발견하기에는 더 용이한 방법이다 하는 거라. 그렇게 하도록 해주면 됩니다.

노력의 힘을 받쳐주는 수행은 경행이며, 마음집중의 힘을 받쳐주는 수행은 좌선입니다. 따라서 별도의 수행지도가 있기 전까지는 좌선과 경행에 같은 시간을 분배하여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집중의 힘과 노력의 힘의 균형을 맞춰주는 방법

 

경행을 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경행은 노력의 힘을 더 강화시켜주는 수행입니다. 상대적으로 집중하는 힘이 약해지게끔 됩니다. 집중하는 힘은 지속적으로 알아차림이 이어지게 하는 힘들을 얘기합니다.

경행을 할 때 어떤 현상들이 있습니까?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경행하면서 대상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게 있습니다. 들어올리는 것은 알아차렸는데 나가는지도 모르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깜빡깜빡 조는 거와 꼭 마찬가집니다. 내려놓는 건 알아차리고 있다 하더라도 들어올리는 건 또 모른다는 거라.

 

망상, 생각이 많이 일어난다 하면 노력의 힘들은 있는데 집중의 힘들이 적기 때문에 균형을 못 맞춰서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그럴 때는 일단은 걸음을 멈추고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이 일어났음’하고 알아차려주고, 대상을 단순화시켜줘야 됩니다!

어떻게 대상을 단순화시킬 수 있어요? 집중하는 힘을 키워주려면 발을 들어올릴 때 좀 높게 가져가는 게 좋습니다. 들어올릴 때 조금 더 지속적으로 들어올려지는 걸 알아차리도록, 나아갈 때도 마찬가지, 내려놓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래서 이 발을 들어올리는 것을 조금 더 높게 해줄 거 같으면 집중하는 힘이 커집니다. 그러면 생각하고 하는 망상들은 되도록 안 일어납니다. 왜? 그렇게 하려면 낮게 움직일 때보다 훨씬 더 집중을 많이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흔들려 버리니까.

 

걸어가다가 대상을 자꾸 놓칠거나, 대상 자체에 그냥 맹목적으로 알아차림 하게 될 때,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이러고 있고, 현상이 하나도 발견이 안 되고 이럴 땐 노력하는 힘이 부족하다고 그랬죠!

대상에 노력하는 힘을 자꾸 키우려면 대상 자체를 명확하게 알아차리면 되는데 그게 안 되기 때문에, 되도록 경행하는 속도를 빨리 해줘야 됩니다.

 

발걸음 보폭은 한 발뼘 정도만 나아가도록 해야 됩니다. 발이 많이 나아간다고 할 것 같으면 발(발바닥)이 동시에 착지를 할 수가 없습니다. 뒷꿈치가 먼저 닿든지 아니면 발이 옆으로 가든지 이렇게 돼버립니다.

또한 발을 너무 지나치게 들어올려 버릴 것 같으면 내려놓을 때는 앞꿈치가 먼저 닿을 수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너무 올릴려고도 하지 말고 일정하게 올려서 내려놓을 때는 그대로 내려놓도록(발바닥 전체가 동시에 닿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 좌선을 하는 경우 집중의 힘과 노력의 힘을 균형 맞춰주는 방법

& 집중의 힘이 강하고 노력의 힘이 약할 경우 일어나는 현상들이 뭡니까?

대상이 변하는 걸 따라가주지 못하니까, 요거 관찰하다가 폭 잠에 떨어진다든지 그렇게 되는 거라. 대부분이 보면 대상에 얽매여 버립니다. 일반적으로는 명칭에 얽매이는 경우들, 그리고 일어나는 생각들로 인해서 그 생각에 푹 빠져버리는 경우들, 졸음에 빠지는 경우들 이런 경우들은 보면 보통 집중이 강할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노력의 힘을 배가시켜주려면 대상을 자주 바꿔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닿음 포인트를 늘려주며 대상을 더 많이 가져서 마음을 보다 활기있게 만들어줘야 만이 노력의 힘들이 커져나갑니다. 그래야 집중의 힘과 발란스가 맞아집니다.

단, 문제가 되는 것은 산란하게 될 때까지 하면 안된다는 거라.

집중하는 힘만 강하면 활력이 떨어져 나태와 게으름(kosajja)에 떨어질 것입니다. 경행수행을 더 많이 해줘야 합니다.

 

* 닿음 포인트 관찰. <앉음, 닿음>

‘앉음’ ‘닿음’을 관찰하는 데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호흡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이기 때문에 호흡의 일어남’ ‘사라짐을 대신해서 ‘앉음’ ‘닿음’을 알아차리는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또 다른 한 방법은 ‘일어남’ ‘사라짐’을 하고 있는데 ‘일어남’ ‘사라짐’ 다음에,

다시 일어남이 일어나기 전에 정지되어 있고 멈추는 간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앉음’이나 ‘닿음’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초심자이기 때문에 다섯 가지로 나누도록 하십시오.

‘일어남’, ‘사라짐’이 잘되면 좋은데 그게 잘 안될 때는 그것을 버려버리라.

그래서 ‘앉음’ ‘오른쪽 눈꺼풀 닿아있음’

‘앉음’ ‘왼쪽 눈꺼풀 닿아있음’

‘앉음’ ‘입술이 닿아있음’

‘앉음’ ‘손이 닿아있음’

‘앉음’ ‘엉덩이가 닿아있음’하고

다시 ‘앉음’ 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닿음’은 눈꺼풀이 서로 닿아있는 감각, 입술이 맞닿아 있는 감각, 양손이 맞닿아 있는 감각, 엉덩이가 바닥에 닿은 감각, 발목의 복숭아뼈가 바닥에 닿아있는 감각, 등을 하나씩 알아차림 합니다.

 

& 노력의 힘이 강하고 집중하는 힘이 약해지고 있을 때는 망상 피우는 것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 쫓아서 따라가면서 자기는 그걸 알아차리고 있다고 그럽니다. 망상, 생각이 많이 일어나면 이럴 때는 노력하는 힘들은 있는데 집중하는 힘들이 부족해서 그러는 거라.

그럴 경우에는 따라가다가도 멈춰버리고 대상을 단순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어떤 경우들이 일어나더라도, 생각이 자꾸 일어난다 하더라도 일단은 ‘아, 생각이 일어났음’하고 알아차리고 나서 그걸 완전하게 못 알아차렸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주대상인 호흡으로 돌아와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집중하는 힘들을 키워나갈 수가 있습니다.

노력하는 힘만 강하면 항상 들뜸((uddhacca)이 있습니다.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힘들이지 말고 일어나는 현상을 주의 깊게 알아차리면서 노력을 조금 줄입니다.

즉 한가지씩만 하겠다고 마음먹으십시오.

 

왜 경행을 합니까?

노력의 힘이 떨어졌을 경우, 또 집중하는 힘이 과해졌을 경우에 경행을 합니다. 수행이 무르익은 사람들은 세 시간 네 시간 좌선만 쭉 합니다. 좌선만 해도 충분히 경행의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하다가 또 좌선이 잘 안될 거 같으면 경행의 효과를 가져오기 위해서 대상을 자주 움직여줍니다.

그래서 ‘일어남’ ‘사라짐’ 하다가 ‘앉음’을 또 이어주고, 또 ‘일어남’ ‘사라짐’ ‘앉음’ 뿐아니라 ‘닿음’ 등 여러가지들을 이어주고 대상을 이렇게 여러 가지로 바꿔주면서 노력의 힘을 키워주고, 한 번씩 대상에 함몰되는 것들도 방지를 하면서 내가 수행을 조화있게 잘해나갑니다.

 

어떤 것이 경행의 효과를 잘 가져오게 해서 내가 경행을 하는데 다섯 가지 힘이 적당하게 균형을 맞춰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분명하게 판단을 해야 합니다.

 

* 좌선이나 경행할 때 명칭을 붙일 때의 문제점

 

처음부터 명칭을 붙이면 자연스럽게 거기에다 마음을 갖다 붙이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스님이 생각해낸 게 뭐냐면 처음에는 명칭을 붙이지 말아라!

먼저 움직임을 파악을 하고,

그 움직임을 구분할 정도가 되고,

명확하게 이거 하고 저거 하고를 구분해지는 상태가 되고 나서,

그러고 나서 실재하는 것인 그 성품들을 보게 되고,

보게 되는 것에서 변화되는 상태를 보면서 그때 ‘명칭’을 붙여라! 하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처음 호흡을 알아차릴 때 명칭을 붙이면서 알아차리다 보면 자칫 인위적이 될 수가 있습니다.

호흡이나 수행은 절대 자연스러워야 되지 인위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처음 수행할 때는 명칭조차도 붙이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 대상에다가 마음을 내려놓는다 하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관찰을 해나가면서 대상에 마음을 일치시켜나가줘야 됩니다. 그렇게 관찰을 해나가다 마음이 대상을 벗어난다고 생각이 들 때 그때부터는 자연스러운 호흡을 알기 때문에 ‘명칭’을 부여해줘도 됩니다.

 

마음을 관찰하는 것에는 되도록이면 스님이 명칭을 붙이지마라 하고 얘기를 했습니다.

느낌이나 몸에 대해서는 명칭을 붙이라 하면서, 마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부가 되기 전에는 명칭을 붙이지마라 한 이유가 있죠?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바뀝니다. 굉장히 자주 바뀌고 이동이 많은 대상입니다.

그런데 명칭을 붙일 거 같으면 어떻게 돼요?

실제적인 대상은 이미 요만큼 가있는데 명칭은 요기 붙이고 있는 경우들이 허다하게 일어난다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관찰할 때는, 처음에 할 때는 명칭을 되도록 붙이지마라 하는 거라. 아주 미세한 것이기 때문에 ‘관념적인 명칭’을 붙여서 마음을 보기에는 힘이 드는 부분이 많다 하는 겁니다.

 

* 오온이라고 하는 것은

수행자가 배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을 알아차릴 때,

배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몸의 현상입니다. 색온입니다.

일어나고 사라지고 할 동안에 느껴지는 좋고 싫고 하는 느낌들은 수온입니다.

그리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상온입니다.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을 알아차릴려고 노력하고 의도를 내는 것들은 행온입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명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은 식온입니다.

이렇게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이 다섯 가지가 오온(五蘊, Pañcakkhandha)입니다.

 

* 호흡 상카라

호흡도 변하고 느낌도 변한다는 사실을 탁 내가 알아차리는 거라. 아, 이것이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호흡이구나. 일분 전에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하고 일분 후에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은 이렇게 달라졌구나. 그것을 알아차리는 느낌도 일분 전과 일분 후의 느낌이 이렇게 달라졌구나 하고 분명하게 아는 거라. 그렇게 인식하는 걸 상카라라고 그럽니다. 그 상카라도 일분 전에 상카라하고 일분 후에 상카라하고 또 다르구나. 변화되고 있구나 하고 인식을 하게끔 됩니다. 그것에 마음을 자꾸 실을려고 하는 의도도 일분 전에 의도와 일분 후에 의도가 달라졌구나 하는 것을 알게끔 된다는 거라.

호흡도 변하고, 느낌도 변하고, 그러한 인식도 변하고, 그러한 생각도 변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아는 인식하는 것도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호흡에 사띠를 하게 되면 사대요소의 대상 뿐 아니라 오온 전체를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몸의 현상이다, 이것이 느낌의 현상이다, 이것이 생각의 현상이다, 이것이 의도의 현상이다, 이것이 인식의 현상이다 하는, 오온을 그 호흡자체에서 알아차린다는 겁니다. 오온뿐 아니라 사대요소에 대해서 알아차리게 되고,

사대요소를 오온으로써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렇게 호흡을 알아차리면 호흡이 딱 하나의 포인트에서 고요하고 시원한 느낌이 점점 더 강해집니다. 변화되고 있는데도!

이 코끝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주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이 코 전체로 퍼져나가고, 얼굴 전체로 퍼져나가고, 그리고 머리 전체로 퍼져나가고, 몸 전체로 퍼져나갑니다. 미세한 떨림까지도 경험합니다. 여러분들 수행 잘될 때 어떤 현상들이 있습니까? 아주 맑고 깨끗하죠. 그리고 어떨 때는 몸이 떨리기도 하고 그런 상태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몸 전체의 수축과 팽창하는 것들을 전체를 다 경험하게끔 됩니다.

 

사마타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위빳사나에서도 충분히 경험합니다.

그런데 사마타 수행에서 경험하는 것하고 위빳사나 수행에서 경험하는 거는 차이가 납니다. 사마타 수행에서는 오로지 그 대상자체를 명확하게 집중함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써 알아차리는 건데, 위빳사나 수행에서는 변화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현상들이라는 거라. 그런 차이가 납니다.

 

- 아짠 빤냐와로 스님의 법문 내용 中 -

 

♣ 모두가 고통에서 벗어나길... 2020년 11월 Dhammamāmaka _()()()_

  2023년 7월 23일 내용 추가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