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08~2010 일상수행법문

몸은 쇠약해지고 무너진다.(까-야 와양) (20100412)

담마마-마까 2021. 3. 14.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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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은 쇠약해지고 무너진다.(까-야 와양) (20100412)

 

오늘은 "까야 와양" 이라는 것을 가지고 얘기를 하겠습니다.

'까야(kāya)'가 뭡니까? '신체, 몸'이죠. '와야(vaya)', 와야? 일어남입니까? 사라짐이 아니고? '사라짐'이죠! "몸은 쇠약해지고 무너진다"는 그런 뜻입니다.

와야는 지혜 중에서 사라짐을 관찰하고 하는 지혜를 뭐라 그럽니까? '와야누빳사나냐나(vayanupassna ñāna') 그렇게 얘기하죠! 그리고 '와야락카나 위빳사나' 그렇게 하는 것도 있는데 '사라지는 특성들을 바르게 알아차리는 것들'이라는, 그렇게 됩니다.

 

오늘은 얘기하는 게 사라지는 것은 몸의 현상만 사라지는 게 아니고 마음의 현상들도 사라지는 겁니다. 오늘은 몸에 대한 것 '까야 와양(kāya vayaṁ)' 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얘기를 하겠습니다.

 

나이 드신 노보살님들은 다 아시죠? 내가 인제 늙고 병들었다는 거를 알 거라. 돌아가실 날 얼마 안 남은 것도 아시죠? 압니까? 그런데 돌아가시긴 싫죠? 가고 싶어요? (수행자 대답) 돌아가실 때 돌아가시는 자신이 있어야 자신 없으면 어떡해?

그래도 자신이 없는 분들은 마지막 순간에 잘 돌아가실려면 돌아가실 준비를 하라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큰스님들은 돌아가실 때 어떻게 합니까? 곡기를 끊죠? 돌아가시기 전에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이미 그전부터 몇 해 전부터 준비를 합니다. 몸에 일부러 활기를 불어넣는 것들은 되도록이면 안 잡숩니다. 죽을 때 고생스럽게 안 돌아가실려고 그렇게 준비들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마지막 돌아가실 때 음식을 잡숫고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는데 대부분의 스님들은 보면 며칠 전부터 곡기를 끊고 편안하게 돌아가시기도 합니다.

 

태국에 있는 제 은사스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점심공양을 하고, 점심공양을 아주 맛있게 하고, 그러고 나서 법문 다 하고 나서 앉은 자세에서 수행하자 하면서 돌아가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특별한 경우고. 그거는 마지막 곡기가 몸에 영향을 안 미친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건데, 대부분 스님들은 그렇게 미리 준비들을 합니다. 물론 급작스럽게 돌아가시는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은.

이렇게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죽을 때를 알면 준비를 해나갑니다. 대부분 보면 육체적인 것들을 가지고 준비를 해나갑니다. 그렇다고 해가지고 나이 드신 노보살님들에게 지금부터 곡기 끊고 죽을 준비하시오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얘기는 아니니까 곡해해서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준비를 하든 하지 않든 어쨌든 쇠약해지고 또 망가져가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거는 뭐 인간뿐아니라 모든 게 그렇습니다. 얼음덩어리를 놔두더라도 가만히 실온에 놔두면 서서히 녹아내립니다. 녹아내려서 나중에는 하나도 없게 무너져버립니다. 그게 물질적인 현상, 몸도 물질적인 현상인데, 물질적인 현상이 가지고 있는 특성입니다.

 

그걸 부처님이 뭐라고 했느냐면 '까야 와양(kāya vayaṁ)'이라고 그럽니다. '모든 형성된 것들은 어떤 것이든 변해가서 쇠약해지고 부서져버린다. 무너져버린다' 라고 하는 겁니다.

 

조금 전에도 얘기했지만 스님들도 그렇게 돌아가실 때 준비를 할 경우에는 이미 마음으로 아, 내가 죽을 때가 언제가 되겠구나 하고 알아차리기 때문에 마음으로 이미 준비들을 하고 또 육체적으로 준비를 해나갑니다.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마음으로 더 살려고 하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뭔가 더 섭취할려고 합니다. 더 집착하게끔 됩니다. 그게 일반적인 사람입니다. 그렇지만은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몸은 어떤 경우든지 변해가고 죽어가게 돼있고 무너지게 돼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 우리 몸이 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결국엔 무너져버리게 되는 것인가?

우리 몸은 단순합니다. 그냥 지수화풍이라고 하는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모여있을 경우에 우리는 이 몸이라는 이 물질을 구성하게 되는 거고, 여기 있는 책상도 그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여가지고 책상이라는 것을 구성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라고 하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여기 있는 책상이든지 아니면 여기 있는 물컵이든지 이런 것들도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여가지고 그렇게 부르는 것들뿐이라는 겁니다.

물컵도 여기 있는 물하고 흙하고 그다음에 불하고, 불로 구워지지 않으면 이 물컵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그 불이라는 거하고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여가지고 우리는 물컵이라고 얘기하는 것뿐이라는 겁니다.

 

우리 이 신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지·수·화·풍이라고 하는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것뿐이다 하는 겁니다. 그렇게 알아야 하는데 대부분 그렇게 알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수행처들에 가보면 해골을 갖다 놓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런 법당에다가, 법당 한쪽 옆에다가 해골을 갖다 놓습니다.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그 해골을 보고 "엄마야, 법당에 무슨 해골을 갖다놨는가" 하면서 그걸 안볼려고 합니다. 부리나케 집에 가버립니다. 집에 가서도 며칠간 그 해골이 떠오릅니다. 그래가지고 마음이 심란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법당에다가 그런 해골을 갖다 놓을까? 해골을 보면 해골을 가지고 남잔지 여잔지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거의 대부분 없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면. 그러니까 해골이라고 하는 뼈, 뼈 그거는 남자라는 생각도 안 들고 여자라는 생각도 안듭니다. 단지 뼈일 뿐입니다. 뼈일 뿐이라는 거라. 지·수·화·풍 중에 딱딱한 땅의 요소일 뿐이라는 거라.

 

그런데 여러분들은 여기 선원에 자동차를 타고 온 사람도 있고 또 전철 내려가지고 걸어서 온 사람도 있습니다. 뼈가 없으면 여러분들 여기 선원까지 올 수 있습니까? 뼈가 없으면 여기 못 옵니다. 뭐 차를 타고 왔든 지하철을 타고 왔든 어쨌든 일정 부분은 여러분들이 여기 걸어와야 됩니다. 또 차를 타고 올 때도 타고 올 때 지탱하는 것은 뼈로 인해가지고 지탱하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지탱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그런데도 여러분들 뼈를 가지고 있는 거는 뼈 주위로 해서 살이 붙고 힘줄이 붙고 가죽이 붙고 그런 것인데, 그런데 여러분들은 한 번도 뼈를 본 적도 없을 뿐아니라 뼈를 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거라. 그러니까 법당에 해골 있으면 그거 안 볼려고 한다는 거라. 멀리 피할려고 하는 거고. 돌아가신 분들 화장하고 나면 뭐가 남습니까? 뼈마디만 남습니다. 그거 볼려고 합니까?

 

인도 갔다 왔다 그랬지? 바라나시 가니까 뭐 있든가? 화장장 있지? 화장장 혹시 그거 봤나? 화장한 거? 거 뭐가 남아있디? 화장할 때? (수행자 대답)

그거 보고 어떤 느낌이 들어? (수행자 대답)

다른 사람보다는, 그거 안 볼려고 하는 생각이라든지 그거 보면 재수 없다는 것은 그런 거는 자기들이 만들어낸 생각일 뿐이지. 그런 것보다는 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맞는데, 그 화장장에 데려간 목적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라는 거라.

뼈는 뼈로써 알아차려야 된다는 것이지, 무상하다고 받아들여버리면 자칫 잘못하면 그걸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피할려고 하는 생각들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아, 나도 저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니까 그것으로 해서 신심을 일으켜서 아, 내가 저렇게 죽기 전에 하루 빨리 수행해서 도와 과에 이르러야지 하는 그런 마음을 일으키면 좋은데, 그걸 보고 아, 참 덧없는 거구나. 아무것도 없구나 하고 생각해 버릴 것 같으면 안되고, 무상하다는 걸 알아차리라는 의미에서 그 화장장에 데려가는 것보다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라 하는 것입니다.

 

스님도 가끔 인도 가면 가장 즐겨 찾는 곳이 그 바라나시 화장장입니다. 직접 앞에 가서 그 냄새도 맡고 또 타는 모습들을 그대로 지켜보기도 하고, (수행자 질문) 감기 걸렸겠지. 냄새가 납니다. 아주 고약한 냄새들이 납니다. 그러다가 가끔씩 다리 하나 툭 떨어지면 그거 개가 물어가는 모습도 보고 그렇게들 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잘 때도 이 뼈와 함께 자는 겁니다. 뼈에다가 옷을 입힌 거고, 그리고 그 음식을 먹는 거고 그렇게 해가지고 사는 거라. 그런데도 우리는 뼈와 함께 사는데도 뼈를 무서워한다는 거라. 그렇게 해선 안된다는 거라. 쉽게 말해서 무관심해질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그게 이 까야 와양 이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이 육체라고 하는 것은 언제든지 변하고 무너지게 돼있다 하는 사실을 부처님이 깨우쳐주는 부분입니다.

그대신에 자기 자신의 뼈를 그 지수화풍이라고 하는 사대요소를 볼려고 하는 것보다는 우리는 자꾸 밖으로 향합니다. 밖에 있는 사람 밖에 있는 나무 이것은 크다 작가 짧다 길다 이렇게 자꾸 본다는 거라. 다른 것들을 보면서 매우 바쁘게 알고는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자기 자신은 볼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라.

 

스님들이 출가하면 맨 처음 들려주는 게송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알죠?

께사(kesā) 로마(lomā) 나카(nakhā) 단따(dantā) 따쪼(taco), 전에 수계 받은 사람들 해봤죠? 이게 무슨 뜻이라요?

께사가 뭡니까? 머리털, 로마: 몸의 털, 나카: 손톱, 단따: 이빨, 따쪼 하면 피부죠. 께사: 머리카락, 머리카락을 알아차리십시오. 머리카락 못 알아차리는 사람 있습니까? 자기 머리카락 못 알아차리는 사람 있어요? 가끔씩 그럽니다. 수행 지도한다면서 그걸 가르쳐주느냐, 머리카락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느냐. 그런 뜻이 아니죠? 머리카락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는 것은 실재적인 것을 본다는 겁니다. 있는 그대로 보면, 실재적인 것을 보면 그 현상에 대해서 마음이 붙잡히지 않는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보라, 뼈를 보라, 이빨을 보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법당에다가 해골을 갖다 놓습니다. 해골이라는 머리뼈, 머리뼈를 있는 그대로 보라는 거라. 다른 생각 일으키지 말고 저것은 단지 뼈인 것뿐이다 하고 알아차리라는 거라. 거기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도 일으키지 말고 좋아하는 마음도 일으키지 말고. 그렇게 관찰을 해보면 어떻게 됩니까? 머리카락이 예쁩니까? 깨끗합니까? 그리고 머리카락이 항상 변함없이 그대로 고정되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양분을 주면 머리카락은 자라게 돼있고, 머리카락은 또 항상 냄새가 나게끔 돼있다는 거라. 변함없이 고정돼있고 깨끗한 것이 아니라는 거라. 그것을 보라는 거라. 그런데도 우리는 머리카락에 대해서 집착한다는 거라.

그러니까 머리카락에 냄새가 나면 어떻게 해요? 삼푸로 머리 감는다는 거라. 머리카락을 보고 더럽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깨끗하다는 생각을 일으킨다는 거라.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거라. 머리를 아무리 삼푸로 감아도 일시적으로는 그 냄새를 삼푸냄새에 인해서 둔화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냄새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거라. 냄새가 없어진다고 할 거 같으면 그렇게 깨끗하게 삼푸로 감아놓은 사람을 어디 진공 상태에다가 놔둬 봐. 그럼 냄새가 안 나야 될 거 아니라. 그런데 하루 지나면 냄새가 나거든.

 

그래서 부처님은 '께사, 로마, 나카' 이렇게 얘기하면서 그것을 수행의 대상으로 하라. 변하는 것이라서 불안정한 것이다. 그렇게 변하는 것이라서 실체가 없는 것이고, 그 실체가 없는 것에 나의 머리카락 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하는 사실을 빨리 알아차려라 하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가끔은 우리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그 신체에 마음이 사로잡힙니다. 그 신체에 의지할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조금 더 건강해지고 싶고 조금 더 안 늙고 싶어 할려고 합니다. 그래서 각각 미용을 하고, 각각의 방법을 동원해서 더 오래 살려고 하고 그렇게 한다는 거라. 자기의 신체를 의지한다는 거라.

 

스님들도 가끔씩 그런 얘기들을 합니다. 나중에 늘고 병들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생각 때문에 절을 지을려고 막 합니다. 자기 신체를 의지하겠다는 거라. 부처님은 신체를 의지하지 마라 그랬는데. 몸이라는 것은 무상한 것이고 변해가는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고 부정한 것이다 하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라고 했는데 거꾸로 한다는 거라. 스님들만 그럽니까? 여러분들은 안 그러느냐는 거라.

진정하게 의지해야 하는 것은 자기의 신체가 아니라는 거라. 왜? 까야 와양이니까! 까야-신체라고 하는 것은 변하는 것이고 무너지는 것들이라는 거라. 무너지고 변하는 것을 어떻게 의지할 수 있느냐는 거라. 그래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이 신체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거라. 마음이 진정한 의지가 되는 것들입니다.

 

여기에 있는 선원, 여기 선원에는 또 여러분들이 와서 수행하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만 살고 있습니까? 저기 물고기도 살고 있습니다. 여름되면 모기들도 와서 살게 되고 여러 가지들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 여러 가지들은 단지 일시적인 거주뿐입니다. 저 물고기도 자기 인연이 다 되면 다른 데로 떠나갈 것이고, 모기들도 자기 인연이 다되면 또 다른 데로 떠나갈 것이고,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라. 인연이 다되면 떠나간다는 거라.

이런 거주처는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거라. 일시적인 거주처라는 거라. 평생 여기 선원에서 있을 수 있습니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 조건들 때문에 여기 선원을 나가야 되는 경우도 있고, 뭘 의지해야 되겠어요? 이 선원을 의지해야 되겠어요? 여러분들 여기 선원을 의지하지 않죠? 뭘 의지합니까?

 

왜 여기 와서 스님 법문을 듣고 수행을 합니까? 부처님 법을 의지할려고 하는 거고, 또 내 자신이 스스로 노력해가지고 수행할려고 하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려고 여기 오는 것들이라. 이 선원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는 거라.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자기의 마음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몸을 의지한다는 거라.

그래서 중요한 것들을 자꾸 잊고 중요하지 않는 것에다 시간을 다 보낸다는 거라. 몸을 가꾸는데, 또 조금 더 건강해지는데 자꾸 시간을 보낸다는 거라.

그것만 그럽니까? 마음을 의지하지 않으니까 어떻게 돼요? 청소기 돌릴 때 청소기에 의지합니다. 접시 씻을 때는 접시에 의지하는 거라. 그런데 청소기나 접시가 의지가 됩니까? 의지가 안됩니다. 접시는 깨지게 돼있고, 청소기도 부서지고 없어지게 돼있는 것들이라는 거라.

 

그럼 어디에 의지해야 됩니까? 청소할 때는 청소할 때의 마음,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를 의지해야 된다는 거라. 그릇 씻을 때는 그릇 씻을 때 일으키는 마음, 씻는 그 마음 그걸 알아차리면서 의지해야 된다는 거라. 그런데 그걸 자꾸 잊어먹는다는 거라. 청소할 때는 마음을 알아차리지 않고 청소한다는 거라. 그릇도 그냥 그릇을 씻는다는 거라.

 

그래서 부처님이 그럽니다. '앗따히 앗따노 나토(Attā hi attano nātho)'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하라' 자기 자신을 의지하라는 거라.

다른 것들 이 선원을 의지하고 또 그릇을 의지하고, 또 이 몸을 의지할 수 있는 것도 자기 자신 자기의 마음을 의지하고 있는 사람만이 그것들을 의지할 수가 있다는 거라.

다른 것을 의지하기 전에 우선 자기 자신이 의지처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라. 자기 자신이 자기의 마음을 기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라. 그래서 마음을 훌륭하게 의지처로 삼아서 마음을 길러놔 놓으면 증장시켜놔 놓으면 그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들, 몸에서 설혹 괴로움이 있든 즐거움이 있든 아니면 늙어가든 병이 들든 그리하더라도 그리 크게 영향을 안 받는다는 거라.

그런데 자기마음이 의지처가 안되면 밖에 것들에, 그리고 의지하지 않아야 될 것들에 의지를 해버린다는 거라. 자기 몸을 의지한다는 거라. 몸이 병들면 금방 죽을 거 같고 머리카락에 냄새가 나면 금방이라도 안 씻으면 큰일 날 것처럼 돼버린다는 거라.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땅을 샀어. 땅을 사가지고 스님을 부르더라고. 스님, 이게 밭인데 내가 사가지고 형질변경을 해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해놨다는 거라. 어디 아는 사람을 동원해가지고 형질변경을 했겠지. 밭을 샀으니까 얼마나 싸게 샀어. 그러니까 싸게 사서 집을 짓도록 만들어 놨으니까 값어치가 많이 올랐다는 거라. 그렇게 해가지고 넓게 땅을 샀어. 그래서 와서 스님 집을 어느 쪽으로 지어야 될지 한번 봐주십시오. 나는 그런 거 볼 줄 모른다. 그래도 스님이 와서 좀 봐주십시오. 어쩔 수 없이 거기를 갔어. 가보니까 집을 짓기에 부적당한 장소라, 스님이 판단하기에.

 

내가 뭐 무슨 맥을 안다든지 그래서 판단되는 게 아니고, 전원생활을 할려고 할 거 같으면 적어도 한적하고 좀 조용해야 되고, 그리고 우선 물을 원할하게 공급할 수가 있어야 되는 거고 그래야 되는데, 그 주변은 전부 밤나무라. 바로 앞에는 축사가 150마리가 되는 축사가 있어. 그래서 내가 저 냄새를 어떻게 견딜 것이냐? 그리고 여기는 다른 사람들과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물을 공급하기 힘들다. 물을 어떻게 공급할 것이냐? 그래서 여기는 집을 지을 곳이 안된다.

그 위에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와가지고 밭에 물을 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걸 식수로 쓰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거라. 그럴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한 거고 그래서 집을 못 짓는다.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나는 그래도 이걸 사가지고 형질변경까지 했으니까 어쨌든 집을 짓도록 방편을 마련해달라는 거라. 집을 짓도록. 스님이 무슨 용빼는 재주 있어요? 어떻게 집을 짓도록 만들어 줄 거라? 나는 그런 거 못한다. 그러니까 대번에 성질 바락내면서 “아, 스님이면 그거 알 줄 알았더만 뭐 괜히 스님 불렀다”면서, 괜히 나를 불러놔 놓고.

 

사람들은 그렇다는 거라. 물건을 얻는 즐거움만 생각하지 얻는 즐거움과 함께 따라오는 괴로움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라.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송아지 백 마리 줄게 할 것 같으면 다들 주라고 그럽니다. 다들 가져갈라고 그럽니다. 얻는 즐거움만 생각한다는 거라. 얻고 나서 따라오는 괴로움은 생각 안 한다는 거라. 백 마리 가져가서 그거 어떻게 할 건데? 어디서 키울 거고 어떻게 할 건데? 거기서 가져오는 괴로움은 얻는 즐거움 못지않게 많다는 거라. 크다는 거라. 그런데 그거 생각 안 한다는 거라. 무조건 얻는 거만 좋아한다는 거라.

 

만약에 그분이 지혜가 있었을 거 같으면 그걸 생각해야 되는 거라. 어떤 것이든 괴로움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된다는 거라.

싸게 사가지고 그게 형질 변경해서 큰돈이 된다는 즐거움을 가져오는 것은 있지만 그 즐거움으로 인해서 집을 지을려고 하니까 집이 지어지지 않는데 거기서 오는 괴로움들이 얼마나 큰 괴로움들이 있겠어? 그 괴로움을 모른다는 거라. 그냥 얻는 즐거움만 아는 거지.

그러니까 지혜가 있으면 어떻게 해요? 주변 것들 잘 살펴보고 얻는 즐거움뿐 아니라 또 얻어지면 따라오는 괴로움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땅을 안 산다는 거라. 그것이 아무리 돈이 되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당장 집을 지을 수 없는 상황인데, 그걸 왜 사가지고 형질 변경을 하느냐는 거라. 지혜가 없으니까 그런 거라. 즐거움이 있으면 괴로움이 따라오게 돼있는 거고, 늙고 병들었으면 죽음을 맞게 돼있는 것이고 그러한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됩니다.

 

자! 나이 드신 노보살님들은 인제 돌아가실 때 얼마 안 남았어요. 돌아가실 때 뭐 가지고 돌아가실 생각입니까? 뭘 가지고 가실 거라? 아무것도 못 가져가요? 아무것도 못 가져가면 어떻게 할 건데요? (수행자 대답)

마음을 어떻게 가져가요? 태국속담에 그런 게 있습니다. 태국말로 하면 그걸 베일이라고 그러는데 우리말로 하면 과일인데 배하고 비슷합니다. 배밭에 앉아가지고, 배가 나무그늘이 굉장히 좋습니다. 배밭에 앉아가지고 열심히 배를 먹다보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밤이 왔다. 배나무 관리하고 또 그 배 먹는 즐거움에 빠져가지고 살다보니까 번쩍 정신을 차려보니까 밤이라는 거라.

 

우리의 생활들이 그렇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금방 밤이 오게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만약에 십 원 하고 백 원 하고 놔두고, 둘 중에 아무거나 가져가시오 하면 다 백 원 가져갑니다. 십 원 안 가져갑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십 원인데, 그 십 원만 가져가는 사람은 없다는 거라. 백 원 가져간다는 거라. 가져가면 당연히 나중에 두고두고 다른데 쓰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는 거라. 그런데 그것으로 인해서 가져오는 괴로움들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라.

만약에 지금 십 원, 백 원이라 그랬지만 그게 큰돈일 거 같으면 어떻게 돼요? 그냥 십 원 가져갔으면 그걸 그냥 써버렸으면 문제가 없는데, 백 원을 가져오니까 나머지 구십 원은 어떻게 할 거라? 보관하면 도둑이 들 염려도 있는 거고 그것으로 인해서 가족 간에 서로 차지할라고 분쟁도 있는 것이고, 여러 가지들이 있는데 그걸 생각 안 한다는 거라.

 

장래에 일어날 수 있는 괴로움 그런 것들을 우리는 예견할 수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단지 괴로움이 생겼을 때 ‘아, 그것이 아니었구나’ 하고 그때사 깨닫는다는 거라.

병이 들기 전에는 그것이 괴로운 줄 모른다는 거라. 늙기 전에는 나도 늙는다는 걸 모른다는 거라. 죽기 전에도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거라. 그러니까 그걸 자꾸 피할려고 하는 거라. 병 안들려고 노력하는 거고, 안 늙을려고 노력하는 거고, 안 죽을려고 노력하는 거고. 그런데 그렇게 됩니까? 즐거움을 가져오면 괴로움이 따라오게 돼있듯이 태어났으면 병이 들게 돼있고, 늙게 돼있고, 죽게 돼있다는 거라.

 

동남아 사람들은 지금은 치약이라는 것이 있어가지고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옛날에는 이빨을 뭐로 닦았는지 아세요? 숯으로 닦았어요. 숯으로. 왜 숯으로 닦았는지 알아요? 혹시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 보면 이빨 굉장히 하얗죠? 숯으로 닦으면 이가 하얘집니다. 그대신에 숯으로 안 닦고 그냥 물로 가지고 행궈내는 사람들은 이가 누렇습니다. 그런데 이가 누래도 그런 사람들은 이가 오래도록 있어. 숯으로 이를 닦는 사람들은 금방 이가 해져버립니다. 금방 망가져버린다는 거라.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대부분 사람들은 숯으로 이를 닦는 거라. 이가 썩고 오래도록 쓰지 못하고 금방 빠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무 밑에서 배 관리하고 배 먹다 보면 금방 밤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거 그냥 먹고 있다는 거라. 내가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걸 그냥 그대로 하고 있다는 거라.

 

이렇게 괴로움이라는 것은 밖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늙는 것도 내가 늙는 거고 병드는 것도 내가 병드는 거고 죽는 것도 내가 죽는 것이지 밖에 것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아니라는 거라. 늙으면서 오는 괴로움 병들면서 오는 괴로움 이런 괴로움들은 다른데 생기는 것이 아니고 내 자신에게서 생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체에서 생긴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그 신체를 의지해가 되겠어요? 그 괴로움을 가져오는 것들을 왜 의지할려고 하느냐는 거라.

 

마음을 의지하라는 거라. 마음을! 이게 까야 와양 이라고 그럽니다.

이 신체라고 하는 것은 언제라도 부서지게 돼있다는 사실을 빨리 알아라는 거라. 그렇게 하지 않을려고 할 거 같으면 우리는 집착하는 것으로부터 빨리 벗어나야 된다는 거라.

집착하지 않으면 십 원 놔두고 백 원 놔두면, 내가 필요한 게 십 원이면 십 원만 가져간다는 거라. 마음이 의지처가 돼있을 경우에는 그게 가능합니다. 그런데 물질적인 것, 이 몸이라는 물질 아니면 다른 물질에 의지처를 구할 것 같으면 백 원을 가져간다는 거라. 집을 지어서 내가 편안하고 안락한 것이 목적일 것 같으면 그런 곳을 구한다는 거라. 그런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는 거라. 괴로움을 가져오게 된다는 거라.

 

몸은 항상 부서지게 돼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됩니다. 그것을 의지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 내가 설혹 늙고 병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집착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건 어쩔 수 없다는 거라. 태어났으면 신체는 물질적인 현상은 반드시 무너지고 부서지게 돼있다는 거라.

그걸 의지하지 말고, 그걸 마음에 두지 말고 오히려 나는 마음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 마음을 더 증장시키는데 힘을 쏟아라는 거라.

그래서 내 몸을 관찰할 때 있는 그대로 관찰하라. 머리카락이면 아, 이 머리카락은 변하는 것이고, 항상함이 없고, 부정한 것이고, 더러운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러면 마음이 스스로 의지처가 됩니다. 마음이 의지처가 되면 물질적인 현상들도 의지처를 만들 수가 있게 됩니다. 마음이 건강해지면 당연히 몸도 건강해진다는 거라.

 

마찬가지로 어떤 것이든 물질적인 것을 의지처로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 밥알이라는 물질적인 것, 이런 것들을 의지를 하지 말아라는 거라. 밥을 먹을 때 뭘 해야 됩니까? 마음이 의지처가 돼야 됩니다. 마음이 뭘 하고 있는지 알아차려라는 거라. 그걸 의지처로 하라는 거라.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