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심소(쩨따시카), 수행용어

빠못자(pāmojja, 환희심) (20180915)

담마마-마까 2021. 3. 1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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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못자(pāmojja, 환희심) (20180915)

 

보통 빠못자(pāmojja)를 환희심, 환희라는 그런 뜻으로 쓰여집니다.

쉽게 말하면 빠목카라고 해가지고 마음이 점차적으로 향상됨으로 인해가지고 일어나는 그런 기쁨들을 얘기합니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경전에도 보면 왁깔리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부처님을 생각하기만 하면 몸에서 이 빠못자가, 마음에서 빠못자가 확 일어나는 거라. 기쁨이 확 일어나는 거라. 그런데 부처님이 없을 때는 그런 환희심이 확 줄어들어서 오히려 실망감으로 바뀌어버리고, 그런 것들은 빠못자라고 얘기를 안 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감각적인 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들은 빠못자의 영역에는 속하지 못한다는 거라. 맛있는 거 먹는다, 아니면 어떤 일에 대해서 재미가 있어가지고 기쁨이 확 일어나는 것들, 이런 것들은 빠못자의 영역에 속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적인 작용을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수행에서 보통 삐띠(pīti)라고 하는 것들은 많이 들어봐서 알 겁니다.

삐띠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선제조건이 이 빠못자(pāmojja)가 일어나야 됩니다.

환희심이 일어나가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몸이 평안해지고 또 마음이 좀 더 행복해지는 상태가 되고 나야, 그다음에 대상에 대해서 완전하게 집중하는 상태가 되고, 그 집중으로 인해가지고 삐띠(pīti)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 과정들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이 빠못자(pāmojja)를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가장 일으키기 쉬운 게 뭐냐 하면 오늘 같은 날은 팔계를 지킵니다.

팔계를 지키면 하루가 지나고 나서 ‘아! 내가 계를 잘 지켰나?’ 하고 돌아봤을 때 ‘아! 내가 어김없이 계를 잘지켰다’ 하면 그때 일어나지는 것이 이 빠못자입니다. 환희심! ‘아! 내가 참 잘했네. 잘 지키고 잘 살았네’ 하는 마음에 일어나는 기쁨입니다.

 

또는 수행에서 대상에 대해서 열심히 알아차리고 할 때,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현상을 분명하게 알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현상이 정신적인 현상과 물질적인 현상으로써 분명히 구분하게 되게 되는 거고, 그래서 원인·결과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게 될 때, '아! 이것으로 인해가지고 이것이 생긴다' 물질적인 호흡으로 인해서 그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이 일어나고 그것이 분리되는 걸 분명하게 알고, 그렇게 하다 보면 대상이 점점 더 변해가는 것들이 보입니다.

그래서 무상한 성품들이 보이게 되고, 또 어떨 때는 불만족스럽게 보이게도 되고, 어떨 때는 실체가 없다는 사실로써 보이게 되고, 그러한 사실을 보게 될 때 이 빠못자가 일어나지게 됩니다. 그래서 삼마사나냐나(sammasanañāṇa)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렇게 무상 고 무아의 성품을 보게 될 때 거기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 보여지게 되면 그때 삐띠들은 일어나게 됩니다.

무상한 성품을 보기만 하더라도 빠못자는 일어나게 됩니다.

 

빠못자를 일으키는 것은 참 많이 있습니다. 그 방법들이 뭐가 있는지 한번 볼게요.

수행에 장애들이 많이 일어나죠. 그걸 다섯 가지 장애라고 그럽니다.

감각적인 욕망부터 해가지고 의심까지 쭉 일어나게 됩니다. 어떨 때는 수행을 잘하면서 그런 장애없이 잘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빠못자는 일어납니다.

다섯 가지 장애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가 됐을 때 대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차리면 마음에서는 환희심이 일어나게 됩니다. 만족감 같은 희열감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장애를 제거를 할 수 있으면 제거를 하고, 일으키지 않으려면 일으키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는 뭐가 있느냐면 이 왁깔리 같은 경우들과 마찬가지로

부처님에 대해서 생각만 하더라도 환희심이 확 일어나고, 부처님 가르침을 떠올리기만 하더라도 환희심이 일어나고, 상가의 덕에 대해서 우리가 상가의 덕으로 인해서 이렇게 바른 불교를 알게 됐다는 생각만 일으키더라도 환희심이 일어나고, 또는 법따라 살아가니까 아! 법이 나를 보호해주네. 계율을 잘 지키니까 크게 몸과 말에서 어긋남이 없이 살아가지네. 그러니까 법과 율에 따라서 살아가지는 것으로 인해가지고도 그것을 되새김으로 인해가지고 환희심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게 가장 대표적인 게,

특히 스님들 같은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불교의 단어하고 부처님이 설한 원래의 의미하고는 참 틀리는 것이 많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될 때 이 빠못자가 일어납니다.

만약에 고행이다. 고행은 무조건 괴롭게 수행하는 것들을 얘기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고행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구나. 또는 출가한 스님들을 그냥 비구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비구의 의미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구나. 그런 사실을 탁 알게 됐을 때 빠못자는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단어 하나 하나도 부처님의 얘기한 근본 뜻을 분명하게 알게 될 때 빠못자들은 일어나게 됩니다.

 

또 스님들이 많이 일으키는 것 중에 하나가 경전을 외우는 때입니다.

"이띠삐소 바가와 아라항 삼마삼붓도" 하면서 이렇게 쭉 외울 때, 그 외우는 것으로 인해가지고 그 단어의 의미들이 확 들어올 때 그 암송으로 인해가지고도 빠못자가 확 일어나집니다. 그래서 암송도 바르게 발음을 하고 바르게 의미를 알고, 마음에 자애의 마음을 지니고, 그리고 이 가르침을 그대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어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암송을 하게 되면 빠못자는 틀림없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또 많이 일으키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수행하다 보면 니밋따들이 일어나집니다.

그런 기쁨의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몸이 막 기뻐가지고 들뜨기도 하고 세포가 툭툭툭 깨지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 초기의 니밋따들이 일어날 때 보면 틀림없이 빠못자가 일어나게 됩니다. 환희심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또 가장 좋은 것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게 될 때 빠못자는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스님이 여러분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눈의 감각기관을 통해가지고 여러분들을 보게 됩니다. 눈의 감각기관을 내가 잘 알아차리면서 사띠하면서 단속을 탁 하면 눈으로 인해서 알아차리는 형색들이 어떤 형색이 되든지 간에 그것에 내가 현혹되지를 않습니다. 잘 생기고 못생기고 좋고 싫고 하는 그런데 물들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그냥 알아차립니다. 흰색이면 흰색이구나, 보여지면 보여진다고 분명히 알아차립니다. 눈뿐 아니라 코로 냄새 맡는 것, 입으로 맛보는 것, 이런 여러 가지들에 대해서도 그 감각기관들 여섯 가지 감각기관들을 잘 단속만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빠못자가 일어납니다.

 

또는 본인의 지금 마음에 지금 어떤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립니다. 탐심이 있으면 ‘내가 탐심이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탐심이 싹 사라집니다. 그러면 그 사라지는 것으로 인해가지고 ‘아! 인제는 탐심이 없’네 하는 마음이 들면 빠못자가 일어납니다. ‘어! 성냄이 사라졌네’ 하고 알면 빠못자가 일어납니다.

지금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그것들이 사라지게 됐을 때 빠못자는 일어나게 됩니다.

 

수행으로 마음을 향해서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때, 그래서 내가 지금 수행을 하는데 편안한 상태가 됐을 때,

호흡을 자연스럽게 하지 않아가지고 상기가 된다든지 아니면 마음이 밖으로 향한다든지 아니면 나태하고 게으름 부린다든지 이런 거 없이, 그냥 대상을 있는 그대로 호흡이면 호흡, 아니면 새롭게 일어나는 대상이 있으면 새롭게 일어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냥 알아차립니다. 설혹 거기에서 무상한 성품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대상을 있는 그대로만 알아차린다고 하더라도 빠못자는 일어난다는 거라. 그래서 방일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빠못자는 일어나게 됩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계를 잘 지킴으로 인해가지고 ‘아! 그래도 내가 훌륭하게 잘 살았다’는 마음이 들면 아! 이것으로 인해가지고 적어도 내가 나쁜 데는 빠지지 않겠다 하는 사실을 알게 되면 빠못자는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빠못자를 일으키는 것들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자꾸 수행에서 그런 빠못자를 일으킬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가장 좋은 것이 뭐냐면 스님이 항상 강조하는게 수행을 하면서 느낌들을 자꾸 관찰하라 하고 얘기합니다. 특히 수행자가 신경써야 되는 것은 즐거운 느낌이나 아니면 괴로운 느낌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됩니다.

빠못자를 일으키기 쉬운 것은 즐거운 느낌이 일어났을 때입니다. 즐거운 느낌들을 분명하게 관찰하면 빠못자를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대상을 처음에는 그냥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들을 분명히 관찰하면서 그 움직임을 관찰하고, 그래서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할 때‘ 아! 긴장감도 있구나’ 또 배가 불러올 때 불러오는 것을 알고 꺼지면 꺼지는 것을 알고,

그렇게 시작을 하다가 마음이 점차 대상에 착 달라붙게 되면 불러올 때의 각각의 느낌들이 있습니다.

따뜻한 느낌들도 있고, 또 어떨 때는 축축한 느낌들도 있을 수 있고, 아니면 톡 쏘는 느낌들도 있을 수 있고, 그래서 각각의 사대요소들이 드러나지는 것들이 보여집니다.

그때는 배가 불러오는 것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고 실재하는 그 느낌들 감각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보면서 그것들이 일어나는 것들이 보이면 처음에는 사라지는 것이 보이지 않는데, 조금 지나다 보면 그것이 일어났으면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 보여집니다. '아! 느낌들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거라. 그 느낌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지고 점점 더 빨라지게 되고, 그러면은 마음속에서 빠못자는 확 일어나게 됩니다.

수행대상에서 자연스럽게 나에게 이익되는 것들이지만 그 이익되는 것들로 인해가지고 빠못자들은 충분히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즐거운 느낌을 관찰할 때 가장 먼저 일으켜야 되는 것이 이런 빠못자들입니다. 빠못자들이 일어났을 때 그것들로 인해서 마음이 행복해지고 몸도 편안해지는지를 봐야 되는 거고, 몸도 편안해지고 마음도 행복해지면 그다음에는 반드시 일어나지는 것이 삐띠(pīti)가 일어나지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에서 이 환희심을 일으키는 대상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빠못자를 일으키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계율을 지키는 것.

자·비·희·사 사무량심을 실천하는 것.

그다음에 붓다눗사띠 해서 부처님에 대해서 끊임없이 수념하는 것, 끊임없이 알아차리는 것.

그다음에 법에 대해서 아! 이것이 무상한 것이고, 이것은 불만족스러운 것이고, 나라고 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것.

이런 것들이 대표적으로 빠못자를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상들입니다.

 

그외에 감각적인 것으로 빠지는 것들은 빠못자 하고는 관계없는 것이다 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특히 오해하기 쉬운 것이 내가 집중을 잘하면서 집중하는 것으로 인해서 그 대상을 좋아하게 됩니다. 새로운 사실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관념화시켜버리고, 내가 마음이 좋아하는 것들이 일어남으로 인해서 기쁨이 일어나집니다. 그것을 본인은 빠못자로써 오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다시 한 번 돌아봐야 됩니다. '아! 내가 이것으로 인해가지고 마음이 행복해지고 몸이 고요해지고 있는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가짜라는 거라. 감각적인 욕망들로 인해서 일어난 것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빨리 버려버리도록 하고.

 

또 집중함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들이 남들보다 더 탁월한 능력이 있을 때입니다. 특정한 부분에 대해서 잘하는 경우들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다시 한번 돌아봐야 됩니다. 이것이 과연 나에게 이익이 있는 건지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 있는 건지를 봐야 됩니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로 버려버려야 되는 것이다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수행에서 빨리 마음이 바른 방향으로 향상되는 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빠못자를 일으킬 수 있을 때 여러분들은 수행에서 본궤도에 접어들 수 있게끔 된다 하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간단하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문답]

Q. 수행자 질문 : 스님! 그런 빠못자가 수행에서 좌선을 하고 있을 때 너무 자주 일어나도 수행에 지장이 되는가...

 

A. 스님 대답 :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빠못자는 몇번 일어났다가 몸과 마음이 평안해지고 고요해지고 나면 삐띠(pīti) 쪽으로 바로 넘어가지지 빠못자에서 머무는 경우는 거의 잘 없습니다. 그래서 자주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갈애에 휩싸여버렸다는 거라. 일어난 것에 대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마음이 탁 있어서 집착하는 것들이라.

그래서 빠못자의 특성은 뭐냐하면 바르게 대상을 알아차리는 상태가 됐을 때, 그리고 갈애라고 하는 것이 없을 때, 또 나라고 하는 아만심이 없는 상태, 이 세 가지가 갖춰졌을 때 빠못자는 성립이 됩니다. 이게 안 될 때는 빠못자가 아니고 갈애에 휩싸여버리는 상태가 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