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1~2012 일상수행법문

해탈에 이르는 3가지 순서(조건) (20110222)

담마마-마까 2021. 3. 27. 09:24

https://youtu.be/PSjH3btytt4

* 해탈에 이르는 3가지 순서(조건) (20110222)

 

··· 빵을 만들어보라 할 것 같으면 아마 만드는 사람에 따라서 각각 다른 맛들이 날 겁니다. 그렇죠? 그런데 불교에서는 다른 길이 없죠? 하나의 방법밖에 없고 그 방법에 의해서 이르는 것도 해탈이라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게 사회적인 것과 불교와의 차이점입니다.

 

오늘 이시간에는 해탈에 이르는 순서에 대한 것을 간추려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법을 들을 때는 기본적인 조건이 세 가지가 있죠! 뭡니까?

첫 번째는, 소리를 듣는 것은 귀로 듣기 때문에 귀로 들을 것, 귀만으로 들을 것. 보지도 말고 냄새맡지도 말고 모든 것들은 정지하고 귀로만 듣도록 해야 된다 하는 겁니다. 그게 첫 번째 조건입니다.

 

두 번째 해야 되는 것은, 귀로 소리가 들릴 때 온 마음을 귀에다가 기울이는 것이 두 번째 조건입니다.

 

그렇게 해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들리는 것을 여러분들이 따라가야 되는 것이 아니고 그대로 머무르고 있어야 돼죠! 그리해야 만이 귀를 통해서 들어오는 소리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끊임없이 변화되는 것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소리를 따라가버리면 거기에 마음이 새겨버립니다. 그러면 새길 동안에는 소리가 들어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거라.

그게 법을 듣는 방법이 세 가지입니다.

 

마찬가지로 해탈에 이르는 길의 그 순서도 통상적으로 세 가지로 얘기를 합니다.

 

첫 번째가, 마음에 맑고 깨끗한 사고, 맑고 깨끗한 감정들을 만들어라.

악한 사고라든지 악한 행동이라든지 악한 행위들을 만들지 말고, 선한 것 맑고 깨끗한 마음들을 만들어라 하는 것이 첫 번째 조건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가지고 나쁜 일 하는 것보다 좋은 일 하는 것이 좋죠? 좋은 말 하는 것이 좋고 좋은 생각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들 일상생활에서도 꼭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해탈에 이르는 첫 번째 순서는 마음에서 항상 맑고 깨끗한 선한 마음들을 일으키도록 자꾸 해야 된다는 겁니다.

 

두 번째가 뭐냐 하면, 망상을 멈춰야 된다. 생각하는 것.

여기도 평상시 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생각하기 바빠가지고 누가 옆에 와도 모릅니다. 지금 자기는 또 생각하면서 걷고 있어. 뭐 어떻게 걷는지도 모르고.

망상, 생각하는 것 자체를 멈춰라. 멈추고 지금 현재 하고 있는 것들, 현실적인 문제들, 현실적인 대상들에 대해서 마음을 일치시키도록 하라.

생각이 일어나면 그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생각에 사고만 해야지, 망상을 해서는 안됩니다. 조금 있으면 사고와 망상의 차이점을 얘기하겠습니다.

어쨌든 생각하는 것을 멈춰버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에다가 마음을 두도록 하라 하는 것이 두 번째입니다. 두 번째가 되고 나면,

 

세 번째로 해야 되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 노력하라.

하는 겁니다. 즉, '나'라고 하는 환상, '나의 영혼'이라는 착각들을 버리도록 하라 하는 것입니다.

 

어제는 진주에 가서 법문을 했는데, 어제는 진주 산업대 총장이 진주시장을 데리고 왔더라고. 진주시장이 물어보는게 “영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물어보더라고. 그거 없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나'라고 하는 환상이고 그런 것들을 깨어버렸을 것 같으면 '영혼이 실재하는 것이다'고 착각은 하지 않는다고 아무리 얘기해줘도 못 알아들어. 한 삼십분을 얘기하다가 도저히 안돼겠어. 아이고, 인연 따라서 영혼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그것은 그분의 일이다 싶어가지고 내버려뒀는데,

 

견해를 바로 세우면 반드시 없아지는 것이 '나의 영혼' '나의 것'이라는 그런 착각들입니다. 바른 견해(정견)들을 자꾸 세우도록 해야되는데 그래서 세 번째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자꾸 관찰하도록 해야 됩니다. 있는 그대로 관찰하지 않고 '나'라고 하는 환상에 싸여서 관찰하니까 무언가 있는 것처럼 자꾸 착각한다는 거라. 그래서 세 번째는 있는 그대로 관찰하도록 하라는 겁니다.

 

이게 해탈에 이르는 순서입니다.

 

이 순서는 여러분들이 통상적으로 얘기하는 해탈에 이르는 여덟 가지 방법 팔정도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팔정도의 방법이 바로 이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스님이 그걸 간추려 놓은 것뿐입니다.

 

첫 번째가, 마음에 선한 사고, 맑고 깨끗한 마음을 유지하도록 하라 하는 것들에 대한 것을 먼저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른 생각 할 거 같으면 바른 마음 가지겠어, 나쁜 마음 가지겠어? 바른 마음 가지겠지! 생각만 똑바로 할 거 같으면, 바르게 사유만 할 거 같으면 바른 마음 가지는 건 틀림없습니다. 정사유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수행자는 대상에 대해서 바르게 겨냥을 할 거 같으면 거기에는 틀림없이 선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대상에 대해서 겨냥하면 알아차림이 일어나고, 사마디가 일어나고, 노력의 힘들이 일어나고, 바른 것들이 일어납니다. 대상을 바르게 겨냥하지 못하니까 악한 마음들이 일어나는 거고, 악한 행위들을 하는 거고.

 

마음이 맑고 깨끗하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사유라는 겁니다. 바른 사고 바른 생각들을 자꾸 가지도록 해야 됩니다. 대상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대상을 알아차리는 훈련들을 자꾸 해야 됩니다.

대상은 끊임없이 여러분들에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대상을 자꾸 놓쳐버리니까 악한 마음쪽으로 악한 사고쪽으로 자꾸 흐른다는 거라. 대상을 놓치지않을려고 해야 됩니다. 대상에 대해서 정확하게 바르게 겨냥했을 때 그 대상을 놓치지 않게끔 됩니다.

 

그런데 대상은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다 하기가 참 힘이 듭니다.

초보자들은 되도록이면 제일 위험한 것들부터 먼저 잘라내려고 자꾸 훈련들을 해야 됩니다.

첫 번째가 탐욕이라고 하는 것. 탐욕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 지금 현재 여러분들에게는. 그렇지만 그 탐욕이 확대되는 망상은 반드시 멈춰야됩니다. 탐욕이 일어나서 확대되는 것들은 반드시 끊어버리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탐욕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그것을 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아, 내가 저것을 갖고 싶다'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거는 내가 그것을 살 돈이 없다든지 살 조건이 안된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탐욕이 일어나는 거라.

저거 살 돈이 있고 조건이 되는 사람은 탐욕이 확대되지는 않습니다.

사고 싶다고 할 거 같으면 가서 사버리면 됩니다. 그런데 탐욕이 계속 확대되는 것은 현재 그걸 살 능력이나 조건들이 안된다는 얘깁니다. 그럼 왜 계속하고 있느냐는 거라. 자기를 괴롭혀가면서.

탐욕이라고 하는 욕구는 확대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됩니다.

확대될 때는 내가 그마만한 능력이, 안되고 수행에서도 그것을 제거할 능력이 안되고, 일상생활에서도 그것을 제거할 능력이 안된다는 얘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걸 것 같으면 멈춰야 됩니다. 그 사고 싶다는 탐욕이 일어난 것이 '아, 이것이 나에게 이익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그 즉시 버려버려야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해야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자애로운 마음, 온화한 마음을 자꾸 가지도록 해야 됩니다. 생각하는 것들이 해를 끼칠려고 남에게 피해를 입힐려고 하는 것들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도움을 줄까,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이익을 줄까 하는 마음들을 자꾸 가져야 됩니다.

탐욕이 일어났을 때 아, 저것은 백만 원 주면 살 수 있다. 아, 그런데 내가 백만 원이 없구나 하고 탐욕을 계속 일으켜야 되는 것이 아니고, 지금 내가 오십만 원이 있으니가 그걸 가지고 우리 아빠에게 옷을 한벌 사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쪽으로 전환시키라는 거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자애, 항상 이익을 주고 행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사고로써 대체하도록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해야 되는 것이, 이 탐욕으로부터 자꾸 멀어지는 방법을 택해야 됩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괴로움이 없기를 바라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이 바른 것일 때는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그런 마음들을 자꾸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자꾸 평등한 마음을 가지도록 만들어주어야 됩니다. 모든 이들이 행복하고 괴로움이 없고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고 평화롭기를 하는 그런 마음들을 자꾸 가져야 됩니다.

그게 지금 현재 일어나는 탐욕이라는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방법입니다.

 

마찬가지로 화가 일어났을 때도 꼭 마찬가지고, 어리석음이 일어났을 때도 꼭 마찬가집니다.

이와 같이 자기가 가장 경계해야 될 것들이 크게 일어난 것들을 먼저 대상으로 삼아야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을 다 제거하고 다 없앨려고 하는 것보다는 하나씩 하나씩 자꾸 제거해나가는 방법들을 쓰도록 해야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는 사회적인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축적이 됩니다. 마음에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아, 내가 나쁜 행위를 했다, 아니면 좋은 행위를 했다 하는 것들이 자꾸 축적이 됩니다. 나쁜 행위를 많이 했으면 죄책감이 많이 들 것이고, 좋은 행위를 많이 했으면 행복한 마음이 많이 들 겁니다.

쌓이는 것들이 반응하는 것들이 좋은 것일수록 더 선한 방향으로 길들여지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반응하는 것들을 되도록이면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어야 됩니다. 무엇인가 마음에 반응하는 것들을 바르게 이끌어주기 위해서는 부처님이 말한 오계를 자꾸 지킬려고 해야 됩니다.

간혹 사람들이 오계를 전체를 지킬려고 하지 않고 일부만 지킬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네 개는 지키겠는데 하나는 못 지키겠으니까 하나는 그냥 대충해가지고 넘어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설한 오계라고 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여러분들이 도덕적인 것들을 지켜나가는 규범으로 삼는 거하고는 다릅니다. 수행에 도움이 되고 마음의 작용으로 인해서 마음에 심리적인 작용으로 인해서' 이것들은 틀림없이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하고 정립된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번에는 오계를 지킨다, 아니면 일주일에 한 번씩 팔계를 지킨다 할 경우엔 그것은 틀림없이 그 오계나 팔계는 반드시 지켜야 되는 것들입니다.

그래야만이 마음에 피드백, 반응하는 것들이 좋은 방향으로 축적이 됩니다.

 

더불어서 오계를 지키는 것 말고, 스스로 생각한 것 그리고 세상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들, 규칙들이나 결정들을 지킬려고 노력하는 것은 꼭 바람직한 방향은 아닙니다. 세상의 결정은 크게 그렇게 신경을 안 써도 됩니다. 오히려 불교에서 정해진 오계나 팔계를 지키는 것이 세상의 결정보다도 더 앞서는 것들입니다.

 

옛날에는 사원에 여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럽니까? 그러질 않습니다. 그걸 아무리 지킨다고 해가지고 사회가 변한다 해가지고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요 근래에는 위나야(Vinaya, 율)는 출가자가 아니면 보지마라 하고 금합니다. 그럼 그렇게 지켜나갈 겁니까? 이건 또 안 바뀌어나가는 겁니까? 바뀝니다.

사회적인 규칙이나 결정은 따르든 안 따르든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그것이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붓다에 의해서 설해진 오계나 팔계를 지켜나가는 것이 마음의 응집, 마음의 결정력, 이런 피드백을 형성하는데 더 훨씬 도움을 주게끔 됩니다.

 

그다음에 해야 되는 것이 뭐냐하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항상 모든 행동을 자···사에 근거해서 행동하도록 해야 됩니다. 모든 존재들에 대해서 행복하고, 괴로움이 없고, 뜻한 것들이 이루어지고, 평화롭기를! 하는 마음들을 항상 가져야 됩니다.

 

해탈에 이르는 첫 번째 길을 실천을 해나가면 이와 같이 보통 네 가지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나갑니다.

맨 첫 번째, 바른 사유, 바른말, 바른 행위, 바른 생활이라고 하는 것들이 형성이 되게끔 됩니다.

 

그게 어느 정도 자꾸 무르익다 보면 이제는 해탈에 이르게 하는 두 번째 단계로 나아가야 됩니다.

두 번째는 뭐라고 그랬습니까? 망상하지 말아라 그랬죠.

 

망상을 멈추고 지금 현재 일어난 것들 현실적이고 실재하는 대상에다가 마음을 모아라 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이게 두 번째 길입니다.

앞에 것들은 이성적인 것보다는 바른 방향이죠! 쉽게 말하면 생각을 컨트롤하고 계율을 지키고 하는 그런 것들입니다. 이성적인 부분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부분은 반드시 이성적으로 해야되는 그런 것들입니다.

먼저 해야되는 것이 쓸데없는 망상은 삼가하도록 해야 됩니다.

망상해가지고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얼마나 여러분들이 도움이 있었습니까? 대부분 받은 거 없죠? 망상은 그래서 쓸데없다는 겁니다. 나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특히 현재 일어나는 것들을 계속 끊임없이 망상하는 것들도 크게 도움이 안되는데,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망상하는 것들은 더더구나 더 쓸데없는 것들이라는 거라.

이미 과거에 대해서 '아, 내가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 이런 것은 후회된다..' 이러면 뭐할 거라? 지금 현재 내가 또 다른 업을 짓게 되는 건데. 미래에 내가 이랬으면 좋겠다 아무리 부푼 꿈을 가지면 뭐할 거라? 내가 지금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이익이 없는데. 지금 현재 또 일어난 생각들을 끊임없이 반복 재생해가지고 확대해버릴 것 같으면 그것도 이익이 없는 거라.

그래서 그걸 해라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적인 것, 실제 눈앞에 닥친 것들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거라.

 

그러기 위해서는 사물을 자꾸 객관적으로 볼려고 해야 됩니다.

내 입장에서 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객관적으로. 어떤 것이든 자꾸 객관화시켜야 됩니다. 내 아버지, 남의 아버지라고 보지 말고 지금 현재는 그냥 아버지로서 보라는 거라. 객관화시키라는 거라. 더 나아가서 아버지라고 보는 것이 아니고 그냥 내가 보여지는 대상으로서만 자꾸 보도록 해야 된다는 거라. 그래야 만이 거기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의 견해로써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생각을, 쓸데없는 망상들을 삼가하게 되면 그다음에 반드시 해야되는 것이 객관적으로 대상을 보도록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해야 되는 것이 쓸데없는 것들, 쓸데없는 말들은 반드시 멈춰야 됩니다.

앉아서 법담을 한다고 할 것 같으면 보통 보면 신비적인 이야기들을 합니다. '누가 무슨 체험했다' 자기는 체험하지 않은 건데도. 누가 무슨 기적같은 초능력을 했다, 거기에 마음이 솔깃해집니다. 솔깃해지는 것까지는 좋아. 그런데 자기도 그걸 따라할려고 하고 그것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분심을 일으키게 된다는 거라. 그거 하지 말아라는 거라.

마찬가지로 남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앉아서 누가 어떻다 저떻다 그러면서 계속 확대하는 거라. 지금 현재 입증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반드시 멈추십시오.

 

그것도 자기 자신에게 입증할 수 없는 것들은 듣고 그냥 흘려버리십시오. 남들이 아무리 신비적인 체험을 봤다, 삐띠의 현상들을 봤다, 니밋따를 경험했다, 그냥 듣고 흘리라는 거라.

내가 그거를 경험하지 않은 것들은 그건 여러분들 것이 아닙니다. 그걸 가지고 알음알이를 일으킬 필요도 없고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흔들려서도 안됩니다. 남의 일은 남의 것으로서 남겨두십시오. 여러분들은 그런 것들을 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여러분들이 해야 되는 것은 지금 현재 내가 실증할 수 있는 것, 실제 체험하고 증명할 수 있는 것들만 가지고 살아가도록 해야 됩니다.

 

그럴려고 할 것 같으면 그다음에 해야되는 것이, 반드시 이성에 의지해야 됩니다.

감정에 의지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휩쓸려 버립니다. 이성에 의지해야 됩니다. 그래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사물을 자꾸 대하도록 해야 됩니다.

어떤 것에도 의지해선 안됩니다. 여기 있는 스님에게도 의지해선 안되고, 부처님이라는 분에게도 의지해선 안됩니다. 오로지 여러분 자신 그리고 그 설하신 담마를 의지해서 나아가려고 자꾸 마음을 먹어야 됩니다. 아무리 부처님에게 의지한다 해가지고 의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마음을 해소시켜 줄지는 몰라도 그것은 바른 방법은 아닙니다.

반드시 자기 자신의 이성, 그리고 그런 마음들을 가지고 키운 이성들에 의지해서 자꾸 살려고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해야되는 것은 담론할 때는 반드시 납득이 갈 때까지 논의를 해야 됩니다. 흐지부지하게 끝내서는 안됩니다. 납득이 가도록! 그 상대는 누구라도 좋습니다. 내가 그것에 대해서 완전하게 이해하고, 또는 완전하게 그것에 대해서 승복을 할 때까지 논의를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습관을 그렇게 들여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대상이 일어났을 때 그 대상에 대해서 완전하게 알려고 합니다. 흐지부지 자꾸 흘려버리면 대상이 일어나더라도 그 대상에 대해서 깊이있게 알려고 하질 않습니다. 그냥 일어났겠거니 하고 일어난 것은 알지만 사라지는 걸 몰라.

 

그다음에 해야 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지하는 것이 좋지만, 그 가르침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여러분들이 그것을 확인해야 됩니다. 그것이 사실인가, 그것이 증명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들을 반드시 조사해야 됩니다.

부처님이 계율을 지켜라, 술을 먹지마라 했을 거 같으면 술을 안 먹었을 때의 이익과 술을 먹었을 때의 불이익이 있어야 될 거 아니라. 그것을 여러분들이 조사하고 입증할 수 있어야 됩니다. 어떤 것이든 부처님 가르침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사실인가 아닌가, 입증할 수 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을 반드시 확인하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만이 대상이 일어났을 때 그 대상에 대해서 바르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자기 자신에게는 점점 더 수행도 이루어질 뿐아니라, 여러 가지 지식적인 것들도 쌓이게 됩니다.

 

수행과 지식은 반드시 구분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지식적인 것이 실제 내가 수행실천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가 안되는가 하는 것을 판단을 해야 됩니다.

그 판단기준이 뭐냐하면,

이게 실제적인 실천과 관계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겁니다. 이런 지식이 실제적인 수행하고 관계가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더 알아야 되는 것이지만, 관계가 없는 거라고 할 거 같으면 그런 지식은 더 얻으면 안돼.

그다음에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가 안되는가.

적어도 그 알음알이가 도움이 되도록 만드는 것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다음에 그 지식이 내가 지금 입증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

실천해서 그걸 체험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해야 됩니다. 체험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것 같으면 그걸 자꾸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거라.

 

그다음에 네 번째가 뭐냐하면 이러한 지식, 알음알이들이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해서 선한 방향으로 인도하는가 아닌가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버려버리라는 거라.

그다음에 다섯 번째가 뭐냐하면 그러한 것들이 나를 도와 과로 향상시켜 주는가 아닌가.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가 아닌가 하는 거라. 이끌어주지 않으면 버려버리라는 거라.

이와 같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견해, 지식, 알음알이도 조사를 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붓다의 가르침도 반드시 조사하고 입증을 해내야 됩니다.

 

그다음에 해야 되는 것이 정정진 부분입니다.

정정진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악한 생각 악한 사고들을 그자리에서 멈춰버리고, 선한 생각 선한 행위들을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정진입니다.

우리는 눈에 닿는 것, 귀에 들리는 것, 향기, 맛, 그다음에 감촉들 이런 것들로써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보통 보면 들리는 것,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을 기울여야 되는 것이. 이 두 가지만 하면 됩니다.

그런 것들을 반드시 현실적인 것에서 한정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보이면 '보인다', 들리면 '들린다' 하고 자꾸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보이고 들리고 하는 것들의 정보들은 접하는 대로 그대로 두어야 됩니다.

 

실천할 때 정정진은 선한 생각들 선한 행위들을 자꾸 행하도록 노력해야 되는 것이고, 그 선한 것들은 뭡니까? 보이고 들리는 그대로 보고 듣고 해야 되는 것들입니다. 보고 듣고 하는 정보들은 그것이 접하면 접한 대로 그대로 두어야 됩니다. 그것에 대해서 내가 알음알이를 일으켜서는 안됩니다. 사고를 해서는 안됩니다.

보이면 '보인다'고 해야되는 것이지, '아름답다'고 해서는 안된다는 거라. 식(識)으로서만 작동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들린다' '소리', 그다음에 '왼발을 옮긴다' '내려놓는다' 이렇게만 자꾸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실제 내가 일어난 것들 실재하는 것들을 그렇게 자꾸 받아들이도록 훈련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현재 일어난 것에 마음을 모아두는 정념에 해당이 됩니다. 바른 사띠입니다.

 

그다음에 해야 되는 것이, 집중력을 키워야 됩니다.

집중력을 키우면 알아차리는 것도 보다 명확해집니다. 집중력이 없으면 소리가 접한 순간에 이미 망상을 해버립니다. '무슨 소리'라고 해버립니다. 망상을 해버린다는 거라. '아, 스님이 말한다' '어떤 소리다' '새의 소리다'하고 망상을 해버립니다. 소리는 소리일 뿐입니다. '소리'라고만 자꾸 인식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거는 왜 그러냐면 집중력이 없기 때문에 대상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사띠가 똑같이 적은 겁니다. 그래서 집중력을 키울 수 있는 것들을 자꾸 만들도록 해야 됩니다.

대상에 대해서 강하게 집중하는 힘들이 생겨나가면 그 소리들은 들렸으면 바로 사라진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것 따라서 알아차림도 일어났다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끔 됩니다.

그게 팔정도에서는 삼마사마디라고 하는 정정 부분입니다.

여기서도 두 가지의 팔정도 부분이 이루어지게끔 됩니다.

 

그다음에 해탈에 이르는 마지막 세 번째 단계 부분은,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라 하는 것입니다. 즉 '나'라고 하는 환상을 버려버려라 하는 것들입니다.

지혜로움에 해당이 되는 것들입니다.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고 하는 것은 인연에 의해서 조건지워졌다가 그것이 성숙되면 사라진다는 얘깁니다.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은.

모든 것들은 일어났다가 사라지게 돼있습니다. 그걸 그대로 그냥 보라는 거라.

더불어서 그것이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고정돼있지 않다는 얘깁니다. 어떤 것이든 고정돼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단 한순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뿐입니다. 그 사라짐이 원인이 되어서 또 새롭게 일어나는 것뿐인 것이고. 단 한순간도 고정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자꾸 알도록 해야 됩니다.

 

보이는 것은 보여지는 그것이 원인이라서 눈이라는 것이 원인이 되어서 단지 찰나적으로 보였다가 사라지는 것뿐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단지 내 마음이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할 거 같으면 만약에 여기 지금 검은색이다. 검은색은 항상 검은색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거라. 이 검은색은 자외선으로 봤을 때는 보라빛이 됩니다. 적외선으로 봤을 때는 또 다른 색이 된다는 거라. 단지 내 눈에서 보여지는 것이 검은색인 것뿐입니다.

 

그렇게 자꾸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지 검은색을 변하지 않는 것으로서 항상하는 것으로서 생각해버리면 안된다는 겁니다. 일시적인 것뿐입니다. 내가 지금 내 눈에 맞는 스펙트럼으로 봤을 때 그런 일시적으로 봐서는 검은색일 뿐이라는 거라. 자외선 안경을 끼고 보면 또 다른 색으로 보인다는 거라. 모든 것들이 이와 같다는 거라.

 

고정돼 있는 것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하는 사실. 그리고 어떤 것이든 찰나입니다. 일어났다가 반드시 사라집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실제 존재하는 게 어딨습니까?

그냥 조건지워져 있는 것뿐입니다. 그 조건들이 무너져버리면 그것은 사라져버립니다. 단지 우리는 그것이 실제 존재해가지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뿐이라는 거라. '내가 지금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일어난다' 그것이 유지된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그걸 계속 가져가는 거라. 그런 것은 없습니다. 한 때뿐입니다.

 

모든 것들도 그와 같듯이 '나'라고 하는 것도 항상하질 않습니다. 자아라는 것들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면 안됩니다. 조건지워진 것뿐입니다. 나의 생각도 한 생각의 원인으로 인해서 일어났다가 그것이 찰나 간에 사라지는 것뿐입니다. 나의 몸도 원인이 돼서 일어났다가 그 부분이 사라지는 것뿐입니다.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겁니다. 끊임없이 그렇게 변해나가는 겁니다. 나와 나의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고 착각을 해버리면 안됩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것들이 진리를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그걸 '빳짯땅 웨-디땁보- 윈뉴-히띠(Paccattaṁ veditabbo viññūhi ti.)' 그럽니다. 지혜로운 자들이 각자 진리를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그게 해탈에 이르는 순서입니다.

 

그 길을 벗어나서 다른 길로 해탈에 든다고 착각을 하면 안됩니다. 팔정도라고 하는 것은 수행에서는 이와 같은 관계들로 유지가 돼나갑니다. 여러분들도 수행을 해 나갈 때 그리고 평상시 때 이러한 방법으로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는 바른 순서에 따라서 바르게 나아가야 됩니다.

먼저 마음을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게 자꾸 유지시켜라.

두 번째가 망상이 일어나는 걸 반드시 정지하라.

망상을 일으키지 말아라. 생각 자체를 일으키려고 자꾸 노력하면 안됩니다. 실재하는 것들을 자꾸 알아차릴려고 연습을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해야 되는 것은 있는 그대로! 거기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 항상하는 것이 아니고 변하고 있다, 실재하는 것은 없다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알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이와 같이 단계를 맞춰야 됩니다.

 

수행을 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배를 관찰할 때 일어남 사라짐, 내가 일어남 사라짐 할 때 그 마음이 선한 마음으로 하지 않을 거 같으면, 일어남 사라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선한 마음을 계속 유지하도록 해야 됩니다. 도망가면 도망가는 데로 다시 붙잡아와서 선한 마음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대상을 자꾸 집중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하다 보면 망상이 일어날 것 같으면 망상을 멈추라는 거라. '아, 망상이 일어났다'하고 알아차리고 다시 또 돌아오도록 해야 됩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실재하는 배의 불러오고 꺼지는 데다가 자꾸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그 알아차림이 있는 그대로 자꾸 알아차리게 됩니다. 배가 불러오는 것이 항상하는 불러오는 것이 아니고, 불러오는데도 끊임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물질적인 것도 일어나고 사라지고, 거기에 따라서 정신적인 것도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꾸 알아야 됩니다.

 

거기에는 나, 나의 마음이라는 것이 실재하는 것이 항상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꾸 알아야 됩니다. 자아에 대한 착각, 환각들로부터 자꾸 벗어나도록 해야 됩니다.

그게 수행에서 팔정도를 따라서 나아가는 올바른 방향입니다. 그래야만이 바르게 해탈에 이르게 됩니다.

그게 해탈에 이르는 세 가지입니다.

 

들을 때도 마찬가지로 귀에다가 마음을 기울이고, 기울인 마음에서 소리를 자꾸 알아차릴려고 해야 되고, 그 소리가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그런 방법으로 수행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