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1~2012 일상수행법문

까-마다 숫따(Kāmadasutta) (20110310)

담마마-마까 2021. 5. 22. 08:36

https://youtu.be/UQhS7AZmRvo

* 까-마다 숫따(Kāmadasutta) (20110310)

 

오늘은 「까마다숫따(Kāmadasutta)」 부분에 대한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까마다숫따」는 상윳따 니까야에 나오는 경전인데 "둑카라 바와(Dukkara bhāva)"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한 것들을 부처님한테 얘기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실천하기 어렵죠?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 천신도 부처님한테 와서 그런 얘기를 합니다. 자기가 인간의 몸으로 있을 때 승려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수행을 했는데 결국 도와 과에 이르지 못하고 죽어서 천신이 됐거든. 스님들도 그랬는데 일반인 여러분들 같은 경우는 더 힘들겠죠? 도와 과에 이르는 게. 그런데 또 꼭 그렇지는 않죠? 출가자라 그래서 꼭 빨리 돌아가라는 법은 없습니다. 재가자라도 얼마만큼 바른 방법으로 어떻게 열심히 잘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죠.

어쨌든 이 천신은 부처님한테 와서 "아, 내가 인간의 몸으로 있을 때 참 수행해서 실천하는 것이 어렵구나" 하는 것을 부처님한테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 왔어요. 그때 부처님이 천신에게 한 얘기입니다.

 

열 가지로서 스님이 정리를 좀 해봤습니다.

 

까마다 천신이 부처님한테 물어봅니다. 이 얘기를 합니다.

부처님, 실천하는 것은 수행하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그렇지요?” 하고 물어봅니다.

그때 부처님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세 가지를 갖추면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게 아니다.

 

첫 번째가 뭐냐면 계를 확고하게 갖춰라.

도덕적인 것들을 지켜나가는 사람은 마음이 침착해지고 고요해진다. 그래서 마음이 대상에 몰입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천하는 것이 어려운 건 아니라는 거라. 자기가 도덕적인 것이 확립돼있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자꾸 어렵다고 그런다는 거라.

그래서 기본적으로 해야 될 것이 있지 않느냐? 까마다 천신이 인간의 몸이었을 때 비구였으면 비구가 갖추어야 될 227계를 잘 확고하게 갖추어야 됩니다. 재가신자로 있었으면 오늘 같은 목요일 불재일날은 팔계를 잘 갖추어야 되는 거고, 또 다른 날에 재가신자는 오계를 잘 갖추어야 되는 거고, 그럴 것 같으면 실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거라.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오계나 팔계 중에서 이 부분만 지키겠다, 또 어떤 사람은 저 부분만 지키겠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는 안 된다는 거라.

왜? 스스로 계의 항목들을 선택할 거 같으면 대부분은 보면 쉬운 것들을 선택합니다. 나이 80 넘은 분들한테 계의 항목 중에서 하나만 선택해서 지켜라 할 것 같으면 뭘 선택할 거 같애요? '까메수 밋차짜라 웨라마니' 그거 선택할 거라. 배우자 외에는 부정한 짓을 하지 않겠다, 뭐 그거는 그냥 쉽게 실천할 수 있다는 거라. 또 술 안 먹는 사람은 '수라메라야 맛차 빠마닷타나' 해가지고 정신을 어지럽히는 술이나 약물들을 취하지 않겠다 하는 것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거라.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지킬 수 있는 것들이라. '받아지닌다, 지킨다'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고 확고하게 되도록 부단하게 노력하는 것들을 얘기한다는 거라.

 

원래 계라고 하는 것은 자율적인 것이지만 항목은 자기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하고 못을 박아놔버렸습니다. 위나야라고 하는 율이라고 하는 것은 더구나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그날 만약에 스님이 오계를 줬다 할 것 같으면 오계를 다 지켜야 되는 거라. 팔계를 줬다 할 것 같으면 팔계를 다 지켜야 되는 거라. 이렇게 계를 확고하게 받아지녀서 갖추도록 할 것 같으면 실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거라.

그 계의 힘으로 인해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고요하게 하는데는 참으로 용이하게 된다는 거라.

 

두 번째가 뭐냐 하면 배우는 사람이 돼라.

그러면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는 거라. 배우지 않을려고 한다는 거라. 쉽게 얘기하면 실천을 안 할려고 그런다는 거라. 수행하러 와도 형식적으로 수행하지 그걸 진짜 실천하고 배울려고 하지를 않는다는 거라. 여러분들이 당장 죽음에 이르렀다고 할 것 같으면 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살려고 무던하게 실천을 합니다. 그런데 죽음에 임박해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뭐 그렇게 죽음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안 씁니다. 그것에 대해서 할려고 노력을 하는 것은 조금 적다는 거라. 배운다고 하는 것은 그와 마찬가지다 하는 겁니다.

 

내가 부단하게 노력을 해가지고 이것을 배워야 되겠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건 안 됩니다.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와서 몇시간씩 수행을 하고 그것도 형식적으로 하는척 마는척 하다가 도반들끼리 모여서 우우우 이것저것 잡담하고 떠들고 나가면 그날 하루는 괜찮겠지. 그래도 내가 좀 수행했다 하는 마음도 들겠지. 그다음날 되면 홀라당 다 까먹어버리게 된다는 거라.

어떤 사람은 한번 그렇게 수행한 것이 일주일 간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렇게 수행한 것이 한달을 간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수행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일으키고 자꾸 수행해나가는 것이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거는 무슨 차이 때문에 그렇습니까? 얼마만큼 내가 할려고 했느냐, 얼마만큼 배울려고 했느냐, 얼마만큼 실천할려고 했느냐에 따라서 하루가 되기도 하고 일주일이 되기도 하고, 한달이 되기도 한다는 거라.

여러분들이 스님 법문을 들으면 그 법문이 얼마만큼 가요? 일어서면 홀라당 다 까먹어버릴 것 같으면 그거는 그마만큼 안 들을려고 하는 거라. 한달을 스님 법문이 귀에서 맴돌면서 그걸 따라서 실천할려고 할 것 같으면 그마만큼 열심히 들어야 됩니다. 배운다는 것은 그런 것들이라는 거라. 열심히 배우고 그것을 따라서 실천하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됩니다. 그러면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거라. 내가 실천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려울 것이 있느냐는 거라.

 

그다음에 세 번째가 뭐가 있느냐면 세속의 속박으로부터 자꾸 벗어날려고 하라.

스님은 출가자니까 별로 그렇게 세속의 속박이 없습니다. 특히나 내가 직장생활 해본 것도 아니고 가정생활 해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일찍이 출가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없습니다. 그리해도 출가승려가 돼가지고 속박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정이나 가족의 아니고 같은 승가 내의 여러 가지 일들이 속박을 한다는 겁니다.

살아가면서 부단하게 그런 것들을 떨쳐버릴려고 합니다. 그래서 가끔씩은 그거 탁 놓아버리고 수행하러 한달간 들어가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힘을 얻어오기도 하고 그런단 말이라. 여기 있는 스님뿐아니라 대부분의 스님들이 그렇게 한다는 거라.

 

그러면은 재가인들은 그거보다도 훨씬 더 세속의 속박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가정문제 사회문제, 여러 가지 속박이 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속박 안 당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그런 것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어버리면 속박돼버린다는 거라. 재산이 없어져버리면 없어진 것에 대해서 미련을 안 가질 것 같으면 그거에 대해서 아쉬워하고 그걸 다시 또 붙잡을려고 하는 마음은 일으키지 않는다는 거라.

누구하고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에 대한 미련이 없을 거 같으면 불편한 감정을 다시 또 그사람을 만났을 때 일으키지 않는다는 거라. 그런데 그런 미련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거기에 속박이 돼버린다는 거라.

 

왜 재가생활이 속박의 굴레냐 하는 것은 그런 것들 때문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집착하고 그 집착한 것들에 대해서 버리지 못하고 미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속박된다는 거라. 사회에 살든 출가생활을 하든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라는 거라.

눈에 보이면 눈에 보인다는 사실만 알아차려야 하는 것이지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집착해서 속박당하지는 말아라는 거라. 귀에 들리면 귀에 들린다고만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지 귀에 들리는 것에 대해서 속박되고 집착하지 말아라는 거라.

먹는 음식에 대해서도 먹는다고만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지 그것에 대해서 속박되고 집착해버릴 것 같으면 양껏 먹게 되고 맛있는 걸 먹게 되고 맛없는 걸 버리게 됩니다.

그것이 부처님이 세 번째로 얘기한 속박당하지 말아라 하는 부분입니다.

 

그 얘기는 뭐냐면 속박당하기 참 쉽고 속박 안 당하기는 어렵다는 거라. 또 진짜 열심히 배울려고 하고 열심히 들을려고 하고 그걸 따라 실천할려고 하는 것도 어렵다는 거라. 받아지니는 오계, 팔계 227계는 그걸 그대로 다 따르고 있고 어긋나지 않게 하는 것도 어렵다는 거라.

그런데 얻기 어려운 만큼 얻는 가치가 있다는 거라. 가치 있는 것들을 하라는 거라. 그래서 계를 갖추는 거고 열심히 실천해서 배울려고 하는 거고, 여러 가지 세속의 잡다한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거라. 그마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그러자 다시 까마다 천신이 물어봅니다.

그래.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은 그렇게 실천한다고 하더라도, 만족하기는 참 어렵지 않겠느냐 하는 거라.

만족하고 살고 있습니까? 얼마만큼 만족하고 사느냐는 거라.

그때 부처님이 두 가지를 얘기합니다.

만족할려고 할 것 같으면, 그 얻기 어렵다는 만족하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이 수행하는 것을 좋아해야 된다 하는 겁니다.

 

네 번째 그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마음이 수행하는 것을 좋아해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들 마음은 놀기 좋아하죠? 하루 한두 시간 수행하는 것으로서 마음이 수행하는 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겠어요? 항상 수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쪽으로? 마음은 이 놈은 어느 쪽으로 튀어 달아날지를 모르는데, 또 어떤 마음이 일어날지를 모르는데, 그 일어나는 마음들이 수행을 좋아하는 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겠느냐는 거라.

마약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은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래서 그 마약을 얻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합니다. 마음이 시켜서. 그리고 그 마약을 자꾸 취합니다. 마음이 마약을 좋아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거라.

 

여러분들은 마음이 수행을 좋아하는 쪽으로 기울어져야 된다는 거라. 쉽게 말하면 수행하는 쪽으로 중독되어 있어야 된다는 거라. 어떤 대상이든지 그걸 자꾸 알아차릴려고 하는 마음을 자꾸 일으켜야만이 수행하는 쪽으로 기울어질 거 아니라.

조금 하고 나서 다른 일상생활에서는 다 놓쳐버릴 것 같으면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어지겠어요? 수행하는 쪽으로 기울어져가지고 마음이 이렇게 하니까 참 행복하구나, 이렇게 하니까 내가 잡념도 안 일어나고 바르게 생활하게 되는구나 하는 것을 금방금방 알아차려야 되는 거라. 그렇게 알아야만이 마음이 자꾸 수행하는 쪽으로 기울어져서 마음이 수행을 좋아할 것 아니냐는 거라.

 

다섯 번째 얘기하는 것이 얻기 어려운 것을 얻어라.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일들 그런 미련들은 버려버리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수행함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얻기 어려운 것들을 내가 얻어야 된다는 거라.

선정삼매를 체험을 했든지, 아니면 대상에 대해서 알아차리니까 아주 맑고 깨끗한 마음이 이루어져서 그 속에서 항상 행복한 마음들이 일어나든지, 번뇌·망상이 일어나면 그걸 알아차리면서 번뇌·망상이 금방 사라지는 것들을 얻든지, 도와 과를 얻든지, 얻기 어려운 것들을 얻어야만이 만족할 거 아니냐는 거라.

 

더욱 더 노력할려고 하는 거고, 얻기 어려운 것을 자꾸 얻을려고 해야 된다는 거라. 세상에서는 얼마나 얻기 어려운 것들을 얻을려고 노력합니까? “땅을 파봐라, 십원이 나오는가?”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십원을 얻기 위해서, 그 얻기 어려운 것들을 얻기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들을 한다는 거라. 누가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하면서 수행에서는 왜 얻기 어려운 것들을 얻을려고 하지 않느냐는 거라.

얻기 어려운 것들 때문에 더욱 더 마음을 제어하도록 해준다는 거라. 나쁜 쪽으로 흐르지 않게끔, 그리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자꾸 자꾸 제어하면서 이끌어야 된다는 거라. 그래야만이 만족하다는 것을 얻게 된다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또 까마다 천신이 물어봅니다.

그리해도 마음은 제어하기 어렵다는 거라. 언제 어느 쪽 방향으로 튈지 모른다는 거라. 마음을 제어하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거라. 그러자 부처님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여섯 번째 입니다. 감각기관을 관리하라.

감각기관을 잘 관리할 것 같으면 마음을 제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는 거라. 안이비설신의를 통해서 들어오는 색성향미촉법이라고 하는 것들 그 대상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감각기관을 관리하라.

우리는 감각기관을 없앨 수도 없습니다. 내 눈을 없앨 거라? 귀를 아예 못 듣게 만들어버릴 거라?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정보들 내가 안 볼려고 다른 사람 아예 안 만날 거라? 안 들을려고 그 소리를 내 마음대로 다 없앨 수가 있는 거라? 그렇게 못한다는 거라. 그런 것들은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라.

 

그걸 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욕구 번뇌 분노라고 하는 탐·진·치라고 하는 번뇌들이 일어나지 않게끔 관리들을 하라는 거라.

마음을 제어할려고 할 것 같으면 감각기관을 관리를 하라는 거라. 감각기관을 잘 관리를 해서 탐진치가 일어나지 않게끔만 할 것 같으면 마음은 제어된다는 거라. 마음이 탐심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또한 게을러지지 않을려고 할 것 같으면 그건 내가 스스로 관리를 하고 있다는 거라. 그럼 마음을 제어하게 된다는 거라. 감각기관을 관리하도록 하라. 그것이 여섯 번째입니다.

 

일곱 번째가 뭐냐면 마음을 쉽게 제어할려고 할 것 같으면 경전에는 '죽음의 신'이라고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죽음의 신의 그물을 찢어버려라 하고 얘기하는데,

여기서 죽음의 신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은 끊임없이 태어났다가 죽고 태어났다가 죽습니다. 윤회하게 된다는 겁니다. 윤회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아라한이 되는 것이 윤회를 끊는 방법입니다. 그 아라한이 되는 것은 뭡니까? 번뇌를 제거하는 겁니다. 그래서 "죽음의 신이라고 하는 것은 곧 번뇌"를 얘기합니다. 번뇌를 끊어버리라는 거라. 요즘말로 할 것 같으면 쉽게 생각하면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라"는 거라.

 

무수하게 일어나는 생각들 그거 일으키지 말아라는 거라. 그거 안 일으켜도 충분히 살아간다는 거라. 머릿속에 있는 각각의 잡동사니들 아예 생각하지도 말고 일으키지도 말아라는 거라. 여러분들은 어떨 때는 멍청하게 있는 것같이 생각하죠? 절대 멍청하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생각을 굴리고 있습니다. 내가 단지 그것을 모른다는 것뿐입니다. 자기는 난 멍하게 있었다고 그럽니다. 끊임없이 그렇게 생각을 굴리고 있다는 거라. 정작 그것이 나에게 무슨 도움을 주는지도 모르면서.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나에게 심한 굴레를 씌우고 있다는 것도 모르면서. 머릿속에 있는 모든 잡동사니를 일으키지 말아라는 거라.

 

머리만으로 해결을 할 거 같으면 이 세상은 벌써 극락세계가 되어있을 겁니다. 머리만으로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할 것 같으면 내가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됩니다. 실제 내가 행하는 것으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머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 번뇌의 그물을 찢어버려라는 거라. 그물은 찢어버리면 다시는 고기가 걸리지 않습니다. 생각을 일으키지 않도록 자꾸 만들어라는 거라.

감각기관을 관리하기도 힘들고 그런 번뇌의 그물을 찢어버리는 것도 힘이 듭니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어려워도 성공시켜라는 거라. 조건이 나쁘다고 해서 그것을 성공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그렇게 해서 성취했을 때 얼마나 큰 기쁨이 있느냐는 거라.

 

마지막으로 다시 까마다 천신이 물어봅니다.

그런 걸 다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도의 길을 가는 것은 너무 어렵고 험하다는 거라.

히말라야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수한 크레바스나 눈사태나 여러 가지 바람들이나 어려운 것들을 겪어야 된다는 거라. 굉장히 험하다는 거라. 그걸 극복해야만이 정상에 선다는 거라. 그와 같이 이 도의 길을 걷는다는 거는 너무 어렵고 험합니다 하고 부처님한테 얘기합니다.

어렵고 험한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해서 못가는 것은 아니고, 거기에 도달한 사람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는 거라. 누구든지 도달할 수가 있고 또 그런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도달을 했다는 거라. 어렵고 험해도 거기 간다는 거라. 어떻게 해서 가느냐는 거라.

 

그래서 여덟 번째로 부처님이 얘기합니다. 바른길을 걸어라.

여러분들에게 바른길은 팔정도입니다. 팔정도를 놔놔놓고 어떤 길을 걸을려고 그러느냐는 거라. 잘 닦여져 있고 잘 제시돼있는 길이 팔정도라는 거라. 바른말 하라 할 것 같으면 바른말을 하면 되는 거고, 바르게 알아차려라 할 것 같으면 바르게 알아차리면 되는 거고, 바르게 노력하라 할 것 같으면 바르게 노력하면 되는 거라. 그걸 낱낱하게 아주 세밀하게 분석해놓고 탁 제시를 해놨다는 거라. 그 길은!

그런데 그 길을 놔놔놓고 뭔 다른 길을 자꾸 찾을려고 그러느냐는 거라. 문제가 생겨놔놓으면 꼭 다른길을 찾을려고 그럽니다. 팔정도의 길을 놔두고. 뭔가 다른 길이 또 있는가 해가지고 다른 길을 또 찾는다는 거라. 그러면 또 뺑뺑이 돌고 있으면서도 또 문제가 생기면 또 다른 길을 찾는다는 거라.

팔정도는 어렵고 험한 길이 아니라는 거라. 그 길을 놔놓고 왜 자꾸 어렵고 험하다고 그러느냐는 거라, 부처님이. 그냥 그 길을 따르라는 거라.

 

그다음에 아홉 번째가 뭐냐 하면 험한 길이라고 하는 것은 없다.

단지 수행을 방해하는 대상만 있을 뿐이다. 갖가지들이 나에게 수행을 방해합니다. 여러 가지 것들이 나를 방해한다는 거라. 소리가 나를 방해하기도 하고 대상이 나를 방해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들이 방해를 한다는 거라. 그걸 방해하는 그냥 대상일 뿐이라고 봐야 되는 것이지, 그것이 험한 길이라고 보면 안 된다는 거라. 부처님이 봤을 때는 험한 길은 없다는 거라. 세상에 험한 길이 어디 있느냐는 거라.

 

좋은 대상 만났다고 생각하라는 거라.

화가 일어나면 아, 화라고 하는 대상은 나에게 좋은 대상이다, 좋은 알아차릴 대상일 뿐이고, 또 화가 일어나는 마음을 좋은 마음 자애로운 마음으로 바꿀 수 있는 좋은 대상이라는 거라. 그 험한 길이라고 해서 그 길을 버려두고 안전한 길을 찾을 수 있느냐는 거라. 못 찾는다는 거라, 안전한 길은.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그 대상을 버려버립니다. 그래서 대상이 부딪치면 그 대상을 피해버려서 안전한 곳을 찾아서 들어갑니다. 그래서 어딘가 또 숨겠지. 그럼 숨는다해서 마음은 그 대상에서 벗어나지고 마음이 항상 평온해져 있느냐는 거라. 안 된다는 거라.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험한 길이 나타나면 우리는 그걸 대상이라고 나를 수행을 방해하는 하나의 대상일 뿐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험한 길이라고 생각한다는 거라. 얼마나 좋은 대상을 만난 거라? 슬픔이 일어났으면 이걸 내가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참 좋은 대상 만났구나 하고 오히려 엎드려 절하고 고마워해야 된다는 거라. 평상시에 그런 좋은 대상을 만날 수 없는데 그런 좋은 대상 만나게 해준 것에 대해서 고마워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라. 절대 험한 길이라고 판단을 하지 말아라는 거라. 좋은 대상일 뿐이다. 그것이 단지 나를 수행을 방해하는 대상일 뿐이라는 거라.

 

그다음에 열 번째가 뭐냐 하면 평탄하지 않는 길은 없다 하고 얘기합니다.

어떤 것이든 평탄한 길이다 하는 거라, 부처님이 봤을 때는. 똑같이 평평하게 가기 좋은 길일 뿐이라는 거라. 그 대상을 내가 바르게 이용만 할 것 같으면 그 어느 대상에서든지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가 있다는 거라. 고요한 마음을 유지해나가면 그 길은 모든 길은 평탄한 길이라는 거라. 자갈이 있고 바위가 있다고 그걸 탓하지 말아라는 거라. 자갈과 바위는 니 마음속에서 만드는 것이지 어떤 길이든지 평평하게 잘 만들어져 있는, 다듬어져있는 길이라는 거라.

 

이렇게 부처님이 열 가지를 얘기를 해놔놓았습니다.

 

이 상윳따니까야의 경전에서 보여지는 것이 부처님의 길, 바른 수행의 길의 특색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는 뭐냐면 변명은 없다. 변명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졌다, 패배했다' 패배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라. 절대 바른길을 걸어갈 것 같으면 패배를 할 수가 없다는 거라. 어렵기 때문에 패배한다? 그런 것이 없다는 거라. 그래서 아, 이거 내가 너무 힘들어서 변명하는 것도 없다는 거라.

 

어렵기 때문에 더욱더 해야 될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럴 보람이 있다는 거라. 아무도 안 걸어갔고 극소수만이 그것을 달성했다고 하더라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해야 된다는 거라.

이 경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보면 그렇습니다.

 

그냥 무조건 맹목적으로 노력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거라. 그렇게 노력할 때는 반드시 결과가 나오도록 해야 된다는 거라.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 노력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거라.

그리고 그런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 결과에 기뻐하고 멈추지 말아라는 거라. 조그만 결과에 멈추어버릴 것 같으면 발전을 못한다는 거라. 마지막 해탈에 이를 때까지 끝까지 나아가도록 하라는 거라.

그게 이 경전에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어떤 경우든지 해탈에 이르도록 가르치는 것이 있고, 실천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는 거라. 실천 못 하고 있다는 것뿐인 것이지.

그게 까마다 천신이 "둑카라 바와"라 해서 "참 실천하기 어렵다" 하고 얘기한 것에 대해서 부처님이 반박하는 내용들입니다.

여러분들도 부처님과 같은 생각을 자꾸 가지고 그 길을 따라가도록 해야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 변명거리를 만들어주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