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가지 장애(nīvaraṇa)- 들뜸과 후회가 있을 때 벗어나는 방법 (20110317)
오늘 미르님 개업을 한다는데 어떡할래요? 오늘 법문 듣고 점심공양하고 나서, 한번 가볼래요, 어떡할래요? (수행자 대답) 아니,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안돼. 열한시 반에는 먹어야 되니까. 법문하고 나면 뭐 어쩌고 저쩌고 하다 보면 열한시 반 가까이 되어버리니까. (수행자 대답)
거기 가서 다 먹자고? (수행자 대답) 그리해도 되긴 되는데...
그러면 법문을 하지 말아야 되고. (수행자 대답)
그렇지. 그러면 오늘 법문을 하지 말아야 된다고...
어떡할래요? 법문을 하고, 법문을 짧게 한 20분만에 끝내고, 부처님 마지 올리는 것도, 부처님한테 올리는 빨리어 게송만 간단하게 하고 바로 출발하도록 그렇게 합시다.
그럼 되겠죠? 저 장전님은 법문 들으러 왔는데 법문 안해주면 성질낸다. (수행자 대답) 그것도 장애야 이. 안 그래도 오늘 법문할 내용 중에 그런 게 있어요.
여러분들 수행하면서 겪는 가장 큰 다섯 가지 장애 알죠!
'니와라나(nīvaraṇa)' 다섯 가지 장애에 대한 것,
그중에서 오늘 할 거는 들뜸과 후회에 대한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장애의 맨 첫번째가 뭡니까? '까마찬다(kāma-chanda)' 감각적인 욕망들이죠!
감각적인 욕망들이 일어나는 것은 대상에 마음이 달라붙기 때문에 감각적인 욕망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름답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마음이 거기에 대상에 달라붙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일어납니다.
수행할 때 니밋따에서도 그런 것들이 일어나죠? 니밋따 일어날 때 아주 좋은 것들이 일어나면 어떻게 돼요? 착 거기에 마음이 달라붙죠? 그것도 장애입니다 이.
'수바 니밋따(subha-nimitta)'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니밋따 종류에서 아름다운 니밋따들, 좋은 니밋따들이 일어나는 그 대상에 달라붙는다는 얘깁니다.
그다음 장애 두 번째는, 악의, '브야빠다(byāpāda)'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악의는 어떤 겁니까? 대상이 보기 싫다, 보기 흉하다, 그래서 멀리 벗어나고 싶다는 그런 겁니다. 마음이 그 대상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니밋따에서도 그런 게 일어나죠? 무서운 게 확 나타난다든지 아니면 대상 중에서 아름답지 못한 것들이 일어납니다. 그걸 '빠띠가 니밋따(paṭigha-nimitta)'라고 그럽니다. 그 대상으로부터 멀리 벗어날려고 하는 것들입니다.
사실은 니밋따에서는 그게 문제되는 것은 아니죠? '수바(subha)'든 '빠띠가(paṭigha)'든 일단 그것을 대상으로 하진 않죠? 그것이 일어났구나 하고 놓아버려야 됩니다. 놓아버리고 지금 내가 코끝을 하고 있으면 코끝이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호흡에 그대로 집중해야 되는 거죠.
그게 원래 정석인데, 대부분 사람들은 수바든 빠띠가든 그게 일어날 거 같으면 그 니밋따에 대해서 달라붙든지 밀쳐낼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안돼죠.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수행에서도 감각적인 욕망이 일어나든, 아니면 악의가 일어나든 간에 그런 것들에 대해서 아, 그것이 일어났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놓아버려야 되는 겁니다. 놓아버리질 않으니까 그게 문제가 되는 거죠.
그다음에 또 뭐가 있습니까?
다섯 가지 장애 중에 세 번째, '티나 밋다(thīna-middha)' 나태와 게으름이라고 하는 것!
왜 나태해지고 왜 게을러집니까? 영향을 많이 받는 게 많이 먹는 경우! 여러분들 잘 하는 거. 많이 먹으면 나태해지고 게을러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대상에 대해서 탁 낙담해버렸을 경우. 기대한 것에 대해서 기대치에 못미치니까 낙심해버리는 경우들.
그런 경우들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이 '불만족함', 그런 것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걸 보통 마음에 불만족이 일어난다, 그것을 '아라띠'라고 그러는데, 불만족이 일어났을 경우 '아, 이것이 내가 나태와 게으름을 일으키는 것이구나' 하는 것들로써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그 불만족한 것들이 나태와 게으름으로 빠지게끔 돼있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오늘 할 것들이, '웃닷짜 꾹꿋짜(uddhacca-kukkucca)'라고 하는 것,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는 들뜸과 후회하는 부분입니다.
이거는 마음이 굉장히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다. 들뜨고 있을 때 한번 보십시오. 마음이 굉장히 빠르게 움직입니다. 후회가 일어나더라도 머릿속에서 막 생각을 굴려야 되니까 굉장히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곳에 마음이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는 그런 겁니다.
'제따소 아우빠사마' 그렇게 얘기합니다.
마음이 대상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있다. 적정하지 못하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마음이 수행을 하고 있는데 대상에 머물러 있지 못한다고 할 거 같으면, 그게 생각으로 인해서든, 아니면 움직이는 것이 굉장히 바빠지는 것이든, 뭘 어쨌든 간에 '아, 내가 지금 웃닷짜 하고 꾹꿋짜가 일어났구나' 하는 생각을 반드시 해야 됩니다. 들뜨고 후회하고 하는 것들은 수행에서 도움이 되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장애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다섯 번째가 '위찌낏차(vicikicchā)'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의심하는 거죠!
왜 의심합니까? 충분히 그 대상에 대해서 숙고하고 관찰해서 알아차려서 확인하지 못하니까 의심을 하게 되는 겁니다. 마음이 그 대상에 완전히 머물러서 그 대상의 특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바르게 그 대상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요니소 마나시까라' 라고 그럽니다. 그 대상에 대해서 바르게 숙고해서 사유해가지고 그것을 겨냥해가지고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그 대상이 변하는 것들, 그리고 그 대상이 너무나 빠르게 움직여서 마음이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대상들은 나, 나의 것이 아니다 하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될 때는 틀림없이 위찌낏차 의심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반드시 그 대상에 대해서 확고하게 머물러서 변하는 현상들을 그대로 알아차리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게 다섯 가지 장애, 니와라나(nīvaraṇa)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보통 감각적인 욕망과 악의가 있을 경우에는 보통 보면 계를 깨트리게 됩니다. 계율을 깨트리게 되죠.
그다음에 나태와 게으름이 있게 될 때는 지혜롭지 못하게 됩니다. 어리석게 됩니다.
그다음에 들뜸이나 후회 같은 것들이 있게 될 때는 고요한 정(定)을 방해하게끔 됩니다.
그다음에 의심이 있게 될 때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의심을 하게끔 되기 때문에 해탈과 해탈지견이라고 하는 것들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계·정·혜·해탈·해탈지견 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다섯 가지 장애들을 극복해야만이 일어나지는 것들이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오늘 얘기할 웃닷짜 꾹꿋짜(uddhacca-kukkucca) 부분입니다.
'웃닷짜' 들뜨는 것은 수행할 때 왜 들뜨게 됩니까? 수행할 때 어떨 때 들뜨는 것이 일어나요?
소나 스님이, 거문고 같은 바이올린이라 해야 되나? 그걸 켜는 것들에서 왜 그때 들뜸이 일어났습니까? 너무 팽팽하기 때문에! 그래서 부처님이 너무 팽팽해도 안되고 느슨해서도 안된다 하고 가르쳐줍니다.
탱탱하게 긴장이 있을 때는 들뜸이 일어납니다.
스님들이 탁발을 할 때 들뜸이 일어납니다. 언제 들뜸이 일어납니까? 오늘 스님이 탁발을 했단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탁발해와가지고. 아, 저번 주에는 탁발을 했는데 요거요거 들어와서 맛있었는데, 이번에 그걸 누가 가져올까? 기대를 하게 되면 어떻게 돼요? 들뜸이 일어납니다.
여기서는 그렇게 걸으면서 탁발을 하지는 않는데 테라와다 불교국가에서는 걸어가면서도 탁발을 합니다. 저 스님 걸음걸이를 보고 저 스님이 지금 들뜸이 일어났는가 아닌가 하는 걸 걸음을 보면 압니다. 뭔가 기대하는 게 많은 스님들은 발이 아주 경쾌합니다. 경쾌하고 빨라. 앞의 소나 장로와 마찬가지로 탁발할 때도 '찬다'가 문제가 됩니다.
바라는 것들, 원하는 것들이 과하게 될 때 그럴 때는 들뜸이 일어납니다.
'아띠빠가힛다 찬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과도하게 마음을 일으켜서 원하는 것들이 있을 경우.
아마로님은 왜 들뜸이 있습니까? 오늘 법문할 줄 알았는데 법문 안 해주면 후회가 일어나죠. 법문 들을 생각하면 들뜬다는 거라.
법문 해주는 것이 적당한 것이지만, 해준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항상 들뜸이 일어납니다. 그럼 들뜸이 있는 상태에서 법문을 들으면 그게 잘 들리겠어요? 안 들립니다. 자기 것만 듣게 된다는 겁니다.
또 수행할 때 어떤 것들에서 들뜸이 있습니까? 혼자 수행할 때!
숲속에 가서 혼자 수행할 때는 대상이 없는 거 같죠? 대상이 없는 거 같은데 들뜸이 일어납니다.
부처님 당시 때 숲 속에서 혼자 들아가서 수행하는 경우는 어느 정도 공부가 되지 않으면 안 보낼려고 그랬거든, 부처님이. 어쩔 수 없이 그래도 가는 스님들이 있었다고. 대부분이 보면 실패하고 돌아옵니다. 그게 뭐냐면 들뜸이 일어나기 때문에. 대상에 대해서 마음을 고정하고 있어야 되는데, 그러한 힘이 떨어졌을 경우엔 어떻게 돼요? 항상 들뜸이 있게 됩니다.
가만히 수행 혼자서 방안에서든지 고요한데 가서 혼자 한번 해보십시오. 그렇게 안되는가? 마음이 대상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는 힘이 없으면 들뜨게 돼있다는 거라. 어떤 것들이든 대상들이 나타나면 그게 나한테 크게 와 닿는다는 거라. 그게 파도소리든 바람소리든 물소리든 어떤 것이든 그게 크게 와 닿는다는 거라.
마음이 들떠있기 때문에 그게 크게 와닿는다는 거라. 안 그러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일어나서 들뜨든지.
이런 것들이 들뜸을 일으키게 하는 것들이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후회라고 하는 것, 꾹꿋짜라고 하는 것은 보통 보면 나쁜 일 했을 때 일어나죠.
좋은 일 했을 땐 후회 잘 안 일어나죠? 일어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하지만 대부분이 보면 나쁜 일을 했을 때 그 순간의 마음이 혼란 상태에 있는 경우, 그럴 때 후회가 일어난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들뜸과 후회가 일어났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르겠습니까?
태국에 있을 때 누가 와서 그렇게 상담을 한 적이 있어요. 어느 여자분이 울면서 상담실로 들어왔어. 무슨 일이냐 하니까, 내가 친구를 죽게 만들었다는 거라. 왜 어떻게 해서 친구를 죽게 만들었냐고 하니까, 갑작스럽게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가지고 남자친구하고 또 자기 여자친구를 요즘말로 할 거 같으면 꼬셔가지고 차를 타고 여행을 간 거라. 갔는데 차가 교통사고가 났어. 그래가지고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중태에 빠지게 됐다는 거라.
결국 자기가 여행가자고 하고, 그렇게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갈 생각도 없었던 사람을 꼬셔가지고 여행을 데려갔으니까 자기가 죽였다, 그리고 중상을 입혔다는 생각 때문에 울면서 상담을 하는 거라.
대부분 그럴 경우에 스님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것이
니가 그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다. 니가 그 사람을 죽일 계획을 가지고 있었느냐? 죽일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단 말이라.
그리고 그사람을 다치게 할 생각이 있었느냐? 없었다는 거라.
그럼 니 잘못이 아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하고 얘기하는 것이 대부분 실정입니다. 사실은 그게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 생각에 내가 친구를 죽이고 친구를 다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꽉 차있는 사람이 그 소리가 들어가느냐는 거라. 안 들어간다는 거라.
그래서 그래 니가 죽였다, 그리고 니가 다치게 했다, 니가 반드시 책임을 가져야 된다. 쉽게 말하면 죄책감을 가져야 된다. 그렇지만 죄책감을 가지고 산다 해서 바른 것은 아니다. 그 죄책감을 가지는 만큼 다른 일로써 죄책감을 상쇄하도록 하라. 그래서 병원에 중상자들이 응급실에 갑자기 실려왔을 때 그 사람들 도와주는 일들을 해라. 그러니까 무수하게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하는 것들을 병원에서 보는 거라. 어느 순간 한두 달 지나고 와서 그 일은 인제 내가 마음의 짐을 내려놨습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들뜸이 있어서 친구들을 데리고 자동차를 몰고 나간 것이고, 그리고 그런 사고를 당하고 나서 나에게 찾아오는 것은 후회라는 거라.
처음에는 들뜸과 후회는 정신이 정 반대적인 상황인데 왜 이걸 부처님이 하나로 묶어놨을까? 했거든. 그런데 이게 연속으로 넘어가지는 것들이라.
그래서 들뜸과 후회가 일어났을 때 처방법을 부처님은 같은 처방법으로 내려놨다는 거라. 같은 정신적인 현상이라는 거라. 어떨 때는 과도한 것으로 인해서, 어떤 경우에는 마이너스적인 요인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들이라는 거라.
그래서 경전에서는 뭐라고 해놨느냐면, 들뜸과 후회가 일어났을 때는
'바훗수닷따' 그렇게 얘기합니다. 깊이 있게 배워라!
스님의 법문을 듣든지 아니면 경전을 읽든지 그것을 깊이있게 공부하라는 거라.
(수행자 질문)
예. 깊이있게! 그냥 건성건성으로 읽지 말고, 한 페이지를 읽더라도 그것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깊이 있게 읽으라는 거라. 이 책을 전체를 다 읽을려고 생각하지 말고, 단 하나의 찹터라도 그 찹터를 완전하게 이해하도록 하는 거라. 깊이 있게!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마음이 그 책을 읽는다는 그 대상에 마음이 폭 빠지게 된다는 거라.
들뜸이 일어나고 후회가 일어나는 것은 대상에 마음이 고정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읽는 것도 그냥 읽어서는 절대 들뜸과 후회를 잡아낼 수가 없다는 거라.
책을 많이 읽어라 할 경우에는 대부분 책을 그냥 이렇게 넘긴다고. 그건 오히려 혼란하고 산란함을 더 부추기는 결과들을 가져온다는 거라. 깊이 있게 공부하라는 거라. 한 페이지를 아니면 단 한 줄을 읽더라도 그것을 깊이 있게 완전하게 확 가슴에 와닿도록 깊이 있게 읽으라는 거라.
그다음에 두 번째가 '빠리뿟차 까따' 그렇게 얘기합니다. 조사하라!
그 대상에 대해서 뭐가 일어나는가 하는 것을 깊이있게 조사하라는 거라. 대상은 보면 볼수록 자꾸 바뀝니다.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도 바뀌고, 그 대상 자체가 바뀌기도 하고, 그걸 자꾸 보면서 조사하라는 거라. 대상을 옮기지 말고!
하나의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끝까지 조사를 해보라는 거라. 자꾸자꾸 변하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는 거라. 마음이 대상에 머물러 있도록 만들어라는 얘기와 마찬가집니다.
그다음 세 번째가, '위나예 바까딴유따' 그렇게 얘기합니다. 도덕적인 행위, 계율을 잘 따라라!
오늘 여러분들은 목요일이기 때문에 팔계를 받았습니다. 그럼 팔계를 잘 따라라는 거라. 받아지니라는 거라. 마음에 받아지녀서 그것에 따라서 살아가라는 거라.
오후에는 먹지 말도록 받아지녀라 했으면 오후에는 먹지 말도록 해야 되는 거고, 그리고 장식하고 치장하고 유흥을 즐기는 것들을 하지마라 할 것 같으면 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 위나야, 도덕적인 행위들을 잘 따르라는 거라.
'이거 하나는 안 지키고 나머지 칠계는 지키면 되지' 그런 것들이 없다는 거라.
하나를 안 지키면 칠계를 다 안 지키는 거와 꼭 마찬가집니다.
왜? 연속으로 일어나는 것들이니까!
그렇지 않은 게 있습니까? 없습니다. 똑같이 다 일어나집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가, '웃다-세-위따' 그렇게 얘기합니다. 연장자를 잘 따라라!
연장자와 관련지어진 것들은 잘 따라라 하는 겁니다.
우리 테라와다 홈페이지에 보면 스님들 발만 딱 찍어놓은 게 있죠! 발뒤꿈치만 보고 잘 따라간다는 거라. 앞서간 사람이 나의 연장자입니다. 그 연장자의 발뒤꿈치만 보면서 따라가라는 거라. 여러분들보다 빨리 수행을 접했고, 빨리 수행의 과정에 오른 사람들을 따라서 가라는 거라. 연장자를 잘 따라라는 거라.
내가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연장자를 뛰어넘을 수가 없습니다. 그 법칙을 어긋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스님들은 하루라도 먼저 출가를 했으면 그것은 연장자입니다. 내가 아무리 지식적으로 뛰어나고, 아무리 수행에서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 연장자를 뛰어넘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간혹 설익은 사람들은 그걸 뛰어넘을려고 합니다. 그러지 말아라는 거라. 따라라는 거라. 그 연장자는 그 외의 다른 부분에서는 틀림없이 여러분들의 연장자가 되어있다는 거라. 내가 못 보는 부분에서의 연장자의 부분들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장자를 따라라는 거라.
그다음에 다섯 번째가, '깔르야나밋따'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뭡니까? 좋은 도반, 좋은 친구 관계! 좋은 도반이라는 프렌드쉽을 형성하도록 하라!
그래서 아, 저사람에게 이익이 되고, 행복을 가져오게 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라는 거라.
여러분들에게는 서로의 친구 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수행에 대한 것들, 담마에 대한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로써 자꾸 도반 관계를 만들어가라 하는 얘깁니다.
그다음에 여섯 번째가, '삽바야 까타' 유익한 대화를 하라! 이익이 있는 대화.
밥 먹을 때 여러분들 대화 많이 하죠? 이익이 있는 대화를 하라. 애 보고 만날 공부하라 할 거 같으면 애한테는 이익이 없는 거라. 엄마한테는 그게 이익이 있는 대화지. 그 아이한테는 이익이 있는 대화가 아닙니다. 그럼 거기에 맞게끔 대화들을 하라는 거라. 도반들 간에 모였으면 유익한 대화는 법에 의한 토론들입니다. 그럼 법에 대한 토론들을 하라는 거라.
'우리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하다' 하고 그런 것들로서 대화를 하는 것들이 아니라는 거라. 그것도 물론 꼭 유익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선원에서 유익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 유익한 대화들을 하라는 겁니다.
이게 보통 경전에서 말하는 여섯 가지 입니다.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를 하면, 받아들이는 것!
이거는 경전엔 없는 겁니다. 아까 교통사고의 예를 들었듯이 그 상태를 내가 받아들이는 것. 내가 지금 들뜸이 있다, 내가 지금 후회를 하고 있다는 것들을 받아들여야만이 문제해결을 해나가게 된다는 겁니다.
'삼빠띠차-나'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내가 받아들이도록 하는 겁니다. '아, 내가 지금 들뜸이 있구나' 하고 받아들여야지,' 들뜸이 있어서 싫다' 해버리고, 벗어나려고 해버리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됩니다. 내 상태에 대해서 분명하게 받아들여서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뭔가 하고 찾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게 앞에 있는 1번부터 6번까지 입니다.
이게 인제 들뜸과 후회가 있을 때 벗어나는 방법들입니다.
자! 오늘은 간단하게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있는 사람은 질문하십시오.
'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 > 2011~2012 일상수행법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라나눗사띠(Maraṇānussati bhāvanā)_죽기 전에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20110523) (0) | 2021.05.26 |
---|---|
야-나(yāna)_탈 것 (20110322) (0) | 2021.05.25 |
탁발공양 게송 (20110317) (0) | 2021.05.23 |
까-마다 숫따(Kāmadasutta) (20110310) (0) | 2021.05.22 |
삽뿌리사(Sappurisa) (20110308) (0) | 2021.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