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1~2012 일상수행법문

마라나눗사띠(Maraṇānussati bhāvanā)_죽기 전에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20110523)

담마마-마까 2021. 5. 26. 09:00

https://youtu.be/pAWZZqY7qgw

* 마라나눗사띠(Maraṇānussati bhāvanā)_어떻게 죽을 것인가 (20110523)

 

저번 시간에 죽음에 대한 얘기를 좀 했습니다.

그때 "몇 살에 죽는가 하는 걸 모른다. 무슨 병으로 죽는가 하는 걸 모른다. 또 언제 죽는가 하는 걸 모른다. 죽고 나서 내 몸이 어디에 버려질지를 모른다. 그다음에 죽고 나서 다음 세상에 어디에 태어날지를 모른다." 하는 그런 부분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그랬죠? 산향님은 안 와서 못들었지?

(수행자 질문 ---)

어떻게 선택해서 태어납니까? 천상세계는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까? 어느 경전에 그런 얘기가 나오던가요? 예! 추측만으로 그치십시오.

 

어떤 경우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단지, 저번 시간에도 얘기했지만 내가 선한 공덕을 많이 쌓고 수행해서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호흡을 알아차리면서 죽었을 경우에는 살아있을 때는 내가 나쁜 악처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드는 거고, 또 죽음 이후에도 반드시 사악처 위에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거죠. 그럴 수는 있지만 천상에 태어났다 해가지고 그것이 다음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달라이라마 같이 다시 인간으로 환생할 것이다, 그런 능력을 지닌 것은 천상뿐 아니라 인간도 그걸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그걸 괜히 착각하지 마십시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 는 것들, 마라나눗사띠 부분에 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수행을 하기 전에 네 가지 예비수행의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뭡니까? 붓다눗사띠죠! 예를 들어봅시다. '아라항' 해서 번뇌를 완전하게 여의신 분, 그 번뇌를 완전하게 여의신 분에 대한 것을 마음 깊이 되새겨서 그것을 관찰의 대상으로 했을 경우, 그러면 거기에서 기쁨과 환희심이 일어나서 마음의 집중이 생기고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고요하고 집중력이 커질 수 있는 것, 이런 것들이 붓다눗사띠의 종류에 들어갑니다. 그게 첫 번째이고.

 

두 번째가 멧따바와나라고 하는 것이 있죠! 모든 생명들이 죽음을 바라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라고 그것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괴로움이 없기를 바라듯이 그런 마음들을 자꾸 가슴 깊이 되새겨서 그것을 충만되게 하는 방법이 멧따바와나 방법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오늘 해야 될 마라나눗사띠. 누구든지 죽는다 하는 사실을 되새기는 것.

 

그다음에 네 번째가 아수바 바와나라고 하는 거죠. 이 몸은 부정한 것이다 머리털 하나도 깨끗하고 소중한 것들이 아니다. 항상 부정하고 더러운 것이다 하는 것을 마음 깊이 되새기는 방법.

 

이런 것들이 수행의 예비단계, 예비수행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것들을 공부를 할려면 꼭 실천해야 되는 게 마라나눗사띠 입니다. 우리 테라와다 불교의 예불문 중에 마라나눗사띠 부분이 있습니다. 그걸 잠깐 읽어드릴게요.

 

◈ 마라나눗사띠 게송 Maraṇānussati bhāvanā

 

【 바람에 의해서 등불이 꺼지듯이 이 생명 또한 죽음에 이르른 것

모든 물질로 이루어진 것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관찰하여야 한다.

이것이 죽음에 대한 수행을 수련하는 것이다.

대단한 성공을 이룬 자도 이 세상에서는 결국 죽듯이,

나 역시 죽을 수밖에 없다.

죽음이 나에게 엄습해오고 있다.

살인자가 남을 죽일 기회를 찾듯이

죽음은 태어남과 동시에 항상 나에게 찾아온다.

떠오르는 해가 서쪽으로 지듯이 생명은 조금도 멈춤이 없이

끊임없이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번갯불과 같고 거품과 같이, 이슬과 같고 물줄기와 같이 생명은 소멸해 간다.

죽음은 원수를 뒤쫓는 살인자와 같이 멈추는 법이 없다.

영예를 누리는 자, 힘센 자, 공덕이 있는 자, 권력을 지닌 자, 지혜를 지닌 자,

그리고 정복자들도 누구든지 죽음을 맞는다.

하물며 나와 같은 자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생명에 대한 결핍과 내적이나 외적인 재난으로 순간순간 죽어가고 있는 나를

눈 깜짝할 새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라.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생명은 표시도 없고 길이도 알 수가 없다.

삶은 고통스럽고 제한되어 있으며 고통으로 묶여 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인간이 죽지 않을 가능성은 없다.

늙어가면서 죽는 것 이것이 살아있는 존재의 본성이다.

열매가 익으면 반드시 떨어지듯이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은 항상 그들이 죽는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점토로 만들어진 옹기그릇이 반드시 깨어지듯이 살아있는 존재는 결국 죽어야만 한다.

젊은이, 늙은이, 어리석은 이, 현명한 자, 이 모든 이들은 죽음으로 나아간다.

모든 이들은 결국 종말을 맞는다.

형성되어진 것들은 실로 무상한 것! 이것이 생멸의 법칙이다.

생기고 사라짐이 멈출 때 생기는 그 적멸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

오래지 않아 이 몸 또한 흙바닥 위에 던져져 버려지고

의식마저 사라져 버릴 때 나무토막보다도 소용없다.

초대받지 않고 여기로 왔다가 동의도 없이 여기를 떠난다.

여기에 온 그때 바로 가버렸는데 거기에 무슨 슬픔이 있겠는가.】

 

이게 마라나눗사띠의 게송입니다.

 

죽음에 대한 얘기들을 하면 보통 싫어하고 그것을 피할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누구든지 태어났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하는 겁니다. 그런 줄 알면서 우리들은 온갖 욕망에 젖어서 그것을 취할려고 합니다.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렇게 살아간다 하는 겁니다.

 

그런데 가만히 여러분들을 한번 보면 오욕락으로 인해서 기쁘고 행복을 누리는 것은 시간이 걸려야 됩니다. 또 내가 노력해서 그것을 얻어야만이 이루어질 수 있는 행복이라는 거라. 그런데 수행은 시간을 기다리지를 않습니다. 즉시 나타난다는 거라. 그래서 그걸 '아깔리꼬(akāliko)'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오욕락으로 인해서 누리는 행복은 '깔리까'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시간이 정해져 있고 시간이 걸린다 하는 뜻입니다. 시간을 들여서 준비하지 않으면 누릴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서 준비하지 않으면 이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이익이나 행복을 누릴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하는 뜻입니다. 그럴 동안에 많은 괴로움과 피곤함이 겹쳐서 오게 돼있다는 거라. 그래서 세속적인 오욕락의 행복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결점이 있다. 행복이 오기까지는 많은 고통이 따르고, 행복이 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는 거라.

 

그런데 수행은 그런 결점들이 없다는 겁니다.

수행으로 도의 마음이 생기면 시간을 두지 않고 곧바로 과의 마음이 생깁니다. 도의 마음과 과의 마음 사이에 또 다른 마음이 생겨나질 않는다는 겁니다. 또 도의 마음과 과의 마음 사이에 괴로움이라고 하는 또 다른 마음이 생겨나질 않는다는 겁니다. 곧바로 이루어지는 것들이라는 겁니다.

도와 과에서만 그렇습니까? 수행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일어남'하고 알아차리고 나서 '사라짐'하고 알아차릴 때 분명하게 알아차림을 하고 있으면 그 사이에는 고통스러운 마음이, 나쁜 마음이 끼어들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일어났으면 그다음에는 바로 사라짐이라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거라. 이런 것들을 '아깔리까의 법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세상에 있는 행복을 보통 일곱 가지로 얘기를 합니다.

첫 번째가 뭐냐면 오욕락을 즐기는 것으로부터 얻어지는 행복,

두 번째가 천상에 태어나서 천인들이 누리는 오욕락의 행복,

세 번째가 수행력이 깊어서 선정을 이루었을 때 그런 삼매로부터 이루어지는 행복,

네 번째가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대상, 현상들을 알아차림으로써 이루어지는 행복,

다섯 번째가 도의 행복,

여섯 번째가 과의 행복,

일곱 번째가 열반의 행복,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오욕락으로부터 이루어지는 행복이나 천상세계에서 천인들이 누리는 오욕락의 행복은 무던한 시간이 걸려서 이루어지는 행복입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일어나는 현상들을 알아차림으로써 이루어지는 행복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수행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면서 얻는 행복이 더 크다" 하고 얘기들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 법이라는 것은 보시하고 계율을 지키고 사마타 수행하고 하는 것도 꼭 마찬가집니다. 단지 그 시간이 안 걸릴 경우에는 보시하고 지계하고 사마타 수행하고 있을 때도 분명한 알아차림이 있을 때의 얘기를 하는 겁니다.

보시했다는 마음을 일으켰을 경우에는 거기에는 나라고 하는 것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분명하게 지금 일어나는 실질적인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경우에는 보시·지계·선정이라고 하는 것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시·지계·선정이라는 것들을 행하면서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현상에 마음을 기울여서 알아차림이 있을 거 같으면 그것은 '아깔리까의 법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렇게 수행하는 자는 계율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에서 행복이 계속 일어나집니다. 그 계율을 유지할 때마다 마음에서는 하나의 기쁨이 증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보시를 행할 때도 마찬가지이고 선정에 들 때도 마찬가집니다. 이렇게 기쁨이나 즐거움 행복감들은 하나씩 대상에 따라서 일어나게 됩니다.

 

부처님이 탁발을 못하고 돌아왔을 때 마라가 그럽니다. 다시 탁발을 하러 가라고. 그러면은 탁발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부처님이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나는 수행하는 것으로써 기쁨을 삼고 그 기쁨으로 충만 되게 한다. 공복감을 없앨 수 있다.” 하고 얘기합니다.

배고픈 것들을 채우기 위해서 음식을 먹어야 되지만, 그 음식을 먹기 위해서 부당한 방법을 취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마음을 깨끗하고 맑게 해서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을 대상으로 알아차릴 때 거기서 일어나는 기쁨이나 행복감들이 배고픔을 충족시킬 수 있다 하는 겁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라항' 하면서 염송을 하게 되면 '아! 번뇌를 여읜 자들은 저렇게 행복하구나. 내가 이 번뇌를 없앴을 때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이렇게 보시·지계·선정이라는 것들이 알아차림이 있을 때는 아깔리까 법이 되는 것들입니다.

또한 이런 것들이 내가 무수한 시간을 살아가면서 채워야 되고 성취해야 될 바라밀 들이라는 거라. 그래서 행복을 채우더라도 아깔리까의 법으로써 행복을 채우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죽음을 넘을 수 있는 행복을 아깔리까의 행복이라고 한다.

죽음을 넘을 수 없는 행복을 깔리까의 행복이라 한다.

하고 경전에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넘어서야 됩니다. 대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차림을 유지하고 있으면 죽음을 넘어서게 됩니다. 그것이 어떤 대상이든지 보시를 하고 있을 때는 보시하는 것이 대상이 되는 것이고, 계를 지키고 있으면 계를 지키는 것이 대상이고, 삼매에 들 거 같으면 삼매가 대상이 되는 것이고, 이렇게 대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차림을 유지해나가고 있을 때는 죽음을 넘어서는 행복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곧 그런 것들은, 죽음을 넘어선다는 것은 열반을 깨닫는다 하는 얘기입니다. 오욕락의 감각에 집착하는 마음으로 죽는다면 당연히 사악도에 떨어지겠죠. 그러면 끊임없이 태어남과 죽음이 이어지게 됩니다.

 

죽는다고 하는 것은 내가 지금 살아있고 육체가 있기 때문에 죽는 겁니다.

살아있고 육체가 있다고 하는 것은 선한 업, 불선한 업이라고 하는 쩨따나- 그런 업을 지을려고 하는 의도가 씨가 되기 때문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 씨로 인해서 갈애라고 하는 습기, 양분을 만나면 항상 태어남과 죽음을 반복하게 됩니다. 씨는 습기와 양분이 있으면 싹이 틉니다. 그런데 열반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태워버린다는 겁니다. 그 번뇌를 습기가 생기지 않게끔 태워버리기 때문에 다시는 그 싹이 움을 트지 않는다 하는 얘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반을 조건으로 해서 나아가는 아깔리까의 법은 반드시 선한 쪽으로 기울게 되어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그런 자들은 '이제는 죽지 않는 자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물론 아라한이 되기 전에는 끊임없이 윤회를 합니다. 그렇지만은 언젠가는 죽지 않는 자가 된다 하는 것입니다. 수다원이 됐을 때도 반드시 일곱생 이전에는 죽지 않는 자가 됩니다. 예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라한이 아니라 수다원이 되기 전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현상에 대해서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도의 마음만 생긴다 하더라도 죽음을 넘어설 수가 있습니다.

도의 마음이 생기는 것은 끊임없이 알아차리는 마음이 있을 때 죽음을 넘어서는 일이 됩니다. 알아차림이 있을 때는 죽음을 넘어서는 일은 예정되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그런 알아차림에 부수되어 일어나는 보시·지계·선정이라는 것도 죽음을 넘어서는 일이 된다 하는 겁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자가 돼라 하고 얘길 합니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 "죽기 전에 내가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것들이라는 겁니다.

 

내 자신이 죽어야 되는 성품, 또 소멸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서 그것으로부터 넘어설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죽기 전에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두 번째가 뭐냐면 이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누가 죽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는 거라. 만약에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이익이 있다면 누구든지 그걸 갖고 싶어 할 겁니다. 그건 자명한 이치라는 거라.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 죽어버리고 싶다. 빨리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 얘기는 죽고 싶지 않다는 얘기와 마찬가집니다.

 

죽지 않을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호흡하면 됩니다. 안 죽을려면 호흡하면 됩니다. 아무리 죽음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계속 호흡만 하고 있을 거 같으면 죽지 않게 되는 거라. 절대로 죽지 않는 이익이라는 것은 바르게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들입니다. 호흡만 열심히 할 것 같으면 죽지 않는 이익을 얻으니까!

자연스럽게 호흡을 하고 있어도 그 호흡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죽은 자와 같습니다. 그 호흡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때 우리는 죽지 않는 이익을 얻는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호흡을 알아차리지 못할 경우에는 온갖 번뇌 망상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런데 호흡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면 그런 번뇌 망상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호흡을 할 때 분명하게 알아차림과 지혜로써 호흡을 하게 되면 죽지 않게 됩니다.

살아있어도 호흡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번뇌 망상에 휩싸이기 때문에 죽은 이와 마찬가지가 됩니다. 자기의 몸과 마음으로써 살아가는데 자기의 마음으로 자기의 몸에서 일어나는 호흡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죽은 자와 마찬가지다 하고 얘기합니다.

 

이와 같이 해야 만이 완전하게 죽음을 넘어서게 되고 이와 같이 해야 만이 살아갈 때 번뇌 망상이라는 죽음과 같은 일들을 겪지 않고 바르게 살아가게 된다 하는 겁니다.

어떤 부처님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깨달음에 이르렀다 하는 겁니다. 그 방법을 벗어나서 다른 방법으로 완전하게 깨달으신 부처님은 없습니다. 그마만큼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얘깁니다.

 

그다음이 죽을 때까지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누구든지 소원입니다. 이생에서 살아가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마음의 행복은 나와 나의 것이라는 것들을 떨어내버리면 마음의 행복은 가져오게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나와 나의 것들에 얽매여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반드시 기억해야 되는 것이 생겨난 것은 그 생겨난 것을 반드시 알아라. 대상이 일어났으면 그 대상이 일어난 것들에 대해서 반드시 알도록 하라. 그것이 나와 나의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하는 겁니다.

 

일어난 것들은 일어난 것들을 분명하게 알도록 하라. 호흡하고 있으면 호흡이 일어났으면 호흡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라. 걸어갈 때는 걸어가는 것들이 생겨났으면 그 걸어가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라. 밥을 먹고 있으면 밥을 먹고 있다는 것들이 일어났을 때는 그 일어난 것을 분명하게 알아라.

그 대상이라고 하는 것이 마음이 뚜렷하게 일어났으면 마음을 대상으로 하고, 몸이 뚜렷하면 몸을 대상으로 하라는 거라. 분명하게 일어난 것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라. 일어나는 순간 일어나는 대로 분명하게 알도록 하라.

 

'부땅 부따또 빳사띠(bhūtaṁ bhūtato passati)' 그럽니다.

'현재 분명하게 일어나는 현상, 대상을 그 일어나는 순간에 바르게 알아차리도록 하라.'

가고 오고 눕고 말하고 생각하고 밥을 먹고 하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나, 나의 것이라고 하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게끔 된다는 겁니다. 나와 나의 것에 대한 하는 집착에서 벗어나면 무기력한 것들이 없어집니다. 괴롭고 힘들고 하는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무엇이든지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에 마음이 머물도록 자꾸 해서 나라고 하는 집착, 나의 것이라고 하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라.

다만 대상만 있다고 알아라. 그 대상을 알아차리는 마음, 그것만이 있다고 알아라. 가고 있는 동작이 있으면 가고 있다는 동작을 아는 마음이 있다는 것만 자꾸 알아차리도록 하라는 거라. 그 대상과 대상이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서 분명히 알게 될 때 우리는 나와 나의 것이라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반드시 명심해야 되는 것은 살아있는 것들, 모든 것들의 목숨은 짧다고 알아라.

수명은 마치 이슬과 같다.

수명은 마치 물거품과 같다.

수명은 마치 물에 그은 선과 같다.

수명은 마치 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물과 같다.

수명은 마치 침과 같다.

수명은 마치 이 고깃덩어리와 같다.

수명은 마치 도살당하기 위해 예정되어 있는 소와 같다고 알아차려라.

하고 얘기합니다.

 

이슬방울은 아침 해가 뜨면 사라져버립니다. 물거품은 튕겨져 일어나고 나면 물거품이 일어나지만 조금 있으면 사라져버립니다. 물에 그은 선도 뚜렷하게 선이 그어지지만 조금 있으면 그 선은 사라져버립니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도 그 자리에 있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면서 없어져 버린다는 거라. 흐르지 않을 수가 없다는 거라. 그 자리에서는 절대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거라. 입안에 고인 침은 뱉어내든지 삼켜버리든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라.

이 몸이라고 하는 고깃덩어리는 반드시 썩고 부패하게 돼있고, 다른 동물들의 고깃덩어리는 불에 태워져서 다른 사람들이 먹게 돼있다는 거라. 소가 아무리 살쪄가지고 있고 건강해도 도살되기 위해서 기르는 소는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거라. 수명은 이와 같다고 알아라는 거라. 항상 수명은 짧다는 거라.

 

이 게송은 언제 나왔느냐 하면 과거 부처님 시대 때 인간의 수명이 육만 년이 될 때 그때 당시의 부처님이 했던 말입니다.

육만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사는 사람들에게 일러준 가르침이라는 거라. 지금은 그거보다도 훨씬 짧은 시대라는 거라. 더 수명이 짧은 줄을 알아야 된다는 거라. 수명이 짧으면 당연히 그런 줄 알고 있으면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을 선한 일들을 행할려고 해야 되는 거라. 그 짧은 세월 동안에, 그 짧은 수명 동안에 나쁜 일을 할 일들이 뭐 있냐는 거라. 선한 일을 실천하고 고귀한 수행을 자꾸 실천하도록 해야 되는 거라.

 

인간의 수명은 짧다. 짧을 뿐만 아니라 괴로운 일들, 병이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피해갈 수가 없다. 추위로부터 오는 병, 더위로부터 오는 병, 배가 고픈 병, 목이 마르는 병, 대변을 보지 못하는 데서 오는 병, 또 대변을 멈출 수 없는 것으로부터 오는 병, 부처님은 모든 병은 이 여섯 가지에 들어간다 하고 얘기합니다.

모든 병의 종류는 사실은 여기에서 옵니다. 그와 같이 병에 걸리지 않을 수가 없고, 괴롭지 않은 것 그런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육체는 없다는 거라. 짧은 수명에 이렇게 괴롭고 병으로 인해서 시달린다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된다는 거라.

 

건강할 때가 얼마나 있었으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괴롭지 않을 때가 얼마나 있었느냐는 거라. 그리고 이 수명이 참으로 짧은데, 물거품과 같이 짧고 이슬과 같이 짧고 이렇게 짧은데 나쁜 일을 행할 여유가 어디 있느냐는 거라. 선한 일을 행하기에도 짧다는 거라. 또한 내가 청정하고 고귀한 수행을 하기에도 시간이 짧다는 거라.

 

그래서 죽음을 앞둔 자들은 경전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깟땁방 꾸살랑(kattabbaṃ kusalaṃ) 선행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된다.

짜리땁방 브라흐마짜리양(carittabbaṃ brahmacariyaṃ) 고귀한 수행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된다.

 

죽음을 앞둔 자는 이 두 가지를 하라는 거라. 선한 일을 실천하고 고귀한 수행을 실천하라는 거라. 죽음을 앞두지 않는 자는 없다는 거라. 죽음이 멀리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거라. 그 짧은 살아가는 동안에 해야 될 일은 이 두 가지라는 거라.

 

그다음에 죽기 전에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죽음이 자신으로부터 먼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하는 겁니다.

죽음이 자신으로부터 먼 것이라고 생각할 거 같으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려는 생각들이 엷어지고 안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행해야 될 일들을 하지 않게끔 됩니다. 알아차림으로 인해서 보시를 하게 되고, 알아차림으로 인해서 지계를 하게 되고, 알아차림으로 인해서 선정에 들고 하는 일들을 등한시 하게 된다는 거라.

 

보시하는 것에 방일하지 않을려고 할 것 같으면 반드시 버리는 것들을 하라.

지계로부터 방일하지 않으려고 할 거 같으면 내 자신을 보호하는 일들을 하라.

선정으로부터 방일하지 않으려고 할 거 같으면 대상에 대해서 집중하도록 하라.

알아차리는 것들로부터 방일하지 않으려고 할 거 같으면 대상에 대해서 끊임없이 관찰하고 조사하고 하는 일들을 지속하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죽음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방일하지 않는다는 거라. 방일하지 않고 자꾸 보시·지계·선정 그리고 알아차림이라는 것들을 자꾸 할려고 하게 된다는 거라.

 

부처님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위성에 가서 장사를 할려고 했는데 물이 불어나서 건너지 못하게 됐으니까, 그 축제기간 일주일 동안 장사를 할 거 같으면 많은 이문이 있는데, 강이 범람해서 넘어가지 못하는 장사꾼들이 생각하기를, 그럼 이곳에 모여 있으면서 한 일 년간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이 물건을 팔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사람들에 그렇게 얘기합니다.

"자기 생명이 얼마 남았는지도 모르고 일 년 동안 머물면서 이윤을 남길려고 한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물론 축제 때 가서 일주일 동안 팔면 모든 것들을 다 팔아서 많은 이익을 남기겠지. 축제가 없는 곳에서는 당연히 오랫동안 시간이 걸려야 그와 같은 이익을 남길 겁니다. 그래서 일 년 동안 장사하면 되겠지 하고 느긋하게 생각하겠지만 일 년 동안 산다는 보장을 어떻게 하냐는 거라.

당장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느긋하게 생각을 한다는 거라. 당장 언제 죽을지 모를 것 같으면 더 열심히 살아야 된다는 거라. 이익을 남길려고 했을 거 같으면 어떤 수를 쓰든지 그 강을 건너서 그 칠일 동안에 죽지 않는 동안에 그것을 팔아야 이익이 됐을 거라.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거 같으면 이렇게 방일하게 된다는 거라. 항상 우리는 죽음이 내 곁에 있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죽기 전에 해야 되는 것은 죽을 때를 미리 정확하게 아는 것들은 가치가 있는 일이다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을 해야 됩니다.

저번 시간에도 얘기했지만 삼개월 전에 자기의 죽음을 제자들에게 얘기를 해서, 많은 제자들이 외국에 있든 국내에 있든 많은 제자들이 모여서 그 죽음을 지켜보게 하고, 그래서 많은 제자들이 그것으로 인해서 '아! 죽을 때를 미리 아는 것들이 참으로 가치가 있는 거구나' 하는 것을 알게끔 하는 겁니다.

 

옛날에 스리랑카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에게 물어봅니다. 죽음에 이른 사람들 중에 어떤 방법으로 죽었느냐 얘기를 하다가, 그 스님이 생각해 낸 게 그러면 걸어가면서 죽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면 나는 걸어가면서 죽겠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어느 때 다들 모여라. 내가 그때 걸어가면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어가면서 딱 멈춰서서 몸을 돌리면서 죽음을 맞이하겠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정확하게 그 시간에 사람들이 모였을 때 그 방법으로 죽음을 맞습니다. 몸을 돌리면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을 알 수 있다는 것, 죽을 때를 분명하게 안다는 것은 그마만한 이익이 있습니다. 죽을 때를 미리 안다는 것은 그마만큼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죽을 때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내 호흡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고 이해하게 될 때, 죽을 때를 미리 알게 됩니다. 내 호흡이 가는지, 어떤 호흡이었을 때 바이러스가 들어오는지, 어떤 호흡일 때 마음이 들뜨는지, 삼십대의 호흡과 오십대의 호흡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떻게 내가 호흡을 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될 때 죽음을 미리 알 수가 있습니다.

호흡을 분명하게 알고 이해하도록 자꾸 노력하십시오. 그러면은 죽을 때를 분명하게 알게끔 됩니다. 죽기 전에 해야 되는 것들은 죽을 때를 알아야 됩니다.

 

그다음에 죽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 하고 생각할려고 할 거 같으면 이 윤회가 끝날 때까지는 적어도 사악처에 떨어지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어야 됩니다.

사악처에 떨어지면 그마만큼 수행해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점점 더 멀어집니다. 그래서 사악처에 떨어지지 않게끔 마음을 먹고 그렇게 행동을 해야 됩니다.

 

또한 죽음에 이르게 됐을 때 나에게 나쁜 마음이 들지 않게끔 자꾸 훈련을 해야 됩니다. 나쁜 마음이 들면 그것이 죽음의 원인이 돼서 마지막 의식이면, 다음에 일어나는 결생심은 반드시 나쁜 결과를 받게끔 된다는 거라.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어떤 마음이 죽음의식이 될지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면은 평상시에 훈련을 해줘야 됩니다. 나쁜 감각 나쁜 마음이 떠오르지 않게끔 살아있을 동안에 자꾸 훈련을 해야 됩니다. 나쁜 마음이 생기면 아! 나쁜 마음인 줄을 분명하게 알아차려서 그것이 연속하지 않게끔 해서 선한 마음으로 바꿔줘야 됩니다.

 

평상시 때 자꾸 훈련을 해야 됩니다. 사악처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도 선한 행위를 해야 됩니다. 몸과 말과 마음으로 선한 행위를 해야 됩니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나쁜 의식이 일어나지 않게끔 하려고 하더라도 선한 행위가 길들여지도록 자꾸 해야 된다는 거라. 그래야 만이 죽음에 이르게 됐을 때 우리는 나쁜 악처에 떨어지지 않게 된다는 거라. 그래야 만이 더욱더 노력해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길들이 열리게끔 된다는 거라.

 

이런 것들이 죽음에 이르기 전에, 죽기 전에 여러분들이 해야 됩니다.

죽음은 피해야 될 것이 아니고,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해서 자꾸 생각함으로 인해서 내가 지금 해야 될 일이 뭔가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자꾸 알게끔 하고 그것에 따라 살아가게끔 해야 되는 겁니다.

 

압빠마데나 삼빠데타(appamādena sampādetha).

방일하지 말고 열심히 자꾸 노력을 하라.

선한 일을 행해나가 것. 고귀한 수행을 자꾸 실천해 나가는 것. 이것들이 여러분들이 죽기 전에 해야 될 일들이다 하는 것들을 반드시 명심을 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