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1~2012 일상수행법문

공덕을 만드는 열 가지 행위(방법) (20110609)

담마마-마까 2021. 5. 26. 09:16

https://youtu.be/WxpT9JIPzAg

* 공덕을 만드는 열 가지 행위(방법) (20110609)

 

오늘은 공덕을 만드는 열 가지 방법(Dasa mayaṁ puñña kiriya vatthu)에 대한 얘기들을 하겠습니다.

 

첫 번째가, '-나 마양 뿐냐 끼리야 왓투(Dāna mayaṁ puñña kiriya vatthu)' 그럽니다. '보시를 하는 것으로 인해서 공덕행을 만드는 행위'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두 번째는, '-라 마양 뿐냐 끼리야 왓투(Sīla mayaṁ ...)' '계율을 잘 지킴으로써 공덕을 만드는 것'

세 번째는, '-와나 마양뿐냐 끼리야 왓투(Bhāvana mayaṁ ...)'. '수행을 잘하는 것으로써 공덕을 만드는 것'

 

네 번째는, '아빠찌띠 사하가땅 뿐냐 끼리야 왓투(Apaciti sahagataṁ ...)' 이라고 그럽니다. '존경하고 존중할 줄 아는 성품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다섯 번째는, '웨이야-왓짜 사하가땅뿐냐 끼리야 왓투(Veyyāvacca sahagataṁ ...)' 그럽니다. '다른 사람들이 베푸는 것들을 할 때 내가 같이 그것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여섯 번째는, '빳따-눕빠 다-낭 뿐냐 끼리야 왓투(Pattānuppadānaṁ ...)' 여러분들 가장 많이 하는 것들이죠. '공덕의 회향'이란 뜻입니다. 특히 돌아가신 분들께만 해당이 되는 것이 이 공덕의 회향 부분입니다.

 

일곱 번째는, '압바누모- -낭 뿐냐 끼리야 왓투(Abbhanumodānaṁ ...)' 그럽니다. '다른 사람들이 한 여러 가지 잘한 것들을 함께 기뻐하는 것' 사무량심의 무디따라고 하는 거와 비슷하죠.

 

여덟 번째는, '-사나 마양 뿐냐 끼리야 왓투(Desana mayaṁ ...)' '법을 설하는 것'.

아홉 번째가, '사와나 마양 뿐냐 끼리야 왓투(Savana mayaṁ ...)' 물론 앞에 데사나도 '담마 데-사나 마양' 그리고 뒤에 사와나도 '담마 사와나 마양' 그럽니다. 사와나는 '듣는 것'입니다. 앞에 데-사나는 법을 설하는 것이라고 할 거 같으면, 사와나는 '법을 잘 듣는 것들, 진리를 잘 듣는 것'들입니다. 잘 듣는다는 것은 그것 따라서 잘 실천한다는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마지막 열 번째는, '딧팃주깜망 뿐냐 끼리야 왓투(Diṭṭhijjukammaṁ puñña kiriya vatthu)' 그럽니다. '잘못 가지고 있는 견해들 그런 것들을 바꾸는 것'. 지은 행위는 반드시 결과를 받는다 하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 이런 것들이 해당이 됩니다.

 

이 열 가지가 "공덕을 만드는 열 가지 행위다" 하고 얘기합니다.

 

첫 번째, -(dāna)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잘 알 겁니다.

조금 전에도 다-나 했죠? 스님에게 음식물을 바리때에 다-나 했습니다. 바리때에 공양물을 올렸단 말입니다.

참 재밌는 게 공양을 올릴 때 보면 이 사람이 다-나의 어떤 것들을 잘하고 있는가 하는 게 표가 납니다. 대부분 분들은 보면 걸어올 때 공양을 올릴려고 하는 마음-의도-쩨따나가 아주 잘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잘 집중해서 걸어와서 그다음에 스님께 바리때에다가 공양물을 올리는 행위, 그다음에 돌아가면서 마음을 집중하고 가면서 공양올린 후의 마음들 이런 것들이 잘 되어있는데, 어떤 경우는 특히 우리 막내들 보면 얼른 마 바리때에 집어넣어버리고 가버립니다.

주는 행위는 있는데, 주기 전에 일으키는 마음하고 주고 나서 일으키는 마음이 별로 그렇게 안 보이는 것 같애. 그런 경우가 있지? 우리 막내들 그렇지? 아직 스물이 안 돼고 또 서른이 안 되고 한 사람들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봐.

 

그런데 다-나를 할 때는 반드시 명심해야 되는 것이, 지금 열 가지 공덕을 만드는 것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다 쩨-따나-(cetanā)의 요소입니다. 의지의 요소입니다. 그러면 꼭 공양물을 올린 것만이 공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덕이 될 것 같으면 공양물을 올릴 때에도 선한 마음을 내야 만이 그게 공덕이 되겠죠. 바리때에다 음식물을 넣으면서도 나쁜 마음을 먹어버릴 것 같으면 그건 공덕이 안 돼죠. 그렇게 되니까 그 공덕을 쌓기 위해서 먼저 일으키는 마음도 공덕이 되는 것이고, 또 그 이후에 일으키는 마음도 공덕이 되는 것들입니다.

꼭 음식물이라고 하는 물질적인 것들에만 한정을 둘 것 같으면 그거는 안됩니다. 공덕을 낳는 것은 그걸 물질이 공덕을 낳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일으키는 마음들이 공덕을 낳는 것들이라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막내들은 다음에 할 때는 반드시 탁발공양 올리기 전에 좋은 의도를 가지고 마음을 일으키고, 공양을 올릴 때도 좋은 마음을 일으켜서 공양물을 바리때 속에 넣고, 그리고 그 이후에도 선한 마음을 자꾸 일으키도록 해야 됩니다. '아, 내가 탁발하길 잘했다' 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해야 됩니다.

그 세 박자가 잘 갖춰지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대부분 스님들이 공양물 받고 나면 뭐합니까? 축복게송을 해줍니다. 아누모-다-나(anumodana)라 해가지고

"야타- -리와하- -- 빠리 뿌-렌띠 사-가랑

-와 메-와 이또- 딘낭 뻬--낭 우빠깝빠띠."

(yathā vārivahā pūrā, paripūrenti sāgaraṁ,

evameva ito dinnaṁ, petānaṁ upakappati.)

하면서 쭉 읽어주는 게송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에 보면 "짯따-- 담마- 왓단띠 아-유 완노- 수캉 발랑" (cattāro dhammā vaḍḍhanti, āyu vaṇṇo sukhaṁ balaṁ.)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와 같이 담마 따라서 살아감으로 인해서 행복해지고, 아유-오래도록 살고, 완나-건강해지고, 발랑-힘을 얻게 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오래도록 살고,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지고, 또 건강해진다는 그런 뜻의 축복게송을 해줍니다.

 

사실은 다-나를 하면 그런 이익들을 여러분들이 얻어야 됩니다.

그런데 단순히 물품만 줘가지고 그런 이익이 얻어질까? 아름다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내가 마음을 잘 써야만이 아름다워집니다. 마음을 항상 밝은 쪽으로 긍정적인 쪽으로 또 선한 쪽으로 기울여야만이 병도 안 생기고 또 오래도록 살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행복해집니다.

 

스님들이 축복게송을 줄 때는 그런 선한 의도들을 냈을 경우에 그게 '짯따로 담마 왓단띠' 라고 그럽니다. '담마 따라서 살아갈 경우!' 담마 따라서 내가 선한 마음을, 선한 의도를 냈을 때는 오래도록 살고,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지고, 건강해진다 하고 스님들이 축복을 하게 됩니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지만 그런 공덕들을 쌓은 것으로 인해서 그런 공덕들이 이생에서는 설혹 못받는다 하더라도 다음 생에서는 그 공덕을 받겠죠. 나쁜 의도를 가지지 않고 우리 막내들 같이 그냥 덜렁 바리때 속에 음식물 넣고 난다고 하더라도 그것도 공덕이 됩니다.

공덕이 되더라도, 즉시 받을 수 있는 공덕들이 돼야 되는 것이고, 또 나에게 그런 행위를 함으로 인해서 내 스스로가 그런 이익들을 즉시 얻을 수 있는 것이 되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그렇게 즉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행위들 세 가지, 다나를 하기 전과, 다나를 할 때 하고, 다나를 하고 난 후의 마음들을 좋은 쩨따나를 가지게 됐을 때는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좋은 평판을 가지게끔 됩니다.

또한 내 스스로는 이것이 나의 마음을 증장시켜주고, 나를 또 이익이 있게 하고, 나를 행복하게 이끌어준다 하고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당연히 그러니까 죽고 나서도 다음생이 좋은 세상에서 태어나게 된다 하는 겁니다.

 

또 설혹 이생에서라 하더라도 더욱더 부지런히 노력하면 그 다나의 공덕들이 밑바탕이 되어서 고귀한 단계,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하고 부처님이 얘길합니다.

그마만큼 선한 의도를 내는 것, 꾸살라 쩨-따나-(kusala cetanā)라고 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 막내들 알겠지? 그게 다나 라고 하는 겁니다.

 

-(dāna)는 이런 물질적인 것만 해당이 되는 건 아니죠? 다-나하고 단어가 비슷한 게 -(cāga)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은 어떻게 됩니까? 내 물건을 남에게 주는 거죠? 물질적인 것만 살피면 내 물건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정신적인 것을 잃어버리는 건 어떻게 될까? 내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줬다,이런 것들은 짜-가 부분에 해당이 된다 하고 얘기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포기한다는 그런 뜻이 됩니다. 정신적인 괴로움들, 번뇌들, 또 싫은 행위들, 남들이 못마땅해하고, 나쁘게 생각하는 행위들을 내 스스로 포기해버린다는 겁니다. 그것들을 짜-가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짜-가도 다-나의 부분에 해당이 됩니다.

 

다-나의 종류를 보통 여덟 가지들로 얘기를 하는데, 그중에 '짜가 다-나' 라고 하는 것들이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꼭 물질적인 것만 다-나라고 오해하면 안됩니다. 여러분들이 가지는 마음 아, 내가 화내는 것이 나쁜 것이다 할 것 같으면 화내는 것을 버려버리는 거라. 내가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들이 좋은 것이고 나태하고 게을러져 있는 것이 나쁜 것이다 나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 것이다 할 것 같으면 게을러지는 것을 버려버리라는 거라.

그것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은 다 다-나에 해당이 된다 생각하고,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들도 다 다-나에 해당이 된다 생각하면 됩니다.

 

결국 여러분들이 품는 마음, 그리고 나눌려고 하는 마음, 또 나쁜 것들을 버려버릴려고 하는 마음, 이런 것들은 다 다-나에 해당이 됩니다. 일상적으로 좋은 마음내고, 좋은 행위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은 다 다-나에 해당이 된다하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게 공덕을 쌓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다-나 할 것들 많죠?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좋은 의도를 가지면 다 '다-나'하게 됩니다. 그 '다-나'한 것들을 여러분들만 가지게 됩니까? 아니죠! '다-나'를 나누어버리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그 공덕들을 나누게끔 됩니다.

 

두 번째가 실-(sīla) 부분입니다. (). 보통 우리는 그것을 계율이라고 그럽니다.

계율을 잘 지켜나가는 것, 지금 내가 만족하게 살게 되고, 또 건강하게 살려고 할 것 같으면 계율을 지켜야 됩니다. 또한 지금 내가 어떤 것에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도록 만들려면 계율을 지켜야 됩니다. 지금 내가 평온하게 행복감을 느끼면서 안온하게 살려고 할 것 같으면 계율을 지켜야 됩니다.

또한 지금 내가 수행을 해서 집중할려고 하는 마음을 갖다가 얻으려고 한다 그래도 계율을 지켜야 됩니다. 그마만큼 계율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또한 스스로 계율을 지키면 노력할려는 마음들이 일어납니다. 아, 내가 이것은 더욱더 노력해야 되겠다. 또한 이것은 나쁜 거니까 더욱더 노력해서 일어나지 않게끔 만들어야 되겠다. 이런 '사의지'라고 하는 노력의 네 가지 형태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들도 계율이 밑바탕이 되어져 일어나집니다.

 

가장 좋은 게 뭘까? 여러분들이 만약에 도와 과의 맛을 못 보고 죽는다. 죽을 때 혹시 어떻게 죽는지 알아요?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나쁜 마음이 일어나서 그 영향으로 다음생이 안 좋게 될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그런데 딱 하나 계율을 잘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에 마음이 혼란되는 의식이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죽음의 순간에도 당연히 그런 혼란된 마음들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다음생이 좋게 되는 거고, 꼭 도와 과를 이루지 않더라도 이와 같이 이생과 다음생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바로 이런 계율을 지키는 것들에서 일어나지게 됩니다.

 

부처님은 두 가지를 얘기했습니다. 히리-옷땁빠(hiri-ottappa).

"수치스러움을 알고 두려움을 알아라" 이 두 가지를 할 것 같으면 적어도 잘 살게 된다는 거라.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계율에 비춰보는 수밖에 없다는 거라.

계율에 어긋나면 아, 이건 내가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고 판단들을 할 수가 있는 거고, 계율에 어긋난 것들을 행했을 때는 그런 악한 과보를 받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라.

 

그래서 히리-옷땁빠만 알 것 같으면 이생에서 잘 산다고 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할 것 같으면 얼마만큼 계율을 잘 지키느냐에 따라서 잘 사느냐 하는 것들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는 겁니다.

이게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이 윤회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기가 힘이 든다. 그래서 윤회하는 것들을 위한 전제조건이 실라다 하고 부처님이 얘기하는 부분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와나(Bhāvana) 입니다.

바-와나는 여러분들이 많이 들어본 단어들이죠? 명상 수행, 정신적인 발달을 가져오는 것들 그런 의미들을 가집니다. 특히 우리 선원에서는 계속 수행들을 해오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굳이 이거는 설명 안 해도 알 겁니다. 사마타 바-와나, 위빳사나 바-와나가 있다 하는 건 잘 알 겁니다.

 

정신적인 번뇌들을 진정시키고 닙바-나(nibbāna)라고 하는 열반을 성취하게끔 지혜를 개발하는 것들은 바-와나다. 글로서도 얻을 수가 없고,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이 바-와나 마야 입니다. 스스로 내가 그것을 갈고 닦아 실천하는 것, 그것들이 자기 자신의 정신적인 번뇌들, 여러 가지 장애들을 극복하는 길들이고, 또 이 몸을 받아 태어났을 때 윤회의 고리를 끊어야 되는 의무들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 이 바-와나 입니다.

 

네 번째가, 아빠찌띠(Apaciti) 그렇습니다. 존중하고 존경한다는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들은 존경하는 대상은 많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누나 형, 또 나이가 많은 연장자들 이런 분들은 존경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스님도 존경의 대상이고.

 

존중해야 될 것은 뭐가 있을까? 경에서는 네 가지를 존중하라 그럽니다.

감각·느낌! 여러분들 느낌을 존중할 줄 알아야 됩니다. 싫은 느낌들이든 좋은 느낌들이든 그리고 무덤덤한 느낌들이든 그 느낌들을 존중할 줄 알아야 됩니다. 싫은 느낌들은 싫은 느낌이라고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좋은 느낌은 좋은 느낌으로써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게 존중하는 길입니다. 싫다고 해서 배척할려고 하는 것이 존중하는 것이 아니고, 좋다고 끌어 안을려고 하는 것이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알아서 그 느낌에 휩싸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느낌을 존중하는 길이다 하는 겁니다.

 

두 번째로 존중해야 되는 것은,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은 것들입니다.

여러분들은 귀가 있으니까 법문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눈이 있으니까 경전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없는 분들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분명하게 혜택을 받았습니다. 또한 인간으로 태어난 것만 해도 혜택을 받은 겁니다. 그 혜택 받은 것을 존중할 줄 알아라는 거라. 고마워할 줄 알고, 그것에 대해서 진짜 마음 깊이 감사한 마음을 가질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났을 때 빨리 더욱더 좋은 일을 할려고 노력해야 되는 거고, 더욱더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려고 노력들을 해야 되는 거고, 다른 사람들이 없는 귀를 가지고 있으니까 나는 귀를 통해서 듣는 것들을 듣는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릴 줄 알아야 됩니다.

좋은 소리, 나쁜 소리로써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로써 듣게 돼서 아, 저 소리가 무상한 것이구나. 저 소라에는 어떤 것이라도 실체가 없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줄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혜택들을 여러분들은 받고 있다는 거라. 그것을 분명하게 존중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적어도 여기에 온 사람들은 오늘 같이 탁발을 한다, 탁발 이거는 뭐로 가지고 만듭니까? 내가 뭔가를 사가지고 그걸 갖고 조리를 해가지고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립니다. 여러분들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거라. 소유품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옷도 입고 있는 거고, 어떤 이들은 자동차를, 어떤 이들은 집을 가지고 있다는 거라.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거라. 그 자산은 존중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 존중할 줄 알아라는 것은 앞에 감각과 혜택을 받는 그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것을 집착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나에게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말고 내가 사용을 하고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을 해야 된다는 거라.

자산은 언제든지 나의 곁에서 떠나가게 됩니다. 집착하지 않을 거 같으면 떠나갈 때 돼서 그것에 대해서 미련을 가지지 않고, 그것으로 인해서 싫은 마음들이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그것이 내가 가진 자산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이라는 거라.

 

그다음에 네 번째가, 살아가는 삶!

삶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만약에 삶을 존중할줄 알 것 같으면 함부로 목숨들을 가지고 장난하진 않습니다. 나쁜 마음을 품을 수가 없다는 거라. 왜 함부로 그렇게 나쁜 행위들을 할려고 하느냐는 거라.

 

삶은 여러분들이 선택해서 온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선택한 게 뭐가 있어요? 어머니를 선택했어요? 아버지를 선택했어요? 내가 여기 태어나겠다는 마음을 내서 선택했어요?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선택하지도 않은 것을 왜 여러분들이 선택해서 그 삶을 마칠려고 하고, 그것들을 선택해서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들만 할려고 하느냐는 거라. 삶을 존중할 거 같으면 그런 마음을 품어서는 안됩니다. 바르게 살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이게 인제 존경하는 것과 존중하는 것들이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것을 '아빠찌띠'라고 얘기합니다.

적어도 존경하고 존중할 것 같으면 스스로는 남을 모욕하거나 남을 방해하는 것들을 피할려고 자꾸 노력해야 됩니다. 나도 존중하고 남들에 대해서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데, 왜 남을 방해하고 모욕할려고 하느냐는 거라. 또 다른 사람들을 성나게 하거나 타락을 시키거나 유혹할려고 하는 것들을 삼가해야 됩니다. 당연히 그럴 것 같으면 그 사람에 대해서 존경하는 마음은 없다는 거라.

 

「밀란다빤하」 라고 하는 경전이 있습니다. 나가세나 존자에게 밀란다 왕이 질문한 것들을 모아 놓은 경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밀란다왕문경」이라고 하는 것으로 있습니다.

 

존중하고 존경하지 않는 부류들을 12가지로 얘기한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탐욕적인 사람.

두 번째가, 화를 내는 사람.

세 번째가, 게으른 사람.

네 번째가, 거만한 사람.

다섯 번째가, 부족한 사람.

여기서 부족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개발을 전혀 안 했다는 거라. 자기개발을 전혀 안 하고 쉽게 말하면 농땡이 치고 있는 사람인 거지.

여섯 번째가, 완고한 사람. 자기 세계에 딱 갇혀있는 거라.

일곱 번째가 이기적인 사람.

여덟 번째가 생각이 많은 사람. 쉽게 말하면 고뇌하는 사람.

아홉 번째가, 게걸스러운 사람이라고 그렇게 나옵니다. 게걸스러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하면 먹는 음식에 집착하고, 어떤 대상에 대해서 집착하고, 그냥 붙잡을려고 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거라. 그 붙잡은 것을 놓아주지 않을려고 하는 거고.

마지막 열 번째가, 이익을 위하는 사람. 자기 이익만 쫓아가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들이 없다 하고 얘기합니다.

여러분들은 적어도 그런 마음들을 내서는 안됩니다. 연장자들과 상가를 존경할 줄 알아야 되는 거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가진 것에 대해서 존중할 줄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존중과 존경들이 공덕을 낳는 행위들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다섯 번째가 뭐냐 하면, 웨이야-왓짜(Veyyāvacca) 그럽니다.

다른 사람들이 짓는 선한 행위들에 대해서 칭찬하고 거기에 동참하는 것. 저기 수요일날 무의탁 노인들한테 가서 법문을 하는데 나도 거기 동참하는 거라. 그 물질적인 것 그리고 그런 마음들을 내서 그 무의탁 노인들에게 점심공양을 해줄려고 한사람이 마음을 냈어요. 그런데 수백명이 되는 사람을 한사람이 다 분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어차피 누군가가 같이 동참을 해야 됩니다. 또 내 같이 법을 설하는 사람도 거기에 동참해가 법을 설해주는 거고, 그런 것들을 웨이야-왓짜 라고 하는 거고 동참한다고 합니다.

 

가끔씩 그런 것들을 봅니다. 우리도 부엌에 일을 하는 사람이 위사카님이 대장이 되어서 쫄병들이 몇 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저 막내,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은 저 막내가 가서 막 그릇 닦는다고 이렇게 합니다. 거기 동참한다는 거라.

그건 굉장히 선한 행위라는 거라. 물론 서툴기도 해가지고 어떨 때는 그릇 깨먹기도 하겠지. 그런데 그릇 깨먹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거라. 그런 마음을 냈다는 것은 굉장히 좋은 것들이라는 거라. 다른 사람이 그걸 뭐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거라. 오히려 "아이고 참 잘한다!" 하고 칭찬해주어야 되는 것들이라.

 

우스개 소리 같지만 테라와다 불교국가 스님이 오래도록 있었던 태국 같은 경우에는 스님들이 밥 먹고 나서 옆에 있는, 절에 있는 사람들이 최고 먼저 할려고 하는 게 뭔지 알아요? 스님 바리때 빨리 받아가지고 바리때 깨끗하게 씻어가지고 다시 깨끗하게 닦아가지고 스님한테 주려고 그러는 거라. 그걸 최고 하고 싶어해.

그런 사람들 보면 대부분 그날 공양 보시하지 못한 사람들이라. 그런데도 거기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거라.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뭔가 하고 생각을 하는 거라.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스님 바리때 씻어주는 게 최고 하기 수월하거든. 그러니까 서로 할려고 경쟁을 하는 거라.

 

그게 다른 사람들이 하는 공덕들, 보시 행위든 어떤 행위들에 대해서 동참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들이라는 거라.

여러분들은 물론 각자의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리하더라도 동참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아주 선한 마음입니다. 절대 그런 것들을 탓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서로 칭찬해주고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여섯 번째가 뭐냐하면, 빳따-눕빠 다-(Pattānuppadāna) 그럽니다. 빠따-누, 빠, 다-나 그럽니다.

돌아가신 분에게 공덕을 회향하듯이 또 살아있는 분들에게도 공덕을 회향하는 것. 내가 지은 여러 가지 선한 공덕들이 있습니다. 그 선한 공덕들은 스스로 자꾸 회향할려고 해야 됩니다. 오늘은 팔계를 지키는 날이죠? 팔계 잘 지켰다 그러면 '아, 내가 참 잘했다' 스스로 칭찬하고 만족하지 말고 '아, 내가 잘 지킨 이 공덕들을 우리 선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같이 나누기를' 하고 회향을 해줍니다. 그 얼마나 선한 마음이라.

 

돌아가신 뻬-따(peta) 계에 있는 분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런 공덕의 회향, 공덕을 전이시켜 주는 마음을 먹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내가 공덕을 회향하는 마음은 이생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이 되는 게 아니고 저생에 있는 부류들에게도 해당이 됩니다. 저생에 있는 부류들은 다른 공덕들을 쌓을 수 있는 방법들이 없습니다.

 

뭐로 공덕을 쌓을까? 물론 천상계에 태어나고 할 거 같으면 부처님 법을 듣는 공덕들은 쌓을 수가 있겠지. 그런데 그거 말고 뭐 할 수가 있을까? 계율은 뭐 지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스스로 그렇게 하게 되어있으니까, 그건 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런데 그것조차도 못하는 다음 세상이 있다는 거라. 아귀계에 태어난 부류들. 그분들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분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여러분들이 공덕을 회향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거라.

여러분들 조상, 그 먼 옛날 과거에 있었던 조상들 중에 아귀계에 태어나지 않았다고 보장할 수 있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공덕을 지으면 그 공덕을 회향하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살아있는 분들에게도 회향하고, 돌아가신 분들에게도 공덕을 회향해야 합니다.

 

공덕의 회향을 "기름의 램프와 같다" 하고 얘기합니다.

여기 촛불이 하나 있습니다. 그 옆에 초에다 불을 밝힙니다. 이 촛불이 줄어듭니까? 촛불의 밝기는 똑같아집니다. 오히려 똑같아지는 게 하나 더 생겨납니다. 또 하나 더 옆에 옮기면 그마만큼 또 전이가 되고 회향이 됩니다. 그리하더라도 첫 번째 가지고 있는 촛불의 밝기는 그대로입니다. 자기의 공덕은 그대로 가지고 있어. 그런데 여러 사람들에게, 여러 부류들에게 이렇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거라. 그게 공덕의 회향입니다. 모든 행위를 모든 선한 것들을 했을 경우에는 공덕을 자꾸 회향하는 그런 마음들을 가지도록 해야 됩니다.

 

일곱 번째가, 뭐냐하면 압바누모- -(Abbhanumodana). 함께 기뻐한다는 겁니다. 사무량심 중에 무디따에 해당이 됩니다. 남들이 잘한 것에 대해서 함께 기뻐하는 것. 남들이 선한 행위를 했으면 '아, 참 잘했다' 하면서 기뻐합니다. 그런 것들이 '압바누모- 다-나' 그럽니다. 다른 공덕을 쌓은 것들에 대해서 항상 우리는 기뻐하는 마음들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이것은 스스로에게 공덕이 되는 것들입니다.

 

그다음 여덟 번째가, 담마데-사나(Dhamma desana maya). 법을 설하는 것. 스님들에게만 해당이 되는 것 같죠? 그런데 여러분들도 법을 설할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확신이 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 법을 얘기를 한다는 거라.

 

아홉 번째가, 담마사와나(Dhammasavana). 보통 여러분들에게 해당이 됩니다. 법을 잘 듣는 것. 스님들에게도 해당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얘기들을 잘 들어야 됩니다. 법을 반드시 잘 듣도록 해야 됩니다. 그것들이 공덕이 됩니다.

 

열 번째가, 딧팃주깜마(Diṭṭhijjukamma)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때까지 잘못된 견해를 가진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 견해들을 바르게 확립하는 것들. 딧티(Diṭṭhi) 바른 견해를 반드시 확립하라. 주(ju) 라는 것은 잘 확립하라는 겁니다. 바르게, 우주(uju) 잘 확립한 견해.

선한 행위는 선한 결과를 낳고, 악한 행위는 악한 결과를 낳는다. 그것도 바른 견해를 가지게 되는 겁니다.

모든 조건지워진 것들은 항상하지 않고 변해나간다. 그것도 바른 견해를 가지고 확립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여러 가지 바른 견해들을 확립하는 것, 이것도 공덕을 쌓는 것들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보통 이렇게 열 가지를 얘기하는데,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 열 가지는 반드시 그전에 일으키는, 그 행위를 하기 전에 일으키는 의지, '뿝바쩨-따나-(pubba-cetanā)' 그럽니다. 그 의지력도 공덕의 행위가 되는 겁니다.

또 그 행위를 할 때 일으키는 의지, '문짜쩨-따나-(muñca-cetanā)' 그럽니다. 행위를 할 때, 보시를 하면 보시를 행할 때, 계율을 지키면 계율을 지킬 때하는 행위들에서 일어나는 의지력도 공덕을 쌓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행위를 하고 나서, '아빠라쩨-따나-(apara-cetanā)' 라고 그럽니다. 하고 나면 '아, 내가 참 잘했구나' 하면서 일으키는 마음들. 이런 의도도 공덕을 쌓는 겁니다.

이 세 가지가 항상 다 갖춰지도록 자꾸 노력들을 해야 됩니다.

 

열 가지를 얘길했지만, 실제로 열 가지는 다들 계··혜라고 하는데 다 포함이 됩니다. -, -, -와나! 보시, 지계, 선정! 이라고 하는 세 가지 덕목에 다 해당이 됩니다.

 

보시의 항목에는 아까 여섯 번째 얘기했던 공덕의 회향 부분도 포함이 됩니다. 보시를 할 거 같으면 당연히 공덕을 회향해야 됩니다. 또한 보시의 항목에는 다른 사람들이 한 보시들에 대해서도 함께 기뻐할 줄 알아야 됩니다. 함께 기뻐하는 것들도 보시의 항목에 포함이 되는 겁니다.

또 실라의 항목에는 존경하는 마음도 함께 포함이 됩니다. 계율을 잘 지키고 호지할 것 같으면 존중할 줄 알고 존경할 줄 알게 됩니다. 또한 다른 이가 행하는 여러 가지 공덕행에 같이 함께 동참을 하게 됩니다. 계율의 항목에 다 포함이 됩니다.

그다음에 바와나의 항목에도 마찬가지라. 법을 잘 설하게 되고, 법을 잘 듣게 됩니다. 그래서 그게 아홉 가지가 됩니다.

 

그 아홉 가지라 하더라도 그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뭐냐하면 마지막,

열 번째 바른 견해를 가지는 것! 바른 견해를 가지면 이 다나, 실라, 바와나 라고 하는 것, 그 항목에 포함이 된 것까지도 다 여러분들이 하게끔 됩니다.

바른 견해를 가지는데 남이 보시하는데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지도 않는 거고, 내가 지금 해야 되는 것이 보시라고 할 것 같으면 보시를 하게끔 되는 거고, 또 존경해야 될 대상들을 존경하게 되는 것이고, 담마를 들을 때는 담마를 듣는 것에 열심히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게 바른 견해를 가진다는 겁니다.

 

이 열 가지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공덕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공덕을 쌓는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은 살아가면서 이 공덕들을 자꾸 쌓도록 해야 됩니다.

 

수행에서 마지막에 가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힘은 이 공덕의 힘밖엔 없습니다.

아무리 여러분들이 불굴의 노력을 하더라도, 이 공덕들의 힘이 없으면 못 치고 올라갑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수행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공통적인 게 이 부분입니다. 무조건 수행만 하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 수행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공덕을 짓는 행위들을 등한시할 것 같으면 경계에 부딪칩니다. 그럼 그걸 치고 올라가지 못합니다.

 

이생에서 행복하고 다음 생에서도 이익이 있도록 할려면, 살아있을 동안에 공덕을 짓는 행위, 그런 방법들을 등한시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자꾸 쌓다가 보면 나중에는 수행에서 '아, 이게 이런 힘을 발휘하는구나' 하고 알게끔 됩니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마라(māra)들에게 그렇게 괴롭힘을 당할 때 어떤 힘으로 그걸 박차고 나갔어요? 땅을 가리키면서 "내가 쌓은 공덕들을 지신이 증명해주시오!" 그런 공덕들을 쌓은 것들이 없으면 그걸 못치고 올라간다는 거라.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