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1~2012 일상수행법문

까-마다 숫따(Kāmadasutta)_불교의 특색 (20110609)

담마마-마까 2021. 5. 28. 09:12

https://youtu.be/RUqkvAv5VDI

* 까-마다 숫따(Kāmadasutta)_불교의 특색 (20110609)

   『 Saɱyutta Nikāya 』2-6.

 

Evam me sutaṃ. ekaṃ samayaṃ Bhagavā

에왕 메 수땅. 에-깡 사마양 바가와-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사-왓티양 위하라띠 제-따와네- 아나-타삔디깟사 아-라-메-.

Ekamantaṁ ṭhito kho Kāmado devaputto

에-까만땅 티또- 코- 까-마도- 데-와뿟또-

Bhagavantaṁ etadavoca

바가완땅 에-따다오-짜

 

"dukkaraṁ Bhagavā, sudukkaraṁ Bhagavā"ti.

"둑카랑 바가와- 수둑카랑 바가와-" 띠.

"Dukkaraṁ vāpi karonti (Kāmadāti Bhagavā)

둑카랑 와-삐 까론-띠 (까-마다-띠 바가와-)

Sekhā sīlasamāhitā.

세-카- 실-라사마-히따-

Ṭhitattā anagāriyupetassa,

티땃따- 아나가-리유뻬-땃사

Tuṭṭhi hoti sukhāvahā" ti.

뚯티 호-띠 수카-와하- 띠.

 

"Dullabhā Bhagavā yadidaṁ tuṭṭhi" ti.

"둘라바- 바가와- 야디당 뚯티" 띠

"Dullabhaṁ vāpi labhanti, (Kāmadāti Bhagavā)

둘라방 와-삐 라반띠 (까-마다-띠 바가와-)

Cittavūpasame ratā.

찟따유-빠사메- 라따-.

Yesaṁ divā ca ratto ca,

예-상 디와- 랏또- 짜

Bhāvanāya rato mano" ti.

바-와나-야 라또- 마노- 띠.

 

"Dussamādahaṁ Bhagavā yadidaṁ cittan" ti.

"둣사마-다항 바가와- 야디당 찟딴" 띠

"Dussamādahaṁ vāpi samādahanti, (Kāmadāti Bhagavā)

둣사마-다항 와-삐 사마-다한띠 (까-마다-띠 바가와-)

Indriyūpasame ratā.

인드리유-빠사메- 라따-.

Te chetvā maccuno jālaṁ,

떼- 체-뜨와- 맛쭈노- 잘-랑

Ariyā gacchanti Kāmadā" ti.

아리야- 갓찬띠 까-마다- 띠.

 

"Duggamo Bhagavā visamo maggo"ti.

"둑가모- 바가와- 위사모- 막고-" 띠

"Duggame visame vāpi, ariyā gacchanti Kāmada.

둑가메- 위사메- 와-삐, 아리야 갓찬띠 까-마다

Anariyā visame magge, papatanti avaṁsirā.

아나리야- 위사메- 막게- 빠빠딴띠 아왕시라-

Ariyānaṁ samo maggo, ariyā hi visame samā" ti.

아리야-낭 사모-막고- 아리야- 히 위사메- 사마-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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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상윳따 니까야에 있는 까마다 경에 대한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그 경 내용을 한번 들려줄게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 고독원에 계시었다. 한때 얼굴이 아주 기묘한 까마다 천신이 새벽에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인사한 후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온몸에 광명을 두루 비추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 매우 어렵습니다. 세존이시여, 수행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배우기 비록 어렵다고 하지만 계율과 삼매를 두루 갖추고 멀리 집을 떠나서 한가로이 수행하면서 고요함을 즐겨라."

 

까마다 천신이 다시 물어보기를 "세존이시여, 고요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부처님이 다시 답을 하기를 "얻기 어려운 배움을 얻고 계율과 선정을 두루 갖추고 밤이나 낮이나 항상 마음의 즐거움(평온함)을 익혀라."

 

까마다 천신이 다시 물어보기를 "세존이시여, 선정의 마음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부처님이 다시 대답하기를 "선정에 머무르며 마음을 결정하여 악마(죽음)의 얽맴을 끊고 의욕(성자의 길) 따라서 나아가라."

 

까마다 천신이 다시 물어보기를, "세존이시여, 험한 길을 가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부처님이 다시 답하기를 "가기 어려운 그 험한 길이라도 갈 때는 항상 편안히 나아가라. 일반인들은 발을 위로 들고 머리는 아래로 향한다. 그렇지만 성자들은 정직하게 편안하게 가기 때문에 험한 길도 저절로 평탄해진다."

 

이 말씀을 듣고 까마다 천신은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인사를 드렸다.]

 

하는 경전입니다. 아주 짧은 경전이죠. (상응부경전 2-6번 입니다.)

 

까마다 천신은 천신이 되기 전에 수행을 했습니다. 여러분들과 똑같이. 수행하는 거 어렵죠? 아무리 노력해도 조그만한 결실도 없었어. 한평생을 노력해서 수행을 했지만 수행의 결과물은 없이 죽고 나서 이 까마다 천신이 된 사람인데, 그러니까 부처님한테 가서 "부처님 수행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하고 얘기를 하는 거라. 실천하는 게 어렵다 하는 겁니다.

 

까마다 천신이 첫 번째 물었던 게

"둑카라 바와(Dukkara bhāva)" 열심히 노력해서 실천하는 것은 참 어렵다.

누구든지 알긴 아는데 화를 내지마라 하고 하는 것은 아는데, 화를 안 내도록 실천하기는 어렵다는 거라. 누구든지 수행하라 그건 아는데 수행 실천하기가 참 힘이 든다는 거라.

 

그때 부처님이 답을 한 게 있는데 그걸 한번 정리를 해봤습니다.

처음이 뭐냐면 계를 확고하게 갖춰라.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은 실천을 안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고, 실천하는 것이 바르지 않기 때문에 실천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은 목요일이니까 팔계를 받아지닙니다. 팔계를 확고하게 갖추도록 받아지녀서 그것 따라서 살아가도록 하라는 거라. 오후에 먹지마라 할 것 같으면 먹지 말아야 되는 거고, 노래 부르고 또 즐기는 곳이 있으면 피하고 그런 곳에 가지마라는 거라. 그렇게 계를 확고하게 갖추라는 거라. 오계를 지키는 날에는 오계를 확고하게 갖추고.

계를 지키는 자들은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또 마음에 대상이 일어나더라도 침착해진다는 겁니다. 또 마음이 뭔가를 할려고 마음이 통일되게끔 된다는 겁니다. 마음이 통일되어야만이 수행을 할 거고 마음이 고요해져야만이 화가 일어나더라도 그걸 잠재우기가 쉽다는 거라.

 

그래서 부처님이 첫 번째로 얘기한 것이 실천하기 어렵다,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은 핑계라는 거라. 우선 실천하기 위해서 네가 계를 잘 지키고 있느냐는 것부터 확인하라는 거라. 계는 아무렇게나 놔두고 수행만 할려고 한다? 그건 아예 수행을 안 하겠다는 얘기와 꼭 마찬가지라는 거라. 그래서 수행하기 어렵다고 할 것 같으면 우선 자기를 돌아봐라는 거라.

아, 내가 계율을 잘 지켜나가고 있는가? 그래서 계율을 지킴으로써 얻어지는 이익들을 내가 향유하고 있는가? 마음이 어떤 대상이 일어나도 침착해지고 평온하고 또 통일돼서 마음을 모으기가 쉬운가 하는 것들을 생각을 하라는 거라.

 

두 번째가 뭐냐하면 나는 배우는 사람이다 하는 마음을 항상 가져라.

여러분들은 아직 아라한이 아닙니다. 아라한이 아닌 자들은 아직 유학자입니다. 배울 것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배움이 있는 자들입니다. 어떤 것이든 계속적으로 배워야 되는데 배울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라. 어느 정도 공부가 되고 나면 수행을 하고 나면 인제는 안 배울려고 그래요. 자기 방식으로 해버릴려고 한다는 거라.

잘 나가면 좋은데 대부분이 보면 앞이 딱 막혀버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행이 굉장히 더뎌져버립니다. 어떤 경우도 아직은 여러분들은 배우는 자라는 생각을 항상 가져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자기하고 맞지 않은 경우에는 쳐버릴려고 합니다. 자기 수행법과 다르면 틀렸다고 얘길 해버리게 되고, 자기와 맞지 않을 거 같으면 그 대상을 비판을 하게끔 됩니다. 그건 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배우는 자는 어떤 경우에도 어떤 대상이라도 어떤 상황이라도 배울 것이 있도록 스스로 만들어야 됩니다. 항상 배우고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마음에서 지혜와 더불어서 자비의 마음이 생겨나는 겁니다. 마음이 너그럽게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배려하는 마음이 없고, 또 같이 기뻐할 줄 모르고 할 것 같으면 그 수행은 반쪽짜리 밖에 되질 않습니다. 수행이 무르익어가면 갈수록 마음은 더욱더 자비로워져야 됩니다.

 

자기 자신만 자비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비심이 넘쳐 흘러서 다른 사람들이 감흥을 할 수 있게끔 해야 되고, 설혹 그렇게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 이해하는 마음들은 항상 가질 수 있도록, 그런 것이 드러나도록 자꾸 돼야 됩니다. 그게 배우는 자의 자세입니다.

열심히 자기 수행만 닦을려고 할 것 같으면 이렇게 배우는 마음이 없어져 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수행하기 어렵다고 그러는 거라. 실천하기 어렵다고 그러는 거고. 나는 항상 부처님 말씀을 배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잊어버리지 말아라는 거라.

 

세 번째로 부처님이 얘기한 것이 뭐냐하면 우리는 안·이·비·설·신·의라고 하는 것들로 인해서 자극을 받습니다. 눈에 인해서 자극을 받아서 보게 되고, 귀가 자극을 받아서 소리를 듣게 되고 한다는 거라.

그런 자극을 받는 것들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아라는 거라.

보면 보이는 것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고 들리면 들리는 것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아라는 거라. 속박되지 말아라는 거라. 보면 보인다고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들리면 들린다고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지, 그것에 대해서 집착하게 될 것 같으면 안된다는 거라.

 

집착을 놔버렸을 때 참으로 가치있는 것을 얻게 된다는 거라. 한번 놔보세요. 들리면 들린다고 알아차리면 그것이 진짜 들리는 것만 됩니다. 여기 있는 스님의 목소리라고 들리는 것이 아니고 그냥 그 내용이 들립니다. 그래서 내가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어린아이가 얘기하더라도 똑같은 말을 할 것 같으면 똑같이 나에게는 들리게끔 되는 거라. 그래서 들어서 이해를 하게끔 된다는 거라. 그런데 어린아이라고 할 것 같으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집착을 하기 때문에 저게 뭔 말을 저렇게 하나 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들을 가지고 듣게 된다는 거라.

이렇게 자극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도록 자꾸 하라는 거라. 그런 것들을 한번 얻어놔 놓으면 아, 참 얻기 어려운 것들을 얻었다 하는 그런 가치로움을 알게 된다는 거라.

 

얻기 어려운 것들을 여러분들은 얻기 위해서 실천합니다. 그런 얻을 가치가 있기 때문에 수행을 합니다. 실천하고 수행하는데 어렵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육근을 통해서 들어오는 자극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도록 하라" 하는 것이 부처님이 말한 겁니다.

이 세 가지가 '둑카라 바와(Dukkara bhāva)'라고 하는 수행하고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에 대해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들입니다. 즉, 계율을 잘 지키고, 항상 배울려고 하고, 그리고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상태에 맞게끔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까마다 천신이 뭐라고 하느냐면

"둘라바 라반띠(Dullabha labhanti)" 만족하기는 참으로 얻기 어려운 것이다.

십 원 벌어놓고 십 원 만족하기 물론 쉬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 만족은 잠시 잠깐뿐이지 '아, 조금 더 벌걸 조금 더 있기를' 하고 바라게 된다는 거라. 만족하고 거기에 머물기는 참으로 얻기 어려운 것이다 하는 거라.

 

그래서 만족하다고 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부처님이 두 가지로 얘기합니다.

먼저 마음이 수행하는 것을 좋아해야 된다.

어떤 경우든지 마음이 수행하는 것을 좋아해야 된다는 거라.

오늘은 아침 저녁으로 한 시간씩 하자. 그렇게 정해놓고 아침 저녁으로 한 시간씩 한다. 그거는 마음이 수행을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을 내가 훈련해가지고 그 시간만큼은 수행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지.

마음이 수행을 좋아할려고 할 것 같으면 적어도 모든 것들을 수행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쉽게 말하면 일상생활 자체가 수행에 중독이 되어있어야 됩니다. 말하는 것들도 수행이라고 생각을 해야 되는 거고, 들리는 것도 수행이라고 생각을 해야 되는 거고, 그냥 걸어가는 것도 수행이라고 해야 되는 거고, 밥을 먹는 것도 수행이라고 생각을 해야만이 마음이 수행을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마음이 수행을 좋아할려고 할 것 같으면 수행을 해서 거기서 이루어지는 이익과 행복이 있어야 됩니다. 모든 것들을 수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게 수행할려는 마음을 계속적으로 낼 것 같으면 틀림없이 거기에는 고요함이라고 하는 이익들, 대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이익들, 거기서 일어나는 기쁨이나 행복이라고 하는 것들, 대상에 대해서 깊이 있게 마음을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이익들 이런 것들이 일어난다는 거라.

그래서 마음은 수행하기를 더욱더 좋아하게 된다는 거라. 이익이 있고 행복이 일어나는데 왜 마음이 그쪽으로 안 휩쓸리겠어요. 그래서 마음이 수행을 좋아하게끔 만들어라는 거라.

특정한 시간에만 수행할려는 마음을 버려버리고, 모든 시간, 내가 살아있는 모든 시간, 잠자는 시간을 뺀 나머지 모든 시간은 수행하는 시간이라고 마음에 작정을 하고 그렇게 그 살아가는 것, 행하는 것들을 수행하도록 자꾸 노력을 하라는 거라. 그래야 마음이 수행을 좋아하게끔 된다는 거라.

 

두 번째가 뭐냐 하면 얻기 어려운 것을 얻을려고 하고, 마음을 제어하라.

여러분들은 일상생활에서 얻기 어려운 것을 얻을려고 참 부단하게 노력을 합니다. 먹고 싶은 것도 참아서 모으고, 입고 싶은 것도 애들은 메이커를 찾지만은 부모 입장에서는 자기 마음을 제어해가지고 값싼 거 찾아가지고 입는다는 거라. 일상생활에서는 그거 얻을려고 마음을 제어한다는 거라.

꼭 마찬가지로 얻기 어려운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수행에서는. 그거 얻을려고 마음을 제어해야 됩니다. 수다원이라고 하는 것은 얻기 어려운 거이고, 아라한이라고 하는 것도 얻기 어려운 것이고, 삼매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얻기 어려운 것이고, 마음을 항상 평정하게 있는 것도 얻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그 얻기 어려운 것들을 얻을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자꾸 제어해야 됩니다.

 

그것에서 벗어난다고 할 것 같으면 어, 마음이 이리 가면 안 되지 하고 자꾸 제어를 해야 됩니다. 좋아하는 것에 끄달려 들어간다 그러면 마음이 평정하게 되는 것에는 반대방향으로 갈 것 같으면 마음을 끄잡아들여야 됩니다. 벗어나면 잡아오고 벗어나면 자꾸 잡아오고 해가지고 마음을 자꾸 제어하라는 거라. 그리해야만이 만족하는 것들을 얻을 수가 있다는 거라.

 

만족하는 것을 얻을려고 할 것 같으면 첫 번째는 마음이 수행을 좋아하도록 만들어라. 두 번째가 얻기 어려운 것을 얻을려고 하고, 불선한 것들을 행하지 않게끔 마음을 제어하라.

(첫 번째 이야기는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을 실천할 수 있는 길입니다. 어려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얻을 가치가 있다 하고 부처님이 말씀합니다.)

 

그다음에 까마다 천신이 또 물어봅니다.

"두사마-다하 사마-다한띠(Dussamādaha samādahanti)" 마음은 실로 제어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무리 마음을 제어할려고 해도 마음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거라.

 

어떻게 마음을 제어할까?

경전에는 감각기관을 관리해서 마음을 제어하라.

감각기관을 제어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은 감각기관을 제어하라고 했지만 눈을 어떻게 제어할 거라? 안 볼라고 눈 감아버리면 안 보여지게 되겠지? 그런데 항상 눈감고 살 수 있어요? 정보가 접하는 것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거는 일시적일 뿐인 것이지.

그 대신에 정보가 접했을 때 일어나는 마음 · 욕구 · 번뇌 · 분노라고 하는 그런 번뇌들이 일어나지 않게끔 관리하라는 얘깁니다. 그게 감각기관을 관리하여 제어하라는 얘깁니다. 마음을 제어하는 것은 이것에 한정된 겁니다.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끔 관리하는 것. (침착하게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라.)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들을 차단할려고 하지 말고 그 들어오는 것들로 인해서 일어나는 번뇌들을 관리하라는 겁니다. 탐·진·치라고 하는 번뇌들이 일어나지 않게끔 관리를 하라는 거라. 그래야 마음이 제어될 거 아니라.

탐심이 일어나면 탐심이 일어났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화가 일어났으면 화가 일어났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게을러지면 게을러진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려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만들어라는 거라. 그래서 탐·진·치가 일어났을 때는 자기의 마음을 보라 하고 얘기합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몸에 영향을 미칩니다. 호흡이 가빠지든지 심장이 뛰든지 육체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는 겁니다. 자기 몸을 잘 알 거 같으면 몸의 변화를 분명하게 압니다. 그럼 아, 내가 마음의 동요로 인해서 이렇게 몸이 변하는가 보다 하고 압니다.

몸이 고요하게 되기 위해서 당연히 그런 마음들을 알아차립니다. 그럼 당연히 자연스럽게 감각기관을 제어하게 된다는 거라. 볼려고 하지 않고 들을려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일어나는 번뇌들이 일어나지 않게끔 잘 제어하도록 자꾸 하라는 거라.

 

두 번째가 뭐냐 하면 죽음의 그물을 찢어버려라.

완전하게 깨달음에 이른 아라한이 되기 전에는 죽음의 그물을 찢기는 어렵습니다. 그리하더라도 여러분들은 죽음의 그물을 찢을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것은 번뇌의 그물을 찢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끔 할 거 같으면 그게 연속되면 죽음의 그물을 찢게 되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여겨라.)

 

얼마 전에 웅촌에 누가 땅을 2만평 보시한다 해가지고 그걸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중간에 브로커가 스님에게 2만평 땅을 주면 자기한테 3천평을 달라. 주인 몰래. 그렇게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 스님이 그 땅을 우리 교단으로 해가지고 이름으로 받게되는 건데 3천평은 주인 몰래 그사람 개인 명의로 줘야 된다는 거라. 거짓말을 해야 된다는 거라. 와서 내 생각을 해봤어. 이것을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답이 없어요.

 

그래서 아, 정답은 번뇌를 일으켜야 되는 것이 아니고 번뇌를 끊어버려야 되는 것이다 하고 판단해서, 그 땅 자체를 포기해야 되겠다 하고 마음을 먹게 되었어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내가 그 땅을 얻어야 될 이유가 없다고 판단을 한 거라,

그러고 나니까 진짜 이 그물이 탁 찢어지듯이 그냥 깨끗해져버립니다. 그전에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남에게 피해를 안 주고 다른 사람들을 언짢지 않게 하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 하고 여러 가지를 생각할 때는 굉장히 얽혀있었거든.

 

생각이라고 하는 번뇌는 그런 것들입니다. 그게 아무리 좋은 일을 위한 생각이라고 하더라도 그 번뇌의 그물은 벗어날 수가 없는 거라. 그게 바로 윤회의 원인이 되는 그물들이라는 거라. 죽음의 그물들.

그러한 번뇌의 그물을 찢어버려라. 생각 자체를 거기서 정리를 해서 중단을 딱 해버리고 나면 그물은 찢어져 버린다는 거라.

 

그 두 가지를 얘기를 했습니다. 마음은 제어할 수가 있습니다. 제어할려면 그런 번뇌의 그물을 찢어버리는 것, 그다음에 감각기관을 제어하는 것.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끔 잘 제어하는 것, 이 두 가지를 부처님이 얘기를 한 겁니다.

하기 힘듭니다. 조건이 나쁘기 때문에 더욱더 성공하면 좋은 것들입니다. 더욱 기쁜 것들이라는 거라. 조건이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하라고는 부처님이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까마다 천신이 또 물어봅니다.

"둑가마 위사마 갓찬띠(Duggama visama gacchanti)" 길은 험하고 가기 어렵다. 는 거라

수행하는 길 살아가는 길은 참으로 험하고 가기 어렵다는 거라. 길이 험하다는 거라. 왜 험할까? 바른길로 안 가면 험합니다. 팔정도의 길을 갈 거 같으면 결코 험할 수가 없습니다. 위험하지 않는 길은 팔정도의 길이다 하고 부처님이 얘기합니다.

바른길을 가라는 거라. 더디게 가더라도 험한 일은 당하지 말아라는 거라. 설혹 목표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험한 길로 인해가지고 중간에 낙마하는 일은 없다는 거라. 천천히 가고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바른길을 가라는 거라.

 

그것이 첫 번째라는 거라. 바른길로 가라는 거라.

용이하게 빨리 갈려고 생각하지 말아라는 거라. 천천히 가더라도 그것은 바른 길로 갈 거 같으면 그러면 되는 거라. 바른 견해를 가지고 바른 말을 하고 바른 행동을 하고, 바른 일에 직업을 가지고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라는 거라. 그리고 바른 생각들을 가지고 바르게 알아차리고 바르게 집중하고 하는 것들을 하라는 거라.

엉뚱한데 자꾸 집중하고 엉뚱한 거 생각하고 엉뚱한 길로 자꾸 갈 거 같으면 당연히 그거는 낙마한다는 거라. 그래서 바른 길로 가라 하고 부처님이 얘기합니다.

 

두 번째가 뭐냐하면 험한 길은 수행의 장애일 뿐이라고 생각을 하라.

(험한 길도 하나의 대상으로 받아들여라.)길은 가기 어렵다고 합니다. 험한 길이기 때문에! 험한 길은 수행에 장애입니다. 내가 이걸 가지고 싶다고 주지 않는 걸 가질 것 같으면 반드시 나쁜 처벌을 받습니다. 남이 나를 때렸다 해서 내가 그 사람을 때리면 또 처벌을 받습니다.

위험한 조건에 놓여나게 되면 반드시 그 행한 것에 따라 과보를 받게끔 돼있다는 거라. 그게 험한 길이라는 거라. 왜 스스로 험한 길로 나아가가지고 하기 어렵다고 자꾸 하느냐는 거라. 험한 길로 나가지 말아라는 거라.

 

그 험한 길이 얼마만큼 수행에 방해를 하고, 바르게 살아가는데 방해를 하는가 하는 걸 분명히 알면서 왜 험한 길로 나가느냐는 거라. 마음이 약하면 험한 길을 두려워해가지고 숨어버립니다. 그런다고 해가지고 험한 길을 안 만납니까? 반드시 만나게 됩니다. 집에 아무리 꽁꽁 숨어있는다고 해가지고 위에서 돌이 떨어진다고 하면 그 돌에 안 깔릴 일이 없습니다. 돌이 안 보인다 해서 돌에 안 맞는 건 아니라는 거라. 안전한 장소를 찾아서 아무리 숨을려고 해도 숨을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스스로 험한 길을 가지 않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마음을 항상 험하지 않은 쪽으로 돌려야 됩니다. 도둑질 할려고 하고, 남을 해칠려고 하고, 나쁜 일을 자꾸 저지를려고 하고, 감각적인 것에 자꾸 빠질려고 하고 이런 것들이 험한 길이라는 거라. 그런 길로 가지 않도록 자꾸 만들어라는 거라.

 

마지막에 부처님이 얘기한 게 평온하게 걸으면 평탄하지 않은 길은 없다는 거라.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라. 아무리 험한 길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이 평온하면 그 길은 평탄한 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발을 보면서 발을 봐야되는데 머리는 하늘을 보고 있다는 거라. 눈을 발을 봐야 되지 머리를 쳐들을 것 같으면 그거 어떻게 발이 보이느냐는 거라. 평탄한 길은 스스로 만들 수가 있다는 거라. 바르게 걸어가면 평탄한 길이 된다는 거라. 평탄한 길인데 험한 길을 왜 스스로 만들어놓고 험한 길이라서 가기 어렵다고 말하느냐고 부처님이 얘기하는 거라.

아무리 미운 애기라고 하더라도 그 아이가 내 아이라고 생각할 거 같으면 사랑스러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미운 아기라고 생각하면 이미 자기가 험한 길을 만들고 있다는 거라. 그래서 이 아이를 사랑하기가 참 힘들다 하고 얘기한다는 거라. 자기 아이라고 생각할 것 같으면 왜 사랑하지 않겠느냐는 거라. 하는 일이 왜 귀엽지 않겠느냐는 거라.

 

우리 주변에는 그런 기회들이 얼마든지 옵니다. 분노가 일어나고 욕망이 일어나고 어리석은 마음이 일어나고 하는 것들을 기회로 삼아라는 거라. 아, 내가 평온하게 가는 길로 만들어주는 기회라고 생각하라는 거라. 그게 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얼마나 좋아. 그런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고마워하고 바르고 평탄한 길로 만들어라는 거라. 그럴 것 같으면 돌부리에 채이는 일도 없는 거고, 험한 길로 인해서 낭패를 당할 일도 없다는 거라.

(도의 길을 가긴 어렵다 하더라도 그 길은 갈만한 가치가 있다.)

이게 부처님이 이 까마다 경에서 얘기를 하는 겁니다.

 

불교의 특색을 아주 잘 얘기한 것들입니다.

첫 번째는 뭐냐면 부처님 제자들은 변명하지 말아라는 거라.

변명이라는 것은 통할 수가 없다는 거라. 내가 아무리 실패를 했다. 변명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죠. 그런데 변명하기 위해서 그 실패를 덮어둘 수는 없다는 거라. 그 실패로 인해서 '아, 내가 이 부분은 참 잘못했구나' 자기 스스로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 우선이라는 거라. 그래서 두 번 다시 그 길을 가지 않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불교도들이 따라야 될 길들은 변명할려고 하는 길이 아니라 패배를 인정하는 길이라는 거라. 잘못한 것에 대해서 잘못한 것을 인정하는 길이 첫 번째 길이라는 거라.

 

두 번째가 뭐냐하면 어렵기 때문에 더욱 노력할 수 있다는 거라.

쉬울 거 같으면 누가 자꾸 노력할려고 하겠느냐는 거라. 여기 까마다 천신도 마찬가지고 뭐 하고 싶다 할 거 같으면 그게 뚝 이루어져. 원하는 거 다 이루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을 거 같으면 물론 좋겠죠. 그런데 그거 말고 어떤 이익이 있느냐는 거라. 수행이 진전이 돼? 마음이 증장이 돼? 아니면 도와 과를 이루어? 아니면 삼매를 이루어? 마음이 항상 고요하게 돼있어? 어떤 것들을 이룰 수 있느냐는 거라.

어려운 것들이 닥치고 하기 힘든 것들도 내가 뚫고 나가야 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할 가치가 있다는 거라. 아무리 노력해도 얻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할 가치가 있다는 거라. 한평생 수행해도 수행에서 결과물을 얻기가 참 어렵다. 그래도 그럴 가치가 있다는 거라.

 

그다음에 세 번째 얘기하는 것이 뭐냐면 조그만한 결과가 나왔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멈추고 기뻐하지 말아라는 거라. 마지막 해탈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말아라.

끊임없이 자꾸 나아가도록 하라. 중간 정도 가서 그쳐버릴 것 같으면 꼭 마찬가지라는 거라. 윤회하는 거는. 끊임없이 반복해서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거라. 그런 끊임없는 힘을 길러주는 것은 나중에는 다른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과 같이 스님에게 탁발하는 이런 공덕들, 계율을 잘 지키는 공덕들, 이런 것들이 힘이 됩니다. 수행에 힘이 부친다 할 경우에는 이것들이 뒷받침을 해줍니다.

거짓말 같죠? 그냥 이것들 필요 없이 오로지 자기 수행만 하면 될 것 같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힘이 없습니다. 그걸 뒷받침해줄 수 있는 것은 바라밀밖에 없습니다.

 

얼마만큼 내가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자비로움을 항상 생활화하여서 넓혀 있는가? 얼마만큼 계율을 잘 지키면서 바르게 살아가고 있는가? 얼마만큼 남에게 베푸는 것들, 스님에게 공양 올리는 것들을 열심히 했는가? 이런 힘들이 뒷받침이 됩니다. 수다원 금방 이를 것 같죠? 이 힘이 없으면 절대 못 이룹니다. 마지막에 탁 밀어주는 건 이 힘밖엔 없습니다.

 

그래서 자비로운 마음을 가질려고 하고 남에게 베풀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를 잘 방호할려는 마음들, 이런 마음들을 등한시하면 안 됩니다. 무조건 지혜만 계발하면 될 것 같지만 그건 저절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라.

이게 불교의 특색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까마다 경을 바탕으로 해서 잘 행해나가야 됩니다.

실천하기 어렵다 해서 실천 못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만족하기 어렵다 해서 만족 안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마음을 제어하기 어렵다 해서 마음을 제어 못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거라. 길이 험하고 가기 어렵다고 해서 그 길을 못 가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부처님이 잘 가르친 것을 따라서 잘 걸어가는 그런 제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