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1~2012 일상수행법문

감정_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판단기준 (20110719)

담마마-마까 2021. 6. 3. 08:45

https://youtu.be/huaOQvZPwj0

* 감정_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판단기준 (20110719)

 

실라눗사띠 부분은 언제 시간이 되면 내가 한번 다시 자세하게 해줘야 될 부분이라는 겁니다..

아눗사띠(anussati, 隨念) 부분 중에 실라눗사띠가 아직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아가지고, 실라눗사띠(戒隨念) 뿐 아니라 마라나눗사띠(死隨念)도 마찬가지고, 짜가눗사띠(施捨隨念)도 마찬가지고, 데와따눗사띠(天隨念)도 마찬가지고, 잘 모르는 부분들인데, 그래도 여러분들이 가장 알기 쉬운 것들이 그 실라눗사띠 부분입니다. 그거는 자세하게 자꾸 읽어보도록 해야 됩니다.

 

왜 실라눗사띠(Sīlānussati, 계수념) 합니까? (수행자 대답)

또, 다른 사람들은?

물론 계율이 밑바탕이 돼서 선정 삼매를 이루고, 또 지혜가 개발되고 하는 것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말고 또 다른 이유는 어떤 것이 있을까?

후회하는 일들을 없게끔 만들어주기 위한 것들입니다!

 

첫 번째가 실라눗사띠를 하면 후회하는 것들을 하지 않기 때문에 후회할 일들이 없다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는 뭐냐하면 부정하는 것, 자기 책임회피 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게끔 해줍니다.

그게 인제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것들입니다.

 

후회와 부정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의 동요나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들이 근본적인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라눗사띠를 해서 사마디로 넘어가진다 하고 얘기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15페이지 넘어 되는 거, 아직 그 뒤에 부분은 다 된 것은 아니지만 쭉 읽어보시고 그걸 계속 머릿속에 염두에 두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마지막 실라눗사띠 게송은 반드시 외우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오늘 하루도 내가 계를 잘 지켰는가. 깨지지 않게끔 했는가.' 이렇게 자꾸 쭉 회상을 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이띠삐소 바가와 아라항 삼마삼붓도"는 다 외우죠? 그거는 붓다눗사띠입니다. 담마눗사띠도 하죠. 상가눗사띠도 하죠. 만날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실라눗사띠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사람의 감정에 대한 부분 얘기들을 하겠습니다.

스님들은 좋은 거 안 챙길 거 같죠? 그런데 챙깁니다. 특히 처음 출가하는 스님들은 뭘 많이 신경을 쓰느냐 하면 신발, 슬리퍼. 그러니까 더운데 있으니까 아침 일찍 탁발을 나갈 때는 신발을 벗고 나갑니다. 그때는 신발이 필요 없죠. 나머지 시간에는 대부분 신발을 신고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때는 물론 신발이 필요 없었겠지만은 지금은 다들 현대생활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출가한 스님이라도 그것으로부터 바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슬리퍼들을 신게 됩니다. 그래서 외출을 할 때나 이럴 때는 대부분이 신발을 신고 나갑니다.

물론 종파에 따라서 담마윳띠까 같은 경우에는 외출 할 경우에도 신발을 벗도록 이렇게 하고는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거는 강제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고 가는 사람들도 일부는 있습니다. 대부분 스님들은 신발을 신게 돼있습니다.

 

그런데 신발이 좀 튼튼하면 좋은데 대부분 튼튼하지 못합니다. 금방 고리 같은 게 빠져버리고 또 쉽게 떨어지고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튼튼한 신발을 얻을려고, 구할려고 많이 노력들을 합니다. 스님들이 직접 그걸 구하지 못하니까 어떻게 해야 돼? 일부러 신발을 튼튼하게 만듭니다. 실 같은 걸 가져와가지고 일부러 신발을 더 튼튼하게 만들고, 기존에 있는 신발들을 가지고 그렇게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보기 싫으면 그 위에 색깔을 칠하기도 하고 해서 보기 좋게 만들고 그렇게 합니다. 이게 대부분 처음 출가하는 스님들이 가지는 마음입니다.

 

여러분들도 가정에 어린애들이 있으면 그러죠? 좋은 신발 가질려고 그럽니다. 요즘은 메이커라는 게 있어가지고 메이커 있는 신발들을 가질려고 그러죠.

그럼 엄마들이 뭐라고 꼬셔요? 지금 사줄 형편이 된다고 할 거 같으면? "이거 사주고나면 뭐 해야 된다"하고 꼬십니다. 쉽게 말하면 "매일같이 하루 한 시간씩 공부해야 된다."

애들은 그거 사려는 욕심 때문에 당연히 한다고 그러지.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안하죠? 하루나 이틀이나 하고 나면 '땡' 종쳐버립니다.

 

부처님 당시 때도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숲속에서 사는 스님들은 발을 다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걸 보호하기 위해서 요즘 말로 할 거 같으면 짚신을 신습니다. 짚신이 쉽게 떨어지니까 밑에 또 덧대고 덧대고 이렇게 합니다. 그럼 보기 싫어지니까 위에다 예쁘게 칠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신발 유지 관리하는 데만 온통 정신이 다 쏠려져 있는 거라.

 

그 모습을 보고 부처님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하고 싶은 것 하고, 해야 할 일 하고 구분하지 못하느냐?" 하고 얘기합니다.

여러분들은 하고 싶은 거 많죠? 또 하기 싫은 것도 많죠?

그런데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구분은 합니까?

 

보통 사람들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은 보통 세 가지라고 얘기합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또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 것들

그렇게 세 가지라고 얘기합니다.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 좋아하지 않는 것, 뭐 그냥 무덤덤하게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것이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집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싫어하고, 다른 사람을 뭐 그냥 그렇게 생각을 하고 그렇게 합니다. 똑같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적용을 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적용을 한다는 겁니다.

 

이 세 가지로써 사실은 인간들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은 불교에서 보면 그걸 "번뇌"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좋아할려고 할 것 같으면 집착을 하게끔 되고, 싫어할려고 할 것 같으면 성냄이 있어야 되는 거고, 또 무덤덤하게 할 것 같으면 게으름을 피우게 되고. 탐·진·치라고 하는 번뇌가 항상 작용을 하게끔 된다는 겁니다.

 

거의 본능적으로 하게끔 되죠? 그런데 실제로 본능적으로 한 겁니까? 그렇지는 않죠? 본능적인 게 아니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에게 맞는 이유를 씌웁니다.

좋아하는 것은 뭣 때문에 좋아하게 되고, 싫어하는 것도 무엇 때문에 싫어하게 되고, 그리고 그 이유에다가 논리적으로 끼워 맞춥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북한은 나쁘다. 싫다." 그러면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결론은 나중에는 싫어하는 것으로서 결론이 나버립니다. 북한이 나한테 뭘 어떻게 한 것도 아닌데. 그런데 이유를 붙여서, 어떤 논리는 붙이든지 싫다는 쪽으로 귀결이 되도록 된다는 겁니다.

 

감정적인 것이지 절대 이성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성적이라 할 거 같으면 적어도 싫어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다 싫어해야 되는 거고, 좋아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해야 되는데 그렇지는 않거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게 되는 거고, 그래서 항상 부딪침들이 있게끔 되는 겁니다.

우리가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이성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꼭 옳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 해서 다른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싫어하는 것이라서 다른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는 겁니다.

 

좋아하는 것에는 '탐내는 번뇌'가 작용을 합니다. 탐내는 번뇌만, 탐심만 있을 거 같으면 또 문제가 없는데, 좋아하는 것에는 항상 거기에 따라서 허세를 가지게끔 됩니다. 그리고 내 자신이 오만한 것, 이것이 좋아하는 것에는 항상 따라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그 좋아하는 것들을 그냥 무덤덤한 느낌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즉시! 그런데 대부분은 자기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하는 허세가 있고, 오만한 마음들이 있기 때문에 그걸 안 바꿀려고 합니다.

 

그다음에 싫어하는 것에는 보통 '성냄이라고 하는 번뇌'가 있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 성냄이라는 번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이 질투하는 것, 낙담하는 것, 또 후회하는 것, 이런 것들이 같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다른 한편으로는 똑같은 현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싫어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라 해서 좋아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을 가지게끔 됩니다.

 

싫어하는 것도 내가 좋아해야만이 싫어할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달라붙어야만이 싫어하게끔 된다는 겁니다.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났으면 그 싫어하는 마음이 계속 싫어해버릴 것 같으면 떠나버립니다. 그런데 거기에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싫어하는 마음이 계속 유지가 되어나가는 겁니다.

'누가 밉다' 미워하는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미워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붙어있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미웁게 되는 겁니다.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좋아하는 것도 계속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싫어하는 마음이 같이 거기에 붙어있습니다.

 

왜 이렇게 서로 번뇌가 같이 합쳐지는가?

그걸 부처님이 "어리석기 때문이다"하고 얘기합니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어리석음, 무지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 무지는 자기 자신에게 매달리는 것! '자아(自我) ''라고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무지해진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나'라고 하는 것이 없을 거 같으면, 틀림없이 좋아했다가 싫어하는 감정이 없을 거 같으면 거기서 그냥 끝나버립니다. 싫어하는 것도 거기서 일회성으로 끝나버립니다. 그런데 이게 합쳐지는 것은 무지로 인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감정에도 무지가 들어가 있고, 싫어하는 감정에도 무지가 들어가 있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무지만 작용을 할 거 같으면 우리는 행동으로는 일어나질 않습니다. 화를 내지도 않고 또 욕심을 부리지도 않게끔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는 게 인간의 기본적인 패턴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다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그래서 먼저 그런 것들에 대해서 판단을 하고 나서 행동들을 합니다. 좋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사는 거고, 싫기 때문에 배척을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판단해가지고 행동하는 것들이 다 좋은 방향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보면 좋지 않은 방향들로 연결들이 많이 됩니다.

그래서 행동하는 것들이 좋고 싫음으로 연결되는 것이 꼭 바른 것은 아니라는 거라. 그것은 우리가 항상 생각들을 해봐야 되는 부분입니다.

 

부처님은 그걸 뭐라고 했느냐면

"좋아하는 것들과 해야 할 일들, 그리고 싫어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구별할 줄 알아라" 하고 얘기합니다.

신발을 꿰매고 하는 것은 해야 할 일입니다. 또 신발을 꿰매는 것은 좋아하는 일에도 들어갑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에만 매달릴 것 같으면 계속적으로 신발에 마음을 두게끔 됩니다. 그래서 정작 내가 지금 해야 될 다른 일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겁니다.

 

'하고 싶다고 하는 마음은 욕구이기 때문에 번뇌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좋은 것, 싫은 것, 좋지도 싫지도 않는 것이라고 판단을 하지 말고,

여러분들은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지 않은 것, 그것 말고 해야 할 일이라고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야 된다 하는 겁니다.

불교에서는 이 세 가지로써 판단기준을 잡아라 하고 얘기합니다.

 

해야 할 일인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인가? 해야 할 일일 것 같으면 지금 해야되는 거고, 하지 말아야 될 일일 것 같으면 하지 말아야 되는 거고,

좋아하는 것이 생겼다. 그러더라도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지금 그것을 좋아해야 되는가 판단해서 좋아해야 될 일 같으면 하는 것이고, 좋아하지 말아야 될 것 같으면 하지 말아야 된다는 거라.

 

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지금 내가 해야 될 일일 것 같으면, 하고 싶지 않은 거라도 내가 지금 해야 되는 거라.

그런데 하지 않아야 되는 것 같으면 하지 말아야 되는 거라.

그래서 해야 할 일인가, 해서는 안 될 일인가를 분명하게 판단하라 하고 부처님이 얘길합니다.

 

신발 그 짚신 꿰매는 것들이 얼마만큼 사람 마음을, 그 스님 마음을 붙잡아두기 때문에 부처님이 그런 얘기릏 했겠어요?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그것에 끝없이 매달립니다.

정작 그 스님이 해야 될 일, 도량 청소하는 일이든지, 경전을 배우는 거라든지, 수행을 해야되는 일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등한시해버린다는 거라.

자꾸 그쪽으로 개발되니까 어떻게 돼요? 자기 자신의 짚신만 꿰매는 것이 아니고 찾아다니면서 남의 신발까지도 해주고 있는 거라.

 

그래서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은 행복해진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 문장의 말미에 부처님이 얘기를 합니다.

왜? 생각해서 뭐가 해야 될 일이라고 판단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 있는 것들이 내가 해야 될 일이다 하고 판단이 되면, 그것을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떠나서 하게 된다는 거라. 그러면 당연히 행복해진다는 거라.

하지 말아야 될 일이라고 판단이 들면 그걸 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런 사람들은 행복해진다는 거라. 해를 가져오고 이익이 없는 것이라고 할 것 같으면 안 한다는 거라.

그것이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러면 그 사람은 행복을 가져오게끔 된다는 거라.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고, 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관계없이 하는 것들이라는 거라.

그래야만이 번뇌들이 일어나는 것들을 멈출 수가 있다는 거라.

좋아하는 것에 따라서, 싫어하는 것에 따라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오히려 번뇌를 더 기르는 쪽으로 나아가진다는 겁니다.

그와 반면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로 구분해서 행동하고 판단하고 할 것 같으면 이익과 행복을 가져온다 하고 부처님이 얘길합니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좋고 싫은 것에 따라서 행동들을 합니다. 그래서 수행도 자기 자신에게 좋으면 더 할려고 합니다. 싫으면 벗어날려고 합니다. 좌선이 좋으면 좌선을 더 할려고 하고, 경행이 싫으면 경행을 짧게 할려고 하고.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있는 것, 좌선을 통해서 이익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좌선을 더해도 됩니다. 그런데 단지 좋아하는 것에 따라서 편안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더 한다고 할 것 같으면 그건 하지 말아야 될 것들입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내가 지금 해야 될 일이라고 판단을 해서 여러분들이 수행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도 앉아서 수행하면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따라서 수행을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이미 틀려버린다는 겁니다.

 

모든 것을 세 개로써 나누는 것들은 그래서 좋아하는 것은 좋아한다고 알아만 차려라고 그렇게 얘기하고, 싫으면 싫다고 알아차려라고 얘기하고, 그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이라는 거라.

좋은 느낌이 있으면 '아, 좋은 느낌이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그 느낌은 분명히 사라지게 돼있습니다. 모든 현상은 계속되는 것이 아니고 변해가게끔 돼있으니까. 좋은 느낌인 것을 알아차리면 그 느낌은 변해가서 사라지게 돼있다는 거라.

 

그래서 아, 좋은 느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경우에는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는 것들이라는 거라. 싫은 느낌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고.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들이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좋은 느낌이나 싫은 느낌에 따라서, 그것을 판단하고 행동할 것 같으면 지금 해야 될 일들을 하지 않는 것들이 돼버립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해야 할 일을 해야 되는 겁니다.

싫은 것들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 아니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안 해야 되는 것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적어도 이것으로써 판단기준을 잡아야 됩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그것을 잘 구분해서 살아가도록 해야 됩니다.

수행에서 해야 할 일 또 일상 생활에서 해야 할 일,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판단해서 그에 따라서 살아갈려고 해야 됩니다.

그래야 만이 내가 방일하게 되는 것들을 멈출 수가 있고, 알아차림을 항상 몸에서 떨어지지 않게끔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오늘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얘기들을 했습니다.

질문 있는 사람 질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