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의 목표는 해탈 - 성스러운 침묵 (20110721)
오늘은 새로운 사람이 한사람 왔는데 정신적인 부분에 문제가 좀 있다는 얘기를 합니다. 조용하게 한번 여러분들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불교에서 목표로 하는 것들은 해탈입니다.
해탈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뭔가 하는 것입니다.
선정삼매를 닦는 분들은 선정으로 인해서 해탈에 이르도록 합니다.
위빳사나 수행하는 분들은 무상·고·무아라고 하는 것들로부터 해탈에 이르도록 합니다.
두 가지 수행법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엄격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리고 그 두 가지 수행법에 공통적으로 있는 게 있습니다.
수행을 해나가다 보면, 반드시 먼저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이 멈추어져 버립니다.
그리고 뒤따라서 말로 하는 언어적인 것들이 멈추어져 버립니다.
그리고 행동하는 것들이 악행을 짓지 않는 것들로서 되기 때문에 나쁜 행위를 하는 것들이 멈추어져 버리게 됩니다.
이걸 보통 세 가지의 침묵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나의 제자들은 두 가지만 하라 하고 얘기합니다.
열심히 수행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침묵하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왜 침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가 하면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생각을 하고 있으면 불행하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머릿속에 생각이 많으면 당연히 정신적인 힘이 약해져버립니다.
정신적인 힘이 약해지면 더불어서 몸도 약해집니다.
몸이 약해지면 당연히 몸에 붙어있는 머리-뇌라고 하는 것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극에 금방 노출돼버리고 자극에 반응을 빨리 하게끔 되는 겁니다. 뇌가 그렇게 약해지면 정신적으로 심한 병에 걸리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부처님이 이런 것들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되는 것이 "생각의 침묵과 말의 침묵, 그대신에 열심히 행하라" 그럽니다.
행동으로써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하라. 생각하고 말할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끊임없이 행동하라. 걸으면서 걷는다고 알아차리고, 밥 먹으면서 밥 먹는다고 알아차리고, 끊임없이 움직임을 가져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시간에 쫓기듯이 일이 많아서 한창 바쁜 사람들은 말할 여가가 없습니다. 생각할 여가도 없습니다. 그건 어떻게 보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사치입니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보면 말을 할려고 하고, 또 말할 상대가 없으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생각을 굴리게 됩니다. 가만히 한번 보십시오. 그런 것들이 자기 파괴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왜? 생각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잣대로써 하게끔 됩니다.
극히 주관적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주관적인 게 아닙니다. 밖에 있는 대상을 보고 내가 그것을 본 것을 봤다고 알아차리고 하는 것은 객관적인 겁니다. 내가 본 것, 다른 사람이 본 것, 이런 것들은 주관적으로 볼지는 몰라도 보여지는 대상은 객관적인 겁니다. 누가 보든지 똑같은 겁니다.
단지 보는 사람이 그것을 보면서 주관적으로 '나'라고 하는 것이 연관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주관적이 될 뿐인 것이지 원래 대상은 있는 그대로 존재를 하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것들입니다.
말하고 머리로 생각하는 동안은 움직이지 않을려고 합니다. 그런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게을러 보입니다. 나는 이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움직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생각, 자기의 것만 가지고 계속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안 움직일려고 합니다.
이걸 빨리 고쳐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걸 고쳐줘야만이 그 사람은 병도 낫고 마음도 행복하게 되는 겁니다. 그걸 부처님은 두 개의 쇠사슬이 용접이 돼서 딱 붙어버린 것과 같다 하고 얘기합니다.
하나는 생각하는 것 하나, 또 하나는 '나'라고 하는 것 하나.
이 두 개가 딱 붙어버려가지고 녹아내려버리기 때문에 떨어질 줄을 몰라요.
둘 중에 하나만 떼어내도 적어도 그런 정신적인 병들이나 아니면 여러 가지 망상을 피우는 것들이나 말을 자꾸 하려고 하는 것들이나 이런 것들을 피할 수가 있는데 이걸 못 떼어내는 거라. '나'라고 하는 것들이 없다고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들을 하지 말든지.
생각하는 것들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생각 못하게끔 끊임없이 움직여주면 됩니다.
'나'라고 하는 것들을 없앨려면 어떻게 해야돼요?
무상·고·무아로 알아차리면 됩니다.
이것을 부처님은 '성스러운 침묵이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물론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생각도 해야 되고 말도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그 생각과 말이라는 것은 바른말, 바른 사유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정어, 정사유 라고 얘기합니다. 반드시 정어와 정사유가 필요하게끔 됩니다.
무니(Muni)라고 하는 침묵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힌두교 같은 경우에는 무니라고 할 것 같으면 말을 하지 않는 침묵하는 성자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그런 입장을 취하지 않습니다.
바른말을 하고 바른 생각을 하는 것이 불교에서는 무니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먼저 침묵해야 될 첫 번째가 몸의 침묵입니다.
살생하지 않는 것, 도둑질하지 않는 것, 삿된 행위들을 하지 않는 것, 이 세 가지가 몸의 침묵이라고 그럽니다.
내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 할 것 같으면 먼저 이것을 확립을 해야 됩니다. 해칠려고 생각을 안하려고 먼저 하지 말고 살생하는 것을 먼저 피하십시오. 남에게 베풀어주는 마음을 가지려고 먼저 하지 말고 도둑질 하는 것을 피하십시오. 성행위하는 것들을 정당하지 않는 것들은 피하도록 하십시오. 그걸 몸의 침묵이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간단합니다. 여러분들은 거의 이건 잘 안 합니다. 그러면 단연코 이런 행위들은 하지 않겠다 하고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됩니다. 하기 쉽죠? 하기 쉽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해야 되는 것이 말의 침묵!
거짓말하지 않는 것, 어떤 경우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사회에서는 때로는 사소한 거짓말은 필요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절대 그렇지않습니다. 어떤 경우도 바른말을 하는 것, 거짓말을 하면 안 됩니다.
두 번째가 나쁜말을 하지 않는 것. 욕설이나 남을 해칠려고 하는 이런 나쁜말, 조악한 말, 조잡한 말들을 하지 않을려고 하는 것.
그다음이 남의 말들을 옮기는 것들을 피해야 됩니다. 여기서는 이말 하고 저기서는 저말 하고 하는 것들을 반드시 피해야 됩니다. 들은 것을 그대로 옮길 경우에는 들은 것 그대로를 옮겨야 되는 것이지, 자기의 생각을 거기서 한자라도 보태면 안됩니다.
그다음은 잡담. 거의 대부분 법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들이 아니면 잡담의 부류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에 이익이 있게끔 행복하게 되는 말이 아니면 전부 잡담에 들어가버립니다. 이렇게 네 가지 말의 침묵을 지키도록 해야 됩니다.
그것도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한 겁니다.
그다음에 해야 되는 것이 마음의 해탈입니다. 마음의 침묵입니다.
그 얘기는 해탈에 이르는 것들을 얘기합니다. 마음의 침묵을 지키기가 참 힘이 들겁니다. 선정에 들면, 제2선정에 들면 이 성스러운 침묵을 지키게끔 됩니다. 생각하는 것들이 끊어져버리기 때문에 마음의 침묵이 유지가 됩니다. 그런데 그 생각하는 것, 망상 피우는 것들이 완전히 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참 지나고 나면 다시 또 일어납니다. '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불현듯 '요렇게 하니까 어, 수행이 잘되네' 이게 전부 다 망상들입니다.
목갈라나가 직접 그랬거든. 분명히 자신은 2선정에 들어 있는데도 한참 시간이 30분 정도나 지나고 나니까 그런 망상들이 일어난다는 거라.
그래서 부처님이 그럽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인식하는 것, 마음에서 개념을 가지는 것, 아는 것들이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생각들은 일어나게 돼있다. 그대신에 끊임없이 그런 것들이 일어났으면 일어났다고 알아차리고 놓아버리고, 계속 연습하다 보면 완전하게 마음의 침묵, 망상피우는 것들이 끊어진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선정에 들었을 때 2선정에만 들면 말하는 것은 이미 끊어져버립니다.
1선정에서는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2선정에 들면 말하는 것은 끊어지더라도 머릿속에서 말하는 것들은 끊어지지를 않습니다. 그걸 끊을 수 있는 것은 내가 끊임없이 그 선정을 자꾸 닦아서 그것이 자꾸 깊어지도록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지는 개념을 정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만이 마음의 침묵이 오게 되는 겁니다.
자!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가 감정을 반드시 제어하도록 하십시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좋고 싫고 하는 감정들이 일어나는 것들을 반드시 제어하려고 해야 됩니다.
싫어하는 것들이 있다 해도 싫어해버리면 안되고,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해서 좋아해버리면 안됩니다. 감정을 반드시 제어하려고 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자비의 명상을 해야 됩니다. 감정들이 일어나는 것은 좋고 싫은 것에 끄달려들어가 버립니다. 그러면은 생각은 끊임없이 회전하게 됩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들을 자비의 명상으로 반드시 대체시켜주어야 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내가 행복하기를' '모든 이들이 행복하기를' '괴로움이 없기를' 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계속 반복적으로 해야 됩니다.
마음에서 망상을 피울 수 있는 근거들을 마련하면 안됩니다.
그다음에 감정을 제어할려고 할 거 같으면 두 번째 해야 되는 것이 뭐냐 하면,
반드시 그 감정이 일어난 것을 알아차려라.
'아,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거기서 딱 멈출 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을 따라갈려고 하면 안됩니다. 어떤 경우든지 지금 현재 나에게 일어나는 것들은 감정적인 것이다 하고 판단을 해야 됩니다. 그걸 멈추어야 됩니다.
쉽게 말하면 머릿속에서 망상을 피우고 머리를 회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면 안됩니다. 나도 모르게 그것들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고 앉아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반드시 하십시오. 일어났으면 지금 현재는 그거를 완전히 못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어났네' 하고 탁 버리는 것은 틀림없이 자기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알아차려서 거기서 정지하라.
그러고 나서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들은 자비의 명상으로써 반드시 대체를 하라.
이 두 가지를 먼저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해야 되는 것들은 뭐냐 하면, 실천되지 않는 것들은 어떤 경우도 하지 말아라.
생각을 하더라도 생각하는 것들이 내가 몸으로 실천될 수 있는 것들이면 생각해도 됩니다. 그런데 실천되지 않는 생각은 어떤 경우든 하면 안됩니다.
말하는 것도 말을 해가지고 나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행복이나 이익이 올 거 같으면 말을 하십시오. 그런데 그렇지 않을 거면 어떤 경우든 하지 마십시오.
쉽게 말하면 말하고 생각하고 하는 것이 관념적이 됐을 때는 어떤 경우든 안된다는 겁니다. 실천되지 않는 말이나 생각은 어떤 경우도 반드시 끊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상·고·무아입니다. 모든 것들은 변하게 되어있다. 아주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꾸 인식할려고 해야 됩니다. 멈춰져 있는 법이 없습니다. 망상을 하더라도 끊임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하게 돼있습니다. 그 사실을 빨리 이해를 해야 됩니다.
모든 것들, 생각하는 것도 '아, 참 무상한 것이다' 하고 자꾸 관찰할려고 하고, 그렇게 알려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하는 것이 무상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을 안할려고 나중에는 합니다. 점점 더 생각하는 것들, 실천되지 않는 생각들을 안 하게끔 됩니다.
말도 마찬가집니다. 모든 세상의 것들을 전부 무상·고·무아로써 봐야 됩니다. 앞에 있는 사람이든 아니면 내가 먹는 밥이든 세상의 모든 것들은 무상한 것이다,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실체가 없다 하고 분명히 자꾸 알도록 해야 됩니다.
두 번째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은 실천성이 부족한 관념들은 어떤 경우든 피하라.
실천되지 않는 것을 하면 뭐할 거라? 뭐할 거라? 쉽게 말하면 조건을 수반하지 많는 망상은 전부 해로운 것이라고 생각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자기 스스로의 조건을 만드는 것들을 제외한, 다른 조건들을 만들지 않는 것들은 전부 해로운 것이라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은, 두 번째는 망상하는 것들입니다. 생각하는 것들이 실천이 되지 않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라 하는 겁니다.
세 번째는 말하는 것들을 최소화하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보면 말하는 것들이 앞뒤가 조리가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뭔 말을 했는지 자신도 잘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 말을 왜 자꾸 하려고 하느냐는 거라. 하지 말아라는 거라. 최소한으로 하라는 거라. 말하는 것은 최소한으로 하라는 거라.
"내가 선원에 갑니다" 한 번 하고 나면 끝나. 그런데도 최소한으로 안 하니까 내가 안 했는가 보다 하고 또 망상을 피우게 됩니다. 그러면 또 "내가 선원 갔다 올게" 또 얘기합니다. 또 다른 생각하다 보면 그것을 또 잊어버려. 그럼 또 한번 얘기해요. 다른 패턴으로 계속적으로. 그런 패턴들을 아예 끊으라는 거라. 한번 얘기했다 할 거 같으면 어떤 경우에도 그 이후에는 다시는 하지 말아라는 거라.
말하는 것을 반드시 최소화하라. 되도록이면 말을 안 하고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그런데 사람의 관계에서 말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대신에 말하는 것들은 반드시 최소한으로 하라.
그럴려면 먼저 말하는 것을 내가 선택해야 됩니다. '내가 선원에 가야되겠다' 하고 말하는 것을 먼저 선택을 해야 됩니다. 선택을 머릿속에서 했을 거 같으면 반드시 실행하라는 거라. "내가 선원에 갔다오겠습니다" 하고 실행을 하라는 거라. 그러고 나서는 '아, 말했다'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그러고 나서는 다시는 똑같은 말을 반복을 하면 안된다는 거라. 거기서 딱 끝내는 거라.
단호하게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부분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로 해야 될 것은 수행하라.
망상을 피우고 또 쓸데없는 말을 반복해서 많이 하게 되고, 또 실제 행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하게 되는 것들을 바꿀 수 있는 것들은, 수행실천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자꾸 수행할려고 해야 됩니다. 어떤 경우든지.
사마타 수행을 하든 위빳사나 수행을 하든 어떤 경우든지 자꾸 수행을 할려고 해야 됩니다. 내가 지금 뭘 해야 되는가를 분명하게 알아차려서 그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것.
내 소리가 들립니까? 들려요? 그러면은 지금 당신이 할 것은 듣는 겁니다. 어, 내가 지금 소리를 듣고 있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그 소리를 인식하는 것, 그걸 해야 됩니다. 그걸 안 하고 있으면 어떻게 돼요? 머릿속에서 망상피우고 있습니다. 다른 생각하고 있는 거라.
어떤 경우든지 그 소리가 있는데, 그 소리를 내가 분명하게 인식하고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거 같으면 나는 망상피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망상 피울 때는 내가 실천을 못하기 때문에, 움직이지도 않고 또 소리들리는 움직임도 알려고도 하질 않습니다. 퍼뜩 정신을 차려야 됩니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됩니다. 망상을 피우고 있는 건지 소리를 듣고 있는지 분명하게 자꾸 알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이런 것들을 성스러운 침묵이라고 그럽니다.
몸과 말과 마음의 침묵을 가지도록 할 것, 그래야만이 정신적인 에너지, 또 육체적으로 질병이 드는 것,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들을 방어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누구든지 이와 같이 실천해서 성자의 지위에 오르도록 자꾸 노력해야 됩니다. 그런 자들을 무니(Muni) 모네이야(Moneyya) 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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