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과 법칙 (20110802)
스님 소리가 들립니까? 소리가 들리는 것은 어떻게 해서 들리는 거라? 여기 스님이 소리를 내면 그 소리가 파동이 되어서 여러분들 귀에 와 닿고, 그것을 여러분들이 인식하죠. 그러한 일정한 패턴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기에 있는 나무는 어떻게 해서 자랍니까? 저것도 일정한 패턴이 있죠? 햇빛이라는 것, 바람이라는 것, 물이라는 것 이런 일정한 패턴들을 가지고 성장을 하게 됩니다.
세상은 이렇게 일정한 패턴들을 가지게끔 됩니다. 그런 패턴들을 물질적인 것으로서 발견하는 것들을 보통 '과학'\이다'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발명했다는 것은 새로운 패턴들을 만들어냈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의학이라는 것도 꼭 마찬가지로 몸의 신체라고 하는 패턴들을 발견하는 것들입니다. 의학 그리고 그것을 의학의 발전이라고 얘기합니다.
논리학이라고 하는 것은 사고의 패턴, 생각하는 패턴들을 만들어내는 것,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패턴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는 다 일정한 패턴들을 지니게끔 되어있습니다.
그걸 불교에서는 "인과법칙이다"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인과법칙의 첫 번째 게송이 뭐냐하면 '이다빳짜야따-(idapaccayatā)'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것에 의해서 이것이 생겨난다고 하는 성질' '인과성' '인연성' 그렇게 얘기합니다.
조금 전에 우리 막내가 문을 열었으니까 들어오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거와 마찬가집니다. 왜? 막내 그렇게 힘이 없냐? 지쳤냐? (수행자 대답) 그래.
그런데 그러한 인과성을 부정을 해버리면 곤란한 일들이 많이 생겨납니다. 돈이 있으면 이것 저것을 살 수 있는 결과가 됩니다. 돈이 없으면 당연히 이것 저것을 살 수가 없습니다.
어제 한 스님이 왔어요. 얘기하는 중에 나한테 그런 질문들을 하는데, 아, 요즘에 수중에 돈이 없어서 죽겠다는 거라. 그래서 얼마가 있는데 수중에 돈이 없어서 죽겠다고 그러느냐고 하니까, 그거는 대충 얼만지는 모르겠는데 요즘은 한 달에 백오십만원 쓰기도 힘들다고 그렇게 얘기하는 거라. 그래서 이 양반아, 백오십만원 쓰면 많이 쓰는 거지 그걸 가지고 그래쌌느냐. 나는 한 달에 삼십만원 가지고 산다. 내보고 그럽니다. 방법 좀 가르쳐주래.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사느냐고.
물론 그 스님도 돈이 많았을 때는 많이 썼겠지. 그런데 적게 됐을 때는 그 인과성을 자꾸 부정하려고 하는 거라. 없으면 못 쓰게 된다는 법칙을 분명하게 이해할 것 같으면 안 쓰면 되는 거라. 그런데도 그걸 부정할려고 하니까 어떻게 돼요? 죽겠다 소리를 내는 거라.
인과법칙의 두 번째 얘기하는 것이 뭐냐 하면, '따타따-(tathatā)' 그럽니다.
'이것들은 구체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인과는 구체적인 겁니다. 구체적이지 않은 인과는 없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구체적이게 됩니다.
사리불 존자가 단 것을 좋아해가지고 과자를 먹다가 자기 상좌 몫으로 단 것을 남겨뒀어요. 그런데 시간이 다 되어도 상좌가 안 오는 거라. 안 오니까 그 단 것을 홀라당 먹어버렸어요. 그러고 나서 상좌가 당도를 했어요. 그래서 상좌한테 “야, 미안하다야. 내가 니한테 줄라고 이 단 것 초콜렛을 남겨뒀었는데 니가 안 오기에 지금 올 줄 모르고 내가 홀라당 먹어버렸다.”
그러니까 그 상좌가, “스님은 그 단 것을 내줄라고 남겨놓았으면 끝까지 그걸 남겨둬야지, 내가 좀 늦게 온다고 그걸 홀라당 먹어버렸냐” 그리하니까 이 사리불 존자가 그때 결심을 합니다.
"아, 내가 다시는 단 거 안 먹는다." 이렇게 구체성을 띠는 겁니다.
인과의 법칙은 반드시 구체성을 띠게끔 돼있습니다. 왜 무슨 원인으로 인해서 이런 원인이 생겼고, 어떤 결과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구체성을 띠게끔 돼있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뭐냐면, '아위따타따-(avitathatā)' 그럽니다.
'이 법칙은 사실이다. 진리이다.' 하는 거라. '진리성'이라고 그럽니다.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거라. 여기서는 이 법칙이 사용되고, 저기서는 저 법칙이 사용되고 하는 법이 없다는 거라. 똑같은 진리의 법칙을 따르게 되는 거라. 여기에서는 이런 결과가 나오고 저기에서는 저런 결과가 나오는 법이 없다는 거라.
그다음에 네 번째가 뭐냐하면 '아난냐타따-(anññathatā)' 그럽니다.
'가능성이 100%다' '반드시 일어난다'는 거라. '확실성'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원인을 지은 것들이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들은 없다는 거라.
이게 인과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일정한 패턴을 지닌다는 것은 그 패턴은 반드시 이러한 성질들을 가지고 있다는 거라. 보편적인 성질들, 그 구체성을 띠게 돼 있고, 그것이 똑같은 법칙으로 인해서 일어나지고 사라지게 돼있는 거고, 그것은 반드시 원인을 지었으면 결과가 나타난다는 거라. 그 패턴이라고 하는 것은 그와 같습니다.
내가 그 패턴을 익히면 어떻게 돼요? 좀 수월하지. 공부를 만날 열심히 하는 습관 그런 패턴을 해놔놓으면 그 패턴을 안 익힌 사람보다도 한층 공부하기가 수월합니다. 야구 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맞힌다는 패턴을 익히고 나면 갖다만 대도 안타치는 거하고 마찬가지라.
왜 그것은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거라. 이런 구체성들이나 진리성이나 확실성들이 있기 때문에 그 패턴들을 안다는 거라.
농장을 하고 있는 사람, 사과를 기르고 있는 사람은 사과의 필수조건은, 사과의 당도가 많아야 되고, 그다음에 색깔이 좀 아름다워야 되고, 형태도 잘 고르게 둥굴게 잘 정돈되어 있어야 되고, 그리고 그 사과가 오래도록 보관하고 저장할 수 있도록 해야 되고, 이런 조건들을 따집니다. 그래서 그 조건에 맞게끔 반드시 기릅니다. 그러다보니까 종자도 개발을 하게 되고, 좀 더 좋은 조건에서 기르기 위해서 차양막도 치고, 바람도 잘 들게 가지치기를 해주고, 이런 여러 가지들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사과 농사를 많이 지어본 사람은 어렵지 않게 그러한 당도나 색깔이나 여러 가지들을 갖춘 사과들을 수확을 하는 거라. 그런데 처음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안 된다는 거라. 그 패턴들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데 일반인들과 불교를 공부하는 수행인과의 차이점이 여기서 드러나지게 됩니다.
사과 농사 아무리 잘 짓는 사람도 한해 사과 농사 못 지을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돈을 잘 버는 사람들도 어떨 때는 돈이 없어서 낑낑대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그것을 부정할려고 그럽니다. 분명히 이해는 합니다. 아, 내가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사과 농사 잘못됐다는 거를 인과의 법칙은 이해는 한다는 거라. 그런데도 괴로움을 받는 거라.
내가 재산을 바르게 사용했을 거 같으면 이걸 잃어버리지 않을 건데, 괜히 주식 투자해가지고 잃어버렸다는 인과의 법칙을 아는 거라. 그런데도 잃은 것에 대해서 아까워하고 자기의 패턴대로 그냥 가려고 하는 거라.
그런데 불교를 공부하고 그런 수행자들은 그 인과의 법칙은 무엇 때문에 필요하다는 거를 분명하게 압니다. 무엇 때문에 필요합니까?
왜, 인과의 법칙을 알아라 하고 얘기합니까? 괴로움을 넘어서기 위한 겁니다!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인과의 법칙을 부처님이 발견하신 겁니다.
괴롭게 된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인과의 법칙을 알고 있고 또 그것들에 대해서 그러한 일정한 패턴들을 분명하게 익혀서 따라간다고 하더라도 소용이 없는 거라.
그러니까 그 스님은 그전에는 한 달에 500만원 쓰다가 인제 한 달에 150만원 쓰니까 당연히 수입이 줄어들었으니까 그마만큼 못쓴다는 것을 아는데도 못쓰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니까 괴로운 거라. 힘든 거라.
모든 인과의 법칙은 괴로움을 뛰어넘기 위한 겁니다. 그래야만이 바르게 불교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걸 부처님이 뭐라고 했느냐면 '담맛티따따-(dhammaṭṭhitatā) 담마니야-마따-(dhammaniyāmatā)' 그럽니다.
"그 모든 현상은 이렇게 바꿀 수 없는 법칙으로 인해서 변화된다."
모든 것들은 무상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라고 하는 바꿀 수 없는 법칙, 그것으로 인해서 변화된다는 거라. 인과의 법칙도 꼭 마찬가집니다. 무상한 성품이 없으면 인과의 법칙이 성립이 안 됩니다. 무상한 줄 알 거 같으면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상한 줄을 자꾸 모르니까 괴로워하는 거라. 그래서 아무리 인과의 법칙을 알아도 괴로워하게 되고 무상한 성품을 모르게 되는 거라.
무상·고·인과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한 몸덩어리입니다. 하나의 덩어리로써 흘러가는 것이지, 인과는 따로 떨어져있고, 무상은 따로 떨어져있고, 고는 따로 떨어져있고 하지를 않다는 거라.
그래서 반드시 인과의 법칙을 이해할 때는 무상의 법칙과 괴로움의 법칙을 같이 이해하도록 해야 됩니다. 학교 가기 싫다. 일하기 싫다. 그렇게 됩니까? 안됩니다.
학생은 어쩔 수 없이 학교 가기 싫어도 학교 가야 됩니다. 직장은 일하기 싫어도 직장을 안 짤리고 그리고 가족을 먹여 살릴려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가야 됩니다. 일하기 싫어도 해야 됩니다.
도망치고 싶다 해서 도망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150만원 밖에 못쓴다 해가지고 그것으로부터 도망쳐서 300만원 쓰고 싶다 해서 300만원 써지는 게 아니라는 거라.
그걸 부처님이 뭐라 했느냐면 '물결은 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물결이 이는 것은 반드시 물이 있어야지만 물결이 있습니다. 무상한 법칙과 괴로움이 없을 거 같으면 인과의 법칙은 성립이 안된다는 거라.
단, 그 물결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우리가 그러한 일정한 패턴들을 지녀야 되는 능력이라는 거라.
30만원이면 30만원에 맞게끔 쓰는 법칙을 갖다가 터득하면 되는 거라. 150만원이면 150만원에 맞는 법칙을 터득하면 되는 거라.
단, 거기서는 자기가 괴로움을 당하는 일이 있으면 안 되는 거라.
또 무상하다는 성품을 어겨버려도 안 되는 거라.
이렇게 이해를 하게 될 때 본인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인과의 법칙으로부터 탈출한다고 하는 것은 그런 것들입니다.
보통 수행하는 사람은 "수행이 잘 안된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수행이 안 되는 것을 가만히 보면 익숙하게 열심히 하지 않아서 수행이 안 되는 거라. 그게 익어지게 될 거 같으면 수행이 잘되게 돼있어. 일하는 것도 익숙해지면 그 일하는 것도 수월해지는 거와 꼭 마찬가집니다. 자꾸 익도록 해야 됩니다.
익도록 반복하고 반복하고 했을 때 우리는 그 익은 것에 대해서 익숙해지게 됩니다. 그러면 익숙해지면 괴로움을 당할 일이 적어집니다.
무상하다는 법칙을 이해를 못하더라도 괴로움이 적어질 것 같으면 당연히 그속에서 또다른 패턴들이 있을 거 같으면 그 패턴을 쉽게 익숙하게 익히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 이렇게 무상한 것들이구나 하는 것도 이해를 하게끔 됩니다.
수행도 또 선한 일을 하는 것도 반복해서 자꾸 익숙해지도록 해야 됩니다.
오늘 오계를 지켰다, 그럼 내일은 안 지켜도 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오계를 지킨다, 이럴 것 같으면 익숙해지지를 않습니다. 오늘 지켰으면 내일도 지킬려고 노력하고, 모레도 지킬려고 노력을 하고, 오늘 수행을 했으면 내일도 할려고 하고, 모레도 할려고 하고, 이렇게 자꾸 익어져야 됩니다.
자기 자신이 적어도 그러한 패턴, 인과의 법칙에 익숙해지도록 해서 그 인과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롭고 뛰어넘고 하려면 자꾸 익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괴로움과 무상이라는 것들을 분명하게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못하면, 보통 그런 사람들은 먹이가 됩니다. 왜? 세상은 어차피 무상한 법칙에 인해서 존재를 합니다. 그러면 무상하지 않을려고 할 거 같으면 내가 고기에 꽉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내가 속박이 되어야 됩니다. 하나에 속박이 되고, 두 개에 속박이 되고 속박이 많으면 많을수록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름철이니까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는 모기가 더 달려듭니다. 많은 먹이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똑같이 있어도 움직이는 사람은 먹이가 안됩니다. 모기가 물 수가 없습니다.
속박이 많으면 많을수록 먹이가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을 해야 됩니다.
살아갈 때 그런 속박이 점점 더 없도록 스스로 만들길 바랍니다.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런 인과의 법칙으로부터 벗어나게끔 됩니다.
수행에도 익숙해지고 일상생활하는 것에도 익숙해지고, 모든 것들에 익숙해지는 그런 경험자가 되도록 해야 됩니다. 그런 경험자는 해탈, 인과의 법칙으로부터 탈출하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SN. II. - 1.Nidānasaṁyutta - 2.Āharavagga - 10.Paccay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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