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1~2012 일상수행법문

랏주말라 이야기_반드시 두 가지는 하자 (20110823)

담마마-마까 2021. 6. 11. 10:31

https://youtu.be/b2D-Gn1ndTU

* 랏주말라 이야기_반드시 두 가지는 하자 (20110823)

 

오늘은 두 가지를 얘기하겠습니다.

"자신을 상처입히는 행위를 하지 말고, 두 번째는 자비의 마음이 항상 붙어있게끔 하라" 하는 두 가지 부분에 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막내! 자신을 상처 입히는 행위를 했어, 안 했어? 많이 했어? 뭘 그렇게 많이 했는데? 얼마 전에 개한테 물린 거? 그거는 자기 자신을 상처 입힌 게 아니잖아? 밖에 대상이 자신에게 상처입힌 거잖아. (수행자 대답)

음. 너무 상처입힌 게 많아서 울어? 우는 것도 너 자신을 상처입히는 행위다야.

자신을 상처입히는 것들은 되도록이면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상처를 입힌다는 게 꼭 육체적인 상처만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정신적인 상처도 다 해당이 됩니다.

 

랏주말라(rajjumālā) 라고 하는 분이 있었거든요. '말라(mālā)'는 많이 들어봤죠? '목걸이, 화환' 이런 건데, 앙굴리말라 거기도 말라가 나오죠. 손가락을 가지고 목걸이를 한 거 그래서 앙굴리말라. 랏주말라 라고 하는 것은 줄(rajju), 줄을 가지고 목걸이(mālā)를 했다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이 랏주말라는 하인으로 태어났는데 주인의 딸이 그렇게 괴롭히는 거라. 여러분들도 이유 없이 미운 사람 있잖아. 보기만 해도 그냥 한 대 쥐어박고 싶고, 보기만 해도 좋은 말이 안 나오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너는 웃어? 니 주위에도 그런 사람 있는 모양이구나. 그런데 그걸 잘 알아야 돼.

 

이 랏주말라도 과거전생에서는 그렇게 다른 사람을 괴롭힌 거야. 괴롭혔는데 그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 하도 괴로워가지고 ‘내가 다음생에는 반드시 니 주인으로 태어나가지고 니를 괴롭힐 것이다’ 하는 그런 마음을 품었어. 그렇게 해가지고 어쨌든 그 주인의 딸로 태어난 거라.

그러니까 이 주인의 딸이 랏주말라 하인하고 원한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과거의 그러한 인연 때문에 고마 보면 그냥 괴롭히는 거라. 여자들끼리 잘하는 거 있잖아,“ 뭐 잘해요? 머리채 잡는 거. 머리채 잡아가지고 이리 끌고 가고 저리 끌고 가고 막 이렇게 합니다.

 

랏주말라가 이유도 없이 하도 괴롭힘을 당하니까, 머리카락이 없으면 괴롭힘을 덜 당하겠다 해가지고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렸어. 그런다 해가지고 그 주인 딸이 안 괴롭히겠어? 머리카락이 없어서 잡을 데가 없으니까 목에다가 줄을 매가지고 머리카락을 대신하도록 했어. 그래서 이름이 랏주말라가 된 거라. 그걸 잡고 또 괴롭히는 거라. 죄인도 아니고 주인이 얘기하는 거니까 풀지도 못하고. 그냥 딱 죽을 맛이지.

그래가지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자살을 할려고 그럽니다.

 

자살을 할려고 숲으로 들어갔는데 목에는 이미 줄로 목걸이가 돼있으니까, 그걸로 그냥 나무에 걸면 되는 거지. 그래가지고 자살을 할려고 하는데 마침 주위에 부처님이 앉아 계신 거라. 그런데 바로 옆에 부처님이 있는데도 부처님은 저 랏주말라가 자살을 하는 건지 뭐 하는 건지 전혀 신경 안 쓰고 있는 거라.

가만히 생각하니까 랏주말라가 좀 이상하거든. 사람이 없는 데서 죽었을 거 같으면 몰라도, 마침 그 자리가 인제 부처님이 앉아서 좌선을 하는 거라.

그래서 궁금해가지고 죽는 걸 그만두고 물어봅니다.

 

당신은 내가 옆에서 죽을려고 자살을 할려고 하는 걸 보고 말릴 생각을 가지지 않느냐? 또 내가 그렇게 죽는 모습이 가엾어 보이지 않느냐? 하고 부처님에게 물어봅니다. 부처님은 뭐라고 답했을까?

"자기 자신을 해칠려고 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반드시 그 사람에게는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 같으면 자기 자신을 해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런 사람들은 밖에 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거라.

당신을 괴롭힌 것은 당신의 주인 딸이 당신을 괴롭힌 것이다. 당신의 주인 딸은 당신이 아니고 밖의 것이다. 그런데 랏주말라가 괴롭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일이라.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괴롭히게 된 거라.

밖의 것에 신경쓰지 않을 거 같으면 자기 자신이 괴롭지 않게 되는데 밖의 것에 신경을 쓰다 보니까 내가 괴로운 거라.

남들이 잘사는 걸 보면 내가 힘들고, 남들이 이마만큼 이루어놓았으면 내가 그걸 이루지 못했으면 내가 힘들게 되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

 

그런데 그것은 바르지 못하다는 거라. 왜 밖의 일에 신경을 쓰느냐는 거라. 너는 오로지 너의 감각기관을 잘 제어하는 길밖엔 없다는 거라. 자기 자신을 잘 제어할 거 같으면 밖의 일에 신경 안 쓴다는 거라.

괴로운 것은 밖의 일로 인해서 니가 괴로운 것이 아니고, 니 스스로 일으키는 마음으로 인해서 니가 괴로운 것이 아니냐? 그러면은 그러한 마음을 가지지 않아버리면 괴롭지 않게 된다는 거라.

 

그런 식으로 사성제에 대해서 쭉 설명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랏주말라가 '아, 진짜 그렇구나' 하고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가지게 된 게 뭐냐하면, 자신을 상처입히는 일들은 하지를 않게끔 되고, 자신의 몸과 마음에 항상 자비의 마음이 탁 달라붙게 되는 거라. 수다원이 됐지만은 수다원이 된 사람들은 경우들이 다 다릅니다. 대부분 수다원이 되면 따라와지는 것들이 뭐냐 하면 이 두 가지입니다.

 

외부에서 자기를 상처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라.

막내! 알겠지! 개에게 물리는 거는 어쩔 수 없는 거라.

그런데 개에게 물린다고 하더라도 니가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자신이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거라. 또한 그 개가 밉다고 해가지고 밥도 안 주고 발로 두드려 차버릴 거 같으면 너에게는 자비의 마음이 없는 거라. 그래선 안된다는 거라. 외부의 일들에 대해서 마음을 두면 안돼.

내 스스로 감각기관에 대한 것을 잘 조절을 해가지고, 자기 스스로에게 상처주는 일들을 하면 안 되는 거라. 그리해야만이 마음에 자비의 마음이 항상 붙게 되는 거라.

그래서 이 두 가지는 수다원에 이르게 되면 대부분이 확립되는 것들입니다.

 

랏주말라가 이 두 가지가 확립이 된 상태에서 집에 돌아가니까, 이미 표정부터가 달라진 거라. 이 주인이 보니까 물 길러 간 놈이 이상하게 늦게 오고 그래서 왜 이리 늦게 왔느냐 하고 물어보니까 “아, 부처님을 만났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을 만났다고 얘기를 하는데 얼굴이 그냥 방긋방긋방긋 하거든. 그래서 저 놈이 뭔 일이 있나 하고 자세하게 물어보니까, 그전에는 자신을 괴롭히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인제는 그런 마음이 없는 거라. 아주 자비로운 마음이 드는 거라.

 

그래서 그 주인이 보고 아, 조금 전까지는 내 하인이었지만 애는 내 딸을 삼아도 되겠다 해서 자기 딸로 삼아버립니다. 그러면서 진짜 자기 딸에게 “인제 니 동생이니까 괴롭히면 안된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그 주인의 딸 같은 경우에는 자기 아버지가 얘기하는 거니까 안 들을 수도 없고 그렇게 된 거라.

그래서 랏주말라는 하인의 신분을 벗어나가지고 주인의 딸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랏주말라가 살아 생전에 확립했던 게 뭐냐하면 보시, 지계, 선정, 생천 이런 여러 가지 들입니다. 자꾸 바른 일들을 하게 되는 거라. 나쁜 일은 하지 않고 자꾸 공덕 쌓는 일들을 한다는 거라.

 

왜 그럴까? 왜 공덕 쌓는 일들을 자꾸 하게 될까? (수행자 대답)

음. 그렇지. 그런 것도 있고.

내 마음에 항상 자비심이 우러나면 남들을 위해서 해야 될 게 보입니다.

여러분들 지금 여기 선원에 와 있죠? 자비의 마음이 있을 거 같으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뭔가 하는 게 눈에 보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하지 않게끔 내가 자리를 이쪽으로 옮겨줘야 되겠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와서 조금 더 편안하게 수행을 하게 하기 위해서 내가 좌복을 미리 갖다 놔줘야 되겠다. 아니면 또 다른 일들을 해야 되겠다.’

마음을 어떻게 쓰고, 말을 어떻게 하고, 또 행동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게 드러나지게 되는 거라. 그러면서도 절대 자기 자신이 상처입히는 행위를 하는 건 아니라는 거라. 그런 걸 하면서 자신은 스스로 기쁜 거라. 하는 일들 자체가 기쁜 거라. 그러니까 당연히 나쁜 행위들 하지 않고, 좋은 일들만 자꾸 하게 되는 거라.

 

그렇게 해가지고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삼십삼천에 태어나게 됩니다.

목갈라나가 천상세계에 놀러갔다가 이 랏주말라를 보게 됐는데, 이 랏주말라는 말을 하면 말에서 향기가 나오는 거라. 몸을 움직이면 몸에서 빛이 막 나고 향기가 나오는 거라. 목걸이가 이렇게 달랑달랑달랑하고 움직이면 그게 반짝반짝반짝하고. 천상 신이라 해가지고 다 그런 것은 아닌데, 그리고 랏주말라 주위에는 많은 친구들이 항상 모여갖고 그렇게 있는 거라.

 

그래서 이상해가지고 목갈라나가 랏주말라에게 물어봅니다. 당신은 뭔 일을 했기에 이렇게 살고 있느냐? 하고 물어보니까 랏주말라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과거 전생에 인간으로 있으면서 죽을려고 했다. 그랬는데 부처님을 만나가지고 내가 이렇게 바뀌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들은 부처님을 만났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이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났느냐는 거라. 정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났다고 할 거 같으면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게 될 거라. 그러면 여러분들이 랏주말라와 같은 삶을 못살 이유가 없다는 거라.

 

또 다른 경전에는 뭐라고 했느냐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것을 실천하면 두 가지는 반드시 얻는다.

첫 번째가, 이생에서 해탈에 이르게 된다.

두 번째는 이생에서 설혹 해탈에 이르게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수다원 이상의 과위에 오르게 된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들이 해탈에 이르지 못하고 수다원 이상의 과위에 오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거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짜 접하지 못했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라. 왜? 그것대로 살아가질 못하기 때문에.

 

랏주말라가 그럽니다.

나는 과거전생에 그렇게 복덕 쌓는 일을 참 많이 했다는 거라. 부처님을 만나고 딱 두 가지가 확립되고 나서. 자기 자신을 해칠려고 하는 것들이 안 생기고, 항상 마음에서 자비의 마음이 우러나게 되고, 이 두 가지가 확립되니까 항상 복짓는 일들만 하게 된다는 거라.

그러니까 그 생에서도 행복하고 또 이생에, 이 천상세계에 태어나서도 행복하다는 거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복짓는 일을 못하니까 그 생에서도 불행하고, 또 다음세상도 불행하게 태어난다는 거라.

그렇게 해서 나는 이루어야 할 것들을 이루고, 죽었기 때문에 나는 이생에서 천상세계에 태어나서 항상 기쁨을 누린다는 거라. 그러면서 나는 부처님의, 여러분들은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겠죠?

이 랏주말라는 뭐라고 했느냐면, "나는 부처님의 가족이 되었다"

 

부처님의 가족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참 중요한 말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여러분들이 석가모니 붓다의 성을 따가지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부처님의 가족이 되었다 하는 거라. 부처님의 형제 동생 누나 이런 가족이 되었다는 거라. 거기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가 없다는 거라. 이제는 딱 그 길에 들어서가지고 자기가 원한다 해가지고 벗어나지는 것도 아니고, 원하지 않는다고 해가지고 그 길로 안 갈 수도 없는 상태가 되는 거라. 핏줄로 연결된 거는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는 거라.

수다원이라고 하는 거는 그와 같다는 거라. 딱 마음에 심지가 박혀가지고 그 길 이외에 다른 길을 찾지를 않게 된다는 거라. 당연히 그 길을 따라가게 된다는 거라. 그걸 인제 부처님의 가족이 되었다 그럽니다.

 

바른 견해가 마음에 딱 확립이 되어서 그 확립된 것으로 인해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 그 길로부터 벗어나지지를 않게끔 된다는 거라. 그걸 부처님의 가족이 되었다고 그럽니다. 경전 곳곳에서 예류과에 든 사람들은 이런 구절들을 많이 씁니다.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좋은 일들을 힘쓰게 되는 것, 그다음에 삼귀의 오계를 마음을 기울여서 지켜나가게 되는 것, 내가 의지할 대상이 있어서 그것을 의지해서 나아가게 되고,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해나가는 것.

그다음에 세 번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그다음에 네 번째가 이제는 한걸음 한걸음씩 수행의 길로 나아가는 것.

 

랏주말라가 살아 생전에 해왔던 게 이 네 가지 길입니다. 수다원에 이르러서도 이 네 가지 길을 했고, 수다원에 이르기 전에도 부처님 말씀으로 인해서 이 네 가지 길을 걸어가게 되는 거라.

 

여러분들은 자꾸 스스로에게 해꼬지 하는 행위들을 하면 안됩니다. 말을 할 때나 행동을 할 때 아, 이게 내 자신을 괴롭힐 것인가 아닌가 하는 거를 반드시 염두에 두라는 거라.

생각을 할 때도 꼭 마찬가지로 이 생각이 좋은 것으로 실천이 되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거를 염두에 둬야 됩니다. 실천되지 않은 생각은 이익이 없어. 머리만 자꾸 굴리고 나서 나중에 그걸 포기해버릴 것 같으면 그건 안 하니만 못해. 딱 결단을 내려서 아, 이것은 실행되지 않을 것이다 할 거 같으면 차라리 포기를 해버리라는 거라.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해치는 것들을 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자비의 마음을 자꾸 가지는 것. 행복하기를! 괴로움이 없기를! 하는 자비의 마음을 자꾸 가지는 것.

적어도 그렇게만 할 거 같으면 그 사람은 수다원에 버금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랏주말라가 하인의 계급에서 주인의 딸로 바뀐 것도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악한 마음을 가지고 악한 행동으로 죽을려고 했던 것들이 이제는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한테 가더라도 좋은 마음을 가지게 되고, 좋은 말을 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의 신분이 바뀌어버리게 됩니다. 몸과 말과 마음으로 어떤 행위를 했는가를 가지고 그 사람의 신분은 정해지게 됩니다.

 

오늘은 반드시 두 가지는 하자 하는 의미에서 얘기를 했습니다.

막내! 두 가지는 뭐 두 가지를 하라고 했어? (수행자 대답)

음. 자기 자신을 상처입히는 행위,

두 번째는? (수행자 대답)

음. 그렇지. 항상 자비의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