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1~2012 일상수행법문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 (20110825)

담마마-마까 2021. 6. 12. 09:13

https://youtu.be/rO5bdPlhORE

*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 (20110825)

 

담마빠다 63번 게송 얘기를 좀 해드릴게요. 게송에는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것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다.

어리석은데 현명하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경전 일화에는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도둑질을 하는 사람 두 사람이 부처님이 법문 설하는데 가면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거기 가서 남의 것을 가방에 넣든지 이렇게 도둑질할려고 둘이가 들어갔어요.

그런데 한 사람은 도둑질 할려고 들어갔는데 부처님이 법을 설하는 것을 듣고 그 소리가 귀에 쏙 들어오니까 도둑질할 생각을 안 하고 부처님 법문을 들어요. 그러면서 어느 정도 아, 뭐가 바른 행동이고 뭐가 나쁜 행동인가를 이해를 하게 되는 거라.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도둑질을 못하게 되는 거지.

 

그런데 한 사람은 남의 물건을 훔쳐가지고 왔어. 당연히 남의 물건 훔쳤으니까 그걸 팔아가지고 양식을 구해가지고 밥을 먹을 거 아니라. 밥을 먹으면서 도둑질을 해온 사람이 도둑질을 하지 못한 사람한테 참 어리석은 놈이라고 얘기합니다. 어리석지. 도둑질하러 들어가서 도둑질도 못하고 돌아왔으니까. 그래서 지금 먹고 있는 밥도 내가 도둑질해온 내 것으로 인해서 먹게 되니까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부처님 법을 듣고 온 그 도둑놈은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수다원에도 이르렀을 뿐아니라 어떤 것이 옳고 나쁜 것을 구분하게 되었거든. 그러니까 생각해보니까 야, 이건 내가 어리석은 게 아닌데 어리석은 사람이 자신이 어리석은 줄 모르고 내보고 어리석다고 하는구나 하고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부처님이 한 얘기가 조금 전에 한 게송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것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다." 하는 겁니다. 여러분 어리석은 자인 줄 알고 있어요? 대부분 어리석다고 얘기를 안 합니다. 어리석다고 얘기할 것 같으면 와 내가 어리석냐고 아마 성질부터 버럭 낼 거라. 그러니까 어리석은 데도 어리석지 않다고 현명하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그건 어리석은 자라는 거라.

 

쉽게 얘기하면 어리석은 줄 알면 그것은 지혜의 시작이 됩니다.

어리석은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는 채로 살아간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마만큼 어리석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참 힘이 드는 겁니다.

정말로 그럴까? 보통 우리가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윤회를 한다, 생명이 태어난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어리석기 때문에 그 힘든 윤회하는, 쳇바퀴 도는 것들을 향해서 태어날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태어난 것들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음이 원인이 되어서 태어나게 된다. 12연기에선 그렇게 얘기합니다.

 

탐·진·치라고 하는 말을 여러분들은 자주 들었을 겁니다.

마음에 더러움을 가져오는 가장 근원적인 세 가지, 바른 마음을 가지지 못하게 만드는 근원적인 세 가지라고 얘기합니다.

욕심부리는 것은 여러분들 금방 알죠? 자기가 욕심부렸으면 자기가 금방 압니다. 자기가 화가 나면 또 그것도 화를 냅니다. 화를 내고 있으면서 '나는 화를 안 내고 있다' 그렇게 얘기를 하진 않을 겁니다. 그렇게 말을 하더라도 그거는 자신은 압니다. 화를 내고 있다는 걸.

 

가끔씩 스님들 간에 그런 게 있습니다. 얘기를 하다 보면 토론을 하는데도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럽니다. "성질내지 마아" 그렇게 얘기하면 그 스님이 그럽니다. "스님, 나 성질 안 났어요" "거짓말 하지마라. 니 성질냈어"

그때사 인제 퍼뜩 알아차립니다. ‘아, 내가 남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그것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논리를 세워서 말을 한다고 하는 것이 화를 가지고 말을 하게끔 됐구나.’ 또 남을 싫어하는 마음 그것도 성냄의 일종입니다.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을 하게 됐구나’ 하고 퍼뜩 알아차리면 그러고 나서부터는 토론을 하더라도 인제는 좀 조용해집니다. 그래도 배운 스님들은 그렇게 하거든.

그런데 일반인들은 지가 성질내고 있으면서도 성질 내지마라 그럴 것 같으면 "내가 언제 성질냈어?" 말하면서 성질내고 있으면서.

 

그리해도 탐심과 진심, 욕심내고 화를 내고 하는 것은 그래도 자기가 압니다. 왜 모르겠어요? 그거 세 살짜리 애도 아니고 알지.

 

그런데 어리석음은 참 잘 모릅니다. 어떤 게 어리석음일까?

이렇게 생각을 하면 됩니다. 저기에 부처님 그림이 저렇게 있습니다. 노란색으로 칠해진 것도 있고, 꺼먼색으로 칠해진 것도 있고, 푸른색으로 칠해진 색깔도 있고 그렇습니다. 저게 지금 벌써 몇년이 됐죠? 그림이 있은지? 뭐 색깔이 변하기도 했지만은 저게 몇년 동안 저렇게 붙어있는 이유가 뭡니까? 왜 색깔이 저렇게 붙어있어요?

노란색 안료 아니면 푸른색 안료에다가 그 안료를 혼합한 뭔가가 있어가지고 저기에다가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아니면 프린팅을 했기 때문에 그게 저기에 착 달라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게 흘러내리지 않고 저기에 붙어있는 거라. 착 달라붙어 있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어리석음이라고 보면 됩니다.

 

노란색을 띠게끔 하고, 푸른색을 띠게끔 할려고 할 것 같으면 착 달라붙어있게끔 하는 것은 색깔이 있으면 안 됩니다. 그렇죠? 색깔이 있을 것 같으면 노란색은 혼합을 할 때 다른 색깔로 바뀌어버린다는 거라. 푸른색도 다른 색깔로 바뀌어버립니다. 그러면 자기색으로 탁 달라붙게 할려면 색깔이 없는 건데 요걸 갖다가 달라붙게끔 만들어주는 뭔가가 있어야 됩니다. 그게 노란색이든 아니면 가루이든 아니면 액체이든 뭐든 탁 혼합해가지고 달라붙게끔 만들어주는 것들이 있어야 됩니다. 성질내는 것도 계속 성질내게끔 달라붙게끔 하는 것이 있어야 되는 거고, 욕심내는 것도 욕심내는 것들이 증장되게끔 만들어주는 뭔가가 있어야 됩니다. 그게 뭐냐면 어리석음 이라고 하는 것들입니다.

접착제 역할을 해주는 것, 그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엄밀하게 얘기를 하면 성질을 내고 또 집착하고 하는 것에도, 집착하게끔 하고 성질을 내게끔 만들어주는 것은 어리석음이 없으면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노란 분말 그것으로서는 존재를 할 수가 없습니다. 노란 분말이 있는 줄은 알지만 그 노란 분말은 저기에다가 달라붙게끔 만들어주지 않으면 그 노란 분말은 쓸모가 없어집니다. 적어도 우리가 어리석음을 알 거 같으면 탐심과 진심을 분명하게 이해를 하게끔 돼서 탐심과 진심이 나에게 달라붙지 못하게끔 만들어줄 수가 있다 하는 겁니다.

 

탐심이라고 하는 가루분말을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접착제로써 뭉쳐지기 때문에 마음에 탁 달라붙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탐심이 일어나게 됩니다. 성냄이라고 하는 것에다가 어리석음이 탁 달라붙으면 성질을 파락 내게끔 돼있다는 겁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이 어리석음입니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살아가면서 아마 탐·진·치를 한 번도 안 일으키고 살아갔다고 얘기를 못 할 겁니다. 그렇죠? 여러분들도 좋은 물건 보면 아, 예쁘다, 내가 가지고 싶다하는 마음들을 일으킵니다.

 

그런데도 왜 그것을 내 것으로 가져오지 않을까? 왜 그래요? 여러분들 지혜로워서 그런 거라요? 지혜로워서 그런 게 아니고 이 어리석음이란 것이 약하기 때문에 못가져오는 겁니다. 어리석음이 강해지면 어떻게 돼요? 착 달라붙는 게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거 모르고 가져와버립니다. 도둑질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음이 강하기 때문에 남의 물건을 훔치고 오는 거라.

그런데 여러분들은 적어도 그 어리석음이 나쁜 줄은 알기 때문에, 어리석음이 약하기 때문에 남의 물건을 적어도 훔쳐오지는 않는 거라. 그렇다고 해가지고 여러분들에게 어리석음이 없는 것은 아니잖아. 누구든지 아무리 잘 사는 사람이라도 탐·진·치에 물들지 않고 살아온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 라고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어쨌든 그런 것들을 자꾸 더 약하게 만들려고 하고 궁극적으로는 없에버릴려고 노력해야 된다는 겁니다.

 

자! 스님이 한번 그걸 작성을 해보았습니다.

어떤 때 어리석음이 강해지는가?

 

첫 번째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을 때.

판단을 올바르게 못하게 될 때 쉽게 말하면 '이게 옳은가, 저게 옳은가' 판단을 못할 경우에, 그럴 때는 반드시 어리석음이 강해집니다.

 

그다음에, 우유부단하게 될 때.

지금 내가 뭘 해야 될지를 모르고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앞에 것은 명확하게 판단을 못하게 되는 건데, 이것은 판단을 할 수도 없을 뿐아니라 판단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따라야될지 말아야될지 하고 우왕좌왕하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는 반드시 어리석음이 커집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마음이 울적하게 될 때.

마음이 침울해지면 어리석음은 반드시 증대됩니다.

 

그다음에, 감정에 내가 지게 될 때.

감정에 지면 어리석음이 일어나집니다.

 

그다음에, 감정이 밖으로 확 표출돼서 드러나게 될 때.

악한 마음이 확 일어난다든지 성내는 마음이 확 밖으로 표출될려고 할 때, 그때는 어리석음이 강해집니다.

 

그다음에, 흥분상태일 때.

마음이 어떤 것으로 인해서든, 밖에 것이든 안에 스스로든 흥분상태가 될 때.

 

그다음에, 망상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을 때.

끊임없이 생각을 굴리게 될 때.

 

그다음에, 두서없이 생각이 쭉 흘러갈 때.

생각을 하고 있는데도 일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거 생각했다가 저거 생각했다가 두서없이 끊임없이 머리를 계속 굴리게 되는 거라.

 

그다음에, 스스로 자신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를 때.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래서 멍해 있는데도 뭘 생각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거라.

 

그다음이 마음이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을 때.

게으름에 빠져있는 거라.

 

그다음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없을 때.

듣고는 있는데 뭔 말을 하는지를 전혀 기억을 못해. 건성으로 응, 응, 응, 대꾸만 하고 있는 거라.

 

그다음에 또 뭐가 있느냐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얘기를 했을 때 그 얘기를 듣고 내가 뭔가 바꾸어야 될 때는 바꾸고, 말을 해야 될 때는 말을 해야 되는데 그러지를 못하는 거라.

애들도 이거 하지마 할 것 같으면 그거 안 하거든. 그런데도 그게 분명히 나쁜 것이기 때문에 이거 하지마 할 거 같으면 자기가 하지 말아야 되는데도, 그러지를 않는 거라. 왜? 마음이 이미 어리석음에 딱 갇혀있기 때문에 안 해야 된다는 걸 알면서도 행하지를 못하는 거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들을 스스로 거부해버린다는 거라.

 

그다음에는 뭐냐면, 다른 것들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

사람들에게도 의지하게 되고, 뭔가에 내가 의지하는 것들, 컴퓨터에 의지하든지 아니면 자기가 좋아하는 뭔가에 의지를 합니다. 그런데 그 의지하는 것이 한 가지에만 계속 의지를 하느냐면 그렇지도 않아. 이것도 의지했다가 저것도 의지했다가 계속 바뀌는 거라.

 

그다음에 뭐냐면, 자기가 행한 일들에 대해서는 자기자신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자신이 책임을 질려고 마음을 먹지 않게 되는 겁니다. 한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자꾸 회피해버립니다.

아마 이번에 선거 끝났으니까 아마 어느 당에서는 그럴 거라. 니 책임이다. 니 책임이다. 자꾸 남의 책임으로 미루어버리는 거라.

 

그다음이, 노력하려는 마음이 없을 때.

수행을 할려고 노력한다든지 아니면 보다 더 공덕을 쌓기 위해서 노력한다든지 바르게 행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마음들이 싫어지는 거라. 그러고 가만히 있는 게 좋은 거라. 누가 내 건드리지 말았으면 좋겠는 거라. 안 건들고 가만히 있으면 그렇게 좋은 거라. 나중에는 심지어 누가 전화라도 올 거 같으면 그거조차도 귀찮은 거라. 그러한 노력·열의라고 하는 것이 아예 없어져 버리는 거라.

 

그다음에 뭐냐하면, 뭐든지 의심을 하게 될 때.

이것도 의심이 가고, 저것도 의심이 가고.

 

여러분들은 몇 개가 해당이 됩니까? (수행자 대답)

많이 해당이 됩니까? 그럼 어리석은 겁니까? 어리석은 줄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도 자꾸 자신은 안 어리석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대충적으로 지금 스님이 어리석은 것을 강화시켜주는 것들이 이런 것들이다 하고 얘기하는데, 대부분 자기들에게도 해당이 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안 어리석다고 자꾸 생각을 합니다. '내가 올바르다'고 자꾸 생각을 해버립니다. 그거는 자기 주관인 것뿐인 것이지, 그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알 거 같으면 자신이 어리석은 줄 압니다.

그 도둑질 할려고 간 사람 중에 도둑질하지 않은 사람은 내가 어리석은 줄은 내가 안다는 거라. 그런데도 저 어리석은 놈은 지 어리석은 줄을 모른다는 거라. 그래놓고는 나보고만 어리석다고 얘기한다는 거라. 정작 도둑질을 안 한 내가 오히려 현명한 건데. 자신의 주관으로 모든 것을 결정해서 이것이 옳다고 판단할 것 같으면 그것은 바로 어리석음의 시작입니다.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때는 반드시 "이것이 옳다" 하고 판단하는 것들이 생겨납니다. 또 하나는 뭐냐하면, 이것저것 마음이 옮겨가게 될 때입니다.

 

주관적인 입장들은 자꾸 바뀌어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나는 올바르다고 생각을 강하게 가지면 가질수록 불교하고는 점점 더 멀어져버린다" 하고 얘기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올바른 게 아닙니다. 어리석은 자가 뭐가 올바를 거라. 오히려 아, 내가 어리석구나 하고 판단을 하고 어리석지 않게끔 그래서 자꾸 더 노력을 할려고 해야 됩니다. "나는 올바르다" 하는 생각들을 가지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그리고 또하나 조심해야 되는 것은 뭐냐하면, 다양한 견해, 다양한 의견들에 매달리는 것들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견해, 이런 의견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거기에 매달리는 거라. 그 매달리는 것도 하나에 계속 매달리는 것이 아니고 여기 좀 했다가 또 생각이 바뀌면 또 다른 견해, 다른 의견 끊임없이 이렇게 바뀝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십시오. 얼마나 여러분들이 그 의견들에 매달려 있었어요?

그런데도 거기에서 쏙 빠져나와서는 자기가 뭘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틀렸다고 또 비방을 합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지금 현재는 또 다른 견해에 매달려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거라. 또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견해에 매달려가지고 있으면서 이걸 또 비난할 거면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때는 반드시 이 두 가지가 결합이 됩니다.

내가 올바르다. 그다음에 의견·견해에 매달리는 것.

그런 것들이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조금 전에 얘기한 '아, 이런 것이 어리석음을 더욱더 크게 만들어주는구나' 하는 것을 반드시 판단을 해야 됩니다.

그런 상태에 빠졌을 때 '내가 또 어리석음에 빠졌구나' 하고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됩니다.

내가 생각을 자꾸 하면서 ‘이걸로 할까, 저걸로 할까?’ 하고 있으면 '어? 내가 또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구나' 하고 판단을 하고, 딱 중지를 하고 빠져나와야 됩니다.

 

왜 그런 그 길을 계속적으로 가고 있느냐는 거라. 그 어리석음이 여러분들을 윤회하게끔 만들어줬고, 그 어리석음이 탐심과 진심을 자꾸 불러일으키게 만들어주는 건데, 어리석은 것들을 자꾸 강화시켜 주는 것들을 할려고 하느냐는 거라.

알겠습니까?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