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정진/위빳사나 수행과 알아차림

호흡 관찰하는 데서 일어나는 두 가지 잘못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담마마-마까 2021. 4. 11. 21:04

※ 호흡 관찰하는 데서 일어나는 두 가지 잘못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호흡의 전체 길이를 따라가지 마라. 코에서부터 해서 배까지 쭉 따라가고 또 따라나오고 하는 것은 일절 하지마라.

두 번째는 대상을 인위적으로 해서도 안되지만 또 마음을 인위적으로 옮겨서도 안됩니다. 수행이 잘 안된다 해서 또 인위적이라 해서 그 대상을 놓아버리고 호흡이 일어나는 다른 곳에다가 집중할려고 하지마라.

 

호흡은 여러분들에게 가장 알아차리기 쉬운 대상 중에 하납니다.

근데 이 호흡을 전체 이동 경로를 따라서 코에서 일어나서 가슴이나 배에까지 가는 길을 알아차리는 것은 잘못된 방법입니다.

또 여기 한 지점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더라도 호흡의 길이, 호흡의 시작과 끝을 인위적으로 맞추고 있는 거라. 맞추고 있으니까 꼭 마찬가지로 호흡의 길이를 따라가는 현상과 같이 돼버리는 거라. 그러니까 그렇게 되니까 호흡이 오토매틱화 돼버리는 거라. 시작하자마자 오토매틱되어서 끝날 때까지 오토매틱이 돼버리는 거라. 그거는 안되거든. 그것도 잘못된 방법입니다.

 

호흡 전체를 알아차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호흡 전체를 알아차리는 것하고, 호흡 전체 코끝으로 들어와서 배가 불러오는 이 전체를 알아차리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호흡을 따라갈 거 같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마음이 산란해지지는 않죠? 오히려 인위적으로 내가 호흡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집중력은 굉장히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마음은 안정됩니다.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근데 문제가 뭐냐 하면 호흡을 같이 따라가다 보면 그 속에서 특성들을 발견을 못해나간다는 겁니다.

 

수행은 반드시 두 가집니다. 집중하는 것과 알아차리는 것 이 두 가지가 결합을 해야만 되는데,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집중력은 있을지 몰라도 알아차림의 힘들은 현저하게 떨어져 버립니다. 오히려 집중력 보다는 집중력은 카니까사마디라 해서 찰나적인 집중력만 계속 요구되는데 오히려 깊이 들어가 버리는 거라.

그리고 그 집중력은 단지 알아차림을 뒷받침해주는 역할들을 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집중력이 알아차림을 끌고 가버리는 형태가 돼버립니다. 그러니까 현상을 발견을 못하는 거라.

 

호흡의 전체를 알아차려라 하는 것은 그 하나의 점에 마음을 집중하고 있으면서 거기서 들어오는 숨이 길든지 짧든지 하는 것을 관계하지 않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 호흡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하는 거라.

 

그래서 마음을, 호흡을 할 때는 어디에 두라고 했습니까? 느낌에다 두라고 했습니다. 느낌에다 두지 않으면 명칭에다 빠지기 쉽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숨이 닿는 곳 코끝이면 코끝이라고 하는 곳에 숨이 스치면서 닿습니다.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 여기 닿는 곳에 마음을 두어야 됩니다. 집중하는 것은 여기에만 집중을 해야 되는 것이지 따라 가버리면 안된다 하는 겁니다. 내가 집중해야 되는 것은 한 점이다 하고 생각을 먼저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호흡이 인위적일 때 마음을 배에 관찰하는 대상에서 코로 옮기기도 하고, 아니면 코에서 아니면 배를 관찰하기도 하고 이렇게 합니다.

변경해주게 되면 문제가 뭐냐 하면 이 변경해주는 것이 없을 때는 또 어디로 가느냐는 거라. 실재적인 것을 알아차리면 좋은데 대부분이 보면 또 만들어 냅니다. 또 인위적인 걸 만들어 낸다는 거라. 또 인위적인 걸 만들어 내고 없으면 생각으로라도 만들어 내고. 굉장히 위험한 방법이라는 거라.

그래서 코끝이면 코끝, 배면 배 일정하게 계속 한 곳을 관찰대상으로 해야 됩니다.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내가 용이하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먼저 판단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인위적이 되지 않을려고 할 거 같으면 자신의 호흡의 길이를 정확하게 파악을 해나가야 됩니다.

 

인위적일 때는 대부분이 호흡이 느려집니다.

호흡이 많이 거칠어질 것 같으면 호흡이 빨라지는데 인위적으로 될 때는 거친데도 내가 인위적으로 그 거친 것들을 제어하기 때문에 느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상기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호흡을 정확하게 파악을 먼저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파악이 되고 나서는 아, 이 정도에서 명칭을 붙이면 적당하겠다 하는 걸 먼저 감지를 해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명칭을 자꾸 붙이도록 해야 됩니다. 명칭도 어차피 인위적인 것들인데 인위적인 것이 자연적인 것들을 갖다가 붙잡아가서는 안되는 거라. 자연적인 것에다가 인위적인 명칭을 갖다 붙일려고 해야 되는 것이지, 거꾸로 돼서는 절대 수행을 못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대상을 옮기면 안된다는 거라. 하고 있는 대상 자체가 왜 내가 계속 인위적으로 되는가 하는 것을 살피고 알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대상도 꼭 마찬가지가 돼버린다는 거라. 옮긴 대상도 꼭 마찬가지로 인위적이 돼버릴 수가 있고, 또 그게 안되면 또 다른 대상도 인위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래서 대상을 한번 정하고 나면은 옮기지 말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호흡에서 피해야 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대상에 가라앉아버리는 것. 그리고 대상을 생각하는 것!

가라앉아 버릴 경우에는 호흡 자체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모릅니다. 대상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대상을, 호흡을 생각한다고 하는 것은 명칭 자체라고 하는 개념에 붙잡혀있다는 거라. 그러니까 호흡을 해도 그냥 명칭만 갖고 놀다가 끝나버리는 거라. 호흡에서 반드시 피해야 될 건, 이 가라앉는 것하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인위적으로 될 경우에는 아예 인위적인 부분을 떼어내 버리고 느낌을 생중계하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만약에 인위적으로 될 때 대상을 옮기게 되면 내가 지금 호흡이 잘 안되고 있는 원인이 뭔가 하는 것들을 알 수가 없게 됩니다. 왜 호흡이 거칠어졌는지, 아니면 명칭으로 인해서 그 실재하는 특성들을 알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호흡 자체가 싫증이 나서 재미가 없어서 그러는지, 하는 것들을 잘 모르게 됩니다.

 

그것은 그것도 대상입니다. 명칭 자체도 대상이고. 호흡이 산란해지고 거칠어진 것도 대상이고 싫증이 난 것도 대상인데, 그 대상 자체를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되는데 그걸 하지 못하게 되는 거라.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버리니까.

 

대상 자체가 왜 내가 계속 인위적으로 되는가 하는 것을 살피고 알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대상도 꼭 마찬가지가 돼버린다는 거라. 옮긴 대상도 꼭 마찬가지로 인위적이 돼버릴 수가 있고, 또 그게 안되면 또 다른 대상도 인위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거라.

 

마음이 지금 현재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는 것을 아는 것은 마음의 실재를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왜? 물질적인 대상이 아니라 정신적인 대상입니다. 그 정신적인 대상이 실재하는 것들을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을 그대로 알아차려서 아는 것들인데,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화로워지고 하는 것만 바래서는 안됩니다. 그 마음의 실재하는 성품들을 자꾸 볼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수행에서 두 가지 중요한 것은

첫 번째 고요하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대상에 마음을 한군데로 모으는 것들입니다.

두 번째가 뭐냐 하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알아차리는 것들입니다!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알아차려야 만이 있는 대상 자체의 실재를 알 수가 있는 겁니다.

결국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집중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그것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되는 거라.

 

※ 사마타 수행에서 아나빠나 사띠를 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하나 뭐냐 하면 ‘숨이 닿는 포인트’입니다. 숨이 닿는 포인트가 없으면 마음이 움직여버립니다.

코 여기 이 부분을 어디(뭐)라고 합니까? 여기 요 부분 왼쪽 코로 들어가는, 오른쪽 코로 들어가는 이 부분 아니면 코 여기가 마주치는 이 부분, 이 부분을 잡았을 경우에는 그건 좀 위험스럽습니다. 왜? 호흡은 들어가고 나가고 하게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호흡과 의식이 같이 따라 들어가 버립니다. 호흡을 따라서 마음이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합니다.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할 거 같으면 안 될 거는 없겠지만 굉장히 마음이 산란해집니다.

 

숨을 따라서 들어가 버리게 되면 숨에는 숨이라고 하는 것은 누르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딱딱한 것을 갖다가 내가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래서 딱딱하고 시원하고 하는 느낌들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이리하다 보면 긴장돼 버립니다. 긴장돼 버리면 몸 전체가 긴장돼 버립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배팅 포인트에 마음을 딱 고정시켜 놔야 되는데 그러질 않고 움직여 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호흡을 관찰하는 포인트를 이쪽으로 두지 않도록 하십시오.

되도록 어디를 포인트로 두느냐면 입술 위쪽 인중이 있는데, 여기 입술 위에 볼록 튀어나온 이 부분을 되도록이면 포인트로 두도록 하는 것이 수행을 해나가는데 이롭습니다.

 

- 아짠 빤냐와로 스님의 법문 내용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