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로움 소멸의 4가지 특징 (20140619)
"닛사라나(nissarana), 위웨까(viveka), 아상카따(asaṅkhata), 아마따(amata)"
오늘은 괴로움의 소멸의 4가지 특징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괴로움은 여러분들이 뭔지 다 잘 알죠? 경전을 통해서 다 알 겁니다. "태어남이 괴로움이요, 늙음이 괴로움이요.." 하면서 쭉 하는 거, 그거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손 베이면 괴롭죠? 불교에서 취급하는 것, 특히 수행에서 취급하는 것은 그런 괴로움을 취급하지는 않습니다. 그거 괴로움인 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서 마음의 괴로움들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마음은 왜 괴로울 거 같노? 다른 거 없습니다. 딱 두 가지입니다.
집착함으로 인해서 오는 괴로움,
그다음에 견해로부터 나오는 괴로움.
이 딱 두 가지입니다. 이 두 가지만 해결해버리면 괴로움이 크게 문제가 되지를 않습니다. 화내는 거? 그거 지가 집착하고 있는 거라. 욕심내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이 방식대로 해야 되는데' 하는 거, 그다음에 '이 수행법으로 해야 되는데' 하는 거, 그리고 다른 사람들하고 다툼이 있는 거, 그거 대부분들 보면 견해에 대한 것들로 인해서 오는 괴로움들입니다.
보통 경전에서는 마음에서 오는 괴로움들을 네 가지로 분류를 해놓은 게 있습니다.
물론 경전에는 지나친 분노, 지나친 탐욕, 그다음에 잘못된 의식-계금취, 잘못된 것들에 대해서 집착하고 하는 것들, 그다음에 또하나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습관들로 인해서 오는 것, 이렇게 네 가지로 나와있는데 그거 풀어보면 딱 두 가지입니다.
두 가지로, 견해로부터 오는 것, 그다음에 집착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 이 두 가지만 잘 해결하면 됩니다.
그럼 괴로움의 소멸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죠?
경전에서 괴로움의 소멸의 특징에 대해서 네 가지로 설명을 해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걸 중심으로 한번 얘기해볼게요.
첫 번째가 '닛사라나(nissarana)'라고 하는 겁니다. "벗어난다, 피한다"는 뜻인데,
아라한들은 괴로움을 만들 일을 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괴로움이 일어날 어떤 조건도 짓지를 않습니다. 피해버리는 형태를 띠는 거죠. 그래서 성자들의 첫 번째 특징이 '니사라나'다 하고 얘기를 하기는 합니다.
이렇게 한번 봅시다. 애가 공부를 되게 안한다. 만날 엄마가 “공부해, 공부해, 공부해!” 애가 그래도 공부를 안 한단 말이라. 만날 게임만 할려고 그러고. 만약에 이걸 가지고 부처님한테 가서 “부처님 우리 애는 공부하라케도 공부는 안 하고 만날 게임만 합니다. 우짜면 좋습니까?”
부처님이 뭐라고 대답할 거 같애? 애보고 “너 왜 게임만 해? 공부 안 하고” 이럴 거 같애요? 그럼 뭐라고 할 거 같애요? (수행자 대답 : 공부시키지 말라고)
공부 안 시키면 우짜라고? 공부 안 시키고 잘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 같으면 공부 안 시켜도 되겠지. 바꿀 수 있을 거 같으면 바꾸겠지. 그런데 만날해도 안 바뀔 거 같으면 바뀌어야 되는 것은 거기가 아니고 앞에 대상이 아니고 나라는 거라. 나!
바뀌어야 될 대상을 잘못 잡은 거라. 만날 얘기해도 안 바뀔 거 같으면 자기는 안 바뀔 때라. 그럴 때라. 게임도 자기가 뭐 평생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게임할 때가 있는 거고, 또 무슨 할 때가 있는 건데, 그걸 내가 애를 바꾸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항상 트러블이 일어나는 거라.
그럴 때는 애가 바뀌어야 되는 게 아니고 내가 바뀌어야 된다는 거라. 차라리 애한테 그럴 거 같으면 게임시간 조금 더 늘려주고 그러고 나서 공부도 해야되니 공부도 하도록 만들어주고, 그렇게 전에 보다도 완화시켜줄 거 같으면 애는 또 바뀌게 되어있어. 그거 항상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쉽게 말하면 바뀌어야 되는 것은 애가 아니고 내가 바뀌어야 된다는 거라.
경전에도 그런 내용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다툼이 있어서 부처님한테 가면 부처님이 니가 잘못했다, 니가 잘못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잘못의 원인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하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가만히 자신이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실제로는 그렇게 애를 쪼아붙이지 않아도 되는 건데 쪼아붙이고 있는 거라. 차라리 게임시간을 늘려주고 공부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끔 조성해주고, 그리고 어머니가 자신이 해야 될 것들만 열심히 하면서 애한테 서포트를 해줄 것 같으면 애는 바뀌게 돼있습니다.
이게 인제 쉽게 말하면 '닛사라나(nissarana)'다 하는 겁니다. 피한다는 거라.
속박되어 있는 것들이 뭔지를 파악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걸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자신이 어디에 속박되어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럼 그 속박으로부터 피해야 됩니다. 몸에 대해서 속박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은 내 생각에 대해서 속박되어 있는 건지, 아니면 우리 애에 대해서 속박되어 있는 건지, 무엇인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해를 해서 그 속박된 것으로부터 자기가 먼저 빠져나와야 됩니다. 피해야만이 문제 해결을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은 일차적으로 괴로움은 소멸돼버립니다.
우선 자기 자신의 괴로움이 소멸될 뿐 아니라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됐던 애도 서서히 바뀌기 때문에 그 괴로움은 더 이상 나에게는 영향을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거라.
그런데 한 번에 이걸 바꿀려고 하니 그게 안 되는 거라.
“공부해!” 할 것 같으면 애는 뭔가 못할 이유가 틀림없이 있는데 그거는 생각 안 하는 거라. 그냥 “공부해!” 라고 할 거 같으면 그냥 그시간에는 공부를 해야 되는 거라.
수행을 해 본 분들이면 알겁니다. 그냥 한번에 툭 되질 않습니다. 서서히 한발짝부터 올라가는데 이거는 한발짝부터 올라갈 생각을 안 하는 거라.
그걸 첫 번째 '니사라나'라고 그럽니다. "괴로움으로부터 피하도록 하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 표현할 거 같으면 "속박되어 있지 않도록 하라" 속박만 돼있지 않을 거 같으면 충분히 그런 괴로움으로부터 피한다는 거라. 그게 인제 괴로움의 소멸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세 번째 특징은 '아상카따(asaṅkhata)'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조건지워지지 않았다" 하는 뜻입니다.
조건지워지지 않았으니까, 원인을 만들지 않았으니까, 받을 결과가 없다는 거라. 업을 만들지 않으면 업의 결과를 받을 것이 없다는 거라. 그래서 아라한들은 깨달음 이후에 자취가 없어져버립니다. 받을 게 없으니까. 여러분은 선한 일을 하든지 악한 일을 하든지 조건을 짓게 돼있습니다. 그럼 그 결과는 반드시 받게 됩니다.
가끔씩 그럴 때가 있습니다. 저쪽에 보면 공구상자에 공구들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필요한 것들이 없을 때가 있어요. 그럼 또 필요하니까 사가지고 하고 또 놔두고, 또 어떨 때는 필요한 건 공구상자에 가서 꺼내가지고 뭘 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참 편리하죠? 공구상자 있는 것이. 그런데 공구상자에 내가 필요한 것들이 다 구비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만약에 저 공구상자 자체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될 거 같애요? 예를 들어서 이 형광등이 부서졌으니까 드라이버 가지고 형광등을 끄집어내가지고 형광등을 새로 교체해야 되는데 공구가 하나도 없어. 그럼 이거 어떻게 해야 될까? 형광등을 갈 수가 없는 거지. 형광등을 간다는 결과를 만들어내지를 않는 거라.
그러면은 이 형광등은 있으나 없으나 그냥 그대로 있다가, 나중에 지 수명 다하면 사라지게 될 거라. 아라한이라고 하더라도 이 몸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살아갑니다. 그런데 더 이상 조건을 짓지 않으니까 죽은 이후에는 이 몸이 흩어져버리는 상태가 되는 거라. 아무것도 자취가 없어져버리는 거라.
물론 아쉬운 부분들은 있습니다. 저걸 밝혀놔야 내가 조금 편리하게 글도 보고 뭘 할 건데 저게 지금 꺼져 있으니까 내가 아쉬운 거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거 없다고 해가지고 해결이 안 되는 거는 아닙니다. 뭐 창문을 열어놓든지 커튼을 올리든지 해가지고 다른 방법으로는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꼭 이걸 고쳐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공구함이 있어야만이, 그게 필요한 것이라고 판단을 하고 있다는 거라. 그러다 보니까 나에게는 필요한 것이 점점 늘어나는 거라. 집에 가보면 잡동사니들이 쌔볐습니다. 과연 필요한 것들이 얼마나 될까? 없으면 아쉬울지는 몰라도 그것으로 인해가지고 내가 크게 문제 될 것은 아닌데도 그러고 있다는 거라.
자기 스스로 자꾸 조건들을 짓고 있는 거라. 물건만 그래요?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은 안 그래요? 누구는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 너는 미운 사람, 뭐 어쩌니 저쩌니, 십년 전에 누가 나한테 한 얘기, 그대로 그냥 잡동사니 모아둡니다. 크게 필요없다 할 거 같으면 물건도 안 모으듯이, 생각들도 안 모으는 것이 좋습니다. 모아두면 일단은 조건지워져야 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그래서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모아두는 버릇들을 가지면 안됩니다. 아쉬워도 괜찮습니다. 아쉬우면 어때서? 그냥 그렇다고 해가지고 내가 지금 밥 못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그게 없으면 다른 것으로도 쓰여집니다.
부처님 당시 때는 신발이 없어도 또는 숟가락이 없어도 잘 먹습니다. 다른 방법들이 대체가 되는 거라. 그런데 그걸 조금의 편리함이나 조금의 이익들을 위해가지고 자꾸 모은다는 거라. 모아야 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이용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이용만 하게 될 것 같으면 모으지 않게 됩니다. 그게 인제 두 번째 얘기하는 '아상카따'라고 하는 겁니다. 조건지워지지 않았다.
그다음에 세 번째, 아, 아상카따가 세 번째고 순서가 좀 바꼈습니다.
두 번째는 '위웨까(viveka)' 라고 하는 겁니다. "멀리 벗어났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위(vi)가 떨어진다 하는 그런 뜻이거든. 위웨까-멀리 벗어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멀리 벗어나버릴 것 같으면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잘하는 거 있잖아. 괴로움이 있으면 괴로움으로부터 멀리 떨어져버릴려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가지고 그 괴로움이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다. 괴로움 자체를 분명하게 보고 괴로움이 소멸돼버려야만이 그것으로부터 떨어져버리게 됩니다.
위웨까를 보통 얘기하면, 멀리 벗어난다고 할 거 같으면 그냥 그 대상을 피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그 괴로움이 일어나면 그 괴로움을 분명하게 보고 괴로움이 소멸되는 걸 분명하게 봐야만이 그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됩니다. 더러운 것을 알 거 같으면 그 더러운 것들을 만지지 않게끔 됩니다.
그래서 내 옆에 더러운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조심하고 있고,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못미치게끔 된다는 거라. 그게 인제 위웨까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들이 위베까(viveka)를 이해할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가진 것이 없으면 됩니다. 쉽게 얘기하면. 집이 없는 노숙자들은 한 곳에 노숙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것도 한 곳에 노숙하면 그것도 집이 있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뭐 특별하게 머물 곳이 없을 거 같으면 여기에서 머물러도 괜찮고 저기에서 머물러도 괜찮고, 그러니까 벗어나기는 아주 용이합니다. 그래서 어데 머무는 곳이라 해가지고 거기에 집착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놓아두는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에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물론 여러분들은 가지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게 여러분들 것이 아니면 어떡할 건데? 여러분들 것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여러분들 거 없습니다. 나도 여러분들 것이 아니고 나의 것도 여러분들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없는데, 노숙자하고 마찬가진데 뭐 그리 머물 데가 있어? 머물고 있어야 될 곳이 없습니다.
단지 내가 오늘은 이 골목 귀퉁이에서 머문 것뿐입니다. 그걸 잘 사용한 것뿐입니다. 그거 뒷사람을 위해서 깨끗이 그곳을 청소하면 되는 겁니다. 그곳을 떠나면 그곳을 잊어버리면 됩니다.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위웨까라는 것은, 벗어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서 오는 괴로움을 알고 그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안다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여러분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 생각을 빨리 일으켜야 됩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는 '아마따(amata)' 그렇게 얘기합니다. 보통 "불사"라고 그럽니다.
"죽지 않는다"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괴로움의 소멸에 이른 사람들은 더이상 죽음이 없습니다. 육체적인 죽음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나'라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아마따 라는 것은 자아(自我)가 없다는 뜻입니다.
나라고 내세울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아는 거라. 수행에서도 그것을 자주 자주 경험해야 됩니다. 그래서 아, 나라고 하는 것이 없는데 내가 무엇에 지금 걸려있는가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벗어난다는 거라.
이게 보통 "괴로움의 소멸의 네 가지 특징이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일상에서 꾸준하게 자꾸 훈련을 받도록 하고, 그 괴로움의 소멸에 이루기 위해서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부처님은 고와 고의 소멸에 대해서 설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일상 샐활에서 고의 소멸에 이르는 길들을 가지 못한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도 문제인 겁니다.
그대신에 고의 소멸에 이르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호흡 포기할 수 있습니까? 지금 내가 죽고 나면, 고의 소멸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호흡 포기할 수 없죠?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살아있을 동안에 호흡하고 있을 동안에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 그게 보통 다섯 가지를 얘기합니다.
자비(自悲)! 살아있는 동안에는 어떠한 경우든지 자비의 마음을 가져라.
멧따(mettā), 까루나(karuṇā)라고 하는 자비의 마음! 이것은 여러분들이 어떠한 경우가 되고 어떠한 조건, 어떠한 상황이 되더라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육체에 집착하지 않는 것!
이거는 좀 하기가 쉬울 겁니다. 크게 집착하지 않죠? 인제는 뭐 하도 들어쌌고 또 경험을 통해서 해서 육체에 크게 집착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쨌든 완전하게 육체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여기 우리 선원에는 그래도 집착하는 사람이 적으니까, 이 동동구르므 바르고 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거 같애. 다른데 가면 이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 안 그러면 향을 좀 많이 피워가지고 향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육체에 집착하듯이 저런 것들에 집착한다는 거라. 저런 향을 피워야 된다는 거라. 피우는 것은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각자 다른 데로 이유가 있겠지만 거기 집착한다는 거라. 물질적인 것들에 집착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다 포함이 되는 거라.
그래서 육체라는 것에 집착하지 않도록 하라. 그것도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되는 거라.
그다음 세 번째는 스님이 만날 강조하는 것,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
어떠한 경우도 수행에서 고요한 마음이 되어있지 않으면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일상생활에도 고요한 마음이 없을 거 같으면 항상 바른 판단과 바른 결정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세 번째는 고요한 마음을 가지는 것.
그다음에 네 번째, 자잘한 작은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아라는 거라.
여러분들은 해탈을 위해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큰 것이 있을 것 같으면 자잘한 것에 얽매이지 말아라는 거라. 작은 것들에 대해서 마음을 두지 말아라는 거라. 자잘한 것들 그거 크게 여러분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그다음에 다섯 번째, 어떠한 경우든지 수행하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사마타 수행을 하든 위빳사나 수행을 하든지 수행이라고 하는 것들은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이 다섯 가지들입니다.
자! 이 정도 하면 괴로움의 소멸의 네 가지 특징들은 얘기를 끝냈습니다.
잘 갖추어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도록 하고, 부처님이 물려준 유산들을 반드시 가지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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