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칠각지, 칠청정 법문

칠각지 - 1. 염정각지(念正覺支) (20161104. 대구 붓다야나선원)

담마마-마까 2021. 7. 2. 08:57

https://youtu.be/5-Qvfg1JQgc

 

* 1. 염각지(念覺支) (20161104. 대구 붓다야나선원)

 

몇 시간 동안 칠각지 부분에 대한 것 일곱 각지를 나눠가지고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칠각지 말은 많이 들어봤죠? 정확하게 얘기하면 칠정각지(七正覺支)라고 합니다. 왜 반야심경에 보면 '삼약삼보리' 라고 하는 거 있죠? '삼보리'라고 하는 게 '삼봇자'라고 하는 걸 한역으로 음역을 하다 보니까 '삼보리' 그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삼약삼보리' 라고 하는 것은 '삼마삼봇자' 빨리어를 그렇게 음역한 것이죠.

삿따 삼봇장가(satta sambojjhaṅga)라고 할 거 같으면, satta(삿따)는 '일곱 가지', sam(삼)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하다'는 것, '여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 더 이상 더하지도 덜하지도 못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bodhi(보디)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 그다음에 aṅga(앙가)라고 하는 것은 '가지, 부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일곱 가지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부분"이라는 겁니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선 이 일곱 가지가 개발이 돼야 되는 것이고, 이 일곱 가지가 완전하게 개발이 되지 않으면은 깨달음에 이를 수가 없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sam」이라고 하는 것을 붙여놓은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참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왜 그러냐 하면 칠각지 부분이 어떤 것들을 뺄 수도 없고, 순서를 바꿀 수도 없고, 그리고 그것들이 안 일어난 상태에서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법이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띠 삼보장가라고 하는 것은 사띠가 되지 않으면 담마위짜야라고 하는 택법각지가 일어날 수가 없는 거고, 그것으로 인해서 택법각지로 인해서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는 거고, 그런 단계로써 넘어가지게 돼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띠가 완전하게 되지 않는 상태에서 법에 대해서 조사한다?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상태가 된다는 거죠.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sam'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칠청정과 마찬가지로 칠각지 부분도 순서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 부분들은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이해를 하도록 해야 되는데, 칠청정 부분과는 다르게 이 칠각지 부분은 첫 번째 사띠부분만 완성되면 나머지 부분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끔 되는 구조로 돼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알아차림이 완전해지면 완전해질수록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럽게 넘어가지는 것이지, 내가 마음대로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려고 해서 넘어가지는 것이 아니고, 또 그다음 단계에서 내가 이걸 뭘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는 거라.

 

이걸 착각을 하면 사띠가 아직 완전하게 되지 않았는데, '어, 이게 무상한 법칙인가?' '어, 이게 어떤 현상인가?' 하고 스스로 조사하는 것은 어찌 보면 그건 망상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 그것이 택법각지의 영역에 속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은 여러분들이 주의해야 되는 부분 중에 하나입니다.

 

가끔씩 스승들이 그러죠. "딴 거 생각하지 말고 지금 무슨 현상이 일어났는지 알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지금 하는 것은 오로지 사띠가 완전해지도록 끊임없이 알아차려라. 알아차림만이 답니다" 하고 얘기하는 것이 이 칠각지를 비유해서 그런 얘기들을 하게 됩니다.

앞에 부분은 여러분들이 쭉 읽어보면 됩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한 것은 이 프린트물로 대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달나라로 가기 위해서 로켓을 쏜다. 그러면 1단 추진체 분리되고, 2단 추진체 분리되고, 3단 추진체 분리되고 해가지고 마지막에 달에 가는 것은 아주 조그만 거 하나만 가게 됩니다. 큰 로켓을 쏘아가지고 그 큰 몸체 전체가 다 가는 것이 아니고.

쉽게 말하면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런 하나 하나가 개발이 되고, 그것이 떨어지고 나서, 완전해졌다면서 그거는 신경쓰지 않을 정도가 됐을 때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는 거고, 그다음 단계도 마찬가지로 이것이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는 버려버리게 되고,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는 거고.

그래서 해탈에 넘어갔을 때는 이 일곱 가지는 완전하게 개발이 돼 있는 상태가 돼야 되고, 그런 형태라고 보시면 맞습니다.

 

그래서 로켓의 비유를 생각을 하면 될 겁니다. 어떤 경우든지 2단 로켓이 먼저 분리되는 법은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1단 로켓이 분리되고 나서 2단 로켓이 분리된다는 그런 생각을 꼭 가지도록 해야 됩니다.

그러한 것에서 처음에 얘기한 사띠 삼보장가라고 하는 것에서 사띠 부분은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는 있습니다.

 

어떤 것이 사띠일까? 어떤 것이 사띠가 완전하게 깨달음에 이르는 길로써 개발되고 완성한 것이 됐을까?

간단하게 얘기하면 자동적으로 사띠가 됐을 때!!!

내가 할려고 하든, 할려고 하지 않든 그거하고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사띠가 계속돼나갈 때 그때는 사띠 삼보장가가 완성됐다 하고 얘기를 할 수 있다고 알면 될 겁니다. 그마만큼 어렵죠? 자동적으로 된다는 것은.

 

그럼 어떤 단계들을 거쳐야 돼? 사띠의 단계들이?

보통 보면 알아차린다고 하지만 완전하게 알아차리는 것은 아니고, 알아차리더라도 어떨 때는 피상적으로 알아차립니다. 배를 관찰할 때도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이 완전하게 된다고 할 거 같으면 마음은 여기에 딱 붙어있는 것이지 다른 데로 벗어나지를 않는데, 대부분은 망상이 일어난다든지 통증이 일어난다든지 뭐 소리가 들린다든지 마음이 이 대상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그거는 아직은 사띠가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완전해질 때까지는 끊임없이 그것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들은 그것을 다스리는 방법에 인해서 잘 다스려나가도록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마하시 스님이 쓴 것들이 "명칭을 붙이라" 하고 얘기합니다.

스님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명칭을 붙이는 것은 굉장한 효과가 있습니다.

대상에 마음을 붙여두기 위해서, 마음을 묶어두기 위해서는 명칭만큼 좋은 것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명칭을 붙여서 거기에 마음을 먼저 붙여두도록 하는 훈련들을 자꾸 해야 됩니다.

 

또 명칭을 붙이는 것이 효과가 좋은 것이 뭐냐하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렇게 명칭을 붙이지 않으면, 예를 들면 보면 모양과 형태로써 보게끔 되는 거라. 이미 관념화 돼버리는 거라.

명칭을 자꾸 붙이다보면 '보인다' 하고만 분명하게 자꾸 알아차릴려고 하게 되는 거라. 보이는 대상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렇게 하다 보면 진짜 보이게만 됩니다.

들리는 것도 들린다고 알아차릴 거 같으면 들리게만 되는 것이지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요동치고 하는 부분은 없어지게끔 된다는 거라. 명칭이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이런 명칭을 떨어뜨리게 될 때는 그러한 것들이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하게 될 때는 자동적으로 명칭은 떨어져 나갑니다. 그래서 그냥 보게 되고 듣게 되고 어떤 것을 보고 듣고 맛보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요동치지 않는 상태가 됐을 때, 그때는 명칭은 자동적으로 떨어져나가게 됩니다. 그럼 사띠가 조금 수월해지는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알아차림을 계속적으로 하게끔 됩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어떠한 행위를 하든 무엇을 하든 간에 분명하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 지금 현재 일어난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상태가 됩니다.

그런 상태가 되면 "사띠가 완성됐다, 깨달음에 이르는 사띠가 완성됐다" 하는 단계가 됩니다. 그게 사띠 삼보장가의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자! 자세한 것들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4페이지에 보면 「염정각지」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렇게 돼있습니다.

 

사띠하는 것은 언제 사띠 하는 겁니까? 지금 현재 하는 겁니다.

지금 현재의 것 이외의 것은 사띠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과거라든지 미래라든지 이런 것들은 사띠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방금 지나간 것도 사띠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사띠의 대상은 찰나, 딱 그 찰나밖엔 없습니다. 찰나찰나 계속적으로 알아차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을 이렇게 먹으면 됩니다. 지금 현재 일어난 것을 딱 1초만 알아차린다 생각하면 됩니다. 1초 알아차리고 1초 알아차리고 그거를 계속적으로 반복해나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범위를 넘어서지는 않도록 해야 됩니다.

쉽게 말하면 계속적으로 망상이 일어난다든지 계속적으로 통증이 일어난다든지 이럴 거 같으면 현재 1초를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고, 과거에 일어난 1초를 지금 계속 끌고가는 형태라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사띠가 무르익게 되면 망상이 일어나면 망상이 일어났다고 알아차리는 순간에 망상은 사라지게 돼있고, 통증이 일어났으면 통증이 일어났다고 알아차리는 순간에 그 통증은 사라지게 돼있습니다. 이게 사띠의 힘입니다. 위력입니다.

그 생각을 가지도록 하고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지금 현재하고 있는 것에서 딱 1초만 알아차리겠다 하고 마음을 먹으면 됩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은 상황에 따라 많이 다릅니다. 걷고 있을 때도 있고, 밥을 먹고 있을 때도 있고, 보고 있을 때도 있고, 듣고 있을 때도 있고, 또는 호흡을 알아차리고 있을 때도 있고, 여러 가지입니다. 그 모든 것들을 놓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단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를 내가 동시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두 가지는 동시에 안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것만, 딱 1초만 알아차릴려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시작을 하면 됩니다. 사띠는.

 

그런 사띠가 계속될 때 사띠가 올바르고 충분히 실천되고 있으면 나머지 각지들은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그렇게 연속되도록 해야 되는데, 연속되지 못하고 과거에 매달리고 또 미래에 가고 이럴 것 같으면 거기엔 반드시 다른 것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망상이 일어나든지 통증이 일어나든지 다른 것들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는 즉시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은, 호흡을 알아차리고 있을 때 망상이 일어났다, 그럼 대상이 뭐가 돼요? 망상이 됩니다. 그럼 망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됩니다. 망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면 망상은 탁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이지, 망상이 일어났으면 '또 망상 피우고 있네' 이렇게 해버릴 것 같으면 사띠하는 것들이 먼저 지나간 1초를 붙잡고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망상도 지나간 거를 붙잡고 있는 거라. 망상하고 있는 거는 조금 전에 1초였는데 그걸 그냥 알아차리면 되는데, 그걸 알아차리지 않고 '어, 망상 또 일어났네' 하면서 후회하는 마음이 그 순간 일어나버립니다.

망상하고 관계없이 후회하는 마음이 있으면 '후회하는 마음'이 있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되는데, '아, 또 망상하고 있네' 하고 알아차려 버리는 상태라. 후회하는 마음이 있으면서. 그러니까 그전에 것들을 또 알아차리게 되는 거라. 그러면 또 시간은 또 흘러가버리고 주대상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태가 돼버립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일어난 것들이 뭔가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자꾸 알려고 해야 됩니다. 망상이 일어난 건지,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난 건지, 아니면 통증이 일어난 건지, 아니면 마음이 호흡을 알아차리고 있는 건지, 그것만 분명하게 자꾸 알려고 해야 됩니다. 현재 일어난 것들만 자꾸 알려고 해야 됩니다.

 

수행기법에서 이렇게들 합니다.

 

현재 일어난 것들을 알아차릴려는데, 배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을 알아차릴려면 단순하기 때문에 현재 뭐가 일어나는지, 다른 것들이 일어났으면 일어나는 줄을 모릅니다.

그럴 것 같으면 '일어나고' '사라지고' 할 때뿐 아니라 '닿음' 부분을 첨가를 해줘야 됩니다. 그래서 만약에 일어나고 사라지고 했다, 그러면 앉아있는 것들을 알아차리고 그다음에 닿음 1번의 눈꺼풀을 알아차리고, 그다음 닿음 2번의 눈꺼풀 다른 쪽을 알아차리고, 그다음은 닿음 3번의 입술을 알아차리고 이런 식으로 닿아있는 부분을 차례대로 알아차려나가는 거라.

그렇게 할 거 같으면 사띠가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나아가게 되는 거라. 그러면 그 사띠는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걸 분명하게 알게 되는 상태가 됩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눈을 떠가지고 호흡하고는 관계없이 대상을 하나씩 하나씩 하나씩 하나씩. 여기에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전체가 다 보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상을 알아차릴 때 하나 알아차리고, 그걸 놓아버리고 나서 그다음 대상을 알아차리고, 그걸 놓아버리고 나서 그다음 사람을 알아차리고 이런 식으로 해나가게 됩니다. 그렇게 훈련을 쭉 해나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훈련을 해나가다 보면 사띠가 하나가 이어진 것이 일어난 것이 사라지고 나면 그다음 대상을 분명하게 일어난 것을 알아차리고 그다음 대상이 사라지고 그다음 또 대상을 알아차린다 하는 걸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훈련을 해나가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빠른 속도록 대상을 알아차려 나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걸음을 아주 빠르게 경보보다도 훨씬 빠른 수준으로 해서 해나가는데, 발뒤꿈치가 들리고 딱 놓여지고 나서 그다음 뒤꿈치가 들려지는 상태로 해서 그 정도로 하더라도 아주 빠르게 걸으면서, 하나가 완전하게 한발이 완전하게 끝나고 나서 그다음 발이 일어나서 닿여지는 부분을 빠르게 알아차리는 훈련들을 해나가면은 사띠의 힘들은 커져나가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차를 타고 나갈 때 글자를 읽는 훈련들을 해나가는 거라. 숫자가 열 개 있다. 휙 지나가면서 그 열 개를 그대로 쭉 하나씩 그대로 읽어나갑니다. 또 지나가면서 그다음의 거를 쭉 읽어나가게 되고 이렇게 하다보면 사띠의 힘들은 상당히 커져나가게 됩니다.

그럼 어느 순간에 나는 아주 찰나 간에 지나갔지만 그전에는 다섯 글자 읽었던 것이, 이제는 열 글자를 읽게 되고, 이제는 열다섯 글자를 읽게 되는 상태가 됩니다. 그정도로 마음은 훈련을 하는 것에 따라서 빠르게 성장을 해나가게 됩니다. 그렇게 훈련을 해나가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안 되더라도 지금의 현재의 상태를 가능한 한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을 가능한 한 많이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처음에는 몇 가지 알아차렸다가 그다음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이 알게 되고,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이 그것을 알아차릴려고 하는 것이 사띠 삼보장가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어떤 것이든 알아차리는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됩니다. 해보면 굉장히 힘듭니다. 처음에는. 그거 안 놓치고 할려고 하면 되게 피로하고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피로해서는 안 됩니다.

피로하다는 것은 현재 일어난 것들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피로한 것입니다. 안 그러면 내가 알아차리는 것들이 아직은 능력이 개발이 덜 되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거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더라도 지금 몸이 피로할 때 잠으로 보충하는 한이 있더라도, 현재 일어난 것들을 알아차리는 것을 놓치지 않겠다 하는 마음 단단하게 먹고 자꾸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어떤 것이든 현재 일어난 것들을 지속적으로 계속적으로 관찰을 해나가겠다 하는 것들을, 마음을 먹고 그렇게 해나갈 때 이 칠각지의 처음 부분 단추를 끼우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놓치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놓쳐버리고, 현재 일어난 것만을 분명하게 알아치릴려고 해야 됩니다. 설혹 한번 밖에 못 알아차렸다고 하더라도 지금 상태에서는 그렇게 해야 되는 거라. 그리하더라도 현재 지금 일어난 것들은 반드시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그 마음만 놓치지 않으면은 사띠 부분의 처음 시작은 지속적으로 해나가게끔 됩니다.

 

대상은 꼭 앉아서 수행할 때 배를 관찰하고 코를 관찰하는 것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할 때도 망상이나 통증들이 일어나고 그래서 그것이 대상이 되듯이 모든 일상생활 모든 것들을 알아차린다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안될 때는 '명칭을 붙여라' 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안 될 거 같으면 천천히 하도록 하십시요. 천천히. 천천히 하면서 그걸 놓치지 않을려고 해야 됩니다.

 

지금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아차림 해가지고 지금 사띠 삼보장가를 완전하게 실천하고 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게 됩니다. 그걸 가지고 아, 내가 지금 사띠 삼보장가가 개발됐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하다가 보면 좀 더 세밀하게 되어나가게 됩니다.

발을 예를 들어볼까요? 처음에 할 때 어떻게 했어요? 똑같은 수준으로 걷는다고 하더라도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하고 알아차립니다.

그것이 잘돼나가면 그다음 어떻게 합니까? '왼발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오른발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것이 잘돼나가면 그다음에는 '왼발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오른발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점점 더 세분화가 되게 돼있고 세분화가 돼나가면 돼나갈수록 마음은 그 대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사띠가 완전해질려면 점점 더 세분화되게 됩니다. 쪼갤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쪼개지는 상태가 됩니다.

나중에는 들어올릴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는 의도를 알아차리고 그다음에는 들어올리고, 나아갈려고 하는 의도가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서 나아가게 되고, 내려놓으려고 하는 의도가 있고 나서 내려놓는 상태가 되고, 이런 식으로 점점점 발전을 해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왼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다. 오른발이 있는 걸 알까요? 모르게 됩니다. 전혀 모르게 됩니다.

지금은 여러분 걸을 때 어떻게 돼요? 디디고 있는 발에 신경 쓰이죠? 그럼 지금 현재 마음이 완전하게 사띠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라. 마음이 발을 들어올릴려고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을 알고,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동안에는 오른발이 그렇게 나아가고 있었다면 왼발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까먹어버리게 됩니다. 전혀 모르게 됩니다.

 

천둥 번개가 친다고 하더라도 그 천둥 번개가 치는 걸 모릅니다. 얼마 전에 그런 얘기했죠? 지진이 일어났을 때, 나는 법문 하는데 마음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법문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지진 때문에 놀라가지고 혼비백산이 된 경우가 있었는데, 나는 그걸 알지 못하고 그냥 법문을 하고 있는 거라. 그런 상태가 계속됩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밤에 천둥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불고 했는데도, 누가 아침에 와가지고 "부처님 어제 비바람치고 했는데 어떻게 해서 밖에 계셨습니까?" "나는 그거 온 줄 몰랐다." 하는 거라. 현재 호흡을 알아차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전혀 나하고는 관계없는 것이다.

 

그와 같이 왼발에 대해서 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을 동안에 다른 것들은 어떤 것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하면서 하나씩 하더라도 그때도 마찬가집니다. 왼발 할 때는 오른발을 몰라야 되는 거고, 오른발 할 때는 왼발을 몰라야 됩니다. 그런 상태가 되게 되면은 그다음에는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의도적으로라도 지금 움직이는 데로 100퍼센트 마음을 거기다가 실어, 그리고 디디고 있는 발에는 전혀 마음을 두지 말아라는 거라.

 

가만히 앉아있을 때는 잘합니다.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할 때 '일어남' 할 때는 사라지는 것을 어디 압니까?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거라. 그리고 '사라짐' 할 때는 일어난 것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는데, 움직이고 있을 때는 그걸 못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거라. 배가 불러올 때 불러오고 꺼지고 할 때 '일어남' 할 때 일어남만 분명히 압니다. '사라짐' 할 때는 사라짐만 분명히 아는 것이지, 일어남을 알고 사라짐을 알고 하는 상태가 아니라는 거라.

 

그래서 일어남이 분명해지면 아, 일어나는 것이 한번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일어나지는 것이 여러번 일어나진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배가 불러올 때 일어나는 것이 그 일어나는 것이 여러번 일어나는 것뿐 아니라 중간에 끊어지는 것이 있고, 그다음에 그 빈 공간으로 인해서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고 이리하는 걸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렇게 진행되다 보면 배가 불러오고 할 때 일어남 하고 처음부터 마지막 끝까지를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그게 끝나야지만 사라짐이 있다는 걸 압니다.

 

마찬가지로 발도 왼발 오른발 할 때, 왼발을 알 때는 왼발만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고, 오른발을 할 때는 오른발을 알아야 되는 것이고.

다시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할 때는, 들어올리고 할 때는 다른 것은 일체 모릅니다. 나아가는 것도 모르고 디디고 있는 발도 몰라야 됩니다. 나아갈 때는 나아가는 것만 알아야 되는 것이지, 다른 것들 들어올리는 것은 전혀 몰라야 됩니다. 디디고 있는 것도 전혀 몰라야 되는 것이고. 그와 같이 진행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들어올려지는 것도 발을 한 번에 들어올려지는 것이 아니고, 마음은 끊임없이 들어올려지는 것이 들어올림 들어올림 들어올림 하면서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럼 명칭을 그때는 한번 '들어올림' 하는 것이 아니고 '들어올림' '들어올림' '들어올림' 여러 번 반복해서 알아차리면서 명칭을 붙여야 되는 거고. 그래서 이렇게 하다 보면 수행이 굉장히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요? 단초가 거기에 있어! 아, 이 수행은 이렇게 벅차고 힘든 거구나 하고 분명하게 알게끔 되야 됩니다. 알아야만이 더욱 더 노력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냥 아, 힘들다 생각이 안 들 거 같으면 그냥 타성에 젖어갖고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고 있다 할 거 같으면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하게 되는 거고, 발도 왼발 오른발 할 때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또 다른발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는데, 오만 거 다 신경쓰이게 됩니다.

 

마음이 거기 붙어있지 않을 뿐 아니라 산란해져버리는 상태가 돼버립니다. 그렇게 아무리 해봐야 백년이 가더라도 그거는 진척이 없게 되는 거라.

그래서 수행을 하다가 보면 '아 이 수행이 굉장히 정밀하면서 굉장히 힘들고 어렵구나' 하는 것들을 스스로 자꾸 느끼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마음이 착 대상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될 때는 마음이 고요해져 버립니다. 아주 고요해집니다. 고요해지면서 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는 것만 분명하게 보이게 됩니다. 그거 하나만!

들어올리는 것도 들어올리는 것이 분명하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상태로써 여러분 반복되는 것들이 그대로 보이고, 배도 불러오고 하는 것이 파도가 한번 치는 것이 아니고 여러번 계속해서 철썩 철썩 철썩 하듯이, 일어나는 상태도 철썩 철썩 철썩 하면서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상태가 되고, 그렇게 분명하게 현상들이 일어나게끔 됩니다.

그럴 때 마음은 그 대상에 딱 달라붙어있기 때문에 굉장히 고요해집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그리해야 만이 대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좀 더 엄밀해지고 좀 더 세분화돼서 착 달라붙은 상태에서 그 대상을 분명하게 확인해나가는 것이 됩니다.

이때 사띠 삼보장가가 어느 정도 숙달되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하더라도 아직은 완전하게 사띠 삼보장가가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그럼 어떨 때가 사띠 삼보장가가 완성된 것일까? 아까 얘기했죠!

자동적으로 돼나갈 때! 마음은 이미 고요해져있는 상태인데 자동적으로 사띠가 되고 있는 것뿐 아니라, 그렇게 사띠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상태,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거라.

만약에 몸이 아주 미세하게라도 움직이면 그 움직임을 자동적으로 인식하는 상태가 되는 거라. 그래서 그 몸이 움직이는 대상과 사띠하는 마음이 딱 일치가 돼서 떨어지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 때, 이때가 될 때가 사띠 삼보장가가 완성됐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9페이지 마지막에 보면, 어느 정도 지금 숙달된 단계에 도달했을 때의 얘기입니다.

「숙달된 단계에 도달되면 곧이어서 잡념·망상이 거의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알아차림의 실천이 가능하게 됩니다. 환언하면 확인 없이는 몸이 움직이지 못하는 지경까지 또는 몸이 미묘하게라도 움직이면 그것을 자동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경지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사띠의 실천이 자신과 일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까지 실천을 해나가야 됩니다.」

 

이렇게 해나가는 것이 한참 동안 지속됩니다. 자동적으로 인식을 해나갑니다.

그렇게 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자기가 그다음 단계에 일어나는 것은 사띠로 인해서 잘라버리게 됩니다. 개념화시키고 그 외에 다른 것들이 일어나는 것들은 사띠를 하면서 자동적으로 잘려져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보면 본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지 그것이 자동적으로 될 거 같으면 보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형태나 모양을 보지 않게 됩니다. 들리는 것도 들리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화가 나고 좋아하고 하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끔 됩니다. 자동적으로 잘려지는 상태가 됩니다. 자기가 그것들을 만들어내는 상태에는 도달하지 않게끔 됩니다.

 

그래서 인식하는 것을 그대로 분명하게 이해를 하게 됩니다. 아, 이것은 보는 것이고, 이것은 들리는 것이다, 이것은 맛보는 것이다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보는 것을 보는 대로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 대상은 변하게 됩니다. 보는 대상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들리는 소리가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맛보는 대상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럼 변하는 것을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때야만이 인제는 이 택법각지가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됩니다. '아, 이게 사물이 항상하지 않고 변하는구나'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아, 이 변하는 것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불만족스럽구나' 하고 분명하게 알게 되고, 이렇게 변하는 것들은 이미 자동적으로 변하는 것들을 알기 때문 에'거기에 내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구나' 하고 무아인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이걸 택법각지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사띠가 완전하게 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택법각지가 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해하겠습니까? 그게 사띠 삼보장가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시고.

 

어쨌든 처음에는 무조건 대상을 작게라도 좋으니까 놓치지 말고 알아차림을 1초만 알아차리자, 1초만 알아차리자 하고 현재 일어난 것들을 자꾸 알아차릴려고만 하면, 그렇게 하다 보면 사띠는 점점 더 강해지게 돼있고 사띠하는 것들도 변하게 됩니다. 좀 더 세분화되게 돼있고 그러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뭐냐하면 그러한 현상들이 일어났을 때 거기에 끄달려들어가버리면 안 됩니다.

 

처음에 스님도 할 때, 호흡을 알아차릴 때 호흡이 갖가지로 변하는 형태들을 띠게 되니까, 그게 너무 놀라워가지고 탁 중단해버립니다. 중단해버리면 한참 동안 안 돼. 그날 하루는 또 공쳐. 그럼 그다음날 하다 보면 또다시 되지만 또 똑같은데 매달려가지고, 거기에서 또 주저앉아 버리고, 또 주저앉아 버리는 경험들을 많이 했어요.

 

놀라거나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연히 그거는 그렇게 되게 돼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들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놀라거나 하지 말고 마음이 고요해지기 전이기 때문에 놀라거나 하더라도 그냥 그것도 대상으로서만 자꾸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이것도 일어나는 대상이다 하고 알아차리게 되면 그정도 힘이 있을 거 같으면 그 대상은 금방 사라져버립니다. 그럼 다시 대상으로 돌아와야 됩니다.

 

그 부분만 주의할 것 같으면 사띠 삼보장가를 분명하게 알고 이해해서 그것을 개발하는 데는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단지 그렇게 될 때는 굉장히 힘들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힘든 과정이 없으면 수행은 완성될 수는 없다 하는 것을 분명히 알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간단하게 사띠 삼보장가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택법각지 부분에 대한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택법각지를 이해할려면 사띠 삼보장가에 대한 것이 완전하게 돼야만 택법각지가 이해가 됩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사띠 삼보장가가 자동적으로 지금 쭉 적어놓은 순서대로 그렇게 되는지를 스스로 확인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아, 내가 아직은 더해야되겠다' 할 것 같으면 스님이 설명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설명으로 듣기는 하겠지만, 아직은 그것에 대해서 신경쓰지 말아야 되는 거라. 지금 현재는 사띠 삼보장가만 계속해야 됩니다. 그렇게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칠각지 부분도 꼭 마찬가집니다. 이해를 하고 있을 거 같으면 나중에는 반드시 그것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사띠가 강해지면은 옛날에 벌로 들었던 것들이 다시 리바이벌이 되게 됩니다.

 

처음에 스님도 경을 읽고 외우고 할 때 외워도 한달 지나면 까먹어버립니다. 처음에 스승님들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냥 놔둬버려라. 놔둬버리고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라. 언젠가 될 거 같으면 니가 완전해지면은 그것이 다시 떠오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되니까 한참 동안 안 읽은 것들도 나중에는 그게 기억이 나는 거라. 그마만큼 사띠의 힘은 강력한 것들입니다.

그렇게 알고 남은 택법각지들도 들을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자!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