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칠각지, 칠청정 법문

2. 택법각지 전반부- 지식의 세계로부터 체험의 세계로 (20161111. 대구 붓다야나 선원)

담마마-마까 2021. 7. 5. 08:57

https://youtu.be/0NZF9juI0I

 

2. 택법각지- 지식의 세계로부터 체험의 세계로 (20161111. 대구)

 

오늘은 담마위짜야 삼보장가 - 택법각지 부분입니다.

거기 첫머리에 지식의 세계로부터 체험의 세계로 그렇게 돼 있습니다.

택법각지는 지혜의 영역에 속하는 겁니다. 깨달음의 단계에서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라든지,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지혜라든지, 12연기에 대한 것들, 더 나아가가지고 '아! 내가 과거에 이런 일로 해서 내가 이런 몸을 받았구나' 과거나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는 그런 상태에까지 이르기도 하고 하는 것들을 택법각지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식의 세계는 아니죠? 어떠한 경우든지 지혜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이 칠각지를 잘 보면 알겠지만 첫 번째 사띠를 제외하고 나면 여섯 가지가 남습니다. 그렇죠! 담마위짜야라고 하는 지혜의 영역에 속하는 택법각지가 있고, 그다음에는 위리야 라고 하는 노력 부분이 있고, 그다음에 삐띠라고 하는 기쁨이나 희열 부분들이 있고, 이 세 개가 하나의 뭉텅이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개는 빳삿디라고 하는 고요한 부분들, 그다음에 사마디라고 하는 집중하는 부분들, 그다음에 우뻭카라고 하는 평정 부분들, 그렇게 그거는 또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수행할 때 염두에 두어야 되는 것이 뭘까? 사띠는 당연히 있어야 되는 거고, 그래서 사띠가 이 두 개의 그룹을 조절하는 기능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수행할 때 자꾸 조분다. 그럼 뭐가 부족한 거라? 대상을 알아차릴려고 하는 노력이 부족한 거고, 그러면 사띠를 일으켜가지고 노력을 할려고 자꾸 만들어야 되는 거고, 그러면 대상을 자꾸 바꿔준다든지 아니면 법에 대한 기쁨을 일으킨다든지, 그리고 현상들에 대해서 조금 더 분석해서 조금 더 세밀하게 할려고 한다든지 이런 것들을 첨가해주어야 됩니다.

쉽게 말하면 노력의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거기에서 기쁨들도 일어나고 거기에서 대상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그런 지혜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수행하는데 많이 들뜨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들뜨는 경우에는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혀줘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훈련들을 해야 됩니다. 그럴 때는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준다든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든지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훈련들을 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크게 나누면 칠각지는 일곱 개지만 엄밀하게 얘기하면 사띠는 어디에도 작용해야 되는 거고, 그것도 지금 현재 최대한으로 발휘해가지고. 그래서 그건 어디에도 작용을 해야하기 때문에 그거는 빼고 나면 나머지는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노력하는 부분과 집중하는 부분 두 개로써 나눠지게 되는 겁니다.

 

택법각지, 정진각지, 희각지가 한 뭉텅이로 "노력하는 영역"으로 나누어지고

경안각지, 정각지, 평정각지가 한 그룹으로 "집중하는 영역"으로 나누어집니다.

사띠(염각지)는 이 모두에 필요한 것. 이 두 개의 그룹을 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수행은 그렇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자기가 지금 현재 빠져있는 상황이 뭔지를 분명하게 알고, 그게 노력 부분을 더 첨가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것들을 더 열심히 해야 될 것인지를 잘 구분해서 할 것 같으면 칠각지를 이해하기가 좀 수월해집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칠각지의 노력하는 부분들이나 집중하는 부분들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노력하고 집중하고는 조금 차이가 납니다. 나더라도 그러한 일반적인 노력과 집중이 조금 더 강화됐을 때 이 칠각지의 노력 부분과 집중 부분이 개발된다고 생각하면 거의 맞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 번째 부분 "택법각지는 체험의 세계다" 하는 걸 분명하게 이해를 해야 됩니다. 체험해가지고 내가 '아, 이거구나' 하고 아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자기 자신이 분석하고,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생겨나고' 이렇게 알게 되고 하는 것들은 택법각지의 영역에는 절대 속하지 않는다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도록 해야 됩니다. 그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그러한 것들은 지식의 세계에 속할 수밖에 없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띠가 잘 되고 많이 무르익고 하게 됐을 때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그다음에 이 택법각지 부분입니다.

 

• 경전에 나오는 담마위짜야를 개발하는 방법

1. 사띠와 함께 삼빠자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려면 대상이 일어났으면 처음 일어날 때부터 소멸할 때까지 완전하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2. 일상생활에서 사띠가 있는 사람을 자꾸 친할려고 해야 됩니다.

3. 일상생활에서 사띠가 없는 사람을 자꾸 멀리 할려고 해야 됩니다.

4. 마음에 사띠하는 습관을 들여야 됩니다.

 

그전에 경전 주석서에 "사띠 삼보장가를 개발하기 위한 네 가지"를 적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첫 번째가 삼빠자나를 개발하는 것.

사띠라고 하더라도 그냥 하나의 대상만 계속 알아차림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사띠가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만들어라는 겁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만들어서 그것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되는 것이 삼빠자나 입니다.

내가 숨을 들이쉬는데, 그 들이쉬는 처음부터 해가지고 마지막 숨이 들이쉬는 것이 끝나는 것까지 그대로 마음이 사띠가 계속 이어져서 따라가야만이 그 숨이 완전히 들이쉬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숨을 들이쉬고 나서는, 그다음에 내쉬는 걸 처음부터 분명하게 마지막 내쉬는 것까지 분명하게 알아야만이 내쉬는 걸 분명하게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들이쉬는 걸 분명하게 이해하고, 내쉬는 걸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 이것을 삼빠자나라고 합니다. 그럴려고 할 것 같으면 들이쉴 때 사띠가 계속 이어져야 되는 거고, 내쉴 때도 분명하게 이것이 이어져야만이 삼빠자나 부분을 이해를 하게끔 됩니다.

 

대상은 어떠한 경우든지 일어났으면 소멸될 때까지 그것을 완전하게 알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사띠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그냥 아직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놔둬버리고 다른 걸 한다 이럴 거 같으면 사띠가 개발이 안 됩니다. 대상은 어떠한 경우든지 지금 현재 일어난 크기를 아는 것들은 분명하게 그것들이 일어나자마자 알아차릴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여러분들이 아침에 탁 눈을 떴다, 사띠가 있다고 할 거 같으면 그리고 삼빠자나가 이어진다고 할 거 같으면 어떤 현상들이 일어날까?

어떻게 일어날까? 처음에 탁 눈을 뜨면? 일어나질 때까지, 의식이 명료해질 때까지 어떤 과정을 겪게 되는가 하는 거라.

그래도 사띠를 놓치지 않을려고 하는 사람들은 마지막 처음에 탁 일어날 때 보면 일어날 때 병 속에서 뭔가 의식이 푹 빠져나오는 거 같은 느낌을 탁 받습니다. 의식이 뭔가 푹 빠져나오는 듯한 느낌을 탁 받으면서, 그러면서 호흡이면 호흡을 탁 알아차려지게 됩니다. 호흡을 알아차리고 나서 그러고 나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은 마음에는 의식이 서서히 깨어난다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호흡을 분명하게 인식하든지 아니면 뭔가 볼 거 같으면 보는 것들을 인식한다든지 이런 단계를 거치게 되는 거라. 아주 짧은 찰나지만.

그게 뭐냐면 사띠를 놓치지 않을려고 해야만이 삼빠자나가 뒤따라가게 되는 거라. 사띠가 개발되어나가는 것들에 삼빠자나가 없으면 그 사띠는 소용이 없어져버립니다.

그래서 반드시 대상을 처음부터 일어나는 순간부터 해가지고 사라질 때까지를 완전하게 볼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게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 두 번째하고 세 번째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집중수행처에서 만날 살 수는 없죠! 여기 선원에 와서 만날 살 수는 없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일상생활에서 그래도 자꾸 알아차릴려고 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이 낫지, 만날 놀기 좋아하고 그냥 실수만 하고 하는 사람들 옆에 있을 거 같으면 안 된다는 거라.

두 번째하고 세 번째는 그와 같습니다. 사띠가 있는 사람을 친하게 지낼려고 해야되지, 사띠가 없는 사람들 옆에 자꾸 있을려고 해선 안 된다는 거라.

그래서 두 번째, 세 번째는 여러분들에게 설명을 안 해도 잘 알 겁니다.

 

그다음 네 번째, 첫 번째도 중요하듯이 네 번째도 중요합니다.

마음에 습관을 들여야 됩니다. 사띠하는 습관을.

사띠를 놓쳤으면 '아, 나는 이거는 죽은 시간이다' 하고 생각하라는 거라. 80년을 산다. 사띠하면서 적어도 한 50년은 살고 싶다. 그럴 거 같으면 놓치는 시간은 죽은 시간이니까 자꾸 빼라는 거라. 마음에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사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어떤 것이든 계속적으로 알아차리려고 하는 마음에 습관을 자꾸 들여야 됩니다.

안되면 명칭을 붙여서라도 알아차릴려고 하라. 명칭 붙이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거 같으면 보는 즉시 그것을 알아차립니다. 물질적인 현상을 알아차리든 아니면 그 알아차리는 마음을 알아차리든 그거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쨌든 사띠하는 습관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습관들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죠? 양치질하고, 어디 밖에 나갈 때는 분단장 할 거라. 그거는 습관이 되어있다는 거라. 안 하고 가면 이상하니까.

사띠도 꼭 마찬가집니다. 뭔가를 할 때 그렇게 하듯이 뭔가를 시작할 때 사띠하는 습관을 들여야만이 일어나는 것들을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습관 들이지 않으면 일어나는 것은 모르고 항상 진행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거라. 배를 관찰하더라도 배가 불러오기 시작할 때부터 알아차려야 되는데 대부분 보면 알아차리는 것이 배가 불러오고 나서 한참 부르고 나서 그때 알게 되는 거라. 습관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이 네 가지는 여러분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부분입니다.

 

그다음에 오늘 해야 될 택법각지 부분입니다.

'담마'라고 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고, '위짜야'라고 하는 것은 '조사'라고 하는 뜻입니다. 뭘 조사해요? 담마를 조사하는 겁니다.

담마위짜야는 그 담마를 조사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한자에는 澤法(택법)이라고 돼있습니다. 사실은 택법이라고 하는 용어는 이 담마위짜야라고 해가지고는 사실은 안 맞습니다. 조사하고 분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분석한다는 그런 의미를 가지는 게 위짜야라고 하는 용어입니다.

 

그래서 담마위짜야라고 하는 것은 "대상에 대해서 그것을 분명하게 구별하는 능력"을 담마위짜야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뭔가 화가 났습니다. 그러면 화가 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도 담마위짜야라. 내가 화가 난 것을 알고 있으니까, 화가 난 것이지 내가 욕심부리는 것이 아니거든. 욕심부리는 거와 화가 나 있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고 분별하게 되는 거라.

그리고 그것들을 '어, 화가 일어났네' 하고 알고 있다, 그러면 내가 현재 담마위짜야를 하고 있는 거라. 그런데 화가 일어났으면 화가 일어난 시작부터 화가 일어난 것을 알아야만이 화 난 것에 자기가 잡혀 먹히지를 않는데, 화가 일어나서 한참 일어난 후에야 '아, 화가 일어났네' 하고 알 것 같으면 이미 화에 잡아먹혔기 때문에 화가 일어난 뒤에 뭔가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분석하는 것도 사띠가 없는 상태에서 분별하고 분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는 거라.

 

예를 들어서 또 다른 것으로 얘기하면, 배가 불러온다, 배가 불러오는 것은 물질적인 현상입니다. 배가 불러오는 것을 아는 것은 정신적인 현상이다 하고 그렇게 분별할 수 있다, 그것도 담마위짜야를 하고 있는 거라.

그래서 배가 불러오는 물질적인 현상과 배가 불러오는 것을 아는 정신적인 현상은 다른 것이다 하고 분명하게 아는 거라.

 

또 어떤 경우에는 배가 불러올 때, 배가 불러오는데 뭔가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또 어떨 때는 배가 불러올 때 아주 밀어주는 느낌이 있다. 그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도 분별하는 겁니다. 똑같은 물질적인 현상도 이렇게 똑같은 것이 아니고 다르다는 것을 알 거 같으면 그것도 담마위짜야를 하는 거라.

그래서 수행을 하기 시작하면 누구든지 있는 그대로만 관찰할 거 같으면 담마위짜야는 뭔지를 알게 됩니다.

 

가끔씩 수행지도를 하는데 사람들이 와서 그럽니다.

“스님! 내가 두 개 있는 것 같습니다.”

“뭐가 두 갠데요?”

“호흡하는 내가 있고 호흡하는 것을 아는 내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두 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두 개 있다는 것은 뭘 얘기하는 거라?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이 구분된다는 거라. 그런데 내가 있다고 하는 것은, 호흡하고 있는 내가 있다는 것 하나와, 그렇게 호흡하고 있는 것을 아는 내가 있다는 것, 거기에도 나가 있습니다.

얼마만큼 '내가 있다'는 것을 아는데, 여러분들 자아(自我)에 습관화돼 있을 거 같으면 그렇게 알고 있느냐는 거라. 사실은 '나'라고 하는 것은 없는 건데.

그것도 담마위짜야의 영역에 속합니다. 분명하게 그것을 구분했으니까.

 

단지 그것을 어렴풋이 알았기 때문에 '호흡하고 있는 나'가 있다고, '호흡을 하고 있는 것'과 '나라고 하는 것'은 다른 건데, '호흡하고 있는 것과 나라고 하는 것'을 결합시켜 놓은 거고, 그렇게 '아는 나가 있다'는 것으로 결합을 시켜놓은 것뿐이라는 거라. 어쨌든 그것도 구분하고 있는 거라. 이런 것들도 담마위짜야에 속합니다.

 

또 담마위짜야에 속하는 것들이 뭐가 있느냐면, 호흡을 하고 있는데 내가 마음을 거기에, 호흡하는데 두지 않을 거 같으면 호흡하는 것을 전혀 모릅니다. 그러면 마음이 거기에 가 있지 않을 거 같으면 호흡은 내하고 관계없는 것이 돼버립니다. 또 다른 비유를 들면은 걸어가고 있는데 내가 걷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절대 걸을 수 없다는 거라. 이것도 담마위짜야라는 거라.

여러분들이 일상적으로 수행을 할 때 담마위짜야는 굉장히 많이 만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라는 거라.

 

단지 그것들이 조금 더 예리해지고 할 필요는 있습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이런 것들이 담마위짜야에 속합니다. 나중에 조금 더 세밀하게 들어갈 거 같으면 나중에는 전부 다 알게 됩니다.

물질적인 대상 스물여덟 가지 중에 수행을 통해서 열여덟 가지는 분명하게 알아나가게 됩니다. 아, 이거는 딱딱한 것, 부드러운 것, 이것은 어떤 것, 지수화풍을 다 구분하게 됩니다. 이게 물질적인 현상이다 하고 어렴풋이만 아는 것이 아니고, 물질적인 현상도 다 다르다고 압니다.

 

사실은 물질적인 대상은 스물여덟 가지입니다. 그런데 수행을 통해서는 열여덟 가지를 분명하게 압니다. 수다원에 이르기 전에는.

정신적인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적인 현상도 많이 있지만 그 전체적인 것을 다 아는 것이 아니고 그중에 일부를 알게 되는 거고.

그다음에 정신적인 현상의 요소도 있습니다. 그 요소들도 많이 있지만 그것들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아, 이것은 성내는 마음이고, 이것은 집중하는 마음이고, 어떤 마음이다 하는 것을 낱낱이 다 분석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분별을 할 수가 있게 됩니다.

 

이런 상태가 될 것 같으면 어떻게 돼요?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이 없어집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 정확하게 맞구나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담마위짜야는 처음에는 바른 견해가 생겨납니다.

'아, 이것이 정신적인 현상이고, 이것이 물질적인 현상이다'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니까 삿된 견해를 갖지 않는 거라. 어느 누가 창조자가 있고, 거기에 '나'라고 하는 것이 있고, 아상, 중생상이 있고, 수자상이 있고 하는 그런 것들을 하나도 안 믿게 되는 거라.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들이 있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고 구분할 줄 알기 때문에!

그래서 삿된 견해 찾지 않고 참나를 찾는다든지, 진아가 어딨니, 범아일여가 어떠니, 그런 데에 속지를 않는다는 거라. 견해가 딱 확립되기 때문에 바른 견해가 확립이 되게 됩니다.

 

그게 계속 진행되다 보면 바른 견해에서 의심하는 것들이 아예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정신적인 현상도 낱낱이 구분하게 되는 거고, 물질적인 현상도 낱낱이 구별하게 되는 거고, 정신적인 요소도 낱낱이 구별할 수 있게 되면 의심하는 것이 딱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그분은 어디로 가겠어요?

수다원의 초입에 딱 들어가게 됩니다. 어떤 것에도 집착하는 것들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런 분들을 '쭐라 소따빤나(cūḷa sotāpanna)'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작은 수다원과에 이르렀다.'

물론 지금은 집착하는 것이 있고 또 욕심이 생겨나고 하겠지만 의심하는 것이 거의 떨어져나가버린 상태가 되는 겁니다. 견해에 매이는 것은 없어져 버리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담마위짜야만 된다고 하더라도 수다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굉장히 유리한 조건에 도달하게끔 됩니다. 그마만큼 담마위짜야는 그냥 벌로 볼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그냥 내가 앉아가지고 요건 이렇고 요건 저렇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담마위짜야 부분이 아니라는 거라.

얼마만큼 사띠를 해야 그게 가능할까? 사띠가 무르익어가지고 습관화돼어 있고, 그다음에 그 사띠가 연속적으로 계속해서 일어나는 상태가 되지 않으면 담마위짜야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판단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떡하나? 담마위짜야가 돼야만이 그다음에는 더욱 더 노력할려고 하는 마음들이 일어나는데. 쉽게 말하면 수행이 그전까지는 되게 힘들어. 조금조금 마음이 향상도 되고, 수행에서 조금조금 알게 되기도 하지만 힘들어. 할려고 하면 억지로 또 앉아서 수행을 해야 되고, 억지로 그것을 알려고 해야 되는데, 적어도 담마위짜야 정도가 될 거 같으면 인제는 수월해지는 거라.

 

수월하게 알게끔 되고, 수월하게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게 되는 거고, 수월하게 노력하는 힘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고, 그래서 조금 더 수월하게 마음이 기쁨의 현상으로 가득 차게끔 되기도 하고, 그래서 '아, 이렇게 법이 좋구나' 하는 마음도 생겨나게 되는 거고,

그래서 그런 상태로 넘어가야만이 사띠가 조절되면서 집중하는 힘들이 생겨나면서 고요해지고 맑아지고 조금 더 평온해지고,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끄달리지 않는 상태까지도 도달하게 되는 거고, 그게 칠각지의 구성요소들입니다.

자! 담마위짜야가 그렇다는 걸 이해를 하고.

 

여기 적어놓은 것, 분리수거 얘기를 적어놓았습니다. 스님도 지금은 분리수거를 잘못합니다. 안 해봐가지고 이게 플라스틱에 들어가는 것인지 비닐에 들어가는 것인지 지금도 구분을 잘 못해요. 어떨 때는 그날 내놓는 것을 내놓는다고 했는데 청소부가 와가지고 그걸 갖다가 파헤쳐놔요. 틀렸다는 거라. 그런데 그걸 봐도 나는 모르겠어. 그거는 내가 모르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런 거라. 여러분들은 그거 할 줄 알죠? 이게 플라스틱인지 이게 비닐인지 그거 분리해서 할 줄 알잖아. 보면 금방 알지 않겠어? 누가 던지는 걸 보면 이게 플라스틱하고 비닐하고 뭐가 있을 거 같으면 툭툭 던지면 그게 탁 맞아. 나는 툭툭 던지면 다 틀려.

그렇게 구분할 수 있는 능력들입니다.

쓰레기 비유들은 다 알겠죠? 대상이 나타나면 그걸 구분할 수 있는 거라.

 

'아, 이게 차가운 느낌이다' '아, 이것이 뜨거운 느낌이다' '이것은 잡아당기는 느낌이다' 그거 모르면 어떡하나.

쉽게 얘기하면 발을 들어올린다. 들어올릴 때 어떤 느낌이 일어나요?

손바닥 요렇게 한번 대봐요. 손바닥 댔다가 손바닥을 살큼 떼면서 어떤 느낌이 일어나는지 한번 봐봐요. 뭘 잡아당기는 느낌이 있어? 아니면 거기에 뜨거운 느낌이 있어? 가벼운 느낌이 있어? 어떤 느낌이 있어요? 잘 모르겠어요?

똑같이 그러면 천천히 손바닥을 붙여봐 봐요. 아까하고 느낌이 같아요? 뗄 때 하고? 다르죠?

그런데 자신의 상태에 따라서 이걸 뗄 때 어떤 사람은 가볍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뗄 때 뜨겁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무겁게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단지 그것이 개념화된 것뿐이지 그 느낌하고 닿을 때의 느낌하고 그것이 다르다는 겁니다. 쓰레기 분류하는 거하고 마찬가집니다. 느낌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거라.

 

호흡할 때 배가 불러올 때의 느낌하고 배가 꺼질 때의 느낌하고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런데 그거 구분하지 못할 거 같으면 안 된다는 거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띠가 계속 따라가지 못했다는 얘기라.

불러올 때 하고 꺼질 때 하고는 분명히 다릅니다. 코끝에 손을 대고 있어 봐도 금방 압니다.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숨은 차갑고 뜨겁고 하는 것을 금방 압니다. 대상을 알아차릴 때도 그와 같이 알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그것을 다른 것으로서 분명하게 인식되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쭉 읽어내려가면

'일곱 가지의 맛도 다리의 딱딱함도 분별능력이다.'

그다음에 '그렇게 계속 나아가가지고 무상과 그 대상의 소멸까지 분별할 수 있으면 깨달음', 여기에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쭐라 소따빤나를 얘기합니다.

'작은 수다원과에 이르러서 수다원과에 이르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지혜가 개발되는 단계에까지 간다.'

 

예를 들어봅시다. 스님 지금 소리가 들립니까? 어떻게 들립니까?

마음을 지금 스님의 목소리에 가 있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귀에 가 있는 사람이 있고, 가슴에 가 있는 경우, 아니면 어떤 사람은 들리는 의식에 가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에 따라 들리는 것이 달라집니다.

소리가 귀로 빨려 들어옵니까? 아니면 뭔가 가슴으로 확 흡수되는 느낌입니까? 아니면 잡아당기는 느낌입니까? 아니면 잡아당겨지는 느낌입니까?

그게 대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 다릅니다.

 

그런데 이걸 구분할 수 있어야 되는 거라. 그래야만이 나중에 구분합니다.

내가 의식이 밖에 가 있을 때의 느낌과, 귀에 가 있을 때의 느낌과, 소리 들린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소리 들리는 의식에 가 있는 느낌이 다르다는 걸 분명하게 알게 되는 거라. 그것들이 다 구분될 뿐만 아니라, 그것들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탁 차단이 되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금방 여러분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자꾸 해야만이 수행은 진척이 있게끔 됩니다.

 

마찬가지로 물질적인 현상은 지수화풍으로 자꾸 구분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됩니다. 이게 따뜻한지, 차가운지, 딱딱한지, 부드러운지, 아니면 물렁한지, 아니면 잡아당기는 건지, 아니면 뭔가 때리는 거 같은지, 아니면 뭔가 흘러가는 것 같은 건지, 이런 것들을 낱낱이 구분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흘러가는 느낌과 때리는 느낌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그런데 사람은 그것을 아는 것들은 다 다릅니다. 들을 때도 어디에서 듣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지듯이, 자신이 경험한 것에 따라 다 달라집니다.

 

스님이 전에 그런 얘기했죠? 어떤 사람은 호흡을 들이쉬는데 파도가 '철썩 철썩 철썩' 치듯이 느껴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벽에다가 흙을 '탁 탁 탁탁' 치듯이 느껴진다. 치듯이 하는 것과 '철썩 철썩' 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렇게 다를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동일하지 않고 다르다는 걸 분명하게 아는 겁니다.

숨을 하나 들이쉬는 것도.

그런데 벽에다가 흙을 '탁탁' 붙이듯이 알 것 같으면 그 느낌들은 둔탁하게 느껴지고 때리듯이 알아차려질 거라. 그런데 파도가 '철썩 철썩' 하듯이 알 거 같으면 흐름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계속적으로 보이게끔 되는 거라. 그런데 호흡 하나도 들이쉬는 것이 이렇게 각각 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들도, 그것을 알아차리는 마음도 하나의 대상에 하나의 마음만 일어나지 두 개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철썩'하는 것이 물질적인 것이 하나 일어났으면 그것을 알아차리는 마음도 하나인 것이고, 그것이 마음도 사라지고 물질적인 현상도 사라지고 나서 또 다른 물질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정신적인 현상으로서 알아차리는 마음도 일어나는 거라. 그렇다는 걸 분명하게 구분하게 된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물질적인 현상으로 분명히 알게 되는데, 더 계속 가다 보면 정신적인 현상과 물질적인 현상으로 분별 구분을 하게끔 됩니다. 그러면서 거기서 일어나는 또 다른 정신적인 현상이 있을 거 같으면 정신적인 요소도 '아, 이것은 어떤 마음이다' '이것은 어떤 마음이다' 하는 것들도 구분할 수 있게끔 됩니다.

수행은 그렇게 계속 발전이 돼나가는 겁니다.

 

맨 처음에 담마위짜야 상태에 이르게 되면 나마(nāma)와 루빠(rūpa)를 구분하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을 구분하는 상태.

절대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정신적인 현상과 물질적인 현상을 분별·구별할 수 있는 상태까지는 여러분들은 가야됩니다. 그래야만 그다음에 원인·결과에 대해서 알 수가 있고, 그리고 그다음에는 그다음 단계로 또 넘어가게 돼있습니다.

담마위짜야는 굉장히 범위가 넓습니다.

자! 오늘은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을 구분하는 단계의 담마위짜야까지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담마위짜야를 개발하기 위해서 자주 쓰는 방법"을 얘기하겠습니다.

 

첫 번째 담마에 대해서 법에 대해서 자주자주 질문을 하라.

사성제가 뭡니까? 팔정도가 뭡니까? 칠각지가 뭡니까? 이것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이것을 한 덩어리로 보기도 하고 그것을 구분해서 보기도 하고, 그것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분명하게 구분을 할 수 있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법을 알더라도 그렇게 자꾸 구분해서 아는 습관들을 들이도록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담마위짜야 상태가 될려고 할 거 같으면 어떠한 경우든지 몸에 대한 집착이나 마음에 대한 집착들이 엷어지든지 없어져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돼요?

우선은 여러분들 자신이 마음도 깨끗해야 되고 몸도 깨끗해야 되고, 주변도 청결하게 되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자주 씻으라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항상 어떤 대상에도 붙들리지 않도록 자꾸 만들려고 해야 되고, 몸도 자꾸 수행하는데 기울어져 있어야 되는 것이지, 어떤 할 일들에 의해서 자꾸 붙들려가고 그런 데에 더렵혀져 있을 거 같으면 안 된다는 거라.

 

그다음에 세 번째, 오근·다섯 개의 능력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믿음에 대한 것, 지혜에 대한 것, 사띠에 대한 것, 노력에 대한 것, 집중에 대한 것. 이것들이 균형을 자꾸 맞추도록 해야 됩니다.

 

믿음만 강해지면 어떻게 될까? 맹신으로 빠집니다. 뭔가 발란스를 맞춰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 믿음이 강하더라도 그 믿음이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으로 그쳐야 되는데 이게 믿음이 엉뚱한 믿음으로 바뀌게 되기도 합니다. 맹목적으로 바뀌게 돼버리는 거라. 그러한 것들은 굉장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들을 해야 됩니다. 그러한 믿음들은 여러분들이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섯 가지 오력의 균형이 맞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아, 지금 내가 뭔가 노력하는 것이 부족한지, 집중하는 것이 부족한지, 아니면 삼보에 대한 확신들이 드는 것들이 부족한 건지, 뭐가 부족한 건지를 분명히 알아서 그것들을 보충하는 역할들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분석하는 능력들이 많을 거 같으면 실제 체험하는 것이 없고 내내 그걸 분석할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말은 잘하고 뭔가 잘 설명할지는 몰라도 믿음 부분이 없을 거 같으면 만약에 이번 같이 뭔가 수행처 건립한다 할 거 같으면 그것에 대한 보시하는 마음들이라든지 아니면 그것들에 대해서 노력하는 마음들 그리고 뭔가 도와줄려고 하는 마음들이 안 일어난다는 거라. 이건 균형을 맞춰야 되는 거라. 균형이 맞지 않으면 담마위짜야는 항상 균형을 잡을 수가 없다는 거라.

 

그다음에 네 번째, 다섯 번째는 첫 번째 사띠를 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꾸 수행할려고 하는 사람들 옆에 있어야 되는 거고, 자꾸 사띠할려고 하는 사람들 옆에 있어야 되는 것이지, 엉뚱한 일 자꾸 하고 어리석은 사람들 옆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들을 항상 유념해야 됩니다.

 

그다음 여섯 번째가 부처님의 진리는 이렇게 깊고 이렇게 나에게 도움을 주는구나 하는 걸 자꾸 깊이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내가 여기에 바친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모든 것을 여기에 바친다고 생각을 해야만이 담마위짜야가 개발됩니다.

지금 여기 나이드신 분들도 많고 한데 모든 것 바쳐도 될동말동 할 판에, 그런데 자꾸 엉뚱한 것을 할려고 할 거 같으면 안 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사띠 없이 할려고 하지 말고, 그리고 그 사띠는 어떠한 경우든지 집착하지 말고,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으로 구분해서 자꾸 할려고 하는 마음들을 가지고, 거기에는 집착하는 마음들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어떤 것에도 '나'라고 하는 것들을 개입시키는 것을 자꾸 차단시켜 주는 것들에 모든 것을 바치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담마위짜야가 스무스하게 열려진다 하는 사실을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담마위짜야의 첫 번째 부분에 대한 설명을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담마위짜야 두 번째 부분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