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7j825gdE7l4?si=MfIWF62_tlKU1mSJ
2. 택법각지-마무리 (20170415. 서울)
오늘은 택법각지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로 택법각지는 마칩니다. 다음 달에는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사띠 삼보장가가 잘 이루어져야만이 쉽게 얘기하면 사띠가 원활하게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잘 돼야만이 일어나는 것이 택법각지지, 사고(思考)로 인해서 분별하고 구분하고 해가지고 하는 것들이 택법각지는 아니다 하는 것은 이제 이해를 했을 거라고 봅니다. '어! 이게 물질적인 현상인가? 저것이 정신적인 현상인가?' 스스로 생각해가지고 하는 것은 택법각지의 영역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잘되다 보면 여러 가지 장애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걸 보통 사람들은 장애라고 인식을 못하고, 사띠가 잘돼도 사띠 잘된다 하면서 계속 알아차림을 유지를 해나가는데, 실제로는 마음은 고요하고 편안한데 그 속에서 무상한 성품이 드러나지 않는다든지 또 그렇게 편안하고 하는 그런 것들이 즐거운 느낌으로써 바뀌었는데도 그런 줄도 모르고 자신은 사띠하고 있다고 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 택법각지가 있는 사람들은 그런 포인트를 탁 찾아냅니다. 사띠를 원활하게 잘하고 있는데, "현상이 드러나지 않는 이것도 하나의 장애다" 하고 분명하게 인식을 하게 돼서, 그래서 사띠를 좀 더 강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사띠를 한다든지 이렇게 전환을 시켜주게 됩니다.
택법각지가 있을 때는 그게 가능한데, 대부분은 위빳사나 수행을 할 때 열 가지 갖추어야 되는 것들이 장애가 되는 현상들, 쉽게 말하면 삐띠라든지, 수카라든지, 그중에 사띠도 포함이 되는 거고, 그리고 미세한 욕망들 이런 것들이 일어나는 것들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 택법각지가 있으면 그것들을 뛰어넘기가 수월합니다.
칠청정, 작년입니까 재작년입니까? 그거 일년 동안 한 적이 있죠?
칠청정 하면서 도비도지견청정이라는 것들을 배운 적이 있을 겁니다. 이것들이 바른길로 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바르지 않는 길로 가고 있는 건지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견해를 가지고 나아가는 그러한 상태를 도비도지견청정이다 하는 것들을 했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택법각지가 있을 경우에는 그 부분에 이르를 수가 있습니다. 택법각지에 이르르지 않으면 그 이상의 상태들로는 올라갈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것을 이해를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수행을 하고 있는데 잘하고 있다,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아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방향을 바꿔야 된다 하는 것들을 구분하고 하는 것들도 어떤 면에서는 택법각지의 영역에 속한다 그렇게 이해를 하시면 됩니다.
여기 쭉 적어놓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참조를 하면서 스님 얘기를 듣도록 하십시요.
저번에 수행이 잘 안되면 일어나는 장애들을 구분하도록 하라. 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게 망상이 일어났을 때, 단순하게 '망상' '망상' 하면서 알아차릴려고 하지 말고, 이 망상의 원인이 뭔지, 아니면 이 망상이 내가 뭔가 수행이 잘 안돼서 싫어하는 마음으로 인해서 분노의 망상이 일어난 건지, 아니면 내가 뭔가 대상을 더 알아차릴려고 하는 집착하려는 마음으로 인해서 욕구의 망상이 일어난 건지, 그것들을 구분하는 것들을 하라 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세 가지로 나누어라 했다가 나중에는 여섯 가지로 나누어가지고 망상을 구분하다 보면, 이게 자연스럽게 알아차림이 제자리를 잡아지고, 그러면서 택법각지에 이르른다 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수행이 안될 때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좀 더 강하게 정신차려가지고 사띠하는 수밖에 사실은 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들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동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게 그런 망상은 구분해가지고 하는 것들을 하라 하는 얘기를 저번 시간에 했습니다.
그다음에 오늘은 그것에 이어서 두 번째, 적어도 택법각지에 이를려고 할 것 같으면 망상뿐 아니라 다른 것들도, 담마의 본질에 대한 것들을 분명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담마의 본질이 뭡니까? 담마의 성질은 무상·고·무아의 성품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을 무상·고·무아로써 볼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호흡을 하는 것도 그냥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들이 다르다. 들이쉬는 숨은 육체적인 현상들이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정신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그것들에 대해서 구분을 하게 될 것 같으면 변하고 있다는 것들이 보입니다.
만약에 앉아있을 거 같으면 통증이 있다, 본질을 보지 못하면 그냥 '통증' '통증' 하고 알아차릴려고 합니다. 그런데 본질을 보면 통증은 실제적으로는 관념인 거고, 거기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있습니다. 쑤시는 현상들이나, 딱딱함의 현상들이나, 무거움의 현상들이나. 아니면 묵직함의 현상들이나, 그리고 그 통증의 부위도 변하는 것이 보여집니다.
그래서 그에 맞게끔 쑤시면 '쑤신다'고 알고, 장소가 바뀌면 '장소가 바뀐다'고 분명하게 알고, 그렇게 알아차리는 것들이 "담마의 본질을 알아서 관찰한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대상들이 나타났을 때 수행이 잘 무르익어 갈 거 같으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아, 이게 무상하구나' '아, 이게 끊임없이 바뀌고 있는 것이 내가 불만족스럽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는데, 그거 안되면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강제적으로라도 그렇게 자꾸 담마의 본질로써 이해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 그런 얘기 잘 들어봤죠? 빠라맛타담마(paramattha dhamma) 라고 하는 용어, 실재적인 것들. 이 실재적인 것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이분이나 저분이나 공통적으로 다 그것들을 알고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겁니다. 누구든지 다, 부처님이든 여러분이든. 그래서 보편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가지고 실재적인 것으로써 분명하게 이해할려고 하는 노력들을 하면 적어도 택법각지 또 분별하는 것들이 분명하게 열릴 가능성들이 좀 더 커진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도 사띠의 부분이죠? 사띠를 조금 더 다른 방법으로 좀 더 강하게 하는데 실재적인 것들로써 자꾸 할려고 하는 노력들을 해야 된다 그런 뜻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뭐냐하면 캄캄한 방에 들어가면 어둡죠? 그런데 전등불을 탁 키면 방안이 환하게 밝습니다. 캄캄한 방에 아이가 있었다고 할 거 같으면 그 아이는 어떻게 하겠어요? 두려워서 웁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불을 탁 켜주면 울음을 탁 그칩니다. 인제는 두렵지 않다는 거죠.
여러분들이 계속적으로 수행을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렇게 탁 빛이 날 때가 안 있겠어요? 그게 언제냐 하면 사물의 현상들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때가 바로 이 택법각지 때입니다. 드러나집니다.
그런데 그 택법각지는 환하게 밝히는 것도 있지만, 어두운 상태에서 울고 있으면서 그걸 켤려고 하는 노력들도 택법각지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택법각지 할 때는 굉장히 괴롭습니다. 수행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구나 하는 걸 경험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은 보면은 처음에는 사띠로부터 시작을 해가지고 쭉 수행을 하다 보면 대부분 가장 먼저 겪는 것이 '수행하는 게 너무 힘들다. 죽을 만큼 힘들다' 하는 것들이 먼저 느껴져야 하는 것이지, '수행하는 것이 편하고 좋다' 이럴 거 같으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거는 나중에 한참 후에 아주 편하고 고요하고 좋다는 것이 일어나는 것이지, 지금의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지금 현재 수행하고 있는 것이 한 시간 하고 있는데 한 시간 동안 무난하게 수행 잘하고 사띠를 잘하고 있다고 판단할 거 같으면 본인은 지금 뭔가를 잘못 수행하고 있다고 판단들을 하면 됩니다.
지금은 어떠한 경우든지 굉장히 힘들게 대상들도 알아차릴려고 그러고, 또 여기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노력들을 하는 것들이 갖가지 것들로 노력하면서 빠져나갈려고 하는 것들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걸 스님이 비유를 들기를 "저 어두운 방안에 불을 켜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택법각지에 이르르고 나면 그땐 어떤 면에서는 대상이 일반적인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열반이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삼매에 들었으면 삼매에 들은 상태에서 그것들이 대상이 될 수가 있고, 이렇게 바뀌어져 나가는 부분들입니다. 그런 부분들이 다 택법각지의 영역에 속한다 하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어렴풋하게 ‘열반의 상태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이해를 하고 직접적인 경험을 완전하게 해보지는 못하더라도 ,‘이게 그렇게 좋은 거구나’ 하고 이해는 할 수 있는 상태에까지 이르를 수가 있습니다. 좋겠죠 그러면.
그럴려고 할 거 같으면 수행이 편하고 수행하면 좋다는 생각은 아예 처음부터 버려버리십시오. 수행은 어렵습니다. 굉장히 힘든 과정들을 겪어야 됩니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여러분들 잠잘 때, 자면서 '아, 내가 꿈을 꾸고 있다' 하고 분명히 인식하는 사람 있어요? 적어도 꿈을 꾸고 있다고 탁 인식하자마자 꿈꾸는 것이 탁 사라지는, 꿈속에서 사라지는 경험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적어도 그정도 상태가 돼야만이 죽자사자 내가 사띠를 하고자 한다는 마음이 평상시에 있다는 뜻입니다.
얼마만큼 내가 이거 아니면 안 된다 하는 마음이 강해야만이 그게 가능하겠어요? 그런 상태가 되어야만이 적어도 내가 일어날 때, 깨어날 때 숨을 들이쉬는지 내쉬는지, 의식이 어떤 의식들이 먼저 일어나는지, 만약에 '팟사'가 먼저 일어났으면 뭔가 의식을 탁 치는 느낌들이 있을 거고, 그 마음의 요소들도 구분할 수가 있는 상태가 될 수가 있다는 거라.
그마만큼 어려운 과정들을 겪어야 된다는 생각을 분명하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어둠을 몰아낸다 하는 생각을 가지게끔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어차피 수행 처음 하면 그 어둠 속에서 헤매게 돼있다는 거라. 그래서 필요한 것이 스승들이라는 거라. 그것들로부터 빨리 벗어나게끔 해주는 것들이라. 아무 얘기 없이 있다고 하더라도 스승이 있는 것만 하더라도 많이 도움이 됩니다.
스님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한참 헤매고 힘들 때 저쪽에서 스승님이 걸어오고 있는데 헤매고 있는 원인이 탁 밝혀졌어. 저 스님은 아무 소리도 나한테 안 했는데. 그런데 그 존재만으로도 그것으로 인해서 환희심이 일어나니까 대상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라. 여러분들도 그런 스승을 자주 곁에 두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다섯 번째가 되죠? 저번주 하고 연결된 거니까. 여기 23페이지에 보면,
"몸과 마음의 작용 두 가지가 확실하게 보이게 된다" 하는 겁니다. 그것들이 독립돼 있는 것으로써 분명하게 보일 수 있도록 그렇게 돼야 됩니다.
수행을 할 때 가끔씩 그렇게 해보면 됩니다. 들이쉬는 숨을 들이쉬었다.
예를 들면 수행하는 것이 편안하게 돼가지고 들이쉬고 내쉬는 것들이 관찰이 돼나가고 있는데 정신적인 현상과 육체적인 현상으로 구분이 잘 안 된다 할 거 같으면 가끔씩 그렇게 해도 됩니다.
숨을 들이쉬었다가 가만히 멈추어 보십시오. 멈추어 보면 굉장히 갑갑합니다. 호흡은 멈춰있는데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일어나게 됩니다. 그럼 육체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은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빨리 뭔가로 도망가고 싶어 한다는 것들을 알게 됩니다. 실제로는 호흡은 딱 중지해있는데.
그렇게 구분하는 것들이 인식이 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 들이쉬는 육체적인 호흡이 있고 그리고 그것들을 알아차리는 정신적인 현상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를 하게끔 됩니다. 그렇게 자꾸 훈련을 하다 보면 외부적인 자극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이해를 하게 됩니다.
소리가 있다. 소리가 있으니까 듣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거라. 듣는 마음이 없으면 저 소리는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거라. 그러면 외부적인 자극에 내가 필요 없이 나는 다른 일을 해나가겠다 할 것 같으면, 내가 지금 수행을 하고 있다고 할 거 같으면 저게 아무리 외부적인 자극이 크더라도 수행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끔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가 있는 거라.
그래서 육체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을 구분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구분할 수 있는 능력들을 자꾸 기르도록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앞의 현상과 뒤의 현상은 다릅니다. 물질적인 현상도 앞의 현상과 뒤의 현상이 다릅니다. 언제 알 수가 있죠? 호흡 들이쉬는 것 하나만 보더라도, 들이쉬는 게 동일하지 않다고 알 때 앞의 현상과 뒤의 현상을 구분하게 됩니다.
그런데 육체적으로 호흡이 쑥 들어오는 것이 동일하게 하나의 물줄기 같이 보인다고 할 것 같으면 그거는 구분이 안 되겠죠? 그런데 마음이 조금 더 예리해지고 가벼워져 있을 거 같으면 호흡을 들이쉬는 것이 변하는 게 보입니다.
파도치듯이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뭔가 탁 때리듯이 이렇게 하나의 숨을 들이쉬는 것이 다른 것들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러면 앞의 현상과 뒤의 현상은 차이가 있구나 하는 걸 압니다. 물질적인 현상 그것도.
그런데 그것들을 알아차리는 마음도 끊임없이 한마음으로써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고, 알아차리는 마음도 그와 마찬가지로 다른 마음들이 일어났다는 사실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앞에 얘기한 것보다 조금 더 예리하게 관찰이 돼나갈 때 그러한 현상들을 알 수 있게끔 됩니다. 그렇게 아는 것도 지금 현재 내가 택법각지에 이르렀구나 하고 이해를 해도 관계가 없습니다.
24페이지에 보면
"당신은 여기까지 세밀하게 관찰을 하고 있는가?"
지금 스님이 얘기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느냐는 거라. 사띠를 할 것 같으면 그정도는 관찰을 해나가야 됩니다. 안되면 그럼 어떻게 해야 되지? 그렇게 관찰이 안 되면? 포기해야 돼요?
어쨌든 지금 현재 그렇게 관찰이 안될 때는 대상을 대상으로써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거는 거의 90프로 이상은 그렇습니다.
다른 조건이 아니고, 그 대상을 자기하고 동일시 한다든지, 아니면 그 대상을 내가 임의로 조작을 하려고 한다든지, 붙잡을려고 한다든지, 알아차릴려고 한다든지 이런 마음들이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거라. 그래서 그 대상을 그냥 놔줘버려야 됩니다.
가끔씩 그걸 알기 위해서 호흡을 명칭을 붙이고 있다고 하면, 들이쉬고 내쉬고 하고 있다, 하다가 어떨 때는 명칭을 떼버립니다. 떼버리고 나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들이 분명하게 보여야 됩니다. 명칭을 붙일 때와 마찬가지로.
분명하게 그게 보이면서 숨이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들이 변하는 것들이 보인다 할 거 같으면, 지금 현재는 그 대상을 알아차리는 마음이 가벼웁고 고요한 상태에서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으면, 잘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그럼 그 방법으로 계속해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명칭을 붙일 때는 분명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을 알았는데, 명칭을 떼고 나니까 들이쉬는 숨 요만큼 중에서 요것밖에 모르겠다. 아니면 들이쉬는 숨이 끝났는데도 나는 그게 끝났는지를 모르고 있다 그럴 거 같으면 지금 현재는 대상을 대상으로써 보질 못하고 있다고 판단을 해야 됩니다.
그럴 때는 즉각 다시 중단을 하고 먼저 마음을 살펴봐야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서 어떤 것도 탐·진·치가 없는 상태인가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나서, 그러고 나서 마음이 뭘 하고 있느냐를 보면 마음이 뭔가 할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 그때 마음이 호흡을 알아차리도록 만들어주어야 됩니다.
그러면 호흡을 하고 있는 것들이 보여지고 나면 다시 또 명칭을 붙이고, 이런 과정들을 수없이 반복을 해야 됩니다. 그리해야 만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자꾸 알아차리는 게 익숙해지게끔 됩니다. 그렇게 방법을 동원을 해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자꾸 알아차리도록 훈련들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부분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데는 오력(五力)이라는 얘기 많이 들어봤죠? 다섯 가지가 잘 일어나가지고 그것들이 서로서로 균형을 맞춰가지고 있어야만이 알아차리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내가 지나치게 뭔가 대상을 알아차리고 집중하는 마음이 있어서 문제가 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지나치게 대상을 붙잡을려고 하고 노력할려고 해서 내가 빨리 해탈할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건지, 그런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려서 그것들을 스스로 자꾸 조정해야 됩니다.
집중하는 힘이 강해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할 것 같으면 집중하는 힘을 좀 떨어트려야 되는 거고, 아니면 사띠하는 부분들이 아직 힘이 약하다 할 거 같으면 사띠를 조금 더 키워주기 위해서 사마타 수행들을 조금 더 열심히 해줘야 됩니다. 사마디 수행을 열심히 해가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사띠의 힘이 강화되도록 만들어줘야 됩니다.
그래서 사마디 수행도 위빳사나 수행에서는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거는 이미 테라와다 불교에서 확인된 사실입니다. 경전뿐 아니라 여러 스승들로부터, 또 종교재판을 통해서도 그것들이 우선되어져야 된다는 얘기는 하지 않더라도 사마디는 필요하다 하는 것들이 인정된 부분이기 때문에 조금씩 공부들을 해가는 것도 좋습니다.
그것만 전적으로 할 것 같으면 여러분들 평생 동안 해야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단지 사마디를 수행으로써 일어나도록 만드는 상태에서 그로 인해서 사띠의 힘이 커지는 상태를 만들어 줄 거 같으면 대상을 알아차리는 게 좀 수월해집니다.
오력이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아지면은 그래도 수행하는 데는 아주 용이해진다 하는 사실입니다. 오력 부분은 항상 마음을 기울여서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관찰되었다. 그러면 26페이지에 적어놨듯이
인제는 "수행자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수행이 어느 정도 잘된다 싶으면 반드시 이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어떤 함정에 빠질까? 그냥 습관적으로 하는 것들!
잘되고 있기 때문에 호흡하고 하는데,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들이 무상하게 보이긴 하는데, 그것이 그냥 변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는 있는데, 거기서 더 이상 넘어가지지를 않는 거라. 변하고 있으면 변하고 있는 속도가 똑같을 수는 없을 거 아니라. 속도가 분명히 다른데, 나는 똑같이 변하고 있는 것만 아는 거라.
그런데 사실은 그 수행자는 택법각지의 일정 부분에 이르러가지고는 딱 함정에 빠져있는 상태라. 이것으로부터 빨리 탈출해야 됩니다. 변하고 있는 속도는 반드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굉장히 빠르게 변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아주 느리게 변하기도 하고, 변하는 속도는 틀림없이 다릅니다.
그리고 수행하는 것이 아주 좋고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그냥 그 마음들만 지속적으로 계속 일어난다 해가지고 수행이 잘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하나의 함정에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면 그것으로부터 빨리 탈출을 해야만이 이 택법각지가 완성이 되고,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함정에 빠질 때는 아까 처음에 얘기했듯이 사띠를 강하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띠의 힘이 강해야만이 이 함정으로부터 빠져나오게끔 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사마타 수행을 해서 2선정에 이르렀다.
2선정에서 3선정으로 넘어갈려면 어떤 방법이 있어야 될까? 어떻게 해야만 3선정으로 넘어갈 수가 있어요? 아니면 3선정에서 4선정으로 넘어간다. 어떻게 해야 넘어가져요? 강하게 결의를 하지 않으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를 못합니다.
그 선정에는 자유롭게 들어갔다가 빠져나오고 그 선정에 머물고, 자기가 조절하기도 하고 하기는 하는데,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지를 못합니다.
왜? 대부분은 보면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면 그게 좋아. 그러면 그것들에 집착을 하게끔 됩니다.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올려고 하는 마음이 잘 안 생겨요. 빠져나올려고 하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나야만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선정 각각의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는, 그것들의 하나가 선정에 자유자재로 어느 정도 되고 있다 할 것 같으면 빨리 마음을 내야 됩니다.
이것으로부터 빠져나와야 되겠다. 이것이 해탈은 아니다 하는 마음을 강하게 내가지고 그런 결의를 해야만이 어느 순간에 그것으로부터 탁 빠져나오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위빳사나 수행을 할 때도 수행에서 함정에 탁 빠지면은 반드시 먼저 생각해야 되는 것이, '아, 이게 지금 수행을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게 수행의 끝은 아니다' 하는 생각을 강하게 내야 됩니다.
강하게 내가지고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올려고 해야만이 그 함정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되지, 그냥 열심히 하면, 사띠만 하면 안 되겠나 하고 생각할 것 같으면 시간이 오래 걸려버립니다.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사띠의 힘이 강화되어있지 않을 것 같으면 항상 그자리에 그냥 머물러 버립니다.
변하고 있는 거 알고 있으면 뭐할 건데?
그렇다고 해가지고 여러분들이 번뇌가 안 일어나? 아니면 집착하는 것들이 떨어져 나가? 뭐 하나 지금 내가 장애가 되는 번뇌들이 완전하게 떨어져 나갔다는 확신이 드는 게 하나도 없는데, 왜 그거에 만족하고 있느냐는 거라.
내 자신에 대한 어떤 견해들이 완전하게 확립이 돼서 어떠한 견해들도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있다든지, 아니면 부처님 가르침에 대해서 인제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서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하는 확신이 들어서 그 길을 가고 있다든지, 뭔가 그런 번뇌들이 탁 떨어져나가고 중심을 잡은 상태가 뭔가 하나씩은 있어야만이 그래도 내가 지금 바르게 나아가고 있다는 건데,
그것도 지금 하나도 안 되고 있는 상태에서 변화되고 있는 것, 그다음에 이거 하다 보니까 '나'라고 하는 것이 없네 하고 어렴풋이 아는 것, 이것 가지고는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거라.
그럴 때는 빨리 본인이 스스로 결의를 해야 됩니다.
'아!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쉽게 말하면 스물네 시간을 전부 사띠한다고 마음을 먹어야 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사띠를 놓치지 않는다!!!' 하고.
잠잘 때조차도! 실제로는 잠잘 때는 할 수가 없습니다. 수행을 할 수가 없는데도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이 지금 함정에 빠진 상태로부터 빠져나올 가능성들이 있다 하는 겁니다.
그런 얘기들을 쭉 적어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안 될 때는 저번 시간에 얘기했듯이 "망상을 여섯 가지로 나누어라." 그다음에 "수행을 재밌다고 착각하지 말아라." 하는 얘기들을 했습니다. "수행상에서 그런 함정에 빠지면 어떻게 하는 것이 나은가" 하는 것들입니다.
변화되는 것은 보이죠? 그러면 호흡을 예를 들어봅시다.
들이쉬는 호흡의 변화되는 것들은 보이는데, 그 변화될 때 느낌들은 어떤 겁니까?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까? 육체적으로 배가 불러올 때 파도가 치듯이 철썩 철썩 철썩 하기는 하는데 그거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배가 불러올 때 그 느낌들이 어떻느냐는 거라. 철썩 할 때의 그 느낌은 어떤 거고, 철썩 안 하고 잔잔하게 불러와질 때의 그 느낌들은 어떻느냐는 거라.
느낌들은 실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실재하는 느낌을 볼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호흡이 변하고 있다, 육체적으로 호흡이 불러오면서 다른 방법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개념으로만 계속 가지고 있을 거 같으면 거기에 계속 머물러 있게 됩니다. 설혹 육체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으로 구분은 하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그 이상으로는 발전은 못하는 거라. 그래서 이 느낌들을 자꾸 볼려고 해야 됩니다.
배가 불러올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이 그 느낌들을 아는데, 그 느낌들이 어떤 느낌으로 아느냐는 거라. 따뜻한 느낌으로 아는 건지, 차가운 느낌으로 아는 건지, 아니면 따가운 느낌으로 아는 건지, 실제로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들 뺨을 손바닥으로 탁 치면 철썩 소리가 납니다. 철썩 소리가 날 때 뺨에서 일어나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거 어떤 느낌들입니까? 그건 알죠! 그와 같습니다. 그 느낌들을 알려고 해야 됩니다.
그 느낌들을 알게 될 때 이 함정으로부터 빠져나오게끔 됩니다.
수행하는 사람들은 실재적인 것들을 자꾸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는 힘이 든다 하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것뿐 아니라 여기는 재채기를 비유로 들어놓은 것도 있습니다.
수행하는데 재채기가 탁 나올려고 한다. 그럼 안 할려고 부단하게 용을 쓸 거 아니라. 그렇게 용을 쓸 때의 느낌들이 어떤 건지, 그리고 재채기를 탁 할 때의 느낌이 어떤 건지, 재채기를 탁 하고 나서의 느낌들이 어떤 건지, 그것들을 볼려고 하라는 거라.
그럴 때 그 느낌들을 알 거 같으면, 그리고 그 느낌들이 변하고 있는 것들이 보이면 재채기하는 것들을 잡아낼 수가 있다는 거라.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냥 재채기가 나올려고 한다. 이게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만 알 것 같으면 재채기를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잠이 올 때도 꼭 마찬가집니다. 잠이 올 때도 '잠이온다' '잠이온다' '잠이온다'고만 알고 있고, 잠이 오는 것이 점점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데, 그렇게만 알고 있을 거 같으면 수행 중에서 졸음을 몰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잠이 올 때 일어나는 느낌들을 분명하게 알려고 하고, 그 느낌들이 변하고 있는 것들을 자꾸 캐치를 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잠은 확 달아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 방법으로써 조금 더 사띠를 정밀하게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굉장히 힘들겠죠? 아까 서두에 얘기했듯이 수행은 힘드는 겁니다. 지금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고(苦)를 모르고는 열반에 이를 수 없다." '고집멸도' 이지 '락집멸도'라고 얘기한 적은 없습니다. 고를 알아야 도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괴로운 것은 도에 이르기 위한 거라. 그렇게 마음을 먹고 괴로운 것들을 넘어설려고 해야 됩니다. 괴로움으로부터 넘어서는 방법들로 자꾸 나아가야만이 여러분들이 바른 담마로 갈 수가 있다는 거라. 힘들어도 그냥 이생 안 온샘 치면 될 거 아니라. 그렇게 한번 해보시는 것이 여러분들에게는 더 좋을 겁니다.
뒤에 33페이지에 보면 "무상·고·무아를 보는 방법"이라고 적어놨습니다.
택법각지가 되면 무상·고·무아가 보입니다.
1. 담마에 대해서 많이 듣고 많이 익히도록 해야 됩니다.
2. 주변이나 마음이 청결, 정리정돈을 잘해야 됩니다.
3. 마음이 균형이 잡혀있어야 합니다. 오력의 균형들도.
4. 선우들 곁에 있고 많이 만나도록 해야 됩니다.
5. 무상·고·무아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알려고 해야 됩니다.
• 무상·고·무아라고 하는 담마를 보려면, 익숙해지려고 할 것 같으면
첫 번째가, 담마에 대해서 많이 듣고 많이 익히도록 해야 됩니다.
교리적인 거 때로는 필요합니다. 그거 몰라가지고는 수행에서 뭐가 일어나도 이게 뭔지를 몰라. 그것은 수행을 실천하는 보조적인 역할로써 존재를 하는 거지만, 그것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그래서 되도록이면 여기 서울 법회도 점심시간에 웃고 재밌게 떠들지 말고 빨리 밥 먹고 나거든 한 10분이라도 앉아가지고 도이법사님이 하든지 누가 하든지 해가지고 담마에 대해서 자꾸 서로 얘기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자신을 내세우는 것보다는 담마에 대해서 자꾸 얘기를 함으로 인해가지고 그 담마에 대한 이해가 빨리 되도록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게 첫 번째에 해당이 됩니다.
두 번째는 집안 정리정돈 잘 안 하는 사람들 있죠? 옷매무새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는 사람들 있죠? 스님들은 그 스님이 공부가 잘됐느냐, 안됐느냐 외부적으로 판단하는 게 가사를 입고 걸어가는 모습만 보면 저사람이 공부가 됐다 안됐다 하는 것이 드러나집니다. 공부가 안된 스님들을 보면 이 가사가 얼마나 펄럭펄럭,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가사가 펄럭펄럭 합니다. 좀 붙잡고 그리고 걸어갈 때 걸어가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걸어갈 거 같으면 크게 문제가 안되는데 그러고 그냥 간다는 거라. 여러분들도 마찬가집니다.
하루에 한 차례씩은 업을 정화하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깨끗하게 몸도 씻으면서 마음을 잘 가다듬고, 옷가지나 집안 정리정돈도 잘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그렇게 하는 방법들을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들이 어느 정도 되면 그래도 무상·고·무아를 보는 것들이 어느 정도는 수월해집니다.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죠? 실제로는 있습니다.
그래서 옷차림만 봐도 그 사람의 성품이 드러난다 하고 얘기합니다. 탐욕이 많은 사람인지, 아니면 성냄이 많은 사람인지, 아니면 게으른 사람인지 하는 것이 드러나집니다. 탐·진·치가 없어야만이 무상·고·무아의 성품이 드러나지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결한 부분들은 항상 신경을 좀 써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 세 번째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삼법인이 드러나게끔 할려면 마음이 균형이 잘 잡혀있어야 됩니다. 발란스가 잡혀있지 않으면 힘듭니다. 그래서 본인이 스스로 내가 지금 법에 대한 확신이 떨어지는 건지, 아니면 공부를 하고 법문을 듣고 하는 것들이 그냥 배우기 위한 건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뭔가 지나치게 노력하는 마음들이 강한지, 이런 것들을 잘 판단해야 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마음이 점점 더 향상되든지, 아니면 내가 점점 더 도의 길로 간다고 생각이 들어야만이 균형이 잡혀있는 상태가 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점점 더 원하는 것들은 많아지고, 그리고 법문 듣기만 좋아하고 다른 수행하는 거는 자꾸 뒤로 미룬다 이렇다 할 거 같으면 이미 발란스가 깨어진 상태입니다. 본인이 잘 판단해가지고 해야 됩니다.
특히 서울 사람들이 그런 것들이 좀 있는데, 듣는 걸 좋아합니다. 법문 듣는 것. 듣기는 잘하는데 그게 지혜로 연결되지를 안 해.
지혜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듣는다고 지혜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띠만 한다 해가지고 지혜가 일어나지 않듯이, 수행해가지고 사띠 열심히 해야만이 나중에 지혜가 일어나지게 되는 건데. 지금 사띠만 한다 해가지고 무조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듣기만 한다 해가지고 내가 불교에 대해서 다 안다고 할 것 같으면 그건 큰 오산이라는 거라. 그런 것들은 조금 조심하는 것들이 좋습니다.
그리고 신심 부분들, 특히 믿음에 대한 확신들이 덜 든다고 할 거 같으면 언젠가 테라와다 불교의범 하면서 삼보에 대한 수행방법들을 적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 방법들에 의해서 조금 더 그런 믿음들 확신들이 들 수 있도록 자꾸 만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에 중요한 부분은, 되도록이면 여러분보다도 조금 더 수행 많이 하고 조금 더 잘 살아가는 사람들 옆에 있으면, 같은 내 또래들이나 아니면 만날 나쁜짓 하고 엉뚱한 짓 할려고 하는 사람들 옆에 자꾸 있어가지고는 안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조금 더 수행 경험도 많고 그리고 잘 살아가는 사람 옆에서 그 얘기들을 들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십시요. 그거는 누차 설명을 안 해도 알 겁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가 뭐냐면 무상·고·무아에 대해서 개념적으로만 생각할려고 하지 말고 조금 더 깊게 알려고 해야 됩니다.
아마 내가 출가하기 전이었던 걸로 기억이 되는데 “나에게 무아에 대해서 완전하게 나에게 납득이 가도록 설명을 해줄 것 같으면 내가 원하는 것 다해줄게” 이렇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어느 스님도 무아에 대해서 그걸 설명을 못해줬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걸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자기가 알아야 되는 부분입니다.
무아에 대해서는 알기는 아는데 피상적으로 알려고 하지 말고, 고에 대해서 알긴 알고 무아에 대해서 알긴 알더라도 피상적으로 그냥 변하고 있는 것들이 무상이다 이렇게만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라. 그러면 그러한 수행으로만 계속 머물러 있게 된다는 거라.
그래서 이걸 조금 더 깊게 자꾸 알려고 해야 됩니다. 뼈에 사무치도록! 아, 이게 진짜 무상이구나. 아, 이게 진짜 무아구나 하는 것을 뼈에 사무치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그리해야 만이 이 택법각지가 완성이 돼나가고, 열반들이 탁 열리는 상태에 이르를 수가 있다 하는 겁니다.
그럴려면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여러분들은 스물네 시간 그냥 안 태어난 샘 치고 수행한다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모든 것을 바쳐서 내가 수행을 하겠다. 그리고 깨달음에 이르겠다 하는 마음들을 가지도록 그렇게 노력들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언제 그런 얘기한 적이 있죠? 불교를 알게 됐으면 두 가지는 해야 된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훨씬 공덕을 많이 쌓도록 하는 것, 또 하나는 해탈에 이르는 것. 둘 중에 하나는 해야 될 거 아니라. 둘 다 안 할 거 같으면 그거는 지금 불교를 믿고 있다고 하더라도 바르게 믿는 것은 아니다 하는 거라.
모든 것을 바쳐서 해탈에 이르도록 자꾸 노력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전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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