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1~2012 일상수행법문

붓다의 날 법회 (20120601)

담마마-마까 2021. 11. 12. 09:40

https://youtu.be/t3PTvM27Xlg

* 붓다의 날 법회 (20120601)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인데 팔계 지킬 사람이 이렇게 없어가지고 어떡하냐?

하루 동안 계를 지키고 산다는 게 참 힘이 듭니다. 오계지키고 사는 것도 힘드는데 팔계지키는 건 더더구나 힘들지?

그런데 여러분들은 중요한 걸 하나 놓쳤어요. 선을 행할 기회를 잡았는데 선을 행할 기회를 스스로 박차버렸다. 그렇죠?

 

계를 지키는 것도 선을 행하는 일들입니다. 수행만 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일은 아닙니다. 또 여러 가지 선을 행할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 그냥 조금 편해질라고. 그게 뭐냐면 방일한 것들입니다. 선을 행할 기회를 가졌을 때 그것을 지킬려고 노력하는 자만이 방일하지 않게끔 되는 겁니다. 게을러지지 않게끔 되는 겁니다. 냉정하게 자기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봐. 내가 이리 게을러 가지고 무슨 공부 하겠나 하고. 별로 양심에 가책이 없어요? 괜히 오계만 했다 싶어요? 다시 할까? 그러면?

 

압빠마도 꾸살레수 담메수(appamado kusalesu dhammesu) 그렇게 얘기합니다.

담메수(dhammesu)-선법, 선한 행위를 할 기회가 생겼을 때.

꾸살레수(kusalesu)-선한, 담메수(dhammesu)-행위를 할 기회. 선한 행위를 할 기회가 생겼을 때,

압빠마다(appamada), 선한 행위를 할 기회가 생겼을 때 선한 행위를 하게 됨으로 인해서 게을러지지 않는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거 하나만 몸에 익혀도 굉장히 부처님 법에 맞게끔 살아갑니다.

 

오늘 일찍 온 사람들은 여러분들에게 방석까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누군가가 방석을 깔았습니다. 선을 행할 기회를 잡은거라. 잡았으니까 내가 선한 행위를 한 거라.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 수고로움을 덜고 편하게 그냥 자리에 앉게 된 거라.

오늘 이 자리가 마련된 것은 그러한 것들이 많을 겁니다. 누군가가 선한 행위를 함으로 인해서 나는 그냥 공짜로 얻어지는 것.

 

조금 전에 부처님한테 꽃 올렸죠? 여러분들이 아마 직접 수고롭게 꽃을 사서 부처님한테 올린 게 아닐 겁니다. 여러분을 대신해서 누군가가 게으르지 않고 선한 행위를 해가지고 사왔으니까, 여러분들은 편하게 올립니다. 참 현대사회가 되면서 편한 것은 좋기는 좋은데, 그 반대로 그마만큼 내가 선한 행위를 할 기회가 점점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보통 일상적으로 우리가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원하는 것인가를 잘 따져서 행하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이다 할 거 같으면 그건 반드시 해야 됩니다. 필요한 물품도 구입을 해야 되고 또 내가 지금 필요한 일이 공부다 할 거 같으면 공부도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고.

그런데 내가 지금 필요한 옷이라고 산 옷이 이게 그냥 단순히 필요만 한 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저렇게 저런 옷을 입으니까 내가 입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걸 원했기 때문에 그것을 산 거라. 리바이스가 좋으니까 리바이스를 샀다, 그러면은 필요한 것도 해당이 되지만 원하는 것도 해당이 됩니다. 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원하는 것을 자꾸 쫓다보면 욕망이 끝도 없이 번져버립니다.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필요한 것들인가를 생각해가지고 필요하다 싶을 경우에 그것을 행했을 경우에는 스스로 통제할 수가 있게 됩니다.

또한 나에게 지금 필요없다 할 거 같으면 당연히 나눠줄 줄 압니다. 나에게 지금 필요없는 물건이고, 그것이 설혹 내가 원하는 것으로 인해서 샀다고 하더라도 지금 현재 필요가 없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원하는 것으로 샀을 경우에는 욕심이 생깁니다. ‘아, 아까운데’ 하는 생각이 들면 못나눠줍니다. 그런데 필요한 것들로 샀을 경우에는 그 필요가 없어졌을 경우에는 나눠줄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항상 살아가면서 내가 지금 행하는 것이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는 행위다 할 거 같으면 그거는 힘써 행해야 됩니다. 게으를려고 하면 안돼.

그다음에 두 번째가 뭐냐면 내가 지금 행하고 있는 것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원하는 것인지를 잘 판단해야 됩니다. 적어도 이 두 가지만 해도 잘 살 거라. 남에게 욕 안 먹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저 사람은 참 마음이 곱다. 참 욕심 안 가지고 잘 나눠준다 하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살아가게 될 겁니다.

 

'위라가 니시땅' 그렇게 얘기합니다.

집착하고 욕심을 가지고 하는 것들을 마음속에서 버려버려라.

참 힘들죠? 집착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살아가는게 이때까지 집착으로 인해서 살았는데 그거 버려버리기가 참 힘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떡할 거라.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 부처님이 얘기를 하는데.

 

특히 오늘 같이 붓다의 날, 부처님 오신 날, 웨사카뿌자 라고 하는 날입니다.

부처님 오신날이기 때문에 이런 게송들을 여러분들이 기억을 하고 그대로 따를려고 노력들을 해야 되는 겁니다.

부처님 오신 날은 우리가 보통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는 웨삭데이, 웨사카 뿌자라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한국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음력으로 사월 보름이 됩니다. 그러면은 버마, 태국, 스리랑카 이런 나라에서는 행사를 아주 크게 합니다. 어떤 행사를 하는지 아세요?

조금 전에 스님이 얘기한 붓다의 날이라고 그럽니다. 웨사카 뿌자라고 하는데 그 타이틀이 뭐라고 돼있느냐면 ""부처님 성도 2600년 기념 축제"" 그렇게 적어놨습니다.

 

올해 불기가 몇 년입니까?

한국에서는 2556년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는2555년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거는 별 차이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일단 태어나면 한 살 먹고 시작을 하니까, 그래서 내년되면 두 살이 되죠? 테라와다에서는 일년이 지나야 한 살이 됩니다. 그 이치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2555년을 하든 56년을 하든 뭐 그거는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어쨌든 테라와다 방식으로 할 것 같으면 2555년입니다.

 

그런데 왜 2600년 이라고 그럴까?

부처님 성도를 서른다섯 살에 하셨죠? 부처님이 깨달음에 이른 게? 그러고 나서 45년간 법을 설했습니다. 우리가 불기 연도를 따지는 게 부처님 입멸한 때부터 따집니다. 그러니까 입멸한 데서 45년을 더해야만이 성도한 해가 되는 거죠. 55에 45를 더하면 몇입니까? 2600년이 되죠.

그래서 지금 테라와다 불교국가에서는 올해가 가장 큰 행사로 칩니다. 원래 딱 떨어지는 거 좋아하잖아. 2500년 2600년 이런 식으로. 그래서 올해는 부처님 탄생하신지 2555년이라는 용어를 안 쓰고, 부처님 성도 2600년 이렇게 타이틀을 합니다.

 

참 우리 하고는 많이 틀리죠? 우리는 부처님 오신 날 그러면 부처님 태어나신 날만 얘기하는데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는 부처님 태어난 날 뿐만 아니라 성도하신 날도 우리와 같은 부처님 오신 날이고, 또 하나 더 부처님 열반하신 날도 똑같은 날입니다. 그래서 삼대 기념일이 한 날로 정해져 있습니다.

부처님 태어나고 성도하고 열반하신 날이 동일하게 사월 보름으로 되어있습니다.

우리 하고는 많이 다르죠? 아마 모르긴 해도 우리 선원도 내년 돼서는 부처님 오신날이라고 이름을 안 하고, '붓다의 날'이라고 명칭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건 선언을 해야 됩니다.

 

처음에 불기 2500년으로 선언을 하게 된 것이 1950년이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세게 불교도 회의를 개최하면서 그때가 불기 2500년으로 선언을 했습니다.

그때 세계 각국에서 모인 대표들이 다 동의를 해서 그날을 웨사카달 사월 보름으로 했습니다. 그게 전세계적으로 통일돼가지고 지금 현재 우리나라도 불기 2556년 이렇게 쓴 게 그 연도가 그때부터 시작이 된 겁니다.

그때부터 전세계에서 불기는 통일이 됐습니다.

 

그전에는 불기가 각 나라마다 다 달랐어. 그때부터 통일이 됐는데, 그러고나서 부처님 오신 날이 통일이 되게 된 것은 1976년도에 완전하게 통일이 됩니다.

그전에는 각국마다 선언을 합니다. "우리 말레이시아는 1956년도에 선언을 했다. 그러면 1956년도에 우리 말레이시아 불교도들은 웨사카달 보름날을 부처님의 날로써 선언을 합니다" 하면서 공포를 탁 합니다.

그다음에 네팔은 몇 년도에, 태국은 몇 년도에 이런 식으로 선언을 하게 되는 거죠. 그게 보통 1950년대 1960년대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1,976년도에 마지막으로 태국에서 세계불교도가 모였을 때 음력으로 치면 사월 보름을 붓다의 날, 웨사카 뿌자라고 세계불교도 대회에서 다같이 서명을 해서 선언을 한다 하고 공포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1976년도부터 불교도들은 우리식으로 할 거 같으면 음력 4월 8일이 기준이 되는 게 아니라, 4월 보름이 기준이 되게끔 되죠. 그러다가 1990년 넘어와가지고 UN에서도 요즘말로 하면 크리스마스날 같이 그러니까 예수의 날이죠. 예수의 날과 같이 붓다의 날을 언제로 정했냐면 음력 4월 보름으로 확정을 해서 발표를 하게끔 됩니다.

 

그런 과정들을 겪어왔는데,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승불교를 신봉하는 나라들도 지금은 4월 8일을 부처님 오신 날로 쇠지를 않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고.

딱 두 나라, 아직까지 한국하고 일본 딱 두 나라만 지금 4월 8일날 쇠고있는 형태들을 띱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인제부터는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우리 4월 8일로 지내지 말고 4월 보름날로 하자 해버리면 끝나버립니다. 별 문제가 없습니다. 4월 8일날 지내면 어떻고, 4월 보름날 지내면 어때서?

그건 문제가 안되는데, 문제가 뭐냐면 우리나라는 성도의 날이 따로 있고, 열반일이 또 따로 되어있습니다. 이걸 사월 보름날 하나로 통일시켜야 되는데 이걸 통일시키기가 힘이 들거든. 성도날을 따로 정해놔야 신도들이 한사람이라도 더와야 불재일날 하나 더 놓을거 아니라. 부처님 열반일을 따로 잡아놔야 시줏밥이 들어올거 아니라. 그것만 없으면 참 간단한 문제인데, 그냥 그게 뭐라고 그걸 생각해가지고 이러겠어.

 

그냥 다른 나라들 다 사월 보름날 지내니까 삼대국경일은 하나로써 통일되어 있습니다. 각나라들은

 

각 나라들은 삼대 국경일이 하나로써 통일이 되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모르긴해도 오래지 않아서 음력 사월 보름날을 부처님의 3대 국경일 부처님 태어나시고, 성도하시고, 또 열반하신 날로써 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이 처음에 태어날 때 뭐라고 얘기했어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것밖에 얘기 안 했어요? 사실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얘기한 적은 없습니다. 언제 하늘 위에 하늘 아래 내가 최고다 하고 얘기한 게 있어?

 

그거는 없고 '젯토-하마스미 로-깟사'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게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우리말로 하면 '나는 이 세상에서 최상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른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으뜸이다' 이 세 게송을 먼저 얘기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 생이 이것이 나의 마지막 생이다. 다시는 이와 같은 태어남은 없다' 하고 얘기합니다.

 

'aggohamasmi lokassa, jeṭṭhohamasmi lokassa, seṭṭhohamasmi lokassa,

ayamantimā jāti, natthi dāni punabbhavo' ti. [MN123]

 

이게 사실은 부처님 탄생 게송입니다.

그걸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약간 의역을 많이 했죠? 천상천하 유아독존 일체개고... 나도 지금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그렇게 오해합니다.

 

그건 아니고, 부처님이 봤을 때 태어나서 보니까 이 생이 부처님에게는 마지막 탄생인 거라. 나는 인제는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거라. 그런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나는 다신 안 태어난다는 거라. 그런데 그 이전에 그런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서 그런 목적을 달성한 사람이 있었느냐면 아무도 없었거든. 그러니까 내가 최초라는 거라. 그러한 자로서는 최초라는 거라. 당연히 그러한 이유로써는 내가 최초로 깨달음을 이루게 되니까 내가 최고 어른이 되는 거고, 내가 가장 앞선 자가 된다는 의미가 되는 거라.

그게 인제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들도 어쨌든 이 세상에 태어났죠?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습니까? 어떤 목적을 향해서 지금 달려가고 있어요? 부처님과 같이 인제는 다신 안 태어날 겁니까? 안 태어날 목적을 가지고 지금 달려가고 있어요? 아니라요?

그냥 오늘 하루만 즐겁고 행복하고, 또 마 맛있는 거 먹으면 장땡인가? 그거는 아니죠? 적어도 이 세상에서 뭔가 좀 의미있는 일을 해볼려고 하죠? 뭔 의미있는 일을 했을까? 조금 전에 팔계도 안 지킬려고 한 사람들이.

 

자애의 행위들을 몸소 행하게 되면 선한 행위들은 자꾸 익혀집니다. 그래서 '아, 참 행복하고 내가 이익이 있기를 바란다' 하는 마음을 내고, 그 마음을 또 다른 생명체에게 내고,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면 선한 행위는 저절로 내가 자꾸 하게끔 됩니다.

 

그런데 마음이 자비롭지 못하면 선한 행위가 있어도 그걸 피해버립니다. 왜 그러냐 하면 마음이란 것이 참 간사해가지고 좋은 방향으로 절대 안 나아가집니다. 게으르고 나쁜 방향으로 나아갈려고 자꾸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내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자꾸 마음을 먹으면 선한 방향으로 자꾸 나아가게 됩니다.

 

부처님도 그 기회를 잡은 거라. 태어난 것은. 그래서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이 생에 태어났으면 반드시 이 생에서 해야 될 일, 할 일들을 목표로 세우도록 하십시오.

이 생에서 나는 깨달음은 마 틀려버렸고, 그래도 적어도 남들한테 잘살았다는 소리는 듣고 싶다 할 것 같으면 자애를 실천하고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을 게을리하면 안돼.

그렇지 않고 내가 그래도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남아있는 가족들이나 자식들이 나를 생각할 때, '아 그래도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참 나를 위해서 잘해줬고 또 참 잘 사셨다. 또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듣도록 하기 위해서 살겠다' 할 거 같으면 내가 바른 행위를 해야 되는 거라.

도덕적인 부분을 잘 실천해나가서 죽일려고도 하지 않고, 훔칠려고도 하지 않고, 삿된 행위를 하려고도 하지 않고, 거짓말 할려고도 하지 않고 또 술먹을려고 해서도 안 되는 거라. 그래야만이 다른 사람들이 기억할 때 '아 참 그 사람은 법 없이도 잘살았다던 사람이다'하는 말을 들을 거 아니라.

 

또는 내가 살아가다가 조금 더 큰 꿈을 가져서 그래도 위빳사나 수행을 만났고 테라와다 불교를 만났을 때, '에이, 이참에 내가 수다원에라도 이르르자' 아니면 '아라한에 이르르자' 할 거 같으면 지금 현재라도 항상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래서 알아차리는 것들이 이렇게 빨리 변하는 것들이고 무상한 것이구나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서 그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려버려야 되는 거라.

 

계정혜를 닦아 나가야만이 여러분들이 목적하는 바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 목적을 이루어나갈 수가 있습니다. 적어도 부처님은 그 목적의식은 분명하게 가졌습니다.

여러분들도 가질 수 있죠? 오늘만 잘먹고 잘살자 그러지 말고.

 

그렇게 해서 부처님은 그 목적을 탁 이루었어요.

이루고 나니까 '아, 내가 참 잘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읊은 것이 있습니다.

"수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나는 집짓는 자를 찾아 헤맸다."

그 많은 생을 떠돌아다니면서 집을 짓는 자를 찾아 헤멘 거라. 내가 만날 이렇게 뭔가 행위를 하면 그 행위에 대한 결과를 받고, 좋은 행위를 하면 좋은 결과를 받고, 나쁜 행위를 하면 나쁜 결과를 받고. 여러분 그러잖아요. 남한테 칭찬해주면 '아 고맙다' 소리 듣는 거고, 남한테 싫은 소리를 하면'죽일놈 살릴놈' 하는 소리를 듣게 되는 거고, 그 원인 결과를 계속 받고 있는 거라.

 

그런데 뭐가 이걸 일으키게 만드느냐는 거라. 원인 결과 없는 게 있습니까? 전부 여러분들이 지은 건 여러분들이 다 받는 겁니다. 그래서 이 짓고 받고 하는 것을 찾아갖고 끊임없이 탐구를 했는데, 이때까지는 몰란 거라. 뭐가 그렇게 하는지를 몰란 거라. 그런데 이제 탁 깨닫고 나니까 그걸 알았다는 거라.

 

그렇게 집을 짓는 자를 찾아서 헤매는 시간이 얼마나 괴로웠겠어?

집을 짓는 자를 찾으면서 거듭되는 생사, 거듭되는 윤회는 참 괴로운 거라. 너무나 괴롭다는 거라. 원하는데, 간절히 원하는데 그거 안 이루어지면 사람들 돌아버립니다.

부처님도 그와 같다는 거라. 얼마나 힘이 들었겠어? 여러분들 조그만 거 원해도 그 원하는 거 안 이루어지면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그 큰 뜻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못 이루니까 얼마나 힘이 들어? 그렇게 괴로웠다는 거라. 그런데 탁 봤다는 거라.

 

"집을 짓는 자여 나는 너를 봤다!" 참 얼마나 위대한 선언이라.

인제 집 짓는 자 너를 봤다. 집짓는 자 너를 봤기 때문에 다시는 집을 못 짓는다는 거라. 그래서 나는 인제 선한 행위를 하지도 않고 악한 행위를 하지도 않는다는 거라. 그냥 내가 행하는 것 뿐이라는 거라. 누가 나에게 "물 줘" 할 거 같으면 자기가 떠먹으면 될 건데 이런 생각도 이런 걸 짓지도 않고, 그래 당신을 위해서 내가 선한마음 내갖고 물 갖다줄께 하고 좋은 생각을 짓지도 않고, "물 갖다줘" 할 것 같으면 전혀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냥 물 갖다준다는 거라. 그냥 행하기만 한다는 거라.

선한 행위도 하지 않고 악한 행위도 하지 않는 길을 나는 분명하게 발견했다는 거라. 선한 행위를 하고 악한 행위를 해야 내가 윤회를 할 건데 인제는 윤회할 일조차 만들지 않게끔 됐다는 거라. 그래서 너는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한다는 거라. 행위하는 자가 없어져버렸다는 거라.

 

내가 뭔가를 행하는 행위자가 있어야만이 뭘 받을 거 아니라? 뭔가 누군가 행하는데 누가 행하는지도 모를 거 같으면 그거 어떻게 처벌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악한 행위를 했든 간에, 아무리 선한 행위를 했든 간에 뭐가 밝혀져야 그걸 처벌을 하든지 상을 주든지 할 거 아니라. 그런데 부처님은 아예 인제는 그것조차도 짓지를 않는다는 거라.

 

그래서 집을 짓는데 가장 중심이 되는 대들보, 집에 대들보가 부셔져 내려앉아버렸다는 거라. 집을 받치고 있는 이 기둥들도 깨져버렸다는 거라. 이 기둥을 만들려고 할 거 같으면 시멘트가 있어야 되고 물이 있어야 되고 또 일정한 공기가 있어야 되고, 여러 가지가 있어야 되는데 이 뭉쳐지는 게 풀어져버린다는 거라. 아무리 세멘트만 있어도 물이 거기에 없으면 이 세멘은 굳어지지 않습니다. 물은 물대로 떠나가 버릴 거 같으면 이 세멘만 있어가지고는 아무리해도 이 기둥을 못 만든다는 거라.

 

부처님은 그걸 분명하게 아셨다는 거라. 요거는 세멘트와 기둥과 물과 모래와 이런 것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걸 분해해버리는 거라. 분해해버리니까 이 기둥이 어떻게 남아있을 수가 있고, 이 대들보가 어떻게 남아있을 수가 있느냐는 거라. 전부 그냥 무너져버렸다는 거라. 얼마나 기쁘겠어?

이 집만 그러는 게 아니고, 이 몸뚱이도 언젠가는 팔십년이 지나고 나면 죽음을 맞겠지. 그때는 완전히 흩어질거고. 마음은 지금 아예 그렇게 분해를 시켜버리고 나니까 남아있는 게 하나도 없는 거라. 형성되질 않는 거라. 업을 지을 수 있는 것들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지를 않는다는 거라.

그래서 "나는 이 갈애의 종말을 맞아버렸다."

그게 바로 오늘 부처님이 한 얘깁니다. 2600년 전에

부처님이 성도한 날로부터 오늘이 2600년이 지난 날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러고 싶은 생각 없어요? 너무 멀어요?

너무 멀어도 지금 내가 짓는 것들이 선한 행위이든 아니면 자애의 마음이든, 아니면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든 그 모든 것들은 이걸 위해서 하는 것들입니다. 이 윤회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괴롭기 때문에 이 윤회를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지금 이생에서는 내가 못해도 내가 조금조금씩 다른 것들로써 쌓아나가고 있는 거라. 그래서 자꾸 여러분들에게 "바라밀을 행하라, 바라밀을 행하라" 하는 거라.

수행에서도 아무리 수행을 열심히 해도, 바라밀을 닦아나가지 못할 거 같으면 수행에서도 한단계 한단계 위로 차고 올라가지도 못해. 내가 아무리 도덕적으로 잘 할려고 하더라도 평소에 바라밀들을 쌓아놓지 못할 거 같으면 나쁜 조건들을 자꾸 만나는 거라.

 

나는 안 그러고 싶은데 주변 것들이 자꾸 못살게 구는 거라. 자기는 몰라. 왜 이런 조건이 나에게 자꾸 만들어지느냐는 거라. 내가 무슨 죄가 많느냐, 내가 무슨 업이 많느냐 그러는데, 실제론 그런 것이 아니고 자기가 그런 바라밀을 쌓지 않고 있는 거라.

그런 바라밀들은 여러분들이 자꾸 쌓아나가야 됩니다. 적어도 이생에서 이익이 있고 행복할려고 할 거 같으면 깨달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러분들은 지금 현재 여러 가지 선한 공덕을 쌓고 계율을 지키고 수행을 하고 보시를 하고 하는 그런 바라밀들은 자꾸자꾸 쌓아야 됩니다.

그 힘들에 인해가지고 뭉쳐졌을 때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부처님과 같이 갈애의 종말이 일어납니다. 그런 길들로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얼마나 살 거 같애요? 얼마 못삽니다. 앞으로 고작 해봐야 몇십년? 그런데 지금 이때까지 쌓아온 습관들이 나쁜 쪽으로 훨씬 많이 형성돼있는데 언제 선한 쪽으로 물길을 돌려 놓을 거라? 지금도 늦어요. 그런데 빨리 정신차릴 생각 안하고 오늘 지나고 나면 그냥 또 헤벌럭하고 다 잊어버려. 급한 것들이라는 거라. 급한 것들!

세상에서 무엇이 급한지 내가 지금 현재 시급하게 해야 되는 것이 뭔지를 자꾸 잊어 먹어버린다는 거라. 그걸 자꾸 잊어버리면 그냥 살기 급하게 된다는 거라.

이 선원은 선원이 먼저 만들어지고 나서 수행자가 형성된 게 아닙니다. 수행자들이 형성되고 나서 '아, 우리가 그래도 조금 더 전문적으로 수행할 곳이 필요하다' 해가지고 선원이 형성되는 것들입니다.

먼저 선원을 형성하고 나면 사사롭게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필요성을 자각을 하고 나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적어도 오늘은 그 필요성이라도 먼저 자각을 하라는 거라. 그러면은 아 이게 필요하다 싶으면 자기가 행하게 되는 거라. 그래야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들입니다.

 

이제 부처님이 팔십 세가 됐습니다.

참 오래 사셨죠? 부처님이. 그때 뭐 변변한 약이라도 있었어? 변변한 음식이라도 하나 있었어? 지금 이리 좋은 세상도 팔십 살까지 산다는 것 힘들 뿐 아니라, 그것도 바르게 산다는 것이 참 힘이 드는데, 부처님은 그래도 그렇게 쓰러져가는 노구를 이끌어서 많은 사람들을 깨달음에 이르도록 만들고,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자신이 내가 여러분들을 깨달음에 이르게 해주겠다 하는 생각도 일으키지 않고, 그냥 오로지 당신 할 일만 하고 사신 거라.

 

"이제 내 나이가 무르익어서 수명은 한계에 이르렀다."

그 대반열반경을 스님이 읽으면서 참 옛날에 눈물 많이 흘렸던 게 이 대목입니다. 인제 나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거라. 인제는 도저히 이 몸뚱이를 지니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라. 지금까지 살아있으면 얼마나 좋겠어. 그런데 부처님이라고 별 거 없는 거라. 나이가 들면 이 신체는 부서지게 돼 있고 정지하게 돼 있다는 거라.

그걸 정직하게 부처님이 얘기한 거라.

인제는 내 나이가 팔십이 돼갖고 다 됐다. 인제 곧 나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거라.

 

이렇게 팔십 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누구도 의지하지 않았다는 거라. 내가 많은 제자들을 깨달음에 이르게 했지만 내가 너희들 제자들을 의지했느냐? 나는 오로지 내 자신을 의지했다는 거라.

내 자식들 다 키워놨지만 키워놓고 나면 집에 가서 편하게 쉬고, 또 자기를 돌봐주겠지 이런 생각조차 안 한다는 거라. 그냥 키우면 돼. 그 자식들이 지가 잘살든 못살고 하는 것은 내가 키워놨기 때문에 그 자식들은 틀림없이 잘 산다는 거라. 내가 자식들 덕 볼 생각은 전혀 없다는 거라.

 

"오로지 나는 내 자신만을 의지하고 산다."

내가 선한 행위에 대해서 보답을 받을려고도 하질 않았고, 내가 악한 행위도 짓지도 안 했고 그냥 응당 행해야 될 것들을 나는 행한 것 뿐이라. 그러니 뭘 의지하고 살았겠어? 재산이 있어 재산을 의지했겠어, 아니면 제자들이 있어 제자를 의지했겠어? 오로지 의지할 것은 자기 자신 뿐이라는 거라.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그렇게 사신 거라. 괴로움이 있으면 괴로움이 있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거라. 누군가가 나의 법이 필요하다 할 거 같으면 내가 법을 설해야 되겠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거라. 그러고 그거 그냥 행하는 것 뿐이라.

 

너희들도 이와 같이 게으르지 말고 자기 자신을 잘 알아차리면서 자기 자신을 잘 지켜라. 내가 지금 행하고 있는 것들이 뭔가 하는 걸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그리고 그 자기 자신을 지키면서 살아라는 거라. 딴 거 의지할려고 하지 말고.

재산 많이 모을려고 하고, 명예 높아질려고 하고, 누군가 나를 칭찬해주는 거, 비난하는 거, 잃어버리는 거, 비난받는 거 이런 것들에 의지하려고 하지 말아라는 거라.

 

"자기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잘 보호하도록 하여라.

내가 설한 이 진리, 내가 설한 이 도덕적인 율, 담마와 위나야에 머물러라.

그렇게 담마와 위나야에 머물러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자는

언젠가는 나와 같이 이 괴로움의 끝을 볼 것이다.

윤회를 끊어버리고 괴로움의 끝을 볼 것이다."

 

여러분들도 시간이 나면 이 게송들을 자꾸 거듭거듭 읽어봐야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뭘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는지 하는 걸 분명하게 잘 알도록 해야 됩니다.

그렇게 부처님이 태어나시고 성도하시고 열반하신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은 뭘 해야 될까? 이 좋은 날에.

조금 전에 여러분들 뭐 했어요? 향과 꽃 초 이런 걸 공양 올렸죠! 이것도 오늘 행해야 될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대신에 그냥 행할려고 하지 말고. 꽃은 어떤 속성을 지닙니까? 이 장미꽃을 오늘 여러분들이 부처님한테 공양올렸는데 되게 아름답죠? 색깔도 예쁘고. 부처님 이 아름다운 거 보십시오 하면서 올린 거 아니죠? 부처님이 눈이 있어 뭐가 있어? 뭐 어떻게 볼 거라? 그건 아닐 거라.

 

왜 꽃을 올렸어요? 꽃도 '화무십일홍'이라고 그러죠? 반드시 시든다는 거라.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딨어요? 무상한 것인데. 그럼 여러분들 몸이라고는 안 늙고 안 죽을 거 같아요? 이 꽃과 같이, 여기에는 보면 저렇게 시든 꽃들도 있습니다. 스님은 자꾸 누가 꽃을 시든 걸 버릴려고 그러면 버리지 마라 하고 얘기합니다.

"보고 무상한 걸 알아라." 사람들은 자꾸 새 것만 좋아해서 새 것만 갖다 놓을려고 그러지? 시는 거는 그냥 안 볼라고 그래. 없앨라고 그래. 그거 없앤다고 없어집니까 그게?

여러분들이 안 늙을라고 안 죽을라고 해도 그렇게 됩니까? 안됩니다. 그러면 그냥 그대로 현실을 봐! 보고 아 나도 늙고 죽는구나 생각할 거 같으면, 더 늙기 전에 좋은 일 할려고 해야 되는 거고, 죽기 전에 그래도 내가 의미있는 일들을 할려고 해야 되는 거라. 더 살려고만 하고 안 죽을려고만 할 거 같으면 그게 그렇게 돼? 안되는 거라.

 

꽃을 올릴 때는 그와 같은 마음이라. ! 나도 이렇게 태어났으면 죽을 수밖에 없구나. 그래서 그 경각심을 탁 가지고 하루빨리 뭔가 의미있는 일들을 하고 또 수행해서 이 생로병사를 뛰어넘는 길을 가야되겠다는 다짐을 해야 되는 거라. 그거 하라고 여러분들이 부처님한테 꽃을 올린 거라.

향을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고, 초를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러기 위해서 오늘 이 공양물들, 한국에서는 뭐 육법공양이라고 그러나? 육법공양이란 걸 합니다. 만날 아름답고 좋은 것들 그것 보고 환희심 일으키라고 하는 거 아니라.

세속적인 것들 환희심 일으키도록 만들어가지고 그걸 어디다 쓸 거라? 안 변하고 가만히 있을 거 같으면 그것도 쓸모가 있겠지만은 변하는 것들인데, 거기다 환희심 일으켜가지고 으짤거라는 거라? 좋은 음식, 좋은 과일, 또 아름답게 장식하고 하는 것들에 자꾸 치중하면 안돼.

이걸 하는 의미들을 잘 되새겨야 됩니다.

 

그래서 만날 스님은 그렇게 얘기합니다. "과일 많이 올리지 마라. 뭐하러 그렇게 많이 올리느냐? 그 돈 가지고 다른데 써라."

얼마 전에도 부처님 오신 날 해가지고 부산뿐 아니라 서울 이런데 퍼레이드를 합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생각합니다. 저 저렇게 쏟아부을 돈, 저 돈이면 무의탁 노인들이나 진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와주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이냐는 거라.

그렇다고 해서 카퍼레이드 하고 제등행렬 하는 것들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환희심을 일으켜서 아! 불교를 믿고 부처님 법에 따라서 살아갈 거 같으면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너무 지나치다는 거라.

 

차라리 아주 간소하게 하면서 걸어갈 때 부처님 마음과 같이 부처님이 그렇게 법을 전하기 위해서 걸어갔듯이 경행을 하면서 아주 고요하게 걸어갈 것 같으면 자기 자신도 공부가 되고, 또 거기서 남는 이익들을 가지고 또 좋은데 쓸 수 있는데, 그냥 외형적인 것에 바빠. 그거 치장하기에.

각 절들도 마찬가지고, 여기도 마찬가지고. 하지마라 하지마라 하고 있는데도 그러고 있는 거라 자꾸. 뭐 할 건데? 그걸 가지고. 여러분들은 그러면 안돼. 여러분들은 그래도 적어도 그 의미를 바르게 되새겨야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 오신 날은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는 뭘 많이 하느냐면 각각의 마을 앞에서 음료수와 음식을 나눠줍니다. 그냥 지나가질 못합니다. 안 먹고 지나가질 못합니다. 부처님 장식할 돈, 제등행렬 할 돈들을 모아가지고 그 돈가지고 음식장만해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서 나눠주고 동네 앞에 있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음료수라도 한 잔씩 주면서 화기롭게 아! 참 부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가 하는 것을 얘길 하고 그러는 거라.

 

오늘 여러분들이 공양할 때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 선원은 그래도 다른데 보다는 조금 더 나은 게 뭐냐면, 물론 돈도 없지만 자율적으로 자기들이 마음을 내서 뭘 합니다. 오늘 가져온 음식들도 한 사람이 가져온 게 아닙니다. 나는 오늘 콩나물을 무쳐올게. 나는 오늘 김치 담아올게. 이래가지고 여러 사람들이 자기 돈으로 합니다. 선원의 돈 한푼 가져간 거 아니고. 그렇게 해가지고 마련한 겁니다. 마련해가지고 여러분들한테 나눠주는 것들이라.

이 좋은 날에 그래도 우리가 여기 모여가지고 부처님 말씀이라도 듣고, 조금이라도 수행해보고, 또 부처님과 같이 살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거라.

 

그다음에 부처님 오신 날에 또 많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뭐 하죠? 방생 많이 합니다. 방생! 부처님이 해방됐듯이 잡혀있는 생명들을 풀어준다는 거라. 그래서 새 같은 것도 사서 풀어주고, 물고기도 사가지고 풀어주고 이리합니다.

그런데 잘해야 됩니다. 그거 할 때는! 새를 풀어줄 때 만날 기르던 거 풀어줘봐야 가서 죽습니다. 물고기도 지 풀어줘야 될 데 가서 풀어줘야 되는데 엉뚱한 데 가서 풀어주니까 죽습니다. 방생이 아니고 오히려 죽이게 되는 행위들이 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방생할 걸 잘 선택을 해서 해야 됩니다.

 

그렇다고 방생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방생들은 해야 됩니다. 자유롭게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생명은 어떤 것이든 평등한 것입니다. 나의 생명이 내가 좀 더 행복하고 괴로움이 없기를 바라듯이 다른 생명도 꼭 같습니다. 그렇게 묶여 있는 것들을 보면 자유롭게 풀어줘야 되는 것이고, 그 생명들이 괴로움이 없기를 바래야 되는 것들입니다.

 

또 오늘 많이 하는 것이 사실은 팔계를 지켜야 됩니다.

그래서 조금 더 사회에서 하지 못하는 것, 오늘같이 경축일 날 그래도 이걸 지키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계율을 지키고, 또 오늘 그래도 시간이 나니까, 오늘 뭐 어쨌든 노는 날이잖아. 노는 날 뭐 할 거라? 그냥 수행이나 하고 있지! 그래서 수행들을 하는 겁니다.

시간이 날 때 하지도 못하면서, 시간을 일부러 내서 수행하겠다? 계를 지키겠다? 그거는 꿈속에서나 가능한 것들입니다.

 

어쨌든 이런 일들이 이 웨사카 뿌자, 부처님 오신 날에 하는 여러 가지 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연등을 공양 올린 것도 그와 같습니다. 연꽃도 꽃의 종류입니다. 이 육체가 언젠가는 늙고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되새겨야 되는 겁니다.

또 그렇게 연등공양을 올리면서 헌금을 한 것들은 유용하게 쓰여지도록 해야 됩니다.

만약에 그 돈이 스님 외국여행가는데 자금으로 쓰여버린다 할 것 같으면 의미가 없어져 버리는 거라. 한국에는 초파일 지나고나면 각 절에 가면 주지스님들 보기가 힘듭니다. 다들 돈 얼마씩 가지고 외국여행 간다고 그럽니다. 그리고 어디 싸돌아다니기 바쁩니다. 돈 쓰러. 신도들은 쎄가빠지게 좋은일 하라고 그걸 모아줬더니만 그걸 가지고 자기 혼자 사용하고 쓰고 있다는 거라.

 

우리 선원은 적어도 그러지는 않습니다. 이때까지 세 번째 지금 하고 있는데, 이때까지 등도 안 달았어요. 한 번은 한 오백만원 모였나? 두 번째도 한 육백만원 가까이 한 오백몇십만원 아마 모였을 거라. 한 푼도 안 쓰고 적금을 딱 들어놔부렀어. 그래서 어떨 때는 좀 야속합니다. 다른 절에는 그래도 부처님 오신 날 지나고 나면 스님들한테 십원이라도 보시금이라도 주는데, 이놈의 선원은 어떻게 된 게 부처님 오신 날 지나도 보시금 십원하나도 안주니까 어떨 때는 섭섭하기는 섭섭해. 그렇다고 올해 주라는 얘기는 아니라 이!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장한 일을 하는 거라. 십원하나 안 써갖고 그 돈 딱 모아가지고 적금을 들어놔버리는데 얼마 안되지. 다른 데들은 몇천만원씩 하는데 우리는 낏짱 해봐야 오백만원 모이니까. 오백만원 맞지? 그래서 두번 모둔 게 천백만원가까이 모둔 거로 알아. 그래가지고 딱 적금들어가지고 이걸 가지고 나중에 유용한데 쓴다고 그러더라고. 그 마음이 고마운 거라. 올해는 어떻게 할지 모르지. 이돈 가지고 저들끼리 갈라먹어버릴지 어떨지는 몰라도, 그래도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 어쨌든 여러분들이 이렇게 함으로 인해가지고 그 돈이 유익하게 쓰여지게끔 되는 것들입니다.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승복을 입고 있는 스님들이 한국에 꼴랑해봐야 열 명도 안됩니다. 열명은 무슨 열명? 어떨 때는 가끔 이 옷을 입었다가 어떨 때는 한국 승복을 입고 그럴 것 같으면 우리가 우리 무리에 안 끼워줍니다.

오로지 이 승복을 입고 있는 스님들만 한국테라와다불교라는 이름을 짓고 있는데, 열명도 안되는 스님들을 보면 호주머니에 만날 차비가 없어가지고 달랑달랑달랑. 한 달에 한 번씩 스님들이 모여서 법에 대해서 토론하고 이렇게 하는데, 어떨 때는 안 와. 그래서 뭣 때문에 안 오는가 하고 알아보면 차비 없어 못 오는 거라.

부산에서 만약에 한다고 할 거 같으면 만약에 저기 원주에 있는 스님이다. 원주에서 부산 내려올 차비가 없는 거라. 그렇다고 해가지고 자존심들은 있어갖고 “스님 나 차비가 없어가지고 못갑니다” 소리도 못하는 거라. 또 어떨 때는 스님들이 모이면 밥을 먹어야 될 거 아냐? 밥을 먹는데 밥을 먹고 나서 밥값 지불할 돈들이 없는 거라. 참 그렇게 살아.

 

그런데 그 스님들을 보면 한 번도 그걸 가지고 불평불만 하는 스님이 없습니다. 또 그렇다고 해가지고 그 스님들이 완전히 욕심으로부터 떠난 것도 아니라. 돈 주면 좋아하지 왜 안 좋아하겠어? 그런데 지나치게 그런 욕심을 가지지도 않습니다. 없으면 없는 데로 그냥 만족하고 사는 거라.

그래도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래도 우리 길이 맞다! 출가한 스님이면 이 길을 가야 된다. 내가 세속적인 거 잘 먹고 잘살고 할라고 출가한 거 아니지 않느냐? 이 길이 맞으면 이 길을 가자!"

 

어떨 때는 가끔씩 여기 들어오겠다고 “돈을 한 오백만원 줄테니까 여기 등록시켜주시오 합니다.” 안 시켜줍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합니다. 지지리 가난하게 그렇게 살아가면서 뭐 할 거냐고 그럽니다. 그게 좋은 걸 어떡하라고!

그게 출가한 스님들이 해야 될 일이고, 나아가야 될 방향이니까 그런 거라.

부처님이 그리 해왔듯이 부처님 제자들도 그렇게 해야 되는 것들이라.

 

선원도 꼭 마찬가집니다. 선원이 나아가야 될 방향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 방향을 어겨버릴 것 같으면 당연히 스님은 여기서 떠나버립니다.

그래서 여기는 그럽니다. 어떤 행사가 있든 어떤 뭐가 있든 금액을 정해놓고 받지를 않습니다. 자기가 내고 싶으면 내고, 또 낼 돈이 없으면 안 내는 거고, 여기 와서 누가 한 번도 회비 내라 하고, 회비를 여기서 받지도 않습니다. 자기가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해서 계좌번호에 집어넣으면 되는 거고, 그렇다고 안 낸다 해가지고 너 왜 회비 안 냈나 소리도 안 합니다.

 

절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든지 개방이 되어있어야 됩니다. 누구든지 편하게 와서 부처님 법을 듣고, 수행을 하고 그러는 곳이 절이라는 곳입니다. 그 방향이 바뀌어버리면 스님도 머무를 수 없을 뿐 아니라 이 선원 자체도 존속해야 될 이유가 없는 겁니다.

 

여러분이라고 안 그럴 것 같습니까?

여러분이 이 세상에 살아갈 때는 살아가야 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 이유를 자꾸 망각해버리면 안 되는 것들입니다. 살아야 될 이유가 없는 거라. 살아갈 이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많죠?

 

오늘부터 바르게 반성을 하고 바르게 나아가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내 마음에서 항상 자비로운 마음이 일어나도록 해야 되고, 내가 스스로 자꾸 선한 공덕들을 쌓을 수 있는 것들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되는 거고, 또 이 법의 소중함을 알아서 이 법을 향해서 나아가도록 자꾸 노력들을 해야 됩니다.

 

부처님 오신 날 여러분들이 부처님과 같은 행복과 평온함을 누리기를 바라겠습니다.

짯따-- 담마- 왓단띠 아-유 완노- 수캉 발랑

(cattāro dhammā vaḍḍhanti āyu vaṇṇo sukhaṃ balaṃ)

부처님의 진리따라 살아가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고 몸도 마음도 부유로워지길 바라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