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수행문답 법문

수행관련 문답 『 붓다의 길따라 선원교재 』Q11~Q22

담마마-마까 2021. 12. 7. 17:14

* 수행관련 문답 『 붓다의 길따라 선원교재 』

 

Q11 : 좌선 수행할 때 호흡을 따라가면서 알아차리는 것이 옳은 것인지요?

그리고 배를 관찰할 때 호흡이 인위적이면 마음을 코끝으로 향하여 관찰하면 고요해 집니다. 이렇게 해도 되는지요?

 

A11 : 호흡은 코, 가슴, 배, 몸의 어느 한 부분의 움직임 또는 전면에서 등 어디서든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호흡의 이동 경로를 따라 코에서 일어나서 가슴이나 배까지 가는 것을 알아차리면 안 됩니다. 이것은 잘못된 방법입니다.

 

힌두교의 수행에서는 기를 돌리는 방법을 이와 같이 합니다. 그러나 위빳사나 수행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호흡은 한 곳에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일단 한 곳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가슴이나, 배, 코 어느 곳에서 호흡이 느껴질 때는 재빨리 마음을 그곳으로 이동하여 느껴지는 곳에서 알아차리시기 바랍니다. 다만 하나의 호흡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추적하면 안 됩니다.

 

또한 배의 호흡이 인위적이면 마음을 코로 향한다고 하셨는데, 이런 수행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인위적이라는 것은 명칭의 길이에 따라 호흡을 하기 때문에 그 대상에서 어떤 특성도 드러나지질 않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원인을 알려고 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마음을 코에 두면, 다시 코의 호흡이 인위적일 때는 어디로 가시렵니까?

 

Q. 이 말은 무슨 일이 있다고 해서 다른 곳으로 대상을 옮겨가지 말고,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라는 말입니다. 호흡이 방해를 받으면 왜 방해를 받는지 알아야 합니다.

명칭 때문인지, 마음이 산란하여 호흡이 거칠어진 것인지, 싫증이 나서 재미가 없는 것인지 등을 마음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호흡이 인위적인 것은 대상에 마음이 밀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므로 인위적인 것을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호흡은 일정하게 반복되는 것이지만 매 호흡이 다 다른 모양과 느낌, 성품이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하면 재미가 있어서 집중이 됩니다.

 

의도적으로 마음이 못 달아나게 하는 것은 사마타 수행이고, 달아났으면 달아난 것을 알아차리고 매 상황이 바뀌면 바뀐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위빳사나 수행입니다.

수행은 무엇이 다, 안 좋다, 잘된다, 잘 안 된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무엇을 알아차리고 있는가, 아니면 모르고 있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수행은 장애가 생겨야 발전합니다. 장애는 알아차릴 대상으로서의 법일 뿐입니다.

 

Q12 : 호흡을 명칭 붙여 사띠하다 보면 마음의 상태가 좋아져서 편안한 기분이 느껴지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요?

 

A12 : 그런 느낌이 일어나면 자신이 느낀 감정도 즉시 명칭 붙여 알아차림 하시길 바랍니다.

 

Q13 : 수행을 하면 「즐거움」을 안다고 하는데 저는 수행을 해도 즐겁다고 느껴지질 않습니다. 그래도 수행을 계속하기 위해서 마음을 어떠한 상태로 하면 좋을까요?

 

A13 : 즐거움은 2가지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가지는 세속적인 것인데, 맛있는 것을 먹거나, 좋은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이야기하거나, 새로운 차를 사서 느끼는 즐거움 등을 말합니다.

그에 반한 불교에서 말하는 즐거움은 사물을 명확하게 보거나 잘 이해했을 때 일어나는 안도감으로 마음이 침착하고 지혜로운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웃어서 즐거운 즐거움은 언제라도 빼앗길 수가 있지만, 지혜로 일어나는 즐거움은 좀처럼 사라지질 않습니다.

마음에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불안정한 상태를 말합니다. 물결이 많은 바다는 물결이 사라져도 또다시 나타납니다. 마음의 평온이란 감정의 기복 없이 계속되는 평평한 수평선과 같은 것입니다. 수행은 이런 마음을 가져옵니다.

수행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언제나 현재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이 현재에 머물면 낙담하거나 망상하지 않게 되어 밝고 활발하게 됩니다.

 

Q14 : 전에는 꽃을 보면 아름답다고 생각되어 즐거운 느낌이 있었는데, 수행을 시작한 후에는 좀 더 평온한 마음이 되어 감정이 흔들리는 것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좋은 일인가요?

 

A14 : 수행을 하면서 마음이 평온해져 감정의 물결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 그러한 감정을 알아차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연을 그대로 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아름답다고 아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아름다움에 현혹되지 않고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꽃은 피었다가 집니다. 자연은 그렇게 변하면서 흘러가는 것이고, 자기 자신의 마음의 현상도 똑같이 변하면서 흘러가는 것입니다. 전에는 그렇게 변하는 것을 놓아두지 못하고 잡으려고 하니까 아름다움이 사라져 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납니다. 지금은 밖에 있는 자연이라는 대상도, 마음속의 감정도, 몸의 상태도 일어났다가 사라져 간다고 알아서 붙잡지 않기에 안정되고 침착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좀 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Q15 : 수행 중 몸과 마음에서 괴로움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15 : 수행 중에 몸에서 아픔이 있든, 싫은 마음이 일어나든 그것을 「싫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는 자신에게 일어난 하나의 현상이고 알아차릴 대상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괴로움이 일어나도 괴로움이 일어난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좋고 싫은 것이 나타나는 것은 모두 수행의 과정입니다. 언제나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것만이 수행의 기본자세입니다.

병도 마찬가지 입니다. 병이라고 하는 상태, 아픔의 상태, 부자유스러운 상태, 기분 나쁜 상태, 그런 상태를 잘 보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기적적으로 병 자체가 소멸되기도 합니다.

 

Q16 : 수행을 시작하면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몸의 아픔이 더욱 커지는데 어찌해야 합니까?

 

A16 : 수행을 시작하면 나에게 「약한 곳」이 먼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단순히 배의 「일어남, 사라짐」, 다린의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이라고 명칭 붙여 확인할 뿐인데도 만약 습관이나 성격 등에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나,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곧바로 드러납니다. 이른바 나의 「약점」이 먼저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거기에 굴복해버리면 향상은 없지만, 그대로 알아차리면 그것이 회복됩니다. 회복되면 다음의 것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면 회복되어야 할 차례대로 잇달아 나옵니다. 그래서 신경쓰지 말고 나타난 것을 알아차리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평소 허리가 안 좋으면 수행하다 보면 몸 중에서도 유독 허리가 심하게 아파옵니다. 그러면 수행자는 이것을 무서워합니다. 이러다가 허리가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그렇게는 안됩니다. 또한 음식에 집착이 있는 사람이라면 「벌써 밥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 이러다가 오늘은 밥을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라는 걱정이 일어납니다. 그러한 자신의 약점이 일어나면 마음은 그 약점을 잡아 「수행실천을 그만두어라」 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마음은 자신을 바꾸고 싶지 않고 고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숨어서 도망다니고 싶어합니다. 아이가 유괴되면 아무리 인색한 부모라도 납치범에게 돈을 내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와 같이 일어나는 싫은 현상을 고맙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아차리면서 확인해나가면 몸이 문제도 마음의 문제도 모두 회복되어 가니까요.

 

Q17 : 이렇게 수행을 계속해 아라한이 되면 모든 감정이 없어져서 차가운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A17 : 수행을 하면 자신의 「존재라고 하는 괴로움」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철저하게 맛보면 「모든 생명은 확실히 괴로움을 맛보고 괴로워하고 있다」라는 지혜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인간의 괴로움이 없어져서 행복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결코 차가운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상시 우리는 「그 사람의 기분을 알고 있다」 「그 사람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 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진짜가 아닌 외형뿐인 것입니다. 자신의 괴로움마저 이해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수행에 의해 마음이 맑고 깨끗하게 되어 깨달음을 이룬다면, 괴로움을 철저하게 체험하는 것으로부터 일어나는 경험이기 때문에 「모든 생명도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있다」고 이해해 다른 ㄱ사람에 대해서 정말로 그 사람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어서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됩니다.

 

Q18 : 수행 중 몸이 굉장히 무겁게 느껴질 때는 가볍게 하기 위해 조금 움직여도 괜찮습니까?

 

A18 : 그렇게 하면 그 현상이 남아버립니다.

몸이 무겁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는 무겁다고 하는 것을 사띠해야 하지만, 그것에는 「싫다」라고 하는 생각하는 감정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싫은 것」과 「좋아하는 것」 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로 집착이 있는 것, 잡혀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에만 잡혀있다고 생각하지만 싫은 것에도 잡혀있습니다.

「그 사람이 싫다」 라는 경우도 그 사람과 무엇인가 관계가 있습니다. 완전하게 관계가 없으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행 중에는 다양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 현상들은 2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싫은 현상과 좋은 현상의 2가지입니다. 수행자는 그 어느 쪽에도 결코 잡혀서는 안 됩니다. 매우 냉정한 마음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딱딱해지는지, 무거워지는지, 가벼워지는지, 자신을 완전하게 객관적으로 관찰하면서 수행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Q19 : 좌선하다가 무거움, 딱딱함을 강하게 느끼면 「멈춤」이라고 명칭붙이고 나서 경행으로 바꾸어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A19 : 그렇게 해도 좋지만, 조금 더 참아보십시오. 싫다라는 느낌이 일어나서 좌선을 그만두어버리면 노력하지 않는 습관이 듭니다. 자신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은 강하게 붙잡히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낫습니다. 좋아하는 현상은 대부분 일어나면 철저하게 붙잡혀버려 그대로 멈추어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싫은 현상이 나타날 때 더욱 노력해서 그것을 뛰어넘도록 해야 합니다.

 

Q20 : 앉아있을 때 무거움이 지나치면 큰 바윗덩어리가 머리를 눌러 몸이 땅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무게에 목이 짧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스스로 놀라기도 합니다.

 

A20 : 수행 중에 나타나는 현상은 대개 정해져 있습니다.

대부분 신경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 현상은 「부드럽고, 가볍다」 라고 느끼는 것, 「딱딱하고 무겁다」 라고 느끼는 것, 「싫다」라고 느끼는 것, 「좋다」라고 느끼는 것,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다만 무덤덤하다」 라고 느끼는 것, 이 5가지 밖에 없습니다. 어떤 인간이든, 다른 생명체이든 똑같습니다.

모든 철학, 사상, 종교도 이 5가지 정보에 근거해 만든 「사색」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5가지를 사람들은 다양하게 해석합니다. 몸이 딱딱하면 나쁜 영혼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해석하기 시작해 종교가 되기도 합니다. 딱딱하면 딱딱하다고, 가벼우면 가볍다고 알아차리고 그 이상 뒤쫓지 않아야 합니다.

 

Q21 : 수행이 안정적으로 잘되고 있으면, 내 몸의 밖으로부터 내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A21 : 잘 하고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계속해서 노력하십시오.

 

Q22 : 자연스러운 호흡을 하지 못하고 「배가 일어남, 사라짐」 이라는 명칭에 맞추어 호흡을 해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A22 : 사띠라고 하는 것은 몸의 지금 상태를 확인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명칭을 머릿속에서 만들어 몸을 거기에 억지로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위빳사나는 대상(몸)에 명칭을 맞추는 것입니다. 밥을 먹었기 때문에 차를 마신다고 하는 것과 차를 마시고 싶기 때문에 밥을 먹는다고 하는 것은 결과가 다릅니다. 밥을 먹었기 때문에 차를 마신다면 문제는 없지만, 차를 마시고 싶기 때문에 밥을 먹는다면 불필요한 것을 먹어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몸이라는 대상을 밥에 비교하고, 명칭을 차에 비교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외형은 같지만 내용은 다릅니다.

마음이 침착하지 않았다면 호흡이 흐트러집니다. 그런데도 명칭에다가 호흡을 맞추시겠습니까?

수행이 능숙해지면 마음이 통일되어져, 의도가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여집니다. 보통은 마음도, 몸도 자신의 컨트롤과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분명하게 보면 자신의 의도로 몸도 마음도 움직이고 있다고 압니다. 마음이 통일되면 그 상태가 보여집니다. 배의 팽창과 수축뿐만 아니라, 눈꺼풀을 닫는 것도 닫고 싶다는 의도가 있어야 그 행동을 일으킨다고 알아차립니다.

수행자의 마음이 평온하지 않을 때는 명칭에 따라 호흡도 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마음이 침착해지면 호흡이나 몸의 움직임에 명칭을 맞출 수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좀 더 침착해져 집중력이 따라오면 의도로 컨트롤 해 호흡도 하고 있는 것이 보여 집니다. 배가 부풀어 오른다고 하는 의도가 있어서, 부풀어 오르는 행위가 시작된다. 수축한다고 하는 의도가 있어서 수축하는 행위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집중력의 결과입니다.

의도가 모든 것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위빳사나 수행으로부터 체험해야 할 하나의 지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