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수행문답 법문

수행문답10. 수행 중 몸이 무겁게 느껴질 때? 이때 몸을 움직이거나 대상을 바꾸는 것은? 밖에서 내자신을 보고있는것 같을 때? 명칭에 맞춰서 호흡을 하는 경우는? (20090514)

담마마-마까 2020. 12. 9. 12:16

https://youtu.be/s-clMptCaGQ

* 기초수행 문답 10 (20090514)

Q18. 수행 중에 굉장히 몸이 무겁게 느껴질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가?

Q19. 좌선하다가 무거움이나 딱딱함을 강하게 느끼면 '멈춤'이라고 명칭 붙이고 나서 경행을 해도 괜찮습니까?

Q20. 앉아있을 때 무거움이 지나치면 큰 바윗덩어리가 머리를 눌러 몸이 땅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무게에 목이 짧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스스로 놀라기도 합니다.

Q21. 수행이 안정적으로 잘 되고 있을 때, 내 몸의 밖으로부터 내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Q22. 호흡관찰 하고 있을 때, 배를 관찰하면서 '일어남' '사라짐' 하고 명칭을 붙이는데 그 명칭에 맞춰서 호흡을 해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수행문답 저번 시간까지 느낌에 대한 관찰 부분에 대한 문답을 쭉 얘기를 했습니다. 느낌이 어느 정도인가? 느낌이 변하는 것들의 성품이 어떤 것인가? 이런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관찰을 하도록 하라 하고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명칭을 붙일 때가 있고 명칭을 붙이지 않을 때가 있고, 하는 부분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오늘은 그 뒤에 부분에 대한 얘깁니다.

 

Q18. 수행 중에서 굉장히 몸이 무겁게 느껴질 때, 몸이 좀 축축 쳐질 때를 얘기합니다. 그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가?

 

대부분 보면 몸이 좀 무겁게 축 쳐지고 할 것 같으면 그걸 좀 가볍게 할려고 약간 이렇게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죠? 대부분 그리할 겁니다. 그런 것들을 해도 되는가 안되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어떻게 하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밑에 있는 정답 보지 말고.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 지속된다고 할 것 같으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현상으로써 무거움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현상으로써 알아차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계속 무거운 현상이 지속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무거움도 변화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을 것인데 변화되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냥 계속적으로 무거운 느낌이 있다고 알 것 같으면, 그럴 경우를 얘기합니다.

그럴 경우에는 대부분 보면 그냥 이렇게 가볍게 몸을 흔들든지 해서 떨쳐내버리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처음 수행을 할 때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무거운 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그것은 관찰 대상으로 삼아야 되는데, 내가 지금 관찰하는 포인트를 놓쳤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지속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야됩니다.

그 밑에 보면, 무거운 것이 느껴질 때 몸을 움직여서 그 무거운 것을 덜어내버릴 경우에는 어떻게 되느냐면 그러한 현상이 계속 남아버립니다. 습관화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조금만 무거운 것이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금방 싫은 느낌으로 연결돼버립니다. 연결돼버리니까 그걸 떨쳐내버릴려고 그냥 의식적이든 또 자기가 의도한 걸 알아차리지 못하든 그냥 몸을 조금 움직여서 그걸 털어버립니다. 고통스런 느낌이 와도 꼭 마찬가지고.

이런 경우들은 자칫 잘못하면 그 현상들이 계속 남아있어서 똑같은 현상에 지배당하기가 쉬워집니다.

 

부처님은 '부땅 부따또 빳사띠(bhūtaṁ bhūtato passati)' 그렇게 얘기합니다.

'생겨나는 것은 생겨나는 그대로 명칭을 붙여서 관찰하라.'

설혹 '무거움'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무거움' 하면서 있는 그대로 관찰할 거 같으면 무거움의 변하는 속성을 이해를 하게 되는데, 대부분 그렇게 관찰을 안 해버리고 '무거움'을 떨쳐버린다는 거라. 떨쳐버리고 움직여버리게 된다는 거라. 무거운 것으로 부터 벗어날려고 한다는 거라.

 

특성들이 각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팔을 손을 쫙 펴가지고 바닥에다가 짚어 봐봐요. 이렇게 해가지고 몸의 체중을 이 손바닥에다가 두도록 한번 해보십시오. 어떤 느낌이 있습니까? 처음에는 이 팔이 몸을 지탱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면은 '부땅 부따또 빳사띠' 생겨나는 것은 생겨나는 그대로 명칭을 붙여서 관찰하라고 할 거 같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여러분들은? '지탱함' 하면서 몸을 지탱하고 있는 이 느낌을 관찰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계속 '지탱함' 하면서 관찰하고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지탱함'의 느낌만 있는 게 아니죠? 느낌이 변하죠! 뻣뻣한 느낌이 있기도 할 거고, 안 그러면 좀 긴장하는 느낌도 있을 거고, 안 그러면 딱딱한 느낌도 있을 거고, 안 그러면 뜨거운 느낌들도 있을 거고.

그럼 있는 그대로 명칭 붙여서 관찰해라 할 거 같으면 딱딱함이 있으면 '딱딱함' 하면서 관찰해야 되고, 무거움이 있으면 '무거움' 하면서 관찰해야 되고, 뜨거움이 있으면 '뜨거움' 하면서 관찰해야 되는 거고.

 

이 특성들은 먼저 드러나집니다. 그걸 뭐라고 그럽니까? 딱딱한 것은 무거운 것하고 같지가 않죠! 다른 개별적인 것들입니다. 뜨거운 것도 지탱하는 것하고 같지를 않습니다. 뜨겁고 차갑고 무겁고 가볍고 하는 이런 것들은 각각 개별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뜨거운 것에 차가운 것이 같이 공존할 수가 없다는 거라. 이걸 부처님이 뭐라고 그랬냐면 '개별적인 특성'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먼저 현상에는 반드시 그런 '개별적인 특성들', 개별적인 특성은 그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들입니다. 그래서 '고유한 특성'이라고도 얘기하는데 그런 개별적이고 고유한 특상들이 먼저 드러나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고유한 특성들은 그대로 계속 있는 건 아니죠? 똑같이 손바닥을 대고 있지만은 그 특성들이 어떨 때는 뜨겁고 어떨 때는 딱딱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이렇게 달라진다는 거라.

 

그러면은 '부땅 부따또 빳사띠'할 것 같으면 있는 그대로 명칭을 붙여서 관찰해야 됩니다. 뜨거울 때는 '뜨거움' '뜨거움' 하면서 관찰해야 되는 거고, 지탱하는 게 있으면 '지탱함' '지탱함' 하면서 관찰해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개별적인 특성을 관찰을 하다 보면 조금 더 내가 면밀해지고 특성들에 대해서 더욱더 알아차림이 강해진다는 겁니다.

알아차림이 강해지면 어떻게 됩니까? 뜨거움의 특성이 있다. 그럼 개별적인 특성도 뜨거움으로써 존재하지 않고 뜨거움의 강도가 증가하든지 아니면 감소하든지 하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는 거라. 틀림없이 그렇게 되죠? 그걸 또 있는 그대로 관찰을 해나가야 됩니다.

'뜨거움' '뜨거움' 하다가도 뜨거움이 감소하면 '뜨거움이 감소함' 하면서 관찰한다는 거라. 증가하면 '뜨거움이 증가함' 하면서 관찰하는 거고. 이렇게 변화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걸 뭐라고 그럽니까? '보편적인 특성이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왜? 뜨거움이든 딱딱함이든 그다음에 긴장감이든 이런 것들은 다 공통적으로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들이 있다는 거라. 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라.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고. 또 그거 자체가 어떤 개별적인 자아라는 게 있어가지고 지가 마음대로 변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이 세 가지 특성은 어떤 개별적인 특성에도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특성들이라는 거라. 이걸 '보편적인 특성'이라고 얘기합니다.

 

현상을 관찰할 때는 이렇게 개별적인 특성을 알아차리고 나면 반드시 드러나는 게 보편적인 특성이라는 거라.

이런 형태들로써 진행이 돼나가는데 무거운 느낌이 있을 때, 그 무거운 느낌도 마찬가지로 똑같은 무거운 느낌만 계속적으로 존속해있지는 않는다는 거라. 그 무거운 느낌이 조금 더 무거운 느낌으로 바뀌기도 하고, 그 무거운 느낌이 진짜 쑤시는 그런 느낌으로 바뀌기도 하는 거고, 이렇게 바뀌어나간다는 거라.

그런 개별적인 특성들로 바뀌어나간다는 거라. 그 개별적인 특성도 또 그대로 있는 게 아니고, 무거운 느낌이 가벼워지기도 하고 또 증가하기도 하고 이렇게 합니다. 그렇게 또 보편적인 특성으로 바뀌어 나갑니다.

 

이렇게 그때그때에 맞게끔 명칭을 붙여서 관찰을 해나가야 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방법인데, 무거운 게 있으면 무거운 게 싫어서 몸을 움직여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보편적인 특성들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개별적인 특성들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는 거라. 수행에서 얼마나 마이너스 겠어요! 그래서 몸을 움직이지 않도록 해야 된다 하는 겁니다.

 

단지 보통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는 이유가 뭐냐 하면, 그 무거움의 특성들이 보통 보면 무겁다 할 것 같으면 그 무거운 것이 싫습니다, 내가. '싫다'는 감정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감정으로부터 벗어날려고 몸을 움직이는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수행에서 대상을 관찰할 때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그 특성들에서 이런 개별적인 특성과 보편적인 특성들이 드러나질 때까지 관찰대상으로써 삼아야 됩니다.

 

그럴려고 할 것 같으면 즉각즉각 명칭을 붙이는 연습을 자꾸 해줘야 됩니다.

뭉뚱그려가지고 내 혼자서 그냥 실제로는 무겁지도 않은데 '무거움' '무거움' 하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실제적인 걸 있는 그대로 관찰을 못한다는 거라. '있는 그대로'에다가 명칭을 부여해 주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완전하게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수행이 진행되도록 해야 됩니다.

 

일어나는 현상들은 보통 좋은 현상과 싫은 현상, 이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집니다.

그 어떤 현상이라도 그 좋고 싫은 현상이 일어나기 이전에는 틀림없이 개별적인 특성들이 있었습니다. 무거운 특성이 있었든지 딱딱한 특성이 있었든지 그렇다는 거라. 그 특성은 변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을 해야 됩니다.

무거운 게 지나치다 해서 싫은 감정이라든지 아니면 좋은 감정이라든지 발전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싫은 감정으로 발전하니까 몸을 움직여버린다는 거라.

 

수행은 아주 냉철하면서도 객관적으로 관찰을 하도록 자꾸 노력을 해나가야 됩니다.

명심해야 될 것은 어떤 특성들이라도 다 각각의 특징들이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을 해야 됩니다. 그 특징들을 알고, 그 특징에 맞게끔 명칭을 부여해 주고, 그 특징은 특징 나름대로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들을, 그 특성들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거라. 무상··무아라는 것. 그 특성들을 개별적인 특성들에서 반드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특성들을 알아차리도록 자꾸 만들어나가야 됩니다.

 

그다음에 밑에 보면,

Q19. 좌선하다가 무거움이나 딱딱함을 강하게 느끼면 '멈춤'이라고 명칭 붙이고 나서 경행을 해도 괜찮습니까? 하는 겁니다. 앞에 부분하고 비슷하게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물론 경행을 해서 더 이익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되도록이면,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 특성들을 명확하게 알 때까지는 관찰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익입니다.

느낌이 일어나고 나서 그 느낌(관찰)을 그만두어버리면 노력하려는 습관들이 길러지지 않습니다.

 

수행에서 반드시 겸비돼야 하는 것이

노력이라고 하는 것들,

그리고 대상에 대해서 끊임없이 마음을 겨냥하는 것들,

그리고 그 대상을 끊임없이 알아차려나가는 것들,

그 대상에 대해서 끊임없이 집중할려고 하는 것들,

이 네 가지가 없으면 수행은 제대로 굴러가지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금방금방 느낌들이 강하다고 해서 그것을 멈춰버릴 것 같으면 노력의 힘이 배가가 되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노력은 오히려 즐거울 때보다도 괴로울 때 그것을 더 잘 관찰하고 알아차리도록 자극해주는 특성이 있습니다.

대부분 수행처에 가보면 느낌에 대한 관찰을 주로 하는 데는 좌선을 통상적으로 두 시간씩 넘게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당연히 두 시간씩 좌선하고 움직이지 마라 할 것 같으면 고통스런 느낌이 강해집니다. 즐거울 때보다 괴로울 때 노력의 힘을 더 배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두 시간씩 두 시간씩 좌선, 경행을 하도록 시키는 거라.

 

이와 같이 노력은 고통스러운 것을 더 잘 관찰하게끔 하고 알아차리도록 자극해준다는 거라. 그 노력이 없을 거 같으면 두 시간 동안 못 앉아있어. 금방 일어나버린다는 거라. 그리고 또 어쨌든 그 두 시간 동안 앉아있다고 할 거 같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 노력은 대상을 향하도록 해줍니다. 대상을 향하도록.

대상을 향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가지고 알아차리고 집중하는 힘들도 키워준다는 거라.

그래서 무겁고 딱딱하고 또는 두렵고 고통스럽고 하는 느낌이 강해진다고 하더라도 그 강해지는 걸 피할려고 멈춰버려가지고 포지션을 바꾼다든지 아니면 그 대상으로부터 벗어날려고 하지 말아라는 거라. 움직이지도 말고 포기하지도 말아야 된다는 거라. 그래야 만이 노력의 힘이 배가가 된다는 거라.

 

수행은 계속 해나가겠다는 용기와 인내 또 마음의 힘을 길러주는 작용을 합니다.

그 작용은 다른 데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노력의 힘으로써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노력의 힘이 전제조건이 돼야 만이 대상으로 겨냥을 하게끔 되고, 알아차리게 되고, 집중하게끔 된다는 거라. 그래야 만이 그것을 관찰하게끔 되고, 그것을 관찰을 해야 만이 아, 내 스스로의 노력으로 인해서 이것을 명확하게 관찰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는 거라.

노력해가지고 그런 확신들이 없을 거 같으면, 아니면 수행해가지고 그런 확신이 들지 않을 거 같으면 수행에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는 거라. 더 많은 알아차림과 더 많은 집중을 가져 올려고 할 것 같으면 반드시 그 현상 자체가 강해지고 참을 수 없다 해가지고 벗어날려고 하지 말아라는 거라.

 

수행하다가, 스님도 해보니까 일주일 동안 움직이지 않고 해도 절대 안 죽어요. 절대 다리 병신 안 되고. 그리고 내 주위에서 그렇게 죽었다는 사람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해보면 반드시 그걸 극복해나가야 됩니다. 한 번은 극복을 하고, 몇 번을 극복해야 만이 '아, 내가 애써가지고 내가 노력해가지고 요걸 성취했다'는 그런 확신들이 든다는 거라. 그래야 더욱더 공부를 할려고 노력들을 하지 쉽게 쉽게 벗어나버릴 것 같으면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특히 붙잡히지 않는 대상일 때는 더 쉽습니다.

즐거운 느낌이 일어날 때는 우리는 쉽게 붙잡힙니다. 그런데 괴로운 것은 잘 붙잡히지 않습니다. 왜? 벗어날려고 자꾸 하기 때문에! 붙잡히지 않을 때가 오히려 훨씬 낫습니다. 수행하기에는.

그래서 즐거운 느낌보다는 괴로운 느낌이 일어날 때 '아, 참 내가 공부하기 더 좋은 조건이 됐구나' 하고 판단을 해야 된다는 거라.

 

Q20 : 그다음에 그런데도 앉아서 수행하면 그 무거운 것이 지나치면 보통 어떻게 돼느냐면 머리에서 바윗덩어리가 꽉 때리 누르는 것처럼 땅속으로, 그래서 점점 더 땅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같애. 나중에는 몸이 땅속에 박혀가지고 꼼짝도 못하는 듯이 느껴집니다. 안 그러면 자꾸 누르니까 이놈의 목이 자꾸 짧아져 갖고 목이 없어져 버려.

 

아마 그런 경험들 한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거짓말 같죠? 실제 그런 느낌들이 일어나집니다. 이러다가 땅에 박혀가지고 꼼짝달싹 못하고 인제는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나 하는 그런 두려움도 일어납니다.

그런데 보통 보면 그러고 나서 정신이 번쩍 들고 나면 목도 안 짧아졌고 내가 땅속으로 기어들어가지도 않았어. 사색! 그런 느낌들이 강해지면서 일어나는 것들이라는 거라. 종교든지 철학이든지 사상이든지 하는 것들도 이런 사색으로 인해서 일어나집니다.

 

그래서 밑에 적어놨지만 일어나는 현상들은 부드럽고 가벼운 느낌, 딱딱하고 무거운 느낌, 싫다는 느낌, 좋다는 느낌, 무덤덤한 느낌 이 다섯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는 쉽게 말하면 내가 지어내는 것들이라는 거라. 목이 짧아졌다는 느낌, 땅속으로 기어들어간다는 느낌, 이거 다 내가 만들어내는 느낌일 뿐이라는 거라.

느낌은 앞에서 얘기한 이 다섯 가지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절대 내가 땅속으로 기어들어가지도 않고, 목도 짧아지지도 않는데 그렇게 내가 느낀다는 거 뿐이라. 그렇게 느끼는 건 뭐라? 내가 관념화시킨 느낌일 뿐이라는 거라.

 

그래서 딱딱하면 딱딱하다고 알아차리고 가벼우면 가볍다고 알아차려야 되지 그 이상을 알아차리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 이상을 알아차리면 내가 느낌을 만들어내는 거라. 땅속으로 기어들어 간다는 느낌을 내가 만들어내는 거라. 실제는 땅속으로 기어들어가지도 않는데도.

느낌은 이 다섯 가지 종류 뿐이다 하는 걸 반드시 판단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이상의 느낌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내가 지어내는 느낌이다' 하고 판단을 하고 그것에 끄달려 들어가면 안된다는 거라.

 

부처님이 보인다? 현상으로써 관찰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처님이 나에게 말을 한다? 부처님이 나에게 쓰다듬어 준다? 실제 부처님이 와서 광명을 나투어가지고 말을 한다든지 나에게 쓰다듬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거라. 그 느낌들로.

부처님이 나에게 와가지고 쓰다듬어주고 있다? 환희심을 일으킬 게 아니라 '아이고, 내가 또 이놈의 놀음에 빠져가지고 내가 느낌을 만들어내는구나' 하고 판단을 해야 된다는 거라. 그러고 나서 그것을 따라가야 되는 것이 아니고 그냥 부처님이라는 것, 그리고 부처님에 대해서 회상하는 것이 오히려 훨씬 낫다는 거라. 그런 느낌, 좋은 느낌이 있다는 것만, 아, 좋다는 느낌 그 '좋은 느낌' '좋은 느낌'이라고 관찰을 해버리면 부처님이 머리 쓰다듬는 것은 떠나버린다는 거라.

좋은 느낌, 싫은 느낌, 무덤덤한 느낌, 가벼운 느낌, 무거운 느낌 이거 외에는 없어. 그러니까 반드시 그렇게 하고 그 느낌이 도가 지나칠 때는 빨리 거기서 벗어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들 많았죠?

 

 

Q21. 그다음에 수행이 안정적으로 잘 되고 있을 때, 내 몸의 밖으로부터 내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끔 그런 경우도 있죠? 수행을 하고 있는데 똑 유체이탈 하는 것처럼 내가 요 위에서 내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 거, 또 이렇게 배를 '일어남' '사라짐' 관찰하고 있을 때 '일어남' '사라짐'하고 알아차리고 있는 걸 이걸 위에서 똑 아는 듯이 느껴지기도 하거든.

사실은 수행 굉장히 잘하고 있는데, 이때는 또 사람들이 '아이고, 내가 잘못했다' 해가지고 금방 그걸 떠나버립니다.

이거는 수행 잘하고 있는 거라. 오히려 막 부처님이 쓰다듬어주면 좋아갖고 그거에 막 빠져들어갖고, 오히려 수행이 잘 안될 때는 빠져들어가고, 수행이 잘될 때는 그걸 떨쳐버린다는 거라. 그러지 말아라는 거라. 이런 현상이 있을 때는 계속 노력해야 됩니다. 계속 그 상태를 관찰하도록 해야 됩니다.

 

부처님이 그런 말씀을 한 게 있습니다.

"마음을 밖에서 방황하게 하지 말고, 안에서 멈춰 세우지 말아라."

"밖에서 방황하지 말아라"라는 것은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외적인 즐거움을 쫓지 말아라는 거라. 내가 대상을 본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대상으로 향하지 말아라는 거라. 밖으로 향하지 말아라는 거라. 밖의 즐거움을 쫓아가려고 할 것 같으면 그건 끝이 없다는 거라. 그래서 마음을 밖으로 방황하게 하지 마라라는 거라.

 

그리고 그 다음에 한 게 뭐냐 하면, 안으로 "안으로 멈춰 세우지 말아라"

수행이 잘 돼나갈 때 즐거운 느낌엔 이렇게 감각적인 즐거운 느낌이 있는 반면에, 수행에서 얻어지는 즐거운 느낌들이 있다는 거라. 수행에서 얻어지는 즐거운 느낌들은 보면 대부분 거기서 멈춰버립니다. 붕 뜨는 느낌이라든지, 아니면 환희심이 일어나는 느낌이라든지, 아, 만족해서 평온하고 고요하다, 아무것도 없다는 그런 느낌. 그런 느낌이 있으면 거기서 멈춰버린다는 거라.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고요하면 고요한데 멈춰가지고 한 시간 내내 고요하게 있다가 그냥 나와. 멈추면 안 됩니다. 안으로는 반드시 멈춰버릴 것 같으면 현상을, 특성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는 거라.

 

고요하면 고요하다고 냉정하게 보고 그것을 관찰해라는 거라. 멈춰버리지 말아라는 거라. 멈추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돼요? 여기에도 적혀 있지만 내가 몸 밖에서 내 자신을 관찰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는 거라.

 

마음에는 쌍으로 일어난다는 거라.

'마음을 관찰하는 놈'이 있고, '그 관찰하는 것을 아는 놈'이 있게 돼있는 거라.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마음을 관찰하는 마음을 그것을 '아는 놈'일 거 같으면 밖에서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이렇게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라. 실제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거라. 그런데 그걸 잘못 판단해가지고 유체이탈 했다, 아니면 혼이 빠져나갔다 해가지고 퍼뜩 깨버린다는 거라.

그거는 맞는 거라. 육체적인 물질적인 것에서도 쌍으로 일어나듯이 정신적인 현상도 반드시 쌍으로 일어나집니다. 그래서 안으로 그럴 때라도 멈추지 말아야 됩니다.

즐거운 느낌이 일어났을 때 멈추지 말아야 되듯이, 그런 느낌 좋은 현상들이 일어났을 때 그 현상들도 멈춰버리면 안 됩니다. 멈춰버리고 떨쳐버릴 것 같으면 수행은 거기서 중단돼버립니다. 그대로 계속 관찰해나가면 됩니다. 그건 수행을 잘 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Q22. 호흡을 하고 있는데 배를 관찰하고 있으면 '일어남' '사라짐' 하고 명칭을 붙이는데 그 명칭에 맞춰서 호흡을 해버리는 경우.

 

명칭을 '일어남' '사라짐' 하고 붙이는데, 명칭에다가 호흡을 일치시킨다는 거라.

그러니까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일어남이 길어질 수도 있고 짧아질 수도 있고, 거기에 따라서 호흡도 요만큼, 아니면 요만큼 이렇게 맞춰버리는 경우들. 부정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명칭에다가 호흡을 맞춰버립니다.

명칭은 뭡니까? 실재적인 게 아니죠? 실재적인 게 아닙니다. 개념이고 관념입니다. 그 관념에다가 실재적인 몸의 현상을 맞춘다고 할 거 같으면 말이 되겠어요? 말이 안 되는 거라.

 

우리가 조금 있다가 점심 공양도 하겠지만 점심 먹고 나서 입안이 컬컬하니까 차를 마시고 나올 거 같으면 이해가 돼. 그런데 차 마시기 위해가지고 내가 밥을 먼저 먹는다 할 거 같으면 누가 이해해주겠어요? 내가 배가 부르든 안 부르든 그거는 관계하지 않고, 배가 아무리 불러도 또 차 먹기 위해서는 또 밥을 먹어야 된다는 거라.

명칭에다가 호흡을 맞춘다고 하는 것은 그와 마찬가지라는 거라. 억지로 그거 한다고 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그게 얼마나 부작용이 많이 일어나겠어? 배가 불러있는 데다가 차 먹기 위해서 또 밥 먹는다고 할 것 같으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어?

 

명칭에다가 실재적인 대상을 맞추면 안 됩니다. 명칭은 대상에 마음을 모으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차라리 그럴 경우에는 명칭을 붙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는 거라.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기초수행하는 사람들은 명칭을 붙이지 않으면 마음이 달아나버립니다. 달아나버리니까 달아나지 않게끔 명칭을 부여해줘라 하고 대부분 수행지도자들이 얘기를 합니다.

그게 맞습니다.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로 뛰어다니거든. 이놈을 갖다가 어떻게 하든지 간에 내가 수행하는 대상에다가 갖다 붙여야 되는데, 붙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다 보니까 명칭을 개발해가지고 붙여주는 거라. 그런 것이지 명칭이 우선 될 수는 없다는 거라. 실재적인 대상보다 명칭이 우선될 수는 없다는 거라. 그래서 되도록이면 명칭을 부여해주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명칭을 부여해 줄 때는 반드시 실재하는 것들을 알고 나서 명칭을 부여해주는 습관들을 가져야 된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앉자마자 명칭을 가지고 '일어남' '사라짐' 하면서 배를 관찰할려고 하지 말고!!!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서 불러올 때 '일어남' 하고 명칭을 붙이라는 거라. 실재적인 것을 알고 나서 거기에 따라서 명칭을 부여해 주는 습관을 자꾸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만이 실재적인 대상에다가 명칭이 살포시 달라붙게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명칭 먼저 습관적으로 붙이게 될 거 같으면 명칭에다가 실재적인 대상을 끌어맞추게 되는 행보를 가지게 된다는 거라. 그걸 자꾸 여러분들이 습관화되도록 해야 됩니다.

 

그리하는데 언제 그럼 명칭을 붙이지 않게끔 되는가?

너무나 빠를 때, 여유가 없을 때! 명칭을 붙이는 것이 여유가 없을 때 명칭은 떨어져 나갑니다. 쉽게 말하면 아까 이렇게 손바닥을 댔을 때 이게 뜨거운 느낌이 있었다. 그러면 '뜨거움' 하고 관찰하는데, 이 뜨거움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뜨거워진다고 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명칭을 붙일 때 '뜨거움' '뜨거움' 그거 뜨거움'을 굉장히 빠르게 '뜨거움' '뜨거움' '뜨거움' '뜨거움' 하고 붙여줘야 된다는 거라.

 

왜? 똑같은 뜨거움이 아니니까! 변하는 것을 알았으니까 '뜨거움' '뜨거움' 하면서 명칭을 붙여주는데 명칭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돼나간단 말이라. 그럴 땐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냥 명칭을 '뜨거움'이라고 다 붙이지 못하고 '뜨, 뜨, 뜨, 뜨, 뜨' 이렇게 돼버리는 거라. 빨리 따라가지 못하니까.

그러다 보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리해도 대상에다가 마음이 밀착되어 있을 거 같으면 자연스럽게 명칭을 붙일 수가 없는 거라. 너무나 빠르기 때문에.

그런데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명칭이 떨어져 나가버립니다.

 

그런데도 명칭을 붙일끼라고 '뜨, 뜨, 뜨, 뜨' 하고 있을 거 같으면 어떻게 돼요? 굉장히 피곤해집니다. 명칭은 붙일 수 있어. 붙일 순 있지만 내가 피곤해지는 거라. 피곤해지니까 수행이 잘 안 되니까 당연히 떨어트려버린다는 거라. 그럴 때가 아닐 거 같으면 명칭을 붙여줘라.

도저히 그 대상을 따라가서 명칭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것이 아니면 처음에 수행할 때는 반드시 명칭을 붙여주라는 거라.

 

명칭을 떨어트려버리고 나면 관념 없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때문에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장점은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볼 때 처음에 명칭 없이 배를 관찰하면 배가 분명하게 볼록볼록하는 것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요걸 그냥 명칭 없이 그냥 그대로 볼록볼록하는 걸 관찰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오래도록 하지 못하고 마음이 벗어나버린다는 거라.

관념이 없으면 대상을 직접적으로 경험을 한다는 거라. 그런데 습관화가 안 되어 있을 거 같으면 빨리 또 마음이 벗어나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처음에 수행을 할 때는 반드시 대상에다가 명칭을 부여해주도록 해야 됩니다.

부여해주더라도 가볍게 부여해줘야 됩니다. 먼저 명칭을 내가지고 대상을 끄잡아들이지 말고, 대상을 먼저 알아차리고 나서 대상에 가볍게 명칭을 부여해주도록 해야 됩니다. 그런데 어차피 나중에는 명칭을 떨어트려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행할 때 어떻게 명칭을 부여해줘야 되겠어요?

천천히 하면서 명칭을 세분화시켜주라는 거라. 그래서 발을 들어올릴 때 '들어올림' 하면서 명칭을 부여해 주지 말고, '들어올림' '들어올림' '들어올림' '들어올림' 하면서 명칭을 좀 더 세분화시켜 줘라.

왜? 어차피 나중에 되면 들어올려지는 느낌에서 가벼운 게 있으면 가벼운 느낌들이 자꾸 변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에 맞게끔 '가벼움' '가벼움' '가벼움' '가벼움' 하면서 명칭을 또 부여해 준다는 거라.

이렇게 명칭이 자꾸 세분화되고 그러다 보면 그 가벼운 것들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명칭을 부여해 줄 수 없는 상태까지 돼. 그러면 명칭들이 떨어져 나가.

 

그러면 가벼움의 특성들이 드러날 뿐 아니라 가벼움이 변하는 사실을 이 발을 하나 들어올릴 때 알게 되는 거라. 그러기 위해서 명칭을 부여해 줄 때 명칭이 무거워버릴 거 같으면 들어올릴 때 '들어올림' 하면서 명칭에다가 발을 들어올린다는 거라. 그러지 마라 라는 거라.

 

그래서 들어올릴 때 '들어올림' '들어올림' '들어올림' '들어올림' 하면서 자꾸 세분화시켜주도록 하라는 거라. 나아갈 때도 빨리 마음을 회전하면서 '나아감' '나아감' '나아감' 하면서 명칭을 자꾸 세분화시켜 주라는 거라.

그러다가 그 중간에 느낌들이 일어나면 '들어올림' '들어올림' 하고 나서 가벼운 느낌이 일으면 '들어올림' '들어올림' 하면서 '가벼움' 하면서 퍼뜩 알아차리라는 거라. 퍼뜩 알아차리고 다시 '가벼움' 하면서 명칭을 부여해 주고, 이렇게 자꾸 세분화시켜 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명칭을 떨어트리기도 쉽고 대상을 알아차리기도 쉬워진다는 거라. 대상의 개별적인 특성과 고유한 특성을 알아차리기가 더욱더 쉬워진다는 거라.

 

그러기 위해서는 수행을 할 때 조금 더 천천히 하라는 거라. 지나치게 천천히 하면 안 되고, 지금 내가 그것을 발견하고 알아차리지 못할 때는 평상시로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정도 수행능력이 된다고 할 거 같으면 되도록 천천히 하라. 천천히 하고, 그때 일어나는 느낌들을 관찰할려고 하고, 일어나는 느낌들은 현재하는 것들 지금 즉시 일어나는 것들을 관찰하도록 하라.

 

이게 인제 위빳사나 수행에서의 삼대 원칙이라고 하는 거라.

천천히 하고, 느낌을 알아차리고, 생중계하라. 수차 반복을 하는 것들입니다.

의도에 대한 부분이 있는 것을 먼저 알고 나면 관찰하기가 수월한데, 이 부분은 여러분들이 아직은 잘 모를 겁니다. 다음 시간에 이 부분에 대한 걸 다시 조금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