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수행문답 법문

[문답] : 수상행식에서 수(느낌)와 신수심법에서의 수(느낌)의 차이

담마마-마까 2022. 4. 26. 09:00

< 질의 응답 > 18:10~

https://youtu.be/iWGu0ghVBMA

 

<질의 응답> 18:10~

[문답] : 수상행식에서 수(느낌)와 신수심법에서의 수(느낌)의 차이

 

Q 수행자 질문 : 배를 관찰할 때, 사대를 관찰하면 그때 보통 느낌을 관찰한다는데, 수·상·행·식에서 수(느낌)와 배를 관찰할 때의 느낌하고는 분명히 다른 건데, 같다고 착각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스님 답변 : 그렇죠. 그 느낌은 접촉으로 인해서 인해서 일어나는 겁니다.

느낌은 어떤 경우든지 정신적인 현상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렇지만 그 느낌을 아는 것은 느낌만으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아는 마음이 있어야만이 느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느낌이 있다'고 하는 것은 '마음의 작용'인 것이지 느낌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느낌은 어떠한 경우든지 '느낌만'을 얘기할 때는 '물질적인 것'들에 해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느낌이 있다고 아는 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정신적인 현상이다'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구분할 수 있어야 됩니다.

 

Q 수행자 : 그래서 배의 느낌은 감각적인 접촉이 될 것이고, 수·상·행·식 할 때의 수는 웨다나(느낌)로써 서로 차이가 있게 되죠?

스님 : 그런데 연관은 가지고 있습니다. 접촉이 없으면 느낌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Q 수행자 : 접촉을, 느낌이 오기 전에 접촉을 알아볼 수 있습니까?

스님 : 물론 그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Q 수행자 : 그럼 느낌이 일어날 때 아는 마음이 있어야 알아지는데, 수·상·행·식 할 때의 수는 접촉이 일어난 다음에 수를 얘기하고,

스님 : 그래서 수는 수 혼자서 일어날 수가 없고, 마음이 있을 거 같으면 항상 수···식은 동시에 같이 일어난다 하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Q 수행자 : 선등회장님이 얘기하는 것은 뭐냐면, 우리가 통상 수상행식 마음을 얘기할 때의 수와 우리가 수행할 때 느끼는 수와 차이가 있다?

스님 : 차이가 분명히 있죠! 오온에서의 수는 오온의 마음을 분리해가지고 수, 상, 행, 식으로써 구분해놓은 것이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수행할 때 일어나는 느낌이라는 것, -느낌은 ···식이 다 통틀어져가지고 있는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느낌은 어떠한 경우든지 상, 행, 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 느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Q 수행자 : 그럼 수상행식 마음을 얘기할 때의 수상행식은 이론적으로 수상행식이지 실제로는 같이 일어난다는 얘기 아닙니까?

스님 : ···식은 같이 일어나죠.

• 수행자 : 같이 일어나는데, 그러면 수행할 때의 수도 수상행식이 같이 일어날 거 아닙니까?

스님 : 수가 그렇다고 해가지고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공기가 팔을 접촉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팔을 실제적으로 쭉 문질러보면 여러 가지 느낌들이 사실은 있습니다. 이거는 '접촉'으로 인해서 일어난 거거든요.

그런데 접촉으로 인해서 느낌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이 없으면 이것은 내가 느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겁니다. 그렇다고 느낌이 없다고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는 거라. 어떠한 경우든지 느낌은 있게 돼있습니다.

 

Q 수행자 : 제 생각으로는 오식(五識)으로써의 신식(身識)을 배를 통해서 보는 것 아닙니까?

스님 : 아닙니다! 그렇게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부처님 말씀을 자꾸 오역하게 됩니다. 신식이라고 하는 것은 신식 혼자서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유식에서나 얘기하는 것이고, 대승불교에서나 얘기하는 것이지,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신식이라고 하는 것은 지혼자서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수·상·행이라고 하는 것이 없으면 신식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상·행은 뭘 조건으로 합니까? 접촉을 조건으로 하고, 접촉은 어떠한 경우든지 몸과 마음을 조건으로 하게 됩니다.

이렇게 서로 연결되고 조건화돼서 일어나는 것이지 신식 지혼자서만, 여러분들이 신식이 있다, 그럼 만약에 느낌이 있다, 행·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 느낌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것을 분리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것을 그렇게 알면 그것은 부처님 말씀을 잘못 오역하게 됩니다.

그것은 수정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식이 있다, 식이 있다 하는 것은 내가 언제 너한테 그렇게 가르쳤느냐 하면서 부처님이 야단을 친 이유가 그런 이유들입니다.

 

Q 수행자 : 예. 또 한가지는 이 오온을 관찰하는 것을 신·수·심·법의 신(身)-몸 관찰하는 영역으로 넣는 경우들도 있던데요?

스님 : 아닙니다! ···법 어디에든지 오온이 없이 그것을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만약에 몸을 관찰한다. 그럼 움직임을 관찰하는 겁니다.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은 오온이 없는 상태에서 움직임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몸 하나도 움직일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일어나는 느낌들, 느낌의 변화들, 오온 없이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도 꼭 마찬가집니다. 몸이 없는 상태에서 마음에서 뭔가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오온이 없는 상태 수상행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신수심법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오온으로써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온을 알아차리는 것이 몸에 대한 수행에만 해당 된다 하는 것은 그것은 잘못된 부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사띠-알아차림으로 인해서 깨달음에 이를 수 있지만, 그것은 4가지 방법이 있다고 해서 신·수·심·법이라고 분명하게 정의를 내려놓았습니다.

사띠는 어떠한 경우든지 몸과 마음의 영역입니다. 몸과 마음이 있어야만이 사띠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할 것 같으면 오온은 어떠한 경우든지 신수심법으로써 다 알아차리게 된다는 그런 뜻입니다.

 

Q 수행자 : 어떤 책에는 보니까 신·수·심·법의 수는 마음에서 좋다, 싫다, 그저 그렇다 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은 수고, 오온을 관찰하는 것은 몸의 영역이고 몸을 관찰하는 것이고, 그렇게 분류를 해놓았던데...

스님 : 그렇게 보면 안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느낌은 좋고, 싫고, 무덤덤한 느낌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거는 느낌의 영역을 구분할 때 그렇게 3종류로 구분하기도 하고, 또 다른 종류로써 느낌을 구분하고 하기도 합니다. 그거는 '느낌을 구분하는 방법'인 것이지

 

그 구분하는 것을, 좋은 것을 아는 것은 느낌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느낌이 일어난 것'을 분명하게 '마음으로 인식한 것'들입니다.

좋다는 것을 어떻게 알 겁니까? 그래서 느낌을 3종류로 구분한 것을 수의 영역에 속하고 뭐 어떻게 하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편의상 그렇게 구분해놓은 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것밖에 지나지 않습니다.

 

 

* 느낌을 바르게 알아차리는 법 (20150313. 대구) 

: https://blog.daum.net/alfl6843/1667